103세 김옥라 장로 인생 회고: 장수 비결과 신앙, 삶의 지혜
103세 김옥라 장로, 파란만장 인생 회고: 감사와 신앙, 역경을 넘어선 삶의 지혜
파란만장했던 삶의 발자취: 김옥라 장로님의 인생 역정 상세 정리
오늘, 103세의 김옥라 장로님께서 파란만장했던 지난 세월을 회고하며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교훈을 선사해주셨습니다. 1918년생, 한 세기를 훌쩍 넘는 삶을 살아오신 장로님의 이야기는 단순한 개인사를 넘어,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생생한 증언과 같습니다. 장로님은 젊음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감사하며 사는 것"이라고 답하셨는데요, 이는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긍정적인 마음과 신앙심을 잃지 않았던 장로님의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게 합니다. 놀랍게도 여권 검사 시 나이가 믿기지 않아 오해를 받으신 적도 있다고 하시니, 103세라는 연세가 무색할 만큼 정정하신 모습입니다. 송해 선생님보다도, 만화가 박수동 선생님보다도 연세가 많으시다는 사실은 경이로움을 자아냅니다.
젊음 유지의 비결에 대해 장로님은 "늘 감사하며 살고, 하루도 가만히 앉아있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과거 컴퓨터도 없던 시절부터 성경 PBC, 토탈 바이블 커리큘럼 등을 통해 꾸준히 공부하고 묵상하셨다는 점은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는 삶의 중요성을 시사합니다. 새벽에 일어나 주기도문을 외우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신다는 장로님의 일상은 경건함과 부지런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처럼 규칙적인 생활 습관과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장수와 건강의 비결임을 몸소 보여주시는 듯합니다.
장로님은 격동의 시대를 살아오시며 만주사변, 제2차 세계대전, 6.25 전쟁 등 숱한 전쟁을 겪으셨다고 회고하셨습니다. 일제강점기 일본 유학 시절, 도쿄 도시샤 대학에서 약학과에 재학 중이셨다는 사실은 놀랍습니다. 당시 학병 징집을 피해 해군 공창에 파견되어 힘든 생활을 하셨다고 합니다. 1944년 겨울, 해질 무렵 공장 일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던 중, 어디선가 들려오는 "창고" 소리에 이끌려 한국인 노동자들을 만나게 된 이야기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습니다. 타향에서 고향의 악기 소리를 듣고 동족을 만났을 때의 감격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창고" 소리를 따라 찾아간 초가집에서 한국인 부인을 만나 극적으로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 이야기는 감동적입니다. 일본 정부의 감시 속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한국인 노동자들과 교류하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다고 합니다. 종전 후, 교토의 학교로 돌아갔지만, 귀국길이 막막했던 상황에서 꿈처럼 한국인 남편을 만나 부산으로 향하는 "교환선"을 타게 된 것은 마치 운명과도 같습니다. 남편과의 만남은 단순한 인연을 넘어, 장로님을 고국으로 인도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일본에서 극적으로 탈출하여 한국에 돌아온 후, 6.25 전쟁이라는 또 다른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전쟁 발발 직후 3개월간 공산 치하에서 겪었던 공포와 고통은 생생하게 전달됩니다. 인민군에게 재산을 빼앗기고, 죽음의 위협을 느끼는 절체절명의 순간들을 겪으셨다고 합니다. 특히 9.28 서울 수복 당시, 인민군에게 끌려가 죽음을 눈앞에 두었던 상황에서 기지를 발휘하여 탈출한 이야기는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하나님, 제 영혼을 받아주세요" 라고 기도하며 절박한 심정으로 위기를 극복하셨다는 대목에서는 깊은 신앙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인민군에게 끌려가 경무대 지하 방공호에 갇혔을 때, 기지를 발휘하여 위기를 벗어난 이야기는 놀라운 순발력과 지혜를 보여줍니다.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핑계로 인민군을 속여 지하 방공호에서 빠져나와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하셨습니다. 탈출 과정에서 만난 국군 병사의 도움으로 무사히 귀가할 수 있었던 것은 천운이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발휘된 지혜와 용기는 감탄을 자아냅니다.
전쟁 후, 폐허가 된 조국에서 느꼈던 절망감과 애국심은 장로님을 새로운 삶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부산 피난 시절, 도떼기시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일본 잡지에서 한국 여성들이 일본 여성보다 못하다는 내용의 기사를 읽고 큰 충격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정치도, 경제도 아닌, 우리 딸들을 제대로 훈계하고 훈련하는 것이 애국" 이라고 깨닫고 여성 교육 운동에 헌신하기로 결심하셨다는 대목은 깊은 울림을 줍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여성으로서의 책임감이 장로님을 사회운동가의 길로 들어서게 한 원동력이었습니다.
뒷산에 올라 통곡하며 기도한 후, 여성 교육과 사회봉사에 헌신하기로 결심하신 장로님의 이야기는 감동적입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여성 단체 활동을 시작하셨고, 늦은 나이에 대한YWCA 회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되셨습니다. 회장 취임 당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당황했지만, 요한복음 15장 16절 말씀을 떠올리며 용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내가 너희를 택한 것이 아니라 너희가 나를 택했다" 는 말씀을 통해 소명의식을 갖고 여성 운동에 매진하셨습니다.
YWCA 회장으로서 하와이 세계 대회에 참석했던 경험은 장로님의 인생에 또 다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여성 지도자들을 만나면서 국제적인 안목을 넓히고, 세계 여성 문제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셨습니다. 특히 세계YWCA 회장 출마를 권유받고 고심 끝에 도전을 결심하신 이야기는 용기와 결단력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미국에서 열흘 동안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했고, "지금까지 세계 회장은 유럽, 미국 사람만 했지만, 전쟁과 6.25 사변을 겪은 한국 여성의 경험을 세계 여성들에게 알려주라" 는 계시를 받고 세계YWCA 회장 선거에 출마하셨다고 합니다.
세계YWCA 회장으로 당선되신 후, UN NGO 가입을 추진하고 49개국을 순방하며 활발한 국제 활동을 펼치셨습니다. UN NGO 가입을 통해 세계YWCA의 위상을 높이고, 국제 사회에서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하셨습니다. 49개국을 방문하며 각국의 여성 문제와 사회 현실을 직접 보고 듣고, 연대와 협력을 통해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셨습니다. "우리가 UN NGO다!" 라고 외치며 열정적으로 활동하신 모습은 국제 사회에 한국 여성의 위상을 드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장로님의 곁에는 항상 든든한 동반자이자 후원자였던 남편분이 계셨습니다. 결혼 당시, 신앙 문제로 고민했지만, 남편분의 진심 어린 설득과 격려로 결혼을 결심하셨다고 합니다. 남편분은 장로님의 사회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한 달씩 해외 출장을 다녀와도 불평 없이 따뜻하게 맞아주시고, 용돈까지 챙겨주셨다는 이야기는 남편분의 헌신적인 사랑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고등 교육을 받은 여성을 집안에 가두는 것은 사회적 낭비" 라는 남편분의 지론은 시대를 앞서가는 깨어있는 생각을 보여줍니다.
1990년,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은 장로님께 큰 슬픔과 상실감을 안겨주었습니다. 남편의 죽음을 통해 인간의 유한함을 깨닫고, "죽음이란 무엇인가?" 라는 깊은 질문을 던지게 되셨습니다. 오랜 고뇌 끝에 "죽음을 탁상에 올려놓고 공론화해야 한다" 는 깨달음을 얻고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 를 설립하여 죽음 준비 교육 운동을 시작하셨습니다. 남편의 죽음을 슬픔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죽음의 의미를 성찰하고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으로 승화시킨 장로님의 지혜와 용기는 존경스럽습니다.
"죽음은 관문을 넘는 것과 같다" 는 장로님의 말씀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삶의 마지막을 긍정적으로 준비하는 자세를 갖도록 합니다. 죽음 이후의 세계는 "가보지 않은 길과 같아서 알 수 없다" 고 겸손하게 말씀하시면서도, "하나님 손에 달려있다" 는 믿음을 굳건히 드러내셨습니다. 죽음에 대한 초연한 자세는 103년의 긴 세월을 살아오신 노老철학자의 깊은 통찰을 느끼게 합니다.
103년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장로님은 "고난은 없었다"고 단언하셨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6.25 전쟁 등 숱한 고난과 역경을 겪으셨지만, "그때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채워주시고, 극복하게 해주셨다" 며 감사와 믿음을 고백하셨습니다. 장수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는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장수의 축복을 주셨는지 궁금하다" 며 겸손한 태도를 보이셨습니다. 최근에는 성경 통독과 묵상에 집중하며 "성경 말씀을 더 깊이 알아가는 것이 남은 인생의 목표"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03세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더 해보고 싶은 일이 있냐는 질문에 장로님은 "성경 공부" 라고 답하셨습니다. 성경을 더욱 깊이, 넓게 공부하고 싶다는 열정을 드러내셨습니다. "토탈 바이블 커리큘럼" 을 통해 성경을 체계적으로 공부하며 깊이를 더해가고 있다고 합니다.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는 장로님의 모습은 나이에 상관없이 배움의 끈을 놓지 않는 삶의 중요성을 일깨워줍니다.
마지막으로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메시지를 묻는 질문에 장로님은 "애국심"과 "역사 인식"을 강조하셨습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한다" 며 올바른 역사관의 중요성을 역설하셨습니다. "우리나라가 하나님께서 택하신 제사장 나라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는 말씀은 기독교 신앙에 기반한 애국심을 보여줍니다. 젊은 세대가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갖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달했습니다.
오늘 김옥라 장로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함께 삶의 지혜를 선사해주었습니다. 격동의 시대를 살아오면서 겪었던 숱한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긍정적인 마음과 굳건한 신앙심을 잃지 않았던 장로님의 삶은 귀감이 됩니다. 103세의 나이에도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며 사회에 봉사하는 장로님의 모습은 우리 모두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장로님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며, 앞으로도 오랫동안 우리 곁에서 삶의 지혜를 나눠주시기를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