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의 삶과 신앙 이야기: 믿음의 밧줄
103년 삶의 밧줄, 김형석 교수의 신앙
신앙이란 밧줄과도 같은 것: 김형석 교수, 그의 삶과 지혜를 담아낸 깊이 있는 이야기
오늘 우리는 특별한 분을 모시고, 삶의 깊이와 지혜를 탐구하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바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몸소 겪어오신 김형석 교수님이십니다. 올해 103세라는 연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맑은 정신과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 계신 교수님의 이야기는, 단순한 인터뷰를 넘어, 우리 인생에 깊은 울림을 주는 소중한 지혜의 보고가 될 것입니다. 특히, 오늘 나눌 이야기는 교수님의 파란만장했던 인생 여정 속에서, 신앙이 어떻게 밧줄처럼 삶을 지탱해 주었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자, 그럼 김형석 교수님의 삶과 신앙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볼까요?
103세 철학자의 삶, 욕심 없이 아름다운 감정으로
놀랍게도, 올해 103세가 되신 김형석 교수님은,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해 주셨습니다. 1920년대 생이시라는 말씀을 듣고, 세월의 깊이를 짐작하면서도, 교수님의 정정하신 모습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실 장수 비결에 대해, 교수님은 "특별한 비결은 없다"고 겸손하게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이어진 말씀 속에서 장수의 지혜가 엿보입니다.
교수님은 장수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으로, 두 가지를 꼽으셨습니다. 첫째는 욕심이 많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필요 이상의 욕심은 인생을 피폐하게 만들고, 불필요한 고통을 가져온다는 것이죠. 둘째는 남을 탓하거나 비판하지 않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감정은 자신을 병들게 하고, 행복을 갉아먹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남을 비판하지 말고, 욕하지 말라"는 가르침처럼, 아름다운 감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욕심을 버리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김형석 교수님이 제시하는 장수의 비결이자, 행복한 삶의 지혜가 아닐까요?
어린 시절의 꿈과 하나님과의 약속
교수님의 인생 이야기는 마치 한 편의 드라마 같습니다. 어린 시절, 건강이 좋지 않아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들으셨다고 합니다. 14살 무렵, 비로소 자신의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고 느끼셨다는 교수님은,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건강을 주시면, 다른 사람을 위해 살겠다"고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마치 어린 사무엘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했던 것처럼, 김형석 교수님 역시 어린 나이에 하나님과의 약속을 맺었던 것입니다.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건강이 악화되었을 때, 교수님의 간절함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부모님도, 의사도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오직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건강을 주시면, 건강이 허락되는 동안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는 간절한 서원은, 단순한 기도를 넘어, 인생의 방향을 설정하는 중요한 약속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교수님은 중학교에 진학하고,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기적과 같은 응답이었죠. 50대 이후부터는, 오히려 남들보다 건강하게 느껴졌다고 하시니, 어린 시절의 약속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14살의 서원, 90년 넘는 헌신의 시작
교수님의 14살 때 서원은 단순한 어린 시절의 맹세가 아니었습니다. 65세 정년퇴임을 앞두고, 다시 한번 그 서원을 떠올리게 되셨다고 합니다. "14살 때 건강을 허락해 주시면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는 약속은, 정년퇴직 후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다른 교수님들은 정년퇴직을 인생의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교수님은 오히려 하나님과의 약속을 이행할 새로운 시작이라고 여기셨습니다.
마치 9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어진 셈인데요, 14살 때 시작된 서원은, 65세 정년 이후에도 멈추지 않고, 오늘날 103세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장수를 넘어,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며 살아온 헌신의 삶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증거입니다. 14살 어린 학생의 서원이, 90년 넘는 세월 동안 변함없이 이어져 왔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교훈을 줍니다.
어린 시절의 설교 경험, 섬김의 씨앗
놀랍게도, 교수님은 어린 시절부터 설교를 하셨다고 합니다. 10대 시절, 평양의 숭실중학교 기독교 학생으로서, 여름방학이면 시골 교회로 가서 성경학교를 열어주는 봉사활동을 하셨다고 합니다. 지금으로 치면, 여름 캠프와 비슷한 활동인데요, 당시 시골 교회는 열악했기 때문에, 중학생들의 도움은 큰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동급생 친구로부터 여름 성경학교 강사로 와달라는 부탁을 받았지만, 교수님은 자신이 없어서 망설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친구의 간곡한 부탁과 주변의 격려에 용기를 내어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김형석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어색했지만, 막상 강단에 서니, 놀랍게도 설교가 술술 나왔다고 합니다. 예상치 못한 재능을 발견한 것이죠. 그때부터 설교에 대한 자신감을 얻으셨고, 이후에도 여러 교회에서 설교를 하시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설교 경험은, 훗날 교수님의 삶의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섬김의 기쁨을 알게 해준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기차 안에서의 깨달음, 인생의 방향을 다시 세우다
여름 성경학교 봉사활동을 마치고, 평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교수님은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기차를 타고 가던 중, 문득 조용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14살 때 건강을 허락해 주면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느냐"는 음성은, 마치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듯했습니다. 순간, 교수님은 어린 시절의 서원을 잊고 살았던 자신을 깨닫고, 눈물을 흘리며 회개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절대 딴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만 섬기겠습니다"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평양역에 내려 집까지 8km나 되는 길을 걸어가면서도, 마음은 기쁨과 감사로 가득 찼습니다. 기차 안에서의 경험은,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서원을 다시 깨닫게 하고, 인생의 방향을 재설정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연처럼 찾아온 기차 안에서의 경험은, 어쩌면 하나님께서 교수님에게 주신 특별한 메시지였는지도 모릅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과의 만남, 신앙의 지평을 넓히다
17살 때, 교수님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설교를 들을 기회를 얻게 됩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독립운동가이자 사상가, 교육가로서, 민족의 지도자였는데요, 그의 설교는 교수님에게 큰 감동과 깊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교회 목사님들의 설교와는 다른, 새로운 차원의 메시지를 접하게 된 것입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신앙을 "자신이 가진 그릇만큼 담아내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릇이 작으면 작은 신앙을, 그릇이 크면 큰 신앙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 목사님들은 교회를 위한 신앙을 강조했지만, 도산 안창호 선생은 민족과 국가를 위한 신앙을 설파했습니다. 고당 조만식 선생의 설교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두 분의 설교를 통해, 교수님은 신앙의 지평을 넓히고,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를 넘어, 민족과 국가를 위한 신앙을 가져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는 좁았던 신앙의 틀을 깨고,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발걸음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의 시련, 믿음으로 극복하다
일제강점기, 교수님은 대학 생활을 하셨습니다.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면서, 한국 학생들은 일본 군대에 징집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고, 내가 너희를 택했다"는 성경 구절은, 교수님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주었습니다. "내가 너를 택했다"는 말씀은, 마치 하나님께서 직접 교수님에게 하시는 말씀처럼 들렸습니다.
군 입대를 앞두고 고민하던 교수님은, 성경 말씀을 통해 마음의 평안을 얻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놀랍게도, 징병 검사에서 건강 문제로 불합격 판정을 받았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제 알았습니다"라는 짧은 기도는, 모든 불안과 걱정을 씻어내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 상황 속에서도, 교수님은 믿음의 밧줄을 굳게 잡고, 시련을 극복해 나갔습니다. 어려운 시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 이것이 바로 김형석 교수님의 삶을 지탱해 온 힘입니다.
해방의 감격, 잊을 수 없는 꿈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했을 때, 교수님은 잊을 수 없는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해방의 기쁨과 감격을 생생하게 경험한 것입니다. 꿈속에서 교수님은 평양 진남포 바닷가에 서 있었는데, 그곳에서 모 선교사를 만났습니다. 선교사는 교수님에게 두 개의 자루를 보여주었는데, 자루 안에는 일본 사람들의 시신이 가득했습니다. 피 묻은 시신들을 보면서, 교수님은 해방의 아픔과 슬픔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다음 날 새벽, 또 다른 꿈을 꾸었습니다. 이번에는 넓은 들판에서 밭을 갈고 있는 꿈이었습니다.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은, 마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듯했습니다. 신기하게도, 꿈에서 본 태양은 동쪽에서 떠올랐습니다. "태양이 동쪽에서 뜬다"는 아버지의 말씀은, 광복의 기쁨을 더욱 실감나게 했습니다. 꿈은 현실이 되었고, 조국은 해방되었습니다. 해방의 순간, 온 국민이 함께 느꼈던 감격과 기쁨은,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교수님에게 해방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해방 이후의 삶, 마음 밭을 갈다
해방은 교수님에게 새로운 소명을 주었습니다. "밭을 갈 듯이 국민들의 마음 밭을 갈라"는 메시지는, 해방된 조국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동안 상처 입은 국민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새로운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야말로, 교수님의 시대적 소명이었던 것입니다.
14살 때부터 시작된 신앙 여정은, 해방을 맞아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내가 너를 택했다"는 하나님의 말씀은, 교수님의 삶의 방향을 제시했고, 해방의 감격은 새로운 헌신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해방 이후, 교수님은 30년 넘게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수많은 젊은이들의 마음 밭을 갈고, 미래를 위한 씨앗을 뿌렸습니다. 교수님의 삶은, 14살 때의 서원부터 시작하여, 해방 이후의 소명까지,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아름답게 펼쳐진 한 편의 서사시와 같습니다.
신앙의 밧줄, 어려움 속에서 삶을 지탱하다
교수님은 신앙을 "밧줄"에 비유했습니다. 인생이라는 바다를 항해하는 동안, 신앙은 밧줄처럼 삶을 지탱해 주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밧줄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는, 어려움 속에서 얼마나 견딜 수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신앙이라는 밧줄을 굳게 잡고 있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꿋꿋하게 인생의 항해를 계속할 수 있습니다.
목사나 신학자가 된 친구들과 교수님의 차이점은, 어려움에 대처하는 방식에 있었습니다. 친구들은 개인적인 기도에 집중했지만, 교수님은 사회 전체의 문제에 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정치 지도자들의 부정직함, 사회적 불의 등,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사회를 바로 세울 수 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개인적인 어려움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까지 끌어안고 고민했던 교수님의 모습은, 참된 지성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신앙은 단순한 개인적인 위로를 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교수님은 삶으로 증명해 보였습니다.
젊은 세대에게 전하는 메시지, 꿈과 비전을 가져라
교수님은 젊은 세대들에게 "꿈과 비전을 가지라"고 강조합니다. 중학교 시절, 함께 학교를 다녔던 윤동주 시인, 황순원 작가, 함석헌 선생을 예로 들면서, 꿈과 비전의 중요성을 설명했습니다. 세 사람은 모두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겼고, 공통점은 "50, 60대가 되었을 때 어떤 삶을 살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자화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윤동주 시인은 시인으로서 민족의 아픔을 노래했고, 황순원 작가는 소설가로서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냈습니다. 함석헌 선생은 언론인이자 사상가로서 사회 정의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세 사람은 모두 중학생 때부터 자신의 꿈과 비전을 확고하게 가지고 있었고, 그 꿈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교수님은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인생에 대한 자화상을 그려보고, 꿈과 비전을 향해 나아가라"고 격려합니다. 꿈과 비전은 젊은 세대에게 방향을 제시하고, 열정을 불어넣어 주는 삶의 나침반과 같습니다.
죽음에 대한 성찰,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라
103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교수님은 죽음에 대해 초연한 태도를 보이십니다. 죽음을 "삶의 연장선상에 있는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삶의 의미에 더 집중합니다. 죽음을 "마라톤 경주의 결승점"에 비유하면서, 결승점을 향해 최선을 다하는 마라토너처럼,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죽음에 대한 지나친 생각은 오히려 삶의 의미를 퇴색시킬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죽음을 묵상하면서, 현재의 삶을 더욱 가치있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교수님은 주변 사람들의 죽음을 접하면서, 고통과 슬픔을 덜어주고, 아름다운 마무리를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날까지,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가겠다"는 교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삶의 용기와 희망을 줍니다.
믿음, 삶의 원동력이자 축복의 통로
김형석 교수님의 삶은 한마디로 "믿음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서원부터, 일제강점기의 시련, 해방의 감격, 그리고 103세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순간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살아왔습니다. 신앙은 교수님에게 삶의 원동력이자, 축복의 통로였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장수한다"는 성경 말씀처럼, 교수님은 장수와 건강의 복을 누리셨습니다. 하지만, 교수님의 장수 비결은 단순히 건강 관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욕심 부리지 않고, 남을 탓하지 않고, 아름다운 감정을 유지하는 것"에 있었습니다. 이는 곧 하나님의 말씀을 삶으로 살아낸 결과입니다. 교수님의 삶은 우리에게 참된 믿음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교훈을 줍니다. 오늘 김형석 교수님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모두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믿음 안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교수님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며, 오늘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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