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기도의 기적과 목회자 김지영의 치유 간증 이야기
100일 기도로 얻은 기적: 치유와 목회
어린 시절과 음악적 재능
김지영 목사님은 5살 때부터 피아노를 시작하며 음악적 재능을 보였습니다. 어머니는 교회 반주자를 구하기 힘든 작은 교회들을 위해 딸이 반주를 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피아노를 가르쳤는데요, 김 목사님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교회 반주를 시작하며 뛰어난 재능을 드러냈습니다. 콩쿠르에 나가면 늘 1등을 휩쓸었고, 자연스레 피아니스트의 꿈을 키우며 음대 교수를 목표로 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바람과는 별개로, 김 목사님은 클래식 피아니스트로서 성공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독일 유학, 교회 반주, 그리고 음악 감독
피아노 실력으로 독일 유학길에 오른 김 목사님은 독일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특히 독일 음대 입시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초견 시험에서 강점을 보였는데요, 이는 어린 시절부터 교회 반주를 하며 쌓은 경험 덕분이었습니다. 찬송가 악보는 물론, 목사님의 즉흥적인 코드 변경에도 빠르게 대처하며 반주했던 경험이 복잡한 오케스트라 악보 초견에 큰 도움이 된 것입니다. 교수님들조차 놀랄 정도로 뛰어난 초견 실력 덕분에 김 목사님은 독일 유학 생활을 성공적으로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김 목사님은 만 28세의 나이로 교회 음악 감독 자리를 맡게 되었습니다. 본래 음대 교수를 꿈꿨지만, 당시 나이가 어려 교수 임용 조건에 미달했기에 교회에서 음악 감독으로 봉사하며 경력을 쌓기로 한 것입니다. 클래식 음악만 고집했던 김 목사님은 교회에서 버클리 음대 출신의 밴드들과 협업하며 새로운 음악적 경험을 하게 되었는데요, 밴드 음악의 편곡과 자유로운 스타일에 매료되어 클래식과 밴드를 접목하는 새로운 시도를 예배에 도입하여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이러한 음악적 시도는 김 목사님의 음악 세계를 한층 넓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교수 대신 신학의 길로
교회 음악 감독으로 활동하던 중 담임 목사님의 권유로 신학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전부터 주변에서 목회자의 길을 권유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술을 좋아하고 자유분방한 성격 탓에 목회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독일 유학 시절, 인문학, 철학, 신학을 기반으로 음악을 공부하는 동료들의 모습과 요요마와 같은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음악가들에게 영향을 받아 신학 공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결국, 음악적 깊이를 더하고 교수 임용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신학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게 된 것입니다.
신학 대학원 생활은 독일 유학 시절과는 또 다른 어려움의 연속이었습니다. 독일어보다 더 어렵게 느껴지는 한문과 한자 투성이의 한국 신학 용어들은 김 목사님을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리포트 숙제를 위해 나이 많은 전도사님들에게 한자를 물어보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지곤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목사님은 "프로필 한 줄 추가"를 목표로 신학 대학원 과정을 이어갔는데요, 예배학 교수님의 권유로 예배팀에 합류하여 예배 기획에 참여하면서 학교 생활에 적응해 나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목회자의 길에 대한 진지한 고민보다는 교수 м임용을 위한 스펙 쌓기에 더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100일 기도와 영적 체험
신학 대학원 3학년, 교수 임용을 위한 연주 스케줄을 준비하던 중 갑작스러운 허리 통증이 찾아왔습니다. 오랜 시간 피아노 연주로 단련된 몸이었지만, 걷는 것은 물론 앉아 있거나 누워 있는 것조차 힘겨울 정도의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게 된 것입니다.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MRI, CT 촬영 등 정밀 검사를 받았지만, 정확한 병명조차 알 수 없었고, 수술 역시 효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진통제 주사도 일시적인 효과만 있을 뿐, 통증은 계속되었고, 독일 유학 시절 알고 지내던 의사를 찾아가 봤지만 뾰족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습니다.
수개월 동안 통증은 나아지지 않았고, 점점 지쳐가던 김 목사님에게 문득 '웅녀'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곰이 쑥과 마늘을 먹고 100일 동안 기도하여 인간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왠지 모르게 마음에 와닿았는데요, 남편의 권유도 있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100일 기도에 매달리기로 결심했습니다. 매일 밤 9시부터 세 시간씩 기도했지만, 기도 경험이 부족했던 김 목사님에게 세 시간은 너무나 긴 시간이었습니다. 찬송가를 부르고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지만, 극심한 고통 속에서 "하나님, 어쩌라는 거예요?"라는 절규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자살 충동까지 느낄 정도로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서 김 목사님은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100일 기도 30일째 되던 날, 환상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경험하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천사의 안내로 천국과 지옥을 둘러보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선 김 목사님은 "착한 일도 악한 일도 닥칠 만큼 하지 않았다"는 심판을 받았습니다. 2주간의 인턴 기간을 거쳐 다시 현실로 돌아온 김 목사님은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웠던 이전과는 달리, 천국에 가기 위해 죄를 용서해달라는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50일째 되던 날, 기도 중에 몸에서 무언가가 나가는 듯한 느낌과 함께 할머니 형상의 환영을 보았고, 그 이후 거짓말처럼 하혈이 멈추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악령이 떠나가고 몸이 치유되는 놀라운 경험을 통해 성경 속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50일 이후, 김 목사님의 기도는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겠다는 헌신적인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고, 99일째 되던 주일 새벽, 교회로 향하던 중 남편이 옆에 있던 다른 사람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엘리베이터에서 혼자 탔고, 주변에 아무도 없었던 상황이었기에 의아했지만, 그날따라 통증이 사라지고 몸이 가벼워진 것을 느꼈습니다. 다음 날 병원을 찾아 MRI, CT 촬영을 다시 한 결과, 놀랍게도 허리 상태가 눈에 띄게 호전된 것을 확인했습니다. 100일 기도를 통해 병이 완치되는 기적을 경험한 것입니다.
100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깊이 만난 이후, 삶의 목적과 가치관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전에는 피아니스트로서의 성공과 명예를 쫓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이 인생의 주인이 되셨고, 자신은 하나님의 도구로서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주인공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며, 자신은 하나님께 쓰임 받을 때 가장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교수가 되는 것, 돈과 명예를 얻는 것은 더 이상 중요한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100일 기도는 김 목사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터닝포인트가 되었습니다.
목회자의 길, 그리고 카페 '보드레 안다미로'
100일 기도 이후 목회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지만, 목사가 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신학 대학원 졸업 후 수련 목사가 되기 위한 시험을 봐야 했는데요, 여전히 목사가 되는 것에 대한 갈등이 남아있었지만, 담임 목사님의 권유와 주변의 기대 때문에 시험을 치르기로 했습니다. 놀랍게도 시험에서 합격했고, 수련 목사 3년 과정을 거쳐 목사 안수를 받기 직전까지도 목사가 되는 것에 대한 망설임은 계속되었습니다. 하지만 목사 안수 5일 전, 평창 별장에서 기도하던 중 3년 전 환상 속에서 보았던 악령의 존재를 다시 느끼게 되면서, 찬양의 힘을 통해 악령을 쫓아내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찬양의 능력과 십자가의 힘을 깨닫고, 마침내 기쁜 마음으로 목회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김 목사님은 카페 '보드레 안다미로'를 운영하며 목회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카페는 단순한 수익 창출 공간이 아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복음을 전하는 전도의 장이 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속에서도 오히려 일대일 심방과 상담에 집중할 수 있었고, 카페를 찾는 손님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며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유명 배우, 기자, 매니저 등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삶 속에서 겪는 고충을 듣고 위로하며 멘토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카페 2층 갤러리를 무료로 개방하여 무명 화가들의 작품 전시를 지원하고, 새로운 문화 사역의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카페 운영 외에도 커피 강사, 바리스타, 피아노 레슨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특히 고3 입시 레슨을 통해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전하고, 음악적 재능뿐 아니라 신앙적으로도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 있는 학생들을 위한 무료 레슨도 진행하며, 음악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는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김 목사님의 삶은 음악과 신앙, 카페 운영과 목회 활동, 다양한 분야를 융합하여 선한 영향력을 펼치는 아름다운 여정입니다.
앞으로의 비전과 사회적 기업
앞으로 김 목사님은 사회적 기업 설립을 통해 문화 사역을 더욱 확장해나갈 계획입니다. 클래식 사회적 기업을 설립하여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 있는 아이들에게 클래식 교육을 제공하고, 해외 사회적 기업과의 연계를 통해 국제적인 교류를 추진하고자 합니다. 경력 단절 여성들을 사회적 기업의 강사로 채용하여 일자리를 창출하고, 전문성을 갖춘 강사진을 구성할 계획입니다. 음악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소외된 이웃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가는 것이 김 목사님의 새로운 비전입니다.
마무리
김지영 목사님의 간증은 100일 기도라는 특별한 경험을 통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된 감동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음악적 재능, 독일 유학, 교회 음악 감독, 카페 운영 등 다채로운 경험을 통해 쌓아온 역량을 바탕으로, 앞으로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사회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펼쳐나갈 김 목사님의 사역을 기대해봅니다.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헌신으로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가는 김 목사님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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