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빈민 30년 헌신, 최원금 이현주 선교사 감동 간증
30년 인도네시아 빈민 섬김, 최원금 이현주 선교사의 기적
"새롭게 하소서" 최원금, 이현주 선교사 간증 상세 정리: 30년 인도네시아 빈민 사역의 헌신과 기적
이번 글에서는 유튜브 채널 "새롭게 하소서"에 출연하신 최원금, 이현주 선교사님의 감동적인 간증을 20,000자 내외로 상세하게 정리하고, 핵심 노하우와 방법론을 구체적이고 정량적으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단순히 텍스트 내용을 요약하는 것이 아니라, 생생한 현장감과 깊이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텍스트 내용을 바탕으로 친근하고 자세한 서술형 문장으로 재구성했습니다. 특히, 선교사님의 30년 헌신과 인도네시아 빈민 사역의 핵심과 중요 노하우를 극도로 자세하게 풀어나갈 예정입니다. 불필요하거나 중복되는 내용은 최대한 간결하게 정리하여, 핵심 메시지가 더욱 돋보이도록 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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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최원금, 이현주 선교사님의 감동적인 간증 속으로 함께 떠나보시죠. 과연 두 분은 어떻게 3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인도네시아 빈민들을 섬기며 헌신할 수 있었을까요? 그 놀라운 이야기와 생생한 노하우를 지금부터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폐쇄된 기차역, 300명의 노숙자들과의 만남: 사역의 시작
이야기는 주영훈 님의 진행으로 시작됩니다. 안수지 님, 정봉길 님과 함께 "새롭게 하소서"의 문을 열며, 오늘 특별한 게스트, 인도네시아에서 30년 넘게 사역하고 계신 최원금, 이현주 선교사님을 소개합니다. 주영훈 님은 오랜 사역에도 불구하고 건강 문제나 가족의 어려움으로 흔들릴 수 있는 상황 속에서, 오히려 "절대로 떠날 수 없다"고 외치는 선교사님들의 굳건한 헌신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과연 어떤 은혜가 두 분을 그토록 굳건하게 붙잡고 있는 걸까요?
궁금증을 자아내는 가운데, 드디어 최원금, 이현주 선교사님이 스튜디오에 등장하십니다. 인도네시아 전통 의상을 입고 환한 미소로 인사를 건네는 두 분의 모습은, 30년 세월의 무게를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밝고 활기차 보입니다. 정봉길 님은 선교사님의 의상에 감탄하며 인도네시아어로 인사를 건네고, 주영훈 님은 마치 디자이너 부부나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대통령 부부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칭찬합니다.
본격적인 인터뷰가 시작되고, 주영훈 님은 먼저 선교사님들이 인도네시아에서 정확히 어떤 사역을 하고 계신지 질문합니다. 최원금 선교사님은 "도시 빈민 사역"을 30년 8개월째 이어오고 있다고 답하며, "오늘의 배고픔을 달랠 무료 급식 사역과, 가난의 대물림을 끊을 미래 주인공을 키우는 교육 사역"을 병행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현주 선교사님은 사택 없이 사역 센터 4층 건물 중 3층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밝히며,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이석증으로 인한 건강 문제와 트라우마 때문에 사택에서 센터로 거처를 옮기게 된 사연을 털어놓습니다. 뜻밖의 고생이었지만, 오히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던 시기에 비용 절감 효과를 가져왔다는 남편분의 따뜻한 위로를 전하며, 현재는 사역에 만족하고 행복하다고 덧붙입니다.
주영훈 님은 30년 사역의 깊이를 짐작하며,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가 많을 것 같다며, 밝은 모습 뒤에 감춰진 은혜에 대해 묻습니다. 최원금 선교사님은 목회를 그만두고 인도네시아 빈민 사역에 헌신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폐쇄된 기차역" 때문이었다고 고백하며, 놀라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최원금 선교사님은 선교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후, 인도네시아 선교를 준비하던 중, 예장 합신 교단으로부터 한인교회 담임 목사직을 제안받았다고 합니다. 34세의 젊은 나이에 한인교회 목회를 시작하여 10년 차가 되었을 때, 초창기 언어 선생님이었던 지미 선생님이 찾아와 "어려운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고 싶다"며 예배 인도를 부탁했다고 합니다. 현지 교회는 냄새나고 더럽다는 이유로 빈민들을 환영하지 않았고,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현지 목사를 초빙할 수도 없었던 상황. 선교를 위해 인도네시아에 왔던 최원금 선교사님은 흔쾌히 예배 인도를 승낙하고, 한인교회 목회와 현지 빈민 사역을 겸하게 됩니다.
설교 후, 빈민들의 삶의 터전을 방문하게 된 최원금 선교사님은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합니다. 그들이 살고 있던 곳은 10년 동안 폐쇄된 기차역. 300명의 노숙자들이 철로 위에 널빤지를 놓고, 박스 조각으로 옷장을 만들어 생활하는 비참한 현실 앞에, 최원금 선교사님은 깊은 마음의 동요를 느낍니다. 특히 아이들의 모습은 어린 시절 가난했던 자신의 모습과 겹쳐지며, 폐쇄된 기차역은 한인교회 목회를 마감하고 빈민 사역에 헌신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상상하기조차 힘든 기차역에서의 생활. 문 닫힌 폐쇄된 공간, 기차 레일 위에서 잠자고 먹고 생활하는 노숙자들의 모습은, 도시 빈민 문제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교회 목회를 포기하고 빈민 사역에 뛰어드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요. 최원금 선교사님은 오전에는 한인교회, 저녁에는 빈민 사역을 병행하며 4년을 헌신합니다. 육체적으로 힘든 시간이었지만, 주님이 주신 은혜와 소명감으로 4년을 버텼고, 결국 한인 목회를 중단하고 빈민 사역에 전념하기로 결심합니다. 영상에서 보았던 자카르타의 화려한 모습 뒤에 감춰진 도시 빈민의 심각성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입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건빵 한 봉지의 추억: 빚 갚는 심정으로
주영훈 님은 자카르타의 도시 빈민 실태를 언급하며, 최원금 선교사님이 빈민들을 향한 뜨거운 마음을 갖게 된 원인이 어린 시절 가난했던 환경 때문이 아니었는지 질문합니다. 최원금 선교사님은 아홉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39세 젊은 나이에 홀로 4남매를 키우신 어머니와 형님, 형수님의 헌신적인 사랑 덕분에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고 회상합니다. 형제들의 화목함과 94세 고령에도 자손들을 위해 두 시간씩 기도하시는 어머니의 헌신에 감사하며, 가난했던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냅니다.
초등학교 시절, 학비 300원을 제때 내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교무실에 불려 가던 기억, 배고픔에 밥그릇의 밥이 빨리 줄어드는 것이 아쉬웠던 기억, 용돈이 생겨 건빵 한 봉지를 사서 동생과 나눠 먹으며 "군대 가면 건빵 많이 가져다주겠다"고 약속했던 눈물겨운 추억... 가난은 단순히 물질적인 결핍을 넘어, 마음속 깊은 상처와 애틋한 그리움을 남깁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절절한 슬픔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어려웠던 시절, 미국 후원자와의 만남은 한 줄기 빛과 같았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후원자는 매달 5달러씩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해주었고, 작은 정성은 소년에게 꿈을 심어주었습니다. 선교사가 되기까지, 빈민 사역을 헌신하게 되기까지, 얼굴도 모르는 후원자의 따뜻한 마음이 씨앗이 되었음을 고백하며, 빈민 사역은 어린 시절 빚진 사랑을 갚는 마음으로, 기쁨으로 감당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 민족 또한 가난과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외국의 도움으로 일어섰던 경험이 있기에, 빚진 마음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릅니다. 건빵 한 봉지의 따뜻한 추억은, 가난과 고통 속에 있는 아이들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고, 선교사의 길을 걷게 한 소중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고생하겠다"는 주변의 만류, 고등학생 시절 선교 헌신: 사모님의 고백
주영훈 님은 최원금 선교사님의 감동적인 이야기에 이어, 이현주 사모님께 "무슨 죄냐"며 농담을 건네며, 선교 동의 과정에 대해 질문합니다. 주변에서는 "남편 쫓아가서 고생할 것"이라는 만류가 많았다고 합니다. 이현주 사모님 또한 고등학교 1학년 때 예수님을 만나 선교를 헌신한 경험이 있습니다. 1980년 여의도에서 열린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집회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느끼고, 선교 헌신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고등학생의 순수한 마음으로 드린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남편의 선교 제안에 기꺼이 동의하고, 목회보다 선교에 대한 열정이 더 컸기에 지금까지 기쁨으로 헌신할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감사하며, 선교사의 길을 걷는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고 단언합니다. 요즘 교회에서는 헌신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사라졌지만, 과거에는 헌신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분위기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최원금 선교사님과 이현주 사모님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선교 헌신을 서약했습니다. 1980년 여의도 빌리 그레이엄 목사 집회, 비가 내리는 밤, 선교 헌신자를 호명하는 시간에, 두 사람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섰던 것입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였지만, 10년 후 부부의 연을 맺고 나서야 놀라운 우연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운명적인 만남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 이미 준비되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이현주 사모님의 단아하고 세련된 외모는 마치 대기업 회장님 사모님을 연상시킵니다. 하지만 현실은 매일 700인분의 식사를 준비해야 하는 고된 육체 노동의 연속입니다. 밥 짓는 일부터 반찬 준비, 도시락 포장, 배달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감당해야 합니다. 초창기에는 밥을 사서 제공했지만, 점점 질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하여 직접 밥을 짓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뜻있는 성도들과 함께 밥을 짓고, 기차역으로 배달하고, 심방까지 하며 헌신했습니다. 처음에는 100인분으로 시작하여 점차 늘려갔다고 합니다.
밥 짓는 아픔, 넉넉한 밥, 기적적인 응답: 채워주시는 하나님
700인분의 밥을 짓기 위한 주방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클 텐데요. 이현주 사모님은 밥과 함께 반찬도 준비해야 했지만, 인도네시아에서는 밥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합니다. 닭튀김은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반찬"이자 "외식 메뉴". KFC에서 닭을 시키면 반드시 밥과 함께 나오는 문화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밥차가 도착하면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한 곳으로 모여 줄을 서는 모습은, 마치 전쟁을 방불케 합니다. 밥이 부족할까 봐 초조해하는 사람들, 새치기하는 사람들, 밥을 받지 못할까 봐 싸움까지 벌어지는 긴박한 상황도 벌어집니다.
한 번은 밥 배달 후 돌아오는 길에, 한 남자가 여자를 폭행하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밥을 받기 위해 새벽부터 기다렸지만, 옆집 아줌마가 깨워주지 않아 밥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화를 참지 못하고 폭력을 행사한 것입니다. 밥 한 끼가 그들에게 얼마나 절박한 문제인지, 생존과 직결된 문제인지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입니다. 이현주 사모님은 두려움과 미안함에 휩싸여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밥을 넉넉히 준비해 가서, 모든 사람에게 밥을 줄 수 있도록 재정을 채워주세요." 절박한 기도는 기적적인 응답으로 이어집니다.
한인 목회와 급식 봉사를 병행하는 것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힘든 일이었을 텐데요. 주영훈 님은 왜 목회를 포기하고 급식 봉사에 헌신하게 되었는지 질문합니다. 안정적인 수입과 사택이 보장된 한인 목회를 내려놓는 것은 두려운 결정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최원금 선교사님에게 "이제는 이 사역에 전적으로 헌신하라"는 마음을 주셨다고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믿음으로 요단강을 건너라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홍해는 갈라주셨지만, 요단강은 믿음으로 발을 내딛어야 갈라지는 기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좁은 길을 가라는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최원금 선교사님은 순종을 택합니다.
앞으로 감당해야 할 식비, 최소 100인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요? 막막한 현실 앞에서, 주변 지인들은 "너무 무모한 짓"이라며 만류했지만, 하나님은 예비된 응답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지인들의 후원으로 식비를 마련하고, 밥을 지을 장소를 찾아야 했습니다. 기적은 뜻밖의 만남을 통해 시작됩니다. 평소 알고 지내던 현지 목사님을 우연히 교회에서 만나게 된 것입니다. 약속도 없이 이루어진 만남은, 하나님의 섬리가 아니고서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현지 목사님은 교회 건축 중인 임시 처소를 8개월 동안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제안했고, 기적적인 응답에 최원금 선교사님은 감사를 금할 수 없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도움은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합니다.
8개월 후, 임시 처소를 비워줘야 하는 상황. 기차역 주변을 중심으로 새로운 장소를 찾아 헤맸지만, 높은 임대료와 우범 지역이라는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힙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우범 지역이라는 사실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이었습니다. 더 안전하고 저렴한 곳에 새로운 장소를 찾게 된 것입니다. 문제는 렌트비. 기적은 또다시 일어납니다. 소문을 들은 한 교회 담임 목사님이 2년간 렌트비를 지원하겠다는 놀라운 제안을 해온 것입니다. 기적 같은 응답에 감사하며, 내부 공사를 시작하고, 기아대책과 협력하게 됩니다.
공사 완료 4개월 전, 기아대책에 소속되면서 안정적인 지원을 받게 되었지만, 또 다른 기적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왔습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익명의 전화. "기아 '해결' 대책 본부 맞지요?" "해결"이라는 단어에 마음이 끌린 최원금 선교사님은 "예"라고 대답했고, 전화를 건 사람은 "쌀이 필요할 텐데 보내드려도 되나요?"라고 제안합니다. 남편 생일마다 잔치를 열었던 부부가,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어 쌀을 기증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입니다. 그 해부터 매달 쌀 다섯 포대가 익명의 후원자로부터 배달되었고, 얼굴도 모르는 천사의 따뜻한 마음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장소 마련, 쌀 지원, 운영비 후원... 기적은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조지 뮬러의 5만 번 기도 이야기가 현실이 되는 순간들을 경험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할 때, 기적은 일상이 될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기적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현주 사모님은 매일 시장에서 식재료를 구입하고, 땀 흘리며 밥을 짓고, 도시락을 포장하고, 배달하는 고된 노동을 감당해야 합니다.
땀과 눈물, 검버섯 핀 손, 예수님을 대접하는 마음: 사모님의 헌신
700인분의 밥을 짓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힘든 일입니다. 특히 초창기에는 냉장고, 에어컨, 제대로 된 주방도 없이 시작해야 했습니다. 가건물 주방에서 50m 길이의 밥을 짓는 동안,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탈수 증상을 막기 위해 소금을 먹어가며 일해야 했습니다. 좁은 주방에서 뜨거운 밥을 식히고 도시락을 포장하는 과정은, 더위와 싸움을 벌이는 것과 같았습니다. 뜨거운 밥을 식히기 위해 32-34도의 바깥으로 밥을 들고 나와 식히는 동안, 손에는 검버섯이 피어났습니다. 40대에 생긴 검버섯은, 고된 노동과 뜨거운 햇볕 아래 헌신의 흔적입니다. 어머니는 속상해했지만, 장로님은 두 번이나 레이저 시술을 해주셨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검버섯은, 사모님의 헌신을 기억하게 하는 상징과 같습니다.
육체적으로 힘든 무료 급식 사역이지만, 이현주 사모님은 마태복음 25장 40절 말씀을 떠올리며 위로를 받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밥을 준비하는 고된 시간은, 예수님을 대접하는 거룩한 시간입니다. 평생 살면서 어떻게 예수님을 직접 대접할 기회가 올까요? 가장 연약하고 소외된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은, 곧 예수님께 하는 것과 같다는 믿음은, 고된 노동 속에서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합니다. 한인 목회 14년은 무료 급식 사역을 위한 준비 과정이었습니다. 한인교회 성도들의 헌신과 사랑은, 재정적 지원과 봉사를 통해 무료 급식 사역의 초석을 다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잠언 16장 9절 말씀처럼,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인생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며, 순종과 헌신의 삶을 살아가는 선교사님의 모습은, 깊은 감동을 줍니다.
현재는 일주일에 세 번, 700인분씩, 총 2100인분의 식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엄청난 양이지만, 기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시장에서 재료를 구입할 때, 문득 불안감이 엄습할 때도 있지만, 남편은 "이 일은 하나님의 일"이라며 믿음을 북돋아 줍니다. "하나님이 책임지실 거야. 재정을 주시면 하는 거고, 안 주시면 쉬자." 남편의 말은 하나님의 음성처럼 들렸고, 불안감은 평안함으로 바뀌었습니다. 17년이 지난 지금, 사역은 더 확장되었고, 기적은 더욱 풍성해졌습니다. 필요할 때마다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날마다 경험하며, 감사와 기쁨으로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메뉴는 닭튀김, 밥, 오이, 칠리소스로 단순하지만, 빈민들에게는 최고의 만찬입니다. 인도네시아는 더운 날씨 때문에 음식이 쉽게 상하고, 봉사자들의 손을 덜기 위해 단순한 메뉴를 선택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밥과 반찬 하나가 기본 식단입니다. 닭튀김 도시락은 밥 한 공기, 닭 한 조각, 오이 한 조각, 칠리소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닭은 내부까지 완전히 익혀 위생과 맛을 동시에 잡았습니다. 8개 빈민촌은 학교에서 직접 도시락을 수령하고, 먼 거리는 차량으로 직접 배달합니다.
"게으름뱅이 만들까?" 우려, 오히려 삶의 활력, 생명줄: 급식 사역의 효과
급식 사역 초기, "무료 급식이 사람들을 게으르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습니다. 무료 급식은 사람들에게 삶의 활력을 주고,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동기 부여가 되었습니다. 가난 때문에 하루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무료 급식은 생명줄과 같습니다. 굶주림을 해결해야 다른 일도 할 수 있습니다. 무료 급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을 넘어, 삶의 기반을 마련해주는 소중한 기회입니다. "게으름뱅이"로 만들 것이라는 우려는, 가난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의 오해일 뿐입니다.
남편의 중금속 중독과 사모님의 종양, 건강 문제는 사역의 큰 걸림돌입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 어렵고, 의료 보험 혜택도 받을 수 없습니다. 원인을 알았으니 음식, 공기 등 조심하고, 기도하며 믿음으로 극복해나가겠다고 다짐합니다. 사모님의 종양은 2.5cm, 3cm가 넘으면 위 절제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역 때문에 한국에 오래 머물 수 없고, 현지에서 최선을 다하며 하나님의 치유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곁에서 기도해주시는 분들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고 감사를 전합니다. 사역에 헌신하다 보면 자기 몸을 돌볼 겨를이 없습니다. 몸으로 뛰는 사역이기 때문에, 아픔은 일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인도네시아 아이들은 존경의 표시로 얼굴에 손을 댑니다. 아이들의 순수한 존경과 사랑은, 사역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어린 시절 예수님을 몰랐지만, 누군가의 사랑과 헌신 덕분에 예수님을 믿고 선교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자신의 헌신이, 미래에 인도네시아를 변화시킬 리더를 키워내는 씨앗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은,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의 원동력입니다. "쉰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자녀들은 괜찮을까? 헌신적인 부모, 건강하게 자라준 아이들: 하나님의 은혜
주영훈 님은 부모의 헌신 때문에 자녀들이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며, 자녀들의 성장 과정에 대해 질문합니다. 사춘기, 삐뚤어지는 아이들, 걱정이 앞서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바르게 성장해주었다고 감사를 전합니다. 이현주 사모님은 자녀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숨기지 못합니다. 무료 급식 사역 초창기, 제대로 된 식사를 챙겨주지 못하고, 인스턴트 식품으로 대충 끼니를 때우게 했던 미안함. 큰 아들은 인스턴트 식품 때문에 아토피와 체중 감소를 겪기도 했습니다. 엄마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며 아이들을 다그쳤지만, 아이들은 묵묵히 엄마 아빠를 이해하고 따라주었습니다. 착한 아이들이었지만, 마음속에는 서운함과 힘든 감정이 숨겨져 있었을 것입니다. 완벽주의 성향의 엄마는, 자신의 헌신을 당연하게 생각했고, 미안하다는 말을 쉽게** 꺼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기도 중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얘야, 네 사역 대상은 인도네시아 사람들도 중요하지만, 네 자녀는 내가 너에게 맡긴 거야. 네가 키워야 될 부분이야." 자녀 또한 소중한 사역 대상임을 깨닫고, 균형 잡힌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습니다. 완벽주의 성향 때문에 스스로를 힘들게 했지만, 하나님의 사랑으로 극복해나가고 있습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건네고, 아이들은 엄마의 진심에 감동하고 기뻐했습니다. 진심은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두 아들은 훌륭하게 성장했습니다. 큰 아들은 대한항공 조종사 훈련 과정을 밟고 있고, 둘째 아들은 군 복무 후 로스쿨 진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선교사 자녀로 넉넉하지 못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하나님은 예비된 길로 인도해주셨습니다. 주영훈 님은 "꽁으로" 원하는 길을 가게 된 자녀들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학원 하나 안 다니고 스스로 알아서 잘 성장해준 아이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보상입니다. 교육에 열과 성을 쏟는 부모들에게, 자녀 교육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합니다. 결론은 내가 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짓는다는 믿음. 자녀에 대한 과도한 관심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최고의 교육일 수 있습니다. 선교사 자녀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권리일까요? 답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두 아들은 하나님께서 길러주셨습니다. 선교까지는 아니더라도, 자녀에 대한 교육 관심을 끊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놀라운 계획을 기대하며 말입니다.
급식 넘어 교육, 학교 설립, 말씀 암송 교육: 미래를 세우는 사역
급식 사역을 넘어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요? 급식 현장에서 학교에 가야 할 시간에 밥을 받으러 오는 아이들을 보면서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초등학생은 의무 교육인데, 왜 학교에 가지 않고 밥을 받으러 오는 걸까요? 알고 보니, 학비는 무료지만, 교복, 체육복 등 부대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가난은 교육의 기회마저 박탈하는 잔인한 현실입니다. 아이들에게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겠다는 마음으로, 교육 사역을 시작하게 됩니다. 단순히 밥을 나눠주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교육을 선택한 것입니다. 물고기를 주는 것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깨달음입니다. 어른들에게 기술을 가르치고 자립을 돕는 노력도 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미래를 바꿀 수 있는 희망입니다. 교육을 통해 아이들을 변화시키면, 가정과 지역 사회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으로, 학교를 설립합니다.
학교를 설립했지만, 출석률이 저조했습니다. 학비도 무료, 교복도 지원, 교육 환경도 개선했지만, 아이들은 학교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원인 분석에 나선 결과, 세 가지 문제점을 발견합니다. 첫째, 교복 미착용으로 인한 소속감 부족. 둘째, 오전/오후반 운영으로 인한 학습 단절 및 놀 시간 부족. 셋째, 엄마들의 등교 책임 회피 및 앵벌이 방치. 문제는 예상보다 심각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해결책을 찾아 나섰습니다. 후원을 받아 교복을 지원하고, 교실을 확충하여 오전반 통합을 실현하고, 출석 우수상을 신설하여 현금을 지급했습니다. 출석만 잘해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획기적인 방법을 도입한 것입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출석률이 눈에 띄게 향상되었고, 아이들의 학교에 대한 인식도 긍정적으로 바뀌었습니다.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맞춤형 해결책을 제시하는 노력은,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줍니다.
교육 목표는 전인격적인 성장과 삶의 지혜 함양. 특히 영적인 성장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말씀 암송 교육을 강조하여, 하나님 말씀이 삶을 지배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말씀처럼,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나님 말씀은 영원하며, 삶의 진리임을 아이들에게 심어주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말씀 암송 교육이 잘 될까 의구심을 품었지만, 아이들은 점점 자신감을 얻고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강요가 아닌 격려와 칭찬, 동기 부여를 통해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있습니다. 말씀 암송은 개인의 변화를 넘어, 학교 전체의 긍정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어려움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아이들이 공부를 싫어해서 학교에 안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가정 문제 때문에 학교에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빈민촌 아이들에게 학교는 놀이터이자 쉼터입니다. 집보다 넓은 공간,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날 수 있는 곳, 안전하고 따뜻한 공간입니다. 학교는 아이들에게 삶의 중심이자 희망입니다.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사역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누르마라는 학생의 성공 스토리는, 사역의 큰 보람이자 기쁨입니다.
누르마의 성공, 희망의 씨앗, 끝나지 않는 눈물: 사역의 열매와 아픔
누르마는 시골에서 빈민촌으로 이주하여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민락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후원으로 일반 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진학했습니다. 이용규 선교사가 설립한 자카르타 국제대학교 (JIU) 를 졸업하고, 한국 한동대학교에 교환학생으로 파견되기도 했습니다. 2023년 8월 9일, 드디어 대학교를 졸업하고, 졸업 한 달도 안 되어 인도네시아 대기업에 취업하는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9월 2일부터 출근, 3일 만에 선교사님과 저녁 식사를 함께하며 감격을 나누었습니다.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은, 성공적인 사회인으로 변신했음을 보여줍니다. 월급도 많이 받는다는 누르마의 자랑은,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본보기를 제시합니다. 누르마의 성공은 후배들에게 큰 동기 부여가 되었습니다. 대학교에 진학한 후배, 취업을 준비하는 후배, 누르마처럼 성공하고 싶어 열심히 공부하는 후배들... 희망은 또 다른 희망을 낳고, 긍정적인 영향력은 끊임없이 확산됩니다. 누르마의 성공은 사역의 가치와 보람을 확인시켜주는 소중한 열매입니다.
5달러 후원의 기적은 누르마를 통해 확실하게 증명되었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후원자의 작은 정성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고, 더 나아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원금 선교사님 자신 또한 5달러 후원으로 꿈을 키웠고,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사랑은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전해지고, 결국 하나님 나라를 위한 큰 일꾼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삶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대기업에 취업한 누르마는, 앞으로 자신이 받은 사랑을 나누는 삶을 살아가겠죠.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빈민촌을 방문하여 후배들에게 희망을 전달해주는 것만으로도,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리 사랑처럼, 후원 또한 내리 후원으로 이어져, 선한 영향력이 끊임없이 확산되기를 기대합니다. 한 사람을 후원하는 것은, 한 가정을 넘어 한 지역 사회, 나아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투자입니다.
하지만 누르마와 같은 성공 사례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슴 아픈 현실도 존재합니다. 결손 가정, 한부모 가정, 조부모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매말라 있고, 사랑에 굶주려 있습니다. 여름성경학교 중 눈물을 멈추지 못했던 대위라는 아이의 이야기는,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사랑과 관심을 쏟으면 적극적으로 변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지만, 갑작스러운 야반도주로 인해 기회를 잃어버린 안타까운 사연. 어른들의 무책임은 아이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빈민촌 아이들은 상대적 박탈감과 사춘기를 겪으며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목회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들을 세심하게 돌보지만, 우울한 현실은 끊임없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직업 훈련 학교를 준비했지만, 아이들이 외면할 때 속상함과 실망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왜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치는 걸까?" 답답한 마음은 때때로 분노로 바뀌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속상해하는 선교사님에게 "너도 내 속을 이렇게 썩였다"는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하나님 앞에 부족한 모습을 돌아보며, 인내와 사랑으로 아이들을 품어야 함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과 자비는, 실망과 좌절 속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줍니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지금까지 사역을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눈물의 기도로 세운 학교는, 전국 7개 지역 430명의 학생들에게 교육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먹고, 입고, 말씀을 배우며 성장하는 아이들은, 인도네시아의 미래를 짊어질 리더로 자라나고 있습니다.
30년 헌신, 안식년은 사치, 인도네시아는 제2의 고향: 끝나지 않는 사역
30년 헌신 동안 안식년 한 번 제대로 갖지 못했다는 사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합니다. 선교부에서 강제적으로 안식년을 권고했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자원봉사자 관리 문제, 급식 운영비 문제, 현지인에게 사역을 맡기기 어려운 현실 등, 안식년은 사치일 뿐입니다. 2-3개월 강제적으로 안식월을 가진 것이 전부입니다. 건강을 돌보고 치료해야 할 시간이지만, 사역 현장을 떠날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안 가시면 안 돼요?" 주영훈 님의 질문에, 두 분은 "저희가 가야 돼요. 빨리 가야 돼요."라고 단호하게 대답합니다. 인도네시아는 이미 제2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 우리 인도네시아"라는 표현에서, 인도네시아에 대한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성육신하여 이 땅에 오신 것처럼, 누군가는 인도네시아에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은, 두 분을 끊임없이 사역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고백합니다.
고령의 어머니 건강은 마음의 짐입니다. 94세 어머니는 요양병원에 계시고, 거동이 불편한 상황입니다. 장모님 또한 건강이 좋지 않습니다. 15년 우울증으로 고생하신 어머니는, 자녀에게 짐이 될까 봐 아픈 내색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간호하는 아버지는 지칠 대로 지치셨고, 눈물까지 보이셨습니다. 자녀로서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어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선교사의 삶에 대한 후회는 없지만, 딸로서 부모에게 못 다한 도리에 대한 죄송함은 늘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돕는 사람을 붙여달라고 기도하고, 아버지의 건강을 지켜달라고 간구합니다. 새롭게 하소서 시청자들의 중보 기도를 부탁하며, 부모님이 편안한 노후를 보내시기를 소망합니다. 간호 우울증이라는 새로운 질병에 대한 정보를 접하며, 간호하는 가족들의 고통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아버지의 눈물은 딸에 대한 그리움과 힘든 현실에 대한 고통이 함께 섞여 있는 눈물이었을 것입니다. 부모님 생각만 하면 마음이 무겁고, 늘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전화를 드릴 때마다, 어머니는 "언제 한국 들어오니?"라고 물으시고, 만날 때마다 "언제 가니?"라고 재차 물으십니다. 불안한 마음은 자녀를 향한 애틋한 사랑의 표현일 것입니다. 돌아 가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합니다.
한국에서 30년, 인도네시아에서 30년, 60 환갑을 넘긴 나이에 인생을 돌아볼 때,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감사하며, 아직 건강하게 사역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힘든 시간 함께 격려하고 힘이 되어준 배우자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한숨 쉬어야 할 때도 있었지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는 시편 23편 말씀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극복해왔습니다. 30년은 믿음이 성장하는 시간이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성장해나갈 것입니다. 믿음을 성장시켜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사를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간절한 기도 제목을 나눕니다. 해피 센터 무료 급식과 교육 사역은 매우 중요하며, 사역의 근간입니다. 교사 훈련, 예배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는 해피 센터 건물 매입을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현재 건물주가 건물을 매각하려 하고 있어 불안한 상황입니다. 17년 동안 사역의 터전이었던 해피 센터를 지켜낼 수 있도록, 4억 원의 매입 자금을 마련할 수 있도록, 기도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과거에도 건물 매각 위기가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더 좋은 장소로 인도해주셨던 경험을 떠올리며, 이번에도 하나님께서 놀라운 기적을 베풀어주시리라 믿습니다. 경제가 어렵지만, 익명의 후원자들의 사랑과 헌신에 감사하며, 새롭게 하소서 시청자들의 기도를 통해 해피 센터를 지켜내고, 급식 사역을 계속 이어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밥 한 끼를 기다리는 빈민들에게, 해피 센터는 생명줄과 같습니다. 기쁜 소식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밥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밥을 전달할 수 있도록, 해피 센터가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십시오.
주영훈 님은 과거를 돌아볼 때, 계획과 상상을 뛰어넘는 은혜를 부어주셨던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해피 센터를 위한 기도에 동참할 것을 약속합니다. 놀라운 기적을 베풀어주시리라 믿으며, 수지 님과 봉길 님 또한 기도를 약속합니다.
마지막으로 주영훈 님은 "왜 꼭 남의 나라여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미국 선교사들의 헌신으로 한국 교회가 성장할 수 있었던 역사를 상기시키며, 이제는 한국 교회가 빚진 사랑을 갚을 때라고 강조합니다. 최원금, 이현주 선교사님의 헌신은, 과거 한국이 경험했던 기적을 인도네시아에서 재현하는 소중한 발걸음입니다. 아픔과 고통 속에서도 사명을 붙들고 헌신하는 두 분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며, 천국에서 받으실 상급을 기대하며, 기도로 응원할 것을 다짐합니다. 귀한 간증 나눠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방송은 마무리됩니다.
긴 시간 헌신해주신 최원금, 이현주 선교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두 분의 사역을 통해, 인도네시아에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