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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다리 잃은 주은미 전도사의 희망 간증, 장애 극복 이야기

요약

절망을 넘어 희망으로: 두 다리 잃은 주은미 전도사의 감동 간증

불 같은 연단을 통해 정금 같은 믿음을 주신 주은미 전도사님의 간증: 삶의 역경을 딛고 일어선 감동적인 이야기

안녕하세요, 새롭게 하소서 시청자 여러분. 주영훈입니다. 오늘, 고난을 이겨낸 간증을 통해 큰 은혜를 받을 주은미 전도사님을 모셨습니다. 주 전도사님은 한국 교통 장애인 협회 교통사고 예방 상담 센터장이시자 해명 교회 전도사로, 20살 꽃다운 나이에 예기치 못한 기차 사고로 양쪽 다리를 잃고 척수까지 손상되는 엄청난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하지만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고, 오히려 더욱 단단한 ‘정금 같은 믿음’을 얻으셨다고 간증하시는데요. 주 전도사님의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 지금부터 함께 들어보시겠습니다.

주 전도사님, 먼 길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주에서 강의 마치시고 바로 오셨다고 들었는데, 괜찮으신가요?

아, 괜찮습니다. 오히려 서울 오니 날씨가 좋아서 통증도 좀 덜하네요. 무주 날씨가 안 좋아서 통증 때문에 약을 계속 먹었더니, 잠은 푹 잤습니다.

다행입니다. 오늘 귀한 간증 정말 기대됩니다. 주 전도사님은 평소 한국 교통 장애인 협회에서 일하시고, 주말에는 교회 전도사님으로 사역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교회에서는 주로 어떤 역할을 맡고 계신가요?

교회에서는 주일학교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벌써 다 커서 청년부가 되었어요. 세월이 참 빠르네요.

정말 감사한 일이네요. 그런데 전도사님, 놀랍게도 과거 모델 활동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두 다리가 의족이신데, 모델이라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아, 장애인 모델 협회 개회 때, 용기를 내서 모델로 섰었습니다. 장애인도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네, 정말 멋지십니다! 특히 양쪽 의족을 드러내고 스커트를 입으신 모습이 큰 화제가 되었죠. 쉽지 않은 결정이셨을 텐데, 어떤 마음으로 모델 활동에 참여하게 되셨나요?

사실 처음에는 나이도 많고 몸매도 좋지 않아서 망설였어요. 하지만 다양한 연령대와 장애 유형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델 활동을 하는 것이 장애 인식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용기를 냈습니다.

정말 의미 있는 활동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에게 큰 감동과 용기를 주셨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전도사님 인생은 20살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하셨는데, 20살 때 어떤 특별한 일이 있으셨나요?

네, 20살 때 끔찍한 기차 사고를 겪었습니다. 대학교 합격 소식을 듣고 기뻐하시던 아빠가 예쁜 구두를 선물해주셨는데, 그 구두를 신고 가족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기차 사고가 났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사고였네요. 어떤 사고였는지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시겠어요?

1991년 1월 6일, 첫 주일 아침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신입생이 되면서, 아빠가 목사님으로 계시는 교회에서 첫 주를 맞이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야간 열차를 탔는데, 새벽 5시 반쯤 영등포역에 도착할 예정이었죠. 눈이 많이 내린 날이었는데, 기차 문이 열린 채로 출발하는 바람에 계단에서 미끄러져 기차와 승강장 사이에 다리와 짐이 끼어버렸습니다.

끔찍한 순간이었네요.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네, 정신을 잃고 얼마나 끌려갔는지 모르겠습니다. 다행히 신호하는 아저씨가 발견해주셔서 기차 바퀴 밑에서 간신히 구조되었지만, 이미 두 다리는 절단되었고 척수까지 손상된 상태였습니다.

정말 기적적으로 살아나셨네요. 사고 당시 상황이 어떠셨나요?

사고 현장은 정말 끔찍했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투성이였고, 두개골도 깨져 있었습니다. 구조대원들이 시체 처리하려고 했을 정도였대요. 하지만 제가 정신을 잃기 전에 이름과 전화번호, 주소를 말해서 가족들에게 연락이 닿았고,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정말 천만다행입니다. 부모님께서 얼마나 놀라셨을까요?

네, 첫 주일 설교를 하셔야 했던 아빠는 경찰서에서 연락받고 병원으로 달려오셨지만, 차마 딸의 끔찍한 모습을 볼 용기가 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엄마는 7시간 동안 수술실 앞에서 눈물로 기도하셨고요. 아빠는 주일 낮 예배 설교를 마치고 광고 시간에 제 소식을 전하며 교인들에게 기도를 부탁하셨는데, 온 교인들이 함께 울면서 기도해주셨다고 합니다.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전도사님 상태는 어떠셨나요?

저는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두개골 골절로 인해 의식이 없었고, 사고 상황은 나중에 전해 들었습니다. 병원에서는 머리와 다리 수술을 먼저 했는데, 다리는 이미 절단된 상태였고 발목 관절까지 으스러져서 도저히 회복 불가능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부모님과 상의 후, 제 목숨을 살리기 위해 양쪽 다리 절단을 결정하셨다고 합니다.

정말 힘든 결정이었을 텐데, 부모님의 사랑과 헌신이 느껴집니다.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가장 먼저 어떤 기분이 드셨나요?

깨어났을 때는 다리가 잘린 줄도 몰랐습니다. 온몸에 붕대가 감겨 있어서 그냥 몸이 많이 다쳤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일반 병실로 옮기기 전에 아빠가 오셔서 사고 당시 신었던 구두를 보여주시면서, “은미야, 네가 큰 사고를 당했는데, 다행히 목숨은 건졌어. 하지만… 두 다리는 아빠랑 의사 선생님이 의족을 낄 수 있게 절단하기로 결정했어.” 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 드셨나요?

처음에는 현실 같지 않았습니다. 다리에 감각이 없으니 잘린 건지 붙어 있는 건지도 모르겠고, 그냥 멍했습니다. 하지만 면회 시간이 끝나고 혼자 남겨지자, 그때부터 현실이 실감 나면서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정말 슬프고 힘든 시간이었을 것 같습니다. 20살 꽃다운 나이에 두 다리를 잃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고통이었을 텐데요.

네, 처음에는 비관적이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절망감이 밀려왔습니다. 하반신 마비로 1년 가까이 감각이 없었는데, 3월부터 통증이 시작되면서 정말 죽을 만큼 힘들었습니다. 일주일 내내 잠을 못 자고, 없는 다리가 아픈 환상통까지 겹쳐서 정신적으로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육체적 고통뿐 아니라 정신적 고통까지 겹쳐 정말 힘든 시간이었겠네요.

네, 척수 장애인은 대소변 기능도 마비되기 때문에, 아침마다 간호사 선생님이 오셔서 넬라톤이라는 줄로 소변을 빼주시고, 2~3일에 한 번씩 관장을 해야 했습니다. 남자 인턴 선생님이 넬라톤 해주는 것도 너무 수치스러웠고,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절망스러웠습니다.

욕창 때문에도 고생이 많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욕창은 정말 상상 이상으로 고통스러웠습니다. 엉덩이가 썩어 들어가고, 뼈가 드러날 정도로 심각했습니다. 40일 동안 엎드려서 욕창 수술을 받고, 퇴원 후에도 몇 달을 엎드려 지내야 했습니다. 항생제를 밥 먹듯이 달고 살았죠.

정말 견디기 힘든 고통의 시간이었네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을 것 같습니다.

네, ‘나를 불러갔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수없이 했습니다. 아빠에게 “아빠, 그때 왜 나를 살려놨어? 이렇게 고통스러울 바에 차라리 죽는 게 나았을 텐데…” 라고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원망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네, 어릴 때부터 모태신앙으로 자랐지만, 그때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신다면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시는 걸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면 왜 내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 걸까?’ 라는 생각에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네, 절망 속에서 성경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특히 예레미야 29장 11절 말씀,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요, 너희 장래와 미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라는 말씀을 통해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정말 힘이 되는 말씀이네요. 그 말씀을 통해 어떤 깨달음을 얻으셨나요?

그 말씀을 묵상하면서, 지금의 고통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재앙이 아니라 평안과 소망을 주시기 원하신다는 것을 믿게 되었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욥기 23장 10절 말씀,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라는 말씀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욥기 말씀도 묵상하셨군요. 욥의 고난과 전도사님의 고난이 겹쳐 보이면서 더 큰 위로를 받으셨을 것 같습니다.

네, 욥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저의 고난은 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욥은 모든 것을 잃었지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저 또한 욥처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정금 같이 단련된 믿음을 얻고 싶었습니다.

고난 속에서 더욱 성숙한 믿음을 얻으셨네요. 그 후 학교 복학도 하시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6개월 만에 장애 판정을 받았을 때는 하반신 마비로 걸을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기적적으로 신경이 되살아나면서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의 기도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1년 후 복학해서 신학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총장상을 받고 졸업했습니다.

정말 놀라운 회복입니다. 학교 생활은 어떠셨나요?

학교 다니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5km나 되는 무거운 의족을 신고, 매일 5층 예배당까지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작년까지 병원에 갇혀 지내다가 다시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된 것이 너무 감사했고, 신학 공부도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학업을 이어가신 전도사님이 정말 대단하십니다. 하반신 마비를 극복하신 것이 첫 번째 은혜였다면, 두 번째 은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두 번째 은혜는 남편을 만난 것입니다. 대학원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하게 되었는데, 남편은 저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되어주었습니다. 결혼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잘 극복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결혼 스토리가 궁금해지네요. 시댁 어른들의 반대가 심했다고 들었습니다.

네, 시어머님께서 결혼을 2년 동안 반대하셨습니다. 제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막내아들인 남편과의 결혼을 완강하게 반대하셨죠. 하지만 남편의 끈질긴 설득과 사랑으로 결국 결혼 허락을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

정말 쉽지 않은 결혼이었네요. 결혼식 날, 시댁 분위기는 어떠셨나요?

결혼식 사진을 보면, 시댁 식구들 얼굴은 굳어 있고, 저희 엄마는 입이 돌아가 있는… 웃지 못할 사진입니다. 하지만 친구들과 미랄 선교단 식구들이 많이 축하해줘서, 감사하게 결혼식을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힘든 과정이었지만, 결국 결혼에 골인하신 것을 보니, 두 분의 사랑이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결혼 후에는 행복하셨나요?

네, 여러 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잘 극복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 아이를 낳아 기르게 된 것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두 분 모두 장애를 가지고 계신데, 임신과 출산 과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네, 척수 장애인은 임신이 쉽지 않다고 들었는데, 결혼 6개월 만에 첫째 아이가 생겼습니다. 정말 기적이었죠. 임신 중에도 대학원 공부를 계속했고, 석사 과정을 마치고 아이를 낳았습니다. 둘째는 계획에 없던 아이였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아이 모두 건강하게 잘 자랐다고 들었습니다.

네, 큰딸은 대학교 4학년, 둘째 아들은 대학교 1학년이 되었습니다. 큰딸은 엄마처럼 성서학과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있고, 둘째 아들은 AI 로봇공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두 아이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복덩이들입니다.

정말 보기만 해도 흐뭇해지는 자녀들이네요. 특히 둘째 아들은 어머니의 불편함을 보면서 자라서, 어머니를 위한 특별한 로봇을 만들어줄지도 모르겠네요.

네, 둘째 아들이 로봇공학을 공부하는 것을 보면, 저의 장애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미래에는 저를 위한 특별한 의족이나 휠체어를 만들어주지 않을까요?

정말 기대됩니다. 마지막으로, 지금은 한국 교통 장애인 협회 교통사고 예방 상담 센터장으로 일하시면서 많은 장애인들을 만나고 계시는데, 이 사역을 통해 어떤 보람을 느끼시는지, 또 앞으로 어떤 사역을 하고 싶으신지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교통 장애인 협회에서 일하게 된 것은, 장애인 직업학교에서 장애인 친구들을 만나면서 사회복지라는 분야에 눈을 뜨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장애인 친구들의 어려움을 보면서, ‘내가 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사회복지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장애인 직업학교가 사회복지 사역의 시작점이 되었군요.

네, 장애인 직업학교에서 동료 상담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저에게 딱 맞는 사역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서, 제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장애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고, 자립 생활을 위한 정보와 지원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장애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시는군요.

네, 교통사고로 장애를 입은 분들을 만나면, 저와 같은 고통을 겪었기 때문에 더욱 깊이 공감할 수 있습니다. 그분들에게 ‘저도 교통사고 장애인입니다’ 라고 말하면, 마음의 문을 열고 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십니다. 동료 상담을 통해, 그분들이 절망에서 벗어나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정말 귀한 사역입니다. 마지막으로, 고난 속에서 예레미야 말씀을 통해 위로를 받으셨던 그때를 떠올리면서, 지금의 삶을 되돌아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또 고난 가운데 있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장애는 여전히 저에게 고통이지만, 이제는 그 고통이 저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겪은 고통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고 도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오히려 고통 덕분에 다른 사람들과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고난을 통해 더욱 성숙한 믿음과 사랑을 갖게 되셨네요.

네, 고난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너에게는 장래에 소망이 있다” 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믿고 기도하며 나아갔더니, 하나님께서는 정말 저에게 ‘정금 같은 믿음’‘풍성한 삶’ 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고난 가운데 힘들어하는 분들이 많이 계실 텐데, 포기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아가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여러분에게도 ‘정금 같은 믿음’과 ‘소망’을 주실 것입니다.

오늘 정말 귀한 간증 감사합니다. 전도사님의 삶은 많은 분들에게 큰 감동과 용기를 주셨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 들으신 소감을 여연 씨와 정수영 씨에게도 들어보겠습니다.

정수영: 오늘 전도사님 간증을 들으면서, 장애를 겪고 계신 분들이 자존감이 낮아지기 쉬운데, 전도사님은 자존감이 정말 높으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장애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사회생활을 하시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신 것을 보면서, 자존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여연: 저는 오늘 전도사님 간증을 들으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신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많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으시고, 오히려 더욱 단단한 믿음을 얻으신 전도사님을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전도사님을 통해 수많은 영혼들이 회복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귀한 간증해주신 주은미 전도사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저희는 다음 주 더욱 은혜로운 간증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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