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규 아나운서 간증: 딸 교통사고 기적, 신앙과 인생 이야기
20년 간증, 최선규 아나운서의 파란만장 인생: 딸 교통사고, 기적 생환, 그리고 신앙 여정
20년 간증, 최선규 아나운서의 파란만장 인생 이야기: ‘새롭게 하소서’ 출연 상세 정리
오늘, 2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간증 프로그램 진행자로서 묵묵히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왔던 최선규 아나운서가 마침내 ‘새롭게 하소서’를 찾아와 자신의 드라마틱한 인생 스토리를 직접 전합니다. 방송 경력 40년 차 베테랑 아나운서이자, 옆 동네 기독교 채널 간증 프로그램의 ‘시조새’ 격인 최선규 집사님의 진솔하고 감동적인 간증을 낱낱이 파헤쳐 보겠습니다.
최선규 아나운서는 86년도부터 아나운서 생활을 시작, 내년이면 만 40년 차가 되는 베테랑입니다. 하지만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방송을 진행해 오면서, 그의 말투는 자연스레 물음표로 가득 차 있었다고 합니다. 늘 질문하고 타인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역할이었기에, 정작 자신의 이야기, 느낌표나 마침표로 가득 찬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색하고 떨리는 일이라고 고백합니다. 수십 년 간 간증 프로그램을 진행했지만, 정작 본인의 간증을 하려니 떨린다는 그의 솔직한 모습에서 진솔함이 느껴집니다.
간증 프로그램 진행은 무려 20년, 결코 짧지 않은 시간입니다. 최선규 아나운서는 간증 프로그램 진행은 자신이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야 가능한 일이라고 겸손하게 말합니다. 만약 자신이 억지로 20년 동안 자리를 지키려 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며,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기에 가능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새롭게 하소서’ 출연 이후, 어딜 가든 “새롭게 하소서 잘 보고 있습니다” 라는 인사를 많이 듣게 되면서 행동거지를 더욱 조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아기를 안고 지나갈 때 “아기 안고 있는 모습도 은혜롭다”는 말을 듣고는, 늘 은혜로워야 한다는 강박감마저 느낀다고 털어놓습니다. 20년 간 간증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쌓인 이미지가 그에게 일종의 부담감으로 작용한 것입니다.
운전 중에도 ‘새롭게 하소서’ 시청자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스린다는 일화는 웃음을 자아냅니다. 운전은 평소 젠틀한 사람도 폭력적으로 변하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는데, 최선규 아나운서 역시 칼치기 운전을 하는 차량 때문에 화가 났던 적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순간 ‘저 사람도 새롭게 하소서 애청자일 수 있다’는 생각에 분노를 누르고, 오히려 “복 받을게!” 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그는 과거 운전 중 화가 나면 숫자나 동물 이름까지 외쳤지만, 이제는 ‘새롭게 하소서’ 이미지를 생각해 젠틀한 모습으로 바뀌었다고 고백합니다. 이처럼 간증 프로그램 진행은 그의 삶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본격적인 간증에 앞서, 최선규 아나운서는 딸 해원이 때문에 개종하게 된 특별한 사연을 공개합니다. 그의 집안은 본가, 외가, 처가 모두 불교 집안이었으며, 특히 외가는 무속 신앙과 깊은 관련이 있었습니다. 외할머니는 무속인이었고, 집안 마당에서 굿을 크게 벌이곤 했습니다. 최선규 아나운서는 어린 시절부터 굿을 보고 자라 무서움을 느꼈다고 회상합니다. 할머니는 그를 절에 맡겨 10년 동안 불교 학생회 활동을 하게 했고, 심지어 불교 학생회장까지 역임했습니다. 결혼 후 처가 역시 보살 집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는 그야말로 ‘뼈 속까지 불교’ 신자였습니다.
교회 근처에는 얼씬도 못 했던 집안 분위기 또한 흥미롭습니다. 할머니는 “교회 나가다 걸리면 다리 몽둥이를 분질러 버린다”고 엄포를 놓을 정도로 기독교를 강하게 배척했습니다. 이는 무속 신앙을 섬기는 집안에서 하나님, 즉 유일신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최선규 아나운서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친구들을 빼앗아간 교회에 복수하기 위해 교회 담벼락에 소변을 보는 ‘귀여운’ 복수를 감행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훗날 그 교회 강사로 초청되어 과거를 회개하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참으로 예측 불가능하고 놀랍습니다.
잘나가던 아나운서 시절에도 그는 독실한 불교 신자였으며, 아내와의 만남도 무속 신앙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랬던 그가 딸 해원이의 사고를 계기로 하나님을 믿게 된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다음 챕터에서 더욱 자세히 풀어낼 예정입니다. 과연 어떤 충격적인 사건이 그를 뼛속까지 불교 신자에서 기독교 신자로 변화시킨 것일까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최선규 아나운서의 인생을 뒤바꾼 놀라운 간증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겠습니다.
딸 해원이의 교통사고, 삶을 송두리째 뒤흔든 사건
최선규 아나운서에게는 아들만 가득했던 집안에 35년 만에 태어난 귀한 딸 해원이가 있었습니다. 온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부족함 없이 자란 딸 해원이는 세 살 되던 해,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아침 생방송을 마치고 나온 그에게 후배 아나운서가 울면서 달려와 건넨 쪽지에는 “딸 교통사고 생명 위독”이라는 충격적인 18글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집 앞에서 이삿짐 트럭이 후진하다가 세 살 딸을 덮친 것입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트럭이 딸을 덮친 후 다시 앞으로 움직여 두 번이나 짓밟았다는 것입니다.
사고 현장은 처참했고, 딸은 즉사했습니다. 뒤늦게 사고 소식을 접한 최선규 아나운서는 딸을 살리기 위해 응급실로 향했지만, 영등포 로터리에서 교통 체증에 갇히고 맙니다. 10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꼼짝없이 갇혀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 그는 절망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을 부르짖습니다. 평생 믿어왔던 불교가 아닌, 알지도 못하는 하나님을 찾게 된 것입니다. 딸을 살려달라고 절규하며 싹싹 빌고, 딸만 살려주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맹세합니다. 심지어 딸과 자신의 목숨을 바꿔달라는 간절한 기도까지 드립니다. 자식의 생명 앞에서 종교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딸은 이미 하얀 천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던 절망적인 순간, 그는 딸을 품에 안고 마지막 인사를 건네려 합니다. “해원아, 미안해. 늦어서 미안해. 이제 집에 가자.” 혼잣말로 중얼거리던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싸늘했던 딸의 몸이 따뜻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딸에게서 온기를 느낀 그는 기적을 직감합니다. 딸은 희미하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 것을 감지한 그는 딸의 입에서 밤톨만 한 핏덩어리를 꺼냅니다. 그러자 딸은 눈을 감은 채로 가느다란 숨을 쉬기 시작했습니다. 죽었던 딸이 기적처럼 살아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영등포 로터리에서 그가 절박하게 “하나님”을 찾았던 순간, 이미 시작된 기적이었습니다. 그는 응급실에서 딸을 살려달라고 울부짖었고, 하나님은 그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그 순간 그는 하나님을 만났고, 그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습니다. 딸의 기적적인 생환은 그에게 ‘선불 은혜’였습니다. 아직 크리스천도 아니었던 그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살아계심을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2년간의 병원 생활, 그리고 가족의 변화
기적적으로 살아난 딸 해원이는 중환자실에서 2년간 병원 생활을 하게 됩니다. 수많은 수술과 치료, 고통스러운 재활 과정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병원에서 살다시피 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최선규 아나운서는 만약 딸이 금방 퇴원했다면, 그저 ‘용한 의사’ 덕분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2년간의 병원 생활은 그와 그의 가족에게 하나님의 깊고 섬세한 계획하심을 경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2년간의 병원 생활 동안, 그는 5개 교회에서 온 성도들을 통해 복음을 듣게 됩니다. 전도 폭발 훈련을 받은 교인들이 병원을 방문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2년 동안 다양한 교회의 복음을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기독교 신앙에 대해 깊이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결국 2년 후, 그의 가족 모두는 할렐루야를 외치는 크리스천이 되었습니다. 할머니가 그토록 굳건하게 지켜왔던 절 세계도 하나님께서 물리적으로 정리해주셨습니다. 불이 나고, 아파트 단지에 묶여 팔리고, 무허가 건물로 철거되는 등 불가항력적인 방식으로 절들은 사라졌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마치 드라마처럼 짜여진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었습니다.
2년간의 병원 생활 끝에 딸 해원이는 기적적으로 퇴원했지만, 후유증은 남아 있었습니다. 오른쪽 얼굴은 마비되어 눈물도 나고 얼굴도 씰룩거렸습니다. 딸은 ‘찌그리’라는 놀림을 받으며 힘든 유년 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는데, 아이들이 “찌그리 안녕”이라고 놀리는 모습에 그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습니다. 고민 끝에 그는 딸과 아들을 캐나다 밴쿠버로 조기 유학 보내기로 결심합니다. 놀림 없는 곳에서 아이들이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길 바랐던 것입니다.
20년 기러기 아빠 생활, 그리고 깊어지는 믿음
딸의 유학 후, 최선규 아나운서는 20년간의 기러기 아빠 생활을 시작합니다. 홀로 한국에 남아 딸들의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야 했습니다. 기러기 아빠 생활은 외롭고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는 오히려 그 시간을 통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힘들 때마다 기도원을 찾아 하나님께 매달렸고, 금요 철야 예배와 새벽 예배를 통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특히 딸 해원이의 온전한 회복을 위해 밤낮으로 기도했습니다. 그의 간절한 기도는 딸뿐 아니라 그 자신과 아내를 변화시키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는 금요 철야 예배 때마다 “우리 해원이 좀 만져주세요, 고쳐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신기하게도 아내는 새벽 예배 때 같은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시차 때문에 한국 금요일 철야 예배 시간은 캐나다 새벽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부부는 같은 시간, 같은 제목으로 간절히 기도했고, 그 기도는 마침내 응답받았습니다. 어느 날 새벽, 딸 해원이가 아내에게 “엄마,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라고 말하며 껴안았다고 합니다. 사춘기를 심하게 앓던 딸이 갑자기 변화된 것입니다. 이는 사탄 마귀가 기도의 힘에 굴복하고 떠나간 결과였습니다. 딸은 다시 어렸을 때의 순수했던 모습으로 돌아왔고, 성악을 통해 하나님을 찬양하며 헌신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딸 해원이는 유학생들의 ‘큰 언니’ 역할을 하며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습니다. 유학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학생들을 따뜻하게 품어주고 고민을 들어주는 상담자 역할을 한 것입니다. 자신 또한 힘든 시간을 겪었기에, 다른 학생들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딸의 별명은 ‘잠을통’이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믿음직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이처럼 딸 해원이의 고난은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돕고 섬기는 귀한 통로가 되었습니다.
술과의 전쟁, 그리고 새로운 삶
20년 기러기 아빠 생활 동안, 최선규 아나운서는 술과의 힘겨운 싸움을 벌였습니다. 방송계 특성상 잦은 술자리를 피할 수 없었고,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술에 의존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주일을 거르는 일은 없었습니다. 사고 당일, 친구 박수경 장로의 권유로 시작한 주일 성수는 8년 만에 세례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세례받기 전까지 그는 ‘선데이 크리스천’에 머물렀습니다. 주일날만 교회에 갈 뿐, 평일에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술을 마시고 세상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세례를 8년이나 망설였던 이유는 ‘절단’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예배 후 오카는 목사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아직도 교회에 나왔어?”라는 질문을 받고 큰 충격을 받습니다. 7년 동안 교회에 다녔지만,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는 그제야 비로소 진정한 변화를 갈망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금요 철야 예배에서 더욱 간절히 기도했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술 끊어”라는 분명한 음성으로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는 즉시 술을 끊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스스로의 의지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에, 하나님께 도움을 구합니다. 오는 전화를 막아달라는 구체적인 기도까지 드립니다. 신기하게도 기도 후 일주일 동안 술친구들의 전화가 뚝 끊겼습니다. 그는 다시 금요 철야 예배에 나가 하나님께 감사하며 순종을 다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찬장 안에 있는 술까지 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숨겨둔 양주 20여 병을 모두 하수구에 쏟아 버리고, 술과의 완전한 결별을 선언합니다. 그 후 지금까지 그는 술을 입에 대지 않고 있습니다. 술을 끊은 후 인간관계가 정리되고 새로운 믿음의 공동체가 생겨나는 놀라운 변화를 경험합니다.
술을 끊은 후, 그는 진정한 자유와 평안을 얻었습니다. 술 없이는 인간관계를 맺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술 때문에 맺어졌던 피상적인 관계들이 정리되고, 진실한 믿음의 형제들과의 교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제자 훈련 모임, 커피 한 잔 놓고 밤늦도록 말씀을 나누는 시간들이 그에게 큰 기쁨과 위로가 되었습니다. 술 대신 하나님으로 채워진 그의 삶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요롭고 행복했습니다. 그는 술을 끊음으로써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20년 남은 인생, 영원한 것에 투자하겠다고 다짐
최선규 아나운서는 앞으로 남은 인생을 20년 안팎으로 예상하며, 영원한 것에 투자하겠다고 다짐합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적인 것, 찰나의 즐거움이 아닌, 영원한 영생을 위해 남은 시간을 가치 있게 사용하겠다는 것입니다. 눈 수술 후 20일 동안 두 눈을 감고 엎드려 있으면서 그는 영생의 눈을 떴다고 고백합니다. 육안을 감으니 비로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영원한 생명이 눈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그는 앞으로 남은 20년, 세상적인 욕심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을 위해 살아가겠다고 다짐합니다. 이 땅에서의 삶은 잠시 잠깐,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것이 크리스천의 진정한 자세임을 강조합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몸에 있는 ‘가시’, 즉 눈 질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어릴 적 실명한 왼쪽 눈, 막막 박리와 녹내장으로 고통받는 오른쪽 눈, 그는 눈으로 할 수 있는 수술은 쌍꺼풀 수술 빼고 다 해봤다고 농담처럼 말합니다. 사도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가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종들에게도 각자의 가시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에게 눈 질환은 하나님께서 주신 ‘애완견 목줄’과 같습니다. 그가 하나님 곁에서 벗어나 엉뚱한 길로 갈 때마다 가시를 통해 정신을 번쩍 들게 하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한다는 것입니다. 육체의 고통은 힘들지만, 오히려 그 고통 때문에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고 기도하게 된다고 고백합니다.
오늘 ‘새롭게 하소서’에 출연한 소감을 묻는 질문에, 최선규 아나운서는 “하나님 이야기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답합니다. 자신의 간증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기를 바라는 마음, 오직 하나님만을 높이고자 하는 그의 진심이 느껴집니다. 그는 앞으로도 20년, 혹은 그 이상, 남은 인생을 하나님께 드리며 살아갈 것입니다. 그의 간증은 많은 시청자들에게 깊은 감동과 도전을 선사하며 마무리됩니다.
오늘 최선규 아나운서의 간증은 우리에게 진정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찰나의 세상적인 것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삶,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삶, 술 대신 하나님으로 채워진 풍요로운 삶, 그의 간증은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깊이 각인시켜 주었습니다. 최선규 아나운서의 앞으로의 사역을 더욱 응원하며, 그의 삶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