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콘텐츠로 건너뛰기

8년 지하 벙커 목회, 배덕만 교수의 하나님의 은혜와 내려놓음

요약

8년 지하 벙커 목회, 내려놓음으로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

요트를 사지 말고 요트 가진 친구를 사귀어라: 배덕만 교수님의 목회 인생 이야기

안녕하세요, 오늘 우리는 특별한 분을 모시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눠볼 예정입니다. 바로 느헤미야 기독연구원의 배덕만 교수님이신데요. 23년간 교회사를 강의하시면서 한국 교회 이야기를 주로 하셨지만, 오늘은 교수님의 개인적인 간증을 처음으로 들려주신다고 합니다. 책에서 배운 신앙을 목회 현장으로 이어가면서 삶이 바다와 같았다고 말씀하시는 배덕만 교수님은, 목사이자 교수로서 우리에게 어떤 깊은 통찰을 주실지 함께 귀 기울여 보겠습니다.

1. 개척 목회, 이론과 실제의 간극을 경험하다

미래 목회자들을 강단에서 가르치시던 교수님께서 직접 개척을 하셨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운데요. 교수님께서는 미래 목회자들에게 가르치는 내용과 현장에서 직접 느끼는 목회는 얼마나 다르다고 느끼셨을까요?

배덕만 교수님께서는 “정말 다르다”라고 단언하셨습니다. 현장과 교회의 간극이 매우 컸고, 개척 전에는 규모 있는 교회만 다녔기에 미처 알지 못했던 현실을 마주하게 되셨다고 합니다. 지하 벙커와 같은 공간에서 만난 교인들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늘 규모 있는 교회에서 문제를 삼고 교육했던 기독교와는 괴리가 있었던 것이죠.

교수님은 지하 벙커 교회, 즉 지상 교회에 다니기 어려운 사람들이 오는 교회에서 상상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만나면서 환상이 깨지는 경험을 하셨다고 합니다. 이 경험은 교수님의 의지와 상관없이 부딪혀 나간, 어쩌면 필연적인 과정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교수님은 자신의 가르침에 허점이 있었음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하면서, 책이나 영상으로 접했던 교회와 삶의 현장으로서의 교회가 얼마나 다른지 몸소 깨달으셨다고 합니다. 이러한 경험은 앞으로 교수님의 가르침에 더욱 깊이를 더해줄 것입니다.

2. 어머니의 눈물, 신앙의 씨앗이 되다

교수님께서는 어렸을 적, 집안 형편이 어려웠을 때 겪었던 특별한 경험을 통해 신앙을 시작하게 되셨다고 합니다. 경기도 고양군에서 살 때, 집안이 어려워 친척들의 발길도 끊길 때, 교회 주일학교 학생이자 전도사님이었던 분이 심방을 오셨습니다. 공장에서 일하시던 어머니는 전도사님의 방문을 위해 반차까지 내고 신방 예배를 준비하셨습니다.

어머니, 전도사님, 그리고 어린 교수님, 단 세 명이서 드린 예배에서 전도사님은 말씀을 전하시며 어머니를 울리셨습니다. 가난하고 연약하여 아무도 돌보지 않던 작은 집에 찾아와 따뜻하게 위로하고 기도해 주는 전도사님의 모습은 어린 교수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초등학교 1, 2학년 무렵의 일이지만,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고 합니다.

예배 후, 어머니는 장롱 밑에서 성경책과 찬송가를 찾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어머니에게 성경과 찬송가가 있었음에도 잊고 지냈던 것이죠. 교수님께서는 그날, 어머니를 안아주고 기도해 주던 전도사님의 모습에서 예수님의 이미지를 보았다고 합니다. 그 따뜻한 느낌을 간직하고 싶어 열심히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고 회상하셨습니다.

3. 어머니의 웃음, 학업의 동기가 되다

교수님은 학창 시절 공부를 매우 잘하셨다고 합니다. 서울대학교 졸업, 예일대학교 신학대학원, 드루 대학교 박사까지, 소위 ‘천재’라고 불릴 만한 학력을 가지셨는데요. 하지만 교수님은 “천재는 절대 아니다”라고 겸손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오히려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던 마음이 학업의 큰 동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교수님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잦은 음주로 인해 고생이 많으셨고, 일요일도 없이 공장에서 특근까지 하시며 힘겹게 생계를 이어가셨습니다. 그런 어머니에게 낙은 오직 하나, 아들의 성적표였습니다. 성적표를 받아 들고 환하게 웃으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어린 교수님은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공부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놀고 싶었지만, 어머니 야근 시간에 맞춰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척이라도 했습니다. 어머니의 웃음을 보기 위해 시작한 공부는 자연스럽게 성적 향상으로 이어졌습니다. 가정 형편상 대학 진학은 꿈도 꿀 수 없었지만, 중학교 시절 교회 목사님의 멋진 모습에 감명받아 목회자의 꿈을 키우게 되었습니다.

4. 극적인 장학금, 서울대 진학의 길을 열다

목사님의 꿈을 품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상업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빨리 돈을 벌어 어머니를 돕는 것이 현실적인 선택이었죠. 하지만 기적처럼 인천에 신설된 서인천고등학교에서 장학생을 모집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일정 성적 이상이면 3년간 학비 면제라는 파격적인 조건이었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이 소식을 듣고 마감 날, 교수님을 서인천고등학교에 데려가셨습니다. 원래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을 원했던 담임 선생님은 어머니를 설득했지만, 아버지와의 반대로 무산될 위기에 처했었습니다. 하지만 서인천고등학교의 장학금 제도는 교수님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서인천고등학교에서 극적으로 공부할 기회를 얻은 교수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 진학을 꿈꿨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 방침이 바뀌어 2회 졸업생들은 학교가 정해주는 대학에 진학해야 했습니다. 3년간 장학금과 특별반 운영 등 학교의 지원을 받았기에, 학교의 방침을 거부하기 어려웠습니다.

교수님은 서울대 진학 후보에 오르게 되었고, 선생님들의 설득이 이어졌습니다. 서울대학교 종교학과가 신학과와 유사하며, 신학대학원 진학도 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전도사님 역시 종교학과가 신학 공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결국 교수님은 서울대학교 종교학과에 지원했고, 합격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서울대학교 진학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셨습니다. 학비가 저렴하여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고, 과외를 통해 생활비까지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교수님에게 서울대학교 진학은 “신의 한 수”와 같은,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였습니다.

5. 신학자의 길, 끊임없는 질문과 마주하다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예일대학교 신학대학원, 드루 대학교 박사까지, 탄탄대로를 걸어오신 교수님께서는 왜 목회자의 길 대신 신학자의 길을 선택하셨을까요? 교수님께서는 고등학교 2학년 말부터 신앙적인 질문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성경을 읽을수록 이해되지 않고 동의할 수 없는 부분들이 생겨났고, 성경 공부 시간에 질문을 해도 속 시원한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대학 시절, 88학번으로 민주화 운동의 열기 속에서 마르크스주의, 비교종교학, 종교 다원주의 등을 접하면서 신앙적 혼란은 더욱 커졌습니다. 교회는 좋았지만, 질문이 너무 많아 강단에서 “예수님에게 구원이 있다”라고 설교할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물론 대학교 3학년 때 극적인 회심을 경험하고 신학교에 진학했지만, 자신이 사람보다 공부를 더 좋아하고,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신학교 친구들은 사람, 교회, 복음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있었지만, 교수님은 점점 멀어져감을 느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교수님에게 “목회자보다 신학자가 더 어울린다”라고 조언했고, 교수님 역시 도서관에서 책 읽고 공부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약속한 목회자의 길 대신, 교회를 섬기면서 공부하는 신학자의 길을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6. 연예부 기자 꿈꾸던 신학자, 한국 교회에 눈뜨다

세상일에 무관심하고 연예계에만 관심을 가졌던 교수님은 어떻게 한국 교회 문제에 눈을 뜨게 되었을까요? 80년대 후반 대학 시절, 사회 문제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고, 신학자들의 한국 교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접하면서 한국 교회 현실에 눈뜨기 시작했습니다.

신학대학원에 진학하면서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가 더욱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교수님은 소명, 즉 눈에 밟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애인, 해외 미전도 종족처럼, 교수님에게는 한국 교회와 한국 사회가 눈에 밟히기 시작한 것입니다. 한국 교회 개혁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학문적 연구와 실천적 행동으로 이어졌습니다.

교수님은 한국 교회 문제점을 지적하는 논문을 발표하고 강연, 집회를 통해 개혁을 외쳤습니다. 하지만 전라도에서 온 한 목사님의 질문은 교수님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교수님 말씀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이지만, 한국 교회를 너무 모르는 것 같습니다. 목회를 안 해봐서 그런 말씀을 함부로 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 말은 교수님에게 묵직한 돌직구처럼 느껴졌습니다.

7. 개척 결심, ‘군대’ 가는 심정으로

교회를 40년이나 다녔는데 교회를 모른다니… 교수님은 자존심이 상했지만, 곧 현실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대전의 한 신학대학교에서 강의하던 교수님은, 졸업 후 어렵게 개척하는 제자들을 보면서 ‘육군사관학교 교관이 군대도 안 갔다 와서 학생들을 사지로 내모는 것과 같다’는 자책감을 느꼈습니다.

학자적 양심에 따라 한국 교회를 비판하고 개혁을 외쳤지만, 정작 목회 경험이 없다는 사실은 교수님에게 큰 짐이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를 향한 고민을 나누고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치려면, ‘군대’에 다녀와야 한다는 절박함이 생겼습니다. 목회를 통해 교회를 성장시키겠다는 욕심이 아니라, 한국 교회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는 순수한 열망이었습니다.

교수님은 목회를 하고 싶었지만, 당시 교단법은 전임 강사 이상의 교수의 이중직을 금지하고 있었습니다. 목회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죠. 하지만 담임 목사님께 고민을 털어놓자, 두 달 만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대전의 한 교회가 폐쇄 위기에 놓였고, 목사님은 떠나고 신자들도 흩어진 상황에서, 담임 목사님은 교수님에게 그 교회를 맡아달라고 제안했습니다.

8. 텅 빈 교회, 지하 벙커에서 마주한 현실

월초에는 신자가 13명 남았다는 교회, 사례도 받지 않고 설교만 하는 목사로 가겠다고 자원했지만, 다음 날 가보니 신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텅 빈 지하 예배당, 20년 가까이 문 닫을 위기에 놓인 ‘주사랑 교회’라는 아름다운 이름의 교회. 교수님은 이 교회가 문 닫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 “저라도 괜찮으시면 제가 오겠다”라고 제안했습니다.

2년 정도 영성 훈련을 하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개척 목회는, 아내의 동의로 현실이 되었습니다. 다섯 식구는 텅 빈 교회에 들어가 예배를 드리고, 그렇게 교수님의 목회는 시작되었습니다. 개척 교회 목사로서 마주한 현실은 상상 이상으로 척박했습니다.

편안한 교회만 다녔던 교수님은, 개척 교회에서 처음으로 ‘교회 리그’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메이저 리그, 마이너 리그, 트리플 A… 지상, 백주 대낮에 갈 수 있는 교회는 ‘팔자’가 좋아야 다닐 수 있다는 표현이 실감 날 정도로, 개척 교회에는 이전 교회에서 만날 수 없었던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우울증 환자, 18년간 19번 교회를 옮긴 사람, 반지하에서 브루스타로 밥을 해 먹는 사람, 아이를 안고 2층에서 뛰어내리려던 사람… 이전에는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던 사람들이 20명도 안 되는 작은 교회에 몰려왔습니다. 교수님은 자신이 가진 신학 지식이 이들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9. 무기력한 목사, 기복 신앙을 갈망하다

많은 사람들이 교수님에게 “이 교회는 교수님과 맞지 않다. 대덕 연구단지에 가라”라고 조언했지만, 교수님은 강단에서 설교하는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이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기복 신앙을 조롱했던 교수님은, 처음으로 기복 신앙을 간절히 갈망하게 되었습니다.

신방, 상담을 통해 만난 교인들은 대부분 당장 다음 달 월세, 아이들 학원비, 먹을 것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신용불량자들도 많았습니다. 교수님은 새벽 기도 때 하나님께 “제발 장풍이라도 쏘게 해달라, 병이라도 고치게 해달라, 로또라도 당첨되게 해달라”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기도는 응답받지 못했고, 무기력감만 커져갔습니다.

2년만 목회하고 학교로 돌아가려 했지만, 발목이 잡혀 8년을 텅 빈 교회, 지하 벙커에서 목회했습니다. 그만두고 싶은 유혹이 수없이 많았지만, “하루에도 천 번 넘게 교회를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고 고백할 정도로 힘든 시간들이었습니다.

10. 영적 침체, 성경을 벽에 던지다

힘든 목회 속에서도 좋은 성도들이 찾아오고, 교회는 조금씩 성장하는 듯했습니다. 특히 헌신적인 청년과의 만남은 큰 힘이 되었습니다. 새벽 예배를 6개월, 1년 동안 함께 드리고, 전도와 교회 일에 헌신적으로 돕던 청년. 교수님은 그 청년을 매우 아끼고 사랑했지만, 교회 일 논의 과정에서 갈등이 생겨 청년은 교회를 떠났습니다.

청년이 떠나자, 그가 전도했던 성도들도 하나둘씩 교회를 떠나 다시 예전의 텅 빈 교회로 돌아갔습니다. 3년 동안 애써 일궈온 것들이 허무하게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교인은 다시 10명 이하로 줄었고, 다시 시작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영적 침체가 깊어지면서 영적 우울증까지 겪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읽어도 설교 준비는 되지 않고, 떠나간 사람들만 계속 떠올랐습니다. ‘내가 그때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끊임없이 자책하고 후회했습니다. 청년에 대한 원망, 떠나간 사람들에 대한 원망, 하나님에 대한 원망,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 폭풍처럼 몰아쳤습니다. 결국 토요일 저녁, 주일 설교를 준비하다가 하나님을 향해 욕설을 퍼붓고 성경을 벽에 던지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제가 무슨 죄가 있어서… 제가 왜 목회를 해야 합니까? 제가 벼슬을 하려고 목회를 한 겁니까!” 울부짖으며 아내에게 “나 목회 안 해! 월요일에 사표 내고 그만둘 거야!” 라고 선언하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11. 스타벅스, 여호수아 1장을 만나다

평소 잠을 매우 잘 자던 교수님은, 그날 밤 8시부터 이불을 뒤집어쓰고 뜬 눈으로 밤을 새웠습니다. 다음 날 아침 7시, 예배는 가야 했기에 설교 준비도 못한 채 집을 나섰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아파트 단지를 일곱 바퀴 돌며 말씀을 구했지만, 1월 초 추위 속에 두 바퀴째에 포기하고 스타벅스로 향했습니다.

따뜻한 커피를 시켜놓고 성경을 펼쳤지만, 분노와 원망으로 가득 찬 마음으로는 성경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습니다. 그때, 우연히 펼쳐진 성경 구절이 바로 여호수아 1장이었습니다. “모세 집사가 나간 후에…” 교수님은 순간 잘못 읽었음을 깨달았지만, 여호수아 1장은 마치 자신에게 하는 말씀처럼 다가왔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계속 반복되는 “두려워 말라”는 말씀이, 교수님에게는 “덕만아,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한다!” 라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렸습니다. 순간 눈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카페에 혼자 앉아 엉엉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교수님은 하나님께 다시 맹세했습니다. “다시는 그만둔다는 말 안 하겠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교회로 돌아와 성도들에게 회개하고, 다시 목회에 헌신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8년의 벙커 교회 목회를 마치고, 현재의 느헤미야 기독연구원으로 사역지를 옮기게 됩니다.

12. 느헤미야, 새로운 사역지로 향하다

8년간의 벙커 교회 목회를 마치고, 교수님은 복음신학대학원대학교(현 건신대학원대학교)에서 느헤미야 기독연구원으로 사역지를 옮기셨습니다. 느헤미야 기독연구원은 평신도들을 대상으로 신학 기초 교육을 제공하는 야학으로, 신학대학교 교수들이 재능 기부로 시작한 학교입니다. 목회자 훈련 과정 프로그램을 만들기로 하면서 전임 교수진이 필요했고, 동료 교수님의 추천으로 교수님께 합류 제안이 왔습니다.

정규 대학교 교수직을 내려놓고 비인가 신학교로 가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월급도 절반 이하로 줄어드는 상황이었지만, 오랜 고민 끝에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백향목교회 성도들은 교수님의 결정을 축복하며, 느헤미야에서의 사역을 응원했습니다.

정규 대학교 교수, 안정적인 수입, 사회적 명성…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낯선 길을 선택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교수님은 “하나님 뜻이 명확해지면 순종해야 한다”는 믿음으로 나아갔습니다. 백향목교회 목회는 ‘알바’가 아니라, 십자가였음을 깨닫고, 느헤미야 사역에 헌신하기로 한 것입니다.

13. 포기해야 할 것들, 채우시는 하나님

새로운 사역지를 선택했지만, 여전히 고민은 남아있었습니다. 정규 대학교를 그만두고 비인가 학교로 가는 것에 대한 불안감, 경제적인 어려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특히 사회적으로 중요한 ‘명함’, 즉 소속과 직책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큰 부담이었습니다.

교수님은 기도하며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하나님, 왜 저를 비인가 신학교까지 가게 하십니까? 지방 대학교에 잘 있는데, 더 욕심내지 않고 살 수 있는데…” 하나님께 항변했지만, 곧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덕만아, 너도 똑같네. 강단에서 십자가 지고 좁은 길 가라고 설교하면서, 정작 너는 넓은 길, 좋은 것만 쫓아가려 하네.”

자신의 이기심을 깨달은 교수님은 더욱 괴로워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 마음을 결정해 주시면 순종하겠습니다.” 고민 끝에 마음이 평안해졌고, 느헤미야 합류를 결정했습니다. 교수님의 아내 역시 어려운 결정에 동참하며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었습니다.

14. 요트를 사지 말고 요트 가진 친구를 사귀어라

느헤미야 사역을 시작하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은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교수님은 과거에도 수없이 하나님의 채우심을 경험했지만, 또다시 불안과 걱정에 휩싸였습니다. 그때, 제자 목사님의 격려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 “목사님 믿음이 그렇게 없으셔서, 하나님께서 목사님 헌신을 잊으시겠습니까? 아이들을 굶기시겠습니까?”

제자의 격려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교수님은 느헤미야 사역에 헌신했습니다. 서울로 이사했지만, 당장 살 집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장인, 장모님께서 살던 집을 흔쾌히 내어주셨습니다. 첫째 아이는 국가 장학금, 개척교회 목사 자녀 장학금 등으로 학비 걱정 없이 대학을 다녔습니다. 둘째 아이는 일본 국비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받으며 일본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셋째 아이는 다둥이 장학금으로 대학교 학비를 전액 면제받았습니다.

세 자녀 모두 학비 걱정 없이 대학을 다니는 축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교수님은 “돈을 벌어야 쓸 곳이 생긴다”는 일반적인 생각을 넘어, “돈을 포기하면 하나님께서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신다”는 역설적인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요트를 사려고 하지 말고, 요트 가진 친구를 사귀어라” 라는 교수님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을 이미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15. 내려놓음,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길

원형 탈모까지 겪을 정도로 힘든 시간이었지만, 지금은 느헤미야 사역을 “잘한 선택”이라고 확신하십니다. 살아보니 자신의 결정대로 되는 것은 별로 없었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백향목교회, 느헤미야 기독연구원, 좋은 공동체를 만나 행복한 목회를 하고 계시지만, 목회는 여전히 쉽지 않은 길입니다.

2년간의 백향목교회 목회에서 교회 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문제는 끊임없이 반복되었습니다. 마치 빙판길에서 핸들이 말을 듣지 않듯,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 앞에서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원형 탈모는 그때 겪었던 심적 고통의 흔적입니다. 결국 백향목교회 목회는 다시 텅 빈 교회로 돌아가는 듯했지만, 그 과정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나는 목회를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문제 해결 능력이 있다”라는 교만함을 버리고,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교회 문제 해결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백향목교회 목회를 ‘알바’가 아닌, 십자가로 받아들이고, 두 대학 강사직까지 내려놓으면서 느헤미야 사역에 전념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축복으로 채워주셨습니다.

교회는 다시 성장하기 시작했고, 내려놓았던 월급만큼 사례비도 회복되었습니다. 원형 탈모도 사라지고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교수님은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에게 내려놓음을 말씀하신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내려놓는 것이 손해 같고 힘들지만, 내려놓음을 통해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채우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순종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바로 신앙의 본질임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배덕만 교수님의 진솔한 간증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습니다. 내려놓음의 진정한 의미, 순종의 가치, 그리고 채우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배 교수님의 앞으로의 사역을 더욱 응원하며, 오늘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1. 한 고대 문서 이야기

2. 너무나도 중요한 소식 (불편한 진실)

3. 당신이 복음을 믿지 못하는 이유

4. 신(하나님)은 과연 존재하는가?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있는가?

5. 신의 증거(연역적 추론)

6. 신의 증거(귀납적 증거)

7. 신의 증거(현실적인 증거)

8. 비상식적이고 초자연적인 기적, 과연 가능한가

9. 성경의 사실성

10. 압도적으로 높은 성경의 고고학적 신뢰성

11.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고고학적 증거

12. 성경의 고고학적 증거들

13. 성경의 예언 성취

14. 성경에 기록된 현재와 미래의 예언

15. 성경에 기록된 인류의 종말

16. 우주의 기원이 증명하는 창조의 증거

17. 창조론 vs 진화론, 무엇이 진실인가?

18. 체험적인 증거들

19.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모순

20. 결정하셨습니까?

21. 구원의 길

ChatGPT, 유튜브 프리미엄, 넷플릭스 구독료 80% 할인 받는 법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