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 속 윤상수 선교사의 신앙과 희망의 간증
잿더미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 우크라이나 선교사의 절규와 굳건한 믿음
죽어가는 사람들: 윤상수 우크라이나 선교사의 간증 (새롭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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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스스럽게 서서 주용입니다. 성징입니다. 박요한입니다. 우크라이나에서 계속 이어지는 전쟁 소식 때문에 많은 분들이 안타까워하고 계시죠. 오늘 저희가 모실 귀한 손님은 바로 우크라이나에서 오랜 시간 사역을 해 오신 윤상수 선교사님이십니다. 최근 폴란드에 방문하셔서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직접 만나고 오셨다고 하는데요, 그 생생한 이야기를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눠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자, 그럼 바로 모셔보겠습니다. 윤상수 선교사님, 어서 오세요.
선교사님,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개 드린 것처럼, 우크라이나에서 오랜 시간 사역하셨는데, 최근 전쟁 때문에 불가피하게 한국으로 잠시 귀국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소식에 얼마나 놀라셨을까요? 당시 현지 분위기는 어떠했는지, 그리고 철수를 결정하게 된 배경에 대해 자세히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선교사님께서는 전쟁이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셨다고 들었는데요.
사실, 저를 포함한 현지 선교사들은 전쟁 가능성을 낮게 보았습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전쟁 위험이 고조되고, 한국 정부에서 철수 권고가 내려졌습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습니다. "우리가 이곳에서 삶의 터전을 이루고 사역하고 있는데, 왜 철수해야 하는가?"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들끼리 단체로 항의도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자국민 보호를 최우선으로 생각했고, 결국 철수를 강행했습니다. 심지어, 철수하지 않을 경우 여권 말소까지 언급하며 강경하게 나왔습니다. 결국, 저희는 부득이하게 한국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국에 온 지 벌써 두 달이나 되었는데요. 정부의 철수 결정 이후, 뚜렷한 후속 조치가 없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심정입니다.
저희 선교단체의 비전은 우크라이나에 15가정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의 은혜로 목표를 달성하고 코카서스 지역까지 사역을 확장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미국 시민권자 선교사들은 현지에 남았고, 일부 선교사들은 우크라이나 국경 지역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26가정이 한국으로 귀국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철수 결정에 모두가 놀랐고, 눈물로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한국에 도착한 지 이틀 만에 전쟁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전쟁 발발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우크라이나 현지에 있는 동료들에게 연락했습니다. 새벽 시간이었지만, 한국 시간으로는 오전이었기에 잠을 깨워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화를 받자마자 고려인 목사님이 울먹이며 전쟁 발발 소식을 전해주셨습니다.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곧바로 다른 선교사들에게도 연락하여 상황을 공유하고, 함께 기도하기로 했습니다. 전쟁 소식을 접한 후, 슬픔과 아픔을 느꼈지만, 이럴 때일수록 기도해야 한다는 생각에 전쟁 대책위원회를 조직하고 온라인 기도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매일 온라인으로 기도하며 힘을 얻고, 현지 상황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약 20일 동안 온라인 기도회를 진행했고, 마지막 날에는 서울 왕성교회 철야 기도회에 참석하여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후 오륜교회에서도 초청해주셔서, 두 달 동안 한국 교회 성도님들의 따뜻한 사랑과 기도 덕분에 큰 힘을 얻고 있습니다.
힘든 상황 속에서 눈물만 흘리는 것은 답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슬픔과 안타까움은 느꼈지만,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합심하여 기도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최근 폴란드에 방문하여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직접 만났습니다. 폴란드는 봄이 왔지만, 난민들은 여전히 겨울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특히, 여성들과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들의 얼굴에는 수심과 두려움, 괴로움이 가득했습니다. 자유롭게 살던 사람들이 전쟁으로 인해 나라를 잃고 난민이 되어버린 현실을 보면서, 자유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저에게는 우크라이나에 오랜 시간 함께 사역했던 소중한 교인들이 있습니다. 뉴스로 접하는 전쟁 소식도 가슴 아픈데, 직접 관계를 맺었던 교인들의 고통을 생각하니 마음이 더욱 무거웠습니다. 전쟁 발발 후, 교인들은 2주 동안 피난을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폭격이 계속되자, 결국 마지막 예배를 드리고 피난길에 오르기로 결정했습니다. 마지막 예배 소식을 한국에서 접하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습니다. 교인들은 1,700km나 되는 먼 거리를 이동하며 피난길에 올랐지만, 3일 동안 연락이 두절되어 걱정이 컸습니다. 다행히, 모두 안전하게 국경을 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8세부터 60세까지의 남성들은 출국이 금지되어 가족과 헤어져야 했습니다. 자유가 있을 때, 신앙의 자유를 누릴 수 있을 때 더욱 감사하며 믿음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폴란드에서 난민들을 만나면서 잊지 못할 경험을 했습니다. 폴란드로 피난하려다 국경을 넘지 못하고 우크라이나 국경 도시에서 발이 묶인 젊은 부부 선교사님 가정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난민들을 위해 매일 2~300명분의 식사를 제공하는 교회를 발견하고, 그곳에서 난민들을 돕기로 결심했습니다. 국경을 넘는 대신, 난민들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 소식을 듣고, 폴란드에서 구호 물품을 구입하여 국경까지 전달했습니다.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봉사자들이 나와 폴란드에서 오는 차량을 빈차로 바꿔 싣는 방식으로 물품을 전달했습니다. 이후에도 두 차례 더 구호 물품을 전달했는데, 세 번째 방문 때는 특별히 부부 선교사님 사모님을 위해 화장품을 선물로 보냈습니다. 놀랍게도, 그날은 사모님의 생일이었다고 합니다. 전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던 사모님은 남편을 통해 전달받은 생일 선물에 매우 기뻐하셨다고 합니다. 이 소식을 듣고, 저희도 큰 기쁨과 보람을 느꼈습니다.
우크라이나 키예프에는 저희 선교센터가 있습니다. 센터에 CCTV가 설치되어 있어, 인터넷이 연결된 곳에서는 실시간으로 센터 상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쟁 중에도 다행히 센터는 폭격을 피했고, 인터넷도 정상적으로 작동했습니다. 센터에는 한국으로 철수하면서 주차해 놓은 선교사님들의 차량도 그대로 있었습니다. 어느 날, CCTV 화면을 통해 낯선 차량 한 대가 센터에 주차된 것을 발견했습니다. 알고 보니, 국경에서 보낸 구호 물품이 저희 교회 주소로 배달된 것이었습니다. 물품을 서로 나누는 과정에서 전쟁으로 고통받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하나 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큰 감동과 감사를 느꼈습니다. CCTV를 통해 실시간으로 센터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참 다행입니다. 인터넷이 연결되어 온라인 뱅킹도 가능하고, 필요한 재정을 현지로 보낼 수도 있습니다. 인터넷이 끊기거나, 사이렌 소리가 울리면 현지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요즘은 인터넷 연결 상태가 양호하여 다행입니다. CCTV를 통해 센터를 지켜보는 것이 일상이 되었지만,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습니다.
저는 원래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평범한 직장인이었습니다. 선교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습니다. 군 입대를 위해 신체검사를 받았는데, 결핵 진단을 받고 군 면제를 받았습니다. 당시에는 결핵에 걸리면 죽는다고 생각했기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치료를 받으면 군대에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1년 후 재검사에서도 결과는 같았습니다. 결핵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직장 생활을 계속해야 했기에 교회 내에서 직분도 맡고, 교인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지냈습니다. 하지만 술도 마시고 세상적인 즐거움을 쫓으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러던 중, 몸이 아프다는 것을 계기로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은 군대에 가는데, 저는 병 때문에 가지 못하는 현실에 절망했습니다. "젊은 나이에 죽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두려움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제발 저를 살려주세요." 밤낮으로 간절히 기도하던 중, 어느 날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면서 "왜 내 인생은 이렇게 꼬였을까?" 라는 생각에 괴로워했습니다. 문득 어릴 적 어머니로부터 들었던 "하나님께 서원 기도를 하면 응답해주신다" 라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서원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제 병을 낫게 해주시면 남은 인생을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
서원 기도를 드리고 나니, 갑자기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내가 너무 큰 약속을 한 것은 아닐까? 목회자의 길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 다른데...' 당시 제가 생각했던 목사님과 사모님들의 모습은 화려하고 권위적인 이미지였습니다. 저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사회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며 살아가고 싶었기에 목회자의 길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하나님께 서원 기도를 드렸고, 되돌릴 수 없다는 생각에 더욱 두려웠습니다. 그러던 중, 환상 속에서 하나님께서 운전대 핸들을 잡고 계시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환상을 통해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하시고, 저를 인도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두려움은 사라지고, "목회의 길은 내가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이다. 걱정할 필요 없다" 라는 마음의 평안을 얻었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저를 목회자의 길로 부르셨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하나님의 부르심은 때로는 이해하기 어렵고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지만, 거부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서원 기도를 통해 목회자의 길을 결심했지만, 그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신학대학에 진학했지만, 재정적인 어려움과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까지 잘 지내올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재정이 부족할 때가 많았는데, 친구들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마련했지만, 저는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직접 물건을 팔아 학비를 마련하기로 결심했습니다. 6인용 접이식 탁상을 구해, 길거리에서 팔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런 용기를 냈는지 신기합니다. 탁상을 팔아 번 돈으로 학비를 내고 생활비를 충당했습니다. 하루 종일 무거운 탁상을 들고 다니며 손님을 기다렸지만, 판매는 쉽지 않았습니다. 날씨가 좋지 않거나,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하루 종일 한 개도 팔지 못하는 날도 많았습니다. '장사에는 소질이 없나보다' 라는 생각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했습니다. 그러던 중, 교회의 전도사로 사역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등록금 마련은 여전히 큰 어려움이었습니다. 등록 마감일이 다가오도록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새벽마다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등록 마감일이 일주일이나 지난 어느 날, 담임 목사님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등록금이 준비되었느냐?" 라고 물으셨습니다. "아직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라고 말씀드리자, 목사님께서는 미리 준비해 놓으신 봉투를 건네주셨습니다. 봉투 안에는 등록금과 장학금이 들어있었습니다. 목사님의 따뜻한 마음에 감동했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이후에도 학기마다 등록금 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도움을 주셨습니다. 교회의 따뜻한 사랑과 후원 덕분에 신학대학을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교회가 인재를 키우는 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교회의 사랑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깨닫게 됩니다. 교회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잊을 수 없습니다.
신학대학 졸업 후, 대부분의 동기들은 개척교회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개척보다는 기존 교회에서 사역하는 것이 저에게 더 맞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성경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관심이 온 열방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신 이유도 열방을 구원하기 위함이었고, 신약성경의 지상명령 또한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말씀을 묵상하며, 해외 선교야말로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사명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곧바로 해외 선교에 헌신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해외 선교를 결심한 후, 크림반도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크림반도를 선교지로 선택한 것은 우연이었습니다. 제가 속했던 선교 단체가 왕성교회였는데, 왕성교회에서 페루 선교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얄타 지역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으로 계획이 변경되었습니다. 얄타는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의 수장이 만나 세계 질서를 논했던 얄타 회담이 열렸던 곳입니다. 얄타 회담 장소에서 화해와 통일의 씨앗을 뿌려야 한다는 사명을 가지고 얄타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얄타에 도착해보니, 얄타 회담 장소는 박물관이었고, 제가 통일의 일꾼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의 선교 전략을 따라 도시와 마을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현지 지도자를 양성하여 교회를 개척하는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23년 동안 7개의 교회를 개척하고 현지 지도자들을 세웠습니다. 사역이 안정화되고 열매를 맺을 즈음,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 합병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러시아의 합병으로 인해 얄타에서 더 이상 선교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23년 동안 땀과 눈물로 일궈온 사역 기반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고향과도 같았던 크림반도를 떠나면서 큰 상실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얄타를 떠나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로 선교지를 옮겨야 했습니다. 키예프에서 새로운 선교 사역을 시작한 지 8년 만에 또다시 전쟁으로 인해 철수하게 되었습니다. 두 번이나 러시아 때문에 선교지를 떠나게 되면서,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수십 년 동안 헌신했던 선교 사역이 두 번이나 중단되는 예상치 못한 일을 겪으면서,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히, 한국에 돌아와서 '새로운 시작' 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를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31년 동안 선교사로 살면서 많은 것을 쌓았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한국에 돌아와 보니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내려놓음' 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지만,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선교사로서 누렸던 모든 권위와 지위, 물질적인 풍요, 심지어 삶의 터전까지 모두 내려놓고 빈손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하루 세끼 식사를 꼬박꼬박 하고 잠잘 곳도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습니다. 한국 사회는 웰빙, 경제 성장 등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웰빙과 경제적 풍요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만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인생에 대한 무게감이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졌습니다. 소유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된 것입니다.
우크라이나 현지 교인들은 여전히 간절히 기도하고 있을 것입니다. 최근 부활절을 앞두고 고난주간을 보내면서, 부차 지역에서 전쟁에 참여하고 있는 한 성도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부차는 러시아군의 민간인 학살로 국제적인 비난을 받고 있는 지역입니다. 그 성도는 휴가를 받아 한 살 된 아이와 함께 교회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저희 교회가 마지막 예배를 드리고 문을 닫았지만, 고려인 목사님 네 분이 교회를 지키며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전쟁 중에도 불구하고 성도 가정이 예배에 참석하고 헌금하는 모습을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특히, 헌금 봉투를 열어보니 십일조 헌금이었던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전쟁에 참여하여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십일조를 드리는 성도의 믿음을 보면서, 평소에 가르쳤던 신앙의 원칙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했습니다. 이러한 성도들이 있기에 선교를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습니다. 전쟁이 속히 끝나고 다시 우크라이나로 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할 뿐입니다.
두 번이나 선교지를 떠나게 되면서, 러시아에 대한 감정이 좋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러시아라는 나라 자체를 미워하는 것은 아닙니다. 러시아에도 하나님의 사랑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번 전쟁은 특정 지도자의 잘못된 판단과 욕심 때문에 일어난 비극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렇게 무의미한 전쟁을 계속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의 상황은 정상적인 판단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특정 지도자의 그릇된 욕망이 수많은 사람들의 행복과 자유를 짓밟고 있습니다. 전쟁으로 무너진 정의를 어떻게 다시 세울 수 있을까요? 저는 그 해답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우시는 하나님의 공의에서 찾습니다. 이번 전쟁은 단순한 국가 간의 전쟁이 아니라, 영적인 전쟁이라고 생각합니다. 악한 세력과의 영적인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전쟁에서는 인간의 힘으로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분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입니다. 저는 이번 전쟁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하나님의 크고 비밀한 계획이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이번 전쟁을 통해 더욱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영접하고, 교회가 영적으로 부흥하며, 유럽 사회에 복음 전파의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우크라이나가 새로운 유럽의 리더 국가로 우뚝 서기를 기도합니다.
러시아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님들과도 여전히 교류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선교사님들 중에는 이번 전쟁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오히려 러시아 선교사님들도 전쟁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사역 활동에 제약이 많아지고, 경제적인 어려움도 커지고 있습니다. 러시아 선교사님들도 전쟁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받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한국으로 귀국할 때, 우크라이나 MK(선교사 자녀) 고아 한 명을 함께 데려왔습니다. 빅토르라는 이름의 고3 남학생입니다. 빅토르의 아버지는 6개월 전 대장암으로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빅토르가 6살 때 세상을 떠났습니다. 홀로 남은 빅토르를 74세의 아버지가 어렵게 키워왔습니다. 빅토르 아버지 선교사님은 파송 교회도 없이 자비량으로 오랫동안 선교 사역을 해오셨습니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으로 빅토르는 고아가 되었고, 저는 빅토르를 한국으로 데려와 돌보기로 했습니다. 장례식을 한국에서 치르고 싶었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으로 인해 한국에서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해외에서 장례식을 치르고, 제가 마지막 예배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 제목은 "인생의 승리자" 였습니다. 선교사님은 누구도 믿지 않는 예수를 믿었고, 아무도 가기 싫어하는 오지 선교를 택했으며, 아무나 갈 수 없는 천국에 갔으니 인생의 승리자라고 선포했습니다. 장례식을 마치고, 빅토르의 거취를 고민했습니다. 고아가 된 빅토르를 누가 돌볼 수 있을까? 선교 단체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내와 상의 후, 우리가 빅토르를 맡기로 결정했습니다. 오래전부터 선교사 자녀 고아들을 돌보는 것에 대한 마음이 있었고, 이번 기회에 실천하기로 한 것입니다. 빅토르를 한국으로 데려와 학교에 보내고, 상담도 받으며 한 달 동안 함께 지냈습니다. 그러다 전쟁 때문에 한국으로 함께 철수하게 되었고, 빅토르는 5월까지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고 졸업하게 됩니다. 최근 전주에 있는 교회에서 빅토르를 맡아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빅토르가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제 대학 진학을 준비해야 하는데, 12년 특례 입학을 통해 한국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돕고 있습니다. 빅토르가 앞으로 훌륭한 선교사가 되기를 기도하며 응원하고 있습니다. 저와 아내는 빅토르에게 부모와 같은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빅토르는 곧 19세가 되지만, 여전히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입니다. 대학 졸업까지 잘 양육하여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세우는 것이 저희의 목표입니다. 전 세계 선교사님들도 빅토르를 위해 기도하고 응원해주고 계십니다. 이 또한 저희가 감당해야 할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끔 성도님들로부터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잔인한 전쟁을 허락하셨나요?" 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특히 어린 아이들을 잃은 부모님들은 더욱 힘들어하십니다. 저 또한 이 질문에 명쾌하게 답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전쟁은 인간의 죄악으로 인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전쟁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심과 갈등이 전쟁을 불러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아사 왕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 주님밖에 도울 자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사람이 하나님을 이기지 못하게 하소서." 아사 왕의 기도에 하나님께서는 100만 대군을 물리치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힘이 강한 나라와 약한 나라의 싸움이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고 전쟁을 멈춰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한국 사회를 보면서, 한국 사회 또한 전쟁 중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총칼만 들지 않았을 뿐, 뉴스에서 접하는 한국 사회는 갈등과 분열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또한 전쟁과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히려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더 불쌍하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전쟁이 발발하자 국경을 넘어 피난이라도 갈 수 있었지만, 한국 사회는 갈등과 분열 속에서 어디로 피난할 곳조차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30여 년간 한국 사회는 경제 성장과 평화를 강조해왔습니다. 국방력을 약화시키고, 무기를 해외에 판매하기도 했습니다. 핵무기를 포기하고, 원자력 발전에 의존해왔습니다. 전쟁은 없을 것이라고, 적군은 없을 것이라고, 평화만 있을 것이라고 믿어왔습니다. 하지만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안보' 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습니다. 국방력이 약하면 언제든 강대국의 침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번 전쟁이 한국 사회에 큰 교훈이 되기를 바랍니다. 대한민국 국방력이 더욱 강화되어, 다시는 전쟁의 위협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남의 나라 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과거 한국 전쟁 때, 많은 나라들이 우리를 도와주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우크라이나를 도와야 할 차례입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국회 연설했을 때, 일부 국회의원들의 무관심한 태도를 보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무관심할 수 있을까? 다른 나라 국회에서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연설이 끝난 후 기립 박수를 보냈는데, 한국 국회의원들의 모습은 실망스러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방송을 시청하시는 성도님들께 기도 제목과 중보 기도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어려움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큰 어려움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어려움도 피할 수 없습니다. 인생은 마치 파도와 같습니다. 끊임없이 어려움이라는 파도가 밀려옵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도해야 할 제목은 '어려움이 없게 해달라' 가 아니라, '어려움이 왔을 때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입니다. 우크라이나 백성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전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면서 마음 아파해야 합니다. 우리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전쟁을 바라봐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이 죽어가고 가정이 파괴되는 현실에 함께 아파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눈에 보이는 현실만 바라보면 절망에 빠지기 쉽습니다. 개인적인 문제든, 국가적인 문제든, 문제만 바라보면 해결책이 보이지 않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눈을 감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 속에서 당장 응답이 없을 수도 있지만, 기도하는 동안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소망의 하나님' 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현실은 불안하고 미래는 불확실하며 염려스러운 일들이 많지만, 기도할 때 소망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에 압도되지 말고, 문제에 매몰되지 말고, 기도 속에서 소망의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전쟁으로 인해 낙심하고 절망에 빠진 우크라이나 백성들에게, 그리고 어려움 속에서 신음하는 모든 분들에게 소망의 하나님을 만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그 희망이 삶의 원동력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힘들고 어렵지만, 소망의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언젠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5장 13절에서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라고 축복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려움 속에서 신음하는 모든 분들에게 이 말씀이 위로와 소망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소망의 하나님, 희망의 에너지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전쟁이 끝나면 다시 우크라이나로 돌아갈 것입니다. 현재는 폴란드에서 난민들을 돕는 사역을 하고 있고, 우크라이나 정부에 입국 허가를 신청해 놓은 상태입니다. 입국 허가가 언제 나올지는 미지수이지만, 전쟁이 끝나는 대로 우크라이나로 돌아가 재건과 회복을 위한 선교 사역에 헌신할 것입니다. 우크라이나 땅에 다시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선교사님, 오늘 귀한 말씀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선교사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한 지도자의 중요성과 한 사람의 욕심이 얼마나 큰 비극을 초래할 수 있는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푸틴 대통령도 처음부터 악한 사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적인 욕심에 눈이 멀어 악한 영에 사로잡히면서, 지금과 같은 비극적인 전쟁을 일으킨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예전에 부모님 세대들은 나라와 민족, 그리고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기도가 사라지고, 오히려 지도자들을 비난하고 정죄하는 목소리만 높아지고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지도자를 세우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또한, 전쟁의 중요한 키를 쥐고 있는 지도자들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움직여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선교사님께서 우크라이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리고 그 땅을 얼마나 그리워하시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 역사를 통해 위기의 순간마다 반전의 역사를 써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선교사님을 다시 우크라이나로 보내주셔서, 재건과 회복의 역사를 새롭게 쓰실 것을 기대하며 응원하고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귀한 말씀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박수]
[음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