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마약 중독에서 예수님 통해 회복한 감동 실화 간증
7년 마약 절망 끝, 예수님이 답이었다
“마약 중독”에서 “예수님 중독”으로, 우리 아들이 변화되었어요: 이선민 이사장님의 간증
마약은 더 이상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주변을 갉아먹는 심각한 현실이며, 특히 다음 세대에게는 더욱 치명적인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새롭게하소서 채널을 통해 마약 중독의 심각성을 알리고, 치유와 회복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게 되어 매우 뜻깊게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 마약으로 인해 고통받는 아들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기독교 마약 중독 연구소 이사장까지 되신 이선민 집사님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 간증을 통해 한국 교회 전체가 마약 중독 치유 캠페인에 동참하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이 자리에 귀한 발걸음을 해주신 이선민 집사님, 어서 오세요. 집사님께서는 현재 부산 수영로 교회 집사이시며, 기독교 마약 중독 연구소의 이사장을 맡고 계신데요. 이 모든 시작이 아드님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아드님의 이야기가 궁금한데요, 당시 아드님의 상태는 어떠했나요?
제 아들은 마약을 시작한 지 7년이나 되었습니다. 지금은 제주 순오름 치유센터에서 치유를 받고 있습니다. 아들을 둔 부모로서, 마약의 위험성을 알리고 경종을 울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마약을 일부 젊은 층의 일탈, 나와는 먼 이야기라고 생각하시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아드님은 언제 처음 마약을 접하게 되었나요?
아들은 19살에서 20살, 막 주민등록증이 나오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진학할 시기에 처음 마약을 접했습니다. 당시 또래 친구들이 주로 가는 유흥업소나 클럽에서 시작된 거죠. 신입생 환영회 등 들뜬 분위기 속에서,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이건 마약이 아니다, 오늘 기분 최고로 만들어줄 손사탕 같은 거야” 라며 권유했다고 합니다. 술에 약을 타서 주는 방식으로, 처음에는 그저 술인 줄 알고 마셨다고 해요. 그런데 30분 정도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눈을 떠보니 2~3일이 지나 있었다는 겁니다.
정말 충격적이네요. 한순간의 호기심이 끔찍한 중독으로 이어진 것이군요.
네, 단 한 번의 경험으로 급속도로 마약에 중독되었습니다. 처음 접한 약물은 메스암페타민 계열, 즉 필로폰이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강력한 마약에 노출된 것이죠.
어머니로서 아드님의 마약 중독을 언제 처음 인지하게 되셨나요?
아무리 철없는 아들이라도 연락이 두절되고 며칠씩 집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대학교 MT나 여행 정도로 생각했지만, 일주일 넘게 연락이 끊기고 집에 돌아왔을 때 아이의 모습은 너무나 달라져 있었습니다. 급격하게 살이 빠져 있었고, 횡설수설하고, 자꾸 숨으려고 하고, 외부 출입을 극도로 꺼리는 모습을 보면서, ‘아, 이건 뭔가 심각한 문제가 생겼구나’ 직감했습니다.
남편분께서도 큰 충격을 받으셨을 텐데요.
마약에 아들이 연루되었다는 사실은 부부에게 씻을 수 없는 충격과 절망을 안겨주었습니다. 남편은 특히 아들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이었습니다. 19살, 20살 어린 나이에, 게다가 장손이었던 아들을 교도소에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뿐이었죠. 그래서 택한 방법이 유학이었습니다. 한국을 떠나 낯선 환경에서라도 치료를 받게 하고 싶었습니다.
유학이라는 선택,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요. 처음 유학을 선택한 곳은 어디였나요?
처음으로 떠난 곳은 호주였습니다. 하지만 호주는 생각보다 마약에 더 쉽게 노출될 수 있는 환경이었습니다. 핸드폰 하나만 있으면 전 세계 어디든 마약 거래가 가능하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호주에서도 아들은 쉽게 마약을 구할 수 있었고, 오히려 더 넓은 시장에 발을 들인 셈이 되었죠. 집을 찾아가도 문을 열어주지 않고, 겨우 문을 열었을 때 마주한 아들의 모습은 처참했습니다. 남편은 아들의 엉망이 된 모습에 오열했습니다.
호주에서도 실패를 겪으신 후, 또 다른 시도를 하셨나요?
아들을 데리고 태국으로 향했습니다. 태국에는 마약 재활 센터가 많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입니다. 태국에서 몇 달간 재활 치료를 받았지만, 퇴소하자마자 바로 재발했습니다. 중독은 멈추는 것일 뿐, 근본적인 치료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마치 댐으로 물길을 잠시 막아둔 것과 같다고 할까요. 갇혀 있는 동안 갈망은 더욱 커지고, 댐이 터지면 걷잡을 수 없이 물이 쏟아져 나오듯이, 재활 센터에서 나온 아들은 더욱 강렬하게 마약을 갈망했습니다. 결국 태국 경찰에 붙잡히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정말 끊임없이 힘든 상황이 이어졌네요. 태국에서의 실패 후, 또 다른 나라로 가셨나요?
태국에서 싱가포르로, 다시 싱가포르에서 말레이시아까지, 아들을 따라 여러 나라를 전전했습니다. 싱가포르에서는 대학에도 입학했지만, 결국 또 다시 마약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싱가포르는 법이 엄격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호텔에서 교수님과 식사 도중 사라져 연락이 두절되기도 했습니다. 싱가포르의 찜통 더위 속에서 남편과 저는 핸드폰 하나 들고 모텔촌을 헤매며 아들을 찾아다녔습니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까지... 정말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의 시간이었을 것 같습니다.
말레이시아 조호바루의 허름한 모텔에서 아들을 발견했을 때, 아들은 토사물과 땀으로 범벅이 된 채 망상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누가 쫓아온다, 잡으러 온다” 며 극심한 두려움에 떨고 있었죠. 마약을 하면 쾌락을 느낀다고 하지만, 아들이 겪는 것은 공포, 두려움, 절망, 좌절뿐이었습니다. “왜 마약을 하느냐” 고 물었더니, 아들은 “마약을 안 하면 죽을 것 같다” 고 했습니다. 그때 남편과 저는 절망했습니다. ‘이제 정말 끝이구나, 우리 가족은 이제 영원히 죽었구나’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어떤 방법도, 희망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부모로서 정말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었을 것 같습니다. 아드님은 스스로 끊으려는 의지가 있었나요?
아들도 끊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중독은 뇌의 보상 회로가 고장난 병입니다. 전전두엽 기능에 문제가 생겨, 도파민이 정상적으로 분비되지 않고, 마약이라는 비정상적인 자극에만 뇌가 반응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죠. 처음에는 쾌락을 느끼지만, 결국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 마약을 찾는 악순환이 반복될 뿐입니다. 아들도 고통스러워했지만, 인간의 의지만으로는 중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정말 안타깝네요. 그렇다면 아드님은 어떻게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나요?
더 이상 해외에서 숨어 지낼 수 없다고 판단한 아들이 먼저 자수를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제도적 문제점이 또 다시 발목을 잡았습니다. 불구속 수사 원칙 때문에, 아들은 한 달 동안 불구속 상태로 지내게 되었는데, 이 기간 동안 오히려 ‘교도소 들어가기 전에 실컷 마약을 해야겠다’ 는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되었고, 또 다시 연락이 끊겼습니다.
불구속 수사가 오히려 독이 된 셈이네요.
어느 날 새벽, 아들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숨소리가 몹시 거칠었고, 목소리도 불안정했습니다. 과다 복용이라는 것을 직감했죠. ‘교도소, 처벌, 그 모든 것을 떠나 일단 아들을 살려야 한다’ 는 생각에 112에 바로 신고했습니다. “제 아들이 마약 과다 복용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제발 찾아주세요” 라고 간절하게 부탁했지만, 경찰은 “그런 신고에 일일이 대응할 수 없다” 며 난색을 표했습니다. 절박한 마음에 “지금 이 전화를 받고 출동하지 않으셔서 제 아들이 죽으면, 경찰관님이 책임지실 건가요?” 라고 울면서 항의했습니다. 그러자 잠시 후, 경찰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아들을 찾았다는 기적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정말 천만다행이네요. 하마터면 끔찍한 결과를 맞이할 뻔했습니다.
부산 마약 수사대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아들을 살릴 수 있었습니다. 아들이 발견된 곳은 모텔이었는데, 이미 필로폰을 치사량 가까이 투약한 상태였습니다. 조금만 늦었어도 정말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겁니다. 그 순간, 제 마음은 찢어지는 듯했습니다. 지금까지 겪었던 고통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절망감이 밀려왔습니다.
그 힘든 시간들을 겪으면서, 가족들은 어떻게 지내셨나요?
아들 하나 때문에 온 가족이 망가져갔습니다. 대화는 단절되고, 웃음은 사라지고, 집안에는 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남편은 3년 동안 회사를 뒷전으로 하고 아들을 쫓아 해외를 전전했지만, 결국 아들은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들었습니다. 남편은 큰 좌절감에 휩싸였고, 아들이 교도소에 수감된 후 2년 반 동안 면회조차 가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둘째, 셋째 아이들과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큰 아들을 외면했지만, 저는 그런 남편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가족 모두가 힘든 시간을 보내셨군요. 그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만나게 되셨나요?
교회에 나가면서 비로소 희망을 보게 되었습니다. 예배를 통해 주시는 말씀, 특히 에베소서 말씀은 저에게 큰 위로와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남편에게 복종하라’ 는 말씀을 통해, 오히려 아들을 눈으로 보지 못하고 상상 속에서만 아들을 걱정하는 남편이 더 힘들고 아플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면서 비로소 가정이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교도소 생활은 어떠했나요? 아드님은 교도소에서 힘들어하지 않았나요?
교도소는 결코 교화의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특히 약물 사범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치료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오히려 교도소 내에서 마약 이야기가 끊이지 않아 갈망만 더 커지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단순 투약자와 마약 판매자가 함께 수감되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오히려 교도소에서 마약 판매 기술, 법망을 피하는 방법, 약물 구하는 방법만 더 자세히 배워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도소 내에서 향정신성 약물 처방도 문제라고 들었습니다.
교도소는 약물 사범을 가장 골칫덩어리로 여깁니다. 마약 중독으로 인해 정신 질환까지 겪는 수감자들이 많기 때문에, 교도관들은 이들을 통제하기 어려워합니다. 그래서인지 교도소에서는 향정신성 약물을 과도하게 처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분노 조절, 정서 안정을 위해 쿠에타핀 같은 약물을 코끼리도 잠재울 만큼 과다하게 투여하여, 수감자들을 그저 멍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도록 방치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교도소는 또 다른 합법적인 약물 남용의 장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진통제를 마약처럼 서로 주고받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합니다.
미국의 약물 법원 시스템과는 대조적이네요. 한국의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그렇다면 아드님은 교도소에서 어떻게 신앙을 갖게 되었나요?
교도소 안에는 읽을거리가 성경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코로나 시국에 교도소를 방문하는 목사님들의 말씀이 좋았고,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면회를 갔더니, 아들이 “엄마, 나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어” 라고 고백했습니다. 처음에는 당황했습니다. 저희 집안은 대대로 불교 집안이었거든요. ‘마약쟁이가 예수쟁이까지 되면 어르신들께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걱정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하나님이 너무 궁금해졌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궁금증이 신앙으로 이어진 것이군요.
유튜브에서 유명 목사님들의 설교를 찾아 듣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이 너무 좋았습니다. 잠언, 전도서 말씀 하나하나가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특히 “제사를 지내지 말라” 는 말씀이 가장 좋았습니다. 찬양도 듣기 시작했는데, CCM 찬양의 은혜로움에 푹 빠졌습니다. 그러던 중, 수영로 교회에 다니는 지인 언니에게 연락하여 교회를 다니고 싶다고 했더니, 언니가 흔쾌히 “오늘 당장 가자” 고 했습니다.
첫 예배는 어떠셨나요?
수영로 교회 새 가족 코너에 앉아 예배를 드리는데, 담임 목사님이 갑자기 마약 이야기를 설교하시는 겁니다. “중독은 영적 전쟁이다” 라는 설교 말씀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어떻게 제 상황을 아시고 설교를 하시는 걸까 놀라웠습니다. “네 멍에는 쉽고 네 짐은 가볍다” 라는 말씀을 하시는데, 마치 저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날 찬양 가사도 “사랑하는 내 아들아, 내 딸아” 였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네 탓이 아니다, 네 아들이 귀한 만큼 너도 귀하다” 라는 위로와 사랑을 전해주셨습니다. 그날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정말 감동적인 경험이네요. 그 후 아드님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교도소에서 출소한 아들은 일주일 만에 재발했습니다. 또 다시 절망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기도했습니다. 아들은 또 다시 폐쇄병동에 입원했고, 국립법무병원으로 옮겨져 1년 반 동안 치료를 받았습니다. 국립법무병원에서 퇴원할 때, 마치 007 작전처럼 아들을 데리고 제주 순오름 치유센터로 향했습니다. 공주교도소에서 출소하는 날, 아들은 이미 마약 판매 조직과 연락이 닿아 부산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박상규 목사님, 기독교 마약중독연구소, 다이크, 순오름 공동체가 연합하여 경호팀을 꾸려 아들을 제주도로 안전하게 호송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정말 영화 같은 이야기네요. 하마터면 또 다시 끔찍한 상황이 벌어질 뻔했습니다.
출소 당일, 아들은 극도로 불안하고 난폭한 모습이었지만, 마지막 순간 저의 간절한 설득에 마음을 돌리고 제주행을 택했습니다. “너를 죽이는 사람이 아닌, 살리는 사람을 따라가라” 는 저의 말에 아들은 기적적으로 “알겠다” 고 대답했습니다. 제주 순오름 치유센터에 입소한 후, 아들은 안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순오름 치유센터는 어떤 곳인가요? 어떤 프로그램으로 치유가 이루어지나요?
순오름 치유센터는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운영되는 마약 중독 재활 센터입니다. 매일 큐티, 찬양, 성경 읽기로 하루를 시작하고, 운동, 심리 치료, 전문가 상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제공됩니다. 조성남 국립법무병원 원장님을 비롯하여, 국내 최고의 중독 전문가들이 방문하여 상담과 교육을 진행합니다. 제주 지역 목사님들과 연계하여 신앙적인 치유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교회 예배도 참석하는군요. 아드님의 변화가 느껴지시나요?
네, 출소 후 일주일 만에 순오름 치유센터에 입소했을 때, 아들은 엉망인 정신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헌금 예배에 참여하여 헌금을 드렸습니다. 자신이 받은 영치금을 고스란히 헌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다” 고 고백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들의 변화를 실감했습니다.
물론 한 번의 치유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앞으로도 많은 어려움이 있을 텐데요.
중독은 끊임없이 재발하는 질병입니다. 아들에게 가장 큰 위협은 핸드폰입니다. 핸드폰을 통해 언제든 마약 판매 조직과 연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순오름 치유센터에서도 핸드폰 사용을 제한하고 있지만, 완전히 차단할 수는 없습니다. 끊임없이 유혹이 찾아오고, 아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갈등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하루하루를 잘 버텨내고 있습니다.
정말 힘든 싸움을 하고 있네요. 끊임없이 유혹하는 마약 조직의 손길도 무섭습니다.
마약 판매 조직은 정말 끈질깁니다. 순오름 치유센터까지 찾아와 아들을 유혹하고, 핸드폰으로 마약 사진을 보내 갈망을 자극합니다. 아들은 그런 유혹 속에서도 힘겹게 버티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아들이 갑자기 센터를 이탈하여 부산으로 갔다는 소식을 듣고 절망했지만, 하영준 센터장님의 끈질긴 설득과 기도로 다시 센터로 돌아왔습니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이네요. 부산까지 갔었는데, 다시 돌아왔다니 놀랍습니다.
부산에 도착했지만, 아들은 행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마약의 소굴로 돌아갔지만, 마음은 여전히 공허했던 것이죠. 스스로 깨닫고 다시 순오름 치유센터로 돌아온 아들이 정말 대견합니다. 저는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아들이 하루하루를 무사히 보내기를 기도합니다. 하루에도 수백 번씩 위기가 찾아오지만, 하나님께서 아들을 굳게 붙잡아주시리라 믿습니다.
예방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는데요, 어떤 예방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마약 예방 교육은 정말 중요합니다. 특히 청소년 시기부터 체계적인 예방 교육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주민등록증을 처음 발급받을 때, 마약의 위험성을 알리는 책자를 함께 배부하거나, 학교 오리엔테이션, 졸업식 등 계기를 통해 마약 예방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펼쳐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대학교 총장님들과 협력하여, 대학생 대상 마약 예방 교육을 의무화하는 등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합니다.
마약 중독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마약 중독은 개인의 의지 부족 문제가 아닌, 심각한 질병입니다. 단순 투약자, 약물 중독자는 처벌이 아닌 치료와 재활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치료 시설과 시스템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거주형 재활 센터를 확대하고, 마약 중독 환자를 전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을 늘려야 합니다. 특히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중독자들을 위한 경제적 지원 시스템 마련도 중요합니다.
교회의 역할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교회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마약 중독 문제는 영적 전쟁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마약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해답입니다. 한국 교회는 이제 선교의 방향을 해외에서 국내로 돌려야 합니다. 300만 명이 넘는 마약 중독자들을 품고, 기독교 마약 재활 센터를 설립하여, 이들을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데 앞장서야 합니다. 미국에는 수만 개의 기독교 마약 재활 센터가 있지만, 한국에는 전무합니다. 한국 교회가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아드님에게 영상 편지를 띄워주시겠어요?
사랑하는 아들, 힘든 시간 잘 견뎌주고 있는 것 엄마는 믿는다. 집으로 돌아오고 싶은 마음, 엄마도 잘 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만 더 힘내서, 순오름 치유센터에서 하나님 안에서 온전히 치유받고 회복되기를 기도한다. 네가 건강하게 돌아오는 날, 우리 가족 모두 다시 행복하게 웃을 수 있을 거야. 사랑한다, 아들. 힘내!
오늘 귀한 간증 나눠주신 이선민 이사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간증을 통해 많은 분들이 마약 중독의 심각성을 깨닫고, 함께 기도하며,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함께 해주신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마약 중독,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우리 아이들을 지키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함께 기도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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