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교수직 버리고 하나님 만난 백혜선 피아니스트 인생 이야기
잘나가던 서울대 교수, 뉴욕 바닥에서 찾은 인생의 답
자신만만하게 서울대 교수직을 내려놓고 미국으로 건너간 피아니스트 백혜선,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과 음악 이야기
대부분의 사람들은 ‘망했다’라는 표현을 인생의 끝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늘 이야기 손님은 오히려 그 순간에 많은 것을 얻었다고 고백합니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서 정점에 섰을 때가 아닌,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하나님을 만났다는 그녀의 이야기는 고난 속에 있는 많은 이들에게 큰 위로와 희망을 전해줄 것입니다. 오늘, 피아니스트 백혜선 선생님을 모시고 그녀의 진솔한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좌절의 스페셜리스트가 되기까지
32년 전, 백혜선 선생님은 지금의 조성진, 손열음과 같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반열에 오르며 한국을 빛냈습니다. 당시 국제 콩쿠르 우승은 흔치 않았기에 그녀의 성공은 더욱 파격적으로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스스로를 “좌절의 스페셜리스트”라고 칭하며, 성공 뒤에 감춰진 수많은 어려움과 좌절들을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출판사에서 붙여준 책 제목처럼, 백혜선 선생님의 삶은 끊임없는 좌절과 극복의 연속이었습니다. 매일 음악회를 해도 만족스럽지 못했고, 어떤 일을 해도 문제가 생기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좌절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책에는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담겨있지 않지만, 오늘 이 자리에서는 그녀의 신앙과 삶에 대한 더욱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백혜선 선생님은 가까운 사람들과의 이별, 그리고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아픔과 좌절이 없었다면 하나님을 찾지 않았을 것이라고 고백하며,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임을 강조합니다. 이제부터 백혜선 선생님의 인생 속 좌절의 순간들을 어떻게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바꾸어 가셨는지, 그 감동적인 이야기를 함께 나눠보겠습니다.
기도의 힘, 콩쿠르 1등과 기적 같은 경험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하나님의 기도의 힘을 느꼈다는 백혜선 선생님은, 처음 경험한 큰 국제 콩쿠르에서 기도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1989년, 4년마다 열리는 국제 콩쿠르에서 4년 동안 1등이 나오지 않았는데, 1등에게는 뉴욕 데뷔와 수많은 음악회, 그리고 당시 큰 상금이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백혜선 선생님은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했기에, 콩쿠르에 대한 기대보다는 매일 기도에 매달렸습니다.
우연히 잡지에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 두 아이를 키우는 싱글 어머니의 눈물 어린 글을 읽고, 그녀는 이 가정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만약 콩쿠르에서 상을 받게 된다면, 상금을 이 가정을 위해 쓰겠다고 기도했습니다. 콩쿠르에 참가하면서 매일 이 가정을 위해 기도했고, 놀랍게도 1등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1등을 하는 과정 또한 기적과 같았습니다. 독주 도중 갑자기 피아노 줄이 끊어지는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했지만, 심사위원들은 그녀에게 다시 연주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이는 전례 없는 일이었고, 그녀는 하나님의 특별한 개입을 느꼈습니다. 콩쿠르 후, 잡지사를 통해 그 가정을 찾아 상금을 전달했고, 어머니의 도움으로 어린 소녀가 피아노를 배우게 되면서 그녀의 삶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어머니의 기도, 삶의 원동력이 되다
어머니 또한 백혜선 선생님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유학 시절, 어머니는 늘 전화로 “기도할게”라고 말씀하셨고, 집에 돌아가 보면 어머니는 밤늦도록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어머니의 기도 열정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머니의 기도가 그녀의 삶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백혜선 선생님의 가정에는 특별한 분이 계셨습니다. 병원에서 일하시던 도우미 아주머니는 그녀를 볼 때마다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축복 기도를 해주셨습니다. “주여, 우리 혜선이가 잘 되게 해주시고, 나중에 하나님을 위해 큰 일을 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해주셨습니다. 아주머니는 늘 다락방에서 기도하셨고, 백혜선 선생님에게 기도의 중요성을 가르쳐주셨습니다. “늘 기도해야 한다”, “힘들면 기도하라”는 아주머니의 말씀은 어린 백혜선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인생을 되돌아보며 백혜선 선생님은 어머니와 도우미 아주머니의 기도가 오늘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고백합니다. 두 분의 끊임없는 기도가 있었기에, 그녀는 어려움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음악의 길을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미국 유학, 외로움 속에서 찾은 하나님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백혜선 선생님은 외롭고 힘든 유학 생활 속에서 더욱 기도에 의지했습니다. 매일 일기를 쓰듯 기도문을 작성하며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묻기도 했습니다. “하나님, 죄송해요. 오늘은 이런 죄를 지었습니다. 공부를 안 했어요. 숙제를 밀렸어요. 연습하라는 만큼 안 했어요.”, “대학교 가서는 연애를 해도 되는 건가요? 데이트를 하면 결혼해야 되는 건가요?” 순수했던 청년 시절의 고민들이 기도문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도우미 아주머니로부터 받은 기도의 영향은 그녀의 삶에 깊숙이 뿌리내렸습니다. 차이콥스키 콩쿠르 이후, 20대 후반에 서울대학교 교수로 임용되었지만, 그녀는 서울대가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라는 직감을 받았습니다.
서울대 교수 사직, 새로운 도전을 선택하다
20대라는 젊은 나이에 서울대학교 교수가 되었지만, 백혜선 선생님은 오히려 불안감을 느꼈습니다. 1995년, 당시 서울대 분위기는 권위적이었고, 교수 사회는 폐쇄적이었습니다. 국제적인 무대와 비교했을 때 서울대 교수라는 타이틀은 그녀에게 큰 의미가 없었습니다. 학생들은 음악에 대한 열정보다는 ‘서울대 졸업’이라는 간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했습니다.
학생들과의 소통에도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1, 2학년 학생들은 미팅에만 관심이 있었고, 3, 4학년 학생들은 취업과 유학 준비에만 몰두했습니다. 음악에 대한 깊이 있는 대화는 불가능했습니다. 연주자로서 끊임없이 배우고 발전해야 하는 시기에, 교육자로서의 역할은 그녀에게 오히려 성장의 걸림돌이 되는 듯했습니다.
결혼 후에도 이러한 고민은 계속되었습니다. 남편과의 가치관 차이, 음악에 대한 열정, 미래에 대한 비전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이 겹치면서 갈등은 깊어졌습니다. 결국, 그녀는 서울대 교수직을 내려놓고 미국으로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주변 사람들은 그녀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녀는 자신의 직감을 믿고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습니다.
뉴욕 생활, 예상치 못한 시련과 마주하다
자신만만하게 서울대 교수직을 사직하고 뉴욕으로 떠났지만, 백혜선 선생님은 예상치 못한 시련에 직면했습니다. 뉴욕은 세계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도시 중 하나였고, 특히 센트럴파크 인근 아파트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쌌습니다. 은행 대출을 받아 마련한 아파트는 금리 인상과 함께 감당할 수 없는 빚으로 돌아왔습니다.
2, 3년 후, 경제적 어려움은 극에 달했고, 은행은 아파트를 압류하려 했습니다.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처한 그녀는 절망 속에서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더 이상 기댈 곳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 그녀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40일 작정기도 후, 놀라운 응답이 찾아왔습니다. 대구 가톨릭대학교에서 특강 제의가 들어온 것입니다. 한 학기에 일주일만 강의하면 되는 조건이었고, 이는 그녀에게 경제적인 숨통을 틔워주는 동시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주었습니다. 백혜선 선생님은 이 경험을 통해 “주시는 분도 주님이시고, 가져가시는 분도 주님이시다”라는 깊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 안에 있음을 인정하고, 그 뜻에 따라 살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뉴욕 한인교회, 음악으로 봉사하며 얻은 은혜
뉴욕에서의 광야 같은 삶 속에서 백혜선 선생님에게 큰 힘이 되어준 것은 뉴욕 한인교회였습니다. 컬럼비아 대학교 앞에 위치한 이 교회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곳으로, 동부 지역 교회들의 모(母)교회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 때문에 교회에 나갔지만, 정경화 선생님 어머니의 권유로 성가대 지휘를 맡게 되면서 교회 봉사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성가대 지휘를 통해 음악의 본질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4성부 합창의 아름다움, 모든 악기는 사람의 목소리를 따라 만들어졌다는 사실, 음악의 근본은 노래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15년 동안 성가대 지휘를 하면서 예배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음악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 문을 열고 영혼을 치유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매주 설교 말씀과 어울리는 찬양을 선곡하고, 가사를 묵상하며 예배를 준비했습니다. 뉴욕에는 훌륭한 성악가들이 많았고, 교회 성가대에는 20대부터 85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단원들이 함께 봉사했습니다. 음악을 통해 서로 은혜를 나누고, 믿음 안에서 하나 되는 귀한 경험들을 했습니다.
백혜선 선생님은 성가대 활동을 통해 음악은 경쟁이 아닌, 마음과 영혼으로 소통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이후 그녀의 연주는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마음과 영혼을 담아 기도하는 마음으로 연주하게 되었고, প্রতিটি 연주가 예배와 같은 경건한 마음으로 드려졌습니다.
후배 음악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홀로 유학길에 올라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된 백혜선 선생님은 후배 음악인들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넸습니다. 먼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고, 온 힘을 다해 몰두하라고 강조했습니다. 부모님들은 자녀가 좋아하는 일을 지지하고, 재능을 개발할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배우고 자기계발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편안한 삶에 안주하지 않고, 죽는 날까지 배움을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시지 않지만,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늘 기도할 제목을 주십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고, 동행하며,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감사의 마음을 잃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어떤 일이 풀리지 않더라도 낙심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 묻고, 인도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 응답이 없더라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인내해야 합니다.
인생이라는 악기, 하나님 손길로 조율되다
백혜선 선생님의 이야기는 젊은 시절 화려한 성공 뒤에 숨겨진 고독과 방황,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찾게 된 감동적인 여정입니다. 최고의 피아니스트였지만, 그녀의 인생이라는 악기는 조율이 필요했습니다. 광야와 같은 시간을 통해 하나님의 손길로 조율된 그녀의 인생은 이제 더욱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과거 인터뷰에서 성공 비결을 묻는 질문에 영감이라고 답했지만, 이제는 모든 영감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머니의 기도, 도우미 아주머니의 축복 기도, 이 모든 것이 오늘의 그녀를 만들었습니다. 그녀는 자녀들을 위해 어머니처럼 무릎 꿇고 기도하는 부모가 되겠다고 다짐합니다.
백혜선 선생님은 앞으로도 교회에서 성가대 지휘를 통해, 또 후배 양성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감을 세상에 전하는 음악인이 될 것입니다. 그녀의 음악과 삶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과 도전을 선사할 것입니다.
오늘 백혜선 선생님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인생의 진정한 Maestro는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삶이라는 악기를 가장 아름답게 조율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