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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즈베리 부흥 5만5천 명 성령 체험 요르단 선교사 간증

요약

5만5천 명 성령 체험! 애즈베리 부흥 간증: 요르단 선교사의 생생한 증언

애즈베리 부흥: 5만 5천 명이 경험한 성령의 역사

이번 글에서는 켄터키 주 애즈베리 대학교에서 일어난 놀라운 부흥의 현장에 직접 참여하셨던 김삼 교수님의 생생한 간증을 통해, 당시 상황을 상세히 정리하고 핵심 노하우를 깊이 있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김삼 교수님은 15년간 요르단에서 선교 활동을 하셨고, 현재 애즈베리 대학교에서 선교학을 가르치고 계시는 전문가이신데요, 교수님의 간증을 통해 단순히 현상적인 사건 나열을 넘어, 영적 부흥의 본질과 개인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실제적인 교훈들을 얻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5만 5천 명이 운집했던 애즈베리 부흥의 감동적인 순간 속으로 함께 떠나볼까요?

1. 에즈베리 부흥의 시작과 전개 과정

애즈베리 부흥은 2023년 2월 8일, 애즈베리 대학교의 정기 예배 중 예상치 못한 성령의 임재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진행되던 예배였지만, 예배 후 일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남아 기도와 찬양을 이어갔는데요, 이 작은 불씨는 걷잡을 수 없이 타올라, 밤낮으로 끊이지 않는 기도와 찬양, 회개와 간증의 역사로 이어졌습니다. 김삼 교수님에 따르면, 처음에는 19명 정도의 학생들이 남아 시작했던 작은 모임이, 수시간 후에는 수많은 학생들과 교직원, 지역 주민들까지 자발적으로 참여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규모가 커졌다고 합니다.

놀라운 점은, 이 부흥이 어떤 인위적인 계획이나 프로그램 없이 순전히 자발적으로,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진행되었다는 것입니다. 김 교수님은 "저희는 사실 어떤 프로그램은 없었어요. 순서도 없고 프로그램도 없고 다만 찬양하고, 그리고 이제 말씀들 또 감동받은 사람들 말씀 나누고 그러다가 점점 인원들이 모여 오니까 이제 저녁에는 예배 형태로 되고 그랬지만 정말 자연스러운 성령님의 임재하시는 어떤 일이 일어나나 그 날것 그대로 볼 수 있었어요." 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는데요, 이는 인간의 계획과 의도를 넘어선 순수한 성령의 역사였음을 시사합니다.

부흥의 소식은 빠르게 퍼져나가, 애즈베리 대학교 채플에는 1,800명 수용 인원을 훌쩍 뛰어넘는 인파가 몰려들었습니다. 김 교수님은 "한꺼번에 온 건 아니죠. 성전 수용 인원이 1,800명인데, 계속해서 이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거죠." 라고 덧붙였는데요, 놀랍게도 부흥은 2주 동안 지속되었으며, 5만 5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현장을 방문하여 성령의 임재를 경험했다고 합니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보기 드문 대규모 영적 각성 운동이며, 전 세계 교회에 큰 영감을 주는 사건으로 평가됩니다.

2. 김삼 교수의 에즈베리 부흥 경험 상세 증언

김삼 교수님은 부흥의 첫날부터 현장에 있었으며, 둘째 날에는 무려 11시간이나 채플에 머물면서 부흥의 생생한 순간들을 직접 체험했습니다. 처음에는 "얘네들이 무슨 일이 있는데 이렇게 시끄러워" 라는 호기심으로 채플에 올라갔다는 김 교수님은, "정말 팔짱 끼고 얘네들 도대체 뭐 하는 거야 이렇게 구경 갔다 가네 그 자리에서 여섯 시간을 입게 됐어요. 그 하나님의 임재하심에 압도당해서..." 라고 당시 느꼈던 강렬한 성령의 임재를 고백했습니다.

김 교수님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단순히 구경하러 왔다가, 예상치 못한 성령의 역사에 압도되어 오랜 시간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함께 기도하고 찬양하는 경험을 했다는 것은, 애즈베리 부흥이 인간의 의지나 감정을 넘어선 초자연적인 현상이었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김 교수님은 "정말 성령님 임재하실 때 어떻게 역사하시는 그대로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라며, 인위적인 프로그램이나 통제 없이 성령께서 자유롭게 역사하시는 모습가감 없이 목격할 수 있었던 특별한 경험이었음을 강조했습니다.

부흥 현장에서는 다양한 간증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회개 기도와 치유의 역사는 물론, 자살 충동, 우울증, 중독 등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겪던 학생들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함께 기도하며 놀라운 회복을 경험했다는 소식은 부흥의 깊이와 진정성더욱 실감하게 합니다. 심지어 이혼을 고려하던 졸업생 커플이 부흥 집회에서 회개하고 가정을 회복하는 기적까지 일어났다고 하니, 애즈베리 부흥이 단순한 일시적인 감정 고조가 아닌, 삶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능력 있는 역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김 교수님은 특히 부흥의 시작점에 있었던 한 학생의 간증을 소개하며 부흥의 불씨가 어떻게 점화되었는지 설명했습니다. 그 학생은 끔찍한 사고로 부모님과 하나뿐인 여동생을 잃은 깊은 슬픔 가운데 있었는데요, 자신의 고통을 사람들 앞에서 나누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과정에서 부흥의 물꼬가 터졌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학생은 자살 충동으로 벼랑 끝까지 갔었던 위험한 경험을 고백하며,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함께 기도하는 가운데 치유와 회복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애즈베리 부흥은 개인의 깊은 상처와 아픔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하나님께 나아갈 때 놀라운 치유와 회복이 일어나는 현장이었음을 보여줍니다.

3. 개인적 신앙 여정: 차범근 감독과의 만남과 요르단 선교

김삼 교수님은 에즈베리 부흥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다시 한번 확실하게 경험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개인적인 신앙 여정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놀랍게도 김 교수님은 불교 집안에서 성장했으며, 초등학생 시절에는 교회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면서도 쉽게 다가가지 못했던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 축구 국가대표 감독이었던 차범근 감독과의 예상치 못한 인연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김 교수님은 "차범근 선수가 큰 다리에 부상이 있어서 독일 분데스리가 가기 바로 전이었는데 그 부상 때문에 못 갈 뻔 하다가 목사님한테 안수기도 받고 나왔다. 그게 신문에 나왔었어요. 그걸 보고 제가 아 이것이 기회다..." 라며, 차범근 감독의 안수기도 간증 기사를 통해 교회에 대한 호기심을 해소할 기회를 얻었다고 회상했습니다. 어머니께 차범근 감독이 교회에 다닌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교회에 가보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어머니의 허락 하에 교회를 처음 방문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김 교수님의 신앙 여정은 유명인의 간증이라는 의외의 통로를 통해 시작되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교회에 처음 발을 들였지만, 곧바로 신앙생활에 정착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김 교수님은 "아, 나 다시 와야 되는구나. 그러니까가 중책을 가치는 거. 그래서 다시 처음에 할 때부터 내가 다시 와서 다시이 책이 뭔지 배워야..." 라며, 성경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없이 피상적인 설교만 접했을 때 실망감을 느꼈던 솔직한 경험을 털어놓았습니다. 하지만 "누가 진짜냐? 그러니까 크리스천들은 하나님 그니까 예수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우리 불교인들은 부처님을 믿는다고 하고. 그래서 나는 정말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신을 따라가고 싶진 않고..." 라며, 진리에 대한 갈망과 스스로 진실을 탐구하려는 열정그를 꾸준히 교회로 이끌었다고 합니다. 결국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 목사님의 전도 폭발 프로그램을 통해 복음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김 교수님은 요르단으로 건너가 15년간 선교사로 헌신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중동 지역, 특히 요르단은 기독교 선교가 쉽지 않은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김 교수님이 요르단을 선교지로 선택하게 된 계기남편과의 공동의 헌신 때문이었습니다. "저희 남편과 제가 그 선교에 대한 헌신은 있었어요. 처음에. 처음에 만날 때부터 당신 선교에 헌신 했냐? 그거를 서로 확인하고 데이트를 시작했을 정도로..." 라며, 결혼 전부터 선교에 대한 확고한 소명을 가지고 있었음을 밝혔습니다. 대학원에서 지역학을 공부하면서 요르단이라는 나라에 대한 특별한 마음을 품게 되었고, 중보기도 사역을 통해 중동 지역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비전을 갖게 되어 요르단을 선교지로 최종 결정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남편이 의사였던 점도 요르단 선교를 위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여겼습니다. "마침 처음 간 성교 단체에서 요르단에서 내과 의사를 구한다. 저희 남편이 내과 의사였고, 요르단에 가게 된 거죠." 라는 고백처럼, 모든 상황들이 요르단 선교를 향한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믿었습니다.

4. 요르단 선교의 어려움과 하나님의 역사

요르단 선교는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었습니다. 문화적 차이, 언어 장벽, 척박한 환경, 그리고 무엇보다 무슬림 문화권에서의 선교라는 근본적인 어려움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김 교수님은 "저희가 그렇게 선교의 헌신을 확인하고 데이트를 했으나, 결혼하고 난 다음에 이제 저희 남편이 전공이 생활과 그런 생활을 하면서 이제 선교를 현실적으로 가는 거에 대한 이제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치게 됐죠." 라며, 결혼 후 현실적인 문제들에 직면하면서 선교의 길을 포기할 뻔했던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특히 파키스탄 비전 트립 중 겪었던 건강 문제선교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감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남편이 병원에서 겪었던 어려운 경험을 통해 자신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하셨고, 결국 선교지로 나아가는 결단을 내리게 하셨습니다. "저희 남편이 그 병원 선교사가 되는 것에 가장 큰 남편에 대한 두려움은 가장이니까 내가 만약에 선교사가 되면 우리 가족을 어떻게 먹여 살리는 생 그가 있었어요. 어 마침 그때 병원에서 좀 어려운 일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어려운 일들을 경험하면서 아 의사로서 내가 돈을 벌고 살 수 있다는 것이 하나님으로만 가능한 거지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었구나라는 걸 깨달으면서 그래 우리 선교 가자라고 이제 결단을 할 수 있게 된 거였죠." 라는 고백은 인간적인 두려움과 염려를 극복하고 하나님을 의지할 때 가능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요르단에서의 사역은 주로 병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남편은 의료 선교사로, 김 교수님은 약사로 섬기며 병원 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제자 양육하는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특히 요르단은 석유가 나지 않는 가난한 나라이기 때문에 서구 열방에 대해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분위기였고, 미국과의 관계도 다른 중동 국가에 비해 우호적이어서 선교 활동에 어느 정도 유리한 측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슬림 문화권에서의 선교는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었습니다.

김 교수님은 "저 같은 경우도 처음에는 제가 복음을 전하면, 아 다 믿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어 처음에 무서워서 복음도 못 전화했고, 그리고 알아보도 안 되고. 그래서 사실 첫 5년 동안은 한 명도 단 한 명도 그 개종한 사람을 보지 못했어요." 라며, 초반 5년간 단 한 명의 개종자도 보지 못했던 좌절스러운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선교에 대한 열정과 기대로 시작했지만,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스스로 '선교는 그냥 나와서 사는 거지' 라는 회의적인 생각까지 했던 시기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사역을 이어가던 6년째 되는 해부터 놀라운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6년째 되는 해부터, 사람들이 저에게 나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를 가르쳐 달라고. 정말 제 속으로 너네들이 그동안 어디 있다가 이렇게 갑자기 나오니? 너네들 그동안 어디 있었니? 하는 그런 질문을 할 정도로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라는 간증은 인내하며 하나님을 신뢰할 때 예상치 못한 순간에 역사가 나타난다진리확인시켜줍니다. 특히 본인이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무슬림 여성들이 밤에 몰래 찾아와 예수님에 대해 가르쳐달라고 요청하는 등 예상 밖의 통로를 통해 복음의 역사가 일어났다는 점선교는 인간의 계획과 노력을 넘어선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임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김 교수님은 "정말 선교는 하나님이 하시는 거구나. 내 힘으로 내 노력으로 하는 거, 내가 타게팅을 했다고 그 사람이 나오는게 아니라 정말 하나님이 영혼을 데려 오시는구나 거를 배우게 됐죠." 라며, 선교의 주체는 오직 하나님이시며, 선교사는 단지 하나님의 도구일 뿐임을 깨달았다고 고백했습니다.

5. 용서, 난민, 자녀 양육: 선교사의 삶 속 십자가의 의미

김삼 교수님은 요르단 선교를 통해 진정으로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난민', '용서', '자녀' 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선교사의 삶 속에서 경험했던 십자가의 의미구체적으로 설명해주셨는데요, 이는 단순히 이론적인 가르침이 아닌 삶 속에서 체득한 생생한 경험이기에 더욱 큰 울림을 줍니다.

먼저 '난민' 사역을 통해 인간적인 연민과 동정을 넘어선 하나님의 마음으로 고난 받는 이들을 대하는 법을 배웠다고 합니다. 요르단은 시리아 국경과 인접해 있어 많은 난민들이 유입되는 지역이었는데요, 김 교수님은 본격적으로 난민 사역에 뛰어들게 되면서 인간적인 한계와 자괴감느끼게 되었다고 합니다. "일단은 제가 이들의 아픔을 도와줄 수가 없잖아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뭐 기저기를 나눠 주는 뭐 그런 음식 좀 갖다 주는 그런 거죠. 그러기 때문에, 어 나중에는 저에 대한 자괴감 뭐 그런 것도 들고..." 라는 고백은 난민들의 고통 앞에서 무력감을 느꼈던 솔직한 심정드러냅니다. 더욱이 일부 난민들이 선교사들의 도움을 악용하는 사례들을 목격하면서 인간적인 실망감더욱 커져갔습니다. "사기를 치는 거죠. 뭐 저 같은 경우에는 오늘 기저기를 나눠줬는데 내일 시장을 가는데 그 집 애가 나와서 제가 준 기저기를 팔고 있거나... 그런 일들을 자꾸 겪게 되니까, 뭐 저는 그런 거는 겪어 보지 못했지만 아무래도 좀 회의가 되고 그러죠." 라는 경험은 선행을 베풀어도 돌아오는 것이 배신감일 때 겪게 되는 어려움생생하게 보여줍니다.

하지만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김 교수님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어느 날 악취가 심한 난민 가정에서 만난 해맑은 아이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얄팍한 영성과 위선적인 사역 태도돌아보게 된 것입니다. "정말 해맑은 네 다섯 살짜리 되는 여자아이. 그날따라 그 집이 너무 냄새가 심했어요. 근데 그 아이가 막 웃으면서 저의 품에 안기는데, 정말 제가 최선을 다해서 안기는 않았으나 거리를 유지하려는 제 모습을 보면서 아 이건 아니다 이렇게 사역하는 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라는 경험은 인간적인 거부감과 편견극복하지 못하는 자신의 민낯직면하게 했습니다.

이후 하나님께 자신의 한계를 고백하며 간절히 기도했을 때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을 통해 새로운 사역의 방향제시받았습니다. "그날 주님이 저에게 주시는 건 그 능력은 바로 그 사람들을 바라보는 그 하나님의 애통, 그 하나님의 마음을 받는 것이 바로 능력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셨어요." 라는 깨달음은 단순히 물질적인 도움이나 인간적인 연민이 아닌, 하나님의 시선으로 고난 받는 이들을 바라보고 그들의 아픔에 진정으로 공감하는 것진정한 사역의 본질임을 일깨워주었습니다. 결국 자신의 능력과 의지가 아닌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를 때 진정한 사역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두 번째 키워드 '용서' 를 통해 개인적인 상처와 갈등을 극복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경험나누어주셨습니다. 국제 선교팀 리더로 섬기면서 다양한 문화권 출신의 팀원들과 갈등을 겪었고, 특히 자신을 리더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일부 팀원들의 태도 때문에 마음 고생많이 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리더가 평상시에는 말할 것이 별로 없지만, 이제 파트너들이 뭔가 문제를 일으켰다 그나 그럴 때는 이제 말을 하게 되는 거잖아요. 근데 사실 제가 첫 저희 지역의 첫 아시아 여성 그리고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리더였고, 그러니까 이제 그 세계가 자신들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분들이 저를 리더로 받아들이는 것도 좀 어려워 하셨고..." 라는 상황은 문화적 배경과 언어 장벽, 그리고 여성 리더십에 대한 편견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했던 어려움짐작하게 합니다.

인간적으로는 분노와 원망끓어올랐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용서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억지로 용서하려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용서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정말 상 용서는 했어요 혼자서. 혼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네 다 용서는 했지만, 그래도 뭐 별로 그분들을 만나고 싶지는 않죠. 만나거나 교재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러나 어쨌든 우리 크리스탄은 용서해야 되니까 용서를 하기는 했는데..." 라는 고백은 억지로 하는 용서는 진정한 용서가 아니며, 오히려 마음속에 더 큰 앙금남길 수 있음보여줍니다.

그러던 중 중동 지역 선교사 리트릿에 참석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하나님은 김 교수님에게 진정한 용서의 의미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가장 힘들게 했던 팀원이 리트릿의 메인 강사참석했고, 용서와 화해라는 주제설교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 큰 분노느꼈다고 합니다. "설교를 하실 때마다 아 진짜 당신이나 그 말을 실천하고 살라고 막 그 생각이, 네 맞습니다. 그 생각이 막 저절로 나와서..." 라는 솔직한 심정은 인간적인 감정신앙적인 의무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그대로 보여줍니다.

하지만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은 김 교수님에게 "네가 내 이름으로 그들을 용서했지만 나를 위해서 용서하지 않았다" 라는 도전적인 질문던지셨습니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신이 용서한 이유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너는 너를 위해서 용서했다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 생각해 보니까 저는 항상 그래 리더인 내가 참아야지, 아 먼저 믿음 내가 참아야지 이런으로 항상 내가 사실은 그 주요 원인이었고, 네 그래서 사실은 그 생각을 하게 된 게..." 라는 고백은 자신의 교만과 자기 의드러내는 솔직한 자기 성찰입니다. 진정한 용서는 자신이 아닌 하나님을 위한 것이며,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목표로 할 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자신의 상처를 붙잡는 대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기로 결단하고, 주님을 위해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붙잡고 싶습니다라고 고백을 하면서, 정말 정말 주님의 주님을 위해서 용서할 수 있게 되었죠." 라는 고백은 진정한 용서는 인간의 힘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진리증명합니다. 용서 이후 놀랍게도 팀원들과의 관계가 회복되었고, 함께 식사하며 교제하는 기적경험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자녀 양육' 을 통해 자녀를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고 신뢰하는 법배웠다고 합니다. 선교지에서 자녀를 홈스쿨링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주변의 비판 때문에 큰 어려움겪었다고 합니다. "당시에 홈스쿨링을 시키는 게 꼭 아이들을 뭐랄까 아이들의 미래와 장례를 그냥 방치하는 것 같은 은제 홈스쿨에 대한 이해가 없으니까. 그리고 또 당시에 다른 선교사님들이 그 지역에 있던 다른 선교사님들이 어떻게 아이를 그 본인의 사역에 희생시킬 수 있냐고 직접적으로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었어요." 라는 상황은 당시 홈스쿨링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선교사의 자녀 양육에 대한 주변의 오해얼마나 컸는지보여줍니다.

홈스쿨링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에 하나님께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심정으로 눈물로 기도했지만, 마음 한켠에는 여전히 불안함남아있었습니다. "거의 뭐 저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재단에 바치는 수으로 완전히 뭐 눈물 콧물 뭐이 이삭을 받칩니다 뭐 완전 쇼를 했죠. 네 그러고 난 다음에 딱 내려봤는데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홈스쿨링 하는 거. 그 그래서 그걸 보면서 아 하나님이 정말 나를 보면서 얼마나 웃기 있을까 이렇게 아이들이 좋아하는데..." 라는 고백은 자신의 불신앙적인 모습스스로 자각하고 부끄러워하는 모습솔직하게 드러냅니다.

결국 하나님은 "내가 너의 하나님으로 너의 일평생 동안 부족한 적이 있었더냐?" 라는 질문을 통해 김 교수님의 불안함과 의심을 잠재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하면 내가 너의 아들 태현과 윤도현의 하나님임을 믿느냐라고 하시는데 제가 그 질문에 이제 엎드려질 수밖에 없었죠. 제 인생에서 한 단 한 번도 부족함이 없었던 그 하나님께서 나의 아이들의 하나님이셨고, 나의 하나님으로 내 자녀를 보살피시는게 아니라 내 아이의 하나님으로 그 아이를 보살펴 주시는 거구나라는 그 하나님의 그 질문에 하나님의 아이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 아이들의 하나님이십니다 고백을 하면서, 네 결단을 할 수가 있게 됐죠." 라는 고백은 자녀의 미래를 자신의 손아귀에 쥐고 있으려 했던 어리석음깨닫고, 자녀를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에 맡기는 믿음의 결단하게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후 자녀들은 홈스쿨링을 통해 건강하게 성장했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잘 자라났다고 합니다. 물론 자녀 양육 과정이 늘 순탄했던 것은 아니지만, 매 순간 하나님을 의지하며 자녀를 하나님의 뜻대로 양육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선교사 애들은 잘된다고 하는데 저희 아이들 좀 잘되게 해 주세요 하고 소리소리 지른 적도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근데 꼭 그렇게 잘되고 못되고만은 아닌 거 같아요. 근데 그냥 그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이 하나님 되어 가시는 과정을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라는 고백은 자녀의 성공 여부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자녀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주인 되시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숙한 믿음보여줍니다.

6. 애즈베리 부흥의 영향과 미래

애즈베리 부흥은 단순히 애즈베리 대학교라는 특정 장소에서 일어난 일회성 사건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부흥 이후 학교에는 눈에 띄는 긍정적인 변화들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학교는 일단은 저희 그 이후에 공개적으로는 어 다른 그런 것들이 일어나지 않았어도 알려지지 않았어도 작게 크게 저희 안에 그런 부흥의 사역들이 많이 있었고요, 네 그다음에는 많은 아이들이 학생들이 신하는 어 선교에 헌신하는 아이들이 참 많이 생겼어요." 라는 증언은 부흥의 불씨가 학교 공동체 전체로 확산되었고, 학생들의 신앙적인 헌신고취시키는 결정적인 역할했음을 시사합니다.

특히 선교 헌신자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는 점은 애즈베리 부흥이 미래 선교 운동에 미칠 긍정적인 영향예상하게 합니다. 김 교수님은 "특별히 제가 밝히는 이제 인터 스터디라는 프로그램을 저는 갈키 그 프로그램에 들어오는 학생들 모두가 거의 100% 해외 선교사로 헌신한 학생들이에요." 라며,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 대부분이 해외 선교사로 헌신하는 놀라운 변화목격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들은 애즈베리 부흥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세상의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하게 선교사의 길을 걸어갈 것으로 기대됩니다.

김 교수님은 2024년 5월, 학생들과 함께 요르단을 방문하여 중동 선교에 대한 비전을 심어주는 뜻깊은 시간가졌습니다. "저도 요번에 5월 달에 학생들과 함께 요르단에 갈 수가 있었어요. 그래서 또 아이들 다 중동을 사랑하는 마음 네 가질 수 있었죠." 라는 소식은 애즈베리 부흥의 긍정적인 영향력이 국제적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비록 방문 당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인해 요르단 공항이 폐쇄되는 예상치 못한 어려움도 있었지만, 오히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더욱 분명하게 경험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김 교수님은 향후 사역 방향에 대해 "하나님께서 저에게 어 한 3년 동안을 계속해서 다음 사역으로 이동하라는 말씀을 주셨어요. 그게 다음 세대를 살리고 다음 세대를 준비시켜서 다시 선교의 현장으로 돌려보내라는 말씀을 계속해서 주셨거든요." 라며, 다음 세대 양육과 훈련을 통해 선교의 미래를 준비하는 사역에 헌신할 계획임을 밝혔습니다. 애즈베리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사역요르단 방문을 통해 중동 선교의 비전을 확인한 것은 하나님의 세밀한 인도하심이었음을 고백했습니다. "결국에 여기에 이렇게 오게 되고 아이들을 훈련시키기 되고, 또 요번에 이제 요르단에 같이 아이들을 가면서 7년 만에 간 거였는데 정말 아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이라는 고백을 할 수밖에 없었죠." 라는 고백은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확신신뢰보여줍니다.

7. 한국 교회와 다음 세대를 위한 메시지

김삼 교수님의 간증은 단순히 미국 대학교에서 일어난 부흥 사건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 오늘날 한국 교회와 다음 세대에게 중요한 메시지전달합니다. 특히 교회 건물의 웅장함과 화려함에 집중하는 한국 교회의 현실지적하며, 본질적인 영적 부흥의 필요성강조했습니다. "도시 계획의 가장 큰 이슈는 이제 재건축 문제인데 날가 빠진 오래된 아파트와 을 새로 세우잖아요. 설레이고 깨끗해지고. 저는 교회와 말로 이제 재건축을 해야 될 것이 그때가 아닌가 싶어요. 우리가 너무나 못살던 시절에 열심히 십자가가 곳곳에 전국 방방 곳곳에 있 십자가가 언날 다 사라지면서 덥고 큰 교회로 몰리면서 큰 교회는 세워졌지만 복음이 사라지고 기도가 사라지고..." 라는 통렬한 비판한국 교회가 외형적인 성장치중하는 동안 본질적인 영적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는 현실정확하게 지적합니다. 높은 건물만 남은 교회가 아닌, 복음과 기도, 성령의 역사가 살아있는 교회로 재건축되어야 함강력하게 촉구합니다.

더욱이 한국 교회의 영적 침체뿐만 아니라 미국 교회의 쇠퇴사회 문제 심각성언급하며, 애즈베리 부흥과 같은 성령의 역사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임을 강조했습니다. "미국도 역시 교회가 쓰러지고 복음이 쓰러지자 그곳에 동성애를 비롯한 많은 종말론적인 현상들이 드러나고 있는데, 이제 다시 하나님께서 이 대학에서 있었던 그 학교에서 있었던 이런 부흥의 바람 성령의 임재가 대한미국 당에도 다시 찾아왔으면 좋겠어서 그런 부흥의 바람이 다시 잃어서 다시 교회를 다시 시 세워야 된다. 다시 기도하고 다시 올려야 된다. 그것은 교회 건물이 아니라 올바른 하나님의 성전을 올려야 된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라는 절박한 외침한국 교회와 미국 교회 모두 영적 위기직면해 있으며,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오직 성령의 역사만이 유일한 해답임을 강조합니다. 물질주의, 세속주의, 개인주의현대 사회의 challenge 들 앞에서 교회가 본질적인 복음의 능력회복하고, 성령의 인도하심따라 나아갈 때 새로운 부흥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김 교수님은 애즈베리 부흥이 저절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부흥을 갈망하며 기도했던 사람들의 간절함결실을 맺은 것임을 강조했습니다. "부흥은 그냥 온 거는 절대 아니고요. 이미 그전부터 부흥이 우리 학교를 통해서 1907년부터 있었기 때문에 부흥을 한번 경험한 사람들이 정말 부흥 다시 찾아와 주시기를 너무나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기도들이 정말 많이 쌓여 있었죠." 라는 설명은 부흥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이지만, 동시에 부흥을 갈망하는 간절한 기도통해 준비된다는 사실일깨워줍니다. 한국 교회 역시 과거 부흥의 영광안주할 것이 아니라, 다시 한번 부흥을 갈망하며 회개하고 기도할 때 애즈베리 부흥과 같은 놀라운 성령의 역사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김삼 교수님의 간증은 애즈베리 부흥의 생생한 현장을 경험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개인의 신앙 여정, 선교 현장의 어려움과 기쁨, 그리고 한국 교회와 다음 세대를 위한 귀한 메시지전달합니다. 애즈베리 부흥을 통해 확인된 성령의 역사기억하며, 우리 또한 끊임없이 부흥을 갈망하고 기도하며 나아갈 때, 한국 교회와 세상변화시키는 놀라운 역사이루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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