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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퍼 김연수 사모 간증: 수녀에서 목회자 아내로, 하나님 인생 편집

요약

인생 편집,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밥퍼 사모 김연수의 감동 간증

고장난 인생 편집기를 하나님이 고치셨습니다: 다일공동체 김연수 사모 간증 상세 정리

새롭게하소서 주영훈 님: 안녕하세요. 새롭게하소서 주영훈입니다.

성재 님: 안녕하세요. 성재입니다.

박 님: 안녕하세요. 박입니다.

주영훈 님: 제가 자주 하는 말이 있는데요, 훌륭하신 목사님 뒤에는 더 훌륭한 사모님이 계시다! 오늘 바로 그 사모님을 모셨습니다.

성재 님: 네, 오늘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는 밥퍼 최일도 목사님의 사모님이신데요, 수녀의 결혼,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너무 어렵고 힘들어서 매번 하나님께 투정을 부르셨다고 합니다.

박 님: 네, 오늘 아마 우리 사모님의 솔직한 간증에 많이들 놀라실 것 같습니다. 다일 공동체 공동 설립자이신 김연수 사모님 모셔보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김연수 사모: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주영훈 님: 어서 오세요. 아, 사모님 오늘 처음 뵀는데 영부인 스타일이신데요, 너무 우아하십니다. 감사합니다.

김연수 사모: 네, 감사합니다.

주영훈 님: 아, 목사님 뭐 정하실 건 아니죠?

성재 님: 아이, 추천하시면 해볼까 잠시 생각했는데, 아닌 거 같습니다. 네, 아닌 거 같습니다.

주영훈 님: 네. 아니 저희가 이제 사모님이라고 호칭을 하는데, 이제 목사님의 사모님이라고 부르는데, 이제 사모님이랑 그 호칭이 좀 불편하셨거나 봐요?

김연수 사모: 네, 저는 이제 그 사모님 이런 호칭이 목사님의 부인을 사모님이라고 부른다는 거를 제가 전혀 몰랐어요. 모르고 그냥 목사 부인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제가 어 그 어느 사모님을 만났는데, 네. 사모님도 모학 전공하셨고 이러는 거예요. 모학 사모님 다 있어요, 그랬더니 아 이대는 거야, 그래서 아 저는 그런 거 잘 모르고요, 그냥 네, 그냥 목회하시는 분을 같이 살면서 돕는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좀 불편했어요.

주영훈 님: 조금 어색하고.

김연수 사모: 수녀님이라고 계속, 네, 불림을 받다가 오늘 갑자기 모님이 됐으니까. 왜냐면 이제 수도자로 살았, 데, 카톨릭 배경이. 아아. 수녀를 살았는데, 어느 날 이제 제가 이제 그 개신교 신학생 하고 결혼하게 돼서 개신교로 온 거잖아요? 어, 보통 수도에서 나가서 어 개신교회 가는 경우 많지 않은데, 거기다가 목사 사모님 됐다니까 더 좀, 아, 좀 특별하잖아, 더 이렇게. 아, 그래 갖고 제가 그게 좀 불편했었어요, 사실은 많이 그 자체가. 런데 거기다가 무슨 사호 소명을 언제 받았냐, 뭐 이런 얘기 하니까 너무 낯설어서. 예, 그랬습니다.

주영훈 님: 예. 원래 최일두 목사님이 또 새롭게하소서 진행 하셨잖아요, 오래하네. 아, 또 시청자도 좋았다고 그 말씀하시고.

김연수 사모: 네, 저도 그 CBS 새롭게하소서에 지금 세 번째 출연한 거 같아요. 예. 레디오 방송 때 굉장히 오래전에 저 이예 걸쳐서 한번 했고, 어, 익숙한 프로그램이고 제가 사랑하는 프로그램입니다. 감사합니다.

주영훈 님: 감사합니다. 네, 네. 그 어린 시절 한번 돌이켜 보면 신앙심이 굉장히 좋으셨나 봐요? 그니까 어린 학창 시절에 천주교 이제 세례를 받고, 대학교 2학년 때 내 몸을 던지고 헌신, 하나님께 내 인생을 바친 거잖아요? 어떤 학생.

김연수 사모: 제가 어릴 때는 양촌 감류 교회라고 저희 충청남도 논산군 양촌면에 교회가 딱 하나 있었는데 감리교에 거기에 저 1학년 때 다윤 선생님이 그 전도사 사모님이 이명인 선생님이라고 그 사모님이 이제 말씀하셔서 이제 교회를 가봤어요. 그리고 성탄절 무렵이면 막 동네애들 오라고 막 그러잖아요, 사탕 준다고. 그니까 애들 따라서 갔는데, 그래서 이제 교회에 대해서는 좀, 좀 알게 됐죠, 그때. 그리고 중학교 때도 기독교 학교에서 찬송가를 조금 배웠고요. 그런데 고등학교 때 제가 천재교 세례를 받았어요. 왜냐면 고일 때 우리 국어 다임 선생님이 어 그 오 수녀 님이라고 그 오 장로도 수녀 님인데 그 수녀님이 이제 국어 선생님이 수녀 님이었고, 그래서 그 수녀님이 이제 그 국거 시간에 좋은 작품들도 소개해 주시고, 좋은 시도 소개해 주시고, 아주 제가 거를 되게 좋아하고 잘했는데, 네. 그래서 이제 그 수녀님의 수녀님들 삶을 관심을 갖게 됐고, 그래서 이제 세례를 받았어요, 먼저. 예. 이제 천주가 좋아지니까 세례를 먼저 받았는데, 세례 받고 나니까 너무너무 그 신앙생활이 즐거운 거예요. 세례 명도 받고 그러잖아요, 세례명 아니스 있어요, 그때 아니스. 동종 순교자인 그 아스라 이름으로 세례 바고, 그러니까 저기 아그네스는 말하고 같은 말이에요. 예. 그리고 아뉴스 어린 양, 하나님의 어린 양, 그 유스 같은 뜻이고요. 뉴스란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았는데, 그때 이제 큰오빠가 저희 학교 그곳 했거든요. 아, 오빠가 학교 선생네. 오빠가 국어 선생님이었어요. 나체가 많이 나네. 네, 예. 그런데 이제 오빠하고 11살 차이, 12살 차이 났는데, 그 오빠가 이제 국어 선생님 할 때 제 그 학교 갔고 오빠랑 세례 받고, 그다음에 신앙생활이 너무 좋아서 제가 아주 심취했고, 어, 막 성당만 가면 너무 행복한 거예요. 오. 그래서 어떻게든 성당에 많이 가야 되고, 어떻게든 빨리 가야 되고, 그러니까 미사 시간 좀 길잖아요? 미사시간 길지만 저는 조금 더 안 길게 느껴는 거예요, 너무 좋아하니까. 예. 그래서 아주 잘 했고요. 그다음에 뭐 거의 뭐 제가 나주 좋아하니까 어 조금 있다가 세례 받은지 한 달 만에 제 교리 시험 봤는데, 우리 학기 전체 교리 시험에서 이등 했잖아요? 그래서 제 깜짝 놀랐어요. 그런데 아마도 제가 생각해 보니까 교리 배울 때 제가 너무 열심히 들었던 거 같아요. 좋으니까 또 너무, 네, 좋아하니까. 그리고 이제 그걸 그렇게 열심히 하고 성가대에 들어가 성가도 하고, 그러면서 아 평생 내가 이렇게 살으면 더욱 좋지 않을까? 음.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이러면서 평생 살면 더 좋겠네, 그런 생각하고 있는데, 그때가 이제 고이아 보이니까 이제 그때는 이제 인생에 대해서 생각할 나이잖아요? 그래서 제가 계속 생각하는 거예요. 예. 인생이 참 짧은데, 한 번 사는데. 예. 제가 조속 예 고기 때 그런 생각했으니까. 예. 딱 한 번밖에 못 사는 인생, 예, 정말 다시 돌아올 순 없고. 그러니까이 인생이 정말 귀하구나, 같이 있게 살아야 되겠다. 네. 그러니까 멋진 남자와 행복하게 살자, 이런 생각하실 거 아니. 그런 생각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생각 안 들어요. 그런 생각 안 하고요, 어떻게 하면이 인생을 가장 보람 있고 보람 있게, 음,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 보니까 결혼해서 사는 삶이 운동장에 촛불, 대낮에 운동장에 촛불 켜놓은 거 같아요. 그렇게 느껴져요. 어. 별 빚도 안 나는 거예요. 딱 목숨은 한 자로 촛불인민재판에 알지도 못하는 거예요, 촛불이 있는지 없는지. 그렇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되는 거예요. 그러면 정말 인생의 촛불을 밝게 비 비추면 살 수 있는 삶은 뭘까 생각하니까 스녀한테 면 되겠다, 이 생각이든 거예요. 왜냐면 수님들 보니까 이런 생각을 학생 때 이렇게 하셨다 자체가 고의 때 한 거예요. 아니까 수녀님들 보니까 막 부러워요. 네, 부러웠어요. 너무 아름답고 거룩해 보이고 좋았어요. 음. 어, 그래서 이제 제가 상담수 님을 찾아갔죠. 그래가 수현님 제가요, 제가 제가 잘 자격이 될지 모르지만 제가 수녀님이 되는 거 관심 있어요, 그러니까 1년 동안 잘 보셨던고 3때 봤다가 저 고삼 할 때네 수녀 대도 좋겠다 싶으면 불려주세요, 제가 이렇게 부탁을 했어요. 아, 수녀님들도 이렇게 보고 하시는군요. 네,이 권장하기도 하고. 야, 너 딱 보니까 안 되겠다, 뭐 이렇게도 하시고 그렇게는 안 하는데, 제가 자진해서 자진해서 수장님 찾아가서. 아, 그러니까 스녀 되고 싶은 마음 있으니까네 지켜보시고 될만하다 싶으면 불러 주세요, 그랬는데 그 말이 삽시간에 수원에 쫙 퍼진 거예요. 어요. 학교 수녀님들이 여러 분 계셨는데. 예. 그러니까 스님들이 저를 특별히 눈 여겨 보는 거예요. 저 학생 이렇게 보. 그죠. 그런 학생들이 없었을 거 아니에요. 아, 몇 명 있어요, 더더 있어요. 그럼요. 제가 수녀원 들어갈 때 그때네 명 들어갔 때 우리 우리 판에서 그래요. 우리 학교 수녀원 들어가 유행했었고 막 우리 선배들도 있고 후배들도 있고 막 있어요. 그래 논산 센 볼려고 해요. 수녀님들이 운영한 학교 폴 학교. 네, 네. 세인트폴 세인트 폴인요 세인트 파울. 네, 네. 음 성바오로. 네네 성. 예. 그래서 그래서 센 톨릭 미션 스쿨이 일반학교는 아 그렇지 않은데. 그래서 이제 제가 그러니까 갑자기 수도자 지망생으로 수녀님들이 다 알게 된 거예요, 저를 관심 있게 보셨겠죠. 예. 그래서 이제 저도 열심히 뭐 물론 살았고 제가 수도자 될 만한 소양을 길러야 되겠다 싶어서 그때부터는 유행가 이런 거 일절 안 부르고. 네. 그때부터 수녀 생활이 시작된 거 같은데 그 그죠 거 그아 거 같아 예비 수녀. 그래서 먹기 싫은 음식도 예 제가 그냥 먹었어요. 정말 식이라는게 어떤 거예요? 는 친구 집에 갔는데 국수 끓여 갖고 반찬 하나도 없는데. 예. 아무 반찬 없다고 국수 끓인 물에다 그냥 주는 거예요. 국수 끓인 물 버리고 먹잖아요? 그리고 씻어서 먹잖아요? 그 찝찌름한 물에다 주는데 그걸 그냥 먹었어요, 제가. 아 수도 수도자 달려 미정당 해야지 그 어 뭔가 인내하고 인내하고 뭐든지 이거 뭐도 이것도 수행해고. 아네네 내가 아 그래 그럴 정도로 이제 그쪽으로 제가 온 관심이 다 모아진 거예요. 네, 네, 네, 네. 그 수녀님이 1년 후에 오케이 했어요? 네, 1년 후에 수녀님이 아주 좋대요고 뭐 물론 물론 어 그 가라고. 그런데 제가 대학교에서 이제 시험 봐야 되잖아요? 그래서 제가 시험 보려고 그러니까 그러시는 거예요. 저는 이제 미대를 가려고 그랬거든요. 저 미대 가려고 이제 미 미술 보였는데 준비도 하고. 네. 미술만 그리다 보니까 제가 저기 항 그 학력고사 보면 떨어지더라고요. 등위가 쭉 떨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안 돼 갔다 싶어서 공부 과외도 하고 미술 과외도 하고 그랬는데, 이제 미대 가겠다 그랬더니 수녀님들이 아 너 좀 아까우니까 좋은 제 국가도 시험 봐라, 그리고 미대도 보고 그때 가서 결정하자, 이러신 거예요. 그래서 [음악] 음고 2는대 이제 넣어놓고 그 1차 시험보고 왔는데 우리 다임 선생님 잃는 거예요. 우리 우리 오빠한테 오빠 친구잖아요, 다임 선생님도. 그러니까 연수 제가 세상에 서울로 학교 가면 수녀 가려고 하더라, 알고 보니까 그 수녀 못 가게 막으라고 우리 엄마 아버지한테 알려지니까 엄마 아버지가 생 난리가 난 거예요. 너 절대로 못 간다, 그 너 이제 서울 시험보러 갈 수 없어. 그래 갖고 미대 시험은 못 받고 국문과 봤잖아요. 그러니까 국문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어요. 아 그래서 이제 미대를 접고 공가로 간 거죠. 아 예 상네 네네 물 드세요. 그때 가신 학교가 수도 여자사 보데 그게 옛날에 세종대 지금에 세종 대요. 네네. 아, 그래서 매일 학교 가서 이제 미대 가고 싶어 가지고음 그림 도고 갖다 놓고 정과 하겠다 그랬더니 거기도 미대가 있었거든요. 전가한다 그랬더니 친구들이 야 야 김현수 너 없으면 야 나 무슨 재미 학교도 아니니 뭐 이런 친구가 생긴 거예요. 그래가지고 이제 그 친구는 나중에 스임 됐는데. 예. 종교 쪽 그러니까 얼마나 재미가 없으셨으면 또 스님이 들어요 그분이 아니 그분이 외로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리 예측하지 못한 곳 너무 빵터졌다 그죠. 어 그 친구는 불교 학생이 있었고 저는 카톨릭 학생 있거든요. 제가 아는 그 얘기 중에 실제 실화에 수녀 님이셨다 비군이 되신 분이 계시거든요. 예. 그래서 제가 그걸 떠올랐는데 갑자 다 그 잘 모르고 친구였는데가 인재인데 인재들 했네 너 없으면 나 재미없어 학교 못다녀, 그러니까 이제 너 저기 미대 가지 말고 여기서 공부하자, 그래서 이제 거기서 년 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재미가 없는 거예요. 왜냐면 왜 재미가 없냐면 대학 그래서 큰 대자가 붙어서 엄청난 걸 배우는 줄 알았는데. 네. 개론 개론 예. 그렇죠 이론이 많죠 예 뭐 그런 거잖아요? 그렇죠 그렇죠. 그래서 책을 딱 보니까 아 한 권의 일주일 도서관에서 일주일이면 한 권 끝나, 그러면 한 학교 다섯 가지 과목 하면 오주은 끝나면 두 달 안에 끝날 수 있는 거를 내가 1학기 내내 돈 내고 배워 나 혼자 배우지,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리고 그 시간을 내가 수도원 갈 시간을 낭비하면 너무 아깝다, 그러니까 제가 딱 자퇴서를 내고 이제 교수님한테 상담을 했어요. 저기 박목월 선생님 아드님 박동규 교수님 있죠. 예. 그 교수님이 그때 저희 현대 소설론 가르쳤는데, 이제 선생님 제가 제가 수동 가기로 했어요, 그랬더니 야 너 미쳤니 왜 그러니, 그분은 개신교신자 더 나중에 몰랐 그랬는데, 이제 미천이 왜 그러니, 그래서 아니 전 너무 좋아서 가는 거야, 그랬더니 너 종교 중독이나, 그분이 그렇게 말씀하셨. 그래서 제가 선생님 제가 어떻게 할지 의논 드리러 온 건 아니고요, 간다고 인사드리러 온 거예요, 그러니까 그냥 잘 가라 그러세요, 그랬더니 어떡하니 얘 막 이러면서 어떡하니 어떡하니 막 이러다가 그 교수님 얼마나 그랬겠어요 본인은 개신교인데 제자 한 명은 수녀 한 명은 절로 갔서, 그러니까는 에 제가 간 뒤에 6개월 후에 갔어요. 어참 아 진짜 저희가 어쨌든 뭐 모든 분들이 시겠지만 제일 궁금한게 그렇게 수녀가 되셨는데 최일도 목사님이랑 어떻게 만나신 제 어떻게 만나이 너무 제가 장난칠 때는 그렇게 말합니다 제가 덕을 다 꿨는데 아 10년다고 났더니 변덕을 다 꿨나 봐, 덕 변덕 덕 이잖아요, 그건 장난이고요 장난 사아 이렇게 하는 말이고네. 어 이제 수녀원에 가서 이제 수련 다 마치고 종신 서원하고 제가 선생님 됐잖아요, 77년도에 개성 여중에 부임했고, 어 선생님으로 부임하고 3년 이제 담임 선생님 하고나니까 좀 쉬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올해는 다니면 안 하겠습니다, 그랬더니 그러면 종교 주임을 해라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종교부 주임을 제가 하게 됐는데 그때 이제 어 종교부 주임을 하라니까 성경을 좀 공부해 되 어서. 예. 이제 제가 본원에서 하는 배달 성소 교육에 가게 됐습니다. 네. 그 그때 최일통 목사님이 베델 미리 베델 성서 배우고 거기 수녀원에 뭘 하셨냐면 베델의 노래라는게 있는데 그거를 기타치면서 가르쳐 주고 계셨어요. 아 그런데 저를 저한테 그 수녀님이 저한테 최일도 목사님 소개시키는 거예요.이이 카 카톨릭 아니 개신교 학생인데 아 이분이 여기서 노래 가르킨다 인사하라고, 그래서 인사를 하고 왔는데 저는 그냥 돌아왔거든요. 그러니까 그분은 이렇게 앞에 앉아 있었고 우리는 서서 이야기했고, 소파에 앞에 앉아 있다가 저를 봤으니까. 그런데 순님 복 입고 계셨을네 물론이죠. 예. 그러니까 이제 저를 봤는데 그때 나중에 한 말인데 그때이 여자가 결혼해야 되겠다 결심했대 님을 보고 왜 그 너 너무 황당하지 신학생이 수녀를 보고 결혼하겠다 생각을 했다 짓 인줄 알았어 정말. 그 왜냐면 그런 상상도 안 되는 이야기잖아요? 그런데 나중에 그 얘기 들었어요, 나중에 그렇게 만난 거예요. 그래서 그런데 어느 날 이제 그때 성소 공부했는데 저도 매주 갔고 그 학생들 매주 왔는데, 예. 어느 날 장미꽃을 한다발 사 갖고 오는 거예요. 그래서 아 어 그 배달 성서 수녀님 주려고 선생님이니까 드리려고 갖고 왔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제가 수님께 안내해 드릴게요, 그랬더니 아니에요 수녀님 드리려고 갖고 왔어요, 이러는 거예요. 예. 그래서 왜 날려 예 그랬 그랬더니 아니 수녀님 들려고 왔대요, 그래서 아이 사람이 수녀님 드릴러 가져왔다가 민망하니까 저를 준다고 하나보다, 그러고 억지 춘향이로 받은 거예요, 제가. 받았는데, 그다음에 또 왔어요, 또 왔어요. 그래서 그러는 이제 학교로 찾아 왔더라고요. 그래서 왜 왔냐 그랬더니 그냥 새벽기도 끝나고 갑자기 생 수님 생각 나서 왔다는 거예요. 막 청년인데. 예. 그때는 머리 머리 수치 굉장히 많아 갖고 막 막 뛰어오는데 막 머리가 막 펄펄 날리고 막 이러면서 뛰어 오더라고요. 막 머리결을 휘날리면 또 아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막 뛰어왔어, 그래서 왔어요. 그래서 아 참 이상하다이 신학생 왜 이러지 이신학 저는 정말 몰랐어요. 그 어 왜냐면 제가 보니까 키도 크고 뭐 저는 다른 건 다 못 봤는데 아이 사람이 굉장히 굉 가능성이 있는 분이구나 뭔가 큰 가능성을 가진 분 거 같아. 음. 아 그런 느낌은 있었어요,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그러니까 포텐셜이 대단한 거 같다, 이분. 그런데 이제 누군간 모르겠지만 알아보면 사람을 알아보는 사람이 보면 이분이 그 가능성을 볼 텐데, 그 정도만 제가 생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사람이 계속 저를 찾아오는 거예요. 음. 그러면 어떻 사모님도 사람이니까네이 어떤 남성이 계속 끝없이 구회 하고 장미꽃도 가져오고 아님는이고 스 이렇게 컨 할 거 아니에요, 그죠? 예 예 그런데 이제 자꾸 자려고 누웠는데 이렇게 머리 휘날리는게 생각나고 이러면 이제 짜 하는지 그러잖아요?데 다행히 그러지 않았어. 네네 왜냐면 저는 정신 성원 했으니까 결혼 생활에 대해서는 완전히 접고 있었거든요, 제 는구나 아예 정 한고 찐수. 예. 그래서 이제 뭐 전혀 생각을 안 했어요. 그런데 이제 어 그 얼마 있다가 그 여름방학이 됐는데, 그때 이제 제가 종교부 주임이 아이들을 데리고 충북에 있는 어느 개천가 그 저걸 수련회를 갔어요. 수련해 가면 이제 뭐 레크레이션 지도도 필요하고 악 지도도 필요 그러잖아요? 그런데 그 생물 선생님이 같이 가죽시 했었어요. 예. 그래서 이제 딱 믿고 있는데 생물 선생님이 가기 직전에 자기 못 간다고 석사 논문 쓰는 중인데 이제 시간이 모잘라서 미안하다고 막 어떡해요, 그래서 갑자기 사람은 없고, 그러니까 아 기타 치고 노래하다 생각이 나니까 제가 그분한테 연락을 한 거죠, 혹시 혹시라도 우리 도와줄 수 있냐 난 착이 됐다, 그랬더니 괜찮다고 해주겠다고, 그래서 오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가서 이제 보고 이제 그 그 그때 건강이 안 좋았어요, 그분이 엄청 건강이 안 좋아서 얼굴이 노랗고 뭐 눈도 노랗고 젊은나이네네 예. 그래서 너무 건강이 안 좋서 왜 그러냐 그랬더니 자기가 모르겠는데 이렇게 황달이 된다 이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어 이거 큰일났다, 우리 큰오빠가 32살에 돌아가셨거든요. 그 국어 선생님 하던 오빠가. 예. 그 저기 뭐였냐면 오빠가 그 고혈압이 32살에 가셨어 제고 아 대학교 2학년 마치고 어 방학때 갔는데요 그때 돌아가셨어요 그래 더 남다른 마음이 있었겠네요. 그 그러니까 막 안타까운 거예요, 젊은 사람이 아프다면 내 놀리는 거예요. 그래서 남열 같지 않아서 그럼 어떻해 치료받고 휴양 요양도 하고 그러라고 우리 동네도 양청 감육 거가 슈락 했더니 교회 체계가 천주교처럼 서울에 있는 천주교나 시골에 있는 천주교나 똑같은 천주교가 아니 이라고 교단이 다르다고 이제 그 말을 했는데, 그 말을 못 알아들었어 교단이 다르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어요. 이제 그래서 그러면 어떡하냐 그 우리 동네 민박집 찾아 주겠다 그랬더니 자기 저 휴가갈 때 따라가서 이렇게 좀 찾아 달라고, 그래서 같이 가서 이제 도와주고 왔는데 갑자 이제 잘 왔어요 이제. 그리고 와서 스이 와서 생활 잘하고 있는데 교정 선생님이 부르는 거예요, 저한테 불러서 너 뭐 너 수업 갈 때 남자가 따라 갔다며 뭐 이렇게 된 거예요. 나 그런데 저는 그게 무슨 소리야 어 그랬더니 무슨 소리예요 그랬더니 아 뭐 어디 수녀님이 다른 스 수녀님이 얘기하는데 그렇게 뭐 그 사람에 와서 얘기 했대 이러는 거예요. 이분은 수녀 님한테 너무 고마웠다 나를 이렇게 도와줬다이 뜻으로 했는데 그분은 해석을 남자를 데리고 휴가를 갖다 이렇게 해석을 해 갖고 수녀원이 알려 준 거예요. 네. 그 문제가 된 거예요. 네. 문제가 됐는데이 철없는 신학생은 또 찾아오는 거예요. 네. 얼마나 제가 난치 하겠어요, 그렇죠 누은 얼굴로 계속 왔잖아네 얼굴도 안 좋은 얼굴이네. 때 목사님이 어렸죠, 그렇죠 자보다 20대 초반이었습니다 그때 목사님 24살인 아 목사님이 예 그 당시에 2 처음 처음에 만한면 세 살 때만네네 그때 아주 어릴 때네 그니까 뭐 막 동생의 동생님 건 데. 그런데 그러니까 어이 아지 그런데 제가 이렇게 매몰차게 말 못 하는 사람이거든 오지막 이건 못 해 가지고 오시면 안 돼요 오시면 안 돼요 오지 마세요, 그랬더니 또 온 거예요. 제가 오지 말라는데 청기 이제 저를 저 통해서는 들어올 수 없으니까 저 없을 때 수년 벨 누르고 거기서 일하던 언니가 있었거든요, 그 언니한테 저기 손님왔다 그러고 이제 응접실에 앉아 있는 거예요. 아 보시네 제가 그래서 갔더니 갑자기 일어나서 그 무슨 수선하 오해 아니야 수선나라 노래 있잖아요 그대는 차디찬 봉 의지의 날개로 어네네 끝없는 창공을 나르는 뭐 그 노래를 갑자기 불러요 걱정 서서 부르는 거예요. 어 그 프로포즈 속인가 그런가 보다 그러고 그러고 안녕히계세요 그러고가 버리는 거야. 아 노래 부르고 가요 예지 철로 없는 청년 아니라 좀 괴자 청년이 했는데네. 어 제가 너무 걱정이 되고 너무 힘들고 그래서 이제 교정 수녀님이 이제 또 부르셔서 좀 어떻게 됐냐 계속 찾아와요 어떡하죠 그랬더니 그럼 어떻게 할 수 없다 제가 떠나자 이래 가지고 제가 떠난 거예요. 아 거기서 떠났어요네 학교 떠났죠 그 수원으로 갔어요. 아 그 목사님이 자꾸 찾아오는 이유때문 수원까지 찾아왔어요. 그래서 할 수없이 이제 광천으로 갔어요 또 찾아왔어 지금 그래 스 스토킹 법에 의해서 시을 봤는데 아 그때는 그런게 없었어 없었죠 그 없었죠 그래서 논산으로 다시 강철에서 갔는데 거기 또 찾아왔어 아 그렇게 된 거야 그래서 너무 긴 거 아니야 이거 그서 마음이 언젠가 열리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열렸어요 이제 그러다가 그래서 논 사에는 왔을 때 저를 만난게 아니고요 전화를 걸었어요. 네. 전화 걸어 가지고 그때 기도 시간 직전인데 저녁 기도 시간에 수녀님들이 한 자리 다 모여서 기도 하거든요, 그 직전에 전화 왔어요. 와가지고 이제 어떤 여자분이 저한테 전화 있으니까 받았죠, 제가 저 아줌마한테 걸어 달라고 했대요. 예. 그래고 여자분이 전화해서 받았는데 전화 바꿔 갖고 전사님 또 전화를 하신 거야 그래 갖고 아나네 그래서 이제 거 이제 막 수생들 옆에 이제 앉아 있고 그러니까 제가 너무막 당황스럽지아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네 안녕하세요 어머니 잘 계시고요네 그러시라고 아네 알겠습니다 그 끝내려 그랬더니 순간적으로 이제 기지를 발휘해서 말 딴 데로 다 돌리고 끊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그러는 거 제가 다시 다시는 저의 목소리를 세상에서 못 들게 될 겁니다 제가 죽는다고 그렇지 이제 하다하다 드니까 그거이 뭐 이제 남에 있는 진도에 있는 가사 도라나 무슨 섬이 있는데 거기 가서 죽을 거라고 그냥 거기 가면 이제는 다시는 세상에서 못 볼 겁니다 그러는 거예요. 그리고 전을 딱 끊었어요 더 말할 수도 없었고 뭐 어떻게 이러시면 안 됩니다 뭐 이런 말 할 수도 없었고 수년 입장에서는 또 얼마나 마음이 찜찜하고 걱정돼 너무 힘들고 난 거 그래서야 대단하시다 기도를 어떻게 마쳤는지 모르겠고 이제 마치고 그때까지 몰랐어 저녁 밥 먹고 다 그러고 지나가 잘려고 딱 누웠는데 갑자기 그 말이 계속 생각나는 거예요. 다시는 세상에서는 목소리를 못 겠 될 거라는 그 말이 생각나니까 너무 겁나기 시작하 그때부터 누가 죽으면 어떻게 하 그 어 내가 사람을 살려도 부족한데 예수 믿고 잘 믿 더 잘 믿겠다고 수도자 돼 가지고 사람을 살리지 못하고 죽는 역 죽이는 역할을 해네 그거는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막 너무 마음이 힘들고 잠을 저대 잘 수가 없어서 거기 저 친한 선생님한테 막 얘기하자 그러고 얘기를 했어요. 얘기 했는데도 야 기도하자 기도 뭐 하는면 해 주시겠지 그래 제발 제발이 사람 만족도로 기도해 줘 막 막 그러고 난 죽는 건 누가 나 때문에 죽는 건 못 봐 그러니까 안쪽 들 기도해달라 부탁하고 이제 들어와서 제가 성당 가서 계속 기도했어요. 마에 기도 하면서 한참 기도하는데 그 생각이 나더라고요 아 이제 계속 기도하다가 하나님 그러면 만약이 사람이 죽을 수밖에 없다면 예 렇지만 살려 주세요 죽을 수밖에 없어서 살려 주세요 아니 살려주면 제가 나가서 그 사람하고 됐던 밥이 살아볼게요가 그렇게 기도 했어요 작전이 먹혔네. 네네 계속 기도를 그렇게 하고 최목사님 전략이 아 보통이 아이이 어린 마음을 아 생각을 해봐 이게 그냥 학생도 아니고 지금 수녀님에게 이렇게 옮겨 다니시는데 계속 나타나셔서 쫓아 다니시면서 어떻게 알아냈는지 몰라요. 아 어떻게 알아냈어 아 정말 말안하고 같 원래 그 유명한 성어가 한자 성어가 있잖아요 정신일도 하사 불이라고 네 마음 먹으면 다 합니다 아 아니 그런데 궁금한게 결혼이라는게 그냥 그런 마음으로 할 수 없잖아요 사람이 있어야 되잖아요 사랑은 하셨 죽다 그랬 들어게 어딨어요 그걸 쓱 넘기려고 그랬는데 어 예 아마 제가 돌이켜 보면 그랬던 거 같아요이 사람이 굉장히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아 좋은 사람이다 그리고 참 어 참 괜찮은 사람이네 이런 생각이 있었던 거 같아요. 그고 어 그리고 이제 또 어 이렇게 막 계속 따라다니고 열정적으로 그러니까 저도 마음이 어 저도 몰랐지만 그리고 제가 저 자신에게 저 자신이 알아채기도 힘들었겠지만 왜냐하면 제가 선택한 그 삶을 부정해야 이루어질 수 있는 삶이기 때문에 제가 저 자신이 알아차리는 것 조차가 버거웠을 것 같아요 친 마음속에 사랑이 있었으니까 제가 나왔다고 생각해요 그렇 네 목 대가 거요 요즘 그 없어진 속담이 뭐냐면요 번 찍고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용기 있는 자만이 미인을 얻는다 이거 없으셨어요 그러다 다 구속 되거든요 요즘에 요즘은 열번 찍다가 다 구속돼 진짜로 요즘은 그러다가 신고하면 바로 다 잡혀 가니까 그 속담이 없어졌대요. 아 그랬군요. 그래서 이제 결국은 결혼까지 이제 마음이 열려서 몇 년 도에 결혼하셨어요? 82년도에 결혼했거든요. 예 제가 수도에서 나와 가지고 지금 서울에서 떨어져 있는네 좀 저 아는 사람이 적은 시골로 가서 교사 생활을 하고 있었어요 제가 선생님이었다 아요요 그 국어 교사 생활 하면서 그런데 결혼한다고 하니까 친정 부모님들은 좋아하셨죠 그때 아버지는 돌아가셨고네 이미 돌아가셨고 이제 엄마한테 가서 말씀드렸어요 그랬더니 우리 엄마가 좋아할 줄 알았거든요 엄마가 좋아할 줄 알았어요 엄마가 제가 수 갈 때 굉장히 막 울고서 되게 좋아할 줄 알았는데 아 수년 나올 때 그랬어 수년 나올 때 엄마 제가 나와서 그냥 세상에서 살고 결혼도 하고 그러려고 그래요 그랬더니 엄마가 가만히 있더니 그 딱 숙이더니 어 한번 들어갔으면 그만지 뭘 나와 이러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엄마 마음으로 속상해 한 거예요, 한번 들어갔으면 그냥 뭘 나오냐고. 저도 사실 그 마음을 이해해요, 왜냐면 뭘 시작하면 성공을 해야 잖 끝까지. 음. 그 뭐 정신 서약을 한 것처럼 어머님도 마음에서 완전 이렇게 딱 그도 내 딸이 결혼해서니까 수녀로 성공하는 건 수도복 입고 죽는 거거든요. 예예 관속에 들어갈 때 수도복 입고 들어가는 거 그게 수녀의 성공이라고. 예. 그건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런데 예 그런데 제가 그걸 못 하고 일단은 꺾고 나왔잖아요? 그러니까 중도 포기하고 나왔으니까 엄마는 그렇게 싫으셨던 거 같아 예. 그리고 제가 수도생활 사는 동안에 엄마가 저의 생활을 좋아했던 거 같아요. 예. 그리고 저희 식구가 거의 다 천조기 신자가 되어 있었고. 예. 안 믿던 사람들이 다 거의 큰오빠 빼고는 세례받은 사람 없었는데 거의 다 천조기 신자 되어 있었고 작은 오빠만 교회 다니고 있었어요. 그런 상태에서 제가 이제 결혼을 하게 됐는데 예 결혼해 보니까 어떠셔요 이제 그렇게 이렇게 쫓아다니던 목사님과 결혼을 했는데 막 업고 다니시고 막 구름 위에 둥둥 네 좋 그 어떻해 편해요 어 아 뭐 어 결혼 이제 하니까 결혼은 이제 동화가 아니거든요 인생은 동화가 아니더라고요. 동화는 결혼으로 끝나면 해피 엔딩으로 막 끝나고 이제 그러잖아요 동화책에 보면 결혼했다 그러면 행복하게 인생이 이제 전개됐다 그런 얘기잖아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끝나죠네 예 그렇게 예 그런데 인생 생에서 결혼은 어 또 다른 어려움들도 있고 또 다양한 일들이 펼쳐지는 그 삶의 장이라고. 예. 그래서 결혼하고 또 제가 계속 교사 생활을 했어요. 교사 생활 했는데 결혼하자마자 아기가 초대가 생겼고. 예. 그 그리고 이제 그 걔를 놔서 기르면서 학교 생활을 이제 하는 거죠 교사 생활 하는 거죠. 그러니까 교사 생활도 해야지 아기도 길러야지 뭐 남편은 그때 신학교 학부 1학년 1학년거 다른 신학교 다니다가 예 간 두고 예 어딜 다니냐 장로교 신학대학교 1학년으로 다시 들어가다 들어 저한테 물으시더라고요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 어 빨리 목사되는 코스가 있고 좀 늦게 되는 코스도 있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 그래서 아 그 제가 그걸 어떻게 아 아냐 계신게 모르니까 당신 인생 다 살고 인생을 회고해 볼 때 뒤돌아볼 때 응 아 네 그때 선택이 가장 좋았어라고네 후 생각될 만한 선택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음 그랬더니 학교로 다시 들어가겠다 하더 그래서 장로교 신학대학 학부 1학년 2학기에 결혼한 거예요. 예 9월 4일 날 그래서 이제 결혼해 가지고 이제 신학생고 학교 선생님하고 사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밥만 먹으면 다 각자 학교로 가는 거예요 학교로 가는데 이제 이제 그 저희가 쉬는 집 살린 데가 처음에는 월계동 그때까진 괜찮았는데 아기가 나니까 제가 엄마가 가까운데 있어야 되잖아 그래서 의정부 이사갔어요. 예 그랬더니 뭐 그러니까 한번 나가면 친구집에서 자고 며칠씩 공부하고 오고 이제 저는 학교에서 애들 가르키고 집에와 있고 막 이러기도 하고 못 그래서 내가 구박은 하는데 박은 하는구나 막 그러면서 구박은 안 하는데은 네 그리고 뭐 제가 선생 생활 해 가지고 또 돈 벌어서 사는게 그렇게 쉽진 않잖아요. 예 러고 그리고 저희 결정적인 거는 저희 친정 어머니께서 1년은기를 봐 주셨는데 2년 될 때부터는 안 되겠다고 왜냐면 농사짓던 걸 다 놓고 오셨기 때문에 더는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러니까 네가 길을 찾아라 그러셨어요. 그래서 그래 갖고 시어머님이 오셔서 아기를 봐 주신 거예요. 네 네 그 어머님하고 살던 5년이 정말 너무 힘들었어요 시어머님이 처음에 결혼들을 때 좋아하셨을 거 아니에요 연이 들다고 아 이제 시어머님은 처음에는 저를 좋아하는 줄 알았어요. 왜냐면 제가 수련했을 때 편지도 보내주셨더라고요. 아 어머님이 어 네가 우리 아들아 결혼만 해 준다면 적극적으로 뭐 도와줄 거고 뭐 뭐 막 꼭 부탁한다 뭐 이런 말도 써서 편지를 보내셨어요 할머니 글씨로. 그래서 정말인 줄 알았죠 그래서 결혼할 때 아무 문제 없 데 나중에 봤니 반대했다는 거예요 잉 그런데 왜 편지를 써보셨어요 그랬더니 야 내가 편지 안 써 주면 죽겠다는데 어떡하냐 목사님이 또 어 자식 중골 못 보니까 편지 썼지 아 엄마 또 졸랐나 반대를 하셨던 거구나네 결혼을 반대했는데 왜 반대 하셨대요 수녀 출신에 나이도 다섯 살 많다 그러지 그러니까 이건 뭐 자 우리 어머니는 개신교 목사님 딸이나 아 우리 아들 목회 생활에 움이 될텐데 뭐 그렇잖아요 도움을 받을 텐데 그런데 세상에 뭐 우리 교회에서 갔더니 이단이라고 하던데 천족이 뭐 이러면서 막 어디서 그냥 여자도 아니고 수녀에가 게다가 나이가 다섯살 많아 절대로 안 돼 이렇게 된 거예요. 그래서 야 그런 분이 손편지 쓰셨으니 어떻 부들부들하게 쓰신 거 아니 네 그런데 뭐 그런데 편지는 그게 안 써 있으니까 뭐 요새처럼 저기 뭐야 페이스톡으로 예 뭐 직접 있으면 또 모르 제가 볼 때는 어머니 쓰시고 옆에서 최생 불러주러 거 예 불러준 거예요 상상 풍부하신 그래서 어떻게 같이 사실 때 어떻게 그 같이 사는 동안에 이제 매일 혼나고 사는 거죠 뭐 이래도 혼나고 저래도 혼나고 뭐 다 마음에 안 드신대요 그죠 어 그 그래가 이제 뭐 3일에 한번 걸 혼나 는 거예요 거의 어 그런데 또 저도 이제 한 두 번까지 참는데네 제가 세 번 참는 은사가 없더라고요. 예 한 세 번쯤 되면요 예 제가 막 속이 막 올라오다가 막 터지는 거야요 올 이제 그만 좀 하세요네 제가 뭘 잘못했는데 당히 힘드시죠. 예 왜냐면 제가 걸어서 아이들도 기르고 먹고 살고 남편 학교 가고 남편도 뭐 수입도 없고 뭐 그런데 누가 너보고 학교 가렸냐 막 이러고 그러면 뭘 먹고 살게 그러면 야 하나님이 다 마련하신 막 이러고 그러니까 되게 힘들었어 그래서 이제 그러니까 싸우니까 싸우려고 싸운게 아니에요 처음에는 뭐 제가 잘못했습니다 뭐 잘하겠습니다 뭐 이렇게 했는데 이게 해도 끝이 없는 거예요. 끝이 없어 5년을 그렇게 사른 거예요 아고 그러니까 뭐 더 뭐 길이 없는 거예요. 예 그래서 학교 와서 화장실에서 막 울다가 수업 시간 되면 가서 수업하고 또 집에 오면 이제 저녁밥 막 해 가지고 먹이고 애들 재우고 빨래 다 하고 나무 이제 빨래 삼 삼는 빨래가 있잖아요. 예예 옛날에 많이 삶 맞잖아요 옛날 세탁기가 없었어요 삶 진짜 손이 많이 갔어요 많이 갔어요 다 손으로 빨아 가지고 그 나라기도 있으니까 기적에도 막 깔고 이제 빨아 가지고 널고 삶을 빨리 이제 빗물에 담거 놓고 내일 갔다 와서 빨아야지 이제 이렇게 아침에 나가는데 이제 밥해 놓고 나가는데 예 딱 보더니 야 그러더 예네 그랬더니 너이 빨래 누구가 보고 하라고 놓고 가냐 이러는 거예요. 음. 아니요 이거 저녁이 빨라 그랬더니 막 또 뭐라고 뭐라고 하시는 거 최목사님 혹시 외 아들이에요? 네 아 혼자요 외아들 우리 시어머니는 홀어머니 오 이게 적거든요 한 남자를 사랑하는 두 여자의 싸움 그런 거죠 거 그런 거고 아 모르겠어요 먼저 모르겠는데 어쨌든 그 그래서 계속 참고 뭐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혹시 저 목사님하고 둘이 좀 이렇게 이렇게 뭐 애정 표현 한다든가 이런 것도 또 쉬라고 그러셨어요 어 어디 가이 그런 건 안 되고요 아 그건 아예 안 돼요 함께 학교 학 가려고 이게 대문을 함께 나갈 수가 없고요 왜 아이고 둘이 같이 나가면 안 돼 뭐 큰일나요 막 큰 소리 나고 난리나요 이제 그다음에 나갔다가 치 같이 두르는 것도 못 보는 거죠 한번 같이 돌았더니 막 집어던지고 막 아이구야 우 어릴 때보다 드라마 속에 이야기네. 그러니까 드라마가 그냥 있는게 아니에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가는 그렇게 사니까 그런 드라마가 나오는 거죠 그거 실제 경자네. 그러니까 그런 일이 자꾸 벌어지니까 뭐 이제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모르겠는 거예요 답이 없잖아요 그래서 이제 기도만 하는 거야 하나님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뭐를 제가 더 이상 잘하려고 노력할 수 있는 다른 길도 없어요 어떻게으면 좋겠어요 하나님 좀 제발 길 좀 찾게 해 달라고 하다하다 안 돼서 이제 제가 더 이상 못 살게 써서 죽고 싶어진 거예요 아이고야 그래서 야 한강물로 뛰어들어 천호대교 건너가다가 그냥 탁 떨어져 막 별 생각 다 하는 거예요. 다 했는데 그러면 너무 안 되겠어요 왜냐면 제가 수녀 출신이잖아요 게다가 전도사 부인이야 그런데 뭐 그런 건 알거 아니 신문기사에 뭐 어 어떤 여교사들 전직 추녀 있는데 전도사 결혼해서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투신 자살 이렇게 신문기사 나면 어떡해요 그러면 어떻게 내 제자들 보고로 어떡해 막 안 되고 그래서 엄마도 그때 살아 계시고 그러니까 이제 도저히 그런 일은 해도 안 되고 신자는 또 그러면 안 되잖아요 목숨이 예 아니니까 그러니까 제가 기도했어요 이제 하나님 나 좀 나 좀 어떻게 해 주세요 응 제발려 주면 어떻게 해 주세요 땅을 그냥 이렇게 딱 땅을 갈라 주세요 그래서 제가 쏙 들어가면 딱 닫아 주세요 소리 없이음 그러면 뭐 지진 나 사람 하나 죽었다 그러다고 누가 뭐 잘못했다 윤리적 책임이 없잖아요 네네 제가 자 사람 윤리적 책임이 따라 오잖아요 네네 아니면 저를 그냥 공으로 싹 들어올려서 그냥 시켜서 그냥 날려버리세요 그럼 흔적도 없어지니까 누가 묻지도 않을 거예요네 막 이렇게 기도했어요 정말 실제 기도해 이게가 됩니다 이런 기도해도 되는지 모르는데 그렇게 기도했어 할 수 없으니까 누구한테 말할 때도 없고 친구한테 이런 말 어떻게 해요 창피해서 그러니까 말도 못 하고 애들도 눈에 밟혔을 텐데네 그래서 할 수없이 제 어느 날은 이제 집을 나간 거예요 제 아 애들 두고 그럼요 아 지금 나가기를 결심한 거예요 그래서 이제 안 돌아올 거라고 예 절대로 안 돌아올 거라고 결심하고 예 이제 집을 나갔어요 그래서 어디로 갔냐면 예 이제 태백에 있는 예원에 간 거예요 와 가기 가는 날 이제 새벽에 일어나 가지고 아침 밥 다 해 놓고 그냥 혼자 나가려다 생각하니까 애들이 너무 안 됐는 거야 마지막으로 밥 해 주자 그러는데 밥 해 놓고 이제 아들하고 딸 하나 있을 때 막내 태어나기 전이에요 밥을 해 놓고 청양이 와서 이차를 타고 태백에 갔습니다네가 가지고 이제 예선에 갔더니 이제 손님 방에 안내하고음 어떻게 기도할 거냐고 그래서 제가 무조건 금식할 거예요 그러니까 저 밥은 안 줘도 됩니다네 그 제어만 주세요 그리고는 이제 그다음 날부터 매일같이 이제 찬송과 성경책 이런 걸 다 들고 산 골짜기로 갔어요네가 가지고 매일 찬송을 불렀어요 예 천주교 찬송가 성가집 다 부르고 천주교 복음 선가 아고 새성가 집이라고 있었거든요 다 부르고 개신기 것도 다 부르고 또 그 복음 선 가지부터 다 불렀어요 예 목 한껏 부르다 소리 안 나오면 그냥 중얼중얼 입기도 하고 다 불렀는데네 나중에는 이제 기운이 없어서 부를 힘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개울가에 쭉 쳐져서 자 있어서요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아무리 밥도 안 먹고 노래만 한대도 죽지도 않는 거예요네 하나님께 그렇게 기도했으면 죽여 줘야 되는 거잖아요 안 죽여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래서 이제 그냥 내없이 앉아서 가만히 울다가 노래하다가 아유 얼마나 힘드셨을까 진 음 시간이 지나도 참 그 안에 그냥 내던 품들이 또 올라와요 그죠네 그래서 예 울다가 바라보니까 갑자기 냇물을 가만히 보 그 개울물을 보고 있는데 노래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너무 아름다운 개울물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그래서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니까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나는 거야 전 개울물은 장애물을 만나니까 저렇게 예쁜 노래를 만드는구나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그렇죠 내려가다가 리도 만 그네네 장애물을 만나야 장애물을 만날 때마다 소리가 나네요네 소리가 나는 거거든요 장애물을 만나는가 저렇게 예쁜 노래를 부르는구나 그런데 나는 장애물 만난다고 죽겠다고 여겨 왔구나 예 그 생각이 드니까 갑자기 부끄러워지고음 그래서 아 나도 죽으려고 하지 말고이 장애물을 인생의 장애를 노래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되면 되지 않을까 예 그 생각이든 거예요음 그래서 나도 이렇게 죽겠다고 하는게이 이게 다가 아니야 어 인생은 이렇게만 흘러가는 건 아니야 이러면서 생각해 보니까 한편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내 인생 편집기가 고장났나 봐 막 그 생각이 드는 거예요 왜 내가 좋은 일도 있는데 아기들도 이쁘고 학교 교사 하고 먹고 사는 것도 있고 잠잘도 있는 집도 있고 남편도 있고 친구들도 있고 다 있는데 내가 왜 죽어야 되나네 왜 죽을 생각을 했을까 좋은 것 많은데 시어머니 하고 힘들다는 거 그거 하나 때문에 내가 죽을 생각을 하다니 생각이든 거예요 그래서 내 인생 편집기를 고치자 고장난 인생 편집기 슬프고 힘든 것만 생각해내는이 편집기를 좋은 거를 편집해서음 항상 기쁘게 사는음 그런 삶으로 바꿀 수 있도록 하자이 생각이든 거예요. 그래가지고 그때부터 기도가 나오더라고요 예 그래서 하나님 제가 여기 와서 죽고 싶었는데 하나님 오늘까지 저를 안 죽게 하셨으니까 제가 잘 살아야 되겠죠 그러니까 어 정말 돌아가서 잘 살게 했습니다 그런데 어 제가 정말 이렇게 여기서 생각하니까 어 저 많이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어 그랬더니 저 많이 힘들었어 그랬더니 하나님이 계속 그러시는 거예요 야 그 사람들도 힘들었지 너만 힘든 건 아니지 그러시는 거예요 시어머니도 힘들었다는 생각을 그때든 거예요 제 아니 최 목사님은 그때 중간에서 어떤 입장이었어요 최목사님 매번 잘못했다고 하라 그러고음 아 엄마한테 잘못했다 그러고 그죠 그런 말 있잖아요 어설픈 효자가 사람 마누라 잡는다 이런 말 있잖아요 그 그 들어보셨어요 이게 최악의 상황을 만든 거거든네네 이제 이제 그런데 중간자 역할 하신 거예요 처음에는 어머니한테는 어머니가 저랬습니다 저한테면 당신이 최고야 이랬는데음 그랬는데 같이 있을 때는 어쩌지도 못하고음 이러다가 이제 집을 안도기 시작한 거예요음 아 집이 너무 있으니까 네네 본 도 골지 본인도 힘들지 중간에서 아이씨 아 뭐 엄마를 뭐 어떻게 하겠어 뭐 어떻게 하겠어 그렇죠 예 그래서 제가 그랬거든요 우리가 같이 살려면 당분간 우리가 조금 관계가 회복됐다고 다 해결되는 건 아니다네 당신이 성경대로 살아라 제발네 그래서 창세기에 보면 부모를 떠나 한 몸이 될지니라 그랬지 그죠 부모를 가운데 끼 한몸 될지니라 안 했다 그니까 성경 글자대로 살아라 제 그랬더니 그러겠다 그러더라고 그래 가지고 어머니 모시고 어느 날 어머니 그리고 저는 어차피 어머니하고 끝까지 사는게 아니라 사이 엄마하고 끝까지 살아야 돼요 그러니까 이제 어머니가 포기하세요 어 이렇게 했어요 어 뭐 어머니 막 들어 넘어지시고 막 난리났어요 그러고 이제 집을 나가셨어 어머니가 집을 떠나셨어요 그래가지고 돌아가면서 한 사람씩 나가게 되는 구조가 그죠 얼마나 속상하면 지금 웃고 얘기하지만 그때는 정말 정말 심각한 얘기 그 그 아이들은 둘 있는데 학교는 나가야 되고 네네 어머니는 이제 집을 나가시고네 바주 사람도지 예 남편은 신학교 가야 되고 그 애들은 어떻해요 그래서 이제 알아봐 가지고 알던 간호사 출신 옆집 아줌마한테 맡기고 이제 학교 갔다가 데려올 퇴근하면 데리고 와서 이제 돌보는 식으로 이렇게 하고 그때가 지나갔죠 예 예 그러면서 이제 어머니하고 해결 그 이제 그 어머니로한테 매일 혼나는 거 끝났어요 그때 그게 5년 걸렸어요 아 그래서 어머님은 그냥 대구로 가시고네 대기 간게 아니라 어느교회 전도사로 가셨어요 본래 전도사님이 있었거든요네네네 그래 가고 이제 전사님 가시고 저는 이제 그렇게 하면서 학교 생활을 했고요 예음 어머님 그 시어머님 계속 생존에 계세요? 네 이제 그 후로 이제 어머님이 이제 따로 사니까 제가 남편한테 부탁했어요 앞으로는 우리 관계를 회복하려면 지금 최약 사항으로 헤어졌으니까 관계를 회복하려면 어 그 앞으로 어머니께 뭐를 용돈을 드린 다든지 선물을 드릴 때 다 저를 통해서 주라고 예 예예 그렇죠 당신이 직접 드리지 말고 다 저를 통해서 주시면 드리면 저하고 관계가 좋아질 거라고 네 제가 필요할 때 생신때 뭐 설명절 이럴 때 이럴 때 뭐 봉투를 드린 다든지 또 선물 사드리는 거 이런 걸 다 제가 했어요 그래서 이제 어머니가 이제 좋아할 만한 것들 칠순 이럴 때는 장롱 같은 거 새로 사드리고 예 그러니까 왜냐 장롱은 사인 있거든요 제가 장롱을 못 사 가지고 와서 시식 갈 때 장 살때 등록 냈기 때문에 목사님 기 때에 어머니 장롱을 한동안 썼는데 그거를 또 뭐 내 장롱 내놓라고 또 야당 치신 일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놓고 온데 장롱 그래서 나는 나쁜 거를 좋은 걸로 갖는다 그래서 새 장롱을 사 드리고 이불도 새로 싹 맞춰 드리고 이제 그렇게 하면서 어머니가 좋아할 만한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제가 사드리기 시작하면서 어머니라 관계가 회복됐습니다 복복 네 연도 드시고 예예 연도 드시고 아 우리 우리가 이러든 저러든 도리는 하는 애구나 이렇게 그니까요 마음담은 선물에 힘이 있어요은 최고의 치료죠이 상처 치료는 이게 최고죠 그런데 이제 그렇게 해서 화목 이제 목사님 이제 목회자가 되시고 네네 그리고 이제 아무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또 무슨 일이 있으셨나 봐요서 목사님이 이제 제가 생각했던 거하고 다른 일을 시작하신 거죠 무 아 어떤 일을 이제 저는 이제 학교 그니까 목사님 제가 제트 목사님이 어 그 결혼하고 7년 동안 학생이었어요 7년 학생 끝나면 저는 기대를 잔뜩하고 있었어요 졸업만 하면 교회 가셔서 이제 전임 전도사 되면 대체로 집과 차를 주시더라고요 그러면 어 제가 이제 학교를 싹 간 두고 이제 애들 기르면서 막 누구 사람 없어도 우리 힘으로 살 수 있잖아요 네네 그러면 이제 그때는 글 쓰고 예 여유 시인으로 우아하게 살 거라고 결심을 했어요 막 상상하고 결심했는데네 졸업하자마자 다 공동체 시작하신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또 뭡니까 그래 갖고 상위 안 하시고 그냥네 어느 날 오더니 어느 날 그러는 거예요 내가 이제까지 내가 결정한 거 잘 따라 줬으니까 이것도 따라 줄 거라고 믿어 그러면서 사실은 그 전에 달공주 하기 전에 계속 그 신학생 때 계속 돈이 없어졌잖아요 저희가 이제 월급 받아다 놓고 이제 남편이 갖다 쓰는 통이 있는데 거기 돈이 계속 없어지더라고요 그때부터 할아버지들 밥 사 주기 시작하십니다 아 도우셨고네 그래서 제가 제발 하지 말라고 그랬거든요 이제 빈민 구제는 나라님도 못 한다 이런 말이 있잖아요 그 나라님 대통령도 못 한다는 그 빈민구제를 어떻게 당신이 하려고 하냐 그러니까 조금 하다가 신학생이 착한 일 해야지 오케이 좋아 좀 조금 하다가 그만둬 뭐 이런 내용이거든요 그런데 졸업하고 나니까 본격적으로 하겠다는 거예요음 그러면서 그것도 청양이 역전에 있는 아주 작은 사무실을 보여주면서 아 거기다가 교회도 창립하고 바퍼 하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막 이거 어떻게하면 좋냐 그 얘기 듣는 순간 아이 남자 발을 어떻게 한 발이라도 또 땅에다 붙여 놔야 되는데 두 발이 다 공중에 붕붕 떠 가지고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막 너무 걱정이 되더라고요 아유 그래서 내가 그때부터 대책없는 남자라고 불렀죠 아이 대책없는 남자가 또 무슨 일을 꾸미는 거야 막 이러면서 예 아 그니까 졸업하면 그냥 교회 전도사님 가면 좀 좋아요네 저도 좀 저도 꿈 좀 이루고네 그랬는데 그렇게 돼서 이제 또 울마 겨자 먹기로 이제 결국은 인생 큰 결정은 남편이 하잖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서 중요한 결정은 남편이 하고 그리고 제가 도와주고 그러면서 이제 가다 보면 결국 좋은 길로 가더라고요 이제까지 살아 오니까 그래서 이제 또 알았다고 그러면 좀 3년까지 봐 주겠다 3년가 3년 예 3년은 하고 대신 절대로 나한테 11조 이상은 달라고지만 아 그다음에 애들은 내가 책임질 거야 그때 셋째 있었어요네 이제 그때 아니요 그때 셋째 없어요 째 없을 때 예 두 애들 책임질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 학교 선생님들 보니까 남자 선생님들 혼자 벌어 가지고 애들 학교도 보내고 부모도 봉양하고 하더라 그러니까 내가 그 3년은 책임질 거야 그렇지만 11조 이상은 책임 못 져 막 이러고음 그랬더니 았다고 괜찮다고 괜찮다고 3년 오케이 오케이 이러는 거야 그래서 이제 3년이면 끝날 줄 알았죠네 계속하는 거 평생을 속으면서 사시네요 수년에 계신 때 그렇게 시작된 시작이 속 꽃 들고 올 때부터 계속 그러셨는데 처음에 그거 하는 줄 몰랐어요 걔만 개척한 줄 알았는데 어느날 여기 한 큰일 나서 빨리 밥빨리 봐서 갔더니 자원봉사자가 하나 자기 혼자 밥 하게 되는데 큰일 났다는 거예요 그때 밥해 주는 줄 알게 된 거예요 오 교회 개척한다 개척 예배만 봤죠 그러니까 막 막 뭐냐고 뭐냐고 이게 도대체 뭐야음 아니 그런데 그런 사역을 너무 힘드셨을 것 같고 자녀분들도이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상황 때문에 좀 많이 힘들었을 것 같은데 자녀분들은 또 어떻게 생각하셨어요 우리 애들은 이제 처음에는 이제 그 그런 건지 저런 건지 모르고 하다가 애들이 너네 아빠 아무래도 실직자 갔다 그랬 친구들이 너네도 가난하지 막 그러면서 너 지하방에 살잖아 우리는 우리는 지상에 살고 너네는 지하 살고 너네 아빠 복장을 보니까 양보 입고 난 거 한번도 못 봤거든 막 이러면서 후줄근하게 있고 뭐 낡은 차를 타고 다니더라 야 막 이러면서음 그러니까 집에 와서 아빠 아빠 실시자 아빠 목사자녀 목상 거 너 안수식 할 때 너 왔었잖아 그러니까 나 갔는데 아빠 실제로 애들이 다 그래 응 우리 동네 사람 아빠가 목사라고 믿는서 한 명도 없어 그러 그러서 아빠 창피 죽겠어 막 그러는 거예요 예 저도 이제 그러다가 점점 빠져드는 거예요 그렇죠 어쩔 수가 없잖아요 중간에 발을 뺄 수가 없죠 예 발을 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이제 밥 해 준다고 이제 또 막 집에 와서 또 라면 준다고 울고 그러니까 라면만 주니까 불쌍하다고 울고 그러니까 제가 통장 내주고 가서 밥해 주라 그러고 막 급하다 그러면 쫓아가고 된 그러다가 이제 어느덧 하루 하루 살았는데 여기까지 왔네요 그렇게 36년이 흘렀네요네 3습니다 옷도 변변치 않아서 뭐 벼룩도 있었어요 오 아 그럼요 그 이제데 그 오시는 노숙인들 이런 사람들이 거기서 이제 그냥 매일 술 퇴근만 한게 아니라 며칠씩 안들을 때도 있는 거예요 거기서 그냥 먹자고 하면서 그럼 이제 벼룩이 올라가고 집에 오는 거예요 와 뭔가 뭐가 옷에서 탁 튀어나는데 보이지도 않는 거예요 응 애들이 뭔가 튄다 재밌다 이거 뭐냐 막 이러는데 우리 본 적 없죠 벼 저도 없어요 난 딱 보니까 벼룩 같아요 와 그랬더니 안 그랬더니 막 극적극적 하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아 제발 좀 제발 애들 뽀뽀하고 그럴 때는 좀 샤워 시에 들어가서 다 씻고 옷 다 어서서 이제 그때는 이제 새탁기 샀을 때입니다 그때는 이제 새탁기 집어 넣고 나오라고 예 그러면 용서하겠다고 아니 그렇게 36년째 사역을 이어오고 계시는데 네 어떤 마음으로 지금까지 이어 오셨는지 참 궁금하거든요 네네 처음에는 이제 저희 친구가 와서 그러더라고요 저하고 친했던 친구가 재밌게 말했어요 저한테 오더니 야 넌 말이야 사막에서 나와서 진흙 밭에 빠졌구나 그러더라고 사막에서 나와가지고 스토어는 사막이고 진흙밭 여기긴 진흙 빠지세요 아 그니까 이제 바기 말하면 이제 쓰레기차 피하다 똥차에 걸렸구나 뭐 이런 거잖아 예 이제 처음에는 이제 우리끼리 시작했는데 그다음에는 조금씩 조금씩 신학생들이 오기 시작했어요 와 도와주겠다고 선배가 이런다고 교수님들도 오셨어요 아네네 막 이제 뭐 어떤 사람은 두부 한 번 사오기도 어떤 사람 콩나물 한 번 사오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집에서 컵 쓰는게 있는데 안 쓴다고 갖고 오기도 하고 뭐 이렇게 네네 더 없는 사람들이 조금씩 생기더라고요 그때는 우리가 후원 통장 이런 것 하나도 없었어요네 뭐 온라인 통장을 개설하라 그런 거 뭔 말인지도 몰랐어요 그러니까 후원자 들 뭐 관리하는 거 이런 거 전혀 모르고 이렇게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원자들이 생기기 시작한 거예요 잠적으로 와서 또 다른 분들 소식들은 사람들도 개인적으로 오기다 교회차원에서 오기다 이렇게 후원자들이 많이 생긴 거예요 그 당시에는 자원봉사라는게 이게 익숙한 당사가 아니었거든요 우리나라에네 1900 89년부터 그네 그때는 자원봉사가 익숙한다는 거 아니었어요네 그때 자원봉사 의 어떤 그 뭐라 그럴까요 그니까 문화 자원봉사 문화를 업그레이드시켰다 해도 과이 아닐 정도로 봉사자들 오기 시작했습니다 많이 와서 이제 그 그분들의 도움을 받고 이렇게 하면서 점점 이제 제가 이제 이런 생각이 되는 거예요 어느 날 바보 같이 이런 생각을 했어요 야 제일도 김현수가 하는 일이 참 잘된다 아 역시 우리 남편 능력 있고 나도 괜찮 저는 사람이야 이런 생각이 은근히 들기 시작했어요 이제 그래서 어느 날 이제 제가 기도하다가 하나님잖아 처음에 너무 어려웠는데 도와주는 사람이 이렇게 있고 그래서 너무 감사해요 그리고 정말 뭐 생각보다 괜찮네요 덜 어렵네요 막이 이렇게 하고 있었는데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이 바보야 등신아 그러면서 이거 제일도 김연수가 잘하는게 아니고네 하나님이 사랑해서 어떻게든 돕고 싶었던 사람들을 예 너희가 도우니 하나님이 사람들을 보내 주시는 거야음 그 마음이 딱 드는 거예요 그때 제가 마음을 쓰어 내리면서 아 그럼 그렇지 내가 우리 일이 아니야 이거는 하나님의 일이고 정말 하나님의 아픈 손가락을 우리가 돌보는 거잖아요 열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있냐 이런 말 있잖아요네 하나님이 다 우리 온 세상 사람들 다 만드셨는데 아이 자기 당신 자녀들이 못 먹고 병원도 못 가고 이런 사람들 보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이제 그 사람들을 어떻게 도와줄까 어떻게 도우면 좋을까 쟤 쟤는 먹여야 되겠고 얘는 병도 취해줬으면 좋겠고 얘는 잘 자리가 필요하고 아우 막 너무 마 아파 이러는데 아유 최일 도라는 신학생이 시작하더니 사람들이 자원봉 사자들이 오더니 후원자들이 생기고 이러니까 아 다행이다음 하나님 기뻐하시겠다 그 생각이 드니까음 비로서 감사해 시더라 그요 그 깨달음과 함께 제가 남편한테 발 빼야 되겠 발 빼라고 하는 그 말을 더 이상은 안 했습니다 그때부터 그런데 그 이후에 또 이제 청양리 쪽이 또 재개발 이슈에서부터 많은 또 어려움들이 있었었죠네네 그건 이제 최근의 일인데요 이제 사람들이 어려운 사람들이 살다 보니까 이제 만나다 보니까 밥 먹으면 깨끗한 옷을 입고 싶어해요 그서 깨끗한 옷 달라 그러고 옷을 깨끗하게면 그다음에 아픈데 얘기를 해요 순서들라고 그게 이렇게 그러면서 아픈 아프다고 여기 아파 막 그러면은 후만 해 줘도 낫다고 하고 가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외로운 거예요 그분들이 그래서 아픈 거를 와서 호소 하니까 이제 도와주기 시작해서 이제 의대생들을 의사가 없으니까 육대 대학교 의대생들을 모아서 이제 의료봉사를 하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이제 이제 어떤 목사님 사모님 호로 대신 목사님 사모님 모시고 그때 기도하고 천자 천사 병원을 만든 거예요음 8년 동안 모금해 가지고음 10월 4일 104 그러니까 천사의 날에 저희가 천사병원 오픈했어요 오 그래서 그때 이제 무료 병원이 개신교 무료병원 처 여온 거예요 그리고 나서는 이제 해외로 해외에서 또 버퍼가 필요하다고 해서 가기 시작해 가지고 이제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 네팔 이렇게 아시아로 시작 중국이 제일 먼저 시작했고네 저도 책자 계속 받아보고 있어요네네 아니다네 그래서 그렇게 해 갖고 지금 아시는 것처럼 11개국 22개 분원에서 일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제 이렇게 은혜롭게 해 가고 있는데 최근에 청량리가 이제 이렇게 뜨는 도시 구역이 됐습니다 그래서 뭐 천마 용성 뭐 그런 데나 네네 예 청양 청마용성 청양이 뭐 마포 뭐 어디 어디가 네 그런데 이제 그중에 부동산 어떤 분이 바퍼 때문에 아파트 값이 이쪽 퍼 퍼를 향한 면은 1억이 싸다고 그렇게 얘기를 했대요 그러니까 이제 바퍼 쪽을 향한 사람들은 자기들이 버퍼가 앞에 있어서 돈이 떨어진다고 집값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싶어요 그 사람들 중심으로 이제 와퍼를 치워 달라 뭐 이런 얘기들이 나오기 시작한 거예요 그런데 그냥 소경으로 했는데 이제 음 어느날 체장이 바뀌면서 이제 저 본격적으로 뭐 이런 이제 그거를 뭐 굉장히 심각하게 하기 시작하더라고요 예 그래서 저희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희가 다일 공터 시작한 일에 어려울 때가 참 많았습니다 이거보다 더 어려울 때도 많았고요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제가 그래서 우리 공동체 가족들도 이렇게 말을 해요 어려운 어려운 기간이 있겠지만 만 결과는 이전보다 좋아질 거야 왜냐하면 우리 역사가 그랬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역사가 다 그랬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서 가나안 들어가기까지 모든 어려운 가정을 다 거쳐 갔잖아요 그래서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그들은 끝없이 역사를 돌아보면서 그랬잖아요 우리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를 인도하셨다 애굽에서 우리를 인도하셨고 홍해바다를 마른 마른 땅을 건너가게 하셨고 머리 바위 물통에서 또 또 이렇게 바위를 해 바위를 물이 나게 하시고 사막에서 메추라기를 먹이시고 만나를 먹이시고 그 역사를 계속 대내 아아 시편 보면 계속 그 얘기가 나오거든요 우리 역사에서 이런 일이 이런 일이 이런 일이 이런일 그러므로 하나님을 찬양하라음 지금은 힘들지라도 저는 그 정신으로 우리 달 공동체 사람들하고 얘기합니다 우리가 지금 아무리 어려울지라도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좋은 곳으로 보다 더 이전보다 더 좋은 곳으로 인도해 줄 줄 확실히 믿습니다 아멘 그래서이 어려움이 심하면 좋 결과가 더 좋을까라는 예 표다 그니까 힘내자 막 이러면서 저희가 하고 있습니다네 오늘 셋째 딸이랑 같이 오셨는데 셋째 딸이 좀 늦게 보 거죠 셋째 달은 네네 예 막내둥이 막내둥이 둘째고 몇살 차이에요 둘째하늘 차이인데요네네 밖의 서프라이즈 베이비에 미국에서 우수 베이비라고 합니다 스어 나도 모르게 스베이 네네 그래서 이제 아기가 어 갑자기 태어나게 됐고요네 제가 임신하게 됐는데 셋째 임신하는데 사람들이 왜이 나이에 또 애기를 날려고 그래 그때 45세 였거든요 그랬더니 왜이 나이에 애기를 날려 그래요 그래서 아니 그럼 배속에 있는 아기를 계속 배속에서기를 수 없잖아요 나서 길러야지 당연한 얘기죠 당연하죠 그 지금 다 자녀들 어떻게 살았어요 잘 살았어요 이제 예 큰애는 금 많이 컸겠네요네 많이 커서 40살 넘었고요 예 아벌네 공학 박사인데 SK 일하고 있고요 예 둘째 딸인데 걔는 이제 저기 한번 선교사로 갔고네 그리고 막내는 저기 와 있는데 어 에머리 로스쿨 장학생으로 합격했어 8월에 입학합니다네 그래서 너무 서프라이즈 베이비가 서프라이즈를 했습니다 좀 어려울 때 정말 지금 밥 포일로 굉장히 어려울 때 우리 아기가 정 전 맨날 지금 아기라 그래야 스 살도 넘었는데 네네 아 제가 왜 여쭤 보려면 여기 출연하셨던 많은 선교사님들 또 주의 일 하시는 분들 우리 박환 목사님을 포함해서 또 저희 아버지의 자녀였던 저를 포함해서 다들 이렇게 주의 일한다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여유롭지 못하게 벼룩이 뛰어다니면서 정말 없이 아껴가면서 사셨던 그 가정들에 하나님께서 목사님께서 또 지금 바빠 하시라고 자녀들 잘 못 돌 보셨을 거 아니에요 하지만 저들을 하나님께서 다 그렇게 훌륭하게 장성하게 키우셨다는 은혜를 저는 새롭게 할 수 하면서 깨달았어요 저들은 부모님의 손으로 자라는게 아니라 하나님이 키우시는 축복의 자녀들이 라고요 그래서 목사님께서 또 사모님께서 이렇게 많은 생명들 먹이시는 그 순간에 내 자녀는 하나님께서 다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켜서 하나님이 쓰시고 한 자리에 탁탁 갖다 놓으셨다는 거 맞습니다 그래서 제가 요새 그러잖아요 그 요즘 젊은 사람들이 악인는 것 하고 막 그러잖아요 그래서 제가 아 크리스천은 그러면 안 된다 왜냐면 창세기 1장 읽어 봐라 1장 27 28절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첫 번째 내린 명령이 생육 반성이 든요 그 예 첫 번째 하나님께서 제일 일이 이렇게 하면 안 되지 제 1번으로 내린 명령 첫 번째 명령이요 그게 생육 번성하라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제가 성경을 자세히 읽어 보니까 그 앞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 며 말씀하셨다예요음 그죠 나와서 길을 넣고 번성할 수 있는 복을 이미 주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기를 낳아서기를 때는 이미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이 있다는 거예요 저는 우리 막내 보면서 우리 애들 보면서 절 느꼈어 왜냐면 큰애 낳고 났을 때보다 둘 째 났을 때가 더 좋아졌고음 그죠 셋째 났을 때가 더 좋아졌고 저도 그래요 계속 아이들이 아이들 없었으면 어떻게 했겠어 저 아이들 보고를 먹고 사는 거예 죠 그러니까요 아이들 더게 살아요 저 지금 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일 잘하셨죠 아이 난 거네 아이 세 명난 거 잘했습니다 여기도 셋 맞아 저도 셋 아 예 지현님도 셋 아멘 할렐루야네 할렐루야 아네네 정말 하나님 주신네 크리스천들이 우리나라의 인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 성경대로 사니까 그럼요 그럼요 아 아 이제 마지막으로 모님 뭐 기도 제목 있으면 좀 나눠 주시죠네네 어 이제 뭐 개인적으로는 제가 이제 어 그말 다일 복지에서 일하다가 은퇴했거나 이제 책임 있는 자리에서 물러나고 싶어서 이제 그 큰 일은 제가 내려놨고 그러면서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이 제가 초반 초반에 말씀드렸지만 미대 가고 싶었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그림을 못 그린게 너무너무 아쉬운 거예요 예 그래서 지금 그림 그리는 거 배우고 있고요 그래서 아크릴 화도 그리고 이제 그 이콘이 러시아 정 께서 발달한 성화가 있거든요 성화 그리는 거 지금 배고 있어요 그래서 그 일을 잘했으면 좋겠고 또 제가 이제 그동안 밖에 애들 기르고 또 일하느라고네 못 읽었던 책도 읽고 시도 좀 더 많이 쓰고 이제까지 썼던 작품들 정리하고 이런 거 하고 싶고요 개인적인 소망이고 예 그다음에 이제 제가 어 정말 간절히 기도하기는네 저희 체터 목사님이 작년에 여름에 안별 이쯤에 발 그래 오른쪽 다리 요위에 그래서 이제 그 잘라내고 이제 치료 하셨는데 그 방사능 치료 33번 받고 항암 치료는 안 하고 이제 추적 검사하면서 보고 있는데 오늘 검사 결과 나왔는데요 세 번째 검사 결과 나는데 아주 좋다고 감사 그래서 이렇게 이렇게 계속 깨끗한 소식이 계속 이어져서 만치 되기를 제가 기도하고 있고요 제일 첫 기도 도예요 예 그리고 이제 두 번째 기도는 그 아까 말씀하셨던 그 바퍼 이야기 있잖아요 바퍼 그 재건축 아니 재건축이 아니라 이제 증축 그 문제가 서울 시하고 사실은 의논 돼서 예 서울시에 기부 체업 하기로 하고 했던 일인데 중간에 오해가 생겨서 벌어진 일이니까 잘 원만하게 해결되는 거를 기도하고 있고요 예 그리고 또 이제 다 아시다시피 코로나 3년 지나다 보니까 그래요 그래요 금 3년 동안 활동도 잘 못했지만 후원도 많이 줄었더라 그래요 그래서 그 거의 한 30% 가까이 후원이 줄었더라 이제 제 목사님은 제가 걱정한다고 말을 안 했는데 제가 이제 어느날 이제 일이 있어서 제단에 들어 사무실 갔다가 알게 됐어요 목사님 편찮으시다는 후원 걱정 안하 후원 지던 거 걱정 안 하고 사역하실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채워 주시기를 강고하고 있고요 다 멀리 나가 있는 우리 사역자들 정말 어려운 역에서 일하고 있잖아요네 정말 어려운 나라들에서 일하고 있으니까 그 사역자들 건강하고 우리 후원자님들 자원봉사자님들 모두모두 가정에 평화와 행복이 넘치면 좋겠습니다 아멘입니다 지금 어디 어디 있어요 바 저희가요 예 중국에 있고요네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 네팔 아시아에 다섯 나라 있고요 그다음에 어 그 아프리카에 탄자니아 우간다에 있어요네 예 그다음에 남미에 과테말라 그다음에 카나다 미국 한국 합해서 11개국 있니다 예 그렇게 사역하고 제일 먼저 가장 가난한 도시로 가서 바퍼 하고 그다음에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아이들을 이제 보살피다가 이제 또 어 복건 건강도 도와주고 특히 호프 스쿨을 열어 가지고 학교 저 정년기 학교 못 간 애들 학교 들어갈 때 학교 못 간 애들 공부시켜 갖고 공립학교에 학년 맞춰 주기도 하고 중고등학교 간다는 애들 학교 보내주고 대학도 간다 그러면 다 보내 줍니다 저희가 예 그렇게 해서 지금 대학교 졸업한 애들도 많이 있고요 중국에서 의사도 나왔고 캄보디아에서는 국가대표 태권도 선수도 나왔고네 또 아프리카에서는 지금 법대 다니는 학생도 있고요 예 정말 사람 돕는이라는게 정말 인생이 보람되는 거 같아요 인생 한 생명 살면서 한 사람 만 잠깐 도와줘도 의미가 있는데 그 사람들이 죽 죽을까 살까 하는 고비에서 살려줬다는 거는 그 살도록 도와줬다는 정말 좋은 일이잖아요 우리 후원자님들이 그 후원해 주시는 그돈 갖고 귀한 생명도 살려서 네네 인생의 전환기 만들어 주고 정말 막 아장아장 걸어 밥 먹던 애들이 국가 대교 선수되는법 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모든 걸 놓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예 또 이렇게 폰내 주셨던 분들 예 또 잠 봉사해 주신 분들 그리고 여러 매스컴들이 또 특히 CBS 많이 도와 주셨고요 매스컴들이 특히 천사병원 그 모금할 때 엄청 많이 도와 주셨거든요 그 모든 것들이 그 언론의 순기능 정말 사회를 정말 아름답게 만드는 그 기능을 해 준 그 언론들에도 감사하고네 오늘도 이렇게 귀한 기해 주셔서 부족한 제가 나와서 말할 수 있는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네 그때 24살 신학생 잘 만나셨죠네 예 황달기 좀 있었지만 그래도 잘 만나셨죠네 지금 그 알고 보니까 그게과 그게 관념이 아니고 길벗 신드롬이 있어요 그런게 있더라고요 증상 간음하고 똑같은데 길버트 신드롬이라고 그래서 지금은 그 그 증상은 아니고요 예 아주 건강이 갈수록 건강해 지셨는데 작년에 이제 발병 되셨고 지금도 아주 좋으네 네 사실은 그 황달 때문에 그 마음에 긍휼한 마음이 생긴 거거든 황달 아니었으면 수 있잖아 진짜 길버트가 아주 좋은 거네요 아유 오늘 저희도 너무나 그냥 사모님 얘기를 드리면서 그 왜 우리 학교 선생님 첫사랑 얘기 듣는 거 같은 그 진 흥미 진지함이 있었잖아요 아주 뭐 재밌는 연애담과 또 다일 공동체가 이루온 길에 대해서 이야기를 드리면서 저희도 많이 은혜가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잘 들어 주시니까 말이 저절로 나오네요 진이 어떻게 들으셨어요 저는 사님 주신 말씀 중에 마음의 편집기가 고장 났다라는 그게 참 기억에 많이 남는데 우리가 그 엄청 큰 문제 앞에 이렇게 도달하게 되면 내 삶에 감사한 것들이나 뭐가 있는지 다 있게 되잖아요 그냥 죽음만을 묵상하게 되고 그런데 밥이라는게 참 중요한 거잖아요 우리가 굶으면 좀 예민해지고 하는 것처럼 그런 수많은 인생의 편집기가 고장난 분들께 따뜻한 밥 답을 제공해 주시면서 내 인생에 어떤 감사한 것들이 있지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해 주시는이 사역이 너무 귀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눠 주신 이런 문제들을 우리 함께 다 같이 기도하고 또 돕는 손길이 되어야겠다라는 생각이 참 많이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네 우리 박경 목사님 진짜 우리 하나님이 너무 정확하신 분이라는게 사모님을 통해 느껴진게 우리 최일도 목사님은 일단 이렇게 소명 받으면 일을 벌리시는 분인 거 같아요 네하 모을 곁셔서 우리 선생님이요 오히려 다 하나하나 챙기시고 옆에서 도와주시고 진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 두 분의 삶을 통해 이루어진 거 같고네 앞으로도 그래서 이제 목사님과 사모님이 함께 힘을 모아서 또 펼쳐 나가실 일 더더욱 기대가 되고 아마 오늘 또 방송 보신 많은 분들이 더더욱 지금 또 함께 붙잡아야 될 기도 제목 가지고 기도해 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네 아니다 지금 사모님 기사를 보셨겠지만 지금 저 미국 당도네 그 아름답다던 캘리포니아 그 좋다는 하와이 전부 홈리스들 넘쳐나기 시작한 거 알고 계시죠 지금 뭐 저도 지나다닐 때마다 너무 많이 만났고 맞 네네네 교회가 무너지니까 결국 그니까이 미국 땅도 이제 홈리스들이 너무나 넘쳐나는 땅으로 변하더라고요 우리에게 미국은 풍성한 나라였는데 네네 결국 예수님이 처음 시작했던 일이 그 어려운 자들 먹이는 일부터 시작을 하셨고 먹이면서고 고 병거 치면서 교육했고 그것으로 인해서 다시 교회에 부흥이 있지 않았겠어요 전 다시 우리 교회가 초심으로 돌아가서네 굶주린자 먹이는 일부터 또 그들을 치료하는 일부터 다시 또 그들과를 교육시키는 일부터 다시 돌아가야 된다는 생각이 드는 시간이었어요 우리 봉사가 받들봉 성기사들 제가 자녀들도 키워 보니까 받들고 섬기는 것부터 가르치는 것이 진정한 교육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우리가 다음 세대들에게 구 경수를 잘해야 좋은 데를 간다가 아니라 어떻게 어려운 자들 받들고 어떻게 섬기는 가르치는 교육이 다시 설 때 우리가 정하는 다음 세대에 대한 교육에 대한 염려가 사라질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바를 통해서 더 많은 굶주린 자들 먹이시고 입히시고 병고치는 일로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 날까지 열심히 사역해 주십시 저희도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귀관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님습니다 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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