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에서 경제학자로 김현철 교수 인생 전환과 성공 비밀
의사에서 경제학자로, 인생 대전환
"의사에서 경제학자로, 180도 인생 대전환! 김현철 교수가 밝히는 인생의 비밀"
세상의 눈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인생의 전환, 신앙의 눈으로 보면 비로소 깨달아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오늘, 바로 그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줄 분을 모셨는데요. 연세대학교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의 길을 걷다, 갑작스레 경제학자의 길로 들어선 김현철 교수입니다. 홍콩 과학 기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이자, 코넬대학교 정책학과 교수, 그리고 저서 "경제학이 필요한 순간"의 저자이기도 한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 스토리를 지금부터 함께 파헤쳐 보겠습니다.
1. 인생 성공의 80%는 운?! 충격적인 진실
김현철 교수는 단언합니다. "인생 성취의 80%는 운"이라고요. 대체 무슨 근거일까요?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의 연구 결과(출처: 세계은행 보고서, 2018)를 인용하며,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가 개인 소득의 50%를 결정짓는다고 합니다. 가슴 아픈 현실이지만, 단지 가난한 나라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인생의 상당 부분이 이미 결정된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나머지 50%는 무엇이 좌우할까요? 놀랍게도 30%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이라고 합니다. 외모, 재능, 심지어 성격까지 유전적으로 영향을 받는다는 연구 결과(Plomin et al., Nature Neuroscience, 2016)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죠. 마지막 10%는 어릴 적 환경입니다. 부모의 경제력, 교육 수준, 가정 환경 등이 개인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무시할 수 없죠(Duncan et al., Child Development, 2012).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보면, 우리의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고작 20% 남짓이라는 충격적인 결론에 도달합니다. 물론, 노력이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태어난 환경, 유전적 요인 등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운'의 영역이 인생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김 교수 역시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좋은 부모님 밑에서 교육받은 환경이 아니었다면 이 자리에 설 수 없었을 것" 이라며 겸손하게 고백합니다.
2. 불평등한 세상, 국가와 교회의 역할은?
운이 인생을 좌우한다는 사실은 불편한 진실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죠. 김 교수는 이 불평등한 현실 속에서 국가와 교회의 역할을 강조합니다. 운 나쁘게 태어난 사람들을 돕는 것, 이것이 바로 국가와 교회의 존재 이유이자, 우리 기독교인의 사명이라는 것이죠.
국가는 사회복지 시스템, 교육 정책 등을 통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교회는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며 고통받는 이웃에게 손길을 내밀어야 합니다. 물론, 개인의 노력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구조적인 불평등을 해소하고, 사회 전체의 정의를 세우기 위한 노력이 더욱 절실합니다.
3. 엉뚱 발랄, 예측불허! 김현철 교수의 학창 시절
"저는 어릴 때부터 튀는 학생이었습니다." 김 교수는 자신의 학창 시절을 회상하며 웃음을 터뜨립니다. 공부는 곧잘 했지만, 질문 많고 반항심 넘치는 아이였다고 하네요. 선생님 말씀에 순종하기보다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반발했습니다.
중학교 시절에는 학교 수업에 흥미를 잃고 무단결석을 밥 먹듯이 했다고 합니다. 깜지 숙제, ABC 100번 쓰기 등 획일적인 교육 방식에 염증을 느꼈던 것이죠. 학교 대신 도서관을 찾았고, 교실 뒷편 창고에 책상을 숨겨 놓고 2주 넘게 학교에 출석하지 않은 적도 있다고 하니, 엉뚱함과 대담함이Audacity가 남다른 학생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김 교수는 학업 성적이 뛰어난 학생이었습니다. 학교에서도 그의 특별함을 인정했고, 중학생 시절에는 학교 도서관에서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고 합니다. 물론, 어머니의 헌신적인 지지와 격려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4. 교회는 선물 주는 곳?! 엉뚱한 신앙생활
교회에서도 김 교수의 엉뚱함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초등학생 시절, 성경 퀴즈 대회에서 상품을 휩쓸면서 "교회는 선물 주는 곳" 이라고 생각했다고 하니, 순수함과 엉뚱함이 공존하는 어린 시절이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중학생 때부터는 대예배에 참석했지만, 졸려서 3년 내내 잠만 잤다고 고백합니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교회를 멀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고3 때, 마음이 가난해진 상태에서 친구의 권유로 다시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신앙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신앙심 깊은 짝꿍 덕분에하나님을 다시 만나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 것이죠.
5. 지하철 구걸자들을 보며 던진 질문, "하나님, 어디까지 도우라고 하시나요?"
대학교 시절, 김 교수는 선교단체 리더로 활동하며 활발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디까지, 어떻게 도우라고 하시는 걸까?" 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졌습니다.
단순히 물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과연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일시적인 도움보다는 구조적인 문제 해결, 지속 가능한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인 차원의 도움도 의미 있지만, 사회 시스템과 정책을 변화시키는 것이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죠.
6. 암 환자를 통해 경제학에 눈뜨다
"가난하면 아프기까지 해야 하나?" 의대생 시절, 김 교수는 강남세브란스병원 유방외과 실습 중 충격적인 현실을 목격합니다. 강남 환자들은 조기에 유방암을 발견하는 반면, 지방이나 저소득층 환자들은 대부분 말기에 병원을 찾는다는 사실이었죠.
특히 45세의 젊은 나이에 말기 암으로 고통받는 한 환자를 보면서 깊은 슬픔과 분노를 느꼈습니다. "왜 가난하고 못 배우면 이렇게 병에 걸려 일찍 죽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이 환자와의 만남은 김 교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경제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입니다.
7. 콜롬비아대 경제학 박사, 지식 '구걸'하다?!
의대에서 경제학과 박사 과정으로 진로를 바꾸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특히 콜롬비아대학교 경제학 박사 과정은 전 세계에서 모인 수재들만이 들어올 수 있는 엘리트 코스였기에, 더욱 험난한 도전이었죠.
유학 시절, 김 교수는 극심한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렸습니다. 꼴등에 가까운 성적, 매일같이 쏟아지는 과제와 시험, 경쟁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존감은 바닥까지 떨어졌습니다. 심지어 "아침에 눈 뜨는 것이 두려울 정도" 였다고 하니, 당시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김 교수는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새벽마다 간절히 기도했고, 주변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특히 유학 동기, 선배들의 헌신적인 도움은 큰 힘이 되었습니다. 지식을 '구걸'하다시피 하며 끈질기게 노력한 결과, 기적적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었습니다.
8. 아프리카 봉사,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히다
박사 학위 취득 후, 김 교수는 아프리카 봉사에 헌신합니다. 박상은 원장과의 만남은 아프리카, 특히 말라위와의 인연을 맺어주었습니다. 말라위에서 다양한 보건 사업, 교육 사업을 추진했지만,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에이즈 예방을 위해 대규모 포경수술 사업을 진행했지만, "수술 후 성생활이 문란해질 수 있다"는 우려대로 에이즈 감염률 감소 효과는 미미했습니다. 오히려 장학금 사업은 성적 우수 학생에게만 혜택이 집중되면서 하위권 학생들의 학업 의욕을 저하시키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습니다.
연이은 사업 실패, 열악한 환경, 끊이지 않는 위험 속에서 김 교수는 하나님의 부재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에티오피아 내전 당시 헬기에서 쏜 총에 맞아 500명이 사망하는 끔찍한 광경을 목격했고, 함께 일하던 동료 학자가 살해당하는 사건을 겪기도 했습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아프리카에서 김 교수는 신앙의 깊은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9. 실패와 좌절 속에서 발견한 '진짜' 성공
수많은 실패와 좌절, 그리고 위험 속에서 김 교수는 '진짜' 성공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성과, 숫자로 증명되는 성공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따라 묵묵히 걸어가는 과정 자체가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아프리카를 향한 봉사를 이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바꿀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는 믿음 때문입니다. 비록 정책 실패, 사업 실패를 경험했지만, 그 과정에서 얻은 값진 교훈들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10. "한국으로 돌아가 정책 전문가로 헌신하고 싶습니다"
현재 홍콩 과학 기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김 교수는 조만간 한국으로 돌아갈 계획이라고 합니다. "한국 사회의 정책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 는 소망을 품고 있습니다. 물론, 홍콩에 비해 낮은 연봉, 치열한 경쟁 등 현실적인 어려움도 예상됩니다.
하지만 김 교수는 "돈보다 가치 있는 일" 을 하고 싶다고 강조합니다. "대한민국 정책, 더 나아가 전 세계 정책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면 기꺼이 헌신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의사에서 경제학자로, 아프리카 봉사에서 정책 전문가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김현철 교수의 앞날을 응원하며, 그의 헌신이 한국 사회에 따뜻한 변화를 가져다주기를 기대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