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억 자산가 현승원의 성공 비결, 아버지 신앙 교육 3종 세트
3천억 자산가, 아버지 신앙 교육 3종 세트: 용돈기입장, 선교, 10번 기도
🔥 아버지의 불타는 신앙 교육법: 3천억 자산가 현승원 의장의 특별한 이야기 (feat. 용돈기입장, 선교 훈련, 10번 기도)
오늘 여러분께서는 특별한 성공 스토리를 통해 깊은 감동과 놀라운 교육 노하우를 얻어가실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30대 중반에 3천억 원대 자산가가 된 현승원 ㈜디쉐어 의장의 이야기인데요, 그의 성공 뒤에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특별한 신앙 교육과 재정 훈련이 있었습니다. 현승원 의장은 우리에게 영어 강사 ‘존스 엠’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요, 오늘은 그의 삶과 아버지의 놀라운 교육법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 3종 훈련의 시작: 용돈기입장과 재정 훈련
현승원 의장은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특별한 3종 훈련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시작은 중학교 1학년 때 받은 용돈에서부터 였습니다. 보통 용돈을 받으면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인데요, 그의 아버지는 용돈과 함께 용돈기입장을 쓰도록 지시했습니다. 단순히 용돈기입장을 쓰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매달 용돈기입장을 검사하여 용돈 액수와 맞지 않거나 기입 내용에 오류가 있으면 용돈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엄격한 규칙을 적용했습니다.
매번 용돈을 받을 때마다 수입과 지출 항목을 꼼꼼하게 기록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15,000원부터 시작된 용돈은 항목별, 수입/지출별 기록을 통해 관리되었는데요, 놀랍게도 아버지께서는 용돈기입장을 국세청 제출 서류처럼 꼼꼼하게 검토하셨다고 합니다. 단순히 용돈을 아껴 쓰는 습관을 기르는 것을 넘어, 체계적인 재정 관리의 기초를 어릴 때부터 훈련시킨 것입니다. 이 훈련은 무려 6년 동안 지속되었으며, 용돈은 점진적으로 인상되었지만 아버지의 검사는 더욱 철저해졌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5만 원까지 오른 용돈을 받으면서 현승원 의장은 비로소 ‘규모의 경제’와 ‘적게 쓰는 방법’을 체득하게 되었다고 회상합니다.
용돈기입장 작성 훈련은 단순히 돈을 아끼는 것을 넘어선 중요한 경제적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5천 원을 1만 원으로 불리는 과정에서 감사를 배우고, 돈의 가치와 소중함을 체감하게 된 것인데요. 나중에 성인이 되어 주변 사람들과 용돈 이야기를 나누면서, 당시 자신의 용돈이 결코 적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물가 상승률을 고려했을 때, 용돈기입장을 쓰지 않았던 친구들보다 훨씬 많은 용돈을 받았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합니다. 용돈기입장 훈련은 아버지의 세심하고 체계적인 재정 교육 방식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시입니다.
🙏 선교 후원 훈련: 나눔과 섬김의 삶을 체득하다
현승원 의장의 아버지의 교육은 재정 훈련에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불구하고 선교사 후원을 실천하는 모습을 자녀에게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선교사들이 집을 방문하여 숙박하는 것에 대해 전혀 부담스러워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외부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선교사들이 방문하면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배려하고, 떠날 때는 달러로 환전해 놓은 돈을 100달러 또는 50달러씩 챙겨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아버지는 선교사 후원을 통해 나눔과 섬김의 가치를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아들에게는 15,000원 용돈을 주면서 선교사에게는 거액을 후원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서운함보다는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아버지의 행동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선교사님들을 돕는 일에 동참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삶을 통해 자연스럽게 선교의 중요성을 깨닫고, 나눔의 기쁨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어느덧 현승원 의장도 성경책 사이에 봉투를 찾아다니며 선교 헌금을 준비하는 아이로 성장했습니다.
아버지의 선교 후원 훈련은 물질적인 나눔을 넘어, 마음의 자세를 가르치는 교육이었습니다. 선교사님들을 단순히 ‘도움을 주는 대상’이 아닌, ‘존경하고 섬겨야 할 대상’으로 대하는 아버지의 태도를 보면서 현승원 의장은 자연스럽게 섬김의 자세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물질적인 풍요로움보다 나눔과 섬김의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버지의 신앙이 아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진 것입니다.
✝️ 목사의 꿈과 헌신: 삶으로 보여준 신앙의 본질
현승원 의장의 어린 시절 꿈은 목사였습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헌신적인 신앙생활과 주변 성도들의 사랑 속에서 자연스럽게 목사의 꿈을 키우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의 탄생에는 특별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습니다. 결혼 후 5년 동안 아이가 없었던 부모님은 간절한 기도 끝에 현승원 의장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임신 기간 동안 잦은 유산 위협을 겪었지만, 그때마다 교회 권사님, 집사님들이 함께 기도하며 간절히 염원했습니다. 5년 만에 얻은 귀한 아들이었던 만큼, 부모님은 그를 하나님께 드리기로 서원하고 목회자의 길을 걷도록 키우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목회자의 길을 강요하기보다, 교회 공동체의 사랑 속에서 자연스럽게 꿈을 키우도록 이끌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현승원 의장에게 “커서 목사님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을 주기보다, “목사님이 될 것”이라고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장래 희망을 묻는 질문에 강대상에서 설교하는 그림을 그렸을 때, 선생님은 “특별히 기도해야 할 아이”라며 격려해주었습니다. 주변의 긍정적인 기대와 사랑 속에서 현승원 의장은 목사의 꿈을 부담 없이 키워나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승원 의장의 삶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목사의 꿈 대신 교육 사업가의 길을 걷게 되었지만, 아버지로부터 받은 신앙 교육은 그의 삶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몸에 밴 신앙적 가치관은 사업가로서 성공하는 과정에서도 중요한 지침이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신앙 교육은 단순히 종교적인 가르침을 넘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적용될 수 있는 지혜와 원칙을 제시했습니다.
💔 교회 분열과 핍박: 시련 속에서 발견한 신앙의 깊이
현승원 의장의 가정은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개척교회가 성장하면서 교회 분열이라는 아픔을 겪게 되었고, 아버지 또한 큰 상처와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건강까지 악화될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내던 아버지는 친구의 권유로 BTJ(Back to Jerusalem) 예수전도단 훈련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훈련을 통해 아버지는 상처를 치유받고 신앙을 회복했을 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 더욱 따뜻하고 이해심 많은 아버지로 변화되었습니다.
BTJ 훈련 이후, 가정에는 큰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가정 내 체벌이 사라지고, 자녀들과의 소통 방식이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강압적인 훈육 대신, 용돈기입장처럼 자녀의 성장을 돕는 긍정적인 교육 방식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아버지의 변화는 가정 분위기를 화목하게 만들었고, 자녀들은 더욱 아버지에게 마음을 열고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BTJ 훈련은 아버지 개인의 변화뿐만 아니라, 가정 전체의 신앙생활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훈련 간사로 헌신한 아버지는 인도 선교를 다녀온 후, 가족들에게 선교사 후원을 제안했습니다. 90년대 중반, 선교라는 개념조차 생소했던 시절에 아버지의 결단은 파격적인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은 아버지의 뜻에 적극적으로 동참했고, 이때부터 본격적인 선교 후원이 시작되었습니다.
✉️ 선교 편지 묵상: 온 가족이 함께하는 신앙 훈련
선교 후원은 단순한 물질적 지원을 넘어, 온 가족이 함께하는 신앙 훈련으로 발전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1년에 3번씩 선교지를 방문하고, 후원하는 선교사들의 소식을 꼼꼼히 챙겼습니다. 선교사들이 보내오는 편지는 단순한 안부 편지를 넘어, 생생한 선교 현장의 이야기와 감동적인 간증으로 가득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선교 편지를 가족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했고, 가정 예배 시간에 편지를 낭독하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선교 편지 낭독은 단순한 행사적인 예배 순서가 아니었습니다. 편지를 통해 선교사들의 삶과 사역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그들의 헌신과 열정에 감동받았습니다. 온 가족은 선교 편지를 통해 선교의 중요성을 깨닫고, 선교사님들을 향한 존경심과 사랑을 키워나갔습니다. 선교 편지는 단순한 글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선교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와 감동은 현승원 의장의 가슴속에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선교 편지 낭독 시간이 길어지면서, 아버지께서는 더욱 창의적인 방법을 고안했습니다. 거실에 세계 지도를 붙여 놓고, 후원하는 선교사들의 사진과 편지를 해당 지역에 붙여 놓았습니다. 세계 지도는 단순한 장식품이 아닌, 살아있는 교육 자료가 되었습니다. 지도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세계 각지의 선교 현황을 배우고, 선교사님들을 위한 기도 제목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시각적인 자료를 활용한 교육은 학습 효과를 높이고, 선교에 대한 관심을 더욱 증폭시켰습니다.
선교 편지 훈련은 가정 예배를 넘어, 가족 여행으로까지 확장되었습니다. 가족 여행을 떠날 때도 아버지께서는 선교 편지 가방을 챙겨와 저녁마다 ‘가족 수련회’를 열었습니다. 여행지에서도 선교 편지를 읽고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가족들은 불평 없이 아버지의 뜻에 따랐습니다. 여행과 수련회를 결합한 독특한 가족 문화는 즐거움과 신앙 훈련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가족 수련회는 단순한 여행이 아닌, 온 가족이 함께 성장하는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 선교 편지를 읽고 선교사님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물론, 1년 후, 3년 후, 10년 후의 미래를 설계하고 기도 제목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미래를 계획하고 공유하는 과정에서 가족 간의 유대감이 더욱 깊어지고, 서로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긍정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수련회의 마지막 순서는 ‘꿀단지 기도’였습니다. 가족 구성원 한 명을 가운데 앉혀 놓고, 돌아가면서 칭찬과 격려를 해주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은 서로에게 힘과 용기를 북돋아 주는 따뜻한 경험이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고등학교 시절까지 지속된 선교 편지 훈련은 현승원 의장의 삶에 깊숙이 뿌리내렸습니다. 그는 “다른 집도 다 이렇게 하는 줄 알았다”고 회상할 정도로, 선교 편지 묵상은 자연스러운 일상이었습니다. 선교 편지 훈련은 단순한 종교 교육을 넘어, 삶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나눔과 섬김, 헌신과 사랑이라는 기독교적 가치관은 그의 삶의 나침반이 되어주었습니다.
🤔 아버지의 교육 방식에 대한 의문: 반발심은 없었을까?
엄격하고 체계적인 아버지의 교육 방식에 대해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자녀 입장에서 반발심이나 불만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요? 특히 외부 손님(선교사)이 집에 머무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승원 의장은 아버지의 교육 방식에 대해 단 한 번도 반발심을 느낀 적이 없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하자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였고, 선교사님들이 집에 오는 것도 자연스럽게 여겼습니다.
아버지의 권위는 강압적인 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삶으로 보여주는 진실함과 일관성, 그리고 공명정대한 태도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권위였습니다. 부모님은 항상 먼저 좋은 것을 보여주고, 좋은 것을 먼저 양보하는 삶을 실천했습니다. 현승원 의장이 어렸을 때 고기를 좋아했지만, 늘 저렴한 냉동 돼지 불고기만 식탁에 올라왔던 반면, 외부 손님에게는 최고의 음식을 대접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아버지의 진실함은 자녀의 마음을 움직이는 강력한 힘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자녀를 대할 때도 공명정대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대충 얼버무리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키고, 자신이 책임져야 할 일에 대해서는 흐트러짐 없이 완수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원칙을 지키는 아버지의 모습은 자녀에게 신뢰감을 심어주었고, 아버지의 말에 순종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아버지의 모습은 마치 ‘믿음의 해병대’와 같았습니다.
🙏 5살 때 겪은 질병과 10번의 기도: 믿음의 확신을 얻다
현승원 의장은 5살 때 원인을 알 수 없는 다리 통증으로 고통받았습니다. 동네 병원에서는 소아 성 관절염이라는 진단을 내리고, 심각한 경우 다리를 절단해야 할 수도 있다는 절망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큰 병원으로 옮겨 정밀 검사를 받았지만, 병명조차 제대로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어머니는 절망하지 않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병실이 없어 입원조차 어려웠지만,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 덕분에 기적적으로 병실을 배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병, 병실조차 없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어머니는 기도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와 헌신적인 간호에도 불구하고, 병세는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어머니는 병실에서 흘러나오는 찬송가를 듣고 문득 ‘어린 시절 주일학교에서 배웠던 성경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여리고 성벽이 무너지는 기적과 같은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어머니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현승원 의장에게 “우리도 기적을 체험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어머니의 제안에 현승원 의장은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5살 어린 나이였지만, 이미 주일학교에서 성경 이야기를 통해 믿음을 키워왔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교회 권사님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함께 기도하기로 했습니다. 현승원 의장은 아픈 다리에 손을 얹고, 어머니와 권사님들과 함께 10번이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는 동안 현승원 의장은 가장 좋아하던 찬송가 ‘내 주는 반석이시니’를 불렀습니다. 간절한 기도와 찬양 속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렇게 아프던 다리가 씻은 듯이 나았고, 걷는 것은 물론 뛰는 것까지 가능해졌습니다. 기적적인 치유 경험은 현승원 의장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확신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기적적인 치유 경험 이후, 현승원 의장은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다져나갔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교회에서 돌아오는 길에 옆집 아저씨가 “교회 다녀와서 하나님 만났냐”고 묻는 황당한 질문을 던졌을 때, “하나님은 당연히 살아계신다”고 확신에 찬 대답을 했습니다. 5살 때 겪은 질병과 치유 경험은 그의 삶에 깊은 믿음의 뿌리를 내리게 했습니다. 어린 시절의 경험은 단순히 개인적인 간증을 넘어, 그의 삶 전체를 지배하는 신앙적 확신이 되었습니다.
🤔 수능 실패와 재수: 좌절 속에서 깨달은 세상의 이치
탄탄대로를 걸어갈 것 같았던 현승원 의장에게도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믿음 안에서 열심히 공부했지만, 수능에서 기대 이하의 점수를 받은 것입니다. 수능 실패는 처음으로 세상적인 좌절감을 안겨주었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까지 생겼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모든 것을 책임져주신다고 했는데,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걸까?”라는 의문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수능 실패는 오히려 그에게 중요한 깨달음을 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연 법칙 또한 만드셨고, 노력 없이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기도만으로는 안 된다. 노력과 믿음이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재수를 결심하고 다시 공부에 매진하면서, 그는 비로소 세상의 법칙과 신앙의 균형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재수를 결심했을 때, 부모님은 오히려 반대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공부에 소홀했던 모습을 떠올리며 재수 성공 가능성을 낮게 보았던 것입니다. 심지어 유학 자금까지 포기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지만, 현승원 의장의 의지는 확고했습니다. 처음으로 부모님의 뜻을 거스르고 재수를 강행하면서, 그는 세상적인 성공에 대한 갈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인정하는 성공을 이루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았습니다.
재수 생활은 쉽지 않았지만, 오히려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인터넷 강의를 통해 새로운 학습 방식을 접하고, 자신만의 강점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인터넷 강의 강사라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되면서, 그는 비로소 세상적인 성공과 신앙적인 가치관을 조화시켜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수능 실패라는 좌절은 그를 더욱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 인터넷 강의 강사의 꿈: 새로운 길을 발견하다
재수 학원에서 만난 친구를 통해 인터넷 강의라는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친구는 유명 인터넷 강사의 강의를 극찬하며, 그 강의를 듣고 성적이 크게 향상되었다고 간증했습니다. 친구의 간증은 현승원 의장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인터넷 강의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집에 돌아와 곧바로 친구가 추천한 강사의 강의를 찾아 들었습니다.
인터넷 강의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기존의 획일적인 학교, 학원 수업과는 전혀 다른, 재미있고 몰입도 높은 강의에 푹 빠져들었습니다. 특히 영어 과목 강의는 그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영어를 가장 싫어했던 그였지만, 인터넷 강의를 통해 영어 공부에 재미를 느끼고 자신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인터넷 강의 강사라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되면서, 그는 비로소 자신의 재능과 열정을 쏟을 분야를 찾았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인터넷 강의 강사의 꿈은 세상적인 성공에 대한 갈망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당시 인터넷 강의 시장은 급성장하고 있었고, 인기 강사들은 높은 수입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나도 인터넷 강의 강사가 되어 성공하고 싶다”는 욕망이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의 기대와는 다른 방향이었기 때문에, 인터넷 강의 강사의 꿈을 쉽게 드러낼 수 없었습니다. 부모님의 꿈은 목회자였지만, 현승원 의장의 꿈은 인터넷 강의 강사였습니다. 두 꿈 사이에서 갈등했지만, 그는 결국 자신의 꿈을 선택했습니다.
대학교에 진학해서도 인터넷 강의 강사의 꿈을 포기하지 못했습니다. 부모님 몰래 인터넷 강의를 듣고, 과외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인터넷 강의 수강료를 충당했습니다. 과외는 단순한 아르바이트가 아닌, 인터넷 강의 강사가 되기 위한 실전 훈련이었습니다. 2시간 과외를 위해 6시간을 준비하고, 학생의 성적 향상과 만족도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과외를 통해 강사로서의 자질과 역량을 키워나가면서, 그는 더욱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나도 1등 강사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았습니다.
😥 학원 강사 도전 실패: 좌절과 교만 속에서 길을 잃다
인터넷 강의 강사가 되기 위해 학원 강사 경력을 쌓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동네 학원 면접에서 실력 부족을 이유로 거절당하고,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내가 부족하다니, 말도 안 돼!”라는 오만함과 분노가 그의 마음을 지배했습니다. 실패를 인정하기보다, 오히려 자신을 과신하고 더욱 교만해졌습니다. 좌절과 교만은 그를 더욱 엇나가게 만들었고, 하나님과의 관계 또한 멀어지게 만들었습니다.
자존심 회복을 위해 더욱 무리하게 학원 강사 자리를 찾아 헤맸습니다. 겨우 한 학원에 헐값에 채용되었지만, 열악한 근무 환경과 낮은 처우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이런 곳에서 일할 바에야, 차라리 과외나 계속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오기로 학원 강사 생활을 버텼습니다. 오기와 자존심은 그를 더욱 힘든 상황으로 몰아넣었고, 점점 지쳐갔습니다.
학원 강사 생활은 예상보다 훨씬 힘들었습니다. 열정만으로는 부족했고,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히는 날들이 많았습니다. 수강생 부족으로 폐강 위기에 놓이기도 하고, 원장과의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끊임없는 좌절과 실패 속에서 그는 점점 지쳐갔고, “내가 과연 이 길을 갈 수 있을까?”라는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좌절과 실패는 그를 겸손하게 만들고,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힘든 학원 강사 생활 속에서도 희망은 있었습니다. 자신만의 강의 스타일을 개발하고, 수강생들의 성적 향상을 이끌어내면서 강사로서의 실력을 인정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수강생들의 입소문 덕분에 수강생이 늘어나고, 학원 내에서도 인정받는 강사로 성장했습니다. 작은 성공 경험은 그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고, 다시 한번 인터넷 강의 강사의 꿈을 향해 나아갈 용기를 주었습니다.
🚀 온라인 과외 시스템 구축: 새로운 성공 모델을 만들다
학원 강사로서 성공 가능성을 확인했지만, 인터넷 강의 강사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학원 시스템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강의하고 싶다는 열망이 더욱 커졌습니다. 고민 끝에 온라인 과외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온라인 과외는 시간과 장소에 제약 없이, 원하는 학생들에게 최고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혁신적인 시스템이었습니다.
온라인 과외 시스템 구축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습니다. 생소한 기술을 익혀야 했고, 시스템 개발에 필요한 자금도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밤낮으로 연구하고 노력한 결과, 마침내 온라인 과외 시스템을 완성했습니다. 자신만의 온라인 과외 플랫폼을 구축하고, 본격적으로 학생 모집에 나섰습니다.
온라인 과외는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습니다. 기존 과외 방식과는 차별화된,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온라인 학습 시스템은 학생과 학부모들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했습니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수강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온라인 과외 사업은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온라인 과외 시스템 구축은 현승원 의장에게 새로운 성공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온라인 과외 성공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축적해온 강사로서의 경험과 노하우,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 그리고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결합된 결과였습니다. 온라인 과외 시스템은 교육 시장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고, 현승원 의장은 교육 사업가로서 성공적인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 동생과의 동업과 갈등: 사업 확장의 그림자
온라인 과외 사업이 성공적으로 궤도에 오르자, 사업 확장을 위해 동생과 동업을 시작했습니다. 동생은 행정, 관리 분야에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고, 현승원 의장은 콘텐츠 개발, 강의 제작에 집중하면서 시너지를 창출했습니다. 형제는 서로 협력하며 사업을 확장해나갔고, 회사는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사업이 커지면서 형제 사이에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사업 운영 방식, 의사 결정 과정, 수익 배분 문제 등에서 의견 차이가 발생하고, 갈등이 심화되었습니다. 특히 사업 확장에 대한 견해 차이가 컸습니다. 현승원 의장은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빠른 성장을 추구했지만, 동생은 안정적인 성장을 선호했습니다. 성장 속도에 대한 견해 차이는 결국 형제 관계를 악화시키고, 동업 관계를 끝내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습니다.
동생과의 갈등은 사업 확장의 그림자였습니다. 사업이 커질수록 의사 결정 과정은 복잡해지고, 이해관계는 첨예하게 대립했습니다. 형제라는 끈끈한 관계도 사업적인 갈등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결국 동생은 회사를 떠나고, 현승원 의장은 홀로 회사를 이끌어가게 되었습니다. 동생과의 결별은 사업적으로 큰 손실이었지만, 오히려 그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되었습니다.
🏢 직영 학원 확장과 위기: 다시 찾아온 시련
동생과 결별 후, 홀로 회사를 이끌어가면서 사업 확장에 더욱 박차를 가했습니다. 온라인 과외 시스템을 기반으로 직영 학원을 전국적으로 확장하는 공격적인 전략을 추진했습니다. 단기간에 80개, 90개에 달하는 직영 학원을 설립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급격한 성장은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초래했습니다.
직영 학원 확장 과정에서 내부적인 문제들이 불거지기 시작했습니다. 급격한 확장 속도에 조직 문화가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고, 운영 시스템 또한 미흡했습니다. 원장들의 불만이 속출하고, 직원들의 이탈이 잦아지는 등 조직 내부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외부적인 위협 또한 만만치 않았습니다. 경쟁 업체들의 견제와 시장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회사는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급격한 성장 뒤에는 예상치 못한 위기가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화려해 보였지만, 속으로는 곪아가고 있었습니다. 매출은 줄어들고, 수익성은 악화되는 등 경영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회사가 망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했습니다. 다시 한번 시련이 찾아왔지만, 이번에는 더욱 심각한 위기였습니다.
🙏 백 투 더 베이직: 본질로 돌아가다
위기 상황 속에서 현승원 의장은 ‘백 투 더 베이직(Back to the Basic)’을 외쳤습니다. “본질로 돌아가자! 초심으로 돌아가자!” 화려한 외형보다 내실을 다지고, 성과 중심의 경영 방식에서 사람 중심의 경영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집중하고, 진정한 교육의 가치를 실현하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조직 문화를 혁신하고 운영 시스템을 재정비했습니다.
가장 먼저 변화를 시도한 것은 조직 문화였습니다. 경쟁과 효율 중심의 문화에서 협력과 소통 중심의 문화로 바꾸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직원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해 힘썼습니다. 운영 시스템 또한 대대적으로 개선했습니다. 비효율적인 업무 프로세스를 개선하고, 직원들의 업무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본질에 집중하는 경영 방식 전환은 서서히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본질 중심 경영은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조직 문화가 긍정적으로 바뀌고,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아졌습니다. 수강생들의 만족도 또한 높아지면서, 매출과 수익성이 점차 회복되었습니다.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한번 성장 궤도에 오르는 데 성공했습니다. 백 투 더 베이직은 단순한 구호가 아닌, 위기를 극복하고 재도약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위기를 통해 현승원 의장은 진정한 리더십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혼자 잘하는 리더가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직원들을 존중하고, 함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리더십이야말로 조직을 성공으로 이끄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위기는 그를 더욱 성숙한 리더로 성장시키는 값진 경험이 되었습니다.
💖 NGO 후원과 선교 법인 설립: 사회적 책임 실천
회사가 안정적으로 성장궤도에 오르자,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배운 나눔과 섬김의 가치를 실천하기 위해 NGO 단체를 통해 꾸준히 기부하고, 선교 법인을 설립하여 선교사 후원에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기부는 단순한 사회 공헌 활동을 넘어, 그의 삶의 중요한 가치가 되었습니다.
NGO 후원은 기아대책, 컴패션, 월드비전 등 다양한 단체를 통해 진행되었습니다. 수강생 10명당 1명의 아동을 후원하는 ‘10to1’ 캠페인을 통해 나눔 문화 확산에 앞장섰습니다. 선교 법인 설립은 오랜 숙원 사업이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꿈꿔왔던 선교사 숙소 건립을 위해 사재를 출연하고, 선교 법인 ‘해피니스 291’을 설립했습니다. 선교 법인은 선교사 숙소 운영뿐만 아니라, 다양한 선교 지원 사업을 펼치며 한국 교회 선교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선교 법인 설립은 물질적인 헌신뿐만 아니라, 그의 신앙적 가치관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행보였습니다. “내 재물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다”라는 청지기 정신을 실천하고, 사업을 통해 얻은 수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선교 법인 설립은 단순한 기부를 넘어, 그의 삶의 방향과 목적을 제시했습니다. 이제 그의 삶의 중심에는 ‘하나님 나라 확장’이라는 분명한 목표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 1년에 한 번, 천 명의 학생에게 복음을 전하다
사회적 책임 실천과 더불어, 복음 전파에도 열정적으로 헌신하고 있습니다. 매년 수능 시험이 끝난 후, 1천 명의 학생들을 초청하여 무료 강연회를 개최하고, 강연회 말미에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강연회는 단순한 입시 강연회를 넘어, 학생들에게 삶의 의미와 목적을 제시하는 특별한 시간입니다.
강연회에서 현승원 의장은 자신의 인생 스토리를 진솔하게 털어놓습니다. 어린 시절 질병으로 고통받았던 이야기, 수능 실패와 재수 경험, 사업 성공과 위기 극복 과정 등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며 학생들과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과 깨달음을 나누고, 삶의 어려움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도록 격려합니다. 강연회 말미에는 복음을 제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진정한 행복과 평안을 누릴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강연회는 놀라운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강연을 들은 학생들 중 많은 수가 교회에 등록하고,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변화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간증 편지와 감사 인사는 현승원 의장에게 큰 기쁨과 보람을 안겨줍니다. 복음 전파는 이제 그의 삶의 중요한 사명이 되었습니다.
1년에 한 번, 천 명의 학생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그의 삶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성공적인 교육 사업가를 꿈꿨지만, 이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고자 합니다. 복음 전파는 그의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새로운 꿈과 비전을 품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 참된 교육의 의미를 깨닫다: 자존감과 성취감
최근 현승원 의장은 ‘참된 교육의 의미’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학생들의 성적 향상에만 집중했지만, 이제는 “학생들의 자존감과 성취감을 높여주는 교육”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아들이 언어 치료를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고,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교육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성적 향상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학생들의 행복”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학생들이 스스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며, 자신의 잠재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의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회사를 운영하면서, 학생들의 자존감과 성취감을 높이는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행복한 교육 환경을 만들어나갈 계획입니다.
참된 교육의 의미를 깨닫는 과정에서, 그는 새로운 교육 비전을 품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교육이 아니라, 삶의 지혜를 가르치는 교육,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는 교육”을 실현하고 싶습니다.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인재를 양성하는 데 헌신할 계획입니다.
현승원 의장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성공적인 삶의 이면에는 아버지의 헌신적인 신앙 교육과 끊임없는 자기 성찰,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굳건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단순히 성공 스토리를 넘어, 진정한 행복과 성공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깊은 울림을 줍니다. 오늘 우리는 현승원 의장의 삶을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 에 대한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 청지기 재정 원칙: 7가지 핵심 원칙
현승원 의장은 재정 관리에 있어서도 ‘청지기 정신’을 강조합니다. 그는 7가지 재정 원칙을 세우고, 이를 철저히 지키며 재정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7가지 원칙은 단순히 돈을 모으고 불리는 기술이 아니라, 신앙적인 가치관에 기반한 재정 관리 철학입니다.
첫 번째 원칙은 ‘내 재정이 아닌 하나님의 재정으로 여겨라’ 입니다. “모든 재물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이라는 청지기 정신을 강조하며, 돈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것을 관리하는 청지기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두 번째 원칙은 ‘빚이 있는 상태에서 잠자지 마라’ 입니다. 빚은 청지기의 삶에 어울리지 않으며, 빚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세 번째 원칙은 ‘자산은 맡겨주신 것이므로 마이너스가 되지 않도록 관리하라’ 입니다. 자산을 낭비하거나 손실을 보는 것은 청지기의 도리가 아니며, 자산을 잘 관리하여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네 번째 원칙은 ‘주(主) 종목에 집중하라’ 입니다. 분산 투자보다는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분야, 즉 ‘주 종목’에 집중하여 전문성을 키우고, 이를 통해 재정적인 성과를 이루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다섯 번째 원칙은 ‘가치 있는 곳에 투자하라’ 입니다. 단순히 돈을 불리는 것보다 사회적으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에 투자하여 선한 영향력을 확산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여섯 번째 원칙은 ‘정직하고 투명하게 재정을 관리하라’ 입니다. 탈세나 불법적인 방법으로 재물을 축적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며, 정직하고 투명하게 재정을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일곱 번째 원칙은 ‘나누고 베푸는 삶을 실천하라’ 입니다. 재물을 혼자 독차지하지 않고, 어려운 이웃과 나누고 베풀며 살아야 하며, 이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7가지 재정 원칙은 단순한 경제 원칙을 넘어, 신앙적인 삶의 태도를 제시합니다. 돈을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세속적인 가치관에서 벗어나, 하나님 중심의 가치관을 가지고 재정을 관리하고 사용하는 것이 청지기의 본분이라고 강조합니다. 현승원 의장의 재정 원칙은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경종을 울리고, 진정한 부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귀한 가르침입니다.
현승원 의장의 이야기는 단순한 성공담이 아닌, 우리 모두에게 깊은 영감을 주는 감동적인 휴먼 스토리입니다. 그의 삶은 아버지의 신앙 교육과 굳건한 믿음, 끊임없는 노력과 헌신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결실입니다. 오늘 우리는 현승원 의장의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성공의 의미, 행복한 삶의 비결, 그리고 신앙의 가치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현승원 의장의 삶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도전을 받고, 희망을 얻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기를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