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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원 아나운서 마포대교 새벽예배 간증과 재활용 인생 이야기

요약

은혜로운 재활용 인생: 김재원 아나운서 마포대교 새벽예배 간증

## KBS 김재원 아나운서, 마포대교 새벽예배 간증: 은혜로운 삶의 여정과 재활용의 지혜

본 글에서는 KBS 김재원 아나운서가 "새롭게 하소서"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나눈 간증 내용을 상세히 정리하고, 그 안에 담긴 삶의 노하우와 깊은 의미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방송에서 김재원 아나운서는 자신의 인생 여정을 진솔하게 털어놓으며,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 아버지의 중풍, 그리고 아나운서로서의 성공에 이르기까지 겪었던 고난과 은혜를 감동적으로 전달했습니다. 본 내용은 텍스트 내용만을 충실히 정리했으며, 어떠한 개인적인 견해나 추가적인 정보는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김재원 아나운서의 간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삶의 지혜와 교훈을 중심으로, 구체적이고 디테일한 내용정량적으로 제시하여 독자들이 깊이 공감하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 당연하지 않음의 은혜: 은혜를 깨닫는 순간들

김재원 아나운서는 "인생을 살다 보면 당연한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있다"고 말하며 간증을 시작합니다. 그것은 바로 "은혜를 느끼는 순간"인데요, 그는 자신이 현재 이 자리에, 이 시간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당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했습니다. CBS "새롭게 하소서"에 출연하게 된 것 또한 그에게는 특별한 은혜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즐겨 듣던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된 것은 꿈같은 순간이었으며, 오랜 시간이 걸려 이루어진 꿈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렸습니다. 김재원 아나운서는 과거 "새롭게 하소서" MC 자리를 꿈꿨지만, 주영훈 씨의 뛰어난 진행 실력을 보며 겸손하게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이는 자신의 자리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타인의 능력을 인정하며 겸손함을 배우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그는 "하나님은 꿈을 기도로 들으시고 그 꿈에 응답하시는 분"이라고 강조하며, 자신의 삶 속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했습니다.

## 새벽 묵상과 마포대교 걷기: 일상 속 경건 훈련

김재원 아나운서는 매일 새벽 4시 45분에 출근하기 위해 5시 20분쯤 집을 나선다고 합니다. 그는 서울 공덕에서 여의도 KBS까지 약 4km 거리를 걸어서 출근하는데, 이 45분 동안의 걷기 시간이 그에게는 특별한 "경건의 시간"입니다. 마포대교를 건너 걸으며 인터넷 새벽 예배를 듣고, 말씀을 암송하고, 찬양하며 묵상 기도를 합니다. 또한 그날 방송 출연자와의 만남을 미리 준비하는 시간으로 활용합니다. 그는 걷기를 통해 "몸도 깨우고 마음도 깨고 머리도 깨는" 효과를 얻는다고 설명했습니다. 마포대교를 걷는 것은 단순한 출근길이 아닌, 하나님과 교제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영적인 여정입니다. 김재원 아나운서는 "하루하루를 여행처럼 살기에는 걷기가 최고"라고 강조하며, 퇴근길에도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면서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일상의 감정 쓰레기를 한강에 던져 버리는 경험을 한다고 합니다. 이는 출퇴근 시간을 단순한 이동 시간이 아닌, 영적인 성장과 심리적 정화를 위한 시간으로 활용하는 지혜를 보여줍니다. 그는 "새롭게 하소서"를 음성으로 듣는 청취자들이 출퇴근 시간을 예배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제시하며, 지루할 수 있는 시간을 가치 있는 시간으로 변화시키는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마포대교는 그에게 단순한 다리가 아닌, 하나님과의 만남과 묵상의 장소입니다. 운전 중 마포대교 위에서 그를 목격하고 문자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으며, 심지어 택배를 마포대교 위에서 받은 적도 있다고 합니다. 이는 그의 새벽 걷기 묵상이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경건 훈련임을 보여줍니다.

## 엄마의 얼굴: 오래된 애도의 시작과 치유

김재원 아나운서는 "엄마의 얼굴"이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이 책은 그에게 "오래된 애도"의 시작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13살 때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셨고, 14년 후에는 장모님이 두 번째 어머니가 되어주셨지만, 장모님 또한 작년 겨울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장모님의 죽음을 슬퍼하는 아내를 보면서, 그는 13년 전 어머니의 죽음을 제대로 애도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슬픔이 마음속에 고여 있더라"고 고백하며, 애도를 통해 슬픔을 표현하고 내보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45년 동안 마음속에 고여 있던 슬픔은 다른 관계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장모님을 잘 모시면서도 어머니에게 못 해 드린 것에 대한 미안함, 아내와의 관계에서도 어머니에 대한 해결되지 못한 감정이 영향을 미쳤습니다. "엄마의 얼굴" 책 쓰기는 오래된 애도를 시작하고 슬픔을 표현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김재원 아나운서는 "오늘 이 자리도 저의 애도의 한 과정"이라고 말하며, "예전 같으면 섭외에 왔을 때 거절했을 테지만, 이제는 말하기를 통해 어머니와 아버지의 슬픔을 고백하고, 비슷한 상황에 있는 분들과 함께 애도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는 책을 쓰는 이유에 대해, "오래전 윗세대들은 부모님을 떠나보내고도 충분히 슬퍼할 기회가 없었고, 애도라는 단어조차 몰랐다"며, "현재 부모님을 병간호하며 이별을 준비하거나,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안부 전화 제대로 못 드리는 분들, 살가운 말 한마디 못 하는 분들과 함께 부모님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자신의 ব্যক্তিগত적인 경험을 통해 보편적인 인간의 슬픔을 공감하고, 함께 위로받고자 하는 마음을 보여줍니다. 김재원 아나운서는 방송에서 어머니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해 본 적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그는 "엄마가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아버지가 나를 얼마나 아끼셨는지 누구 앞에서 고백한 적이 없다"며, "그분들이 떠나시고 남은 해결되지 못한 슬픔이 마음에 고여 있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그리움은 바로 "오래된 애도"이며, 애도를 통해 슬픔을 승화시키고 치유할 수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책 출간과 방송 출연을 통해 "훌륭한 애도의 시간"을 갖게 되어 감사하다고 표현했습니다.

## 어머니의 신앙 유산: 삶의 원동력

김재원 아나운서의 신앙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입니다. 친가 쪽 할아버지, 할머니 때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했고, 신앙을 가진 아버지가 믿지 않는 어머니와 결혼했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는 어머니에게 신앙을 강요하지 않고 끊임없이 기도했습니다. 김재원 아나운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가정환경조사서 종교란에 기독교라고 쓰고 싶어서 부모님께 졸랐고, 1977년 5월 1일 부모님은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5월 15일, 그는 처음으로 한강교회 주일학교에 발을 디뎠습니다. 그에게 기독교를 선택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이라고 믿습니다. 어머니는 신앙생활을 매우 열심히 하셨고, 새벽마다 창문을 열고 "예수님"을 외치고, 버스에서 옆 사람에게 전도하는 열정적인 신앙인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신앙생활이 감격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에는 슬픈 가족사가 숨겨져 있습니다. 1971년 12월 25일, 대연각 호텔 화재 사고 당시 어머니는 호텔 2층에서 미용실을 운영하고 계셨습니다. 사고 당일, 미용실 직원들과 크리스마스 야유회를 가기로 했었지만, 어머니는 야유회를 취소하지 않았고, 미용실 직원 중 몇 명이 화재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머니는 "내가 야유회 가자고만 안 했어도 아이들이 살아있을 텐데"라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후 5~6년 만에 예수님을 만나면서, 죄책감과 슬픔을 딛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새벽에 화장실에 가다 보면 어머니 방에서 방언 기도 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김재원 아나운서는 "인생의 첫 기억"이 어머니의 졸도 장면이었다고 합니다. 1971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아침, 어머니가 갑자기 졸도하셨고, 그날 밤 대연각 호텔 화재 사고 소식을 텔레비전으로 접했습니다. 그의 인생 첫 기억은 "잿빛 기억"이었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행복의 기운을 찾고, 슬픔을 토로하는 경험을 통해 잿빛 기억에 갇히지 않고 긍정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잿빛 기억은 흉터로 남지만, 흉터는 더 이상 아프지 않다"며, "기억만 간직하고 아픔은 떠나보내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오래된 애도 과정을 통해 1년의 과정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아직 떠나보내지 못했다는 증거"이며, 애도를 통해 슬픔을 극복하고 치유할 수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 13살, 엄마 없는 아이: 슬픔을 마주하는 어린 시절

김재원 아나운서는 13살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었습니다. 어머니는 담석증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았지만, 수술 중 간암 말기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치료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교회 사람들은 평일에도 찾아와 기도하고 찬송하며 위로했지만, 어머니의 병세는 악화되었고 겨울이 되면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 감기에 걸린 아들에게 섭섭해했다는 막내 이모의 말을 듣고 어머니 방에 갔지만, 이미 어머니는 의사소통이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친구들과 백화점에 책받침을 사러 갔던 토요일 저녁, 아버지로부터 어머니의 임종이 가까웠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교회 사람들과 이모들이 모여 찬송하며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았지만, 그는 잠이 들었고, 막내 이모의 깨움에 어머니의 임종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의 권유로 어머니의 눈을 감겨 드렸지만, 13살 어린 나이에 죽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슬픔을 표현하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그는 울지 않았고, 슬픔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어머니의 장례식이 집에서 치러졌는데, 해외 토픽에서 18시간 만에 살아난 사람 이야기를 듣고 어머니도 18시간 만에 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손님을 맞이하면서도 시간을 세고, 18시간이 되었을 때 관에 귀를 기울였지만, 어머니는 살아나지 않았습니다. 그때서야 어머니가 정말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슬픔을 느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학교에 전화해야 했지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장례식에만 있었습니다. 반 친구들이 장례식장에 찾아왔을 때, 그는 "내가 엄마 없는 아이가 되었구나"라는 사실을 실감했습니다. 교회에서 전도사님이 "재원이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공표하고 중고등부 전체가 통성기도를 해 줄 때, 그는 슬픔보다는 "내가 이제 엄마 없는 아이로 공표되었구나"라는 창피함과 슬픔을 느꼈습니다. 복도식 아파트 8층에서 어머니의 관을 곤돌라에 실어 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이제부터 내 인생도 흔들리겠구나"라는 불안감을 느꼈습니다. 어린 시절 겪은 어머니의 죽음은 그에게 큰 상처와 슬픔으로 남았고, 오랜 시간 동안 애도하지 못한 채 마음속에 묻어두었습니다.

## 엄마 없는 아들의 성장: 위로와 애도의 과정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김재원 아나운서는 엄마 없는 아들로서의 삶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옆집 할머니가 가끔 불러 밥을 챙겨주셨는데,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장떡이 어머니가 해주시던 서양식 반찬보다 더 맛있었습니다. 어느 날 장떡이 먹고 싶었지만, 내성적인 성격 탓에 할머니께 부탁하지 못하고 직접 만들어보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주일 점심시간, TV에서 방영되던 "우정의 무대" 프로그램의 "엄마 찾아 삼만리" 코너를 보면서 매주 폭풍 오열했습니다. 군대 가면 저 코너에 참여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 천국에 가면 엄마를 알아볼 수 있을까 하는 걱정, 엄마를 못 알아볼까 봐 두려워하며 눈물을 쏟았습니다. 이는 어머니의 부재로 인한 슬픔과 그리움을 간접적으로 해소하는 그만의 애도 방식이었습니다. 장례 후 아버지와 함께 안방에서 잠을 잤지만, 서로 슬픔을 드러내지 못하고 침묵했습니다. 친구 집에 가면 친구 어머니들이 밥을 많이 챙겨주셨고, 오랜만에 엄마 밥상을 받는 것 같아 허겁지겁 먹었습니다. 여전히 식탐이 많은 것은 어린 시절 엄마의 부재로 인한 결핍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는 매일 도시락을 싸주셨지만, 매일 똑같은 계란말이 반찬은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교회 중고등부를 열심히 다니며 신앙생활을 통해 위로를 받았고, 여름 수련회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얻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죄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면서 든든함을 느꼈습니다. 이는 어머니의 신앙 유산과 교회 공동체의 사랑, 그리고 개인적인 신앙 체험을 통해 슬픔을 극복하고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 아나운서의 꿈과 하나님의 인도하심: 재활용 인생

김재원 아나운서는 어린 시절부터 아나운서가 꿈이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을 깨닫고 포기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아나운서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마태복음 4장 19절 "내가 너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말씀을 마음에 품고 평신도 사역자의 삶을 살기로 결심했지만, 미국 유학 중 아버지의 중풍 발병 소식을 듣고 귀국하여 간병인이 되었습니다. 미국 유학생 신분에서 중풍병자 아들, 보호자로 신분이 바뀌면서 미래가 불투명해졌지만, 아버지를 헌신적으로 간호하며 아들로서의 책임을 다했습니다. 그러던 중, 병실에서 우연히 KBS 신입사원 모집 광고를 보고 아나운서 시험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그의 꿈을 알고 있었고, 원서를 구해다 주며 적극적으로 지지했습니다. 장인어른은 매일 신문을 스크랩해 주셨고, 병실 환자들과 보호자들은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결혼식 때 입었던 양복을 입고 시험을 보러 다니며, 5차까지 이어진 치열한 경쟁을 뚫고 KBS 아나운서가 되었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며, 아버지의 투병이라는 고난을 통해 얻게 된 값진 직업임을 고백했습니다. 아나운서가 된 후 춘천 방송총국으로 발령받아 새벽 근무를 자원하며, 퇴근 후 서울로 올라와 아버지 간병과 방송 업무를 병행했습니다. 성덕 바우만 살리기 캠페인 특별 생방송 춘천 중계차 연결을 통해 아버지와 병실 식구들에게 방송하는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었습니다. 방송 후, 재활 치료 중인 환자로부터 "골수 기증은 했냐"는 질문을 받고 부끄러움을 느껴 곧바로 골수 기증을 신청하고 헌혈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이를 통해 아나운서라는 직업이 단순한 직업이 아닌, "사역"임을 깨닫고 사회적 책임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리퀘스트 진행을 맡으면서, 책임 프로듀서로부터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는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아달라는 요청을 받고, 프로그램 진행뿐 아니라 사생활에서도 모범적인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했습니다. 아침마당 진행 역시 "아침 예배를 드리는 심정"으로 임하며, 출연자의 인생 이야기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위로와 감동을 전달하고자 노력합니다. 리얼 체험 세상을 품다 - 인도 라다크 탐험 프로그램 촬영 중, 해발 5328m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도로를 산악자전거로 오르는 미션을 수행하며 특별한 경험을 했습니다. 특히 3박 4일 동안 목동 가족과 함께 생활하면서, 400마리 양의 이름을 모두 외우고, 잃어버린 양을 찾아 헤매는 목동의 모습, 눈물을 흘리며 양의 뿔을 잘라주는 목동의 모습을 통해 깊은 감동과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양의 뿔을 자르는 것은 양의 눈을 보호하기 위한 사랑의 행위임을 깨닫고, 고난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묵상했습니다. 독도 생방송 중 사고로 턱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지만, 깁스를 하고 발음 연습을 하면서 오히려 발음이 더 좋아지는 역설적인 경험을 했습니다. 이는 고난을 통해 연단되고 성장하는 "재활용 인생"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김재원 아나운서는 자신을 "시대의 별"이 아닌 "동네 가로등"으로 비유하며, 화려함보다는 은은하게 빛을 비추며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존재가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캐나다 휴직 경험을 통해 "쉼과 안식"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하나님은 늘 "쉴 만한 물가, 푸른 초장"을 제공해 주신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김남조 시인의 "선물"이라는 시를 인용하며, "흙과 돌처럼 살아갈 줄 알았던 자신을 하나님께서 밀랍처럼 불을 켜시고 옥으로 빚어 존귀하게 만드셨다"고 고백했습니다. 자신을 "소주병"에서 "뜨거운 냄비 받침대"로 재활용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아나운서로서, 월드비전 홍보대사로서 "뜨거운 냄비 받침대"와 같은 삶을 살아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앤더슨과 에반스 사남매를 케냐에서 만나면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도전을 받고, 그들을 돕고 양육하는 삶에 보람을 느낍니다. 자신의 인생 여정을 "재활용"이라는 단어로 표현하며,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타인을 섬기는 삶을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그는 앞으로도 "하얀 스케치북"처럼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이 그려가시는 그림을 기대하며 살아가겠다고 했습니다. 퇴직 후의 삶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하나님이 부르시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겠다는 겸손한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간증이 "애도의 마음으로 나누었던 그리움의 이야기"가 되어, 이 영상을 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기쁨을 전하고, "엄마의 얼굴" 책을 통해 슬픔을 나누고 위로받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는 소망을 밝혔습니다. 방송 말미에 박영원 목사는 김재원 아나운서의 간증을 "트루먼 쇼"에 비유하며, 하나님께서 김재원 아나운서의 인생을 주인공으로 삼아 빚어가시는 감동적인 드라마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또한 김재원 아나운서의 부족함이 오히려 강점이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위로를 주는 존재가 되었다고 칭찬했습니다. 박영원 목사 역시 어머니를 20년 전에 여의었지만, 아직도 어머니 사진첩을 열어보지 못할 정도로 슬픔을 간직하고 있었음을 고백하며, 김재원 아나운서의 간증을 통해 "애도의 시간"이 필요했음을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박영원 목사는 김재원 아나운서에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말씀을 인용하며, 부족함 속에서 오히려 장점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격려했습니다. 김재원 아나운서는 자신의 간증을 경청해 준 박영원 목사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오히려 자신이 치유받고 가는 느낌"이라고 화답했습니다.

김재원 아나운서의 간증은 단순히 개인적인 경험을 나열하는 것을 넘어,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가는 여정을 감동적으로 보여줍니다. 그의 이야기는 슬픔과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계기를 제공할 것입니다. 특히 "재활용 인생"이라는 메시지는, 실패와 좌절을 딛고 일어서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용기를 북돋아 줍니다. 김재원 아나운서의 간증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과 울림을 주며, 삶의 어려움 속에서도 긍정적인 마음과 믿음을 잃지 않도록 격려하는 귀한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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