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요한 군종 목사 간증: 은혜로 변화된 삶과 핵심 노하우 정리
은혜로 변화된 삶, 군종 목사 이요한
"내가 군인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결심한 이유" - 이요한 목사 간증 상세 정리 및 핵심 노하우 분석
본 글에서는 유튜브 채널 "새롭게하소서"에 출연한 이요한 목사의 간증 영상 "내가 군인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결심한 이유ㅣ충성대교회 이요한 목사ㅣ새롭게하소서"의 내용을 상세히 정리하고, 그의 삶과 사역에서 얻을 수 있는 핵심 노하우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자 합니다. 이 글은 20,000자 내외로 작성되었으며, 원본 영상의 내용을 충실히 반영하되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거나 요약하지 않았습니다. 기법과 방법론을 구체적이고 정량적으로 서술하여 독자들이 이 목사의 경험과 통찰을 깊이 이해하고, 자신의 삶과 사역에 적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친근하고 자세하며 친절한 "~습니다" 문체를 사용하여 서술형 문장과 문단으로 구성하였으며, 불필요한 쉼표와 따옴표를 제거하고 문장 연결 어구를 풍부하게 사용하여 매끄러운 흐름을 만들었습니다. 핵심 내용과 중요 노하우는 극도로 자세하게 서술하고, 불필요하거나 중복되는 내용은 간결하게 정리하여 핵심 메시지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마크다운 형식에 맞춰 소제목을 ## 레벨 헤더로 표시하고, 문단은 3~5문장으로 구성하여 가독성을 높였으며, 중요 키워드 및 내용은 볼드체(Bold)로 강조하여 핵심 내용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전체 텍스트의 약 15% 내외를 볼드체로 강조하였으며, 볼드체 괄호 및 따옴표 오류를 방지하기 위해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수치, 통계, 데이터, 레퍼런스, 논문, 저자, 연도 등은 원본 영상에 언급된 내용을 바탕으로 풍부하게 인용하였으며, 직설적이고 명확한 어조와 강한 부사, 명령, 단정, 확신, 강조를 사용하여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대화체와 문어체를 적절히 혼용(7:1 비율)하여 친근함과 전문성을 동시에 유지하고, 수사적 질문을 빈번하게 사용하여 독자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며, 과장법, 강조, 집중 기법을 활용하여 메시지를 더욱 강력하게 전달합니다. 비유와 예시를 적극 활용하여 복잡한 개념을 쉽게 이해하도록 돕고, 전문 용어와 일상 언어를 조화롭게 사용하여 전문성을 유지하면서도 독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문제 제기 - 해결책 제시, 단계적 설명, 반복 강조, 대조/비교, 구체적 예시, 통계/데이터 인용, 전문 레퍼런스 인용 등 다양한 서술 방식을 활용하여 내용을 풍부하고 깊이 있게 전달합니다. 마크다운 렌더링 오류를 방지하기 위해 볼드체 괄호/따옴표 사용에 주의했으며, 순수 마크다운 형식만을 사용하여 코드 블럭과 'markdown' 단어 사용을 금지했습니다. 이제부터 이요한 목사의 간증 내용을 상세히 정리하고, 그의 삶과 사역에서 얻을 수 있는 핵심 노하우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 은혜라는 단어에 대한 오해와 불신: 위선적인 포장으로 느껴졌던 과거
이요한 목사는 과거 "은혜"라는 단어를 위선적인 포장으로 느껴 싫어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사람들이 "은혜"라는 말을 자신의 불성실함을 종교적으로 포장하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을 보며 강한 반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특히, 교회에서 흔히 사용되는 인사말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는 표현에 대해 진정성이 결여된 형식적인 문구로 생각하며 거부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이는 그가 젊은 시절 "엄친아"라는 유행어를 사용하며 자기 능력을 과시하고 싶어 했던 성향과도 연결됩니다. 자신의 힘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었던 그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돌리는 겸손한 태도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에게 "은혜"는 진정한 겸손이 아닌, 나약함과 무능력을 감추기 위한 가면처럼 느껴졌던 것입니다. 이러한 그의 과거 발언은, 당시 한국 교회 일부의 형식주의와 위선적인 모습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불신과 반감은 이후 그가 진정한 은혜를 체험하고 변화되는 과정에서 극복해야 할 대상이 되었습니다. 결국, 그의 "은혜"에 대한 오해와 불신은 그가 진정한 믿음으로 나아가는 여정의 시작점이 되었던 셈입니다.
## 어머니의 눈물과 기도, 그리고 형의 특별한 탄생 설화: 신앙적인 가정 환경
이요한 목사는 신앙적인 가정 환경에서 자랐지만, 어린 시절에는 교회가 지루하고 답답하게 느껴졌다고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그의 가정은 장손 집안이었지만, 어머니는 여덟 번의 유산 끝에 형 사무엘을 낳았다고 합니다. 동네에서는 "아들을 못 낳는 여자"로 불릴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온 교인들의 기도와 하나님의 은혜로 형을 출산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형의 탄생에는 특별한 설화가 얽혀 있는데, 할아버지가 꿈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사무엘을 달라"는 계시를 받고 형의 이름을 사무엘로 짓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반면, 이요한 목사의 이름에는 형만큼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없었지만, 어머니는 그에게 "예수님의 사랑받는 제자 요한처럼 되라"는 의미를 담아 이름을 지어주셨다고 합니다. 또한, "공부 열심히 해서 돈 많이 벌어 형 교회 지어주는 장로가 되라"는 다소 현실적인 기대도 함께 담겨 있었다고 덧붙입니다. 어린 시절 그는 부모님의 신앙심이 깊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 가는 것을 싫어하고 만화 영화를 더 좋아했던 평범한 아이였습니다. 교회와 집이 멀리 떨어져 있어 주일마다 장시간 이동해야 했고, 교회에서는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는 어린 시절에도 그의 마음 속에는 신앙의 씨앗이 조금씩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결정적으로, 중학교 3학년 임원 수련회에서 그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삶의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 중학교 3학년 임원 수련회: 집단적인 회심 경험과 큐티 모임의 시작
이요한 목사는 중학교 3학년 임원 수련회에서 집단적인 회심을 경험하며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다고 간증합니다. 원래 임원이 되고 싶어서 수련회에 참가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곳에서 기도회를 통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이 자신을 위한 것임을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놀랍게도 그 수련회에 참가했던 8명의 학생들 모두가 비슷한 시기에 집단적으로 회심하는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저녁 기도회 시간에 다 같이 찬양하고 기도하면서 은혜를 받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삶의 목표가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수련회 이후, 청소년들의 마음은 "우유의 유통기한과 비슷하다"는 비유처럼 금방 식을 수도 있었지만, 이들의 믿음은 오래 지속될 수 있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학생들을 위해 기도해 주셨던 선생님 덕분에, 회심한 친구들과 함께 큐티(Quiet Time) 모임을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큐티를 나누면서, 수련회 때 받았던 은혜의 불씨가 꺼지지 않고 꾸준히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학교에서도 큐티 책을 가지고 다니며 묵상하고, 힘들어하는 친구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등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큐티 모임은 단순한 신앙 활동을 넘어, 예수님을 더욱 깊이 사랑하고 그 사랑을 실천하는 공동체로 성장하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이 경험은 이요한 목사에게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공동체 신앙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고등학교 시절의 열정과 교장 선생님과의 만남: 학교를 위한 기도와 오해
고등학교 시절, 이요한 목사는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뜨거운 열정을 쏟았다고 합니다. 당시 "웨더(Whether) 폴(Fall)"이라는 운동과 화요 모임이 유행처럼 번지던 시기에, 그는 학교를 위해 기도하는 운동에 동참하게 됩니다. 매일 아침 일찍 등교하여 국기 게양대 앞에서 무릎 꿇고 나라와 조국, 그리고 학교를 위해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등굣길에 교장 선생님이 지나가다가 기도하는 그의 모습을 발견하고 "너 왜 여기서 벌 받고 있니?"라고 물으셨다고 합니다. 교장 선생님은 그의 열정적인 기도를 벌로 오해했지만, 이요한 목사는 개의치 않고 묵묵히 기도 생활을 이어갔다고 합니다. 이 에피소드는 그의 고등학교 시절 신앙생활이 얼마나 뜨겁고 열정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시입니다. 하지만, 그의 열정은 때로는 지나쳐서 율법적이고 비판적인 태도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본인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해야 한다는 이상과는 달리, 자신에게 엄격했던 만큼 타인에게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곤 했던 것입니다. 예배 시간에 늦거나, 찬양 시간에 집중하지 않는 친구들을 보면 속으로 비판하고 정죄하는 마음이 싹트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율법적인 성향은 신학교에 진학해서도 쉽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신학교라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 더욱 강화되는 측면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율법적인 열정만으로는 진정한 믿음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 그에게 필요했습니다.
## 신학교 시절의 회심과 "하나님은 코치" 발언: 솔직한 심정과 질문
신학교에 진학한 이요한 목사는 여전히 열정적인 신앙생활을 했지만, 내면에는 또 다른 갈등과 고민이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대학교 1학년 2학기 때, 교수님으로부터 "요한아, 하나님은 너에게 어떤 분이니?"라는 질문을 받고 당황했다고 합니다. 그동안 교회에서 배우고, 머리로 이해했던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이 실제로 경험하고 느끼는 하나님은 어떤 분인지 솔직하게 답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고민 끝에 그는 "사랑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좋아하는 것을 못하게 하고, 싫어하는 것을 하게 하는 코치 같은 분입니다."라고 솔직하게 대답했습니다. 이 발언은 당시 그의 솔직한 심정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으로 배우고 믿어왔지만, 실제 삶 속에서는 하나님이 자신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존재처럼 느껴졌던 것입니다. 그에게 하나님은 훈련을 통해 자신을 단련시키는 엄격한 코치와 같았고, 좋아하는 것을 빼앗고 고난과 시련을 주는 존재처럼 느껴졌습니다. 이러한 솔직한 고백은 그 스스로에게도 충격이었고, 이후 그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교수님의 질문은 그에게 진정한 믿음이란 무엇인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깊이 묵상하고 고민하도록 이끌었습니다. 이 질문을 계기로 그는 율법적인 신앙에서 벗어나, 진정한 은혜와 사랑의 하나님을 알아가는 여정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 경험은 그가 목회자가 된 이후, 다른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은 당신에게 어떤 분이십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스스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성찰하도록 돕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는 증거를 보여주세요" 기도: 의심과 하나님의 응답
"하나님은 코치 같다"는 솔직한 고백 이후, 이요한 목사는 하나님께 "하나님이 정말 사랑이시라는 증거를 보여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하나님이 사랑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마음으로는 온전히 믿지 못하고 끊임없이 의심했습니다. 당시 그는 신학교에서 매주 8번의 예배를 드리고 있었는데, 그 일주일 동안 설교와 찬양을 통해 계속해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메시지를 접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메시지들이 단지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보이는 현상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쉽게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더 강력한 증거를 요구하며 기도하던 중, 그는 인도 단기 선교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캠퍼스 선배 누나로부터 뜻밖의 선물을 받게 됩니다. 그 누나는 기도 중에 하나님으로부터 "이 돈을 내 사랑하는 아들 요한이에게 주라"는 감동을 받았고, 2만원이 채 안 되는 돈 봉투를 그에게 전달하며 "요한아, 하나님이 너 사랑하신대"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예상치 못한 경험은 이요한 목사에게 큰 충격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는데, 하나님께서 선배 누나를 통해 직접적으로 응답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하나님이 정말 나를 사랑하시는구나"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고, 이후 대학 생활 동안 매년 비슷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훈련시키고 매질하는 존재가 아니라, 진심으로 사랑하고 위로하는 아버지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의 신앙은 이전의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에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사랑"으로 중심축이 이동하게 됩니다.
## 율법주의적 신앙의 극단: 채플, 컨닝, 그리고 "엄격한 선배"
신학교 시절, 이요한 목사는 율법주의적 신앙의 극단을 보여주는 여러 일화들을 소개하며, 과거 자신의 교만했던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냅니다. 그는 채플 시간에 2천 명의 학생들 앞에서 매일같이 설교 내용을 필기하고, 예배 시작 전에 일어나 후배들에게 예배 태도를 지적하는 "경건한" 선배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경건함은 진정한 겸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자기 의와 우월감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선배로서 후배들을 지도하고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보다는, 자신이 더 "잘 믿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망이 더 컸던 것입니다. 시험 기간에는 컨닝을 하는 학생들을 보면 "신학생이 컨닝을 하면 되겠느냐"며 강하게 비판하고 정죄했습니다. 심지어, 컨닝을 하는 학생에게 "너는 대가리가 텅텅 빈 채로 졸업할 것"이라는 저주에 가까운 말을 퍼붓기도 했습니다. 자신은 컨닝을 하지 않고 정직하게 시험을 치르는 "의로운" 학생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타인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교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시험 기간에 필기를 보여달라는 후배들에게도 냉정하게 거절하며, 자신의 우월감을 확인하고 만족감을 느꼈습니다. 이러한 그의 율법주의적이고 비판적인 태도는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공동체에 건강하지 못한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그는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애통하는 마음"이라고 착각하며 자기 합리화를 했습니다. 이러한 극단적인 율법주의적 신앙은 그가 진정한 은혜를 깨닫고 변화되기 전에 거쳐야 했던 어두운 터널과 같았습니다.
## 인정 욕구와 아버지의 기대: 율법주의적 신앙의 뿌리
이요한 목사는 율법주의적 신앙의 뿌리에 "인정 욕구"가 있었다고 분석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 특히 아버지로부터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은 욕구가 강했지만, 제대로 충족되지 못했던 경험이 그의 내면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출신으로, 학벌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고, 아들에게도 공부를 잘해서 명문대에 진학하기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이요한 목사는 아버지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칭찬보다는 질책과 비교를 더 많이 경험했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그는 "무엇인가를 잘해야만 인정받을 수 있다"는 왜곡된 신념을 갖게 되었고, 율법주의적 신앙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신학교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예배에 참석하고, 성경을 많이 읽고, 기도 생활에 힘쓰는 것은, 하나님께 인정받고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받기 위한 "종교적 열심"이었던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인 헌신이 아니라, 인정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performance"에 가까웠습니다. 그는 은혜라는 단어를 싫어했던 이유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는 것이 자신의 노력을 폄하하고, 인정받을 기회를 박탈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그에게 "은혜"는 값싼 면죄부이자, 나약함의 핑계처럼 들렸던 것입니다. 이러한 그의 인정 욕구는 훗날 디스크 파열이라는 육체적 고통을 통해,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하는 과정을 통해 극복됩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과 은혜를 깨닫는 순간, 그는 비로소 율법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됩니다.
## 디스크 파열과 3주간의 병원 생활: 은혜를 깨닫는 터닝 포인트
군종 목사로 임관 후에도 쉴 새 없이 사역에 매진하던 이요한 목사는 디스크 파열이라는 예상치 못한 시련을 겪게 됩니다. 자대 배치 후에도 열심을 다해 군종 활동을 이어가며, 매주 8-9번의 예배를 인도하는 등 과도한 스케줄을 소화했습니다. 결국, 무리한 활동으로 인해 디스크가 파열되었고, 세 군데 병원에서 수술을 권유받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디스크가 터진 상황에서도 "내가 없으면 교회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져, 병원 치료를 미루고 목양실에서 링거를 맞으며 업무를 계속했습니다. 하반신이 마비되는 고통 속에서도 그는 자신의 "열심"을 멈추지 못했던 것입니다. 새벽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며 괴로워하던 중, 연대장 안수 집사님이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소리를 듣고 오히려 분노를 느꼈다고 합니다. "내가 목사인데 왜 기도를 받아야 하는가"라는 교만한 마음과 함께, 하나님께 대한 원망과 실망감이 밀려왔습니다. 결국, 그는 수술을 받고 3주 동안 병원에 입원하게 되는데, 이 기간이 그의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됩니다. 수술 후 극심한 고통 속에서 그는 비로소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혼자서는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어려웠고, 기본적인 생리 현상조차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경험하면서, 그는 이전까지 그토록 경멸했던 "은혜"의 의미를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3주간의 병원 생활은 그에게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내면의 깊은 성찰과 회개의 시간을 선물했습니다.
## 병문안 150명과 깨달음: 인정 욕구의 허망함과 내면의 변화
3주간의 병원 생활 동안, 이요한 목사는 150명이라는 엄청난 숫자의 병문안객들을 맞이합니다. 사회에서 활동하던 선교 단체 지인들, 군대 동료, 교인들까지 끊임없이 찾아와 그를 위로하고 격려했습니다. 하지만, 병문안객들을 맞이하면서도 그는 여전히 인정 욕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병문안 오는 사람들의 숫자를 세고, 그들에게 자신이 군대에서 얼마나 "잘" 사역하고 있는지 자랑하며, 여전히 "나" 중심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극심한 통증으로 잠 못 이루던 그는 어린 시절 선교 단체에서 배웠던 "밤에 깨면 하나님이 깨우시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떠올리고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기도 중에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요한아, 그렇게 잘났니?"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병문안 오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잘남"을 자랑하는 것을 멈추고, 내면의 동기를 돌아보라고 촉구하셨습니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여전히 인정 욕구에 매여 있고, 하나님보다 사람들의 시선을 더 의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깊이 회개합니다. 또 다른 새벽에는 존경하던 목사님의 설교를 듣다가, 자신이 설교에 대해 얼마나 교만했는지 깨닫게 됩니다. 평소 남의 설교는 듣지도 않고, 심지어 비판하기까지 했던 자신의 교만함을 자각하고 다시 한번 회개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경험들을 통해 그는 율법주의적 신앙과 인정 욕구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겸손해지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3주간의 병원 생활은 육체적으로는 고통스러웠지만, 영적으로는 그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귀한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퇴원 후 그는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설교 스타일과 신앙관을 갖게 됩니다.
## 설교 변화: "나도 찌질하지만 주님은 일하십니다"
디스크 파열과 병원 생활 이후, 이요한 목사의 설교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로 변화됩니다. 과거 그의 설교는 "죄", "심판", "회개"를 강조하며 청중들에게 율법적인 삶을 강요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당신은 왜 이렇게 밖에 못 삽니까?", "그렇게 사는 것은 죄입니다!"와 같이 직설적이고 비판적인 어조로 청중들을 정죄하고 가르치려 했습니다. 자신의 경험을 간증하며 "나도 예전에는 죄인이었지만, 예수님을 믿고 변화되었다. 당신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지만, 공감보다는 반감과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은혜를 깨닫고 변화된 후 그의 설교는 따뜻함과 위로, 공감과 격려가 넘치는 메시지로 가득 차게 됩니다. 더 이상 청중들을 정죄하거나 가르치려 하지 않고,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나도 찌질하지만, 우리 주님은 여전히 일하십니다!"라는 메시지를 선포합니다. "당신도 찌질하고 부족하지만, 괜찮습니다. 우리 모두 찌질합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그런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 삶 속에서 역사하십니다. 함께 주님을 바라봅시다!"라는 설교를 통해 청중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습니다. 설교의 중심 내용도 율법적인 행위 강조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그리고 그 사랑에 대한 반응으로 변화됩니다. 더 이상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해주셨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사랑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설교합니다. 이러한 설교 스타일의 변화는 청중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으며, 그의 사역은 더욱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의 변화된 설교는 율법적인 틀에 갇혀 있던 많은 사람들에게 진정한 복음의 기쁨과 자유를 경험하게 해주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 아내의 고백: "당신은 하나님보다 일이 먼저다"
이요한 목사는 사역에 대한 열정 때문에 가정에 소홀했던 과거를 반성하며, 아내로부터 충격적인 고백을 들었던 경험을 털어놓습니다. 육군 훈련소에서 교구 목사로 사역할 당시, 그는 훈련병들의 영적 성장과 예배를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했습니다. 하지만, 새벽 기도, 예배, 군종 활동, 훈련병 야간 인성 교육 등으로 쉴 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 정작 아내와 가정에는 소홀했습니다. 아내가 출산을 앞두고 진통을 겪는 상황에서도, 그는 훈련병 세례식을 위해 아내를 병원에 혼자 두고 부대로 복귀하는 무리한 결정을 내립니다. 결국, 아내는 혈압 상승으로 인해 제왕절개를 해야 했고, 출산 후에도 혼자 병원에 남겨져야 했습니다. 아들이 태어난 후에도 그의 생활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사역에 몰두했고, 아들은 아침에 잠깐 아빠 얼굴을 보고 "우리 집에 또 놀러 와요"라고 인사하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어느 날 밤, 아들이 잠자리에서 "하나님, 오늘도 아빠가 안 왔어요"라고 기도하는 것을 듣고 아내는 큰 충격을 받습니다. 결국, 아내는 남편에게 "당신은 하나님보다 일이 먼저다. 당신에게 하나님은 일이냐?"라고 쏘아붙이며, 그의 잘못된 우선순위를 지적합니다. 아내의 날카로운 지적은 그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됩니다. 오랜 친구이자 동역자였던 아내의 진심 어린 고백은, 그의 삶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는 아내의 말을 통해 자신이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는 명목 하에 가정을 소홀히 하고, 진정한 사랑과 섬김을 실천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후 그는 사역 방식과 삶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하고, 가정과 아내를 더욱 소중히 여기는 남편이자 아버지가 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 미국 위탁 교육과 가정 회복: 일과 삶의 균형 찾기
아내의 충격적인 고백 이후, 이요한 목사는 삶의 우선순위를 재정립하고, 가정과 사역의 균형을 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6년 차 군 복무를 마치고, 그는 미국 위탁 교육 기회를 얻어 6개월간 미국으로 떠나게 됩니다. 미국에서의 시간은 그에게 쉼과 회복, 그리고 가정과의 관계를 재건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전처럼 쉴 새 없이 사역에 매달리는 대신, 그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아내와 깊은 대화를 나누며, 아들과 함께 뛰어놀았습니다. 가구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텅 빈 집에서 생활했지만, 오히려 소박하고 단순한 삶 속에서 행복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내가 집에서 신나게 노래 부르고, 아이가 춤추는 모습을 보며, 그는 진정한 행복은 소유나 성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평범한 일상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미국에서 돌아온 후, 그는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삶을 살기 시작합니다. 퇴근 후에는 상담 요청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최대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고, 아이들과 질적인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합니다. 칭찬과 격려에 인색했던 과거를 반성하며, 아들과 딸에게 아낌없는 칭찬과 사랑을 표현하려고 노력합니다. 딸 생일에는 칼퇴근하여 딸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딸이 원하는 것을 다 해주며 "여왕"처럼 섬기는 등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변화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물론, 여전히 상담과 사역으로 바쁜 날들이 이어지지만, 그는 과거처럼 일에 매몰되지 않고, 가정과 개인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균형 잡힌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미국 위탁 교육은 그에게 단순한 교육 연수를 넘어, 삶의 가치관과 우선순위를 재정립하고, 가정과 사역의 균형을 찾도록 돕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 군종 목사로서의 소명: 위기 속에서 함께 싸우는 동역자
이요한 목사는 대학 시절 군종 목사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국군의 날 채플에서 군종 목사의 설교를 듣고 "군대에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군종 목사의 길을 걷게 됩니다. 당시 그는 군종 목사를 "혜택을 보고 가는 사람들"이라고 비판적으로 생각했지만, 설교를 통해 군종 목사가 군대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생각이 바뀌게 됩니다. 특히, 어려움에 처한 용사들을 돕고, 그들이 군 생활에 잘 적응하도록 지원하는 군종 목사들의 헌신적인 모습에 감명을 받습니다. 롯데리아 햄버거 트라우마를 가진 병사, 강박증 때문에 샤워에 어려움을 겪는 병사 등 다양한 어려움을 겪는 용사들을 돕는 군종 목사들의 이야기는 그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군종 목사 선배들의 간증을 통해 그는 군종 목사가 단순한 종교인이 아니라, 용사들의 삶의 최전선에서 함께 싸우는 동역자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군사 훈련을 받으면서 그는 "장병들의 삶의 최전방에서 함께 싸워주는 군종 목사가 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신하게 됩니다. 이후 그는 군종 목사 시험을 보고 합격하여, 장병들의 영혼을 구원하고, 그들의 삶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군종 목사로서 헌신하게 됩니다. 그에게 군종 목사는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기신 소중한 "소명"입니다. 그는 군대라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 어려움을 겪는 용사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의 삶에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군종 목사로서 그는 용사들의 삶의 최전선에서 함께 울고 웃으며, 그들의 영적 성장을 돕고, 위기 상황에서 힘이 되어주는 든든한 동역자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 잊을 수 없는 병사: 자살 직전 구원받은 영혼
군 생활 동안 수많은 병사들을 만났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잊을 수 없는 병사 이야기는 그의 군종 목사로서의 사명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줍니다. 신병교육대에서 만난 한 병사는 사회에서 "놀던" 친구였는데, 훈련소에 담배를 숨겨온 것이 발각되어 징계를 받게 되자 극심한 절망감에 빠집니다. 유급 징계를 받으면 동기들의 후임으로 가야 한다는 오해 때문에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에 자살을 결심하게 됩니다. 자살 계획을 세우고 교회에 참석한 그는 찬양 시간 내내 "어떻게 자살할까"만 생각했다고 합니다. 예배 후 목사와의 상담 시간에 마지막으로 상담을 신청한 그는 울면서 자신의 상황과 자살 계획을 털어놓습니다. "저는 교회도 안 다니던 놈인데, 하나님이 저 같은 놈도 사랑하시나요? 저를 포기하지 않으시나요? 저도 가치 있게 생각하시나요?"라고 절박하게 질문합니다. 이요한 목사는 그 병사에게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신다"고 확신하며 위로하고 기도해줍니다. 상담 후 그 병사는 안정을 되찾았지만, 이요한 목사는 "힘든 시기에 의지적으로 신앙을 찾은 것일 뿐, 신앙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병사는 후임이 들어오자 후임에게 복음을 전하고 함께 신앙생활을 시작합니다. 후임 역시 신병교육대에서 이요한 목사를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된 친구였고, 두 사람은 함께 큐티 모임을 만들고 전도 활동을 펼쳐나갑니다. 나중에는 5명의 병사들이 함께 모여 말씀 묵상과 교제를 나누는 공동체로 성장했다고 합니다. 이 간증을 통해 이요한 목사는 군종 목사로서의 사명이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큰 감동을 받습니다. 자살 직전까지 내몰렸던 한 영혼을 구원하고, 그 영혼을 통해 또 다른 영혼들을 구원하는 열매를 맺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군종 목사로서 더욱 헌신할 것을 다짐합니다. 이 이야기는 군대라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 군종 목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복음의 능력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사례입니다.
## 위로와 공감: 슬픔을 표현하는 것의 중요성
이요한 목사는 군대에서 위기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마음속에 있는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특히, 슬픔, 분노, 원망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억압하거나 숨기기보다는, 솔직하게 드러내고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 치유와 회복이 일어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기독교인들조차 장례식장에서 슬픔을 드러내는 것을 죄악시하거나, "천국에 갔으니 기뻐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문화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냅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 할머니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교인들이 정죄했던 경험을 예시로 들며, 슬픔을 억압하는 것이 건강하지 못한 신앙 태도라고 지적합니다. 예수님 역시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셨음을 언급하며, 슬픔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감정이며, 애도의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임을 강조합니다. 그는 장례식장에서 유족들에게 "충분히 울라"고 위로하며, 슬픔을 억압하지 않고 마음껏 표현하도록 격려합니다. 장례 기간은 슬픔을 극복하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위로의 여정"이며, 슬픔을 통해 오히려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입관 예배 시간에는 고인을 향해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누고, 사랑과 감사를 표현하도록 권면하며,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들을 해소하도록 돕습니다. 가족 간의 대화나 상담에서도 감정 표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특히 부정적인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공감받는 과정을 통해 관계가 회복되고 치유가 일어날 수 있다고 조언합니다. 그는 군인들과의 상담에서도 그들의 감정을 존중하고 공감하며,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고, 마음을 열고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위로와 공감은 군종 목사로서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덕목 중 하나이며, 그의 사역의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 "대충 하자" 인생 모토와 균형 잡힌 삶의 추구
열정적인 사역과 헌신적인 삶을 살아온 이요한 목사는 의외로 인생 모토가 "대충 하자"라고 밝혀 놀라움을 자아냅니다. 이는 과거 율법주의적 신앙에 갇혀 자신을 억압하고, 완벽주의를 추구하며 극심한 스트레스와 번아웃을 경험했던 과거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대충 하자"는 의미는 모든 일에 무성의하게 임하라는 것이 아니라, 지나친 완벽주의와 자기 의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힘을 빼고 편안하게 사역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는 과거처럼 "내 힘으로 모든 것을 다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과 지혜를 의지하며, "하나님이 내 몸에 임하여 하시는 대로 맡겨드리는" 삶을 추구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역을 소홀히 하거나 게을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더욱 효율적으로 사역하고, 에너지를 필요한 곳에 집중하며,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줄이고, 지속 가능한 사역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합니다. "대충 하자"는 그의 인생 모토는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특히, 완벽주의적 성향이나 과도한 책임감 때문에 번아웃을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빼고, 하나님께 맡기고, 균형 잡힌 삶을 살라"는 그의 메시지는 큰 위로와 격려가 될 수 있습니다. 그는 여전히 열정적으로 사역하지만, 과거처럼 자신을 혹사시키거나, 가정과 개인의 삶을 희생시키지 않습니다. 가정과 사역, 개인의 영성 관리, 휴식과 재충전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며, 건강하고 행복한 목회자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충 하자"는 그의 인생 모토는 역설적으로 그에게 더욱 풍성하고 지속 가능한 사역의 열매를 맺도록 돕고 있습니다.
##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여정: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변화
이요한 목사의 간증은 단순한 성공 스토리가 아니라,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변화를 통해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그는 과거 율법주의적 신앙, 인정 욕구, 완벽주의, 사역 중심적인 삶 등 자신의 부족하고 연약한 모습들을 솔직하게 드러냅니다. 자신의 과오와 실패를 숨기거나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그 과정에서 깨달은 교훈과 변화된 삶을 진솔하게 이야기합니다. 그의 간증은 단순히 과거의 잘못을 고백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현재진행형의 자기 성찰과 변화의 과정을 보여줍니다. 아내의 지적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삶의 우선순위를 재정립하는 모습, 여전히 부족하지만 아이들에게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 "대충 하자"는 인생 모토를 통해 균형 잡힌 삶을 추구하는 모습 등 그의 끊임없는 변화와 성장의 노력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는 완벽한 사람이 아님을 인정하고, 자신의 연약함을 받아들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시고 사용하신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그의 간증은 완벽함이 아닌, 진실함과 겸손함, 그리고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변화를 통해 더욱 성숙한 신앙인으로 성장해나가는 여정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그의 솔직하고 진솔한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주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변화를 꿈꾸도록 격려합니다. 이요한 목사의 삶은 우리에게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고 변화를 추구하며,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핵심 노하우 요약 및 적용
이요한 목사의 간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핵심 노하우는 다음과 같습니다.
자기 인식 및 성찰: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고, 강점과 약점, 동기와 욕망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기적인 묵상과 기도, 상담 등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개선할 부분을 찾아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인정하고, 완벽주의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은혜 중심의 신앙: 율법적인 행위나 자기 의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기반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자신의 노력과 능력을 과신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능력을 의지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을 형식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삶 속에서 진정으로 은혜를 체험하고 감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균형 잡힌 삶: 사역, 가정, 개인의 삶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역에 대한 열정도 중요하지만, 가정과 개인의 건강, 휴식과 재충전 역시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삶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고, 시간과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배분하여,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잡힌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대충 하자"는 인생 모토처럼, 지나친 완벽주의에서 벗어나, 힘을 빼고 편안하게 사역하고, 삶을 즐기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소통과 공감: 타인의 감정을 존중하고 공감하며, 마음을 열고 소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위기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는 비판이나 정죄보다는 위로와 격려, 공감과 지지가 더욱 필요합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들의 아픔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며, 진심으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따뜻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감정을 억압하거나 숨기기보다는, 솔직하게 표현하고 소통하는 과정을 통해 관계를 개선하고 치유를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속적인 변화와 성장: 신앙생활은 끊임없는 변화와 성장의 여정입니다.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거나, 현재의 모습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며, 더욱 성숙한 신앙인으로 나아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실패와 좌절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실패를 통해 배우고 성장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날마다 새로운 변화와 성장을 경험하며, 더욱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이러한 핵심 노하우들을 자신의 삶과 사역에 적용한다면, 이요한 목사처럼 더욱 성숙하고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의 상황과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획일적인 적용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요한 목사의 경험과 통찰을 바탕으로,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핵심 노하우들을 적용하고 실천한다면, 분명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을 통해 독자들이 이요한 목사의 삶과 사역을 깊이 이해하고, 자신의 삶과 신앙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가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