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탄생과 희망 이야기 신애라 김성민 인생 역전 감동 정리
✨가족의 탄생과 희망✨ 네 인생 역전 드라마
가족의 탄생과 신비, 그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 신애라, 김성민, 스티브 모리슨, 권오희 새롭게하소서 상세 내용 정리
이번 글에서는 유튜브 채널 "새롭게하소서"에 출연한 신애라 님, 김성민 님, 스티브 모리슨 님, 권오희 님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상세하게 정리하여 전달해 드립니다. 이 분들의 진솔한 인생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깨달음을 선사하며, 특히 가족의 의미와 삶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합니다. 20000자 내외의 분량으로, 텍스트 내용을 상세히 정리하고, 핵심 노하우와 기법, 방법론 등을 구체적이고 정량적으로 서술하여, 독자 여러분께 깊이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추가적인 내용은 일절 금지하며, 오직 텍스트 내용만을 충실히 반영하여 한국어로 재작성하였고, 원문의 의미를 최대한 살리면서도 가독성을 높이는 데 주력했습니다.
1. 정리의 달인, 신애라: 비움으로써 채우는 삶의 지혜 ✨
신애라 님은 "신박한 정리" 프로그램을 통해 정리 컨설턴트로서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셨는데요, 그녀는 단순히 물건을 정리하는 것을 넘어, 인생을 정리하고 비움으로써 진정으로 소중한 것을 채우는 삶의 지혜를 이야기합니다. 그녀는 정리정돈을 좋아하지만 청소는 싫어한다고 밝히며, 역설적으로 정리를 통해 얻는 긍정적인 에너지에 대해 설명합니다. 특히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느꼈던 감정은 그녀에게 큰 전환점이 되었는데요, 어머니가 아끼던 물건들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떠나신 것을 보며, "아끼다 똥 된다"는 말처럼, 물건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홀트 센터 박물관에서 헐트 여사의 유품을 보면서는 더욱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하는데요, 낡은 가죽 가방, 성경책, 노트만이 헐트 여사의 유품으로 남아있는 것을 보며, 자신이 죽은 후에 남길 유품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장롱 속에 가득 찬 옷과 가방들이 과연 의미 있는 유품이 될 수 있을까 자문하며,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은 물질적인 풍요가 아닌, 정신적인 풍요임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신애라 님은 물건을 소유하는 것보다 인생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단순히 물건을 없애는 것이 아닌, 삶의 방향을 재정립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그녀는 또한 물건 정리를 통해 인생의 우선순위를 재정립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불필요한 물건들에 둘러싸여 에너지를 낭비하는 대신, 소중한 것들에 집중하고 공간의 의미를 되찾음으로써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리 전문가 팀의 도움을 받아 집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출연자들은 단순히 공간뿐만 아니라 인생까지 정리되는 경험을 한다고 합니다. 신애라 님은 정리 컨설턴트로서, 단순한 정리 기술뿐만 아니라 삶의 철학을 함께 전달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신애라 님은 28살에 구원의 확신을 얻은 후, 비로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고 고백합니다. 결혼 생활의 어려움 속에서 성경 공부를 시작했고, 구원의 확신을 통해 삶의 근본적인 문제가 자신의 영적 무지에 있음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성경 통독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고, 큐티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어지면서, 삶의 주인이 자신이 아닌 하나님임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구원의 확신 없이 습관적으로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며, 자신이 믿는 하나님이 진정으로 실존하는 하나님인지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신애라 님은 어머니의 투병과 죽음을 통해 더욱 깊은 신앙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위암 투병은 가족에게 큰 고통이었지만, 어머니는 오히려 그 시간을 통해 하나님과 더 깊은 관계를 맺고, 죽음 앞에서도 담대함을 잃지 않았다고 합니다. 임종을 앞둔 어머니의 모습은 신애라 님에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게 해주었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죽음이 끝이 아닌, 영원한 삶으로 나아가는 것임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에라 상조라는 별명처럼, 그녀는 주변 사람들의 임종을 지켜보며,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평안한 죽음을 간증하고, 죽음 이후의 소망을 이야기합니다.
그녀는 마틴 로이드 존스의 "십자가"라는 책을 통해 삶의 목적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추천으로 읽게 된 이 책은 그녀에게 하나님이 자신을 창조하신 이유가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고, 세상적인 성공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목적을 따라 살아가야 함을 알려주었습니다. 컴패션과의 만남은 그녀에게 하나님의 목적을 실현하는 구체적인 통로가 되었는데요, 필리핀 비전트립을 통해 가난과 고통 속에 있는 아이들을 만나면서, 나눔과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함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컴패션 홍보대사로서, 그녀는 아이들을 돕는 과정에서 오히려 자신이 더 큰 행복을 얻고, 삶의 공허함을 채울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신애라 님은 두 딸을 입양한 이야기도 감동적으로 전해주었습니다. 입양은 그녀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또 다른 방법이었는데요, 두 딸 예은이와 예진이를 통해 가족의 소중함과 사랑의 의미를 더욱 깊이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예은이와 주고받은 편지를 엮어 그림책 "오늘, 엄마에게"를 출간하며, 입양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해소하고 긍정적인 인식을 확산시키는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입양을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강조하며, 더 많은 사람들이 입양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갖기를 소망합니다. 두 딸의 사춘기를 겪으면서 섭섭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아이들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는 시간을 갖는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그녀에게 끊임없이 기도하게 만드는 존재이며, 자녀는 하나님이 맡겨주신 선물임을 고백합니다.
신애라 님은 마지막으로, 한국 교회가 입양과 위탁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기를 호소합니다. 교회마다 입양 및 위탁 관련 부서를 설치하고, 전문적인 교육을 통해 위탁 가정을 양성하여, 보육원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가정을 선물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녀는 또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매일매일 자신의 마지막 날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마지막 순간에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고민하며, 자녀들에게 신앙 유산을 물려주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죄에 대해 뻔뻔해져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죄를 짓더라도 하나님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회개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2. 삭막한 벽을 정원으로, 김성민 브라더스키퍼 대표: 고아라는 이름표를 희망으로 🌱
김성민 대표는 사회적 기업 "브라더스키퍼"를 통해 삭막한 벽을 정원으로 바꾸는 혁신적인 사업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미세먼지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친환경 사업인데요, 그의 기업은 특별한 채용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보육원 출신 청소년들을 우대하여 채용한다는 것입니다. 김 대표 또한 3살 때 보육원에 맡겨진 고아였기에, 보육원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직원들과 함께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는 보육원에서의 시간을 경력으로 인정하고, 보호 종료 청소년들의 자립을 돕는 데 헌신하고 있습니다.
김 대표는 자신의 이름과 나이조차 모른 채 보육원에서 성장했다고 합니다. 80명의 아이들과 세 명의 선생님만이 있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폭력이 일상이었고, 사랑과 관심은 부족했습니다. 교회는 기독교 재단이었기에 의무적으로 다녔지만, 하나님을 만날 기회는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께 기도했지만, 현실은 고통스러웠고,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커져갔습니다. 그는 학교에 들어가면서 자신이 고아임을 인식하게 되었고, 학교 폭력, 차별, 편견 속에서 고아라는 단어는 상처가 되었습니다. 물건이 없어지면 가장 먼저 의심받고, 친구 부모로부터 교제를 ban당하는 경험을 하면서, 세상에 대한 분노와 원망은 더욱 커져갔습니다.
그는 자신을 버린 부모에 대한 원망을 품고 살았습니다. 매일 맞는 폭력, 배고픔, 고독 속에서, 얼굴도 모르는 부모를 원망하며, 칼을 들고 복수를 다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절망 속에서 하나님은 그에게 놀라운 방법으로 찾아오셨습니다. 보육원에 수련회를 온 교회 청년들은 복음을 전하기보다, 사랑과 관심으로 그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는 처음으로 사랑받는 경험을 했고,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청년들이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그도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는 갈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수련회 셋째 날, 예배에 참석한 김 대표는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죄를 고백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는 메시지는 그에게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자신은 죄인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지만, 기도하는 시간 속에서 자신이 동생들을 괴롭히고, 친구들을 때렸던 과거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폭력이 일상이었던 보육원 환경에서는 죄라고 인식하지 못했던 행동들이, 하나님 앞에서 죄였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죄를 깨닫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고, 수치심, 미안함, 슬픔 등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했고, 마음의 평안을 얻었습니다.
김 대표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지금이 하나님을 만난 시간이라면, 왜 예전의 기도는 들어주시지 않았나요?" 하나님은 그에게 응답하셨습니다. "네가 그러한 경험을 하지 않았다면, 너의 가족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겠니?" 처음에는 억울함을 느꼈지만, 점차 감사함으로 바뀌었습니다. 고아라는 단어가 상처였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을 고아로 보내셨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는 형들을 찾아가 용서를 구하고, 기도하며 화해했습니다. 형들도 눈물을 흘리며 함께 기도하는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났지만, 세상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고아였고, 현실은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김 대표에게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잘 살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방법을 몰랐던 그에게, 한 형이 큐티 책을 선물했습니다. 매일 큐티를 하면서 삶의 방향을 배우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큐티는 그에게 삶의 지침이 되었고,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힘이 되었습니다.
김 대표는 퇴소를 앞두고 신앙이 흔들리는 경험을 합니다. 찬양 사역자의 꿈을 품고 있었지만, 보육원에서 일어난 사건은 그에게 큰 실망과 절망을 안겨주었습니다. 신앙심 깊은 사람들의 모순적인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고, 꿈을 포기했습니다. 그는 다시 고아로 돌아간 듯한 절망감에 휩싸였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보다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퇴소한 김 대표는 5만 원을 들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6개월 동안 노숙자 생활을 하면서, 선배들의 어두운 삶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범죄, 교도소, 성매매, 악순환 등 보호 종료 청소년들이 직면하는 현실은 혹독했습니다. 어둠의 손길이 끊임없이 유혹했지만, 그는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굶어 죽을지언정, 죄를 짓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하나님께 서원했던 "이성교제를 함부로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과의 약속이 최후의 보루였습니다.
노숙 생활 중, 우연히 깨끗한 건물의 식당에 들어가 일자리를 구했습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고된 노동이었지만, 일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고, 땀 흘린 만큼 정당한 보상을 받는다는 것에 행복을 느꼈습니다. 칭찬과 인정은 그에게 새로운 활력소가 되었습니다. 열심히 일하면서 삶의 의미를 찾아갔습니다. 지하철역에서 우연히 만난 권사님들의 전도는 그를 교회로 이끌었습니다. 반강제적이었지만, 그는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사랑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찬양의 가사가 마음에 깊이 와 닿았고,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는 다시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했습니다.
고시원에 정착한 김 대표는 새벽기도, 수요예배, 금요예배, 주일예배 등 예배에 헌신했습니다. 새벽마다 기도하고, 큐티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합니까?" 큐티 중 디모데전서 5장 8절 말씀이 마음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가족이 없는 그에게 가족을 돌보라는 말씀은 의아했지만, 기도를 통해 보육원에서 함께 자란 아이들이 자신의 가족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보호 종료 청소년들을 향한 사명감이 마음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사회복지 선교학과에 26살의 늦깎이로 입학한 김 대표는 MT에서 자신이 보육원 출신임을 당당하게 밝혔습니다. 고아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것은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솔직함과 진솔함은 오히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동기, 선후배들이 그에게 상담을 요청했고,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위로와 격려를 전했습니다. 아내와의 만남은 운명적이었습니다. 한 달 늦게 입학한 동갑내기 아내는 동기들의 칭찬을 통해 김 대표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가까워졌습니다. 연애 과정 없이, 아내의 집에 인사드리러 갔고, 장모님의 극진한 환대 속에서 결혼까지 골인했습니다. 장모님은 새벽기도 중 하나님으로부터 "성민이는 나의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다"라는 음성을 듣고, 결혼을 허락하셨다고 합니다.
김 대표 부부는 결혼식을 특별하게 준비했습니다. 초등학교 체육관을 빌려, 보육원 친구들을 초청하여 함께 기쁨을 나누는 결혼식을 올린 것입니다. 결혼식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보육원 친구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결혼 후, 명절은 김 대표 부부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명절에 혼자 남겨지는 보육원 친구들을 초청하여 함께 명절을 보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몇 명으로 시작했지만, 점점 늘어나 이제는 펜션을 빌려 함께 명절을 보내는 뜻깊은 전통을 만들었습니다.
결혼 6년 차, 번아웃을 경험한 김 대표는 모든 사역을 중단하고 가정에 집중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교회 설교 중 가인과 아벨 이야기를 듣고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듯이, 그에게 "네 동생들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브라더스키퍼라는 이름으로 다시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이니이까"라는 가인의 반문을, "내가 내 형제를 지키는 자입니다"라는 응답으로 바꾼 것입니다. 브라더스키퍼는 보호 종료 청소년들의 자립을 돕는 사회적 기업으로, 새로운 희망을 선물하고 있습니다. 김 대표는 고아라는 이름표를 상처가 아닌 희망으로 바꾸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3. GPS 개발 과학자에서 홀트 이사로, 스티브 모리슨 장로: 입양은 하나님의 선물 🎁
스티브 모리슨 장로는 GPS 개발에 기여한 과학자이자, 홀트아동복지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는 5살에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된 입양인인데요, 가난과 고통 속에서 버려졌던 어린 시절을 딛고, 사랑과 헌신적인 양부모를 만나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의 인생 역전 스토리는 입양이 단순한 선행이 아닌, 하나님의 놀라운 선물임을 보여줍니다. 그는 입양되기 전과 후의 삶을 비교하며, 입양이 자신에게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간증합니다.
입양 전, 스티브 모리슨의 한국 이름은 최석춘이었습니다. 강원도 묵호에서 아버지, 어머니, 남동생과 함께 살았지만,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알코올 중독으로 가정은 불행했습니다. 아버지는 폭력을 일삼았고, 어머니는 가출, 아버지는 구속, 형제는 고아가 되었습니다. 다섯 살의 나이에 동생과 길거리를 떠돌아다니며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렸습니다. 삶은 계란을 파는 여인이 동생을 입양하겠다고 제안했지만, 다리가 불편했던 그는 혼자 남겨졌습니다. 형제와 생이별한 후, 고아원에 입소했습니다. 6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동생을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동생을 향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을 표현하며, 동생이 행복하게 살기를 기도합니다.
홀트 고아원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스티브 모리슨은 다리 수술을 받고 장애를 극복했습니다. 고아원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추억을 쌓았습니다. 화요일마다 서울에서 찾아온 전도사님 부부를 통해 처음으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9살의 어린 나이에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지만, 특별한 감정은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점점 자라났습니다. 예수님을 믿은 후, 그에게 작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고아원 친구들과 함께 창고에 들어가 물건을 훔치던 나쁜 습관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는 더 이상 나쁜 행동에 관심을 두지 않고, 착한 아이로 변화되었습니다.
14살, 스티브 모리슨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왔습니다. 미국 모리슨 가정에 입양된 것입니다. 모리슨 부모님은 이미 네 명의 자녀를 두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를 입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아버지는 꿈에서 입양에 대한 계시를 받았고, 홀트 잡지에 실린 그의 사진을 보고 운명임을 직감했습니다. 어머니는 나이와 장애를 걱정했지만, 양아들 제임스의 지지로 입양을 결심했습니다. 아버지는 청와대에 편지를 보내 입양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에 도착한 스티브 모리슨은 낯선 환경과 문화 차이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낡은 차, 구멍 난 옷은 가난한 가정에 입양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했습니다. 하지만 모리슨 가족들의 따뜻한 환대는 그의 마음을 녹였습니다. 특히 어머니가 직접 만든 "김치"는 문화적 충격과 감동을 동시에 안겨주었습니다. 양배추, 양파, 식초, 후춧가루로 만든 엉터리 김치였지만,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은 충분히 느껴졌습니다. 그는 새로운 가족과 함께 화투를 치고, 보드게임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형제자매들의 도움으로 학교생활에 적응했고, 공부에도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수학을 비롯한 과학 과목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우주인의 꿈을 키웠습니다.
모리슨 부모님은 스티브 모리슨에게 아낌없는 사랑과 지원을 보내주셨습니다. 비싼 학비를 감당하기 위해 은행 융자까지 받았지만, 그에게 학비 걱정은 단 한 번도 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는 부모님의 헌신에 보답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고, 폴더 대학에 진학하여 우주항공학을 전공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 인공위성 연구원이 되어 GPS 개발에 기여하는 과학자가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정성껏 만든 김치로 고향의 향수를 달래주었고, 아버지는 따뜻한 사랑과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아내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자녀들에게 따뜻한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는 모리슨 부모님을 통해 진정한 사랑과 가정의 소중함을 배웠습니다.
스티브 모리슨은 아버지의 심장마비 수술을 계기로 부모님의 사랑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졸업장을 들고 병문안을 갔을 때, 아버지는 창백한 얼굴로 졸업장을 자랑스러워하셨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곁에서 한 달 동안 간호하며 소중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버지는 그에게 인생의 지혜와 신앙의 중요성을 가르쳐주셨고, 자신을 입양한 것이 인생 최고의 결정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그에게 큰 감동과 힘을 주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부모님을 동남아 여행에 모시고, 한국과 대만을 방문하는 효도 여행을 선물했습니다.
모리슨 아버지는 2006년, 어머니는 2023년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부모님의 죽음은 슬픔이었지만, 천국에서 재회할 소망을 가지고 슬픔을 극복했습니다. 그는 부모님께 영상 편지를 보내며 감사와 사랑을 전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저를 내려다보시면서 많이 행복해 하시길 바랍니다. 아들 스티브는 여기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오남매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께서 저에게 베풀어주신 그 사랑, 제가 어떻게 갚을 수 있겠습니까? 그 사랑으로 정말 가정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가정을 줄 수 있는, 한국 입양 홍보를 통해서 입양이 널리 알려지고, 모든 아이들이 가정에서 자랄 수 있도록 하는, 그런 세상이 되면 정말 더 바랄게 없습니다."
스티브 모리슨은 고아 시절의 고통과 입양 후 행복을 통해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달았습니다. "왜 하나님은 나를 고아로 만드셨을까?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셨을까?" 수년간 기도했지만, 응답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기도 중 하나님은 그에게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우연이 아니다. 나는 너를 선택했다. 나는 너를 통해 한국 고아들을 돕고 싶다." 그는 자신의 고아 경험이 헛되지 않았음을 깨닫고, 한국 입양 홍보를 통해 아동들에게 가정을 찾아주는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홀트 이사로서, 입양 홍보대사로서, 그는 한국 입양에 대한 인식 개선과 입양 활성화를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는 입양을 통해 두 아들을 가슴으로 낳았습니다. 입양은 그에게 또 다른 축복이었고, 가정의 사랑을 실천하는 기회였습니다. 그는 입양을 주저하는 부모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고, 입양은 하나님의 놀라운 선물임을 강조합니다. "입양은 로또 잭팟과 같다"고 말하며, 입양을 통해 얻는 기쁨과 행복은 상상 이상이라고 간증합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입양의 가치를 세상에 전하고 있습니다.
4. 상처 입은 치유자, 권오희 목사: 역경을 딛고 희망을 노래하다 🎶
권오희 목사는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을 딛고 희망을 노래하는 '상처 입은 치유자'입니다. 다섯 명의 어머니와 다양한 직업을 가진 아버지 밑에서 성장하며, 어린 시절부터 어려운 가정환경과 사회적 편견에 맞서 싸워왔습니다. 절망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 인생의 극적인 변화를 경험했고, 현재는 소년원 사역과 대안학교 설립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하고 있습니다. 특히 어머니와 동생에 대한 아픈 기억을 극복하고, 오히려 그 상처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을 치유하는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권 목사의 아버지는 태권도 5단, 특전사 출신으로 다재다능했지만, 직업 변동이 잦았습니다. 태권도 관장, 이발소 운영, 절에 들어가 스님이 되기도 하고, 철학관, 스포츠댄스 강사, 고물상 운영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쳤습니다. 어머니 또한 네 번이나 바뀌는 가정 환경 속에서 혼란과 방황을 경험했습니다. 첫 번째 어머니와는 세 살 때 헤어졌고, 두 번째, 세 번째 어머니와도 불안정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세 번째 어머니는 무속인이었고, 네 번째 어머니는 필리핀 선교 중에 만나 재혼한 분입니다. 복잡한 가정사 속에서 권 목사는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 자랐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갈증이 컸습니다. 친구 어머니의 다정한 모습을 보면서 부러움과 외로움을 느꼈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 숙모로부터 어머니 사진을 받았지만, 낯선 느낌에 눈물만 흘렸습니다. 최근에 아들을 낳고 아버지가 되면서, 비로소 어머니의 사랑을 이해하고 어머니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어머니를 만나게 된다면, 따뜻하게 안아드리고 사랑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합니다.
권 목사는 어린 시절 밝고 활발한 성격이었지만, 내면에는 깊은 상처와 고민이 있었습니다. 낮은 자존감, 미래에 대한 불안감, 정체성 혼란 속에서 방황했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나쁜 행동을 일삼았고, 도벽 벽까지 있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그에게 따뜻한 위로와 사랑을 전해주는 공간이었습니다. 교회 친구들과 선생님들은 그를 차별하지 않고 품어주었고, 그는 교회에서 위안을 얻었습니다. 특히 나연옥 권사님은 어머니 같은 사랑으로 그를 돌보아주셨습니다. 권사님의 따뜻한 품은 그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해주었고, 교회에 머무르게 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수련회에서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낯선 형의 진심 어린 눈빛과 사랑 고백은 그의 굳게 닫힌 마음을 열었습니다. "사랑한다 아들아"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환상을 경험하면서, 그는 눈물을 쏟았습니다. 그는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발견했습니다. 절망 속에서 헤매던 그에게 삶의 목적과 소망이 생긴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거울을 보며 "하나님 작품이야"라고 외치고, 자존감을 회복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청소년 사역에 헌신하며, 상처 입은 영혼들을 치유하는 사역자로 나아갔습니다.
권 목사는 소년원 사역을 통해 비행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과거를 솔직하게 고백하며, 공감대를 형성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소망을 심어줍니다. 그는 소년원 아이들에게 "나도 살았다. 너희도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꿈을 잃지 않도록 격려합니다. 대안학교 설립 비전을 공유하며, 소년원 출신 청소년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약속도 합니다. 소년원 아이들의 편지는 그에게 사명감을 일깨워주고, 사역에 헌신하는 동기부여가 됩니다. 그는 소년원 사역을 통해 상처 입은 치유자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더욱 헌신적으로 사역에 임하고 있습니다.
수능을 두 달 앞두고 교통사고를 당하는 시련을 겪었습니다. 5톤 트럭과 18톤 트럭 충돌 사고에서 기적적으로 생존했지만, 다리 절단 위기에 놓였습니다. 사고 직후, 원망과 절망감에 휩싸였지만, 곧 마음을 다잡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다리를 절단하게 되더라도 감사하겠다는 기도를 드리고, 찬양을 불렀습니다. 병원에서 눈을 떴을 때, 다리가 붙어있는 것을 보고 감사했습니다. 17개월의 병원 생활은 고통스러웠지만, 하나님과 더욱 깊이 교제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고스톱, 바둑을 두며 환자들과 교류하고, 밥 배달 봉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밤새 외국인 환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기타 연주하며 찬양과 기도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병원은 그에게 고통의 장소였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성장하는 축복의 장소였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신학대학에 합격하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학업을 포기해야 할 위기에 놓였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아버지의 헌신적인 뒷바라지와 친구의 도움으로 신학대학에 입학했고, 목회자의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대학 예배 시간, 강원호 목사님의 찬양 인도 중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찬양 가사 중 "전능하신 하나님 찬양, 언제나 동일하시네"라는 구절이 마음에 깊이 와 닿았습니다. 하나님은 과거, 현재, 미래에도 변함없이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얻고 눈물을 쏟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인생 가운데 동행하시고 계심을 깨닫고 감사했습니다. 그에게 신앙은 환경이 변화되는 것이 아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변화되는 것임을 고백**합니다.
권 목사는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화해했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컸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또한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셨다는 것을 깨닫고, 아버지를 용서하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께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며, 오랜 갈등을 해소하고 관계를 회복했습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긍휼함으로 약자들을 돌보고, 사랑을 실천하는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현재 제주도에서 대안학교 교장으로 헌신하며, 제주도 청소년들을 품고 사역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제주도를 잠시 머무는 곳으로 생각했지만, 예배 중 "부르신 곳에서 예배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제주도를 자신의 사명지로 받아들였습니다. 제주도 교회들과 연합하여 대안학교 "제주 나무와"를 설립하고, 학교장으로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는 제주도 땅을 품고 기도하며, 제주도 청소년들에게 복음과 희망을 전하는 사역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권오희 목사의 인생은 역경을 딛고 일어선 한 인간의 승리 스토리이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가득한 감동적인 드라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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