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선 목사 고난과 신앙 간증: 십자가 길에서 깨달은 하나님의 섭리
욥의 고난 넘어, 십자가 길 묵묵히: 최인선 목사의 [거룩한 여백]
[거룩한 여백🙏]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영광의 길을 걷는 여정: 은혜드림교회 최인선 목사의 삶과 신앙 간증
안녕하세요, 새롭게 서서의 주요 시청자 여러분, 그리고 안수지 님, 정봉길 님. 오늘 우리는 구약의 욥기를 읽으며 떠오르는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표현을 실감하게 하는 한 신부님의 이야기를 만나볼 텐데요. 최인선 목사님은 주변 분들의 연이은 죽음을 목격하며 깊은 어둠의 터널을 지나셨다고 고백하십니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역설적이게도 하나님을 더욱 분명하게 만나 뵙게 되었다고 하시는데요, 참으로 놀라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요즘처럼 어려운 시기를 겪는 분들이 많은 때에, 오늘 최 목사님의 이야기가 여러분께 작은 위로와 소망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오늘 귀한 말씀을 전해주실 최인선 목사님을 모시고, 더욱 깊은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귀한 시간 내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목사님.
목회와 신학의 길, 아버지의 테러 사건을 통해 열리다
최인선 목사님의 목회 여정은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테러 사건이라는 예상치 못한 사건을 통해 시작되었습니다. 원래 목사님께서는 일반 대학교 진학을 목표로 하셨고, 대학원 진학을 통해 신학을 공부할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3학년 때, 새벽기도를 가시던 아버지가 테러를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삶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당시 새벽기도를 인도하시기 위해 강대상 뒤로 나오셔야 할 아버지가 나오시지 않고, 신음 소리만 들려왔다고 합니다. 교회 집사님이 가보니 아버지가 흉기에 찔려 중상을 입고 쓰러져 계셨던 것이죠. 알고 보니 강도가 금시계를 노리고 새벽기도 가시던 아버지를 습격한 사건이었습니다.
영남대학교 병원에서 큰 수술을 받으신 아버지는 아들을 불러 앉히시고, 진지하게 권면하셨습니다. 아들이 목사가 되려는 의지를 알고는 있었지만, 일반 대학교에 진학하게 되면 서원의 길에서 벗어날 수도 있으니 바로 신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당시 아버지의 생사를 알 수 없었던 상황이었기에, 목사님께서는 아버지의 권유를 거절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결국 아버지의 권유로 신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놀랍게도 아버지는 위기를 극복하시고 깨어나셔서 목회를 계속하셨습니다. 목사님께서 목사 안수를 받으신 지 불과 2개월 만에 아버지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지만, 아들이 목회 안수를 받는 모습까지 지켜보시고 떠나셨다는 점에서 깊은 감동을 자아냅니다. 아버지의 서원대로, 또 아버지의 간절한 바람대로 목사의 길을 걷게 된 것입니다.
예기치 못한 고통, 공황장애와의 사투
신학교 입학 후, 모든 것이 순탄하게 흘러갈 것처럼 보였지만, 목사님의 인생은 마치 드라마처럼 예측 불허의 사건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신학교 1학년 시절은 평탄하게 보냈지만, 2학년 말 무렵, 목사님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고통에 휩싸이게 됩니다. 지금은 공황장애, 범불안장애, 불면증 등 다양한 병명으로 알려진 정신 질환들이 한꺼번에 찾아온 것입니다. 공황장애로부터 시작된 병은 3개월 만에 10kg 이상 체중 감소를 가져올 정도로 극심했습니다. 먹을 수도, 잠을 잘 수도, 공부를 할 수도, 심지어 사람들과 제대로 소통할 수도 없는 고통스러운 시간이 지속되었습니다.
견딜 수 없는 고통에 목사님은 매일 새벽 140번 버스 종점에서 시내까지, 그리고 다시 종점까지 밤늦도록 걷고 또 걸었다고 합니다. 지쳐 쓰러지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지쳐 잠들어도, 한 시간 정도 지나면 극심한 고통에 깨어나기를 반복했습니다. 먹을 수도, 잘 수도, 공부할 수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목사님은 도무지 벗어날 길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원인조차 알 수 없는 고통은 더욱 깊은 절망감을 안겨주었고, 목사님은 깊은 어둠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습니다.
절박한 기도, 그리고 응답
극심한 고통을 견디다 못해 상담 심리학 교수님을 찾아갔지만, 교수님조차 해결할 수 없다는 절망적인 답변을 들었습니다. 정신과 치료를 권유받았지만, 1992년 당시 신학생 신분으로 정신과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고통스러웠기에 정신과를 찾아 상담을 받았고, 어느 정도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고통과 불면증은 여전히 지속되었습니다. 학업 성적은 2.83으로 추락했고,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갔습니다. 기도도 해보고, 신학대학 운동장에서 밤새도록 부르짖기도 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목사님은 하나님께 마지막 기도를 드리기로 결심합니다. 성경 속 기드온의 기도처럼, 어쩌면 무모해 보일 수도 있는 마지막 간구를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 저를 예정 가운데 부르시고, 신학교로 인도하시고, 목회 소명을 주셨다면, 저를 살려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를 살려주신다는 분명한 징표를 보여주신다면, 제가 그것을 믿고 살아나가겠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저는 여기서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존경했던 교수님의 이름을 언급하며, 그 교수님이 다음 채플 설교자로 나선다면 하나님의 응답으로 믿겠다는 다소 황당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당시 상황을 고려할 때, 이미 설교를 하셨던 교수님이 다시 설교자로 나설 가능성은 희박했습니다. 거의 0%에 가까운 확률이었지만, 목사님은 마지막 희망을 걸고 간절히 기도했던 것입니다.
기도 후 강의동에서 채플 강당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목사님께는 운명이 걸린 듯한 무겁고 두려운 발걸음이었습니다. 강당 앞에 A4 용지에 오늘의 설교자가 적혀 있었는데, 200m 거리에서도 희미하게 흰 종이가 보였지만, 글씨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100m, 50m, 거리가 좁혀질수록 다리는 점점 떨려왔고, 30m, 20m, 10m, 드디어 A4 용지에 적힌 글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놀랍게도, 그곳에는 목사님이 간절히 바랐던, 아니 어쩌면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교수님의 이름이 적혀 있었던 것입니다!
믿기지 않는 현실에 목사님은 채플 강당 맨 앞자리로 달려갔습니다. 평소에는 항상 뒷자리에 앉았던 목사님이었지만, 그날만큼은 맨 앞에서 하나님의 응답을 온전히 느끼고 싶었습니다. 설교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눈물과 콧물이 쏟아졌고, 성경 본문을 읽는 순간, 또 한 번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본문 말씀이 바로 목사님이 신학교에 들어올 때 받았던 소명 구절, 베드로에게 찾아오신 예수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 라고 말씀하셨던 바로 그 구절이었던 것입니다. 교수님의 설교를 통해, 목사님은 소명 주셨던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자신을 부르시고 계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설교 내용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로, 감격과 감동에 휩싸여 눈물을 쏟아내던 목사님은, 문득 배고픔을 느꼈습니다. 3개월 동안 10kg 체중 감소, 1년 동안 식욕을 잃었던 목사님에게 배고픔이라는 감각이 되살아난 것입니다. 강의동 지하 식당으로 내려가 1,200원짜리 육개장을 받아 들고, 홀로 앉아 육개장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음식이 목으로 넘어가는 순간, 육개장이 아닌 하나님의 응답과 은혜가 몸속으로 들어오는 듯한, 형언할 수 없는 감격에 휩싸였습니다. 그날 이후, 목사님은 마치 유리창 청소 도구처럼, 스펀지와 브러쉬로 깨끗하게 닦아내는 듯한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졸업도 무사히 마치고, 결혼도 하고, 목사 안수도 받고, 현재의 목회까지 이어오게 된 것은, 그날의 놀라운 응답과 은혜 덕분이라고 고백하십니다.
교만함을 깨닫게 하신 고통, 그리고 겸손
고통 속에서 벗어나게 된 후, 목사님은 왜 그토록 힘든 시간을 겪어야 했는지 묵상하며,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의 마음속에 강하게 들려온 음성은 "너의 교만을 그대로 둘 수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공부를 잘했고, 김천고등학교라는 명문고를 다니면서 9등급, 10등급을 받아도 괜찮은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신학대학 입학시험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았고, 신학교 선배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차석으로 입학하는 등, 스스로에 대한 자만심이 컸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모습으로는 쓰실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 목사님을 낮추시고 겸손하게 만드시는 훈련을 하셨던 것입니다. 목회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전도사 시절, 가는 곳마다 부흥을 경험했기에, 김천 시골 교회에서도 금방 부흥할 것이라고 자신했습니다. 하지만 2년 동안 교인은 늘지 않고 오히려 줄어드는 어려움을 겪으면서, 목사님은 자신의 교만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2년, 3년 인내하며 기다려준 성도들 덕분에, 2005년부터 교회는 성장하기 시작했고, 2009년에는 200여 명까지 부흥하는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공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시련을 통해 목사님을 더욱 겸손하게 만드시는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추풍령 자전거 사고, 잇따른 비극
2009년 6월 18일, 목요일, 목사님은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사건을 경험하게 됩니다. 평소 건강 관리를 위해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고, 교인들과 함께 주일 오후와 목요일 저녁에 자전거 라이딩을 즐겼습니다. 2009년 6월 18일, 추풍령 고개를 다녀오던 길에, 다섯 명이 함께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던 중, 뒤에서 뺑소니 음주 차량이 덮친 것입니다. 바로 옆에서 달리던 집사님 두 분이 그 자리에서 즉사하는 참혹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눈앞에서 벌어진 끔찍한 광경에 목사님은 정신을 잃을 뻔했습니다. 병원, 장례식장을 오가며 정신없이 3일을 보냈고, 젊은 집사님들의 입관 예배와 발인 예배를 연이어 집례해야 했습니다. 동시에 두 장례식장을 오가며 슬픔을 나누는 것은,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한 고통스러운 경험이었습니다. 사고 이후, 목사님은 끊임없는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내가 자전거를 타자고 하지 않았더라면, 추풍령에 가지 않았더라면, 칼국수를 먹지 않았더라면..." 수많은 후회와 자책이 목사님을 짓눌렀습니다.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 성도들 앞에 서야 하는 부담감, 모든 것이 목사님을 힘들게 했습니다.
사고 후, 남겨진 유가족들의 슬픔은 더욱 마음 아프게 했습니다. 특히 어린 자녀들이 아빠를 잃은 슬픔에 잠겨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목사님의 마음을 더욱 무너지게 했습니다. 장례 후, 유가족들과 함께 카페에 모였을 때, 목사님의 아들이 갑자기 "아빠"라고 외쳤습니다. 순간 장례식장의 슬픔이 되살아나는 듯했고, 목사님은 아들을 안고 목양실로 가서 조용히 타일러야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아빠"라는 단어는 금기어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슬픔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고 후 2개월 만에, 8월 말, 10년 넘게 함께 사역했던 부목사님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휴가를 다녀온 후 갑자기 용혈성 요독 증후군이라는 희귀병에 걸려 3, 4일 만에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연이은 비극에 목사님은 깊은 절망감에 빠졌습니다.
또 3개월 후, 11월 초에는 어릴 적부터 가장 친했던 친구의 아들이 백혈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6월, 8월, 11월, 연이어 닥치는 비극적인 소식은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친구 아들은 투병 끝에 결국 세상을 떠났고, 목사님은 또 한 번 장례를 집례해야 했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연이어 사랑하는 성도들과 동역자, 친구 아들까지 잃는 경험은, 목사님의 영혼을 찢어놓는 듯한 고통이었습니다.
절망 속에서 발견한 희망, 성도들의 헌신
잇따른 비극 속에서 목사님은 마치 찢어진 조간신문처럼, 더 이상 쓸모없고 버려진 존재처럼 느껴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절망 속에서 하나님의 반전, 성도들의 헌신을 목격하게 됩니다. 사고로 세상을 떠난 약사 집사님의 부인이, 슬픔을 딛고 장례 후 1주일 만에 교회로 돌아와 새가족 옆에 앉아 눈물로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남편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교회를 향한 사명을 잊지 않고 헌신하는 모습은, 목사님에게 큰 감동과 위로를 주었습니다. 또 다른 집사님 부부는, 세상을 떠난 교사 집사님을 대신해 주일학교 아이들을 돌보는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자신의 슬픔을 억누르고, 오히려 더 큰 사랑과 헌신으로 교회를 섬기는 성도들의 모습은, 목사님에게 다시 일어설 힘을 주었습니다.
부목사님 장례 후, 새로운 교육전도사님이 부임했습니다. 부목사님과 각별했던 전도사님은, 슬픔 속에서도 "목사님, 감사합니다. 저는 은혜드림교회에서 교육전도사로, 풀타임 사역자로, 목사 안수를 받고, 결혼도 하고, 사랑하는 아들 하린이도 태어났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 모든 것이 은혜였습니다." 라고 고백하며, 목사님과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고통 속에서도 감사를 잊지 않는 동역자의 모습은, 목사님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되었습니다.
세상을 떠난 교사 집사님의 부부는, 장례 후 여름성경학교 봉사를 자원했습니다. 아이들을 볼 때마다 아픈 마음이 들 텐데도, 오히려 더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모습은, 목사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도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성도들은 고통 속에서도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더욱 굳건한 믿음으로 교회를 지켜나갔습니다. 이러한 성도들의 헌신적인 모습은, 절망에 빠져 있던 목사님과 교회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놀라운 힘이 되었습니다.
고난을 통해 깨달은 하나님의 섭리
많은 성도들이 목사님께 "하나님, 왜 저에게 이런 고난을 주시는 건가요?" 라고 질문했습니다. 목사님 또한 수없이 하나님께 질문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목사님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대학교 시절 겪었던 고통을 통해, 하나님이 얼마나 무서운 분이신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대신, 하나님의 섭리를 묵상하며,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다니엘의 사자굴 이야기, 세 친구의 풀무불 이야기를 떠올리며, 목사님은 고난의 의미를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막아주시거나 제거해주시는 분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 함께하시고, 고난을 견뎌낼 힘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고난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통해 더욱 성숙한 믿음으로 나아가도록 이끄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고난 속에서 목사님께 특별한 위로가 되었던 것은 시편 38편 말씀이었습니다. "다윗을 기념하는 시"라는 표제어가 붙은 시편 38편을 묵상하면서, 목사님은 다윗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승리했을 때뿐만 아니라, 사울에게 쫓겨 굴 속에 숨어 지낼 때, 억울한 비난을 받을 때,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 시달릴 때, 그 모든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승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화려한 모습뿐만 아니라, 가장 낮고 절망적인 순간까지도 기억하시고 기념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럴드 싯처의 『나는 왜 울었는가』, 스탠리 하우어워스의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들』 과 같은 책들을 읽으며, 목사님은 더욱 깊은 위로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왜 고난이 왔는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고난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내는가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정답이 보이지 않는 인생, 고난과 슬픔이 가득한 세상이지만, 하나님과 동행하며, 주어진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바로 신앙인의 삶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영원히 잊지 못할 찬양, 그리고 거룩한 여백
고난의 시간을 보내면서, 목사님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되었던 찬양은 바로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였습니다. 특히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이 길을 가리라 좁은 문 좁은 길 나의 십자가 지고 나의 가는 이 길 끝에서 주님이 나를 기다리신다" 라는 가사는, 목사님의 마음 깊은 곳에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좁고 험한 길이지만, 주님께서 기다리시는 영광스러운 그 날까지,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걸어가겠다는 결단을 다지게 했습니다.
수많은 고난을 겪으면서, 목사님은 삶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철저한 계획주의자, 완벽주의자였던 목사님은, 모든 계획이 무너지는 경험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고, 하나님의 섭리를 더욱 깊이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인생은 자신의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닫고, 삶 속에 "거룩한 여백"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계획과 통제 대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여지를 남겨두는 삶을 살기로 결단했습니다. 물론 해야 할 일을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니지만, 삶의 주도권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나아가는 삶을 살기로 결단했습니다. "거룩한 여백"을 두는 삶은, 불안과 염려 대신, 평안과 기쁨을 가져다주었고, 더욱 풍성하고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오늘 최인선 목사님의 간증을 통해, 우리는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며 나아가는 삶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고난과 역경 속에서, 때로는 절망하고 좌절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 우리를 더욱 단단하게 빚으시고, 성숙한 믿음으로 이끄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여정, 때로는 좁고 험난할지라도,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 귀한 말씀 나눠주신 최인선 목사님께 다시 한번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