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기타 최성일 대표: 음악과 신앙, 예배의 변화와 비전 인터뷰
예배, 삶, 음악의 조화: 로그기타 최성일 대표 이야기
나의 기준에 예배를 맞추다: 로그기타 최성일 대표의 삶과 음악 이야기 상세 정리
이번 글에서는 유튜브 채널 "새롭게하소서"에 출연한 로그기타 최성일 대표의 인터뷰 내용을 상세히 정리하고, 그의 삶과 음악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최성일 대표는 로그기타라는 브랜드를 통해 국내외 많은 아티스트들에게 사랑받는 기타를 제작하는 인물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을 향한 깊은 신앙심을 바탕으로 삶의 변화를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성공 스토리를 넘어, 신앙과 삶, 그리고 음악이 어떻게 조화롭게 어우러질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지금부터 최성일 대표의 감동적인 이야기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겠습니다.
1. 기타 선율로 시작된 이야기: 로그기타 대표 최성일
오늘 이야기는 아름다운 기타 선율로 시작됩니다. 교회 하면 자연스럽게 기타 치는 오빠를 떠올리게 되는데요, 오늘 특별히 기타를 직접 만드신 분을 모셨습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하나님을 만나 변화된 삶을 기타 선율처럼 아름답게 만들어가고 있다는 최성일 로그기타 대표입니다. 최 대표는 밝은 미소로 스튜디오에 등장하며, 인터뷰는 시작됩니다. MC는 로그기타가 국내 유명 아티스트들에게 널리 사용되고 있음을 언급하며 놀라움을 표합니다.
실제로 로그기타는 한춘호, 이승철, 박상민, 김현철 등 국내 최정상급 뮤지션들이 애용하는 기타 브랜드입니다. 최 대표는 겸손하게 뮤지션들이 단순히 기타가 좋아서 사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로그기타가 가진 특별한 의미를 알고 사용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는 뮤지션들이 여러 대의 기타를 소유하고 있지만, 그중 하나로서 로그기타를 감사하게 사용해주는 것 같다고 덧붙입니다. "로그(Log)" 라는 이름에 대한 질문에 최 대표는 "Lips of God, 즉 하나님의 입술" 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입술이 되어 말씀을 전하고, 사랑을 나누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브랜드가 되고 싶다는 그의 소망이 이름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2.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변화의 시작점
인터뷰에서 최 대표는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이 매우 다르다고 고백합니다. 과거에는 가식적이고, 남을 정죄하며, 비판적인 성격이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예리한 칼처럼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도 많았다고 회상하며, 교회는 다녔지만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진상" 이었다는 그의 솔직한 표현은 웃음을 자아내지만, 동시에 그의 진솔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렇다면 최 대표는 어떻게 변화하게 되었을까요? 그 변화의 시작점을 군대 시절 이야기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3. 군대, 뜻밖의 만남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
90년대 초 군 입대한 최 대표는 군대에서 예상치 못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교회 형의 소개로 의무병 양성 학원을 통해 비교적 편하게 군 복무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강원도 인제 원통의 병원으로 자대 배치를 받게 됩니다. 당시 인제 원통은 군인들에게 오지로 여겨지는 곳이었지만, 병원이라는 점에 위안을 삼았습니다. 그러나 인사과에서는 그에게 특공대로 가야 한다는 뜻밖의 통보를 합니다. 해병대나 특전사는 들어봤지만, 특공대는 처음이었던 최 대표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가 가게 된 특공대는 전쟁 시 북한에 침투하여 땅굴을 폭파하는 특수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였습니다. 20명 내외의 소규모 조직으로 의무병의 역할도 중요했기에 의무병인 그가 배치된 것입니다.
일반적인 의무병 생활과는 거리가 먼 특공대라는 사실에 최 대표는 큰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밤늦게 트럭을 타고 포장되지 않은 험한 길을 달려 부대에 도착했을 때, 고참들의 거친 욕설과 함께 100m 언덕을 구르는 훈련이 그를 맞이했습니다. "하나님이 왜 나를 이곳에 보내셨나" 하는 원망과 함께 절망감에 휩싸였습니다. 체격이 좋은 사람들만 차출되는 부대였지만, 당시 기수부터 뺑뺑이 방식으로 차출 방식이 바뀌면서 안경을 쓴 왜소한 체격의 그도 특공대에 배치된 것입니다. 첫날 밤, 잠자리에 들자마자 이유 없이 고참에게 폭행을 당하는 경험은 그에게 더 큰 절망감을 안겨주었습니다. "왜 안경을 썼냐" 는 이유로 폭행을 당하며, 그는 군 생활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함께 편하게 군 생활을 하려던 자신의 꾀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하지만 절망 끝에 반전이 찾아왔습니다. 첫 주말, 인상이 험악한 고참이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찾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초코파이를 준다는 말에 15명 정도가 손을 들었고, 험악한 욕설이 쏟아지는 가운데 최 대표는 군 생활을 위해 교회에 나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나섰습니다. 순교를 각오하며 고참을 따라나섰지만, 고참은 180도 돌변하여 연기였음을 밝히고, 오히려 그의 신앙심을 칭찬했습니다. 제대까지 그를 책임지고 교회에 데려가 신앙생활을 돕겠다는 약속까지 했습니다. 극적인 반전에 최 대표는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했다는 생각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후 고참 덕분에 수요 예배, 철야 예배, 주일 예배까지 꼬박꼬박 참석하며 신앙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등병 신분으로 군 교회에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던 유일한 병사였던 것입니다.
군 교회에서 최 대표는 또 다른 기적을 경험합니다. 군 입대 전 드럼 연주를 좋아했던 그는 군 교회에서 드럼을 연주하며 봉사하고 싶다는 기도를 했습니다. 당시 교회는 피아노 한 대만 있을 뿐 악기가 부족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주일, 연대장이 찬양팀 창설을 지시하며 키보드, 기타, 드럼, 베이스 기타 등 악기와 음향 장비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드럼 칠 수 있는 사람 손들어보라" 는 말에 최 대표는 손을 들었고, 소원했던 드럼 연주를 군 교회에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연대장이 조직한 찬양팀이었기에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었고, 군종병 제대 후에도 그는 계속해서 찬양팀에서 드럼 연주 봉사를 하며 군 생활을 마무리했습니다. 자신의 꾀가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더욱 편안하고 의미 있는 군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군대 찬양팀 경험은 훗날 로그기타를 시작하는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
4. 교회 찬양팀, 열정과 아쉬움 사이에서
제대 후 교회 찬양팀에서 봉사하며 최 대표는 교회 음악에 대한 아쉬움을 느끼게 됩니다. 세상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끊임없이 연습하며 실력을 향상시키는데, 교회 찬양팀은 좋은 장비를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습 부족으로 낮은 수준의 찬양을 반복하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우리가 세상 사람들보다 못해서는 안 된다" 고 생각한 그는 찬양팀 리더가 되어 강도 높은 훈련을 시작합니다. 밤 10시, 11시까지 연습을 강행하자 주변 민원이 빗발쳤고, 경찰까지 출동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더 이상 교회에서 연습을 할 수 없게 되자 최 대표는 과감한 결단을 내립니다. 직장 생활하며 모아둔 500만 원과 아버지에게 빌린 500만 원, 총 1000만 원으로 지하 연습실을 마련한 것입니다. 월세 30만 원의 지하 연습실에서 그는 교회 찬양팀 훈련을 계속했고, 찬양팀 수준은 눈에 띄게 향상되었습니다. 멋있고 수준 높은 찬양을 하나님께 드리자는 목표 아래, 그는 열정적으로 찬양팀을 이끌었고, 음반까지 제작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1998년 당시, 교회 찬양팀을 위해 연습실을 운영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자신들의 변화를 경험하며 최 대표는 다른 교회 찬양팀에게도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됩니다. "우리 지역의 작은 교회 찬양팀들도 우리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이다" 생각한 그는 전단지를 제작하여 교회마다 배포했습니다. "찬양팀 연습 환영, 무료 레슨, 악기 장비 무료 대여" 라는 문구로 찬양팀들을 연습실로 초대한 것입니다. 놀랍게도 전단지를 보고 찾아오는 찬양팀들이 있었고, 연습실은 지역 교회 찬양팀들의 사랑방이 되었습니다. 정보를 교류하고, 함께 찬양하며,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공간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월세 등 운영 비용에 대한 부담이 커지면서 재정적인 어려움에 직면하게 됩니다. 이때 최종철 위너스 대표와 정명수 한미양행 대표의 지속적인 후원은 그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두 후원자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로그기타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최 대표는 회상합니다. 온라인으로 찬양팀 교육을 제공하겠다는 아이디어는 이러한 경험 속에서 싹텄습니다.
5. 온라인 찬양 교육 플랫폼, 로그뮤직의 탄생
오프라인 연습실 운영을 통해 전국 찬양팀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엿본 최 대표는 온라인으로 눈을 돌립니다. "우리의 작은 노력이 온라인 영상을 통해 전국 찬양팀들에게 전달될 수 있다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했습니다. 당시 최고의 찬양팀으로 손꼽히던 사랑의교회 헵시바 찬양팀을 찾아가 협력을 요청했습니다. 권낙주 전도사의 흔쾌한 승낙으로 헵시바 찬양팀의 드럼, 베이스, 키보드, 일렉 기타 연주 영상을 제작하여 인터넷에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무료 및 유료 강좌를 통해 찬양팀 연주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고자 했습니다. 동영상 강좌뿐만 아니라 송정미, 소리엘, 소향, 워십 등 유명 찬양 사역자들의 인터뷰 영상, 콘서트 영상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했습니다. 소형 카메라 두 대를 들고 전국을 누비며 열정적으로 영상을 제작하고 업로드했습니다. 2000년대 초, 로그뮤직 사이트는 회원 수 12만 명을 넘어서는 대한민국 최초의 동영상 악기 강좌 사이트로 성장했습니다. 당시 찬양 관련 영상 콘텐츠를 제공하는 플랫폼 자체가 전무했기에 로그뮤직의 등장은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찬양팀 교육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것입니다.
6. 기타 제작으로의 확장: 로그기타의 시작
로그뮤직 운영을 통해 찬양팀 시장의 가능성을 확인한 최 대표는 기타 제작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합니다. "찬양팀들이 사용하는 기타를 직접 만들어보면 어떨까?" 라는 무모하지만 용감한 생각을 실행에 옮긴 것입니다. 전국 기타 공장을 찾아다니며 로그기타 제작을 의뢰했고, 마침내 로그기타를 세상에 선보이게 됩니다. 온라인 플랫폼 로그뮤직과 기타 브랜드 로그기타를 통해 그는 찬양 사역에 더욱 깊이 헌신하게 됩니다.
7. "다른 교회까지 잘 되게 하고 싶었다": 섬김의 마음
인터뷰 진행자는 최 대표에게 "보통 교회들은 자기 교회만 잘 되기를 바라는데, 어떻게 다른 교회까지 잘 되게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는지" 질문합니다. 최 대표는 "하나님께서 그런 마음을 주셨다" 고 답하며, 전국 4만 교회 찬양팀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로그뮤직의 사명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힙니다. 모든 교회 찬양팀들이 한 곳에서 정보를 교류하고, 함께 찬양하며,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공동체를 꿈꿨던 것입니다. 풍성하고 수준 높은 찬양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자는 비전을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셨고, 그는 그 비전을 믿고 묵묵히 걸어왔습니다. 직장 생활을 접고 수입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도 찬양 사역에 헌신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8. 물질적 어려움 속에서 발견한 가치
방송국 영상 장비 설치 및 운영 회사에서 일했던 최 대표는 안정적인 직장을 내려놓고 찬양 사역에 뛰어들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에 직면했습니다. 1년 동안 수입이 전혀 없었고, 2년 차부터 월 15만 원의 급여를 받았습니다. 함께 일하던 청년들에게는 30만 원을 챙겨주었지만, 여전히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습니다. 새벽 세차 아르바이트, 주말 이삿짐 나르기, 하수구 스티커 붙이기 등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습니다. 하수구 스티커 아르바이트에서는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억울한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 돈 좀 주세요" 라고 간절히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부자가 되는 것보다 계획한 일들을 하나씩 해나가라" 는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물질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하나님의 계획을 믿고 묵묵히 찬양 사역을 이어갔고, 점차 재정적인 어려움도 해결되어 갔습니다.
9. 예배의 회복: 판단자에서 예배자로
찬양 사역을 하면서 최 대표는 자신의 성품에도 변화가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과거 비판적이고 정죄하는 성격이었던 그는 교회 봉사를 내려놓고 예배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게 되면서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찬양팀 악기 소리, 성가대 음향, 목사님 설교 등 예배의 기술적인 요소에만 집중하고, 예배자를 판단하는 모습을 보며 큰 괴리감을 느꼈습니다. "예배자가 아닌 예배 판단자" 가 되어버린 자신의 모습에 큰 충격을 받고, 예배 회복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2년여의 몸부림 끝에 그는 온전히 예배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교회 봉사자들이 흔히 겪는 직업병과 같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진정한 예배자로 거듭난 것입니다. 과거 가식적이고 뻔뻔하게 예배드리면서 남을 판단하고 정죄했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그는 깊은 회개와 함께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10. 후배들에게 향했던 날 선 비판, 그 이면의 이유
찬양팀 후배들에게 엄격했던 최 대표는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그 이유를 깨닫게 됩니다. 연습에 늦거나 술을 마신 후배들에게 가혹하게 비판했던 그는 정작 자신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 술을 마셨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이중적인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을 위한 봉사라고 착각했지만, 실상은 자신의 기준에 맞추려는 욕심이었음을 인정합니다.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만족을 위한 봉사였던 것입니다. 마리아와 마르다 이야기를 예시로 들며, 자신이 마르다처럼 분주하게 일만 하고 정작 예수님과의 교제는 소홀했던 모습이었음을 깨닫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주변 일에만 매달리고, 남을 정죄했던 과거를 반성합니다.
11. 관계 속에서의 미성숙함: 상처와 후회
청년 시절 최 대표는 교제했던 자매들에게도 상처를 많이 주었습니다. 주말 데이트 대신 교회 일에만 매달리며, 상대방의 불만을 신앙적이지 못하다고 질책하고, 자신의 기준에 맞추려 했던 미성숙한 모습을 후회합니다. 골목에서 소리 지르며 싸우고, 혼내는 등 감정적으로 격렬하게 대처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정말로 못됐고 반성된다" 고 고백합니다. 모난 성품을 하나님께서 다듬어주시고 고쳐주셨다고 그는 믿습니다. 당시에는 상대방의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모두 자신의 잘못이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자기중심적인 신앙생활에서 벗어나 타인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성숙한 신앙인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12. 사랑의 기타 택배: 긍휼의 마음을 실천하다
변화된 삶 속에서 최 대표는 로그기타를 통해 "사랑의 기타 택배"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청년 시절 선교단 활동 중 방문했던 가정의 아픔을 잊지 못했던 그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도록 기타를 기증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합니다. 껌팔이 소년의 이야기를 통해 가정 폭력과 빈곤에 시달리는 아이들의 현실을 목격하고, 가정 회복을 위해 기도했던 경험은 그의 삶에 깊은 영향을 남겼습니다. 3년 후 기적적으로 가정 회복 소식을 듣고 기도의 응답을 경험하면서 "작은 씨앗을 뿌려도 하나님께서 일하신다" 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나눔과 섬김의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고, 기타를 통해 어려운 이웃을 돕는 "사랑의 기타 택배"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긍휼의 마음을 사랑으로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13. 한국 교회 찬양의 미래를 꿈꾸다
인터뷰 말미에 최 대표는 한국 교회 찬양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합니다. 한국 교회의 부흥은 훌륭한 목사님들의 말씀 덕분이었지만, 앞으로 한국 교회는 찬양이 살릴 것이라고 그는 확신합니다. K팝과 한국 문화는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한국 교회 찬양은 여전히 7, 8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아쉬움을 토로합니다. 힐송 등 해외 찬양은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미치고 있지만, 한국 교회 찬양은 대부분 서양 곡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한국적인 찬양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로그기타를 통해 한국 교회 찬양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새로운 찬양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그의 비전입니다. 기타를 비롯한 모든 악기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믿음으로 그는 찬양을 통해 한국 교회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악기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역에 헌신하겠다" 는 다짐으로 인터뷰는 마무리됩니다.
최성일 대표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도전을 줍니다.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변화를 갈망하며 노력하는 그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됩니다. 음악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 그의 삶은 신앙과 삶의 조화를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진정한 해답을 제시합니다. 로그기타를 통해 만들어갈 한국 교회 찬양의 밝은 미래를 기대하며, 그의 사역을 응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