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어통역] 하루 아침에 집이 쫄딱 망해버렸다!😲 인생이 수직 낙하한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하는 영상📺 ㅣ만나교회 우미쉘 목사ㅣ김현숙 수어통역사ㅣ새롭게하소서
하루아침에 집이 쫄딱 망해버렸다?!😲 인생이 수직 낙하한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하는 영상📺 ㅣ만나교회 우미쉘 목사ㅣ김현숙 수어통역사ㅣ새롭게하소서
스크립트 상세 정리
오늘 '새롭게 하소서'는 감미로운 찬양으로 시작을 알립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찬양 인도자, 우미쉘 목사님을 모셨는데요, 밝은 미소로 인사를 나누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주영훈 집사님은 우미쉘 목사님의 찬양 실력에 감탄하며, 특히 감정 표현과 음색이 뛰어나다고 칭찬합니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폭발적인 에너지가 놀랍다고 덧붙이는데요, 우미쉘 목사님은 겸손하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오히려 주영훈 집사님의 진행 솜씨에 감탄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우미쉘 목사님은 전도사에서 최근 목사 안수를 받으셨다는 소식을 전하며, 목사가 된 소감을 묻는 질문에 이전과 크게 달라진 점은 없지만 책임감과 거룩한 부담감이 더 커졌다고 답합니다.
'새롭게 하소서' 섭외를 오랫동안 기다려왔다는 우미쉘 목사님은 평소 즐겨보는 프로그램이었다고 밝히며, 운전 중 유튜브로 시청하면서 많은 간증 스토리와 주영훈 집사님의 멘트에서 찬양 인도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설명합니다. 간증 기회가 주어진다면 꼭 '새롭게 하소서'에 출연하고 싶다고 기도하고 선포했는데,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신 것 같다고 감격스러워하는데요, 주영훈 집사님은 섭외 전 우미쉘 목사님의 영상을 찾아봤는데, 댓글 반응이 뜨거웠다고 언급하며 기대감을 높입니다.
우미쉘 목사님은 '새롭게 하소서' 팀의 따뜻한 환대에 감사를 표하며, 자신의 찬양을 통해 성도들이 은혜받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큰 감동을 받는다고 고백합니다. 오늘은 찬양뿐 아니라 진솔한 간증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더욱 깊은 감동과 은혜를 선사할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본격적으로 우미쉘 목사님의 스토리를 들어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우미쉘 목사님은 어린 시절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회상하며, 이름 '미쉘'에서부터 미국 생활을 짐작할 수 있듯이 미국에서 태어나 대학교까지 졸업했다고 소개합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한국어가 서툴렀지만 지금은 발음이 매우 자연스러워졌다고 덧붙이는데요, 과거 택시를 탔을 때 이태원을 '이태원'이라고 발음하지 못해 택시 기사님이 길을 돌아갔던 에피소드를 웃으며 이야기합니다.
미국 서부의 얼바인이라는 좋은 동네에서 살았다는 우미쉘 목사님은 그곳이 한국 분들이 많이 거주하는 살기 좋은 곳이라고 설명합니다. 집에는 수영장, 자쿠지, 테니스 코트, 농구 코트까지 갖춰진 대저택이었다고 밝히며, 거실에는 자동 연주 피아노와 샹들리에가 있었던 어린 시절의 풍족했던 기억을 떠올립니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질 수 있었고, 부족함 없이 자랐다고 덧붙이는데요, 주영훈 집사님은 수영장과 테니스 코트가 있는 집에서 자랐다는 이야기에 감탄하며 부러움을 감추지 못합니다.
모태신앙이지만, 집안은 3대째 가톨릭 집안이었다는 우미쉘 목사님은 어릴 때부터 성당에 다니며 세례와 견진성사까지 받았다고 이야기합니다. 교회와는 전혀 인연이 없던 집안이었는데, 할머니 댁에서 일하시던 이모님이 어머니를 보고 "이 집안에 목사가 나오겠다"라고 예언했다고 하는데요, 어머니는 "우리 집에는 신부님 될 아들이 있다"라며 웃어넘겼다고 합니다. 그만큼 교회와는 거리가 먼 집안이었다고 강조합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집안에 갑작스러운 어려움이 닥쳤다고 고백하며, 그 날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고등학교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올라가는 여름방학, 2층 방에서 창밖을 내다보니 집 앞에 경찰차가 와 있었고, 내려가 보니 경찰과 열쇠 수리공이 현관문을 강제로 열고 있었다고 당시의 충격적인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마치 드라마에서 보던 장면처럼, 집이 하루아침에 넘어가 버린 것인데요, 아버지는 옆에서 전화로 상황을 수습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고 합니다.
운전면허를 딴 지 얼마 안 된 고2의 어린 나이에, 우미쉘 목사님은 엄마와 동생들을 데리고 무작정 집 앞 카페로 피신했다고 합니다. 엄마는 울고, 자신은 직감적으로 아빠가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고 느꼈다고 하는데요, 중요한 옷가지 몇 개만 챙겨서 집에서 나와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순식간에 길거리로 나앉게 된 다섯 가족은 갈 곳을 잃었지만, 하나님의 예비하심으로 어머니의 지인이 회사 사택을 제공해 주어 1~2주 정도 머물 수 있었다고 회상합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찌할 바를 몰랐던 당시의 혼란스러움을 전합니다.
집이 넘어가게 된 구체적인 이유는 부모님께 직접 듣지 못했고, 지금도 묻지 못한다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합니다. 다만, 짐작하기로는 아버지나 고모가 집을 담보로 사업을 하다 잘못된 것이 아닌가 추측한다고 하는데요, 보통은 짐을 뺄 시간을 주지만, 당시에는 그럴 경황도 없이 급하게 집을 나와야 했다고 합니다.
사택에서 일주일 정도 지내다 짐을 빼러 집에 다시 갔을 때, 집은 폐허처럼 느껴졌다고 묘사합니다. 1~2주 사이에 집안은 엉망이 되었고, 수도도 끊겨 캄캄하고, 변기에는 거미줄까지 쳐져 있었다고 하는데요, 챙겨야 할 짐들을 제대로 챙기지도 못하고 급하게 이사를 해야 했습니다. 오랫동안 살았던 집에 작별을 고하고 낯선 곳으로 떠나야 하는 비참한 심정을 토로합니다.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이유는 집안 재산 때문에 형제들 간의 다툼이 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마치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처럼, 할아버지 장례식 날에도 형제들이 의자를 던지고 주먹다짐을 하는 등 갈등이 극심했다고 하는데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형제들이 뿔뿔이 흩어져 서로 돕지 않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아버지 형제들의 불화로 인해 집안 어른들에게 기댈 수 없었던 안타까운 상황을 전합니다.
오히려 아버지 형제들의 불화 덕분에 아버지 없는 것에 감사하게 되었다고 역설적으로 이야기하며, 재산이 많은 집안은 형제간 불화가 끊이지 않는다는 씁쓸한 현실을 꼬집습니다. 재산 상속 다툼으로 인해 가족 관계가 파탄나는 주변의 사례를 언급하며, 재산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당시 젊었던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이제는 아버지가 불쌍하고 안쓰럽게 느껴진다고 하는데요, 어머니가 전업주부에서 갑자기 생계를 위해 김치를 만들어 팔고, 마트에서 일하는 등 고생을 많이 하셨다고 합니다. 특히, 얼바인 좁은 한인 사회에서 마트에서 친구들을 마주치는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하게 생계를 이어가셨던 어머니의 강인함에 존경심을 표합니다. 아버지가 일부러 가정을 힘들게 만들려고 했던 것은 아닐 것이며, 인생을 살다 보면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덧붙입니다.
가족 중 가장 힘들었던 사람은 아버지였을 것이라며, 아버지의 입장을 헤아리는 모습을 보입니다. 처자식이 길거리에 나앉게 되었으니 얼마나 비참했을까 공감하며, 본인도 어머니도 힘들었겠지만 아버지의 고통이 가장 컸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쪽팔린 상황, 즉 사회적 체면이 손상되는 상황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배고픔이나 물질적 어려움보다, 주변 사람들에게 가십거리가 되고 손가락질 받는 상황이 더 고통스러웠다고 하는데요, 특히 좁은 한인 사회에서 순식간에 퍼져나가는 소문과 수군거림 속에서 자존감을 지키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가장 창피했던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친구들은 모두 차를 받았지만, 자신만 차가 없었던 것이라고 회상합니다. BMW, 벤츠 등 고급차를 받는 친구들 사이에서 혼자 차 없이 친구들에게 픽업을 부탁해야 하는 상황이 어린 마음에 큰 상처가 되었고, 자존심이 상했다고 하는데요, 지금 생각하면 별것 아니지만 당시에는 너무나 힘들었다고 덧붙입니다. 학창 시절에는 친구 관계가 전부라고 느껴질 만큼 친구들의 시선이 중요했기에 더욱 힘들었던 시간이었다고 회상합니다.
사람들이 자신과 가족에 대해 수군거리는 것 같다는 피해의식에 시달렸고, 완벽한 모습만 보여주려 애썼다고 고백합니다. 집은 망했지만 자신은 괜찮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풀 세팅을 하고 외출했다고 하는데요, 어머니 역시 항상 흐트러짐 없는 완벽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했다고 합니다. 완벽하게 포장된 모습 뒤에 숨겨진 불안과 고통을 짐작하게 합니다.
고통스러운 마음을 안고 작은 집으로 이사하면서 대부분의 물건을 버렸지만, 그랜드 피아노만은 포기할 수 없었다고 강조합니다. 좁은 아파트에 억지로 그랜드 피아노를 들여놓고, 피아노 옆에 작은 침대를 놓고 생활했다고 하는데요, 외가 친척들이 모두 음악가였기에 피아니스트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피아노는 단순한 악기가 아닌, 꿈이자 자존심이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좁은 방에 피아노를 놓느라 문도 제대로 열리지 않았지만, 피아노를 포기할 수 없었던 당시의 절박함을 이야기합니다. 피아노를 친구처럼, 혹은 전부처럼 여기며 힘든 시간을 위로받았다고 덧붙입니다. 피아노는 한국까지 배에 실어 가져왔다고 하는데요, 마지막 자존심이자 희망이었던 피아노에 대한 애착을 드러냅니다.
미국 학군 좋은 부촌에서 살다가 갑자기 작은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학군 콤플렉스에 시달렸다고 고백합니다. 고등학교 친구들은 모두 동부 명문 대학으로 진학했지만, 자신은 집에서 통학할 수 있는 주립대를 선택해야 했다고 하는데요, 자신보다 공부도 음악도 못하는 친구들이 더 좋은 학교에 가는 것을 보면서 좌절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주변 친구들과 비교하며 느꼈던 열등감과 자존감 하락을 털어놓습니다.
대학 시절 방황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회상합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거의 집에 들어가지 않고 밖으로 맴돌았다고 하는데요, 미국 영화에 나오는 파티를 쫓아다니며 방황했다고 합니다. 겉으로는 화려해 보였지만, 내면은 고통과 불안으로 가득했던 대학 시절을 짐작하게 합니다.
교회는 다니지 않고, 성당에 다녔다고 합니다. 성가대 반주와 오르간 연주를 했지만, 성당 미사에서는 CCM 찬양을 부르는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하는데요, 교회 다니는 친구들을 따라 교회에 놀러 갔다가 예배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남가주 사랑의 교회에서 김승욱 목사님의 설교를 처음 들었는데, 말씀이 마음속에 깊이 와닿았다고 합니다. 미사 중심의 가톨릭 예배와 달리, 말씀 중심의 예배가 주는 강력한 메시지에 매료되었다고 하는데요,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이 뜨거워지고, 다음 말씀이 궁금해지는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이후, 주일마다 교회를 찾아가 예배를 드리고, 특송과 찬양 봉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힘든 시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갈급했던 심정을 이야기합니다.
교회 예배를 통해 강한 임팩트를 받고,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 이야기를 예로 들며, 예수님께서 멸시받던 사마리아 여인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네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에게도 따뜻한 음성으로 말씀하셨다고 간증합니다. 세상은 집안이 망한 자신을 실패자, 루저라고 손가락질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너의 약함이 나에게 기쁨이다", "너의 연약함을 통해 일할 것이다", "너를 향한 큰 계획을 세워 놓았다"라고 말씀해주셨다고 하는데요, 예수님의 따뜻한 음성에 큰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고 고백합니다.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시기에 예수님의 사랑이 큰 힘이 되었음을 강조합니다.
당시 경험했던 감동을 담아 찬양 '나의 약함은 나의 강함'을 만들었다고 소개하며, 찬양을 통해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 실패하고 수치스러운 일들이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고백합니다. 찬양을 통해 역경을 딛고 일어설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 바로 믿음이었음을 강조합니다.
찬양 '나의 약함은 나의 강함'을 함께 들으며 감동을 나누는 시간을 갖습니다. 찬양 후, 주영훈 집사님은 찬양이 너무 좋다고 극찬하며, 앞으로 '새롭게 하소서' 고정 출연을 제안하기도 합니다.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오게 된 계기는 친구들의 영향이었다고 합니다. 친했던 친구들이 봉사활동을 위해 아프리카로 떠나고, 뉴욕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것을 보면서 자신도 변화를 갈망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1년 동안 한국에서 지내보자는 결심을 하고 무작정 한국행을 택했다고 합니다. 한국에 가면 돈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라는 현실적인 이유도 작용했다고 덧붙입니다.
홍대 근처 원룸에서 생활하며 영어 유치원 강사로 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영어 유치원에서 만난 동료의 소개로 여의도순복음교회 영산싱어즈 오디션을 보게 되었고, CCM 찬양 '하나님의 은혜'를 불러 합격하여 찬양 사역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합니다. 찬양 사역을 위해 한국에 온 것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찬양 사역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전임 사역이라는 단어를 한국에 와서 처음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전임'의 뜻을 '풀타임'이라고 재치있게 설명하며 웃음을 자아냅니다. 찬양 사역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미국 교회 문화와 한국 교회 문화의 차이점을 실감하며, 한국 교회 문화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습니다. 특히, 여의도순복음교회는 매우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신앙생활을 강조하는 곳이었기에 더욱 그랬다고 하는데요, 외국인 친구들에게 'K-교회'를 경험하고 싶다면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추천할 정도라고 덧붙입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뜨거운 기도 문화에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우렁찬 '주여 삼창' 기도, 금요철야 예배, 미스바 기도회(밤 9시부터 새벽 4시까지 철야 기도), 방언 기도 등 열정적인 기도 문화에 압도되었다고 하는데요, 특히, 예배 전 1~2시간 동안 불을 끄고 무릎 꿇고 통성기도를 하는 훈련, 단기 선교 훈련 시 영성일지 작성, 무릎 꿇고 통성기도 1시간 등 강도 높은 훈련 과정을 거쳐야 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무릎 꿇고 기도하는 문화가 없었기에 더욱 낯설고 힘들었다고 하는데요,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의 사역은 한국 교회 문화에 적응하고 신앙적으로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힘들었지만, 은혜로운 시간이었음을 강조합니다.
남편과의 만남과 결혼 스토리를 공개하며, 남편 역시 교회에서 만난 것은 아니고, 홍대에서 우연히 만났다고 합니다. 만난 지 두 달 만에 혼인신고를 하고, 6개월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고 '초고속 결혼'임을 밝히는데요, 임신은 아니었다고 덧붙이며 웃습니다.
오랫동안 배우자를 위한 기도를 해왔다고 합니다. 외모나 직업 등 조건보다, 찬양 사역을 지지해주고, 자신을 최우선 순위에 둘 수 있는 남편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하는데요, 남편에게서 기도 제목에 부합하는 모습을 발견하고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만남부터 결혼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안정적인 가정을 이루고 싶었던 마음과 하나님의 응답이 결혼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결혼 10년 차, 남편과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야기하며, 남편이 사역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고, 바쁜 사역 일정으로 인해 가정에 소홀할 수밖에 없는 자신을 묵묵히 내조해 준다고 자랑합니다. 남편의 헌신적인 사랑에 감사를 표합니다. 남편은 사업을 하고 있으며, 코로나 시국에도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사업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있다고 덧붙입니다.
만나교회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남편 때문이라고 합니다. 결혼 후, 남편이 여의도순복음교회 문화가 자신에게는 너무 강하다고 느껴 만나교회로 옮기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시어머니가 먼저 만나교회에 등록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만나교회에서 결혼식도 올리고, 신앙생활을 이어가면서 만나교회와 깊은 인연을 맺게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만나교회에서 찬양 사역을 시작하게 된 과정을 이야기합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처럼 체계적인 찬양 사역팀이 있는 줄 알았지만, 만나교회는 그렇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집사로서 봉사 찬양을 하다가 수요 예배 찬양 인도를 맡게 되었다고 합니다. 수요 예배 찬양 인도를 하던 중,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고 신학 공부를 결심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담임 목사님께 이메일을 보내 신학대학원 진학 의사를 밝혔고, 목사님의 적극적인 지지로 감리교 신학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담임 목사님의 격려와 지원 덕분에 신학 공부와 사역을 병행할 수 있었다며 감사를 표합니다.
신학대학원에 진학하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더욱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과거 집이 망했을 때, 사택에서 찬양 콘테스트 연습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고 하는데요, 당시 불렀던 찬양이 'Blessed'였고, 가사 내용이 '나는 복 받았다'라는 고백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합니다. 집이 망해 불안하고 혼란스러웠던 상황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나는 복 받았다'라고 찬양했던 것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던 것 같다고 묵상합니다. 미국에서 피아노 치던 평범한 학생이 한국에 와서 찬양 사역자가 되고 목사가 된 것은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강조합니다. 과거의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이미 자신을 향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음을 깨달았다고 간증합니다.
찬양 사역을 하면서 응원과 격려도 많았지만, 악플로 인해 상처받기도 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특히, '정신 차려라, 너는 이세벨이다'라는 악플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하는데요, 이세벨은 성경 속 악녀의 대명사라고 설명합니다. 악플러가 문제 삼았던 것은 손목의 작은 문신이었다고 합니다.
손목의 문신 때문에 '이세벨'이라는 악플을 받은 사연을 설명합니다. 문신은 노아의 방주에서 날려 보낸 비둘기가 올리브 잎사귀를 물고 돌아오는 그림이라고 하는데요, 어릴 때 새겼던 문신이지만, 찬양 사역을 하면서 문신을 가려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고 합니다. 붕대, 팔찌, 시계 등으로 가려봤지만, 자유롭게 찬양하기 어려웠다고 덧붙입니다. 문신 자체가 혐오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보수적인 시선 때문에 오해를 살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일부 성도들은 레이저 시술을 권유하기도 했다고 하는데요, 기독교 신앙과 문신에 대한 논쟁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기독교 신앙과 문신에 대한 질문에 대해, 성경적으로 문신을 금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에게 시험이 될 수 있다면 자제하는 것이 좋다는 견해를 밝힙니다. 술, 담배와 마찬가지로, 기독교 윤리적인 관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고 덧붙입니다. 한국 교회 특유의 보수적인 문화 때문에 문신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존재한다는 점을 언급하며, 나라별, 문화별로 신앙의 형태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자신 역시 '열린 사고'를 지향하지만, 꼰대 같은 면모가 있음을 인정하며, 재미교포 목사의 예배 태도(짝다리, 기도 안 함 등)에 실망했던 경험을 예로 듭니다. 자신도 모르게 타인을 정죄하는 모습에 놀랐다고 하는데요, 완벽하게 열린 사람은 없다는 것을 인정하며,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악플로 인해 찬양 사역을 포기할까 고민했지만, 청년 세대에게 문신이 더 이상 낯선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고 생각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청년들에게 '타투가 있어도 교회에 올 수 있다',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고 덧붙입니다. 자신의 모습이 청년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합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에는 어떠한 것도 걸림돌이 될 수 없다는 믿음을 강조합니다. 악플에 연연하지 않고, 묵묵히 찬양 사역을 감당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냅니다.
10년 넘게 악몽에 시달렸지만, 신앙의 힘으로 트라우마를 극복했다고 간증합니다. 쫓겨났던 집에 다시 들어가는 악몽을 10년 넘게 반복해서 꾸었다고 하는데요, 꿈에서 깨면 항상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악몽의 내용은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 다시 행복하게 집에 돌아가지만, 꿈인지 현실인지 불안에 떨며 집안을 헤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 덕분이라고 강조합니다. 신앙생활과 사역을 통해 집과 재산에 대한 집착과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이제는 악몽을 꾸지 않고 편안하게 잠들 수 있게 되었다고 덧붙입니다.
처음 한국에 와서 찬양 사역 오디션 때 불렀던 '하나님의 은혜' 찬양을 부르며, 지금까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고백합니다. 찬양을 통해 감동과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갖습니다. 찬양 후, 주영훈 집사님은 다시 한번 찬양에 감탄하며, 우미쉘 목사님의 찬양 사역을 응원합니다.
찬양 인도자의 고충에 대한 질문에, 매주 예배를 준비하는 부담감과 책임감을 토로합니다. 찬양 인도자의 마음 상태와 영적인 컨디션이 예배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항상 깨어있으려고 노력한다고 하는데요, 예배를 통해 성도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은혜를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기 위해 기도하며 준비한다고 합니다. 주일 전날에는 마음을 정결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한다는 이야기도 덧붙입니다.
주일 예배를 앞둔 마음에 대해, 긴장감보다는 기대감이 크다고 답합니다. 토요 예배 준비로 바쁘지만, 미리 콘티를 준비하고 기도하며 예배를 준비하기 때문에,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드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으로 예배를 기다린다고 합니다. 예배를 통해 청년들과 함께 찬양하며 은혜를 나눌 것을 기대한다고 덧붙입니다.
부모님의 반응을 묻는 질문에, 미국에 계신 아버지는 유튜브로 영상을 챙겨보시고, 어머니는 교회에 직접 오셔서 예배를 드리기도 한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찬양 인도 시간이 긴 것을 걱정하시고, 아버지는 특별한 말씀은 없지만 항상 영상을 챙겨보시는 것 같다고 덧붙입니다. 부모님의 사랑과 응원에 감사를 표합니다.
부모님과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 현재는 따로 지내고 계시지만, 각자의 삶을 잘 살아가고 있다고 답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모두 행복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합니다.
본인의 성격에 대해, 극 내향적인 ISTP라고 밝히며, 버스 하차벨도 못 누를 정도로 낯가림이 심했다고 고백합니다. 내성적인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앞에서 찬양 인도하는 것은 자신의 성향과는 정반대되는 일이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며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찬양 사역은 자신의 약점을 통해 하나님의 강함을 드러내는 도구임을 강조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물가의 여인처럼 예수님의 사랑을 기다리는 다음 세대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우물가의 여인은 예수님께 특별한 은혜를 입었지만, 특별히 잘난 것이 없는 평범한 여인이었다고 강조합니다. 자격 없는 자에게 찾아오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이야기하며, 절망과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따뜻한 음성을 들려주신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기꺼이 드릴 수 있는 사람들이 되기를 축복하며, 함께 기도하겠다고 덧붙입니다.
향후 목회 계획에 대해, 찬양 사역뿐 아니라 말씀 사역에도 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으며, 여성 목회에도 관심이 많다고 합니다. 앞으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 목회자의 길을 걷고 싶다는 소망을 밝힙니다. 언젠가 얼바인으로 돌아갈 수도 있지 않겠냐는 질문에, 하나님의 뜻이라면 어디든 가겠다는 열린 마음을 표현합니다. 하지만, 한국이 너무 좋다고 덧붙이며 웃음을 자아냅니다.
마지막 찬양으로 '세상을 사는 지혜'를 선곡하며, 찬양을 통해 시청자들이 지혜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합니다. 찬양을 함께 들으며, 우미쉘 목사님과의 인터뷰를 마무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