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극복 간증 김현주 성도님의 치유와 희망 이야기
[수어통역] 마음의 병, 딛고 일어서다: 김현주 성도의 희망 간증
마음의 병, 당신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절망의 터널에서 희망을 찾은 김현주 성도님의 간증
현대 사회에서 우울증은 더 이상 낯선 질병이 아닙니다. 오히려 감기처럼 흔하게 찾아오는 마음의 병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우울감과 무기력증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매년 우울증 환자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우리 주변에서도 마음의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늘, 오랜 시간 우울증으로 깊은 고통을 겪었지만, 결국 완벽한 치유를 경험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김현주 성도님의 이야기를 통해, 마음의 병으로 힘겨워하는 분들에게 깊은 위로와 희망을 전하고자 합니다.
김현주 성도님은 밝은 미소로 우리를 맞이해 주셨지만, 그녀의 눈빛에는 깊은 슬픔과 고뇌의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우울증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온 그녀의 이야기는, 단순한 극복 스토리를 넘어, 인간의 나약함과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 그리고 신앙의 힘에 대한 깊은 메시지를 전달해 줄 것입니다. 과연 김현주 성도님은 어떻게 그 긴 어둠을 헤쳐나와 빛을 보게 되었을까요? 지금부터 그녀의 진솔한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시겠습니다.
20대 초반, 어둠이 드리우기 시작하다: 감성적인 소녀, 가면을 쓰다
김현주 성도님의 우울증은 22살 겨울, 예기치 않게 찾아온 공황 장애를 경험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부터 그녀의 마음속에는 이미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는데요. "저는 어릴 때부터 남들보다 감성이 좀 진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녀는 책과 음악을 좋아하고, 슬픈 영화나 드라마에 쉽게 몰입하는, 감수성이 풍부한 소녀였습니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자유로운 시간을 갖게 되었고, 술을 즐기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대학 문화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활발하고 즐거운 대학 생활이었지만, 그녀의 내면은 점점 어둠에 잠식되어 갔습니다. "남들이 봤을 때는 굉장히 잘 지냈던 것처럼 보였을 거예요. 신나게 술 먹고 재밌게 놀고…." 하지만 "혼자 집에 가는 길에는 항상 제가 되게 힘들었던 것 같아요. 혼자 집에 가는 길에는 울면서 가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밝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사람들과 잘 지냈지만, 혼자 있는 시간에는 어찌할 수 없는 우울함이 그녀를 짓눌렀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우울함을 '남들보다 감성이 좀 진한 것' 정도로 치부하며,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2살, 어머니의 구역 예배에서 예상치 못한 사건을 겪으며 공황 장애를 경험하게 됩니다. "어느 날 집에 있었는데, 어머니가 구역 예배를 드리시는 거예요." 어머니는 독실한 신앙인이었고, 항상 겸손하고 남을 칭찬하기에 바쁜 분이셨습니다. 하지만 그날, 어머니는 교인들에게 딸 현주에 대해 칭찬을 늘어놓았습니다.
"엄마가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우리 현주는 어려서부터 하나도 손이 안 갔다는 거예요. 너무 야무지게 잘 크고, 너무너무 한 번도 걱정을 끼친 애가 아니라는 거예요.’" 어머니의 칭찬은 칭찬이 아닌 비수가 되어 그녀의 가슴에 꽂혔습니다. "다섯 살 무렵에 제가 혼자서 머리를 땋는데 정말 잔머리가 하나도 안 나오도록 꽝꽝 땋더라는 거예요." 다섯 살 아이가 하기에는 불가능에 가까운 솜씨라는 어머니의 말에, 그녀는 숨이 막히는 듯한 고통을 느꼈습니다.
"제가 다섯 살로 딱 돌아간 느낌인 거예요. 다섯 살이 뭘 할 수 있겠어요?" 그녀는 어린 시절, 부모님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느꼈고, 칭찬에 인색했던 어머니에게 깊은 서운함을 느껴왔습니다. 어머니의 칭찬은 오히려 그녀에게 어린 시절의 상처를 떠올리게 했고, "숨이 안 쉬워지고 나중에 병원을 가서 알았어요. 공황이 왔다는 거를." 그날 이후, 그녀는 방에서 나오지 않고 칩거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활발하고 외향적이었던 그녀는, 공황 장애 이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전까지 활동적으로 뭐 동아리 활동해 뭐해 뭐해 언제나 늘 바쁜 학생이고 즐거운 학생이었어. 근데 그날 이후로 제가 방에서 나가질 않았어요." 두세 달 동안 방에만 틀어박혀 지냈고, 가족들과도 단절된 생활을 했습니다. 부모님은 걱정했지만, '늘 잘 해왔던 딸'이기에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고통은 점점 더 깊어져만 갔습니다.
신앙심 깊은 어머니 밑에서 자랐지만, 그녀는 하나님께 매달릴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매달려 볼까라는 생각을 했죠. 했는데… 제 안에 어두움이 더 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거는 하나님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고…." 어린 시절, 어머니의 고난을 지켜보며 하나님에 대한 의문을 품었던 그녀에게, 신앙은 더 이상 위로가 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정말 계시다면 왜 우리는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되지? 엄마는 매일매일 저렇게 울면서 기도하시고 말씀 보시고…." 그녀에게 하나님은 냉정하고 무심한 존재처럼 느껴졌습니다.
대학교 시절, 그녀는 밝고 쾌활한 '인싸'였지만, 가면 뒤에 숨겨진 슬픔과 고독은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너무 밝기 때문에 사람들이 저한테 기대하는 모습은 긍정적이고 에너지 있고… 어 ‘현주랑 있으면 즐거워.’ 근데 제가 어느 날 갑자기 ‘사실은 내가 말이야…’ 전혀 말 못 하겠더라고요." 마스크를 쓴 것처럼, 사람들을 만날 때는 웃는 얼굴을 보여주었지만, 가면을 벗으면 울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감추기에 급급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그녀의 불안정함을 어렴풋이 느꼈지만, 누구도 그녀의 깊은 고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결혼과 육아, 행복 뒤에 숨겨진 그림자: 고슴도치 아내, 엄마의 상처를 되짚다
결혼 후, 남편의 따뜻한 위로와 사랑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우울증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관계가 깊어질수록 그녀 안에 숨겨져 있던 고슴도치 같은 가시들이 돋아나, 남편과의 관계는 삐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어 너무 좋은 사람이고 진짜… 어머님 기도로 만났고… 근데 일단은 제 안에 너무 못난 부분이 많으니까 부딪히는 부분이 있는 거죠." 결혼 생활은 행복했지만, 그녀의 마음속 어둠은 더욱 짙어져만 갔습니다.
세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육아의 기쁨과 행복을 느끼기도 했지만, 동시에 어린 시절의 상처가 다시 떠올랐습니다. 아이들은 그녀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었고, 잠시나마 우울증을 잊게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면서, 그녀는 다시 어린 시절의 상처와 마주하게 됩니다. "아이들은 너무 예쁜데… 우리 엄마 나한테 왜 그랬지? 이게 또 시작이 되는 거예요. ‘우리 아빠는 왜 그렇지?’" 부모님에 대한 원망과 연민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들이 그녀를 괴롭혔습니다.
학원 운영을 시작하면서, 그녀는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인간관계에서 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동네 엄마들과 친목 모임을 만들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술자리에서 털어놓은 속마음이 화근이 되어, 친했던 동생과의 관계가 틀어지고 왕따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완전히 틀어졌어요. 정신과 이런 이야기를 했으니까 소문이 났겠죠. ‘저기 엄마가 그 완전 정신병자 아니니?’" 인간관계의 실패는 그녀를 더욱 고립시키고, 깊은 절망감에 빠지게 했습니다.
왕따 사건 이후, 그녀는 술에 의존하는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술은 잠시나마 괴로움을 잊게 해주는 도피처였지만, 결국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었습니다. "술을 좀 먹으면은 잠을 좀 편하게 자니까… 그게 계속 걷잡을 수 없이 계속 악순환이었던 거예요." 술 없이는 잠들 수 없었고, 술에 취해 잠들어도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어지럼증, 무기력증, 불면증은 더욱 심해졌고, 환청까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소리가 들려요. 사람 말소리… ‘너 누구야?’" 환청은 그녀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고,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는 점점 모호해져 갔습니다. 사람들의 얼굴에서 귀신 같은 형상이 보이고, 세상은 온통 어둠으로 뒤덮인 듯했습니다. "사람을 만났을 때… 사람 얼굴에서 자꾸 나쁜 게 보이고, 뭔가 귀신 같은 게 보이고… 그랬어요." 그녀의 삶은 점점 더 엉망이 되어갔습니다.
가정은 엉망이 되었고, 아이들을 돌볼 힘조차 없었습니다. "생활이 엉망이었어요. 뭐 지금 말씀하시… 애들 공부를 봐줄 정도가 아니라… 뭐 저기 일상 생활이 어려웠겠죠." 집은 쓰레기장처럼 변해갔고, 아이들은 방치된 채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생활을 했습니다. "집은 정말… 가끔 TV에 나오는 쓰레기 집처럼… 아… 초등학교 아이 셋에 강아지까지 있는데, 엄마가 누워 있으면 순식간에 쓰레기 되는 거죠." 그녀는 엄마로서의 역할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막내아들이 선천성 심장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생후 2주 만에 심장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 그녀는 절망의 늪에 빠졌습니다. "처음에 아이 그 진단을 받았을 때… 생후 조리원에서 이제 받았거든요. 아이가 이래서 이제 대학병원으로 가야… 가서 수술을 해야 된다고… 너무 청천벽력 같은 말이잖아요." 힘든 상황 속에서 어머니는 그녀에게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권유했지만, 그녀는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엄마가 ‘너 하나님께로 나오라고, 이런 일이 있는 거다’라는 식으로 얘기를 하셨어요. 근데 그 말을 듣는데 너무 화가 나는 거예요. 아니… 치시려고 나를 치셔야지, 이 아기가 무슨 잘못이 있나." 그녀는 하나님을 믿을 수 없다고, 교회를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절망과 고통만이 가득한 삶, 그녀는 과연 이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절망의 끝에서 만난 한 줄기 빛: 당근 거래, 그리고 새벽 기도
더 이상 이대로 살 수 없다는 절박함, 그녀는 삶의 변화를 시도하기 위해 이사를 결심합니다. "제가 어떻게든 이 생활을 끝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느 순간. 왜냐면 아이들이 망가지는 거 보니까… 애들이 너무 불쌍한 거예요." 이사라는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렸지만, 그녀의 몸과 마음은 이미 지쳐있었습니다. 운전조차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그녀는 아이들을 위해 용기를 냈습니다.
이사 준비는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어지럼증, 환각, 환청은 더욱 심해졌고, 뒷베란다 문조차 열 수 없을 정도로 공포에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어지러워 죽나, 운전하다 죽나 마찬가지지, 이런 마음이 딱 들더라고요. 아이들을 생각하니까… 그니까 이게 저는 약하지만 또 엄마로서 또 이제 그런 힘이 생기더라고요." 그녀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힘든 시간을 견뎌냈습니다.
이사 후에도 여전히 힘든 시간은 계속되었지만, 우연한 만남이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집에 걸 그림을 찾기 위해 당근마켓을 이용하던 중, 그녀는 김강훈 지휘자를 만나게 됩니다. "하루는 앉아 있다가… 거실에 이렇게 앉아 있는데, 집에 걸린 그림이 너무 마음에 안 드는 거예요." 당근 거래를 통해 알게 된 김강훈 지휘자는, 그녀에게 끊임없이 교회 이야기를 건넸습니다.
처음에는 교회 이야기가 불편했지만, 김강훈 지휘자의 진심 어린 태도에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자꾸 틈만 나면 교회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저한테. 그래… 저는 이제 이분이 잘… 어떻게 지내면서 그림을 얻어야겠다, 좋은 가격에 조각품들 이런 걸… 어… 이 생각만 하고 있는데, 자꾸 교회 어쩌고저쩌고 얘기를 하셔 가지고…." 그녀는 김강훈 지휘자에게 자신의 가족사를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교회에 나가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습니다. 하지만 김강훈 지휘자는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그녀를 교회로 이끌었습니다.
"세 번째 거래하는 날, 저보고 서초교회 주차장으로 오라 그러시더라고요. 그래… 제가 ‘저 교회 근처도 가기 싫다’고 그렇게 얘기를 했어요." 교회 근처에도 가기 싫었지만, 그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교회 주차장으로 향했습니다. "3분만 있으면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 싫은데, 3분… 그래, 3분.’ 그렇게 교회가 가기 싫었어요. 싫었어요. 아예 들어가는 출입조차 싫었어요." 교회 문턱을 넘는 순간, 그녀의 삶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교회 주차장에서 그녀를 맞이한 것은, 따뜻한 미소와 환영 인사를 건네는 교회 사람들이었습니다. "거기에 교회 분들이 좀 여러 분이 계셨어요. ‘잘 오셨어요!’ 막 이렇게 얘기하시는 거예요. ‘어, 너무 잘 오셨어요!’ 얘기를 하시는데, 되게 부담스러워… ‘아, 나 여기 잘 온 거 아닌데?’ 그랬더니, 이제 그 지휘자 선생님이… 그 저랑 당근 하셨던 선생님이 등록 카드를 쓰라는 거예요." 얼떨결에 등록 카드를 쓰고 그림을 받아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날부터 그녀의 마음속에는 이상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날부터 갑자기 너무 이상한데, 교회가 너무 가고 싶은 거예요." 교회에 대한 강렬한 이끌림, 그녀는 새벽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잠 못 이루는 밤, 새벽 기도는 그녀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었습니다. "새벽 기도를 나갔어요. 새벽 기도를. 왜냐면 저는 어차피 잠을 못 자니까, 밤을 새고 가는 거죠." 처음에는 새벽 기도 시간에 주식 투자를 하기도 했지만, 점차 예배와 말씀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주일학교 봉사를 통해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그녀는 잊고 있었던 사랑의 감정을 되찾았습니다. "아이들이 너무 불쌍한 거예요. 엄마가 이렇게 병이 깊어 가지고, 제대로 사랑도 못 받고…." 주일학교 아이들의 순수한 사랑은 그녀의 닫힌 마음을 녹였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다시금 싹틔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랑의 원천으로 애들을 넣어야겠다,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하나님은 사랑이시니까요."
새로운 시작, 그리고 희망: 믿음 안에서 찾은 치유와 회복
새벽 기도와 주일학교 봉사를 꾸준히 하면서, 그녀의 삶은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설교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어느 날 "건축자의 버린 돌이 모퉁잇돌이 된다"는 말씀이 그녀의 가슴에 깊이 박혔습니다. "그 돌이 저한테 날아와 박히더니, 제 가슴에 날아와 박혀 가지고, 제 신앙의 주춧돌이 되는 거예요." 그녀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진심으로 항복했습니다.
신앙의 힘은 놀라웠습니다. 약을 끊고 술을 멀리하게 되었고, 매일 새벽 기도에 참석하며 예배와 말씀에 집중했습니다. "약을 다 끊었어요. 병원에서 절대 끊지 말라고 했는데… 그리고 남아 있었던 알코올 의존증 있어 가지고, 알코올… 그런 못 먹게 하는 약도 있고, 여러 가지 약들을 그냥 제가 한꺼번에 끊었어요." 점점 건강을 회복했고, 마음의 평안을 되찾았습니다.
가족 관계도 회복되었습니다. 특히 어머니와의 관계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부모님과의 관계도 풀렸어요. 한동안 연락을 안 하고 있다가… 좀 마음이 힘들 때, 뭐 신앙생활 해서 늘 좋은 것만 아니잖아요. 마음이 힘들 때 너무 엄마가 보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갔는데, 어머니 아버지가 아무렇지 않게… 그렇게 못되게 굴고 부모님 원망하고 했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그냥 받아 주시는 거예요."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을 느끼면서, 어린 시절의 상처는 치유되고, 가족 안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엄마의 변화를 가장 기뻐했습니다. 술에 취해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던 엄마는 사라지고, 밝고 건강한 엄마가 돌아온 것입니다.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죠. 아이들이 저한테… 제가 이제 교회 다니기 시작하면서, 하루는 ‘엄마, 이제 집사님들이 잠깐 뭐 만나고 들어갈게’ 했더니, 아이들이 ‘엄마, 집사님들도 술 마셔?’ 이러는 거예요." 아이들은 더 이상 술 취한 엄마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고,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엄마를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김현주 성도님의 이야기는, 마음의 병으로 고통받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절망의 터널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는 반드시 치유와 회복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그녀의 삶이 증명해줍니다. "주저하지 말고, 하나님께로 나오시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그녀는 용기를 내어 하나님께 나아갈 것을 간곡히 권면합니다.
물론, 마음의 병은 쉽게 낫는 질병이 아닙니다. 터널을 빠져나왔다고 해서 끝이 아닙니다. 미세먼지처럼, 언제 다시 우리 삶에 침투해 올지 모르는 위험을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저는 사실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하나님께서 늘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한 이유도, 또 늘 깨어 있으라고 한 이유도… 우리는 조금만 방심하고, 우리 조금만 한눈을 팔면… 이 나의 질병이 미세먼지처럼, 그냥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깊이 돼서… 내 호흡기로 타고 들어와서, 나를 또 지배할 거란 말이죠." 끊임없는 기도와 말씀 묵상, 그리고 깨어 있는 신앙생활을 통해, 우리는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고, 더욱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김현주 성도님의 간증은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도전을 줍니다. 그녀의 용기와 믿음을 본받아, 우리 또한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늘 내 아픈 것 아시는 하나님께 늘 기도하면서, 또 내 아이들 어떻게 키워달라고… 지금 굉장히 귀하게 잘하셨음에도, 남들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환경에서 귀하게 잘 하셨음에도, 이렇게 마음 고생을 많이 하셨으니, 우리 아이들도 하나님께서 그런 위험에서 건져달라고 늘 깨어서 기도하시면서 자녀들 양육하시고, 또 같은 경험을 하실 분들에게 위로해 주시고, 어떻게 내가 이겨내는지 그 경험하셨던 하나님을 또 전해 주십사, 그런 책임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함께 손잡고 어둠을 헤쳐나가, 마침내 빛 가운데 서는 날을 맞이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귀한 간증 나눠주신 김현주 성도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성도님의 삶을 통해, 많은 분들이 위로와 용기를 얻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