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 교수 고난 극복과 감사 이야기 새롭게하소서 출연
[새롭게하소서] 김성희 교수: 고난 속에서 찾은 감사
“지금의 삶에 감사하시나요?” 김성희 교수님의 파란만장 인생 이야기: 고난 속에서 발견한 감사의 의미
오늘 우리는 고난 속에서 감사와 희망을 발견하며 살아가는 김성희 교수님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함께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김성희 교수님은 최근 ‘새롭게 하소서’라는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여, 파란만장했던 인생 역경과 그 속에서 깨달은 삶의 소중한 가치에 대해 진솔하게 털어놓으셨는데요. 미즈 실버 코리아 선발대회 대상 수상이라는 화려한 이력 뒤에 숨겨진 그녀의 고난과 역경, 그리고 이를 극복해낸 놀라운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과 감동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김성희 교수님의 인생 이야기를 자세히 살펴보면서, 그녀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놀랍게도 김성희 교수님은 아름다운 외모와는 달리 해외여행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다고 합니다. 방송에서 그녀는 “비행기를 타본 적이 없다. 해외여행 한 번도 못 가봤다”라고 밝혀 놀라움을 자아냈는데요. 화려한 미즈 실버 코리아 대상 수상과는 대조적으로, 그녀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김 교수님은 2018년 전임 교수가 되기 전까지 경제적 어려움과 건강 문제, 시간 부족에 시달리며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회상했습니다. 현재도 16평 임대 아파트에 거주하며 비행기를 탈 기회조차 없었다고 덧붙였는데요.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 뒤에 감춰진 그녀의 진솔한 이야기는 더욱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김 교수님은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희귀한 경험을 했다고 고백하며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2001년 남편이 전도사로 사역할 당시, 사례비가 30만 원에 불과하여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생계를 유지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과도한 강의로 인해 목소리가 점점 허스키해지더니, 결국 ‘무음’ 상태가 되어버렸다고 합니다. 직업병으로만 생각했던 목소리 문제는 건강 악화의 신호탄이었는데요. 어느 날 학생 옆에 앉아 있다가 몸이 옆으로 기울 정도로 어지럼증을 느꼈고, 병원 검사 결과 목에 혹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기관지 내시경 도중 기도 밑에서 암 덩어리가 발견되었다는 것입니다. 5cm 크기의 암 덩어리가 기도를 꽉 막고 있어, 하루만 늦었어도 질식사할 수 있는 위급한 상황이었다고 당시 의사는 진단했습니다. 결국 후두암 3기 말에서 4기 초 진단을 받게 된 김 교수님, 과연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을까요?
후두암 진단 후, 김 교수님은 죽음 앞에서 오히려 초연한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레지던트 의사가 후두암 진단 결과를 전했을 때, 그녀는 오히려 웃으며 “저 후두암이죠? 괜찮아요”라고 의연하게 말했다고 합니다. 젊은 나이에 암 진단을 받은 그녀의 담담한 태도에 레지던트 의사는 눈물을 글썽였다고 하는데요. 김 교수님은 당시 목회자이자 사모로서 신앙심이 깊었기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천국에 대한 소망이 더 컸다고 고백했습니다. 휘둘러 로스의 ‘죽음의 5단계’ 중 ‘수용’ 단계를 바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깊은 신앙심 덕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린 아들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다고 하는데요. 만 두 돌도 채 되지 않은 아들을 남겨두고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가슴 아팠지만, 하나님께 아들을 맡기며 슬픔을 억눌렀다고 합니다. 죽음 앞에서도 신앙심을 잃지 않았던 김 교수님의 강인한 정신력은 감탄을 자아냅니다.
하지만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암 투병 중 남편으로부터 이혼 통보를 받은 것인데요. 네 번째 항암 치료를 받던 중, 남편은 갑작스럽게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평소 교회 집사와의 관계로 인해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고 있었지만, 설마 했던 일이 현실로 닥친 것입니다. 남편은 늦은 밤 집사를 만나 상담을 하고, 새벽 늦게 귀가하는 일이 잦았다고 합니다. 결국 김 교수님이 암 투병으로 힘든 시기에 남편은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져 가정을 버린 것입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의 배신까지 겪어야 했던 김 교수님, 과연 이 절망적인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갔을까요?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남편의 외도 상대가 교회 집사였다는 것입니다. 남편과 집사는 교회 봉사활동을 함께 하면서 가까워졌다고 합니다. 심지어 김 교수님이 항암 치료로 몸을 가눌 수 없을 때, 남편은 집사와 함께 집에서 데이트를 즐겼다고 하는데요. 김 교수님이 몇 달 만에 집에 옷을 가지러 갔을 때, 집 비밀번호가 바뀌어 있었고, 집 안에는 집사가 숨어 있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이 함께 먹은 음식물 쓰레기와 집사의 신발이 발견되면서 남편의 외도는 명백한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김 교수님은 배신감에 휩싸였지만, 오히려 “집사님, 어떻게 저한테 이러실 수 있어요?”라고 담담하게 물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엄마의 질책뿐이었다고 하는데요. 엄마는 “네가 그렇게 하니까 당하는 거지”라며 오히려 딸을 나무랐다고 합니다. 목회자의 추악한 민낯과 믿었던 사람들의 배신, 정말 충격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놀랍게도 김 교수님은 남편의 배신과 이혼 요구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고 합니다. 보통 배신을 당하면 분노와 복수심에 휩싸이기 마련인데, 김 교수님은 달랐습니다. 그녀는 밤새도록 회개의 기도를 하며 자신의 잘못을 돌아봤다고 합니다. 결혼 당시 주변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남편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던 교만함, 그리고 남편을 하나님께 인도하지 못했던 자신의 부족함을 뉘우쳤습니다. 만약 그때 용서의 마음을 주시지 않았다면 복수심에 불타는 악마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고백했는데요. 오히려 남편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덧붙였습니다. 배신과 고통 속에서 오히려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준 김 교수님은 진정 존경스럽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고난 속에서 암세포가 기적적으로 사라졌다는 사실입니다. 남편의 배신을 확인하고 집에서 뛰쳐나온 다음 날, 정기 CT 검진 예약일이었습니다. 검사 결과, 놀랍게도 암 덩어리가 사라진 것입니다. 항암 치료 6번, 방사선 치료 37번 만에 완치 판정을 받은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엄마는 “남편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네”라며 기뻐했고, 김 교수님은 다시 한번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고난 속에서 오히려 병을 치유받는 놀라운 경험을 한 김 교수님, 그녀의 인생은 정말 드라마보다 더 극적입니다.
김 교수님은 자신을 ‘사랑의 빚진 자’라고 표현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암 투병 당시, 많은 교회 성도들이 병문안을 와주고 물질적으로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CT 촬영 한번에 69만 원 하던 시절, 암 등록증 제도조차 없었던 힘든 시기에 익명의 성도들이 보내준 사랑 덕분에 치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빚을 갚는 심정으로 살아가겠다는 다짐으로 닉네임조차 ‘빚진 자’로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완치 후 간호학과에 입학하여 간호사가 된 것도, 어려운 이들을 돕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헌신이었는데요.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헌신 덕분에 다시 살아난 그녀는 진정 ‘사랑의 빚진 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가족, 특히 엄마와 아들 덕분이라고 김 교수님은 강조합니다. 후두암 진단 당시 엄마는 눈물로 철야기도를 하며 딸의 생명을 간절히 간구했습니다.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갚으라”는 로마서 말씀을 늘 강조하며 딸에게 용서와 사랑을 가르쳤습니다. 네 살배기 어린 아들은 항암 치료로 힘들어하는 엄마를 위로하고 챙기는 든든한 존재였습니다. 횡단보도에서 주저앉는 엄마를 위해 기도해주고,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햇반을 챙겨 먹으며 스스로를 돌봤다고 합니다. 엄마와 아들이 없었다면 자살했을지도 모른다고 고백할 정도로, 가족은 그녀에게 삶의 원동력이자 버팀목이었습니다. 힘든 시간을 함께 견뎌준 가족에게 깊은 감사를 표하는 김 교수님의 모습은 뭉클한 감동을 선사합니다.
하지만 인생은 늘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법일까요? 김 교수님은 2년 전 유방암 진단을 또다시 받았다고 합니다. 후두암 완치 후 20년 만에 찾아온 두 번째 암, 그녀는 다시 한번 절망에 빠졌습니다.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또다시 암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막막함을 느꼈다고 합니다. 심지어 엄마에게 “이번에는 하나님이 부르시면 그냥 천국 가겠다”라고 말할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하나님이 계시면 나를 데려가야지, 왜 너를 또 데려가냐”라며 딸을 격려했고, 김 교수님은 다시 한번 힘을 내어 암과 싸우기로 결심했습니다. 두 번의 암 발병, 정말 감당하기 힘든 고난이지만 김 교수님은 굳건한 믿음으로 이겨내고 있습니다.
두 번째 암 투병은 첫 번째 암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웠다고 김 교수님은 회상합니다. 항암 치료 부작용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염증이 생겨 극심한 통증에 시달렸습니다. 밤에도 통증 때문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습니다. 호스피스 병동 간호사로 일했던 경험이 떠올랐다고 하는데요. 환자들이 죽음보다 더 두려워했던 것이 바로 ‘통증’이었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환자의 고통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었고, 간호사로서 환자를 대하는 태도를 더욱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고통을 통해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고, 더 나은 간호를 제공하고자 노력하는 김 교수님의 모습은 진정한 간호인의 표상입니다.
두 번째 암 투병은 김 교수님에게 신앙적으로 더욱 성숙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년 넘게 치열하게 살아오면서 세상에 발을 담그고 살았던 지난날들을 반성하고,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을 통해 신앙을 재정비했습니다. 비대면 예배가 일상화되면서 나약해졌던 신앙을 회복하고, 말씀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습니다.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는 성경 말씀처럼, 하루하루 하나님께 의지하며 살아가는 삶의 소중함을 깨달았습니다. 고난을 통해 더욱 깊고 성숙한 신앙을 갖게 된 김 교수님은 진정 믿음의 승리자입니다.
김 교수님에게 하나님은 어떤 존재일까요? 그녀는 하나님을 ‘나의 모든 것을 아시는 분, 그리고 선하신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자신이 계획한 삶이 아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왔지만, 지나고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 안에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생명을 연장시켜 주시고 끊임없이 회개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김 교수님의 믿음은 깊은 감동과 도전을 줍니다.
마지막으로 김 교수님은 앞으로 찬양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습니다. 후두암으로 목소리를 잃었던 그녀는 성가대 활동을 통해 기적적으로 목소리를 회복했다고 합니다. 다시 허락된 목소리로 찬양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앞으로의 비전이라고 말했는데요. 물질적으로는 부족하지만, 찬양을 통해 하나님께 보답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습니다. 고난을 딛고 일어선 그녀의 아름다운 찬양은 많은 이들에게 큰 은혜와 감동을 선사할 것입니다.
인터뷰 말미에 진행자는 김 교수님의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라고 칭찬하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특히 작은 것에도 감사하기 어려워하는 현대인들에게 김 교수님의 삶은 큰 울림을 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감사하는 삶, 그리고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굳건한 믿음은 우리 모두에게 깊은 영감을 줍니다. 김 교수님의 앞날을 응원하며, 그녀의 아름다운 찬양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기를 기대합니다. 끝으로 진행자는 어린 시절의 자신을 사랑하고, 앞으로도 건강하게 지내시기를 바란다는 따뜻한 덕담을 전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습니다. 김성희 교수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진정한 감사의 의미와 삶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