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하소서 간증 모음: 감동과 도전의 7인 이야기 정리
[새롭게 하소서] 숨겨진 보석! 감동과 도전의 7 간증
새롭게 하소서 간증 모음 상세 정리: 아직 많은 사람들이 보지 못한 보석 같은 간증들
이번 글에서는 유튜브 채널 "새롭게 하소서"에서 방영된 윤상혁 교수님, 편서영 자매님, 이성호 목사님, 이태경 형제님, 김현철 교수님, 김예원 변호사님, 김성민 대표님의 간증을 상세히 정리하여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분들의 이야기는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편집실에서 은혜를 받았다고 할 만큼 보석 같은 간증들인데요, 각자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변화된 놀라운 이야기들을 통해 깊은 감동과 도전을 받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은 텍스트 내용만을 상세히 정리하며, 어떠한 내용도 추가하지 않고, 영문 텍스트의 한국어 재작성이 아닌, 순수 한글 텍스트 내용을 바탕으로 한국어로 재작성되었습니다. 기법과 방법론은 구체적이고 디테일하게, 정량적으로 서술되었으며, 요약은 최대한 배제하고 원문 내용을 충실히 반영하고자 노력했습니다.
1. 윤상혁 교수: 평양 의대 교수, 척수 손상 및 발달 장애 치료 전문가
윤상혁 교수님은 평양 의과대학 재활의학과 교수이자, 척추 및 소아 행동 발달장애 치료 연구소 공동 소장으로, 북한에서 특별한 사역을 감당하고 계십니다. 미국 국적을 가진 윤 교수님은 2007년부터 평양에 거주하며 평양 의대에서 의사들을 교육하고, 소아 행동 발달장애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헌신하고 계신데요, 그의 간증은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를 북한이라는 특별한 땅으로 인도하셨는지, 그리고 그곳에서 어떤 은혜를 경험하고 있는지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윤 교수님의 어린 시절은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늘 공부 못 하는 아이"였다고 회상하며, 시험을 보면 반도 다 풀지 못하고 종이 치는, 늘 나머지 공부를 하던 학생이었다고 합니다. 난독증 때문에 글을 읽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이로 인해 학업에서 어려움을 겪었을 뿐 아니라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아픔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과외를 받게 되면서 분수를 배우고 처음으로 시험에서 100점을 받는 기쁨을 맛보았지만, 채점 결과는 빵점이었고, 큰 실망과 좌절을 겪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좌절 속에서도 어머니는 포기하지 않고 윤 교수님을 수영부에 보내셨습니다. 놀랍게도 수영에서 재능을 발견한 윤 교수님은 배영 선수로 활동하며 전국체육대회에서 메달을 획득하는 등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운동선수로서 성공적인 길을 걷는 듯했지만, 중학교 3학년 때 어머니가 림프암으로 투병하시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어머니의 투병 생활을 지켜보며 윤 교수님은 깊은 슬픔과 고통을 느끼면서도, 경배와 찬양 집회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신앙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윤 교수님은 체육인 선교 세미나에서 선교사로 헌신하게 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다른 나라에 가서 사랑을 전하라고 하시면 순종하겠다는 서원을 하게 된 것인데요, 이후 대학 입학 후 선교한국 컨퍼런스에서 랄프 윈터 박사의 '미전도 종족'에 대한 메시지를 듣고, 전문인 선교사의 비전을 품게 됩니다. 수영 코치로 이슬람 국가나 공산 국가에 가서 사역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게 되지만, 기도 중에 의료 선교사가 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불가능해 보이는 의사의 길에 도전하게 됩니다.
의사가 되기 위해 미국 유학을 결심했지만, 토플 점수가 부족하여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1년 동안 12번이나 토플 시험을 봤지만 500점을 넘지 못했고, 좌절감에 휩싸였지만, 우연히 방문한 올리벳 나사렛 대학교에서 입학 담당자와 상담하며 조건부 입학 허가를 받게 됩니다. 기적적으로 대학에 입학했지만, 난독증과 영어 실력 부족으로 학업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끊임없는 노력과 간절한 기도 끝에 졸업에 성공하고 의사의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대학 시절, 윤 교수님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됩니다. 바로 아내 조이서 선교사님인데요. 조이서 선교사님은 미국인 선교사 부모님을 따라 한국에서 자랐고, 15살 때 북한이 자신의 집이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고 합니다. 놀랍게도 윤 교수님과 조이서 선교사님은 결혼 전, 북한 선교에 대한 동일한 비전을 확인하고, 함께 북한으로 향하게 됩니다. 2007년, 윤 교수님은 평양 의과대학 교수로 임용되어 북한에서의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고, 척추 손상 및 발달 장애 분야에서 전문적인 의료 기술을 전수하고, 북한 주민들의 건강 증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의 삶은 쉽지 않았지만, 윤 교수님은 그곳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특히, 8년 동안 팔을 쓰지 못했던 한 할머니가 윤 교수님의 치료와 기도를 통해 팔을 움직이게 되는 기적을 목격하면서, 북한 땅에도 살아계신 하나님이 역사하고 계심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뇌성마비로 고통받는 아이 복신이를 만나면서 소아 재활 분야에 대한 사역의 비전을 품게 되었고, 평양 의대 내에 소아 재활의학과를 설립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이후에도 뇌성마비, 사지마비 등으로 고통받는 많은 북한 아이들을 치료하며, 그들의 삶에 희망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윤 교수님은 북한에서의 사역 외에도, NGO 단체 "선양 하나"를 설립하여 북한 주민들을 위한 인도주의적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현재 "선양 하나"에는 8개국에서 온 39명의 사역자들이 함께 동참하여, 장애인 지원, 의료 지원, 교육 지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북한 주민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윤 교수님의 간증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어떠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헌신하는 한 사람의 아름다운 삶이 얼마나 큰 감동과 도전을 줄 수 있는지 보여주는 귀한 이야기입니다.
2. 편서영 자매: 두 번의 암을 이겨낸 20대, 천국 소망을 노래하다
편서영 자매님은 20대에 두 번이나 암을 진단받았지만, 긍정적인 마음과 굳건한 믿음으로 이겨낸 놀라운 간증을 들려주셨습니다. 2015년, 담도암 진단을 받고 간 절제 수술, 방사선 치료, 항암 치료 등 힘든 치료 과정을 겪어야 했는데요, 치료 과정에서 심각한 부작용과 우울증으로 고통받았지만,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다시 예배하고 찬양할 수 있기를 소망했습니다. 놀랍게도 기도 후 암세포의 크기가 줄어들고 통증이 사라지는 기적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을 깊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련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2022년, 암이 재발하여 복막으로 전이되었고, 더 이상 치료 방법이 없다는 절망적인 진단을 받게 됩니다. 병원에서는 진통제 처방 외에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고, 주변 정리를 하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편 자매님은 다시 한번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번에는 완치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할 수 있을 만큼만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했는데요, 놀랍게도 기도 후 암세포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진통제 없이 생활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이 회복되었습니다.
편 자매님의 간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는 천국에 대한 소망입니다. 두 번째 암 재발 후, 병원에서 만난 암 투병 중인 친구와의 만남을 통해 천국에 대한 깊은 소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함께 병원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던 친구가 먼저 천국으로 떠나면서, 편 자매님은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을 소망하며, 이 땅에서의 고통과 슬픔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친구의 장례식장에서 활짝 웃고 있는 영정 사진을 보면서, 천국은 슬픔과 고통이 없는 영원한 기쁨의 나라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편 자매님은 암 투병 중에도 긍정적인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장루 시술을 받게 되었을 때, 처음에는 절망했지만, 장루의 장점을 찾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했습니다. 장루 덕분에 화장실을 자주 가지 않아도 되고,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며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또한, 장루 환자들을 위한 유튜브 채널 "빛서영"을 개설하여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고, 장루 환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편서영 자매님의 간증은 고난 속에서도 긍정을 잃지 않는 믿음, 죽음 앞에서도 천국 소망을 잃지 않는 믿음,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는 믿음이 얼마나 아름다운 결실을 맺는지 보여주는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녀의 밝고 긍정적인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큰 위로와 도전을 주며, 특히 질병으로 고통받는 분들에게 큰 희망과 용기를 선물하고 있습니다.
3. 이성호 목사/코치: 체육관 대표, 삶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
이성호 목사님은 크로스핏 뉴젠 체육관 대표이자, 삶으로 복음을 전하는 특별한 사역을 감당하고 계십니다. 목사이면서 체육관 대표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이 목사님은, 운동을 전혀 좋아하지 않았지만 39세에 건강 검진 후 운동을 시작하면서 크로스핏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고, 운동을 통해 복음을 전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체육관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간증은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를 세상 속으로 보내셨는지, 그리고 세상 속에서 어떤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지에 대한 진솔하고 유쾌한 이야기입니다.
이 목사님의 어린 시절은 해외에서 자유분방하게 보내셨습니다. 주재원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해외에서 성장하며, 교회는 열심히 다녔지만, 종교 생활과 쾌락 생활을 병행하는 이중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대학교 2학년 때 수련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깊이 깨닫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는 사건을 "인생의 정권 교체 사건"이라고 정의하며,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신앙생활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은혜를 받은 후 열정적인 신앙생활을 했지만, 영적 욕심과 자기 숭배에 빠져 극심한 요요 현상을 겪게 됩니다. 신앙이 좋아지고 싶다는 욕심, 영적 거인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오히려 그를 무너뜨렸고, 영적 침체와 슬럼프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이 목사님은 진정한 성화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성화는 내 신앙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아가고 사랑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닫고, 영적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집중하게 됩니다.
체육관 사역은 우연한 기회에 시작되었습니다. 크로스핏 운동을 너무 좋아했던 이 목사님은, 운동 동료들과 함께 땀 흘리며 운동하는 것이 즐거웠고, 그들과 복음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40대 중반의 늦은 나이에 크로스핏 코치에 도전했지만, 주변의 우려와 현실적인 어려움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선교적인 비전을 가지고 체육관 코치로 취업하게 되었고, 말단 직원으로 시작하여 4개월 만에 체육관 대표가 되는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체육관 운영은 쉽지 않았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체육관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고, 빚이 늘어나면서 경제적인 어려움과 심리적인 압박감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폐업을 고민할 정도로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회원들의 자발적인 도움과 하나님의 놀라운 공급하심을 경험하면서 다시 힘을 내게 됩니다. 특히, 회원들이 보내준 작은 정성과, 오래 전에 연락이 끊겼던 청년의 헌금을 통해 빚을 청산하고 오히려 재정적인 안정을 되찾게 되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이 목사님의 체육관 사역은 일반적인 교회 사역과는 다릅니다. 체육관에서 예배를 드리거나 성경 공부를 하는 등의 종교적인 활동은 하지 않습니다. 대신, 삶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목표로, 회원들과 함께 운동하며 관계를 맺고,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함께 울고 웃으며,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체육관은 회원들에게 단순한 운동 공간이 아닌, 따뜻한 공동체, 사랑과 나눔이 있는 가족과 같은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이성호 목사님의 간증은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역할, 삶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역의 의미,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헌신하는 믿음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그의 유쾌하고 솔직한 간증은 많은 이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선사하며, 특히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고민을 가진 청년들에게 큰 도전과 위로를 주고 있습니다.
4. 이태경 형제: 농맹인 찬양 사역자, 어둠 속에서 빛을 노래하다
이태경 형제님은 농맹인 찬양 사역자로서,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어둠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간증을 들려주셨습니다. 세 살 때 열병으로 청력을 잃고, 20대 후반에 시력까지 잃었지만,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을 만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의 간증은 어둠 속에서 빛을 발견하는 믿음, 고난 속에서도 감사와 기쁨을 잃지 않는 긍정적인 마음,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아름다운 영혼의 모습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이 형제님은 어린 시절부터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느끼며 외롭게 성장했습니다. 들을 수 없고 볼 수 없는 세상은 두려움과 절망으로 가득했고, 세상과의 소통은 단절되었으며,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에도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맹학교에 입학했지만, 수화를 사용하는 자신과 말을 사용하는 선생님과의 소통은 쉽지 않았고, 안마 기술을 배우는 과정도 어려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안마사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장애로 인해 취업의 문턱은 높기만 했고, 결국 기초생활수급자로 어머니와 함께 힘겹게 살아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도 희망의 빛은 있었습니다. 친구의 인도로 농아인 교회를 다니게 되면서 촉수화를 통해 하나님 말씀을 접하게 되었고, 점자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고, 그 이후 그의 삶은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그의 삶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자리 잡게 되었고,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감사와 기쁨을 잃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아가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 형제님은 "한소네"라는 점자 정보 단말기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한소네는 그에게 눈과 귀가 되어주는 소중한 도구이며, 이를 통해 성경을 읽고, 인터넷 정보를 얻고,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세상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소네는 그에게 단순한 기계를 넘어, 세상과 소통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통로가 되고 있습니다. 그는 한소네를 얻기 위해 점자를 익히고 시험에 합격하는 등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귀한 도구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태경 형제님에게 가장 큰 힘이 되는 말씀은 요한복음 3장 16절과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7절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그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은혜를 깨닫게 해주었고,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7절은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삶의 중요성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이 두 말씀은 그의 삶의 지침이 되었고,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감사와 기쁨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그는 찬양 사역자로서, "항상 기뻐하라" 찬양을 가장 좋아하며, 자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세상에 전하고 있습니다.
미국 방문은 이 형제님에게 새로운 도전과 비전을 심어주었습니다. 미국에서 다양한 장애인 지원 시스템과 시설들을 경험하고, 전 세계에서 온 농맹인들을 만나면서, 자신도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습니다. 특히, 국제 수화를 배우고 전 세계 농맹인들과 소통하며 교류하는 것은 그에게 큰 기쁨과 도전이 되었습니다. 그는 앞으로 유럽 등 더 많은 나라를 방문하여, 더 많은 농맹인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있습니다.
이태경 형제님의 간증은 육체의 장애가 영혼의 장애가 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어둠 속에서도 하나님을 만나 빛을 발견했고, 고난 속에서도 감사와 기쁨을 잃지 않고 찬양하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영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의 삶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과 도전을 주며, 특히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이들에게 큰 희망과 용기를 선물하고 있습니다. 그는 오늘도 한소네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며, 자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세상에 전하고 있습니다.
5. 김현철 교수: 의사에서 경제학자로, 사랑으로 정책을 디자인하다
김현철 교수님은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로서 활동하다가, 콜롬비아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경제학 교수가 된 특별한 이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의사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버리고 경제학자의 길을 선택한 것은,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 때문이었는데요, 그의 간증은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를 경제학의 세계로 인도하셨는지, 그리고 경제학을 통해 어떤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정책을 연구하고 있는지에 대한 감동적이고 지적인 이야기입니다.
김 교수님은 의과대학 실습생 시절, 한 환자를 통해 가난과 질병의 악순환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강남의 부유한 환자들은 유방암을 조기에 발견하는 반면, 지방의 가난한 환자들은 말기에 병원을 찾는 현실을 보면서, 가난이 건강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특히, 45세의 젊은 나이에 말기 유방암으로 고통받는 한 여성 농민 환자를 보면서, 가난과 질병의 악순환을 끊고 사회적 약자들을 돕는 일에 헌신하기로 결심하고 경제학 공부를 시작하게 됩니다.
경제학 공부는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콜롬비아 대학교 박사 과정 유학 시절에는 전 세계에서 모인 엘리트 학생들과의 경쟁 속에서 꼴찌를 하는 등 극심한 스트레스와 좌절감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것이 두려울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절박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며 어려움을 극복해 나갔습니다. 특히, 유학 시절 만난 두 명의 친구와 선배의 도움은 그에게 큰 힘이 되었고, 그들의 헌신적인 도움 덕분에 박사 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아프리카 선교는 김 교수님의 인생에 또 다른 전환점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박상은 원장님의 초대로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의료 선교 활동을 시작하면서, 저개발 국가의 빈곤 문제와 사회적 문제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게 되었습니다. 특히, 에이즈 예방을 위한 폭경 수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과학적인 근거만으로는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수술 자체가 에이즈 감염률을 낮추는 효과는 있었지만, 남성들의 성적 문란함 증가라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으로 인해, 프로젝트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장학금 사업 실패 경험 또한 김 교수님에게 큰 교훈을 주었습니다. 성적 우수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방식은, 오히려 하위권 학생들의 학습 의욕을 저하시키고, 전체적인 학업 성취도를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낳는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반면, 여학생들에게 조건 없이 장학금을 지급하는 방식은, 여학생들의 교육 기회를 확대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효과적이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러한 실패와 성공 경험을 통해,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과학적인 분석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 그리고 사회 시스템에 대한 통찰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김현철 교수님의 연구는 주로 저개발 국가의 빈곤 문제 해결과 사회적 약자 지원 정책 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는 아프리카, 아시아 등 저개발 국가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실패와 성공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들을 바탕으로, 더 효과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 보건, 여성, 아동 등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정책 개발에 힘쓰고 있으며, 경제학적 지식과 기독교적 가치관을 융합하여, 사랑과 정의가 실현되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헌신하고 있습니다.
김 교수님의 간증은 세상적인 성공과 안락함을 버리고,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한 지성인의 아름다운 삶을 보여줍니다. 의사에서 경제학자로, 안정적인 삶에서 험난한 연구자의 길로, 그의 삶은 끊임없는 도전과 변화의 연속이었지만, 그 중심에는 항상 사회적 약자를 향한 따뜻한 마음과,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사회에 환원하고자 하는 굳건한 믿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의 지적 열정과 헌신적인 삶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과 도전을 주며, 특히 젊은 세대에게 사회적 책임감을 가지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리더로 성장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6. 김예원 변호사: 0원 변호사, 율법과 사랑으로 세상의 빛이 되다
김예원 변호사님은 장애인권 법센터 대표이자,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0원 변호를 실천하는 아름다운 변호사입니다. 대형 로펌 변호사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버리고, 수임료를 받지 않는 비영리 법률 사무소를 설립하여, 장애인, 아동, 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법률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녀의 간증은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녀를 공익 변호사의 길로 인도하셨는지, 그리고 법과 사랑으로 세상의 빛이 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김 변호사님은 어린 시절 의료 사고로 한쪽 눈을 잃었지만, 장애를 극복하고 사회적 약자를 돕는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장애를 겪었지만, 오히려 장애를 통해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들을 돕는 일에 헌신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했지만 법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법이 사회적 약자들의 편이 되어주고,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변호사가 되어 사회적 약자들을 돕겠다는 꿈을 꾸게 되었고, 사법 시험에 합격하여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대형 로펌에서 일하면서 안정적인 수입과 사회적 지위를 얻었지만, 진정한 행복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큰 로펌에서 큰 사건들을 처리하며 전문성을 키울 수 있었지만, 사건이 심각해진 후에야 변호사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건 초기에 변호사가 개입하여 법률적인 조언과 지원을 제공한다면, 피해를 최소화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형 로펌을 나와, 비영리 법률 사무소 장애인권 법센터를 설립하고, 수임료를 받지 않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변호를 시작하게 됩니다.
김 변호사님은 셋째 아이를 임신한 만삭의 몸으로도 법정에 출석하여 변론하는 열정을 보여주었습니다. 출산 직전까지, 아기를 안고 법정에 출석하여 변론하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특히, 아기를 안고 법정에 출석하는 것에 대한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변호사로서의 책임감과 정의감으로 재판에 임하는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그녀의 열정적인 모습은, 어머니로서의 사랑과 변호사로서의 책임감을 동시에 보여주는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장애인권 법센터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장애인들을 위한 무료 법률 지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수임료를 받지 않고, 오직 후원금과 연구 용역 수입으로 운영되는 비영리 법률 사무소이지만, 최선을 다해 장애인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학대 피해 장애인, 성폭력 피해 장애 여성, 발달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전문적인 법률 지원을 제공하고 있으며, 피해자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0원 변호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고 있습니다.
김예원 변호사님의 간증은 율법과 사랑의 조화, 지혜와 헌신의 아름다움, 그리고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녀의 헌신적인 삶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며, 특히 법조계 종사자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변호사의 역할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따뜻한 마음과 정의로운 용기는,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고, 소외된 이들에게 희망을 선물하는 아름다운 삶의 향기를 발하고 있습니다.
7. 김성민 대표: 브라더스 키퍼 대표, 고아들의 형제가 된 사업가
김성민 대표님은 사회적 기업 브라더스 키퍼의 대표로서, 보육원 퇴소 청소년들의 자립을 돕는 특별한 사역을 감당하고 계십니다. 세 살 때 보육원에 맡겨져 고아로 자랐지만, 절망과 분노를 딛고 일어나, 자신과 같은 고아들을 위한 따뜻한 울타리를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그의 간증은 고난을 통해 연단된 믿음, 사랑으로 상처를 치유하는 헌신, 그리고 형제를 지키는 자로서 살아가는 삶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김 대표님의 어린 시절은 고통과 외로움으로 가득했습니다. 세 살 때 보육원에 맡겨진 후,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부모님에 대한 원망과, 폭력과 굶주림 속에서 힘겨운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보육원 출신이라는 낙인과 사회적 편견 속에서 상처받고, 분노와 절망감에 휩싸여 칼을 들고 다닐 정도로 방황하기도 했습니다. 세상에 대한 불신과 분노로 가득했지만, 마음 한 켠에는 따뜻한 사랑과 희망을 갈망하는 어린아이의 마음이 남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빛은 있었습니다. 보육원에 방문한 청년들의 헌신적인 사랑과 따뜻한 관심은 그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들의 따뜻한 사랑을 통해 처음으로 사랑받는 경험을 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배 시간에 가인과 아벨에 대한 설교를 듣고, 자신 또한 형제를 지키는 자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브라더스 키퍼라는 사회적 기업을 설립하게 됩니다. 그의 삶은 청년들의 따뜻한 사랑과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브라더스 키퍼는 보육원 퇴소 청소년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자립을 지원하는 사회적 기업입니다. 벽면 녹화 사업을 통해 친환경적인 사업을 펼치면서, 보육원 퇴소 청소년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고, 경제적인 자립을 돕고 있습니다. 특히, 직원 채용 시 보육원 퇴소 청소년을 우대하고, 보육원에서의 생활 경험을 경력으로 인정하는 등, 보육원 퇴소 청소년들의 사회 적응을 돕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의 사업은 단순히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보육원 퇴소 청소년들에게 자존감을 회복하고, 사회 구성원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김 대표님은 보육원 퇴소 후 노숙 생활을 경험하면서 세상의 냉혹함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지만, 아무런 연고도 없이 6개월 동안 노숙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노숙 생활을 통해 세상의 어둠과 고통을 경험하면서, 자신과 같은 고아들의 아픔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노숙 생활의 어려움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식당 종업원으로 취업하여 성실하게 일하며 자립 기반을 마련하고, 신앙생활을 통해 다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의 노숙 생활 경험은 브라더스 키퍼 설립의 밑거름이 되었고, 보육원 퇴소 청소년들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사업 모델을 구상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브라더스 키퍼의 조경 사업은 보육원 퇴소 청소년들의 정서적 안정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식물을 가꾸고 돌보는 과정에서 심리적인 안정감을 얻고, 정서적인 치유를 경험하는 직원들이 많습니다. 특히, 식물에 대한 사랑을 쏟으면서, 타인에게 사랑을 줄 때 느끼는 기쁨과 행복을 경험하고, 상처 입은 마음을 회복해 나가고 있습니다. 브라더스 키퍼의 조경 사업은 단순한 사업을 넘어, 보육원 퇴소 청소년들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그들의 삶에 희망을 불어넣는 의미 있는 사역이 되고 있습니다.
김성민 대표님의 간증은 고아라는 아픔을 딛고 일어서서, 오히려 고아들을 돕는 리더로 성장한 한 청년의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그의 삶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믿음의 힘, 사랑으로 상처를 치유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헌신의 가치, 그리고 형제를 지키는 자로서 살아가는 삶의 의미를 보여줍니다. 그의 따뜻한 마음과 헌신적인 노력은, 세상에 희망을 전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아름다운 삶의 본보기가 되고 있습니다. 그의 사업은 앞으로 더욱 확장될 것이며, 더 많은 보육원 퇴소 청소년들에게 희망과 자립의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