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교회 김상인 목사, 홍대 거리 복음 사역과 비전
안 오면 간다! 움직이는 교회: 홍대 클럽 복음 이야기
"안 온다고? 그럼 내가 간다!" - 김상인 목사의 움직이는 교회: 심층 해설 및 핵심 노하우 대방출
이번 글에서는 유튜브 채널 "새롭게 하소서"에 출연하신 김상인 목사님의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그의 독특한 목회 철학과 '움직이는 교회' 사역의 핵심 노하우를 상세히 정리하여 여러분께 전달하고자 합니다. 단순히 인터뷰 내용을 요약하는 것을 넘어, 김 목사님의 깊이 있는 통찰과 실제적인 사역 방식을 마치 옆에서 직접 듣는 것처럼 생생하게 풀어낼 예정인데요, 지금부터 김상인 목사님의 삶과 사역 속으로 함께 떠나보시죠.
본격적인 내용에 들어가기 전에, 잠시 질문 하나 던져볼까요? 만약 여러분의 자녀가 집 밖에서 밤늦도록 놀고만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단순히 야단치고 혼내는 것이 능사일까요? 김상인 목사님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새로운 해답을 제시합니다. 그는 교회가 세상 속으로 직접 찾아가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며, '움직이는 교회' 를 통해 그 해답을 몸소 실천하고 계십니다. 놀이터에서 아이를 데려오는 어머니처럼, 김 목사님은 길거리와 클럽으로 발걸음을 옮겨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아 나서는 헌신적인 목회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계신데요, 과연 '움직이는 교회' 는 어떤 배경에서 시작되었으며, 어떤 특별한 사역들을 펼쳐나가고 있을까요? 지금부터 김 목사님의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와 '움직이는 교회' 의 놀라운 사역 현장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 틀을 깨는 목회, 움직이는 교회 이야기
움직이는 교회라는 이름부터가 매우 독특하게 느껴지는데요, 대체 왜 교회 이름을 '움직이는 교회' 라고 지었을까요? 김 목사님은 교회란 건물 자체가 아니라, 바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이라고 강조합니다. 마치 제가 지금 이 스튜디오에 '움직이는 교회' 로 온 것처럼, 우리 각자가 교회로서 세상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인데요, 이는 '찾아가는 교회' 의 본질을 꿰뚫는 명확한 정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김 목사님은 어떻게 이러한 혁신적인 목회 방식을 구상하게 되었을까요? 그의 성장 과정과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은혜 속에서 그 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김 목사님은 모태신앙으로 교회 안에서 성장했지만, 학창 시절에는 소위 '문제아' 로 불렸다고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인문계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이 출석 조차 부르지 않을 정도로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던 것인데요, 심지어 수업 시간에 학교를 빠져나와 목욕탕에 가거나 일 했던 경험 까지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렇게 방황하는 가운데에서도 교회는 꾸준히 출석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학교는 제대로 출석하지 않았지만, 교회는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엿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 생활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닙니다. 김 목사님은 교회 선배들에게 술을 배우고 가르치는 '문제 선배' 였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당시 교회 문화 속에서 술 마시는 것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했던 시대적 배경도 있었지만, 현재의 시각으로 보면 분명히 잘못된 행동이었음을 인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목사님의 부모님은 장로님과 권사님으로서 묵묵히 아들을 믿고 기다려주셨다고 합니다. 학교와 교회에서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키는 아들을 보면서 얼마나 마음 고생이 심했을까요? 하지만 부모님은 어떠한 질책이나 비난 대신, 따뜻한 콩나물국을 끓여주시며 사랑으로 아들을 품어주셨습니다. 이러한 부모님의 헌신적인 사랑과 기도 속에서, 김 목사님은 점차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중학교 수련회 때, 기도하는 가운데 "주의 길을 가고 싶다" 는 마음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방언으로 기도했지만, 기도의 내용을 너무나 명확하게 깨닫게 되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신학교 진학을 결심하게 됩니다. 하지만 부모님은 물론, 담임 목사님 조차도 김 목사님의 신학교 진학을 반대했다고 합니다. 과거의 방황했던 모습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김 목사님이 목회자의 길을 갈 것이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인데요, 오히려 주변의 반대는 김 목사님에게 더욱 확신을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명확한 음성을 들었기 때문에, 어떠한 어려움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신학교 진학을 강행하게 됩니다.
신학 대학 졸업을 앞두고 결혼을 준비하던 중, 하나님께서는 김 목사님을 기도원으로 이끄셨습니다. 결혼 3개월 전이라는 중요한 시기에, 갑작스럽게 기도원에 들어가 3개월 동안 나오지 않았던 것인데요, 이 기간 동안 40일 금식기도를 하게 됩니다. 계획적인 금식이 아니라, 성령님의 강권적인 이끄심 속에서 이루어진 금식이었기에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장기 금식 기도 중에 몸에 독소가 퍼지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순간 조차 있었지만, 결혼에 대한 걱정 때문에 얼굴만은 상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는 일화는 웃음을 자아냅니다. 30일 쯤 지났을 때, 배가 등에 붙을 정도로 쇠약해졌고, 물을 마시는 것조차 힘겨웠다고 합니다. 이때 담임 목사님이 기도원을 방문하여 "이제 주의 길을 가도 되겠다" 는 확신을 주셨고, 그 말씀 가운데 평안을 찾고 기도원을 나오게 됩니다. 이 40일 금식 기도는 김 목사님에게 목회자의 길을 확신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하나님께서는 사랑스러운 아내를 만나게 해주시고, 목회자의 길로 안착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움직이는 교회' 를 개척하게 되었을까요? 김 목사님은 모교회에서 오랫동안 사역했지만, 교회가 어려워지는 과정을 직접 겪게 됩니다. 교회가 사유화되고, 여러 부정적인 모습들을 보면서 큰 실망감을 느꼈고, 결국 부모님과 함께 교회를 나오게 됩니다. 첫 사역지였던 모교회가 점점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교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되었고, 5년 동안 교회 사역을 중단하고 교회 밖에서 다양한 시도들을 하게 됩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비즈니스, 도시 사역, 유학생 사역 등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교회란 무엇인가' 에 대한 답을 찾고자 끊임없이 고민했습니다.
5년간의 방황 끝에, 김 목사님은 다시 교회로 돌아와 분당 할렐루야 교회에서 청년 사역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곳에서 영적인 멘토인 김상현 목사님과 김종필 사모님을 만나 큰 영향을 받았고, 5년간의 사역 가운데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할렐루야 교회에서의 회복 과정을 통해, 김 목사님은 다시 한번 교회의 본질에 대한 소망을 품게 되었고, 마침내 '움직이는 교회' 를 개척하게 됩니다. 홍대 앞에서 시작한 '움직이는 교회' 는 어떤 특별한 이유와 비전을 가지고 세워진 것일까요?
2. 홍대 거리에서 꽃피운 복음, 클럽 문화 속으로 들어가다
김 목사님은 '움직이는 교회' 를 홍대 앞에서 시작한 이유에 대해 아주 단순하면서도 명확하게 설명합니다. 교회 이름처럼 '움직이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청년들과 다음 세대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도시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인데요, 그 곳이 바로 홍대 였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강해 설교 중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과 3장의 성전 미문 앞 앉은뱅이 사건에서 깊은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당시 청년 교회들이 점점 사라져가고, 교회 밖에는 청년들이 점점 줄어드는 현실 속에서, 교회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성전 미문 앞 앉은뱅이' 와 같은 청년 세대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들은 절망과 체념 속에서 일어설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인데요,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 시간에 성전으로 걸어가는 모습은,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움직이는 성전' 이 된 교회가 보이는 건물 성전에 들어오지 못하는 앉은뱅이에게 직접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홍대 개척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교회를 나왔지만 현실은 광야와 같았고, 집도 돈도 없는 상황에서 열정만으로 시작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하나님의 은혜로 집을 얻어 가정 교회로 시작할 수 있었지만, 재정적인 어려움은 계속되었습니다. 아내가 일을 하고 김 목사님은 전도에 힘썼지만,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거리에서 복음을 전해도 아무도 귀 기울여 주지 않았던 것인데요, 늘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설교했던 과거와는 달리,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현실에 큰 좌절감과 우울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큐보드를 타고 홍대 거리를 돌아다니며 예수님을 믿으라고 외쳤지만, 사람들은 외면하기 일쑤였습니다. 교회 안에만 갇혀 있었던 자신을 돌아보며, 현실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했음을 깨달았습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김 목사님은 누가복음의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강도 만난 자를 지나치지 않았던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홍대에서 강도 만난 자를 지나치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저에게 강도 만난 자는 누굽니까?" 라는 질문에, 하나님께서는 "홍대에 놀러 오는 친구들" 이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홍대에서 6개월 이상 살면서 지켜본 결과, 홍대에 놀러 오는 사람들에게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레위인과 제사장의 예배가 아니라, 선한 사마리아인의 따뜻한 손길 이었다는 것인데요, 이 깨달음을 통해 김 목사님은 새로운 사역의 방향을 설정하게 됩니다.
개척 초기에는 계획했던 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지만, 오히려 계획을 내려놓고 도시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니, 할 일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홍대의 특성을 고려하여 불금에 놀러 오는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시간대별 리서치를 실시했고,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처럼 가까이 다가가 그들의 필요를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3주 만에 기존의 계획을 모두 내려놓고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홍대 클럽 밀집 지역' 사역이었는데요, 이것이 '움직이는 교회' 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클럽 밀집 지역, 밤 늦은 시간, 술 취한 젊은이들이 가득한 곳에서 대체 어떤 사역을 할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김 목사님은 그 곳에서 놀라운 복음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움직이는 교회' 의 클럽 사역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 중 하나는, 조선족 여성 아이와의 만남입니다. 매일 클럽을 다니던 20대 초반의 이 여성은, 방글라데시 무슬림 케밥 장수를 친구로 소개해 주었습니다. 15년 동안 홍대 클럽 앞에서 케밥을 팔던 이 무슬림 남성은, 클럽에 온 젊은이들의 지갑, 핸드폰, 가방을 맡아주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김 목사님은 이 무슬림 남성을 통해 클럽 밀집 지역의 특별한 필요를 발견하게 됩니다. 홍대 일반 거리와는 달리, 클럽 밀집 지역은 노점 상이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손길이 닿기 어려운 지역이었던 것인데요, 삼거리 포차 일대 클럽 밀집 지역을 직접 방문해 본 김 목사님은, 새벽 2시, 3시, 4시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 곳이 바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신 현장임을 직감하게 됩니다.
클럽 사역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고민하던 김 목사님은, 매일 클럽을 다니는 친구에게 클럽 거리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았습니다. 그 친구는 클럽에서 놀다가도 물을 마셔야 하고, 술 취한 친구들을 돌봐야 하고, 담배 피울 공간도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김 목사님은 중고 캠핑 장비들을 구입하여, 클럽 밀집 지역 한가운데 자리를 깔고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주님의 땅' 이라는 믿음 하나로, 새벽 시간 클럽 거리에서 술 취한 친구들과 함께 앉아 이야기 나누고, 술 깨우는 일을 도와주고, 도시가 필요로 하는 일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헌신적인 사역 가운데, 놀랍게도 복음이 전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움직이는 교회' 는 처음 3~4개월 동안은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복음을 전하면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클럽 거리의 '주민' 이 되고 싶었습니다. 홍대에 살지만, 새벽 클럽 거리의 주민이 되어 그들과 함께 하고자 했던 것인데요, 배고프다는 사람에게는 라면을 끓여주고, 숙취 해소 음료를 나눠주고, 토하는 사람의 토사물을 닦아주는 등, 다양한 도움을 제공했습니다. 3개월 정도 지나자, 사람들이 궁금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왜 이런 일을 하는 걸까?" 처음에는 클럽 사장인 줄 알았던 사람들은, 매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나타나 도움을 주는 이들이 교회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움직이는 교회' 는 자신들의 교회 이름을 '리얼 라이프 처치(Real Life Church)' 라고 소개했습니다. 진짜 빛이라는 의미인데요, 화려한 조명 속에서는 느낄 수 없는 진짜 빛을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클럽 사역 가운데 정말 많은 간증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클럽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따뜻한 음식과 차를 제공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손난로를 나눠주는 등, 진심으로 섬기자, 클럽 직원들이 어려움이 있을 때 '움직이는 교회' 를 찾아와 상담을 하고, 클럽 사장님들은 안주를 갖다주거나 교회 팀을 보호해주기도 했습니다. 복음도 자연스럽게 전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새벽 2~3시 술 취한 젊은이들은, 마음이 열린 상태에서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예수님을 믿고 싶다는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온몸에 문신을 한 친구, 얼굴에 피어싱을 한 친구 등, 겉모습은 강해 보이지만, 내면에는 깊은 상처와 외로움을 가지고 있는 젊은이들이 많았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분노와 외로움, 삶의 고민들을 '움직이는 교회' 에 털어놓으며, 위로와 격려를 받고 예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김 목사님은 이들을 주일 예배에 초대하는 대신, 매주 클럽 거리에서 만나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클럽 사역을 통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등, 사회 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에게도 '움직이는 교회' 는 따뜻한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동성애자들만 모이는 클럽에 직접 찾아가 라면을 끓여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했습니다. 매주 클럽 거리를 찾아오는 한 여성은, 자신의 아이가 사고로 죽었다는 슬픈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어린 시절 가족 에게 성폭력을 당했던 상처 또한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클럽 거리에는,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내면에는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강도 만난 자' 와 같은 젊은이들이 많았습니다. '움직이는 교회' 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김 목사님은 클럽 거리에서 복음을 전할 때, 오히려 사람들이 환영하고 잘 들어주었다고 합니다. 교회를 한 번도 다녀본 적 없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교회에 대한 선입견이나 거부감이 오히려 적었던 것인데요, 외로운 마음 속에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던 젊은이들에게, '움직이는 교회' 는 복음 뿐만 아니라 사랑과 관심을 전하며 깊은 공감을 얻었습니다. 클럽 사장님들 조차도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직원들을 잘 챙겨주는 '움직이는 교회' 에 감사하며, 커밍아웃을 하고 과거에 교회를 다녔던 경험을 털어놓기도 하고, 클럽에서 CCM을 틀기도 하는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술 취한 젊은이들이 거리에서 찬양에 맞춰 춤을 추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김 목사님은 클럽 한가운데서도 교회를 경험시켜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틀에 박힌 교회 의 모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의 목회를 시도했습니다.
클럽 전도 사역에 자녀들도 함께 동참시켰다는 점이 눈에 띄는데요, 술 취한 사람들이 많고 위험할 수도 있는 클럽 거리에 자녀들을 데려가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김 목사님은 오히려 자녀들에게 세상의 어두운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은, 클럽 거리에서 차를 나눠주는 봉사를 하며, '움직이는 교회가 홍대에 있어야 할 이유가 있다' 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김 목사님은 이제 교회를 말로 설명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무엇인지를 삶으로 경험시켜주는 것이 더욱 중요한 시대라는 것인데요, '움직이는 교회' 는 바로 그 점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움직이는 교회' 의 지속적인 거리 사역은, 정말 놀라운 변화들을 만들어냈습니다. 클럽에서 만난 젊은이가 결혼 소식을 알려오고, 클럽에서 만나 돌보았던 여성이 변화되어 공동체 생활을 하고, 중국으로 돌아가 직장 생활을 하며 결혼 소식을 전해오는 등, 수많은 열매들이 맺혀졌습니다. 특히, 조선족 여성 아이의 이야기는 감동적입니다. 갈 곳 없는 아이를 위해 시작한 숙소는, 세 개까지 늘어나 청년들이 함께 살며 신앙 훈련을 받는 공동체로 성장했습니다. 알바 조차 일주일도 못 했던 아이가, 질병과 중독에서 벗어나 건강을 회복하고, 직장 생활을 2년이나 하게 되었다는 소식은, '움직이는 교회' 의 사역이 얼마나 귀한 열매를 맺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김 목사님은 이러한 변화들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워가고 계심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3. 나 자신이 교회가 되는 삶, 그리고 지속적인 움직임
김 목사님은 '나 자신이 교회가 되어야 한다' 고 끊임없이 강조합니다. 하지만 교회로 산다는 것은, 늘 거룩하고 경건한 모습만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김 목사님은 교회로 산다는 것은 단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인생 가운데 계속해서 형성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했던 시간처럼, 교회는 서로 사랑하고 함께 훈련하며 성장해나가는 공동체 라는 것인데요, 요한복음의 말씀처럼,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는 것이 바로 교회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이를 위해 '움직이는 교회' 는, 성도들과 함께 '예수님께서 나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에 대한 훈련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것, 이것이 바로 '움직이는 교회' 가 지향하는 '교회로 사는 삶' 의 핵심입니다.
마지막으로, 김 목사님의 목회 여정 속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사모님의 헌신적인 내조입니다. 개척 교회는 목사 혼자만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사역입니다. 특히, 김 목사님 처럼 가정 교회로 시작한 경우에는, 가족 구성원들의 희생과 헌신이 더욱 필요합니다. '움직이는 교회' 의 성장에는 사모님의 숨은 노고가 컸습니다. 개척 초기 3년 동안 가정에서 모임을 가지면서, 밤늦도록 성도들을 섬기고, 식사를 준비하고, 아이들을 돌보는 등,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현재는 공동 목회를 하며, 남편과 함께 '움직이는 교회' 를 이끌어 나가고 있습니다. 김 목사님은 이제야 사모님의 헌신을 제대로 느끼고 감사하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김포로 이전하여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움직이는 교회' 의 앞날을 진심으로 응원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부디 이 글을 통해 '움직이는 교회' 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고, 우리 모두가 세상 속에서 '움직이는 교회' 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도전을 받으시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