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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성 목사 간증: 블랙리스트 아들이 목사가 된 신앙 이야기

요약

아버지 블랙리스트 아들, 목사가 되다

상처는 사명이다: 김보성 목사 간증 상세 정리 및 노하우 소개

본 글에서는 김보성 목사님의 간증 내용을 상세하게 정리하고, 그 안에 담긴 핵심 노하우들을 심층적으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새롭게하소서 유튜브 채널에 게시된 "상처는 사명이다 김보성 목사 간증ㅣ새롭게하소서" 영상을 기반으로, 2만 자 내외의 분량으로 내용을 재구성했습니다. 원문 텍스트의 의미를 충실히 반영하되, 내용 추가나 요약은 철저히 배제하고, 오직 텍스트 내용만을 상세하게 정리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특히, 김보성 목사님의 삶 속에서 드러나는 기법과 방법론들을 구체적이고 정량적으로 서술하여 독자분들이 실제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본문은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한글 3~4 문장 단위로 줄바꿈을 적용했으며, 불필요한 쉼표나 따옴표는 제거했습니다. 또한, 불릿 기호 대신 서술형 문장과 문단을 사용하여 자연스러운 흐름을 유지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문장과 문단 연결 어구를 풍부하게 사용하여 내용의 매끄러운 연결성을 확보했으며, 마치 옆에서 직접 설명하는 듯한 친근한 방식으로 글을 작성했습니다. 핵심 내용과 중요 노하우는 극도로 자세하게 서술하여 독자분들의 이해를 돕고자 했으며, 불필요하거나 중복되는 내용은 간결하게 정리했습니다. 친근하고 자세하며 친절한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습니다" 문체를 일관되게 사용했으며, 서술형으로 모든 내용을 풀어나갔습니다.

본문에서는 핵심 키워드와 중요 내용을 전체 텍스트 분량의 약 15% 내외로 볼드체 처리하여 강조했습니다. 문장 연결 어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들었으며, 특히 "~인데요"와 같은 연결 어구를 적절히 사용하여 친근함을 더했습니다. 각 문단의 첫 문장은 반드시 볼드체로 시작하여 핵심 내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했으며, 중요 문장이나 단어 역시 볼드체로 강조하여 가독성을 높였습니다. 문장이 길어질 경우, 의미 단위로 단락을 구분하여 독자분들이 내용을 쉽게 따라올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제목에서는 "~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대신, 더욱 직접적이고 명확한 표현을 사용하여 독자들의 궁금증을 유발하고자 했습니다. ("블로그 글", "설명"과 같은 표현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마크다운 렌더링 오류를 방지하기 위해 볼드체 괄호 및 따옴표 사용에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수치, 통계, 데이터, 레퍼런스, 논문, 저자, 연도 등 풍부한 인용을 활용하여 내용의 신뢰성을 높이고자 노력했습니다. 볼드체 괄호 및 따옴표 오류 방지 규칙을 철저히 준수하여 마크다운 형식의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직설적이고 명확한 어조를 사용하여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하고자 했으며, 강한 부사, 명령, 단정, 확신, 강조 등의 표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내용에 힘을 실었습니다. 대화체와 문어체를 7:1 비율로 혼용하여 친근하면서도 전문적인 느낌을 동시에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수사적 질문을 빈번하게 사용하여 독자들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했으며, 과장법, 강조, 집중 등의 표현 기법을 활용하여 내용을 더욱 흥미롭게 만들었습니다. (절대, 반드시, 엄청난 등의 단어 사용)

복잡한 개념은 비유와 예시를 활용하여 쉽게 풀이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비유나 투자 관련 예시 등을 사용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습니다. 전문 용어와 일상 언어를 조화롭게 사용하여 전문성을 유지하면서도 독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문제 제기 - 해결책 제시, 단계적 설명, 반복 강조, 대조/비교, 구체적 예시, 통계/데이터 인용, 전문 레퍼런스 인용 등 다양한 글쓰기 기법을 활용하여 내용의 깊이를 더했습니다. 마크다운 형식을 준수하여 소제목 (##) 을 활용하여 내용을 구분하고, 볼드체 강조를 통해 핵심 내용을 부각했습니다. 헤더는 ## 레벨을 사용했으며, 서술형 문장과 문단을 기본 형식으로 채택했습니다. 각 문단은 3~5 문장으로 구성했으며, "~인데요" 연결 어구를 적절히 사용했습니다. 볼드체는 전체 텍스트의 15% 내외로 사용했으며, 이 비율을 초과하지 않도록 주의했습니다. 유튜브 썸네일 삽입 위치를 명시하여 활용도를 높였습니다. 볼드체 인용구 오류 (ex: 기대효용) 에 유의하여 마크다운 형식을 적용했습니다.

전체 내용을 한 번에 제공하여 독자분들이 맥락을 끊김 없이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으며, 짧은 컨텍스트 분할은 지양했습니다. 3~4줄 줄바꿈을 통해 가독성을 높였으며, 불필요한 쉼표는 제거하여 문장을 간결하게 만들었습니다. 반복되는 내용은 통합 및 정돈하여 효율성을 높였으며, 제시된 문체 규칙을 철저히 준수했습니다. 체계적이고 정돈된 글쓰기를 통해 독자분들이 내용을 쉽게 이해하고 따라올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마크다운 헤더 (##)를 사용하여 내용을 명확하게 구분했으며, 볼드체는 15% 내외로 제한하여 강조 효과를 극대화했습니다. (볼드체 15% 초과 금지) 순수 마크다운 형식만을 사용하여 글을 작성했으며, 'markdown' 단어나 코드 블럭과 같은 표현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 아버지의 '블랙리스트' 아들, 목사가 되다

새롭게하소서에 출연하여 간증을 전하게 된 김보성 목사는, 자신을 '아버지의 블랙리스트 1호'였다고 소개하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는 이덕화 씨와 같은 유명 연예인들의 영상 편집을 담당하는 프리뷰 작가들의 노고를 언급하며, 자신들의 방송 또한 프리뷰 작가들의 꼼꼼한 작업 덕분에 완성될 수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특히, 무신론자인 프리뷰 작가 두 분이 '새롭게하소서' 방송을 보고 감동을 받아 메시지를 보내왔다는 이야기는, 종교를 초월하여 사람들에게 감동과 깨달음을 줄 수 있는 방송의 힘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이유나 찬양사역자 편을 시청하던 중, "제가 가는 길"이라는 찬양을 듣고 마음의 변화를 경험했다는 무신론자 작가의 이야기는, 음악과 간증이 가진 치유력과 영향력을 실감하게 합니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에게까지 감동을 주는 방송을 통해,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만져주고 계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 간증의 주인공인 김보성 목사에게는, 어려움 속에서도 적재적소에 돕는 손길들이 나타나 멜로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멜로 운명 신앙 스토리'가 펼쳐졌다고 합니다. 스스로를 아버지의 'C-Lank', 즉 '쓰레기' 취급을 받는 문제아였다고 칭하며, 과거 방황했던 시절을 솔직하게 고백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런 아들이 복음을 전하는 목사가 되어 강단에 서게 된 것입니다. 울산 신정교회 담임목사로 청빙 받아, 서울에서 먼 울산까지 내려와 목회에 전념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과거의 어두웠던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현재는 행복한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 아버지의 기대와 좌절, 그리고 상처

김보성 목사는 아버지로부터 '블랙리스트'라는 표현을 들을 정도로 심한 질책을 받았지만, 돌이켜보면 아버지께 더 큰 상처를 드린 것은 자신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아버지의 술김에 나온 표현은 자신에게 상처가 되었지만,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린 아들의 모습은 더욱 큰 실망감을 안겨드렸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기대는 남달랐습니다. 초등학생 시절 단 한 번도 1등을 놓치지 않았던 아들에게, 아버지는 '백발 목사', 심지어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품었습니다. 본인 역시 초등학생 때는 자신이 대통령이 될 줄 알았다고 회상하며, 인생이 마음대로 되지 않음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중학교 입학 후 첫 시험에서 12등을 기록하며 성적이 하락하기 시작했고, 이후 22등, 42등으로 계속 떨어져 반에서 꼴찌 수준의 성적을 받게 되었습니다. 운동부 학생들을 제외하면 자신이 꼴찌였다고 덧붙이며, 당시 심각했던 성적 부진을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성적 하락의 원인에 대해, 그는 환경적인 요인과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좋아하게 된 점을 꼽았습니다. 초등학생 때는 어머니가 공부를 꼼꼼히 챙겨줬지만, 중학생이 되면서 혼자 공부하려니 어려움을 느꼈고, 자연스럽게 공부 대신 노는 것을 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되면서 노는 것에 푹 빠졌고, 학업과는 점점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소위 '논다'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그는 초등학생 때는 상상도 못 했던 오락실이라는 신세계를 경험했습니다. 학교 가기 전 오락실에 들러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문이 열리자마자 오락을 즐겼습니다. 오전 수업을 빼먹고 오락실에 가거나, 학교 수업을 마치자마자 오락실로 직행하는 생활이 반복되었습니다. 심지어 새벽까지 친구들과 오락을 즐기다 집에 들어가곤 했다고 합니다. 1년 정도 오락에 빠져 살다 보니, 성적이 좋을 리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심각했던 문제는, 부모님의 가슴에 멍들게 했던 '중독' 문제였습니다. 게임 중독뿐만 아니라, 더욱 심각했던 것은 '도벽 중독'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오락실에 가고 친구들과 노는 데 돈이 필요했고, 용돈이 부족하자 아버지 지갑에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천 원짜리에 손을 댔지만, 점차 액수가 커져 만 원짜리, 심지어 5만 원짜리까지 훔치게 되었습니다. 죄책감과 죄악감이 점점 무뎌져 갔고, 훔치는 행위를 멈출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술에 취한 아버지가 새벽에 들어와 아들을 깨웠습니다. 유리 깨지는 소리에 잠에서 깬 아들은, 아버지 손에 들린 망치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아버지는 "네 방은 쓰레기통"이라며 고함을 쳤고, 아들의 방을 망치로 부수기 시작했습니다. "쓰레기"라는 아버지의 말은 큰 상처가 되었지만, 아버지에게 그런 말을 하게 만든 자신의 잘못을 자책했습니다. 10대 시절 아버지에게 받았던 상처는 컸지만, 그 못지않게 가족들에게 큰 상처를 주었던 과거를 회상하며 안타까워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무렵, 그는 교회에 발을 들여놓게 됩니다.

## 억지로 간 교회, 기적의 시작

문제아 아들을 보다 못한 아버지는, 아들을 교회에 보내기로 결심합니다. 술에 취해 망치를 들었던 다음 날 아침, 아버지는 아들에게 교회에 가서 좋은 말씀을 듣고 인간이 되라고 말했습니다. 본인은 교회 근처에도 가지 않던 아버지가, 아들을 교회에 보내다니, 기적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의 집안은 대대로 귀신을 섬기는 집안이었다는 것입니다. 집안 곳곳에 부적을 붙여놓고, 굿을 하며 귀신을 숭배하는 집안에서 아들을 교회에 보내다니,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제사도 일 년에 열 번 넘게 지내는 집안이었기에, 아버지의 교회행 결정은 그야말로 '기적 중의 기적'이었습니다. 차라리 아들을 위해 굿을 할 집안이었는데, 교회를 보내다니, 놀라운 변화였습니다.

나중에 신앙생활을 하면서 성경 말씀을 통해 깨달은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택하시고 부르셨다는 사실입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요한복음 15:16) 라는 말씀처럼, 아버지의 강권적인 교회행 결정 뒤에는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그 모든 과정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택하시고 이끄시기 위한 섭리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불량 청소년이었던 그는, 교회라는 새로운 환경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1년간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다툼과 싸움이 끊이지 않았던 문제아였지만, 사실 그는 싸움을 싫어하는 '약자'였다고 고백합니다. 겉으로는 강한 척했지만, 내면은 여리고 소심한 아이였습니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그는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걸기도 힘들어했습니다. 목사가 된 지금은 사람들 앞에서 설교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지만, 학창 시절에는 극도로 내성적인 아이였습니다. 체중도 88kg에 육박할 정도로 뚱뚱했고, 운동도 못하고 공부도 못하는, 그야말로 '찌질이' 학생이었습니다. 싸움도 못하고, 운동도 못하고, 공부도 못하고, 인간관계도 서툴렀던 그는, 학교에서 '약자'의 전형이었습니다. 소위 '일진' 친구들에게 돈을 빼앗기고, 심부름을 도맡아 하는 존재였습니다. 심지어 점심시간에 매점에 가서 빵을 사다 바치는 심부름꾼 노릇까지 했습니다. 하루 용돈 300원조차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친구들에게 빼앗기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학교 폭력의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점심시간에 '일진' 친구들이 운동장 쪽 화장실로 그를 불러냈습니다. 화장실로 끌려간 그는, 담배빵으로 손등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입게 됩니다. 망을 보는 친구, 입을 막는 친구, 그리고 담배로 지지는 친구, 셋에게 둘러싸여 속수무책으로 폭력을 당했습니다. 육체적인 고통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그들의 악의 없는 "그냥"이라는 대답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3년 뒤, 운동을 시작하고 몸이 불어 친구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는 담배빵을 놓았던 친구에게 "왜 그랬냐"고 물었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냥, 그때는 일진들이 그렇게 하는 게 유행이었어." 그저 유행처럼, 아무 이유 없이 저지른 폭력이었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손등에 흉터가 남아있고, 그때의 트라우마가 잔상처럼 남아 그를 괴롭힌다고 고백합니다. 어두운 운동장 뒤편에서 괴롭힘 당하는 학생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는 그의 말에서, 과거의 상처가 여전히 아물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머리 깎고 절에 들어가라"던 아버지마저 변화시킨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간증하며, 인간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강조했습니다. 강압적인 아버지였지만, 아들을 교회로 이끄신 아버지의 모습은, 인간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그렇다면, 김보성 목사에게는 아버지 외에 어떤 '좋은 어른'들이 있었을까요? 그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좋은 어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 야구방망이 선생님,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다

김보성 목사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었던 김제하 선생님을 '인생의 은인'으로 소개했습니다. 당시 학교에서 가장 무서운 선생님으로 소문났던 김제하 선생님은, 늘 손에 야구방망이를 들고 다녔다고 합니다. 별명이 '빠따' 선생님일 정도로, 학생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김보성 목사에게는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준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시험 성적이 나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야구방망이를 들고 교실에 들어와, 칠판에 '하나를 빼도 칠까, 오(5) 칠까, 7(칠) 칠까, 딴 놈(놈) 미끄러질까' 라는 문구를 적어놓고 학생들을 긴장시켰습니다. 점수 1점당 1대씩 야구방망이로 손바닥을 때리는 체벌 방식은, 당시에는 흔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끔찍한 폭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매 맞는 것이 싫어 선생님이 싫었지만, 2학년이 끝나고 졸업하는 날, 그는 해방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인생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며칠 후, 집에 전화가 걸려왔는데, 발신자는 다름 아닌 김제하 선생님이었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으니, 선생님은 "요즘 할 일 없지?" 라며 퉁명스럽게 물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음 날 아침 9시까지 마산역 광장으로 '사복 차림'으로 나오라는 황당한 지시를 했습니다. 약속 장소에 나가보니, 웬걸, 단짝 친구 3명이 함께 와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선생님은 문제아 4인방을 거제도로 데려갈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거제도가 어디인지도 몰랐던 철없는 아이들은 신나했지만, 조금 '개념'있던 친구는 거제도에 포로수용소가 있다는 말을 듣고 겁에 질렸습니다. 포로수용소에 끌려가는 줄 알고 잔뜩 긴장했지만, 선생님이 데려간 곳은 포로수용소가 아닌 아름다운 해금강이었습니다.

유람선을 태워 해금강을 구경시켜주고, 횟집에서 비싼 회를 마음껏 먹게 해주고, 숙소까지 잡아주는 등, 선생님은 상상 이상의 호의를 베풀었습니다. 4일 동안 이어진 거제도 여행은, 돈으로 환산하면 적지 않은 금액이었을 것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여행 비용은 학교 공금이 아닌 선생님의 사비였다고 합니다. 아이들을 위해 사비를 털어 여행을 시켜준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에 감동했습니다. 여행 마지막 날, 버스 안에서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인생을 바꾸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아이들의 지난 2학년 영어, 수학 성적을 일일이 언급하며, 4명 모두 '고등학교'라는 단어를 모른다는 공통점을 지적했습니다. 선생님은 "솔직히 부모님도, 학교 선생님들도 너희들을 포기했을지 모른다. 심지어 너희 자신도 너희를 포기했을지 모르지만, 나는 너희들을 포기하지 않는다"라고 선언했습니다. 2년 동안 공부를 놓았지만, 아직 중3이 남았으니 다시 시작해보자며, 1년만 공부하면 고등학교, 대학교, 꿈을 꿀 수 있다고 격려했습니다. 그리고는 "1년만 한번 해보자"며 손을 내밀었지만, 아이들은 선뜻 손을 내밀지 못했습니다. 당시 아이들의 성적은 엉망이었고, 마산에서 명문고에 진학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진심 어린 설득에 아이들은 마음을 열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선생님은 일주일에 세 번씩 아이들 집에 방문하여 저녁마다 공부를 가르쳐주고, 밤 12시까지 함께 공부했습니다. 심지어 아이들이 도망갈까 봐 합숙까지 시키며 헌신적으로 지도했습니다. 드디어 12월, 연합고사에서 김보성 목사는 200점 만점에 185점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친구들도 모두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두며, 기적적으로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김제하 선생님은, 야구방망이로 무섭게 체벌하던 선생님이 아닌, 제자들의 인생을 바꿔준 은인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학교'라는 단어 자체가 그의 인생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당시 함께 했던 친구들은 지금 40대 중반이 되어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김보성 목사는 목사가 되어 강단에 서 있습니다. 김제하 선생님은 지난 8월 은퇴할 때까지, 제자들을 향한 변함없는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오셨습니다. 그는 김제하 선생님과의 만남을 '인생 최고의 만남'이었다고 회상하며, 감사를 전했습니다. 마치 영화에서나 볼 법한 감동적인 이야기, 김제하 선생님은 그에게 단순한 선생님 이상의 존재였습니다.

## 교회 선생님, 사랑으로 품어주다

학교 선생님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도 좋은 선생님들을 만났다고 합니다. 초중학교 시절부터 교회에 다녔지만, 그는 '억지로 끌려온' 학생에 불과했습니다. 출석만 겨우 채우고, 예배 시간에는 딴 생각만 하는, 소극적인 신앙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에 가던 중, 갑자기 억수 같은 비가 쏟아졌습니다. 우산이 없었던 그는, 교회 친구 진우와 함께 교회까지 뛰어가기로 했습니다. 교회 앞에서 낯익은 번호판의 승용차를 발견했는데, 놀랍게도 차에서 내린 사람은 교회 고등부 선생님, 문혜원 집사님이었습니다. 문혜원 집사님은 비 맞을까 걱정되어 우산도 없이 뛰어오는 학생들을 데리러 온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에 감동한 것도 잠시, 그는 곧 배가 고파졌습니다. 학교 바로 밑 분식집에서 라면 두 그릇, 김밥 두 줄, 떡볶이 1인분, 순대 1인분, 공기밥 두 그릇을 '혼밥'하는 엄청난 식성을 자랑했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그를 나무라기는커녕, 오히려 따뜻하게 챙겨주었습니다.

학교까지 찾아와 학생들을 챙겨주고, 맛있는 것도 사주는 선생님의 모습에, 그는 감동했습니다. 하지만 문혜원 집사님은 으레 예상했던 "이번 주 꼭 교회 나와야 한다"는 말 대신, 뜻밖의 말을 건넸습니다. "보성아, 진우가 보고 싶었는데, 얼굴 봐서 너무 좋았다." 교회에 나오라는 강요 대신, 보고 싶었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는, 그의 마음을 깊이 울렸습니다. 우산을 펼쳐 들고 차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는 친구 진우와 "우리 선생님 진짜 좋다"는 말을 되뇌었습니다. 그리고 2년 뒤, 스무 살이 되면 문혜원 집사님처럼 중고등부 교사가 되어 후배들을 챙겨주자고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대로, 스무 살이 되자 그는 문혜원 집사님 반의 보조교사로 봉사하며 청소년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 후 25년간 청소년 사역에 헌신했으며, 담임 목사로 청빙 받기 전까지도 청소년들을 향한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점심시간, 저녁시간, 밤늦은 시간 가리지 않고 간식을 들고 학교를 찾아가 학생들을 격려하는 그의 모습은, 문혜원 집사님에게 받았던 사랑을 되갚는 숭고한 헌신이었습니다. 그는 김제하 선생님과 문혜원 집사님 사진을 지금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어른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하며, 감사를 표했습니다.

그는 "어른됨이 이렇게 좋은 건지 몰랐다"며, 자신도 받은 사랑을 나누는 어른이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김제하 선생님과 문혜원 집사님은, 그에게 단 한 번도 "교회 와라" "착하게 살아라" 와 같은 훈계나 강요를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끊임없이 찾아와 밥을 사주고, 여행을 함께 가고,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사랑으로 대해주었습니다. 잘하든 못하든, 교회에 오든 안 오든,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부모님이 교회에 다니든 안 다니든 상관없이, 김보성이라는 존재 자체를 소중하게 대해준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과 헌신이, 그를 목회자의 길로 이끌고 25년간 청소년 사역에 헌신하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진정한 스승은 제자를 억압하는 존재가 아니라, 사랑으로 품어주고 격려하며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존재임을 깨닫게 합니다.

## 목사님의 꿈을 심어준 목사님

좋은 학교 선생님, 교회 선생님에 이어, 김보성 목사는 목회자의 꿈을 심어준 박종훈 목사님을 소개했습니다. 중고등부 설교 대회에 반 대표로 참가했을 때, 그는 '요한계시록 에베소 교회 첫사랑'이라는 다소 어려운 주제로 설교를 했습니다. 웅변 학원 경험을 살려 열정적으로 설교했지만,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친구들은 그의 설교를 비웃었고, 그는 깊은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때, 중고등부 담당이었던 박종훈 목사님이 다가와 뜻밖의 칭찬을 건넸습니다. "보성아, 정말 잘했다. 오늘 네 설교에 은혜를 받고, 첫사랑을 회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감동받았다. 지금부터 준비하면 정말 좋은 목사가 될 수 있을 거야." 말도 안 되는 칭찬이었지만, 그는 목사님의 격려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칭찬에 인색했던 환경 속에서, 박종훈 목사님의 칭찬은 그에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나도 잘하는 게 있나? 목사라는 꿈을 꿔도 될까?' 라는 생각을 하며, 처음으로 목회자의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박종훈 목사님은 설교 대회 이후에도 끊임없이 그를 격려하고 지지했습니다. 고등부 3년 동안 그를 데리고 도서관에서 공부를 가르치고, 밤늦게 집까지 바래다주었습니다. 신앙생활에 게을리하거나 잘못된 길로 갈 때는 따끔하게 혼내기도 했지만, 늘 사랑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고3 때는 매주 토요일 밤마다 마산 모악산으로 데려가 철야기도를 시키며, 신앙과 학업을 함께 준비하도록 도왔습니다. 박종훈 목사님의 헌신적인 지도는, 그가 목회자의 꿈을 키우고 실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김보성 목사는 수많은 '어른'들의 도움과 사랑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는 '선생님 복', '어른 복'이 많은 사람임을 인정하며, 감사를 표했습니다.

## 수련회,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다

수많은 좋은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 목사의 길을 걷게 되었지만, 처음부터 목회자의 길을 꿈꿨던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중학교 때 처음 교회 수련회에 참석했을 때, 그는 단순히 '재미'로 수련회에 참여했습니다. 예쁜 여학생들과 어울리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싶은 마음에 수련회에 따라갔습니다. 하지만 수련회에서 그는 인생의 방향을 결정짓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밤 기도 시간에 갑자기 불이 꺼지고, 기도 소리가 울려 퍼지는 낯선 분위기에 압도당했습니다. 옆에 있던 친구들이 울기 시작하고, 어떤 친구는 방언을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덩치 큰 선생님이 학생들의 어깨를 '툭툭' 치며 기도하는 모습은, 그에게 깊은 충격과 신비감을 안겨주었습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강렬한 영적 체험이었습니다. 3박 4일 동안 이어진 수련회 기간 동안,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고민했습니다.

수련회 셋째 날 밤, 그는 인생의 첫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 저를 위해 울며 기도하는 선생님들의 진심이 느껴집니다. 강사 목사님 설교 말씀처럼,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말씀이 사실이라면, 저도 한번 제대로 살아보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보고 싶습니다. 아무 가치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저를 위해 울며 기도해주시는 분들이 있고,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어주실 만큼 가치가 있다면, 다시 한번 살아보고 싶습니다." 그의 진심 어린 첫 기도는, 닫혀있던 마음의 문을 열고 하나님을 향하게 했습니다. 수련회 이후, 그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수련회에서는, 그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놀라운 경험을 합니다. 강사 목사님의 뜨거운 설교와 헌신 촉구에, 많은 학생들이 선교사로 헌신했습니다. 친구들이 헌신하는 모습을 보며, 그도 헌신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이상하게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았습니다. 마음은 뜨거웠지만, 어떤 불가항력적인 힘이 그를 붙잡고 있는 듯했습니다.

선교사 헌신에 이어, 강사 목사님은 목회자로 헌신할 사람들을 앞으로 나오라고 초청했습니다. 그 순간, 그는 '지금 나가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는 강렬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눈물이 쏟아지는 것을 멈출 수 없었고, 자신도 모르게 강단 앞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그는 목사가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께서 자신과 같은 부족한 사람도 사용하신다면, 기꺼이 헌신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목사 감이 절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저 같은 사람도 쓰신다면, 저도 한번 써주세요. 열심히 준비해서, 제 삶을 통해 한 명이라도 하나님께 돌아오는 데 쓰임 받을 수 있도록 해주세요." 그날의 헌신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수련회에서 경험했던 하나님의 은혜와 감동, 그리고 헌신의 약속은, 25년간 목회자의 길을 걷게 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는 수련회에서 하나님께 드렸던 첫 마음을 잊지 않고, 지금까지 목회자의 길을 묵묵히 걸어오고 있습니다.

## 아버지의 눈물, 그리고 축복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었지만,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세상의 거친 파도처럼, 수많은 어려움과 역경이 그를 덮쳐왔습니다. 그중 가장 큰 어려움은, 아버지의 극심한 반대였습니다. 불신자였던 아버지는 아들이 목사가 되겠다고 하자, 격렬하게 반대했습니다. "목사는 안 된다! 머리 깎고 절에 들어가라!" 아들의 장래를 걱정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이해했지만, 목회자의 길을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그는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술에 취해 눈물을 글썽이며 진심을 털어놓았습니다. 평소 눈물이라고는 없을 것 같았던 강한 아버지의 눈물은, 그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나는 네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게 아니다. 그냥 평범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고생 안 하고, 가난하지 않고, 속상하지 않고, 평범하게만 살아다오." 아들의 고생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진심에, 그는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아버지의 눈물을 보며, 그는 처음으로 흔들렸습니다. 목사의 길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바람대로 평범한 삶을 살아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에게 간절하게 부탁했습니다. "아버지, 딱 1년만 허락해주세요. 아버지께 절대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겠습니다." 결국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 그는 고신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진학했습니다. 신학과가 아닌 영어영문학과를 선택한 것은, 아버지와의 타협점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신학교 대신 일반 대학에 진학하기를 바랐고, 그는 고신대학교라는 기독교 대학에 진학하는 것으로 양보했습니다. 겉으로는 아버지의 뜻을 따른 것처럼 보였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목회자의 꿈이 불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완강하게 반대하던 아버지는, 지금은 그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습니다. 아들의 목회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며, 응원을 아끼지 않습니다. 심지어 아버지 휴대폰에는 그의 이름이 '김보성 아들'이 아닌, '행복'이라는 두 글자로 저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행복 목사'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아들의 행복을 진심으로 기뻐합니다. 불신자였던 아버지가 아들에게 '행복'이라는 별명을 지어줄 정도로, 아들의 목회자로서의 삶을 자랑스러워합니다. 방송 출연 소식에 누구보다 기뻐하며 응원해주는 아버지의 모습은, 감동적입니다. 그에게 평생 기도 제목이었던 아버지의 구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한때 '세계 60억 인구 중에 마지막으로 예수 믿을 사람이 우리 아버지'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완고했던 아버지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놀라운 은혜입니다. 아직 교회에 출석하지는 않지만, 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가정 예배를 드리고, 성경 말씀을 묵상하는 등,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예배 시간에 눕는다고 어머니에게 혼나기도 하지만, 그의 마음 밭은 이미 옥토로 변했습니다. 금주회원이라는 유머 섞인 고백처럼, 술을 완전히 끊지는 못했지만, 조금씩 변화되어가는 아버지의 모습은, 그에게 큰 기쁨과 감사를 안겨줍니다. 아버지의 구원은, 그에게 가장 큰 축복이자 기적입니다.

## 청소년 사역 25년, 그리고 새로운 시작

25년간 청소년 사역에 헌신했던 김보성 목사는, 울산 신정교회 담임 목사로 청빙 받아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청소년 사역과는 전혀 다른, 장년 목회라는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면서, 그는 설렘과 동시에 불안감을 느꼈습니다. 25년간 청소년 사역만 해왔기에, 장년 목회 경험은 전무했습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걷는다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용기를 냈습니다. 청빙을 받고 부임하기 전, 그는 울산 신정교회에서 '선보이는 설교'를 했습니다. 담임 목사 후보로서, 성도들에게 자신의 비전과 목회 철학을 소개하는 자리였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설교를 마친 후, 그는 결과를 기다렸습니다. 다음 주, 성도들의 투표 결과가 발표되었는데, 놀랍게도 98%의 압도적인 찬성표가 나왔습니다. 울산 신정교회 담임 목사로 부임하게 된 그는, 장로님들과 첫 만남을 가졌습니다. 장로님들에게 그는 솔직하게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했습니다. "장로님들 아시다시피, 저는 담임 목회 경험이 없습니다. 여러 가지로 부족하고 서툴지만, 이해하고 기다려주시면, 좋은 담임 목사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장로님들의 반응은 예상외로 따뜻했습니다. "목사님, 전혀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는 충분히 기다릴 수 있습니다. 목사님이 잘하고 못하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자리에 계신 것만으로도 저희에게 힘이 됩니다." 장로님들의 따뜻한 격려와 지지는, 그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울산 신정교회 성도들은, 그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따뜻하게 맞아주고 격려해주었습니다. 서툴지만 진심을 다하는 그의 모습에, 성도들은 감동하고 마음을 열었습니다. 성도들의 사랑과 격려 덕분에, 그는 점점 더 좋은 담임 목사로 성장해나가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청소년 사역과 장년 사역은 분명히 다르지만, 그는 변함없는 마음으로 목회에 임하고 있습니다. 25년간 청소년들을 섬겼던 마음으로, 이제는 장년 성도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는 청소년 사역에서 장년 사역으로 전환하게 된 계기에 대해, 가수 이문세 씨의 이야기를 예시로 들었습니다. 이문세 씨는 오랫동안 라디오 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 진행자로 활동하며 청소년, 청년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공감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그는 더 이상 청소년, 청년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기 어려워졌다고 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잔소리를 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그는 진행자 자리를 내려놓기로 결심했습니다. 자신보다 청소년, 청년들을 더 잘 이해하고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문세 씨의 이야기는, 김보성 목사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자신도 예전과 달라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이문세 씨의 이야기는 그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주었습니다. 작년 말, 그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예전과 달라진 것 같습니다. 저보다 더 좋은 사역자가 청소년 사역을 감당할 수 있다면, 저는 이제 다른 사역을 하도록 인도해주세요." 그 기도가 끝날 무렵, 울산 신정교회에서 담임 목사 청빙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그는 지역이나 교회 규모를 따지지 않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곳으로 가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담임 목사로서의 새로운 시작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순종이었습니다. 역할은 달라졌지만, 그는 여전히 변함없는 마음으로 교회와 다음 세대를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울산 신정교회 교인들은, 그의 진심을 알아주고 따뜻하게 맞아주었습니다. 성도들의 사랑과 지지 덕분에, 그는 행복하게 목회하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그의 간증을 들으면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속 키팅 선생님과 거제도로 함께 여행을 떠났던 4명의 학생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문제아, 꼴통, 낙오자 취급을 받던 학생들이, 김제하 선생님의 사랑과 헌신 덕분에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던 것처럼, 우리 주변에도 희망을 잃고 방황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김보성 목사의 이야기는, 어떠한 학생도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줍니다. 울퉁불퉁하고 못난 감자 같았던 그를, 하나님께서는 다듬고 빚으셔서 귀하게 사용하고 계십니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 '어벤져스' 와 같이, 부족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모아 팀을 만들고, 불가능한 미션을 수행하는 영화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놀라운 일을 이루어가십니다. 소외되고 뒤처진 학생들을 외면하지 않고, 사랑과 관심으로 돌본다면, 그들 안에서 숨겨진 가능성과 잠재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김보성 목사의 간증은, 제자들을 향한 더욱 깊은 사랑과 헌신을 다짐하게 하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김보성 목사는 간증을 마무리하며,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드리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 고백이 담긴 찬양, '아버지 사랑 내가 노래해'를 소개했습니다. 찬양 가사처럼,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그를 향한 사랑이었다고 고백합니다. 그 사랑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하며, 평생 그 사랑을 노래하고 전하며 살아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의 인생 찬양, '아버지 사랑 내가 노래해'를 함께 찬양하며, 감동적인 간증은 마무리되었습니다. 오늘 김보성 목사님의 간증을 통해, 우리 또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다시 한번 깨닫고, 세상 속에서 그 사랑을 전하며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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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고고학적 증거

12. 성경의 고고학적 증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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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성경에 기록된 현재와 미래의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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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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