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산에서 피어난 천국 복음: 서샬롬 선교사 간증
"이 생명 다 하는 날까지": 필리핀 선교사 서샬롬,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 간증
오늘 새롭게하소서에서는 특별한 간증을 들려줄 서샬롬 선교사님을 모셨습니다. 서 선교사님은 흔히 생각하는 선교사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특별한 이력을 가지고 계신데요, 바로 "고향도 없고, 국적도 없다"고 스스로를 소개하시는 분입니다. 과연 서 선교사님은 어떤 삶을 살아오셨고, 어떤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달해 주실까요? 지금부터 서 선교사님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시겠습니다.
나라 없는 설움, 천국 시민으로 살아가다
서 선교사님은 자신을 "나라 없는 사람"이라고 칭하며, 국적은 천국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는 단순히 비유적인 표현이 아닌, 선교사로서의 정체성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말인데요, 그는 자신을 "천국 대사"로 칭하며, 이 땅은 잠시 머무는 곳일 뿐이라고 강조합니다. 이러한 그의 독특한 정체성은 필리핀 현지 사역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하는데요, 필리핀 사람들은 그에게 "일본 사람이냐, 중국 사람이냐, 한국 사람이냐" 질문하지만, 그는 "나는 어느 나라 사람도 아닌 천국 시민"이라고 답한다고 합니다.
서 선교사님은 이러한 정체성을 바탕으로 생일이나 기념일조차 챙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직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에만 집중하며 살아가고 있는데요, 이러한 그의 헌신적인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과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쓰레기 산에서 꽃피운 사랑, 필리핀 산마테오 사역
서 선교사님은 필리핀 산마테오 지역의 쓰레기 산 마을에서 헌신적인 사역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곳은 가난과 질병, 소외로 고통받는 아이들이 모여 사는 곳인데요, 서 선교사님은 울타리를 짓고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여 사랑과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매주 토요일에는 아내 이영애 선교사와 사역팀과 함께 밀가루, 컵밥 등을 준비하여 아이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제공하고, 율동과 말씀을 통해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선사합니다. 특히, 아내 이영애 선교사님의 헌신적인 내조는 서 선교사님 사역에 큰 힘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서 선교사님은 단순히 음식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영혼을 돌보는 데 집중합니다. 노숙자 생활을 하는 아이들을 데려와 먹이고 입히고, 학교에 보내는 등 다방면으로 지원하고 있는데요, 놀랍게도 서 선교사님의 보살핌을 받은 아이들 중에는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하고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심지어 서 선교사님 사역을 돕는 동역자가 된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자비량 선교의 고귀한 땀방울, 아픔을 넘어 사역을 꽃피우다
서 선교사님의 사역은 놀랍게도 자비량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외부의 지원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사역을 감당한다는 의미인데요, 서 선교사님은 "자비량이라는 단어조차 어폐가 있다"고 겸손하게 말합니다. 그는 "예수 믿는 사람들의 헌신과 섬김 덕분에 사역을 이어갈 수 있다"고 강조하는데요, 한국에서 간증 집회를 통해 얻는 후원금, 아내 이영애 선교사님의 식당 운영과 영어 캠프 사역 등을 통해 재정을 충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자비량 선교는 쉽지 않은 길입니다. 특히 서 선교사님처럼 건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는 더욱 어려움이 따르는데요, 그는 과거 20대에 기관지확장증 진단을 받고 생사의 고비를 넘나드는 투병 생활을 했었습니다. 의사는 "노래는 절대 부르지 마라, 말도 많이 하지 마라" 경고했지만, 서 선교사님은 오직 복음을 전하겠다는 열정으로 병마와 싸우며 사역을 이어왔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만난 하나님, 꺼지지 않는 복음 향한 열정
서 선교사님은 20대 시절, 기관지확장증과 소아마비라는 두 가지 질병으로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기관지확장증은 심각한 기침과 각혈을 동반하는 병이었는데요, 서 선교사님은 "누워서 잠자는 것이 소원일 정도"였다고 회상합니다. 각혈과 고통으로 밤마다 죽음을 생각해야 할 만큼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고 하는데요, 심지어 의사는 "첨단 의술로도 고칠 수 없는 병"이라며 절망적인 선고를 내렸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소아마비까지 겹쳐, 2살 때 얻은 장애로 인해 평생 특수 신발을 신고 다녀야 했습니다.
하지만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서 선교사님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음을 키워나갔습니다. 본래 불교와 무속신앙이 강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동네 형님의 권유로 교회에 나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는데요,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가족들의 심한 핍박과 박해를 감수해야 했습니다. 아버지 장례식에서 "예수쟁이 때문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비난을 들어야 했고, 형님들의 폭력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형님으로부터 흉기로 위협을 당하는 위험한 순간도 있었지만, 서 선교사님은 굳건한 믿음으로 모든 고난을 이겨냈습니다.
가족 구원의 드라마, 핍박과 고난을 넘어선 사랑
서 선교사님은 극심한 핍박 속에서도 신학을 공부하며 목회자의 꿈을 키웠습니다. 가족들의 반대와 냉대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신학교에 진학하여 묵묵히 믿음의 길을 걸었는데요, 놀랍게도 서 선교사님의 헌신적인 모습은 핍박하던 가족들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기적을 만들어냈습니다. 23년 만에 집안에서 제사를 폐지하고 우상을 불태우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것인데요, 어머니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10년 동안 신앙생활을 하시다 천국으로 떠나셨고, 핍박의 중심에 섰던 큰 형님 또한 교통사고 후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서 선교님을 가장 심하게 핍박했던 둘째 형님마저 교도소 수감 중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합니다. 서 선교사님은 "자신 한 사람을 세우기 위해 가족들이 악역을 맡았던 것 같다"며, 가족 구원을 이루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 감격했습니다. 이처럼 서 선교사님의 삶은 고난과 핍박을 딛고 일어선 한 사람의 믿음이 어떻게 주변을 변화시키고,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감동적인 드라마입니다.
복음성가 가수로, 찬양으로 생명을 노래하다
서 선교사님은 뛰어난 찬양 실력으로 복음성가 가수 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의사는 "절대 노래하지 마라" 경고했지만, 그는 죽음을 각오하고 찬양 사역에 헌신했는데요, 각혈과 고통 속에서도 복음성가를 부르는 열정을 불태웠습니다. 1987년에는 전국 신학교 창작 복음성가 경연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하며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당시 작곡가 김문식 목사와의 만남은 그의 음악 사역에 큰 전환점이 되었는데요, 김 목사는 서 선교사님에게 곡을 선물하며 복음성가 사역을 격려했습니다.
서 선교사님은 88년 서울 올림픽 찬양 집회에서 쓰러질 정도로 열정적으로 찬양했습니다. 하지만 찬양에 대한 열정은 멈추지 않았는데요, 오히려 필리핀 선교를 떠나 새로운 사역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필리핀은 서 선교사님에게 생명의 땅이 되었습니다.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과 달리, 필리핀의 따뜻한 날씨는 기관지확장증을 앓고 있는 그에게 오히려 좋은 환경이 되었던 것인데요, 필리핀에서 사역하며 건강을 회복하고, 더욱 왕성하게 복음 사역에 매진할 수 있었습니다.
기적적인 치유, "병은 이미 끝났다"
서 선교사님은 필리핀 선교 중 기적적인 치유를 경험했다고 간증합니다. 국제 예수 제자 선교회 말씀 집회에 참석했을 때, 이사야 53장 5절 말씀을 통해 큰 은혜를 받았는데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라는 말씀을 믿는 순간, 몸에서 시커먼 이물질이 빠져나가는 듯한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이후 각혈과 통증이 사라지고, 손과 피부 감각이 회복되는 놀라운 치유가 일어났습니다.
물론 이후에도 건강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말씀을 의지하며 극복했다고 합니다. 서 선교사님은 "질병은 이미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짊어지셨다"며, "우리는 생각의 자유함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의학적으로는 여전히 치료 불가능한 병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건강을 유지하며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고 간증합니다. 그는 "1분 1초라도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목적인 찬양을 통해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합니다.
대중가요에 복음을 입히다, 문화 선교의 새로운 지평
최근 서 선교사님은 대중가요를 개사하여 복음을 전하는 특별한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대중교통 이용 중 문득 떠오른 아이디어라고 하는데요, 세상 노래에 하나님의 말씀을 입혀 복음성가로 재탄생시키는 것입니다. 김종환의 '사랑을 위하여',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등 유명 가요를 개사하여 만든 복음성가는 남녀노소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뿐 아니라, 전도 집회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합니다.
서 선교사님은 "세상의 혼을 터치하는 멜로디에 복음의 메시지를 담아 전한다"고 설명합니다. 익숙한 멜로디 덕분에 사람들은 거부감 없이 복음성가를 받아들이고, 함께 따라 부르며 은혜를 경험하게 된다고 합니다. 특히 한국 교회 전도 집회에서 대중가요 개사 복음성가는 새로운 전도 도구로 활용되며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아내 이영애 선교사에게 보내는 사랑의 메시지
서 선교사님은 아내 이영애 선교사님에게 깊은 감사를 표했습니다. 힘든 자비량 선교를 묵묵히 돕고, 헌신적으로 내조하는 아내에게 영상 편지를 통해 고마움을 전했는데요, "가장 사랑하는 아내 이영애 선교사, 당신의 보살핌과 헌신 덕분에 오늘날의 제가 있을 수 있었다"며, "남은 생애도 함께 천국 복음을 위해 헌신하자"는 감동적인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기도 제목
마지막으로 서 선교사님은 앞으로의 계획과 기도 제목을 나누었습니다. 첫째는 아내 이영애 선교사님의 은퇴 비자 취득입니다. 은퇴 비자를 통해 필리핀에서 안정적으로 사역을 이어갈 수 있기를 소망했는데요, 둘째는 직업 기술 학교 설립입니다. 가난한 청소년들에게 기술 교육을 제공하여 자립을 돕고,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평신도 선교사로 양성하고 싶다는 비전을 밝혔습니다. 서 선교사님의 기도 제목처럼, 필리핀 사역과 앞으로의 계획들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아름답게 이루어지기를 응원합니다.
서샬롬 선교사님의 간증은 우리에게 큰 감동과 도전을 주었습니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오히려 더 큰 사랑과 헌신으로 세상을 섬기는 그의 삶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서 선교사님의 앞날을 축복하며, 오늘 간증을 마무리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