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제 목사 간증: 불교에서 예수님까지 극적인 회심 스토리
[간증] 부처님 아들, 이승제 목사의 드라마틱 회심 스토리
## 고난과 불심의 어린 시절, 그리고 극적인 회심: 이승제 목사의 파란만장 인생 이야기
오늘 우리는, 마치 영화보다 더 극적인 인생 스토리를 가진 한 분을 만나 놀라운 이야기를 들어볼 텐데요, 바로 가까운 교회 이승제 목사님입니다. 목사님은 한때 부처님의 아들이라 불릴 정도로 불교 신앙이 깊었지만, 극적인 계기로 예수님을 만나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지금부터 이승제 목사님의 파란만장한 인생 여정을 자세히 따라가 보겠습니다.
이승제 목사님은 선오브 부다, 즉 부처님의 아들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어머니께서 3년 동안 절에서 지극정성으로 치성을 드린 끝에 얻은 아들이었기 때문인데요, 독실한 불교 집안에서 태어난 5대 독자 외아들이었던 이 목사님은, 어머니의 간절한 바람에 따라 오른쪽 주머니에 염주를 넣고 다니고, 천수경을 외우며 자랐습니다. 학교 친구들은 그런 목사님을 선부라 부르며 놀렸지만, 목사님은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열심히 불교 신앙생활을 했다고 회상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별명은 훗날 이 목사님이 예수님을 믿게 된 후,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는 복선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린 시절 이승제 목사님은 불심이 깊었다기보다는, 어머니의 극진한 정성과 간절한 바람에 부응하려 노력했습니다. 어머니는 늦게 얻은 아들이 혹시라도 잘못될까 늘 염려하며, 오른쪽 주머니에 염주를 넣어주고 천수경을 외우게 했습니다. 심지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입학 때마다 1천 배, 2천 배, 3천 배씩 절을 시켰다고 하는데요, 3천 배를 하려면 새벽 4시부터 일어나 밤 9시 반까지 무려 10시간 넘게 절을 해야 했다고 합니다. 목사님은 훗날 예수님을 믿고 교회를 다니면서 두세 시간 기도하는 것도 힘들다고 생각했지만, 어린 시절 10시간 넘게 3천 배를 했던 것을 떠올리며 반성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어머니의 불심은 대단했고, 목사님은 어머니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묵묵히 따랐던 것입니다.
이승제 목사님의 가정 환경은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에 가정 폭력까지 일삼는 분이셨고, 집안 형편 또한 매우 어려웠습니다. 목사님은 아버지를 오종 세트라 부를 정도로 미워했고,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은 상상 이상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목사님은 아버지 또한 시대의 아픔을 겪은 불쌍한 사람이었다고 회고합니다. 일제강점기, 6.25 전쟁, 월남전 등 격동의 시대를 거치면서 아버지 역시 마음의 상처가 컸고, 그것이 알코올 중독과 폭력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버지의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지만, 목사님은 아버지의 아픔을 이해하려 노력했고, 훗날 용서와 화해를 이루게 됩니다. 어쩌면 이러한 어려운 가정 환경이 오히려 목사님을 더욱 강하게 만들고, 하나님을 더욱 간절히 찾게 된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가정 불화 속에서 이승제 목사님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되었던 존재는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는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고독한 상황 속에서도 오직 아들만을 바라보며 헌신적인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목사님에게 어머니는 종교 그 자체였고,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삶의 목표였습니다. 가난한 형편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헌신했고, 목사님 또한 어머니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어쩌면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이 훗날 목사님이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된 밑거름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사랑과 헌신, 이것이 바로 이승제 목사님 어머니의 삶을 관통하는 키워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창 시절 이승제 목사님은 공부와는 거리가 먼 학생이었다고 합니다. 동네 형들과 어울려 술, 담배를 배우고 오락에 빠져 지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 동네 형이 한양대학교 전기공학과에 합격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형 또한 불우한 환경 속에서 자랐지만, 놀라운 성과를 이룬 것을 보며 자신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이후 목사님은 독서실에 다니며 공부에 매진했고, 재수 끝에 명지대학교 전기공학과에 합격하게 됩니다. 여기에는 재미있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데요, 재수 시절 입시 제도가 바뀐다는 뉴스를 보고 후기 대학에 하향 지원하는 전략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명지대학교에 합격하기 위해 절에 가서 400배를 하고, 학교 땅에 500원을 묻는 기상천외한 행동을 했다고 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합격을 위한 간절함에서 비롯된 웃픈 해프닝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간절함은 훗날 이 목사님이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가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명지대학교는 미션스쿨이었지만, 이승제 목사님은 입학 당시 기독교 학교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입학식 날 목사님이 나와 예배를 드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일주일에 한 번씩 채플을 필수로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불교 신자였던 목사님에게 채플 시간은 고역이었지만, 억지로 예배에 참석하고 출석표를 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채플 시간은 훗날 이 목사님이 예수님을 만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어쩌면 하나님은 이승제 목사님을 계획하시고, 미션스쿨인 명지대학교로 인도하신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상치 못한 만남,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섭리였을지도 모릅니다.
채플 시간, 이승제 목사님은 늘 맨 앞자리에 앉아 졸거나 딴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채플이 끝난 후 교회 선배가 목사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습니다. 선배는 목사님에게 교회에 다니는지 물었고, 목사님은 솔직하게 불교 신자임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선배는 포기하지 않고 목사님을 기독교 동아리 CCC에 초대했고, 이것이 이승제 목사님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여는 시작이었습니다. CCC는 목사님에게 낯선 공간이었지만, 그곳에서 따뜻한 환대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특히 CCC 여학생의 순수한 모습에 마음이 끌렸다고 하는데요, 어쩌면 하나님은 CCC를 통해 이승제 목사님을 교회로 이끄시고자 계획하신 것인지도 모릅니다. 인연, 만남, 그리고 이끌림,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 안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CCC 동아리방에서 이승제 목사님은 낯선 경험을 했습니다. 남학생들과 여학생들이 함께 모여 율동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목사님에게 충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묘하게 끌리는 분위기에 점점 동화되어 갔고, 얼떨결에 여름 수련회까지 따라가게 됩니다. 수련회는 4박 5일 동안 진행되는 캠프였는데, 참가비가 12,000원으로 저렴했습니다. 목사님은 어머니에게 거짓말을 하고 참가비를 받아 수련회에 참석했지만, 수련회는 술, 담배도 금지되고 예배만 강요하는 지루한 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수련회에 전혀 적응하지 못하고, 탈출을 감행하려 했지만, 마지막 날 밤 예배에서 극적인 경험을 하게 됩니다. 어쩌면 하나님은 이 지루한 시간 속에서 이승제 목사님을 기다리고 계셨는지도 모릅니다. 인내, 기다림,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순간,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수련회 마지막 날 밤, 이승제 목사님은 텅 빈 강의실에 홀로 앉아 있었습니다. 지루함과 피곤함에 지쳐 잠이 들 찰나, 강의실 밖에서 찬양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목사님은 억지로 예배에 참석했지만, 설교는 귓등으로 흘려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밤, 김중훈 목사님의 설교는 놀랍게도 목사님의 마음에 꽂혔습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라는 선포는 강렬하게 목사님의 양심을 두드렸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을 되돌아보게 했습니다. 특히 누나를 폭행했던 끔찍한 기억이 떠올랐고, 죄책감에 몸 부림쳤습니다. 그 순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이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죄 사함, 용서, 그리고 새로운 삶, 이것이 바로 이승제 목사님이 예수님을 통해 얻게 된 놀라운 선물이었습니다. 극적인 회심,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였습니다.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한 이승제 목사님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어머니가 절에서 공들였던 정성을 떠올리며, 10번 절을 하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기도 제목은 누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뇌성마비로 고통받았던 누나가 지옥에 있다면 자신 대신 천국에 보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자신 또한 용서받을 수 있는지 묻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놀랍게도 기도 중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고, 파란 빛이 몸 속으로 들어오는 환상을 경험했습니다. 이 환상은 목사님에게 확신을 주었고, 예수님을 진심으로 영접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신비로운 체험, 그것은 바로 성령 체험이었으며, 이승제 목사님을 새로운 삶으로 인도하는 등불이 되었습니다.
수련회 다음날 아침, 이승제 목사님은 놀라운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밤새 천둥 번개가 치고 비가 쏟아졌지만, 아침 햇살은 유난히 밝게 빛났습니다. 젖은 아스팔트는 흑진주처럼 반짝였고, 나뭇잎은 아침 햇살에 반짝이며 춤추는 듯했습니다. 세상이 온통 새롭게 보였고, 마음 속에는 기쁨과 평안이 가득했습니다. 어제 괴롭혔던 송사리들에게 사과하기 위해 개울가로 갔는데, 송사리들이 다가와 손에 입을 맞추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목사님은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을 믿고 변화된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새로운 피조물,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이승제 목사님의 새로운 정체성이었습니다.
수련회에서 돌아온 이승제 목사님은 가장 먼저 아버지를 용서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예전에는 증오의 대상이었던 아버지가 이해되고 불쌍하게 느껴졌습니다. 서울에 올라가 아버지와 식사를 함께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CCC 선배로부터 성경책을 선물받고 요한복음부터 읽기 시작했습니다. 성경 말씀은 꿀송이처럼 달콤했고, 특히 요한복음 10장 10절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는 구절은 강렬하게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생명, 풍성함, 이 두 단어는 이승제 목사님의 인생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되었고, 목회 철학의 근간을 이루게 됩니다. 용서, 화해, 그리고 생명, 이것이 바로 이승제 목사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한 진정한 가치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이승제 목사님의 삶은 180도 달라졌습니다. 술, 담배를 끊고 교회 활동에 열심을 냈습니다. 집안 일도 도와 어머니를 놀라게 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들이 예수 쟁이가 된 것을 몹시 싫어했고, 종교 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님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교회에 출석했고, CCC 활동을 통해 신앙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대학교 4학년 때는 CCC 간사 제의를 받을 정도로 신앙이 깊어졌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반대로 간사 의 길을 포기하고 졸업 후 직장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님의 마음 속에는 늘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불타올랐습니다. 변화, 성장, 그리고 헌신, 이것이 바로 이승제 목사님의 신앙 여정을 특징짓는 단어입니다.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승제 목사님은 꾸준히 교회에 출석하며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어머니에게 뇌졸중이 발병했고, 병상에 눕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죽음을 앞두고 과거 주일학교 다녔던 기억을 떠올리며 찬송가 411장 "예수 사랑하심을"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아들에게 "네 하고 싶은 거 해라, 예수 믿게 잘했다"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머니의 마지막 고백은 목사님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종교 갈등을 겪었던 어머니가 마지막 순간 예수님을 인정하고 축복해 준 것은 놀라운 은혜였습니다. 화해, 용서, 그리고 사랑, 이것이 바로 이승제 목사님과 어머니의 관계를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매듭이었습니다.
이승제 목사님은 아내와 만나 30년 넘게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아내는 CCC 동아리방에서 처음 만난 수녀 같은 여학생이었는데요, 목사님의 끈질긴 구애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고 합니다. 결혼 생활은 결코 순탄치 않았지만,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며 극복해 왔습니다. 특히 아내는 믿음 안에서 늘 긍정적이고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목사님에게 큰 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목사님은 아내를 만난 것을 인생 최고의 축복이라고 고백합니다. 사랑, 헌신, 그리고 믿음, 이것이 바로 이승제 목사님 가정의 행복 비결입니다.
결혼 후 이승제 목사님은 평신도 선교사로 중국에서 14년 동안 선교 활동을 했습니다. 넉넉지 못한 형편에도 불구하고 아내와 함께 헌신하며 사역에 전념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후 가까운 교회를 개척하여 목회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교회 이름처럼 하나님과 가깝고 이웃과 가까운 교회, 생활 선교사를 양성하는 교회를 꿈꾸며 목회에 힘쓰고 있습니다. 목사님은 성도들에게 교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도 선교사처럼 살아가도록 격려하고 있습니다. 선교, 헌신, 그리고 섬김, 이것이 바로 이승제 목사님의 목회 철학입니다.
가까운 교회 이승제 목사님의 비전은 분명합니다. 성도들이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생활 선교사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교회와 세상, 신앙과 생활, 이 두 가지 가치가 융합되는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목사님은 말씀과 삶이 일치되는 목회, 성도들과 함께 성장하는 목회를 지향합니다. 가까운 교회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성장하고 발전하며,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생활 선교, 공동체, 그리고 성장, 이 세 가지 키워드가 가까운 교회의 미래를 밝게 비춰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승제 목사님의 인생 이야기를 통해 큰 감동과 도전을 받았습니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목사님의 모습은 우리에게 진정한 믿음의 의미를 깨닫게 해줍니다. 앞으로 가까운 교회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생활 선교사로 살아가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대하며, 오늘 이야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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