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재 목사 간증 현실판 나오미, 흉년 속 희망과 인생 역전 이야기
## 현실판 나오미, 큐티로 쓴 역전 드라마: 절망의 흉년에서 희망의 풍년으로
## [수어통역] 현실판 나오미, 척박한 흉년 속에서 피어난 희망: 김양재 목사의 파란만장 인생 간증
[유튜브 썸네일 이미지 삽입]
여러분, 혹시 '막장 드라마' 좋아하시나요?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은 으레 아프거나, 고부 갈등에 시달리거나, 온갖 고통을 겪는다고 하는데요. 오늘 소개해 드릴 김양재 목사님의 삶은, 마치 현실판 막장 드라마 같다고 합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김 목사님은 하나님을 만나면서 그 고난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들교회 김양재 목사님을 모시고, 파란만장했던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김 목사님은 특유의 솔직하고 거침없는 입담으로, 자신의 굴곡진 삶과 그 속에서 만난 하나님의 은혜를 감동적으로 풀어낼 예정입니다.
1. 척박했던 유년 시절: 흉년과 같았던 소녀 시대
김양재라는 이름은 흔치 않은 이름인데요, 아들을 간절히 원했던 어머니의 애끓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당시 사회 분위기 자체가 남아선호사상이 강했고, 특히 김 목사님 어머니는 3대째 아들을 낳지 못했던 상황이었기에 더욱 간절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북한에서 피난 내려오셨는데, 피난 중에도 아들을 낳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 쏟으셨다고 합니다. 심지어 온 교회에 쌀을 매다시피 하고, 유명하다는 목사에게 극진한 정성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 정성에 감복한 목사가 지어준 이름이 바로 '양재(양자, 아들 제)'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딸이 태어났고, 어머니는 큰 실망에 빠졌습니다. 정신과 진료를 받을 정도로 충격이 컸다고 하는데요, 당시 어머니의 절망감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는 그 후 신앙생활에 완전히 등을 돌리셨다고 합니다.
김 목사님은 어린 시절부터 사랑과 관심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딸만 줄줄이 낳았다는 이유로 냉대를 받았고, 입학식이나 졸업식조차 제대로 챙겨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책가방이나 옷도 물려받아 썼고, 변변한 용돈조차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가정 형편도 어려워, 어머니는 남의 집 빨래를 해주고, 교회 변소 청소를 하는 등 궂은 일을 도맡아 했다고 합니다. 고학력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가정 생계를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헌신했다고 하는데요.
9살 무렵, 김 목사님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합니다. "나는 내가 내 일을 해야겠다"라고 다짐하며, 어린 나이에 정신연령 30살의 소녀 가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돌이켜보면, 어머니의 헌신적인 삶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던 것 같다고 김 목사님은 회상합니다. 당시에는 어머니의 헌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에 와서야 그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2. 가난과 고난 속에서 피어난 꿈: 피아니스트를 향한 열정
김 목사님은 여학교 시절, 집안 사업이 부도나면서 더욱 가난해졌다고 합니다. 피아노를 전공하고 싶었지만, 레슨을 제대로 받을 형편도 못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피아노에 대한 열정은 꺾이지 않았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교회 반주를 시작했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콜레에서 피아노 레슨을 하며 스스로 학비를 벌었다고 합니다. 입시 준비에 매진해야 할 시기에, 생계까지 책임져야 했던 고된 생활이었는데요.
소녀 가장으로서 힘겨운 생활을 이어가면서도, 김 목사님은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독학으로 피아노를 연습했고, 끊임없는 노력 끝에 서울대학교 피아노과에 합격하는 기적을 이루어냈습니다.
재수도 하지 않고 단번에 서울대학교에 합격한 것은, 놀라운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김 목사님의 열정과 노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서울대학교 피아노과에 진학했지만, 가정 형편은 여전히 어려웠습니다. 집에 전화조차 없어서, 학교 연락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불편함을 겪었다고 합니다. 당시 김 목사님의 가슴 아픈 현실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가난은 오히려 김 목사님에게 약이 되었다고 합니다. 만약 넉넉한 환경이었다면, 남자 친구를 만나 데이트하느라 시간을 낭비했을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가난 덕분에 오히려 하나님께서 김 목사님을 지켜주셨다고 고백합니다.
힘든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꿈을 키워온 김 목사님은, 고난이 오히려 축복이 될 수 있음을 몸소 증명해 보였습니다. 역경을 딛고 일어선 인간 승리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화려한 결혼, 그러나 닥쳐온 시련: 끝나지 않는 흉년
대학 졸업 후, 김 목사님은 교회 반주를 10년이나 한 헌신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듯, 소위 '잘나가는' 집안으로 시집을 가게 되었습니다. 장로님 권사님 집안에, 남편은 의사, 시아버지는 사업가, 모든 조건이 완벽해 보였습니다.
결혼 상대는 소개팅으로 만났는데, 남편은 무려 130번의 소개팅 끝에 김 목사님을 만났다고 합니다. 그만큼 인기가 많았던 '엘리트' 남편이었던 셈입니다. 당시 소개팅 날, 남편은 기사 딸린 포드 자동차를 끌고 나왔다고 하는데요,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모두 김 목사님의 결혼을 부러워했습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속담처럼, 이제 행복만 가득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김 목사님 스스로도 그렇게 믿었습니다.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어 모압으로 떠났던 나오미처럼, 자신도 고생 끝에 행복을 찾아 떠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와 전혀 달랐습니다. 결혼 생활은 행복이 아닌, 새로운 고난의 시작이었습니다. 육체적 흉년이 끝난 줄 알았지만, 정신적 흉년이 더욱 심각하게 다가왔습니다.
시어머니는 무학이었지만, 남편을 잘 만나 회장님 사모님이 되었습니다. 시어머니는 모든 것을 청소와 빨래로 판단하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고, 며느리에게도 똑같은 기준을 강요했습니다. 시어머니는 마치 군대 조교처럼,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청소와 집안일을 시키고 간섭했다고 합니다.
새벽기도도 못 가게 하고, 성경 읽는 시간조차 제대로 주지 않았습니다. 걸레질 하나 제대로 못 한다고 온갖 구박과 모욕을 줬다고 합니다. 심지어 친정 어머니까지 욕하며 모욕했다고 하니, 시어머니의 횡포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하루 종일 청소만 해야 했고, 오후 2시에는 오후 청소까지 해야 했습니다. 걸레 종류만 해도 수십 가지였고, 걸레 빠는 것조차 제대로 못 한다고 야단을 쳤다고 합니다. 피아니스트였던 김 목사님에게 걸레질은 고문과 다름없었습니다.
시아버지와 남편은 두 남자를 위해 네 여자(시어머니, 김 목사님, 파출부 2명)가 하루 종일 매달리는 생활이었다고 합니다. 남편은 효자였기에 시어머니의 말에 절대 복종했고, 김 목사님은 숨 막히는 시집살이를 견뎌야 했습니다.
시어머니는 "여자는 신문도 보면 안 되고, 텔레비전도 보면 안 되고, 책도 읽으면 안 된다"는 시대착오적인 가치관을 강요했습니다. 경조사 참석조차 못 하게 하고, 외부 출입을 극도로 통제했다고 합니다. 자유를 갈망했던 김 목사님에게 시집은 감옥과 다름없었습니다.
친정아버지에게 하소연해도 소용없었습니다. 오히려 "네가 서울 장 나와서 교만해서 그렇다"며 핀잔만 줬다고 합니다. 어느 곳에도 기댈 곳 없이 홀로 고립된 상황이었는데요. 극심한 외로움과 절망감에 휩싸였을 김 목사님의 고통이 느껴집니다.
멸치 똥 하나에도 온 집안이 발칵 뒤집히고, 갈비에 피가 묻었는지 안 묻었는지 매일 같이 싸우는 일상이었다고 합니다. 상상조차 하기 힘든 고된 시집살이였는데요. 화려한 결혼 뒤에 숨겨진 끔찍한 현실이었습니다.
4. 절망의 늪에서 발견한 빛: 큐티를 통한 영혼의 회복
견디다 못한 김 목사님은 "내가 왜 이렇게 힘든 인생을 살아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착하고 믿음 좋고 공부 잘하고 예의 바르고 상냥한 자신에게 왜 이런 고난이 닥쳐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신에게 회개할 거리는 없다고 여겼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기도해서 낳은 딸인데, 왜 이렇게 고통을 주시는지 원망스럽기까지 했습니다.
10년 동안 시어머니의 구박을 견디다 보니, 자존감은 바닥까지 떨어졌습니다. "나는 대학교 나온 사람이 맞나"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고 합니다. 끊임없는 비난과 무시는 사람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립된 생활, 숨 막히는 시집살이, 자존감 상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 온갖 고통이 한꺼번에 밀려오면서, 김 목사님은 극심한 절망에 빠졌습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생각에 이혼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혼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교양 때문에, 체면 때문에 차마 이혼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지옥 같은 생활을 계속할 수도 없었습니다. 진퇴양난의 상황에 놓인 것입니다.
결국 극단적인 선택까지 고려할 정도로 절망에 깊이 빠졌다고 합니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죽음을 갈망하게 된 것입니다. 인간의 존재 의미를 송두리째 흔드는 고통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때 김 목사님은 문득 자신이 어려서부터 악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창세기 8장 21절 말씀처럼, 사람은 어려서부터 악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자신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지금까지 자신은 착하고 의로운 사람이라고 착각하며 살아왔지만, 실상은 교만하고 이기적인 죄인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어머니를 존경하지 못하고, 돈을 좋아하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살아온 자신의 모습을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5년 동안 숨 막히는 시집살이를 견디는 동안, 김 목사님은 처음으로 자신의 죄를 깊이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온 것입니다.
"양재야, 양재야, 네가 어디 있느냐"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은, 김 목사님의 영혼을 뒤흔드는 강렬한 외침이었습니다. 그 순간, 김 목사님은 자신의 죄를 똑바로 직면하고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회개는 삶의 방향을 송두리째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순간, 김 목사님은 비로소 진정한 자유와 평안을 얻게 되었습니다. 지옥 같았던 삶에서 천국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5. 큐티, 고난을 넘어 축복으로: 변화된 삶, 변화된 가정
김 목사님이 변화되자, 가장 먼저 변화가 일어난 것은 시어머니와의 관계였습니다. 그렇게 무섭고 힘들었던 시어머니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랑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에는 시어머니에게 굴종하는 노예와 같았지만, 주님을 만난 후에는 진정한 사랑으로 시어머니를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영혼 구원을 위한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임을 깨닫고, 시어머니를 이해하고 용납하기 시작했습니다.
결혼 5년 만에 처음으로 시어머니에게 "어머니, 예배 드리십시오"라고 권면했습니다.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었는데요. 시어머니는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결국 김 목사님의 권면을 받아들여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김 목사님은 시어머니에게 큐티를 가르쳐주고, 함께 말씀을 묵상하며 교제했습니다. 시어머니는 점점 변화되기 시작했고, 결국 예수님을 영접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큐티는 굳게 닫힌 시어머니의 마음의 문을 여는 놀라운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시어머니는 2~3년 후부터 김 목사님에게 "내가 너만 시집살이 안 시켰지"라며 미안함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따뜻한 말였습니다. 시어머니는 김 목사님을 딸처럼 여기며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기도 중에는 "우리 집안에 이렇게 훌륭한 주의 딸, 주의 종을 보내주셔서 감사하다"라고 고백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큐티는 가정 불화의 원흉이었던 시어머니를 변화시키는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김 목사님은 큐티를 통해 주인 의식을 갖게 되었고, 노예 같았던 삶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시어머니의 눈치를 보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정 불화의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자신에게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변화되자, 모든 관계가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큐티는 가정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김 목사님은 가정을 지키는 최고의 방법은 바로 큐티라고 강조합니다. 서울대학교에 합격하는 것보다, 가정을 지키는 것이 천만 배 더 힘들었지만 가치 있는 일이었다고 고백합니다. 가정 사역에 헌신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6. 남편의 구원과 천국 환송: 큐티가 가져온 기적
남편 또한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남편은 여전히 기독교 계를 비판하고, 교회 건축이나 목사님들의 생활을 비난하는 성향을 보였지만, 예전과는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특히 돈에 대한 집착이 강했고, 짠돌이 기질을 버리지 못했지만, 김 목사님은 인내심을 가지고 남편을 사랑으로 품었다고 합니다. 사랑은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국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남편은 성실했지만, 가정 생활에는 무관심했습니다. 대화 없이 병원 일만 하다 돌아오고, 술만 마시는 생활을 반복했다고 합니다. 김 목사님은 남편과의 대화 단절로 인해 큰 고통을 겪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남편이 바람이라도 피웠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하니, 부부 관계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김 목사님은 포기하지 않고 남편의 구원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기적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일어났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갑자기 쓰러진 것입니다. 간암 말기 진단을 받고 시한부 선고를 받았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김 목사님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남편의 영혼 구원을 위해 더욱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남편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천국에 가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중환자실에 입원한 남편에게 "당신 병명이 간암 말기라고 합니다. 당신 회개하고 예수 믿고 천국 가지 않으면 나는 살 소망이 없습니다"라고 직접 말했습니다. 남편의 구원을 위해서는 어떤 말도 할 수 있다는 절박함이었습니다.
놀랍게도 남편은 김 목사님의 말에 순순히 응답했습니다. "나는 죄가 많아서 교회에 못 나갔다"며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 받았습니다. 죽음 직전에 예수님을 만나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남편은 임종 직전에 가족들에게 유언을 남겼습니다. 자신 때문에 고생한 아내에게 미안함을 표현했고, 가족들에게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장례식을 아내에게 맡긴다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아내를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남편은 예수님을 영접한 지 불과 세 시간 만에 천국으로 떠났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남편의 영혼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큐티는 죽음 직전의 남편을 구원하는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김 목사님은 남편의 장례식을 아파트 5층 집에서 치렀습니다. 30대 과부가 된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당당하게 남편의 천국 환송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께 감사 찬양을 올려드렸습니다.
남편의 죽음은 슬픔이었지만, 동시에 기쁨이었습니다. 남편이 예수님 믿고 천국에 갔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슬픔을 이기고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큐티는 죽음조차 이기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7. 큐티 목회, 세상을 향한 복음 전파: 큐티는 삶의 나침반
남편 사후, 김 목사님은 큐티 목회에 헌신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자신을 구원하고, 가정을 회복시키고, 남편까지 천국으로 인도한 큐티의 능력을 세상에 전하고 싶었습니다.
교회 개척 생각은 없었지만, 집에서 큐티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놀랍게도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왔습니다. 입소문을 타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큐티 모임에 참석하기 시작했습니다.
13년 동안 집에서 13개의 큐티 모임을 운영했습니다. 밥을 해 먹이고, 큐티를 가르치고, 상담을 해주고, 기도를 들어주는 일을 쉼 없이 계속했습니다. 헌신적인 사역에 감동한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이 찾아왔습니다.
교회는 급속도로 성장했고, 결국 교회를 개척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본격적인 큐티 목회를 시작한 것입니다. 큐티 하나만으로 교회가 부흥하는 놀라운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김 목사님은 큐티의 핵심은 바로 '적용'이라고 강조합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말씀을 삶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할 때, 진정한 변화가 일어난다고 말합니다.
큐티는 어렵거나 특별한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쉽게 시작할수 있습니다. 생명의삶 큐티 교재를 활용하면, 초신자도 쉽게 큐티를 배울 수 있습니다. 큐티는 삶의 나침반과 같아서, 우리를 바른길로 인도해줍니다.
큐티는 가정 회복의 비결이기도 합니다. 가족 모두가 함께 큐티를 하면,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며 화목한 가정을 만들 수 있습니다. 가정 불화로 고통받는 분들에게 큐티를 강력히 추천합니다.
결혼과 가정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라 '거룩'입니다. 거룩을 목표로 삼을 때, 행복은 저절로 따라옵니다. 질서에 순종하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가정과 회사와 나라를 지키는 최고의 비결입니다. 가정 사역의 핵심 가치는 바로 '질서 순종'입니다.
여성 목사이지만, 남편을 살리고 남자 목회자를 세우는 것이 자신의 핵심 가치라고 강조합니다. 남녀는 동등하지만, 역할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각자의 역할에 순종할 때, 건강한 가정과 교회를 세울 수 있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이혼하지 말고, 호적 등본 찢어질 때까지 참고 견디라고 조언합니다. 이혼은 절대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더 큰 고통을 초래할 뿐입니다. 큐티를 통해 자신을 직면하고 변화될 때, 가정 문제는 해결될 수 있습니다.
힘든 시간을 보내는 분들에게 힘내시라는 응원과 격려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남편 때문에, 아내 때문에 힘들다고 불평하지 말고, 먼저 자신의 죄를 돌아보고 회개하십시오. 한 사람의 기도가 가정을 살릴 수 있습니다. 큐티를 통해 주님을 만나고 변화되면, 반드시 가정 문제는 해결될 것입니다.
오늘 김양재 목사님의 간증을 통해, 큐티의 놀라운 능력과 가정 사역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큐티는 단순한 성경 묵상 방법이 아니라, 삶 전체를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큐티를 통해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가정과 교회와 사회까지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오늘 부터 당장 큐티를 시작하여, 놀라운 변화를 경험해 보시기를 강력히 추천합니다.
오늘 귀한 간증 나눠주신 김양재 목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박수]
[음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