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귀 없이 살아가는 농맹인 이태경 형제의 희망과 도전 이야기
손으로 보는 형제
[새롭게하소서 최초😲] 눈이 보이지 않고 귀가 들리지 않아도ㅣ농맹인 이태경 형제ㅣ새롭게하소서
오늘 여러분께서는 특별한 분과의 만남을 통해 깊은 감동과 도전을 받으실 준비가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바로 새롭게하소서에 최초로 출연하신, 눈이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는 농맹인 이태경 형제님의 이야기인데요, 상상조차 하기 힘든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이태경 형제님의 삶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줄 것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이 놀라운 여정을 함께 따라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이 자리에 함께 해주신 귀한 분들을 소개해 드릴 텐데요, 오늘 특별히 수호 통역사님과 함께 자리해주셨습니다. 진행자님께서는 수호 통역사님을 직접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네, 저는 영락노인대학교에서 촉수어를 가르치고 있는 이연경입니다. 저는 4년 전부터 4쏘크 3선교회를 통해 이태경 씨를 만나 촉수어로 소통하며 돕고 있습니다." 정말 놀라운 인연인데요, 수호 통역사님 덕분에 이태경 형제님의 진솔한 이야기를 더욱 생생하게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직접 자기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음... 저는 부산에서 살고 있는 농맹인, 봉이 이태경입니다." 라고 이태경 형제님께서 수줍게 자신을 소개해주셨습니다.
현재 이태경 형제님의 눈과 귀 상태는 어떠한지 궁금하실 텐데요, "저는 지금까지 음성을 들었던 기억이 없습니다. 소리는 전혀 들을 수 없고, 지금 눈 상태는... 아, 조명이 켜져 있구나, 불이 켜져 있구나, 하는 정도만 희미하게 알 수 있습니다." 라고 형제님께서는 차분하게 설명해주셨습니다. 저희는 잠시 눈을 감고 귀를 막는 상상만으로도 답답함과 두려움을 느끼곤 하는데요, 이태경 형제님은 과연 어떠한 심정으로 이 모든 어려움을 감내하고 계실까요? "음... 여러분, 한번 상상해보세요. 어느 날 갑자기 일상생활을 하다가... 텔레비전을 볼 수 없어요. 갑자기 세상이 깜깜해졌어요. 모든 불이 꺼진 듯한 절망감... 아마 그런 느낌일 것 같습니다." 라고 형제님께서는 덤덤하게 이야기하셨습니다. 정말 상상하기조차 힘든 고통인데요, 혹시 가족 중에도 같은 장애를 겪고 계신 분이 계실까요? "음... 저희 아버지, 어머니, 형이 있는데... 세 분은 모두 청인이시고, 저 혼자만 농맹인입니다." 라고 형제님께서 답변해주셨습니다.
오늘 이 귀한 자리에 함께하기 위해 멀리 부산에서 서울까지 오셨다고 들었는데요, "으... 으... 네,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왔습니다." 라고 형제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혼자서는 거동조차 불편하실 텐데, 혹시 누가 함께 동행해주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음... 음... 어... 저 혼자서 기차... 사실은 무궁화호 기차에 자리를 예매해서 별을 보고 앉혀서 와요. 하지만 기차표를 끊는 것부터 저에게는 큰 힘든 일입니다. 집에서부터 기차역까지, 기차역에서 자석까지, 자석에서 화장실 한번 갔다 오는 것조차 힘들고... 기차역에서 내린 후에도 누군가 데리고 가줘야 하고, 여러 사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라고 형제님께서는 솔직하게 어려움을 토로하셨습니다. 오늘 함께 오신 분들은 서울에서 만나기로 하신 건가요? "아니요, 예, 부산에서... 오늘 사실은 제가 새롭게하소서에 출연하는데, 농맹인을 대표해서 무거운 책임을 가지고 출연하는 것이기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얼마 전에 제가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기차 3시간 동안 타고 오는 동안 공황장애가 날 정도로 정신적으로 힘들 때가 있다고. 특히 코로나19 때문에 정신적으로 힘들 때, 서울 한번 왕복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요. 왜냐하면 예전에 한번 기차에서 화장실을 갔는데, 화장실에서 나온 순간 방향을 헷갈려서 기차 통로 차단막 이쪽에 풀이 쿵 하고 쏟아져 나온 적이 있었어요. 기차 칸 번호를 볼 수 없으니 좌석을 찾지 못하고 헤맨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저 좀 도와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저는 농아인이잖아요. 말할 수도 없고 상대방의 말을 들을 수도 없으니 도움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때마다 도움을 받지 못해서 너무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이야기도 했었습니다." 라고 형제님께서는 당시의 힘들었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주셨습니다.
새롭게하소서 제작진 측에서도 이태경 형제님을 위해 부산에서 수소문하여 아롱영락교회를 찾았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이태경 씨와 동행해 주실 분을 찾다가... 조건이 있었잖아요. 수화가 가능해야 하고, 촉수어까지 가능해야 하고, 또 이태경 씨와 하루 종일 함께 시간을 보내줘야 하는... 꽤 까다로운 조건이었죠. 다행히 아롱영락교회에서 좋은 집사님을 만나, 스트레스 없이 편안하게 잘 오셨고, 또 집에 갈 때도 무사히 잘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라고 수호 통역사님께서 덧붙여 설명해주셨습니다. 동행해줄 분이 생겨서 정말 기뻐하셨을 것 같은데요? "네, 예. 집에서 교회까지 오는 길이 얼마나 멀고 험난한 길이었을까 생각하면...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라고 형제님께서 감격스러운 마음을 표현하셨습니다. 기차 안에서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셨나요? "예, 기차 안에서는 거의... 왼손으로는 성경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비록 육신의 눈은 볼 수 없지만, 그 안에 계신 하나님, 또 형제님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로 위로를 받았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올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라고 형제님께서는 간절한 마음을 전해주셨습니다.
어릴 때부터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언제부터 느끼셨는지 궁금한데요, "1세 살 때 열병으로 청력을 잃었다고 부모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세상의 소리를 전혀 들은 적이 없습니다. 눈은... 시력을 언제부터 잃었더라... 농아인으로 살다가 20대에 눈이 점점 안 보이기 시작하면서 20대 후반에는 완전히 시력을 잃었습니다." 라고 형제님께서는 담담하게 과거를 회상했습니다. 20대까지는 시력을 가지고 계셨군요? "으... 음, 네, 그렇습니다. 20대 이후에 시력을 잃었기 때문에, 내가 점점 시력을 잃어갈 때 그 당시가 상당히 두려웠을 것 같은데요, 그때 기분을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라고 진행자님께서 질문하셨습니다. "네, 이제 더 이상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없다는 생각이 저를 굉장히 많이 두렵게 하고 절망하게 했습니다. 저의 눈이 점점 보이지 않으면서... 맹학교를 입학했을 때 보행 훈련을 받았는데, 맹학교 캠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저를 안내해주고 보행 훈련을 도와주시던 선생님 한 분이 계셨는데... 제 뒤에 쫓아오시고, 저는 앞으로 가고 있었는데... 길을 잘못 들어 넘어진 거예요. 길을 잘못 들고 뒤쫓아 오시던 보행 선생님이 어디로 가셨는지 사라지셨어요. 제가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주위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고, 볼 수도 없었기 때문에... 소리도 들을 수 없고, 볼 수도 없고... 굉장히 두려웠습니다. 그렇게 길을 잃어버린 적이 몇 번 있었고요. 그런데 그 보행 선생님한테 화를 낼 수도 없는 거예요. 소통이 안 되니까... 그때 마음이 화가 나 있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전달할 수 없었습니다." 라고 형제님께서는 당시의 막막했던 심정을 고백했습니다.
눈이 점점 보이지 않게 시작했을 때, 어머니의 마음은 어떠셨을까요? "저희 어머니 마음이 굉장히 아프셨을 것 같아요. 제 시력이 점점 나빠질 때, 저희 어머니가 많이 힘들어 하시면서 병원에 가면 고칠 수 있을까, 그리고 제 눈에 맞는 안경을 맞춰주면 아들이 좀 볼 수 있을까, 하면서 안경을 맞춰주시려고 많이 애쓰셨어요. 그리고 좋다는 약은 다 찾아서 소문나는 대로 다 저에게 먹이셨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굉장히 많이 힘들어 하셨어요." 라고 형제님께서는 어머니의 깊은 사랑에 감사함을 표현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아들의 눈만 뜰 수 있다면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으셨겠죠. 시력이 남아 계셨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풍경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아... 기억이 나네요. 학교 운동장이었던 것 같은데... 비가 오고... 그리고 무지개가... 아름답게 떠올랐던 기억이 납니다. 아, 무지개 색깔이 저렇게나 아름답구나... 그 기억이 마지막으로 봤던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라고 형제님께서는 아름다운 무지개 빛깔을 회상했습니다.
맹학교 졸업 후 사회생활을 위해 직업을 구하려고 하셨을 텐데요, 맹학교 입학 후에는 어떠셨나요? "예, 농아인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농아학교 졸업하고 나서... 취업이나 진학을 할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아서, 그리고 당시에는 눈이 많이 안 좋아지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아, 농아맹학교를 알아보니, 맹학교에서 안마 기술을 배울 수 있다고 해서 맹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라고 형제님께서는 안마사의 길을 선택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습니다. 맹학교에서 안마 기술을 배우는 것도 쉽지 않았을 텐데요? "맹학교에 입학했을 때 소통이 안 됐어요. 선생님은 말씀하시는 분이고, 저는 수어를 사용하는 농아인이었기 때문에 소통이 안 돼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라고 형제님께서는 언어 장벽으로 인한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혹시 다른 분야에서 직장 생활을 하신 경험은 있으신지 궁금한데요? "안마사 자격증을 땄어요. 그리고 안마사를 하려고 회사나 이런 곳에 취업을 알아보았는데, 잘 안 되는 거예요. 제가 귀도 안 들리고 눈도 보이지 않는다고... 쭉 다 거절당했습니다." 라고 형제님께서는 사회의 냉혹한 현실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는 어떻게 생활하고 계신가요? "음... 전자제품 회사에서 몇 개월 일한 적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회사가 경영난으로 문을 닫는 바람에 더 이상 취업을 할 수 없었고, 지금은... 기초수급자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라고 형제님께서는 안타까운 현실을 전했습니다. 현재는 누구와 함께 살고 계신가요? "음... 어머니하고 저랑 둘이 같이 살고 있습니다." 라고 형제님께서 답변하셨습니다. 가족들과는 소통을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저희 어머니는... 제가 눈이 조금 보일 때는 어머니의 입 모양을 읽을 수 있었어요. 어머니가 수어를 기초적으로 하시기도 하고, 손동작으로 하시는 것, 또는 손바닥에 글자를 써주시는 것으로 소통했습니다." 라고 형제님께서는 가족과의 소통 방식을 설명했습니다.
농맹인들이 사용하기에 편리한 도구들이 따로 있는지 궁금한데요, "제가 맹학교를 다닐 때 '한손에'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정보를 얻긴 했지만, ‘에이, 뭐 이런 것까지 나에게 필요하겠어?’ 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제 눈이 완전히 안 보이고 난 후에는 ‘아, 그게 필요하겠구나’ 해서 찾으려고 했지만, 어디서 어떻게 구해야 되는지 정보가 없었어요. 저를 도와줄 곳도 없었고... 그래서 시각장애인 쪽 관련 단체에 가서 '한손에'를 얻으려고 노력했는데, 점자를 마스터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시험을 봐서 그 시험을 통과해야 '한손에'를 얻을 수 있습니다." 라고 형제님께서는 '한손에'를 얻기까지의 어려움을 설명했습니다. 굉장히 열심히 공부해서 '한손에' 시험에 통과하셨다니 정말 대단하신데요! '한손에'라고 말씀해주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기기인가요? "시각장애인을 위해서 만든 점자 정보 단말기라고 원래 명칭은 그런데... 과거 키보드처럼 생긴 거예요. 점자를 읽어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라고 수호 통역사님께서 '한손에'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셨습니다. '한손에' 덕분에 정보 접근성이 많이 높아졌을 것 같은데요? "네, 맞습니다. '한손에' 덕분에 지금은 성경도 읽으시고,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이 생겼습니다. 카톡도 할 수 있고, 인터넷 정보도 얻을 수 있고, 많은 것을 할 수 있고, 성경도 '한손에'로 읽고 있습니다." 라고 형제님께서는 '한손에'의 유용성을 강조했습니다. 성경 찬송도 '한손에'로 들을 수 있나요? "네, 성경 찬송도 '한손에'에 다 들어있습니다." 라고 형제님께서 답변하셨습니다. 하지만 '한손에'를 누구나 원하는 대로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들었는데요? "예, 저는 사실 이 '한손에'를 굉장히 갖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시각장애인들과 경쟁해야 해서 시험에 통과해야 이걸 얻을 수 있거든요. 돈이 있다고 해서 구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구입할 수는 있지만, 너무 가격이 비싸서 구입하기가 어렵습니다. 시각장애인들과 경쟁해서 농맹인들이 '한손에'를 얻는 게 굉장히 쉽지 않습니다." 라고 형제님께서는 '한손에'를 얻기 위한 경쟁의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농맹인에게 '한손에'가 꼭 필요한 이유가 있을까요? "그렇죠. 농맹인 같은 경우에는 TV도 볼 수 없고, 라디오도 들을 수 없고, 세상과 소통할 방법이 전혀 없거든요. 가족, 친척, 주변 사람들과도 소통이 어렵고... 오로지 유일하게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에 꼭 필요합니다." 라고 형제님께서는 '한손에'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형제님께서는 어떻게 '한손에'를 얻게 되셨나요? "어... 사실 '한손에'를 받기까지 쉽지 않았습니다. 점자를 익혀야 되거든요. 점자라는 새로운 언어를 익혀야 하는데, 그게 일반 사람들에게는... 뭐, 헬렌 켈러처럼 스스로 점자를 계속 연습해야 돼요. 몇 시간 동안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그렇게 연습해서 점자 시험에 합격해야 '한손에'를 받을 수 있습니다." 라고 형제님께서는 피나는 노력 끝에 '한손에'를 얻게 되었음을 밝혔습니다. 농맹인들은 정보에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한손에'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계시는군요. "네, 맞습니다." 라고 형제님께서 긍정했습니다.
농맹인이 되신 이후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예... 저는... 예... 전에... 농아인 때보다 농맹인으로 살고 있는 지금 저의 삶이 더 낫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농아인으로 살 때는 예수님을 몰랐거든요. 농맹인이 되고 나서 제 친구들이 농아인 교회를 데려가 줬어요. 저희 집까지 와서 저를 교회로 데려가서 촉수어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해 줬는데, 그 말씀이 제 안에 위로로 다가오더라고요.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궁금해서 점자로 된 성경을 구해서 성경을 읽는데,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눈물이 났어요. 집에서 성경을 읽다가 울면서 그때부터 열심히 농아인 교회를 다녔습니다. 세상과 멀어지면서, 사람들과 멀어지면서 저에게 유일하게 남은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과 더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라고 형제님께서는 신앙을 통해 얻은 삶의 변화를 간증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큰 도움을 주었던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요한복음 3장 16절과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에서 18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나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셔서 나를 멸망치 않게 나를 구원해주셨다는 말씀과, 또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에서 18절 말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그것이 하나님이 저에게 향하신, 농맹인 저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는 그 말씀으로 위로를 받고 기쁨으로 살고 있습니다." 라고 형제님께서는 성경 말씀을 통해 얻는 힘을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님이 항상 함께 계시다는 믿음이 있으신 것 같은데요? "아, 그렇군요. 사람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고, 사람의 모습은 볼 수 없지만, 제 마음속에는 예수님을 볼 수 있고,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특별한 귀와 눈을 가지게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세상 소리는 들을 수 없고, 세상의 어떤 모습도 볼 수 없지만, 예수님은 제 안에 항상 함께 계십니다." 라고 형제님께서는 굳건한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찬양 사역자로서 찬양하는 모습도 정말 궁금한데요, 음도 들리지 않으실 텐데 어떻게 찬양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음... 제가 농아인 교회를 다닐 때, 농아인 교회 성가대 모습을 본 적이 있었어요. 소리를 듣지는 못하지만, 그들이 수화로 찬양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기 때문에, 저도 계속해서 점자로 된 찬양을 계속 부르고 있습니다." 라고 형제님께서는 수화 찬양을 통해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어떤 찬양을 제일 좋아하세요? "저는 '항상 기뻐하라' 찬양을 좋아합니다." 라고 형제님께서 밝게 웃으시며 찬양을 시작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할렐루야
이것이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할렐루야
이것이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범사에 감사하라, 할렐루야
할렐루야, 이것이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비록 음정은 정확하지 않을 수 있지만, 진심을 담아 찬양하는 모습은 듣는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찬양 후 진행자님께서는 "우리 태경 형제님은 어떤 음정이 없을지 모르겠지만, 받으시는 하나님께서는 분명 펄펄 뛰는 심장이 아니실까 싶어요. 본인은 고통스럽고 힘들겠지만, 그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찬양을 이렇게 예쁘게 드릴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감동적입니다." 라고 소감을 전했습니다. 어린 시절에 외로움을 많이 느끼셨다고 했는데, 이제는 하나님과의 소통을 통해 외로움을 극복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하나님과의 소통은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네, 기도할 때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리고 나쁜 생각이 떠오르려고 할 때마다 주님의 십자가를 상상하면서 바라보는데, 주님의 십자가가 제 안에 이렇게 들어와 그림처럼 그려져요. 제가 죄를 회개하면 '주님,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하면 그 십자가가 사라져요. 주님이 항상 말씀하세요. ‘어떤 욕이나 어떤 죄가 들어오면 안 돼’ 라고요. 여러 가지 유혹들이 있었지만, 말씀이 제 안에 바뀌어 있어서 ‘거짓말하지 마라, 욕심부리지 마라’ 그 말씀이 주님의 음성처럼 제 안에 들려요." 라고 형제님께서는 하나님과의 깊은 교감을 설명했습니다. 미운 사람이 생길 때도 있을 텐데요? "네, 미운 사람이 생길 때도 있지만, '사랑해야지' 그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라고 형제님께서는 신앙의 힘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음을 밝혔습니다.
촉수어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며 미국에도 다녀오셨다고 들었는데요, 미국에 다녀오시는 긴 비행 시간 동안 기내에서 성경책만 읽으셨다고요? "그렇죠. 비행기 안에서 불이 켜져 있던, 꺼져 있던, 점자로 읽는 것이니까 환경은 상관없어요. 그리고 비행기 안이 좀 추웠어요. 그래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그 안에서 계속해서 성경을 읽었습니다." 라고 형제님께서는 비행기 안에서의 특별한 경험을 이야기했습니다. 미국에 가보니 어떠셨나요? "미국에 가보니 많이 놀랐어요. 미국은 농맹인들을 위한 제도나 시설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농맹인을 위한 진동 신호등도 있었고, 진동 시계도 있었고, 여러 가지 진동으로 알려주는 시설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링컨 대통령 상을 직접 만져볼 수 있었는데, 감동이었습니다." 라고 형제님께서는 미국의 선진적인 장애인 복지 시스템에 감탄했습니다. 미국에 가서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셨다고 하는데요? "보통 청인들은 박수를 치죠. 하지만 농아인들은 박수 소리를 들을 수 없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반짝이는 박수를 치는데, 농맹인들은 박수조차 칠 수 없으니 발을 구릅니다." 라고 형제님께서는 농맹인들의 특별한 박수 문화를 소개했습니다. 미국에서 다른 나라의 농맹인들을 만났을 때 어떤 느낌이 드셨나요? "미국에 가기 전에 국제 수어를 배웠어요. 각 나라마다 수어가 다르지만, 국제 수어를 통해 미국에 있는, 전 세계에 있는 농맹인들을 만나 소통하고 대화하는 게 굉장히 신기하고 기뻤습니다." 라고 형제님께서는 국제 수어를 통한 소통의 기쁨을 이야기했습니다. 국제 수어를 배우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네, 쉽지 않았습니다." 라고 형제님께서 웃으며 답변했습니다.
진정한 선진국은 장애인들을 위한 복지가 잘 갖춰진 나라라고 생각하는데요, 우리나라의 장애인 복지 수준은 아직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특별히 어떤 부분을 개선해야 할까요? "한국 장애인복지법 안에는 시청각장애인이 있기는 하지만, 미국이나 덴마크 다른 선진국과는 달리 장애 유형에 농맹인, 시청각장애인 법이 따로 없거든요. 한국은... 한국은 농맹인에 대한 법이 없습니다. 장애 유형이 없다는 의미는 농맹인들은 찾아갈 곳이 없다는 뜻입니다. 장애 정도가 시각장애인보다, 청각장애인보다 훨씬 더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예를 들어서 제가 시각장애인 협회나 이런 데를 가면, '우리는 너를 도와줄 수 있는 수화 통역을 할 수 없어' 라고 하고, 청각장애인 협회에 가면 '우리는 너를 도와줄 수 있지만, 보행 훈련이나 시각 쪽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라' 라고 합니다. 농맹인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라고 형제님께서는 한국 장애인 복지법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법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법 개정이 정말 시급해 보이는데요? "네, 맞습니다. 꼭 필요합니다." 라고 형제님께서는 단호하게 답변했습니다. 미국에 다녀오신 후, 새로운 도전을 꿈꾸게 되셨다고 들었습니다. 미국 방문 후 마음속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네, 미국에 다녀온 후 제 삶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전에는 매우 소극적이었어요. 누가 해주는 대로 그냥 따라가는 삶을 살았는데, 미국에 갔더니 외국의 농맹인들은 굉장히 적극적으로 자기의 삶을 개척해나가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에 와서 저도 그렇게 적극적으로 살아가려고 많이 바뀌었습니다." 라고 형제님께서는 미국 방문을 통해 얻은 긍정적인 변화를 이야기했습니다. 앞으로 가보고 싶은 곳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네, 미국에 또 가고 싶고, 다른 해외 여러 나라의 농맹인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 소원은 그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저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라고 형제님께서는 앞으로의 꿈을 이야기했습니다. 형제님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저에게 하나님은 저의 목자이십니다. 사실은 들리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 저를 의지할 수 있는 곳이 아무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도, 아무것도 의지할 수 없는데, 하나님만이 나의 유일하신 인도자이십니다." 라고 형제님께서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를 드러냈습니다. 결혼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신가요? "으... 네... 이제 점점 어머니도 연로해 가시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점점 더 혼자가 될 텐데... 솔직히 배우자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갔을 때 헬렌 켈러와 설리번 선생님처럼, 농맹인을 이해하고 도와주고 함께 할 수 있는 설리번 선생님 같은 배우자를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라고 형제님께서는 배우자를 향한 간절한 소망을 이야기했습니다.
방송 제목을 "손으로 보는 형제"라고 정하면 어떨까요? "네, 좋습니다." 라고 형제님께서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현재 활동 지원사가 없으면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라고 들었는데요, 혼자 움직이는 것은 위험할 수 있겠죠? "네, 맞습니다. 시각장애인 같은 경우에는 흰 지팡이를 가지고 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위험을 감지하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전혀 위험을 감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길을 잃어버린 적도 있고, 다칠 뻔한 위험한 상황을 겪은 적도 여러 번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정말 천사를 보내주셔서 누군가 저를 잡아줘서 사고의 위험을 막아준 적이 있습니다." 라고 형제님께서는 활동 지원사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실 때 어떤 마음으로 오셨나요? 오늘 방송에 출연해서 꼭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네, 여러분, 여러분 주위에 분명히 말하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농맹인이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들은 여러분에게 도와달라는 소리도 할 줄 몰라요, 할 수 없어요. 혹시 농맹인을 발견하게 된다면 꼭 연락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도와주세요." 라고 형제님께서는 농맹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도움을 호소했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사람들과 접촉하기가 조심스러운 시기인데요, 기차에서든 길거리에서든 농맹인을 만났을 때 도와주고 싶어도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죠. 저희 모임이 더 위축되는 상황입니다." 라고 수호 통역사님께서 안타까움을 표현했습니다. 정부 차원에서 농맹인들을 위한 지원책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이는데요. 수호 통역사님께서 대표로 정부에 바라는 점을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2019년에 헬렌 켈러 법이 발의되었지만, 아직 통과되지 못했다고 들었습니다. 헬렌 켈러 법은 어떤 법이고,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지, 또 국민들의 의견을 어떻게 수렴할 수 있는지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라고 진행자님께서 질문했습니다. "법이 있는 것과 법이 없는 것의 차이는 천국과 지옥만큼 큽니다. 법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농맹인들의 삶의 질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아까 이태경 씨가 미국에 갔다 와서 미국의 농맹인들은 적극적으로 삶을 개척해나가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미국에는 농맹인들을 위한 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농맹인들에게 필요한 정책들을 법적으로 뒷받침해주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죠. 하지만 한국에 있는 농맹인들은 지금도 집에서 감옥처럼 갇혀 지내고 있습니다. 아무도 찾아와 주는 사람 없이, 만나주는 사람 없이... 지방에도 많은 농맹인들이 고립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농맹인에 대한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라고 수호 통역사님께서 헬렌 켈러 법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30년 동안 농아인 목회를 해오신 정봉길 목사님께서는 농맹인들을 보면서 어떤 마음이 드셨나요? "저는 30년 동안 농아인들을 만나왔는데, 농아인들의 삶도 굉장히 힘들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농맹인들을 만나보니 농아인은 '산'과 같고, 농맹인은 '태산'과 같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농맹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농맹인들을 위해 계획하고 준비하고 계시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오늘 새롭게하소서를 통해 세상에 '농맹인들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정봉길 목사님께서 농맹인들을 향한 깊은 연민과 관심을 표현했습니다.
오늘 방송이 정말 의미 있었고, 새롭게하소서 역사상 가장 보람 있었던 방송 중 하나였다고 생각합니다. "네, 맞습니다." 라고 진행자님께서 동의했습니다. 멀리 부산에서 서울까지 와주신 이태경 형제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수호 통역사님과 아롱영락교회 관계자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진행자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연일 집사님께 소감을 여쭤보았습니다. "아까 형제님께서 농맹인이 되고 나서 오히려 더 감사하다고 말씀하신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진짜 하나님밖에 볼 수 없고, 하나님밖에 바라볼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다는 그 믿음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변에 이렇게 천사 같은 분들과 함께, 또 이렇게 귀한 발걸음을 어렵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 하나님께서 법과 제도, 농맹인을 위한 많은 제도들이 생기도록 인도해주시기를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라고 연일 집사님께서 감동적인 소감을 전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법 규정 실현을 위해 더욱 노력해야겠습니다. 전국에 1만 명이나 되는 농맹인들이 계시는데, 그분들은 집에서 나올 수도 없고, 오늘 제가 옆에서 지켜보니 누구의 도움 없이는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농맹인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야 사회적 관심도 생기고, 도움을 주실 분들도 생길 텐데... 이태경 형제님께서 농맹인들을 위해 앞장서서 활동해주시는 모습이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주님께서 이태경 형제님과 항상 함께 하실 것이라고 믿고 기도하겠습니다." 라고 진행자님께서 격려와 응원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봉길 목사님께서 구약성경 말씀을 인용하며 마무리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마가복음 9장 47절 말씀에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는 이미 두 눈을 잃었고, 세상의 더러운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었으니, 오히려 복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육신의 눈과 귀는 잃었지만, 영적인 눈과 귀는 더욱 밝아졌다고 믿습니다. 농맹인 법 개정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관심입니다. 법을 상정하고 통과시킬 사람들은 결국 국민들의 관심에 귀를 기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방송을 통해 농맹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헬렌 켈러 법이 조속히 통과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태경 형제님께서 앞으로도 농맹인들을 위해 더욱 힘차게 활동해주시기를 응원하며, 하나님께서 오늘 이 방송을 통해 이태경 형제님을 귀하게 사용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오늘 찬양도 너무 감동적이었고,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셨을 것입니다. 특별히 이 귀한 자리에 함께해주신 고행 집사님과 부산에서 먼 길을 와주신 수호 통역사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30년 동안 농아인, 농맹인들을 위해 헌신하신 사모님께도 진심으로 존경과 감사를 표하며, 하나님께서 더욱 크게 쓰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희 모두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서울 줄댄스교회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이태경 형제님, 감사합니다. 수호 통역사님, 감사합니다. 모두 감사합니다." 라고 정봉길 목사님께서는 감동적인 마무리 말씀을 전하며 방송을 마쳤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태경 형제님의 삶을 통해 깊은 감동과 도전을 받았습니다. 눈과 귀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모습,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굳건한 믿음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이태경 형제님의 용기와 희망이 여러분의 마음속에도 깊이 새겨지기를 바라며, 우리 사회가 농맹인들을 향한 따뜻한 관심과 사랑으로 함께 나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새롭게하소서 시청자 여러분, 오늘 방송을 시청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