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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중독에서 기적의 회복, 하용준·한문양 부부의 감동 실화 간증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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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와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인생, 그리고 기적 같은 변화: 하용준, 한문양 부부의 간증 (새롭게하소서)

이번 글에서는 유튜브 채널 "새롭게하소서"에 출연한 하용준 센터장님과 한문양 권사님의 간증을 상세히 정리하고, 그들의 삶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놀라운 변화와 회복의 노하우를 심층적으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마치 느와르 영화보다 더 극적인 하용준 센터장님의 과거, 그리고 그를 변화시킨 아내 한문양 권사님의 헌신적인 사랑과 믿음의 이야기는 깊은 감동과 함께 우리에게 진정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본문에서는 영상 내용을 텍스트로 재구성하여, 두 분의 간증을 더욱 자세하고 생생하게 전달하며, 독자분들이 그들의 경험을 통해 삶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는 데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특히 마약 중독과 어두운 과거를 극복하고 현재는 타인의 치유를 돕는 하용준 센터장님의 이야기는, 절망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변화를 갈망하는 모든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줄 것입니다.

운명적인 만남, 벼랑 끝 인생을 구원하다

이야기는 MC 주영훈 님의 소개로 시작됩니다. 그는 오늘 출연자가 "마약뿐만이 아니라 마치 느와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주 어둡고 좀 지옥 같은 삶을 사셨던 분"이라고 소개하며 기대감을 높입니다. 이어 중국에서 아내 분을 만나 인생이 극적으로 변화되었다는 이야기가 덧붙여지며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드디어 제주 순오름 센터의 하용준 센터장님과 한문 권사님이 스튜디오에 등장합니다. 훤칠한 키의 하용준 센터장님은 193cm의 장신임을 밝혀 놀라움을 자아내고, 밝은 미소의 한문 권사님 역시 한국어 실력이 유창한 중국 분임을 소개합니다. 두 분은 제주도에서 마약의 위험성을 알리는 사역을 하고 있으며, 슬하에 딸도 함께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용준 센터장님은 과거 마약 복용자였지만, 현재는 17년째 단약 중이며, 마약 치유 사역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밝힙니다. 그의 곁에는 단약의 동기이자 계기가 된 아내 한문양 권사님이 함께합니다. 주영훈 님은 두 분의 이야기가 "영화 한 편을 보는 것 같다"며 기대감을 표하고, 본격적으로 하용준 센터장님의 과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몰락의 시작, 마약에 젖어든 어두운 과거

하용준 센터장님은 운동선수, 특히 테니스 선수로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테니스 특기생으로 운동에 전념했으며, 중학교 3학년 때부터 키가 급성장하며 주목받는 선수로 성장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이미 188cm가 넘는 키와 뛰어난 운동 실력으로 장래가 촉망되는 유망주였습니다. 하지만 주목받는 선수 생활은 그에게 "교만"이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선후배 간의 폭력, 이른바 "군기"가 당연시되던 시절, 하용준 센터장님 역시 후배들을 폭행하는 등 잘못된 행동을 일삼았습니다. 심지어 허벅지가 멍들고 피가 맺혀도 부모님이 약을 발라주는 것이 일상이었을 정도로 폭력적인 환경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운동 실력에 대한 자만심과 건방짐은 선배에게 "개겼다"는 이유로 끔찍한 폭력으로 이어졌고, 결국 "소년원에 갈 정도"의 사고를 치게 됩니다. 운동선수로서의 꿈은 좌절되고, 어린 나이에 범죄자가 되는 불행한 상황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소년원 생활 이후, 하용준 센터장님은 운동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시내"를 배회하기 시작합니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이미 키가 크다는 소문이 자자했고, 자연스럽게 시내에서 "논다"는 형들과 어울리게 되었습니다. 운동부 시절부터 싹텄던 일탈의 씨앗이 본격적으로 발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학교 한번 갔다 온 다음부터 눈빛이 세졌다"는 MC의 말처럼, 점점 더 불량스럽고 거친 모습으로 변해갔습니다. 시내 형들과 어울리며 술과 여자를 접하게 되었고, 유흥업소 아가씨들과도 쉽게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 멋있어 보이는 형들의 생활"을 동경하며 점점 더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본드, 노미널 등 환각 물질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더 세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약물 복용량을 늘려가며 위험한 질주를 시작했습니다. 문신 역시 "허세"의 일환으로 시작하여 전신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유흥업소 "관리"를 하며 자연스럽게 마약에 노출됩니다. 선배가 "약"을 구해 유통하는 것을 목격하고, 호기심과 함께 "뽕", 즉 필로폰에 손을 대게 된 것입니다. 그는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하겠다고 했다"고 회상하며, 당시 약물에 대한 경각심이 전혀 없었음을 시사합니다. 본드 등 환각 물질 경험이 있었기에 마약에 대한 두려움 역시 없었습니다. 처음 필로폰을 투약했을 때, 그는 "세상이 끝인 줄 알았다"고 고백합니다. 세상의 모든 근심이 사라지고 극도의 평온함과 행복감에 휩싸였으며,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특히 첫 투약 당시 주사기를 이용해 혈관에 직접 투여하는 방식을 경험하며 강렬한 쾌감을 느꼈고, 이것이 마약 중독의 늪으로 빠져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는 "첫 잔의 쾌감을 잊지 못해 지금까지 다들 마약을 하는 것"이라고 단언하며 마약의 중독성을 경고합니다.

마약 투약 횟수가 늘어나면서 하용준 센터장님은 점점 더 깊은 중독의 수렁에 빠져듭니다. 처음에는 쾌락을 위해 시작했지만, 점차 마약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버립니다. 그는 "마치 영원히 마약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하며, 당시 현실 인식이 완전히 마비되었음을 드러냅니다. 마약 자금 마련을 위해 그는 더욱 범죄에 깊숙이 발을 들입니다. 울산에서 서울로 상경하여 본격적으로 마약 유통에 가담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유통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부산 등지에서 맺었던 인맥을 통해 서울 마약 유통 세계에 쉽게 발을 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서울에 올라오니 마약을 하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알게 되면서, 그들에게 너무 필요한 사람이 되어버렸다"고 회상합니다. 각종 재벌 2세, 유명 인사들이 그에게 마약을 구해달라고 부탁하며 돈을 쥐어주는 상황은 그에게 "너무 좋은 직업"처럼 느껴졌습니다.

당시 마약은 현재처럼 텔레그램 등을 통해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조직적인 "상선"과 연결되어 은밀하게 거래가 이루어졌으며, 하용준 센터장님은 울산, 부산 등지에서 쌓은 인맥을 통해 상선과의 연결 통로를 확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마약 판매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고, 어린 나이에 "영등포역, 서울역 비행 청소년"들과 어울리며 호화로운 생활을 누렸습니다. 그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며 함께 어울렸고, 유흥업소 사장들과 연결되어 "보도방"과 유사한 불법적인 사업을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단란주점, 룸살롱 등을 운영하며 큰 돈을 벌었지만, 그의 삶은 점점 더 깊은 범죄의 늪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그는 "아가씨들 조각"을 통해 손님을 끌어모으고, 아가씨들에게도 마약을 제공하며 더욱 악랄한 방식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결국 마약 혐의로 여섯 번이나 구속되는 등 수감 생활을 반복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약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범죄와 쾌락의 악순환을 끊임없이 반복했습니다.

벼랑 끝 탈출, 중국에서의 만남 그리고 절망

수감 생활을 반복하며 하용준 센터장님은 "한국에서는 더 이상 답이 없다"는 절망감에 휩싸입니다. 경찰의 감시망을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해 그는 중국행을 결심합니다. 중국 역시 마약 범죄에 대한 처벌이 강력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그는 막연하게 중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중국행은 또 다른 절망의 시작이었습니다. 중국에서도 그는 술집, KTV 등에 투자하며 한국에서 하던 불법적인 사업을 그대로 반복했습니다. 중국에서는 "후리베이스", 즉 물뽕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마약을 접하게 됩니다. 필로폰을 물에 희석하여 흡입하는 방식의 물뽕은 다량 투약이 가능했고, 하용준 센터장님은 물뽕과 주사기를 병행하며 더욱 심각한 마약 중독에 빠져듭니다. 중국 생활 1년 만에 그는 "몸이 썩어 문드러지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건강은 극도로 악화되었고, 재정적으로도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조선족 "건달"들에게 돈을 빌려 마약을 투약했지만,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갚지 못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결국 조선족 건달들에게 감금당하는 신세가 됩니다. 여권마저 빼앗긴 채, 그는 꼼짝없이 갇혀 절망적인 나날을 보내게 됩니다.

감금 생활 중, 하용준 센터장님은 자살을 결심합니다.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고, 삶의 의지를 완전히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돈을 갚지 못하는 그를 찾아 조선족 건달들이 들이닥칩니다. 신문지에 싼 회칼을 들고 위협하는 건달들에게 그는 오히려 "시원하겠다. 죽여달라"고 애원합니다. 죽음으로써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순간,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운명적인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조선족 친구의 소개로 공연단 가수였던 한문양 권사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는 "뼈밖에 남지 않은" 앙상한 모습으로, 죽음을 갈망하는 절망적인 상태로 한문양 권사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첫 만남에서 그는 한문양 권사님의 노래 실력에 매료됩니다. 성악을 전공한 그녀의 아름다운 노래는 그의 메마른 감성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첫인상만으로 호감을 느낀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문양 권사님 역시 그를 "외국인"으로만 생각하고, 깊은 관계를 맺을 생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용준 센터장님은 달랐습니다. 그녀에게 연락처를 받았지만, 연락은 쉽지 않았습니다. 전화를 받지 않는 그녀에게 그는 조선족 친구를 통해 연락을 시도했고, 우여곡절 끝에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만남에서 하용준 센터장님은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모두 털어놓습니다. 마약 중독, 범죄, 수감 생활 등 숨기고 싶었던 치욕스러운 과거를 그녀에게 고백한 것입니다. 그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말하지만,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녀에게 의지하고 싶었던 마음, 그리고 진실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충격적인 고백에도 불구하고, 한문양 권사님은 그를 냉정하게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기로 결심합니다. 중국 돈 3만 위안, 당시 한국 돈으로 3백만 원에 가까운 거금을 건네며 한국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합니다. 그녀는 그에게 "여권이 없는지도 몰랐다"고 말하지만, 그의 딱한 처지를 외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돈을 받은 하용준 센터장님은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또 다시 마약을 삽니다. 그녀의 호의를 배신하고, 또 다시 절망의 늪으로 빠져든 것입니다.

폭력과 망상, 사랑으로 감싸 안다

돈을 받은 하용준 센터장님은 또 다시 마약을 투약했고, 극심한 망상에 시달립니다. 환청, 환각에 시달리며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을 "잡으러 온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칼을 들고 3일 밤낮을 아내의 숙소 문 앞에서 지켰습니다. 극도의 불안감과 초조함에 휩싸여 누구도 믿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심지어 아내마저 "공항"으로 여기며 공격성을 드러냅니다. "너도 같은 편이냐"고 다그치며 흉기를 휘두르는 그의 모습은 극도로 위험하고 불안정했습니다. 아내는 그런 그를 "괜찮아, 괜찮아"하며 따뜻하게 안아줍니다. 하지만 그의 망상 속에서 아내의 따뜻한 포옹은 "인정"으로 받아들여졌고, 공격성은 극에 달합니다. 결국 그는 아내의 눈을 찔러 실명시킬 뻔한 끔찍한 폭력을 행사합니다. 현실과 망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마약 중독의 심각한 폐해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끔찍한 폭력 사건에도 불구하고, 한문양 권사님은 하용준 센터장님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그의 폭력적인 행동을 "마약으로 인한 일시적인 증상"으로 이해하고, 그의 내면에 숨겨진 "착한 본성"을 믿었습니다. 그녀는 "평소에는 너무나 잘해주고 착한 사람"이라며, 그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그녀의 긍휼심과 헌신적인 사랑은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굳건했습니다. 그녀는 "건달 부인들이 남편에게 맞아도 아이들에게 잘하는 모습 때문에 참고 산다는 이야기"처럼, 그의 긍정적인 면모를 보며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녀 역시 두려움을 느꼈지만, 그의 "외롭고 슬픈 눈빛"에서 연민을 느꼈고, "착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언젠가 변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폭력 사건 이후, 한문양 권사님은 하용준 센터장님에게 "함께 북경으로 갈 것"을 제안합니다. 상해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자신의 집이 있는 북경으로 함께 가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여권도 없이 불법체류자 신세였던 그에게 북경행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그녀는 그를 포기하지 않고 헌신적으로 보살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녀는 "이 사람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고, 상해에 혼자 두면 100% 죽을 것 같았다"고 말하며, 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북경행을 결심했음을 밝힙니다. 그녀는 "나랑 북경 갈래요? 대신 가면 절대로 마약 손대면 안 된다"고 약속했고, 그는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따라가겠다"고 대답합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녀는 그에게 마지막 희망이 되었던 것입니다. 두 사람은 상해에서 북경까지 28시간이 넘는 기차 여행을 함께 합니다. 말도 통하지 않고 불편한 기차 안에서, 그녀는 묵묵히 그를 보살피고 챙겨줍니다. 기차 안에서 라면을 나눠 먹으며, 두 사람은 말은 통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소통하며 서로에게 정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지옥 같은 금단현상, 헌신적인 사랑으로 이겨내다

북경에 도착한 후, 하용준 센터장님은 한문양 권사님의 집에서 8개월간 머물며 본격적인 "금단현상"과 싸우기 시작합니다. 그녀의 집은 북경의 부유층 아파트였고, 그녀의 언니는 중국 무용을 전공한 재원이었습니다. 유복한 환경에서 곱게 자란 그녀에게, 마약 중독에 폭력적인 하용준 센터장님은 감당하기 어려운 존재였지만, 한문양 권사님은 굳건한 의지로 그를 회복시키기로 결심합니다. 8개월간의 금단현상 기간 동안, 하용준 센터장님은 극심한 고통에 시달립니다. 폭력성은 더욱 심해져 "아파트 통유리를 다 깨버릴 정도"였고, 금단 증상으로 인해 육체적, 정신적으로 극도의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녀의 언니는 당연히 그와의 만남을 반대했고, 심지어 "헤어지라"고 강하게 요구했지만, 한문양 권사님은 그의 곁을 굳건히 지켰습니다.

한문양 권사님은 하용준 센터장님을 헌신적으로 간호하며 금단현상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그녀는 "매일 밤마다 그가 아프고 떨면서 열이 나는 모습"을 지켜봤고, 고층 아파트 창문을 뜯어낼 정도로 난폭해지는 그를 감당해야 했습니다. 병원에 가는 길조차 순탄치 않았습니다. 차 안에서 난동을 부리고, 병원에서도 의사에게 행패를 부리는 그의 모습은 주변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습니다. 외국인이 자국민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상황은 중국에서 매우 심각한 범죄로 간주될 수 있었지만, 그녀는 매번 "그가 아파서 그런다"며 주변 사람들에게 사과하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그녀는 "태어나서 그렇게 많이 사과해 본 적이 없다"고 회상하며, 당시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하용준 센터장님을 "더럽게 보지 않고 불쌍히 여겼으며", 그의 "눈을 보면 마음이 가라앉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끊임없이 그를 격려하고 위로했습니다. 그녀는 그에게 "인내"와 "사랑"을 가르쳤고, 그의 회복을 위해 헌신적으로 기도했습니다. 8개월의 시간이 흐른 어느 날, 한문양 권사님은 임신 사실을 알게 됩니다. 임신은 두 사람에게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하용준 센터장님은 "더 이상 중국에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합니다. 그는 아내에게 "함께 한국에 가자"고 제안했고, 그녀는 "고민도 없이 가겠다"고 대답합니다. 이미 두 사람은 서로에게 깊이 의지하는 관계가 되었던 것입니다.

가족의 반대, 그리고 도피성 귀국

한국행을 결심했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았습니다. 특히 한문양 권사님의 가족, 특히 언니와 부모님의 반대가 거셌습니다. 딸을 가진 부모 입장에서 "마약 중독에 폭력적인 외국인 남자"와의 결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하용준 센터장님은 한국에 "집도 절도 없고, 친척도 없는" 상황이었고, 그녀를 데리고 한국에 간다는 것은 무모한 도박과 같았습니다. 가족들은 "헤어지라"며 강하게 반대했고, 심지어 그녀의 카드를 빼앗는 등 극렬하게 저항했습니다. 하지만 한문양 권사님은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끝까지 가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고, 결국 어머니 몰래 받은 금목걸이를 팔아 비행기 표를 마련합니다. 단돈 8만원만 남은 채, 두 사람은 도피하듯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습니다. 가족들의 축복은커녕, 반대와 냉대 속에서 시작된 불안한 귀국길이었습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하용준 센터장님은 법무부 팀에 의해 체포됩니다. 한국으로 돌아오면 구속될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는 한국행을 감행했습니다. 그에게는 아내와 뱃속의 아이, 그리고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100% 나 때문에 와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거기서 바로 수갑을 찼다"고 회상합니다. 구속될 것을 각오하고 한국행을 택한 그의 용기는 감탄을 자아냅니다. 재판 결과, 그는 벌금형을 선고받고 풀려납니다. 생각보다 가벼운 처벌이었지만, 여전히 불안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서울에 정착할 기반이 없었던 두 사람은 하용준 센터장님의 부모님이 계신 제주도로 향합니다. 연세 70만원의 낡은 집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하며, 험난하지만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신앙의 씨앗, 그리고 기적적인 응답

제주도에서의 삶은 쉽지 않았지만, 그들에게는 새로운 희망이 싹트고 있었습니다. 바로 "신앙"이라는 빛이 그들의 삶에 드리워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용준 센터장님의 작은아버지, 즉 시아버님의 형님이 목사님이었고, 시어머니는 권유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낯선 환경, 어려운 생활 속에서 교회는 그들에게 위로와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심심해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지만, 처음에는 "재미없다"고 느꼈습니다. 특히 한국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한문양 권사님에게는 더욱 그랬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목사님이 부임하면서 교회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합니다. 새로 부임한 젊은 목사님은 그들에게 따뜻하게 다가갔고, 진심으로 대해주었습니다. 목사님과의 만남은 하용준 센터장님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새로운 목사님은 하용준 센터장님의 어두운 과거를 알고 있었지만, 그를 비난하거나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의 고통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목사님은 그의 과거를 "멋있는 경험"이라고 칭찬하며,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교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격려했습니다. "너 너무 멋지다. 지금 잘 이겨내고 교회에 가자"는 목사님의 따뜻한 말 한마디는 그의 닫힌 마음을 열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헤아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고, 다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교회 성도들은 그들을 따뜻하게 환영했고, 끊임없이 찾아와 식사를 함께하고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교인들의 진심 어린 사랑과 관심은 그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고, 교회에 대한 마음을 열게 했습니다. 특히 한문양 권사님은 "교회가 와이프와 딸에게 선한 것을 가르쳐주는 곳"이라고 생각하며, 교회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교회 생활 중, 하용준 센터장님 부부에게 잊을 수 없는 "기적적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담임 목사님은 교인들에게 "기도 항아리"에 기도 제목을 적어 넣으면 새벽기도 때 기도해주겠다는 제안을 합니다. 평소 기도와는 거리가 멀었던 하용준 센터장님 부부는 호기심에 기도 제목을 적어보기로 합니다. 두 사람은 교회 본당에 올라가, 각자 한국어와 중국어로 기도 제목을 적습니다. 하용준 센터장님은 네 가지 기도 제목을 적었습니다. 첫째, 과거에 만났던 나쁜 사람들 말고 "좋은 사람들, 즉 크리스천들을 만나게 해달라"는 기도, 둘째, "결혼식을 올리고 살게 해달라"는 기도, 셋째, "부모님을 한국에 모셔와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게 해달라"는 기도, 마지막으로 "딸의 우유값을 벌 수 있는 직장을 구해달라"는 기도였습니다. 기도 제목을 적어 기도 항아리에 넣은 후, 놀라운 일들이 연이어 벌어집니다.

기도 후 한 달쯤 지났을 때, 교회 장로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옵니다. 시청에서 주관하는 "결혼식"에 참여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었습니다. 하용준 센터장님은 처음에는 "다문화 가정 합동결혼식"으로 오해하고 "창피하다"며 거절했지만, 아내의 설득으로 다시 장로님께 연락하여 참여 의사를 밝힙니다. 다음 날, 장로님으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랍니다. 결혼식은 다름 아닌 "새연교" 개통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단독 결혼식"이었던 것입니다. 서귀포의 명소인 새연교 개통식에 맞춰, 그들의 결혼식을 화려하게 치러주기로 시에서 결정한 것입니다. 결혼식에는 시장님을 비롯해 5천명이 넘는 하객이 참석했고, 제주도 관광버스까지 동원되는 성대한 행사로 진행되었습니다. 기도 제목이 "완벽하게 응답"된 것입니다.

결혼식 준비 과정에서 또 다른 기적이 일어납니다. "신부 부모님이 없으면 안 된다"는 주위의 권유에 따라, 시청에서 한문양 권사님의 중국 부모님을 한국으로 초청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항공료, 숙박비 등 모든 비용을 시에서 부담하여 부모님을 한국으로 모셔왔고, 심지어 "신라호텔"에서 한 달 넘게 머물도록 배려했습니다. 그토록 반대했던 장모님, 장인어른은 한국에 와서 극진한 환대를 받았고, 딸 부부의 행복한 모습을 직접 확인하게 됩니다. 결혼식 후, 하용준 센터장님은 교회 아동센터에서 "테니스 강사"로 일하게 됩니다. 자격증도 없는 그에게 교회는 일자리를 제공했고, 안정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도 제목이었던 "직장" 문제까지 해결된 것입니다. 네 가지 기도 제목이 "한꺼번에" 응답되는 놀라운 경험을 통해, 하용준 센터장님 부부는 신앙의 깊이를 더하게 됩니다.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을 부인할 수 없었다"고 고백합니다.

끝나지 않은 싸움, 그리고 은혜

기적적인 응답을 경험했지만, 하용준 센터장님의 삶은 여전히 순탄치 않았습니다. "은혜를 받았다고 10살짜리 아이처럼 순수하게 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담배를 끊지 못했고, 여전히 마약에 대한 갈망이 남아있었습니다. 딸이 태어났지만, 딸 때문에 단약을 결심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약 갈망이 솟아오르는 순간 딸과 아내마저 "없었으면 좋겠다"는 극단적인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했습니다. 서울에 가서 마약을 구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기소중지" 상태로 제주도에 묶어둠으로써, 그가 마약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보호하셨습니다. 제주도에서는 마약을 구하기 어려웠고, 그는 갈망과 금단 증상으로 인한 고통을 홀로 감내해야 했습니다. 욕설과 폭력성이 다시 나타났고, 아내를 힘들게 했습니다. 특히 한국어를 잘 못하는 아내는 그의 분노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한국 여자가 아닌 중국인 아내를 만난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고백합니다. 만약 아내가 한국인이었다면, 그의 폭력성을 견디지 못하고 떠났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교회 생활을 통해 하용준 센터장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말씀"을 접하며 점차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특히 마태복음 6장 1절 말씀을 통해 "네 눈의 들보를 보라"는 메시지를 깨닫고, 자신의 죄를 직시하며 회개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주사기, 물" 등 마약 관련 이미지만 봐도 갈망이 솟아오르는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말씀과 기도, 그리고 아내의 사랑으로 조금씩 극복해 나갔습니다. 그는 "마약 중독은 끊는 것이 아니라, 예수 안에 있으면 잊혀지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교회 생활에 푹 빠져 찬양대 활동, 성극 연습, 새벽기도 등 적극적으로 신앙생활에 참여하며, 마약에 대한 갈망을 잊어갔습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교회 앞에서 밤을 새울 정도로 교회에 대한 애착이 강해졌고,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삶의 방향을 완전히 전환했습니다.

한문양 권사님 역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남편의 폭력성, 금단현상, 경제적인 어려움 등 감당하기 힘든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다"고 고백합니다. "왜 하필 이런 남편을 주셨냐"며 절망했지만, 아이가 있었기에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남편의 "착한 모습"을 믿었고, "착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언젠가 변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다시 시간을 돌린다면 못 견딜 것 같다"고 말하지만, 당시에는 "견뎌야만 했다"고 회상합니다. 어느 날, 그녀는 기도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녀에게 "네 남편이 얼마나 힘들게 금단현상을 이겨냈는지, 왜 그토록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뎌냈는지"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녀는 비로소 남편의 고통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었고, 그동안 남편을 원망했던 자신을 깊이 반성합니다. 그녀는 "하나님이 왜 남편을 살려놓으셨는지, 더 많은 아픈 영혼들을 살리기 위해 남편을 사용하시려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고, 남편에 대한 깊은 감사와 존경심을 느끼게 됩니다. 그녀는 남편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마음속 깊이 남편에게 감사하고, 그의 헌신적인 삶을 응원합니다. 놀랍게도, 하용준 센터장님은 단약 후 "17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마약에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마약 중독을 완전히 극복했다"고 확신합니다.

순오름 치유센터, 사랑으로 빚어가는 희망

현재 하용준 센터장님은 제주 순오름 치유센터를 운영하며, 마약 중독으로 고통받는 젊은이들의 치유를 돕고 있습니다. 센터는 펜션 두 동을 개조하여 운영되고 있으며,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서 치유와 회복을 위한 프로그램이 진행됩니다. 센터에는 20대 초반부터 후반까지의 젊은 청년 8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하용준 센터장님은 과거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진심으로 그들을 이해하고 돕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는 "재활센터를 하고 싶다"는 마음을 아내에게 이야기했고, 아내는 "해도 된다"며 흔쾌히 허락했다고 합니다. 펜션 사업이 잘 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남편의 뜻을 존중하고 지지했습니다. 하용준 센터장님은 "하나님이 거저 주셨으니, 센터를 거저 내놓겠다"는 마음으로 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펜션 운영을 통해 얻은 수익을 센터 운영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문양 권사님 역시 리조트에서 중국인 VIP 고객을 관리하는 일을 하며 센터 운영을 돕고 있습니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피자라도 한 번 더 사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순오름 치유센터는 단순한 재활 시설이 아닌, "사랑"과 "믿음"으로 운영되는 공동체입니다. 하용준 센터장님은 센터에 입소한 청년들에게 "약물 중독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중독되라"고 강조하며, 말씀과 기도, 찬양, 큐티 등을 통해 영적인 치유를 돕고 있습니다. 센터 생활은 엄격하기보다는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함께 노래방에 가고, 볼링을 치고, 산책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하용준 센터장님은 "아이들이 처음 센터에 왔을 때는 외롭고 아픈 모습이었지만, 점점 밝고 건강하게 변화되는 모습"을 보며 큰 보람을 느낀다고 합니다. 센터 출신 청년들은 부모님께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다"는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하용준 센터장님께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합니다. 하용준 센터장님은 "아이들이 변화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며, 앞으로도 센터를 통해 더 많은 젊은이들을 치유하고 돕고 싶다는 소망을 밝힙니다.

하용준 센터장님은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 "마약 중독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을 강조합니다. 그는 "예수님이 거라사 광인을 만나러 오셨던 것처럼, 우리 사회도 중독자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길 바란다"고 호소합니다. 현재 한국 사회는 마약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낙인찍고 배척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중독자들의 재활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그는 "센터에 있는 청년들이 교회에 가도 교인들이 두려워하고,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낄까봐 걱정된다"며 안타까워합니다. 그는 "자신은 중독자들을 회복시킬 능력이 없고,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며, "교회와 사회가 중독자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합니다. 그는 "재활시설에 대한 국가적인 지원이 전무하다"는 현실을 지적하며, 사회적 관심과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재활 사역을 위해 기도하고 헌신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상황입니다. 하용준 센터장님은 "만 원씩이라도 후원해주시는 분들의 작은 정성이 큰 힘이 된다"며, 지속적인 관심과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희망의 메시지, 그리고 함께 만들어갈 미래

하용준 센터장님과 한문양 권사님의 간증은 단순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닌,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숭고한 헌신"이 만들어낸 "기적"과 같습니다. 절망과 어둠 속에서 헤매던 한 남자를 구원하고, 새로운 삶을 선물한 아내의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을 통해 변화된 삶을 통해 타인을 치유하는 하용준 센터장님의 헌신은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함께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MC 박지선 님은 "너무 재밌어서 웃다가 울다가 했다"며 감탄하고, MC 안수지 님은 "두 분의 로맨스가 아니라, 하나님이 마약에 중독된 우리의 영혼들을 생각하신 로맨스"라고 표현하며 감동을 전합니다. 박현 목사님은 "내 딸이 권사님처럼 된다면 허락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하나님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는 "두 분의 삶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며,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이 두 사람의 삶 속에 녹아있다고 극찬합니다. 마지막으로 박현 목사님은 "두 분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겠다"고 약속하며, 간증을 마무리합니다.

하용준 센터장님과 한문양 권사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1. 절망 속에서도 희망은 있다: 아무리 어두운 과거와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있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변화를 갈망하면 반드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2. 사랑은 모든 것을 치유한다: 한문양 권사님의 헌신적인 사랑은 하용준 센터장님의 깊은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었습니다. 사랑은 인간을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

  3. 신앙은 삶의 원동력이다: 하용준 센터장님 부부는 신앙을 통해 삶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의 의미와 목적을 발견했습니다. 신앙은 우리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어려움을 이겨낼 힘을 줍니다.

  4. 사회적 관심과 지지가 필요하다: 마약 중독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의 문제입니다. 중독자들을 향한 따뜻한 관심과 지지, 그리고 사회적 안전망 구축이 절실합니다.

하용준 센터장님과 한문양 권사님의 삶은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함께 숙제를 남깁니다. 우리 사회는 마약 문제에 대해 더욱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하며, 중독자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헌신적인 사랑이 필요합니다. 두 분의 이야기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우리 사회가 마약 문제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중독자들의 재활을 위해 더욱 노력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글을 통해 하용준 센터장님과 한문양 권사님의 숭고한 헌신에 깊은 존경과 감사를 표하며, 순오름 치유센터의 사역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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