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의료 선교 18년, 김성녀 선교사 사역과 교회 개척 노하우
## 캄보디아 18년 의료 선교, 10개 교회…최선을 다하니 하나님이 이루셨네!
“최선을 다할 뿐, 일을 이루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 - 김성녀 캄보디아 의료 선교사 상세 내용 정리 및 노하우 소개
이번 글에서는 유튜브 채널 "새롭게하소서"에 출연하신 김성녀 캄보디아 의료 선교사님의 간증 내용을 상세하게 정리하고, 그분의 삶과 사역 속에 담긴 핵심 노하우를 심층적으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김성녀 선교사님의 이야기는 단순한 간증을 넘어, 험난한 환경 속에서 묵묵히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한 여성의 용기와 헌신, 그리고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의료 선교라는 특별한 분야에서 18년간 캄보디아를 섬기며 10개의 교회를 개척하신 김성녀 선교사님의 이야기는 깊은 감동과 함께, 우리 삶의 방향과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귀한 메시지를 전달해 줄 것입니다.
1. 김성녀 선교사님의 어린 시절과 이름에 담긴 특별한 의미
김성녀 선교사님의 이름 "성녀"는 어머니가 다니시던 교회 목사님께서 직접 지어주신 이름이라고 합니다. 어머니가 한경진 목사님이 시무하시던 교회를 다니셨는데, 목사님께서 김성녀 선교사님을 보시고 "거룩한 여자"라는 뜻으로 "성녀"라는 이름을 지어주셨다고 합니다. 본인은 커서야 그 이름의 뜻을 알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름 자체가 마치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하심을 예견하는 듯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부모님이 독실한 크리스천은 아니셨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불교 집안이었고, 집에는 스님이 방문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성녀"라는 거룩한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은 더욱 아이러니하면서도 하나님의 섭리를 느끼게 합니다.
김성녀 선교사님에게는 특별한 가족사가 있습니다. 낳아주신 어머니와 길러주신 어머니, 두 분의 어머니가 계셨던 것입니다. 당시 아버지께서는 본부인과의 사이에서 아들이 있었지만, 아들이 중학교 때 사고로 사망하는 아픔을 겪으셨습니다. 대를 잇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아버지는 둘째 부인을 맞아 김성녀 선교사님을 낳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2년 후 아들을 얻으신 후, 김성녀 선교사님은 동생과 함께 길러주신 어머니의 손에서 자라게 되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출생에 대한 복잡한 가정사로 인해 원망이나 상처를 가질 수 있지만, 김성녀 선교사님은 두 분의 어머니를 모두 존경한다고 고백합니다. 낳아주신 어머니와 길러주신 어머니 모두 아름답고 착하고 총명하신 분들이셨으며, 특히 아이를 낳고 키우지 못하는 어머니의 아픔, 그리고 남의 아이를 친자식처럼 길러야 했던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며 오히려 두 분을 존경하는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이는 쉽지 않은 가정 환경 속에서도 긍정적인 심성을 키워온 김성녀 선교사님의 인품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김성녀 선교사님은 생모와 늦게 재회했지만, 모스크바 유학으로 인해 살가운 모녀 관계를 맺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한국에 잠시 나올 때만 인사를 드리는 정도의 관계였지만, 어머니는 늘 딸을 위해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특히,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안식년으로 한국에 와 있던 김성녀 선교사님을 찾아와 김치를 싸주시며 뜨겁게 기도해주셨던 일화는 감동적입니다. 마치 마지막을 예감하신 듯, 어머니는 김성녀 선교사님을 힘껏 안아주시며 간절히 기도하셨고, 카페에서도 손을 꼭 잡고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임종 직전 언니에게 "성녀는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귀한 하나님의 딸"이라는 유언을 남기셨다고 합니다. 자신의 보잘것없는 태를 통해 귀한 딸을 주셔서 감사하다는 어머니의 유언은 김성녀 선교사님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어머니의 기도는 캄보디아에서 의료 선교사로 헌신하는 딸의 삶을 통해 현실이 되었고, 이는 부모의 기도가 자녀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감동적인 사례입니다.
2. 모스크바 유학, 그리고 남편과의 만남과 결혼
김성녀 선교사님은 SK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돈을 모아 모스크바 유학길에 오릅니다. 남들이 공부를 먼저 하고 일을 하는 것과는 순서가 바뀌었지만, 일을 통해 돈을 모아 유학을 가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졌다고 합니다. 모스크바, 특히 러시아는 당시 한국인들에게는 낯선 미지의 세계였기에,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곳에 대한 호기심과 도전 의식이 발동했다고 합니다. 청년 시절부터 선교사의 꿈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다는 비전을 품고 있었고, 20대에 선교 훈련을 받고 단기 선교를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선교를 위한 상담 자격증을 취득하는 등 꾸준히 준비해왔고, 러시아라는 나라와 그 영혼에 대한 궁금증이 유학을 결심하게 된 중요한 이유였습니다. 단순히 공부 목적이 아닌, 하나님의 일을 위한 준비 과정으로 유학을 선택한 것입니다.
모스크바 유학길에서 김성녀 선교사님은 남편 정몽길 선교사님을 만나게 됩니다. 같은 유학원을 통해 함께 러시아로 가게 되었고, 언어 공부를 함께 하면서 자연스럽게 연인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키도 크고 똑똑한 매력적인 사람이었지만, 당시에는 신앙적으로 방황하는 아들이었습니다. 중학교 때 신앙생활을 했지만 대학교 때 사회 운동을 하면서 하나님을 떠나 술을 즐겨 마시고 교회도 다니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었던 김성녀 선교사님에게 신앙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고, 처음에는 남편을 배우자감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남편의 적극적인 구애와 진심에 마음이 흔들렸고, 결국 사랑에 빠져 결혼을 결심하게 됩니다.
결혼을 앞두고 김성녀 선교사님은 남편에게 두 가지 조건을 제시합니다. 첫째는 함께 치과 공부를 할 것, 둘째는 함께 하나님을 믿을 것입니다. 본인은 예체능 계열이었고, 수학이나 과학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치과의사가 되어 선교 활동을 하고 싶다는 비전이 있었습니다. 남편은 치과대학 출신이었기에, 함께 공부하자는 제안은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선교의 꿈을 이루기 위한 중요한 발걸음이었습니다. 남편 역시 아내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함께 치과 공부를 시작하며 신앙을 회복하기로 약속합니다. 서로의 조건을 받아들이는 딜을 통해 두 사람은 하나가 되기로 결심했고, 이는 단순한 연애 감정을 넘어선,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 됨을 추구하는 결혼의 시작을 의미했습니다.
모스크바에서의 유학 생활은 쉽지 않았습니다. 낯선 러시아 땅에서 어려운 의대 공부를 해야 했고, 두 아이까지 출산하며 육아와 학업을 병행해야 했습니다. 러시아어와 라틴어로 된 의학 용어, 특히 화학 과목은 김성녀 선교사님에게 큰 어려움이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인의 자존심을 걸고 악착같이 공부했고, 결국 우수한 성적으로 의대를 졸업합니다. 남편 역시 술을 끊고 신앙생활에 전념하기 시작했지만, 술에 대한 유혹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술을 끊기로 약속했지만, 친구들과의 만남이나 추운 날씨 탓에 술을 마시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술 문제로 갈등을 겪던 중,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술에 취한 남편이 아기 솔빈이를 깔고 눕는 아찔한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남편은 술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진심으로 금주를 결심하게 됩니다. 딸에게 술 마시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간절한 마음이 금주를 위한 강력한 동기가 된 것입니다. 남편은 금주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고, 기도 중에 방언을 체험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성향의 남편에게 방언 체험은 큰 충격이었고, 비로소 성령의 은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방언 체험 이후, 남편은 술 냄새조차 맡기 싫어할 정도로 완전히 변화되었고, 술 문제를 완전히 극복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인간의 의지만으로는 끊을 수 없는 술 문제를 하나님의 은혜와 딸에 대한 사랑으로 극복한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3. 캄보디아 의료 선교사 헌신, 그리고 18년간의 사역
모스크바 의대를 졸업하고 치과의사가 된 후, 안정적인 삶이 보장되었지만, 김성녀 선교사님 부부는 애초에 품었던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는 비전을 잊지 않았습니다. 치과의사가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고,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기를 원했습니다. 당시 사회주의 국가였던 베트남에 먼저 간 남편은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궁금증과 모스크바 의사 면허로 일하기 용이한 환경을 고려하여 베트남을 선택했습니다. 베트남에서 남편이 자리를 잡은 후, 김성녀 선교사님도 베트남으로 건너가 의료 선교 사역을 시작합니다. 베트남에서 다른 선교사님과 함께 시골 진료 봉사를 다니던 중, 캄보디아에서 진료 요청이 들어왔고, 설날을 맞아 캄보디아 빈민촌에서 첫 진료 봉사를 시작합니다. 두 차례의 캄보디아 진료 봉사를 통해 김성녀 선교사님은 캄보디아에 대한 깊은 인상을 받게 되고, 마음속에 캄보디아를 향한 뜨거운 열정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한국 병원에서 페이닥터로 일할 자리가 이미 예정되어 있었지만, 돈을 벌기 위해 사는 삶에 대한 답답함을 느꼈고, 캄보디아를 위한 40일 작정기도를 시작합니다. 40일 작정기도를 통해 부부는 캄보디아 의료 선교사로 헌신하라는 동일한 응답을 받게 됩니다. 놀랍게도 캄보디아에 의료 선교사를 보내달라고 기도하던 교회를 만나게 되었고, 교회의 후원을 받아 캄보디아 의료 선교사로 파송됩니다. 당시 한국인 치과의사로서는 캄보디아에 처음 발을 디딘 것이라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섬세한 섭리와 완벽한 타이밍 속에서 이루어진 선교 헌신임을 보여줍니다.
캄보디아에 도착 후, 김성녀 선교사님은 의료 사역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전략을 택합니다. 일반적인 목회자 선교와는 달리, 치과 진료라는 전문성을 활용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열고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했습니다. 치통으로 고통받는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무료 진료를 제공하며 신뢰를 쌓았고, 한 마을을 꾸준히 방문하여 지속적인 관계를 맺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진료 봉사팀을 "괜찮은 사람들"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마음을 열고 복음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진료 봉사 현장에서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생기면 제자 양육을 시작했습니다. 제자 양육을 통해 성도가 늘어나면 교회를 건축하고, 교회 안에서 리더십을 세워 신학 공부를 지원하며 현지인 사역자를 양성했습니다. 현지인 사역자가 세워지면 점차 선교사의 영향력을 줄이고, 자립적인 교회로 성장하도록 돕는 방식으로 사역을 진행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며 18년 동안 캄보디아에서 10개의 교회를 개척하는 놀라운 열매를 맺었습니다. 이는 의료 선교라는 전문성을 활용하여 복음 전파와 교회 개척을 효과적으로 이루어낸 성공적인 사례입니다.
오랜 시간 함께 사역해 온 남편 정몽길 선교사님과의 사역 방향에 대한 갈등도 있었습니다. 남편은 환자 진료에 집중하는 반면, 김성녀 선교사님은 복음 전파와 제자 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한국적인 상황에서는 남편의 주장이 일리가 있지만, 캄보디아 시골 마을에서는 예수님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복음을 먼저 전하고 제자 훈련을 통해 양육하는 것이 필수적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남편도 복음 전파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고, 사역 방향에 대한 의견 차이를 좁히고 함께 복음 사역에 매진하게 되었습니다. 초창기에는 언어 장벽으로 인해 유치원생 수준의 복음을 전할 수밖에 없었지만,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놀라웠습니다. 서툰 언어와 부족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택하신 영혼들을 구원하시고 변화시키셨습니다. 김성녀 선교사님은 복음은 언어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달려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오랜 시간 동안 헌신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하는 교회와 사람들을 보면서, 사역의 열매가 인간의 노력에 비례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인간의 수고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 있으며, 선교사는 다만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통로일 뿐임을 고백합니다. 이는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선교사의 자세를 보여주는 중요한 깨달음입니다.
4. 어머니의 예언과 앞으로의 계획
돌아가신 어머니는 김성녀 선교사님을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선교사"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어린 시절의 김성녀와 현재 캄보디아에서 사역하는 김성녀 선교사님의 삶을 비교해 볼 때, 어머니의 예언은 현실이 된 것처럼 보입니다. 김성녀 선교사님 스스로도 자신을 "기적의 여인"이라고 칭하며, 자신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자신을 통해 나타나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이 선택하고 사랑하고 동행하는 자에게는 구구단을 늦게 깨우친 아이도 의사가 될 수 있고, 선교사가 될 수 있다는 간증은 깊은 울림을 줍니다. 만약 돈만 쫓는 치과의사로 살았다면, 좁은 세상만 보고 살았겠지만, 하나님은 김성녀 선교사님을 통해 넓은 세상을 보게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개인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섭리를 이루시는 것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김성녀 선교사님은 나이가 들어 더 이상 활동하기 어려워져도, 캄보디아 현지인들이 스스로 사역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합니다. 치과 의료 학생들을 양성하여 자발적인 봉사 활동을 이어나가도록 지원하고, 치과 의료 센터를 설립하여 지속적인 의료 봉사가 이루어지도록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캄보디아 여성들의 노년 우울증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행복한 노년을 위한 강의와 상담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제공하고 싶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캄보디아를 향한 변함없는 사랑과 헌신, 그리고 현지인 중심의 사역을 추구하는 김성녀 선교사님의 모습은 진정한 선교사의 모범을 보여줍니다. 캄보디아가 덥고 힘들지만, 캄보디아 사람들이 좋고, 한국처럼 다양한 기회가 있는 캄보디아를 사랑하며, 은퇴 후에도 캄보디아에서 살고 싶다는 김성녀 선교사님의 고백은 깊은 감동을 줍니다.
5. 핵심 노하우 정리: 김성녀 선교사님의 삶과 사역에서 배우는 점
김성녀 선교사님의 간증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핵심 노하우를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순종: 김성녀 선교사님은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고, 캄보디아 의료 선교사로 헌신하라는 부르심에 순종했습니다. 안정적인 삶을 포기하고 낯선 땅에서 의료 선교사의 길을 선택한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순종은 놀라운 열매로 이어졌습니다. 우리 삶 속에서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분별하고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줍니다.
전문성을 활용한 선교 전략: 김성녀 선교사님은 치과의사라는 전문성을 활용하여 의료 선교 사역을 효과적으로 펼쳤습니다. 의료 봉사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열고 복음을 전하는 전략은 캄보디아와 같은 의료 환경이 열악한 지역에서 매우 효과적인 선교 방법입니다. 자신의 재능과 전문성을 활용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현지인 중심의 사역: 김성녀 선교사님은 18년간 캄보디아에서 사역하면서 10개의 교회를 개척했지만,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기보다 현지인 리더십을 세우고 자립적인 교회로 성장하도록 돕는 데 집중했습니다. 선교 사역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고, 현지인 스스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이끌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현지인 중심 사역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인내와 헌신: 낯선 땅에서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극복하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18년간 묵묵히 사역을 감당해 온 김성녀 선교사님의 인내와 헌신은 감동적입니다. 사역의 열매가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낙심하지 않고, 꾸준히 복음을 전하고 섬기는 자세는 모든 선교사에게 귀감이 됩니다.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헌신하는 믿음의 중요성을 깨닫게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 인정: 김성녀 선교사님은 사역의 열매가 인간의 노력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 있음을 강조합니다. 자신은 다만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도구일 뿐이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겸손하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사역하는 자세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덕목입니다.
결론적으로 김성녀 선교사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도전을 줍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헌신, 전문성을 활용한 효과적인 선교 전략, 현지인 중심의 사역, 인내와 헌신,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겸손한 자세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귀한 가치들입니다. 김성녀 선교사님의 삶과 사역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하심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우리 삶의 방향과 가치를 재정립하는 소중한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 글을 통해 많은 분들이 김성녀 선교사님의 간증을 깊이 묵상하고, 각자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용기를 얻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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