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학교폭력 트라우마, 기도와 상담으로 치유한 이야기
새 제목: 13년 멈추지 않은 학교 폭력의 악몽, 기도로 찾은 희망과 치유
학교 폭력, 더 이상 참지 마세요: 끝나지 않는 고통 속에서 희망을 찾다
안녕하세요, 오늘 여러분과 함께 학교 폭력이라는 어둡고 무거운 주제에 대해 깊이 이야기 나눠볼 박주안 전도사입니다. 행복해야 할 학창 시절, 학교 폭력으로 인해 고통받는 학생들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특히 오늘 만나볼 분은 중학교 시절 끔찍한 학교 폭력을 경험했고, 그 상처가 성인이 된 후에도 오랫동안 지속되었다고 합니다. 과연 그분은 어떻게 이 고통을 이겨내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을까요? 함께 그 이야기를 들어보시면서, 현재 혹은 과거의 학교 폭력 피해로 힘들어하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와 희망을 전달해 드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3년 전, 중학교 3학년의 악몽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중학교 3학년 때 겪었던 학교 폭력은 아직도 제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 당시의 아픈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것이 저에게는 여전히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이 자리에 용기를 내어 출연하게 된 이유는, 그때의 약함이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제 간증을 통해 현재 학교 폭력으로 고통받는 학생들, 그리고 과거의 상처로 힘겨워하는 모든 분들에게 작은 위로라도 전해드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습니다. 부디 제 이야기가 여러분께 조금이나마 희망의 빛을 선사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학교 폭력은 중학교 3학년 5월부터 시작되어 약 8개월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활발하고 운동 좋아하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즐거운 학교생활을 했습니다. 문제는 그 무리 안에 리더 격인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와 제 여동생이 잠시 교제하다가 헤어지게 되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헤어진 이유는 그 친구의 정서나 성향이 순수했던 제 동생에게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요, 그 친구는 헤어진 후에도 제 동생을 다시 만나고 싶어했고, 저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친구의 성향을 잘 알고 있었기에, 동생을 위해 그 요청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부터 모든 것이 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제 요청을 거절당한 친구는 분노와 미움을 느꼈고, 그 감정은 고스란히 저에게 향했습니다. 그때부터였을까요, 이전에는 함께 웃고 떠들던 친구들의 눈빛이 차갑게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하굣길, 한 친구가 저를 불렀고, 따라갔더니 텅 빈 교실에 그 리더를 포함한 무리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직감했습니다. 아, 이제부터 끔찍한 일이 벌어지겠구나. 제가 느꼈던 불안과 두려움은 현실이 되었고, 그날 이후로 저에게는 끔찍한 학교 폭력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끔찍했던 그 순간을, 저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멈추지 않았던 폭력, 깊어지는 고통
폭력은 정말 끔찍했습니다. 얼굴을 제외한 온몸이 폭행의 대상이 되었고, 상처는 낫지 않고 계속 덧나기만 했습니다. 온몸에 멍이 들고 붓기가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육체적인 고통은 물론이었지만, 더욱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수치심과 무력감이었습니다. 폭력을 당하는 사실을 부모님께 말씀드리면 되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에는 그럴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부모님께 짐이 되는 것 같았고, 사랑하는 가족에게 상처를 드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혹시라도 신고를 했다가 가해 학생들이 보복이라도 할까 봐, 동생에게 해코지라도 할까 봐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그렇게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혼자 끙끙 앓는 사이, 제 정신과 육체는 점점 피폐해져 갔습니다. 어느 날은 견디다 못해 상가 건물 옥상에 올라갔습니다. 그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문득 더 높은 아파트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때 저는 정말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습니다. 다행히 상가 건물 주인이 저를 발견하고 제지했지만, 오히려 저는 "왜 분위기를 깨냐, 빨리 끝내야 하는데"라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 정도로 당시 제 정신은 피폐해져 있었던 것입니다. 정말이지, 그때는 누가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폭력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얼굴을 제외한 온몸을 무자비하게 폭행했고, 특히 가슴과 배를 집중적으로 가격했습니다. 하체는 늘 피멍으로 뒤덮여 걷는 것조차 힘들 정도였습니다. 집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공포였고, 가해 학생들을 마주칠까 봐 늘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학교 주변은 물론이고, 동네에서도 고개를 숙이고 그림자처럼 숨어 다녔습니다. 저는 완전히 패배자, 도망자처럼 느껴졌습니다. 육체적인 고통보다 더 괴로웠던 것은 바로 수치심이었습니다. 다른 친구들 앞에서 폭력을 당하는 것은 정말 끔찍한 일이고, 자존감은 바닥까지 추락했습니다.
폭력 이전의 저는 밝고 활발한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폭력 이후, 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과연 가치 있는 사람일까?", "차라리 빨리 죽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자살에 대한 어두운 그림자가 저를 덮쳤고, 몸과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망가져 갔습니다. 손발은 늘 차가웠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습니다. 판단력은 흐려지고, 매사에 의욕을 잃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 보내면서도, 부모님께는 차마 입을 열 수 없었습니다. 혹시라도 부모님이 걱정하실까 봐, 저는 철저하게 혼자 아픔을 감당하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절망의 끝에서 마주한 한 줄기 빛, 기도
죽음까지 생각했던 절망의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모태신앙인데, 왜 하나님께 기도할 생각은 못 했을까?' 어머니는 늘 신실하게 기도하셨고, 저 또한 교회는 꼬박꼬박 다녔습니다. 비록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고 도장만 찍고 오는 날이 많았지만, 그래도 교회라는 공간은 제게 익숙했습니다. 그래서 학원이 끝나고 밤 11시가 넘어, 부모님께 보충 수업이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무작정 집을 나섰습니다. 교회 문이 열려 있을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변 교회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신기하게도 마지막으로 찾아간 학교 바로 옆 교회 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저는 마치 이끌리듯 교회 지하 예배당으로 내려갔습니다.
예배당은 불이 꺼져 캄캄했지만, 강대상 위 십자가만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빛을 따라 강대상 앞으로 나아가 무릎을 꿇었습니다. 기도하는 방법도 제대로 몰랐지만, 그저 꿇어 엎드려 하나님께 간절히 외쳤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살려주세요.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그렇게 40분 동안 울부짖으며 기도했습니다. 그때까지 단 한 번도 제대로 기도해 본 적 없었지만, 그날은 정말 간절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기도하는 동안, 마음속에 억눌렸던 슬픔과 고통이 눈물과 함께 쏟아져 나왔습니다. 기도 후 집에 돌아와 잠이 들었고, 다음 날 학교에 갔지만 폭력은 여전히 계속되었습니다. 기도했는데도 현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정말 계시는 건지, 내 기도를 듣고 계시는 건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원망스러운 마음도 들었지만, 이상하게도 교회에 가서 기도하는 것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릴 적 어머니가 자주 불러주시던 찬양 "약할 때 강함 되시네"가 떠올랐습니다. 아픈 몸을 이끌고 교회 강대상 앞으로 나아가, 그 찬양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약할 때 강함 되시네, 나의 모든 것 되시네..." 찬양을 부르며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놀랍게도 며칠 후, 제 마음에 알 수 없는 평안함이 찾아왔습니다. 기도를 통해, 저는 비록 현실은 여전히 고통스럽지만, 누군가 제 기도를 듣고 있다는 희미한 희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그렇게 오랫동안 저를 괴롭혔던 자살 충동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그때부터였을까요, 제 삶에 작은 변화가 시작된 것은.
폭력의 끝, 그리고 끝나지 않은 상처
하지만 기도의 응답은 즉각적인 폭력의 중단이 아니었습니다. 폭력은 여전히 계속되었고, 저는 또다시 하나님을 원망하며 좌절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혹시나, 정말 혹시나"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고 교회에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기도를 이어가던 어느 날, 정말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폭력이 멈춘 것입니다! 정확히 언제부터 폭력이 멈춘 것일까요? 놀랍게도 제가 중학교를 졸업한 직후였습니다. 가해자 무리의 리더였던 친구가 대학교 1학년 때 자퇴를 하면서, 거짓말처럼 폭력이 사라진 것입니다. 리더가 사라지자, 그를 따르던 무리도 흩어졌고, 폭력은 자연스럽게 종식되었습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학교 폭력은 가해자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었습니다. 군중 심리가 작용했고, 묵인하고 방관하는 분위기가 폭력을 더욱 키웠습니다. 만약 누군가, 단 한 명이라도 가해 학생들을 제지했더라면, 폭력은 그렇게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누구도 나서서 폭력을 멈추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폭력은 8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습니다. 폭력이 멈춘 후, 저는 가해 학생들을 다시 마주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서울로 이사했고, 그들은 여전히 전주에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운명은 참으로 얄궂었습니다.
20대 중반, 부모님을 뵙기 위해 전주에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저는 우연히 가해자 무리의 리더였던 친구를 마주쳤습니다. 그 친구는 옆자리에 앉은 여자친구와 다정하게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고 심장이 쿵쾅거렸습니다. 과거의 끔찍했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애써 괜찮아졌다고 생각했지만, 제 안에는 여전히 씻을 수 없는 상처, 트라우마가 남아있었던 것입니다. 그 친구를 보는 순간, 저는 다시 과거의 공포 속으로 되돌아간 듯했습니다. 손발은 차가워지고 온몸에 힘이 빠졌습니다. 20대 중반의 건장한 청년이었지만, 저는 속수무책으로 과거의 트라우마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아, 나는 아직 완전히 회복된 것이 아니구나. 트라우마는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숨 쉬고 있구나. 성인이 된 후에도, 힘든 일이 있거나 몸이 아플 때면 어김없이 교복 입은 채 폭력에 시달리는 악몽을 꾸곤 했습니다. 담배 연기 자욱한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폭행당하는 꿈은 트라우마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생생하고 끔찍한 것이었습니다. 군대에서도 단체 생활을 하면서, 과거의 트라우마가 불쑥불쑥 떠올라 힘들었습니다. 20대 초반, 군 복무를 하면서 저는 끊임없이 질문했습니다. "하나님, 왜 하필 저에게 이런 고통을 주셨나요? 왜 8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저를 고통 속에 내버려 두셨나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트라우마 극복, 그리고 새로운 시작
전역 후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에 답답해하던 어느 날, TV 뉴스에서 학교 폭력 피해 사건을 다루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뉴스를 보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과거의 제 모습이 떠올랐고, 피해 학생의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만약 제가 학교 폭력을 한두 번 겪었다면, 그냥 '나도 그런 적 있었지' 하고 무심하게 넘겼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8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끔찍한 폭력을 경험했기에, 피해 학생의 아픔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순간, 군대에서 끊임없이 던졌던 질문에 대한 답을 어렴풋이 깨달았습니다. '아, 하나님은 어쩌면... 제가 8개월 동안 겪었던 고통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 더 깊이 공감하고, 그들을 위로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려 했던 것은 아닐까?' 비로소 저는, 고통스러웠던 과거의 경험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트라우마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불쑥불쑥 과거의 악몽이 떠올랐고, 괴로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2020년, 감사하게도 제가 다니는 학교에서 기독교 상담을 받을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상담을 받으면서, 저는 과거의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상담 선생님은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언제였냐고 물었고, 저는 망설임 없이 '담배 연기 자욱한 곳에서 폭행당했던 기억'이라고 답했습니다. 상담 선생님은 제게 "지금 이 순간, 성령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강조하며, 당시 상황 속에서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말, 행동이 무엇이었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책상을 엎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니들이 뭔데!' 하면서 문을 박차고 나가고 싶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상담 선생님은 눈을 감고 과거의 상황을 떠올리며, 실제로 그렇게 해 보라고 권유했습니다. 저는 눈을 감고, 상상 속에서나마 책상을 엎고 소리를 지르며 문을 박차고 나갔습니다. 놀랍게도, 그 순간 마음속에 억눌렸던 감정이 해소되고, 정서적인 환기가 일어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오랜 시간 짓눌려왔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한 후련함이었습니다. 물론 소리를 질렀다고 해서 트라우마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상담을 통해 저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결코 상식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과거의 저는 '아프고 힘들어도 말하면 안 된다'는 잘못된 비상식에 갇혀 있었습니다. 진정한 상식은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며, 부당한 일에 대해서는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상담을 통해, 저는 비로소 참된 상식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8장 26절 말씀처럼,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는 말씀이 제 마음속에 깊이 와 닿았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는 오늘날 많은 청소년과 청년들이 잘못된 신앙관, 즉 '크리스천은 힘들어도 힘든 척 하면 안 된다, 무조건 참아야 한다'는 비상식적인 생각에 갇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힘들 때 도움을 요청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상식입니다. 상담을 통해, 저는 정서적인 환기와 함께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은 '무조건 참고 견디기만 강요하는 분'이 아니라, '힘들 때 기꺼이 도움을 주시고, 우리의 손을 잡아 일으켜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깨달음은 제 삶의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캠프 사역, 그리고 부모님께 고백
상담 이후, 저는 비로소 과거의 아픔을 부모님께 털어놓을 용기를 냈습니다. 그 전까지는 '부모님이 아시면 얼마나 마음 아파하실까' 하는 생각에 차마 말씀을 드릴 수 없었습니다. 20대 때, 청소년 캠프 사역을 하면서 26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캠프 설교를 맡게 되었을 때, 저는 3달 전부터 어떤 설교를 해야 할지 고민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간증을 이야기해 보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캠프 첫날, 1300명의 청소년과 청년들 앞에서 저는 떨리는 마음으로 제 간증을 털어놓았습니다. 중학교 시절 겪었던 학교 폭력의 끔찍했던 기억들을 담담하게 이야기했습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그 자리에 부모님이 와 계셨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저는 2층에 앉아 계신 부모님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두려움과 떨림 속에서도, 저는 용기를 내어 설교를 마쳤습니다.
예배 후, 대기실에서 부모님을 만났습니다. 아버지는 창밖을 바라보며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고, 어머니는 울먹이며 "주안아, 얼마나 힘들었니... 엄마가 몰랐다. 미안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의 따뜻한 위로에, 그동안 억눌렀던 감정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때까지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못했던 죄송함, 그리고 이제라도 진실을 말씀드릴 수 있게 된 안도감 등 복잡한 감정이 뒤섞였습니다. 아버지는 말없이 눈물만 글썽이셨습니다. 그렇게 캠프 설교를 통해, 부모님은 비로소 제가 학교 폭력을 겪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셨습니다. 오랜 시간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이 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캠프 사역을 통해, 저는 생각보다 많은 청소년과 청년들이 학교 폭력, 가정 폭력 등 다양한 폭력에 노출되어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예배 후, 수많은 학생들이 찾아와 자신의 아픔을 털어놓았고, 함께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저는 '이들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고, '이들에게 십자가의 평안을 전하고, 상처 입은 영혼들을 치유하는 사역을 해야겠다'는 소명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본격적으로 청소년 사역에 헌신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랑과 공감으로, 상처 입은 영혼들을 품다
비행 청소년들을 위한 사역을 하면서, 저는 그들에게 진정한 사랑과 공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습니다. 가출 청소년들에게 숙소를 제공하고, 편부모 가정 아이들에게는 따뜻한 형, 오빠가 되어주었습니다. 목욕탕에 함께 가서 등을 밀어주고,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게 해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제가 그들을 포기하지 않고 사랑으로 품을 수 있었던 것은, 저 또한 부모님의 사랑 덕분에 힘든 시간을 견딜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때 부모님의 사랑마저 없었다면, 저는 완전히 무너졌을지도 모릅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제 삶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고, 그 사랑을 이제는 상처 입은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싶었습니다.
물론 아이들에게 즉각적인 변화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반항하고,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진정한 변화는 억압과 강요가 아닌, 사랑과 공감에서 시작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예배 시간에는 누구보다 진지했습니다.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온 아이들도, 주일 아침 예배 시간에는 어김없이 나타났습니다. 술 냄새, 담배 냄새를 풍기면서도 예배에 참석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제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찬양 시간에는 누구보다 뜨겁게 찬양하고, 기도 시간에는 간절히 기도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저 또한 중학교 시절, 찬양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위로를 받았기에, 아이들도 찬양을 통해 하나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갖기를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사랑과 공감으로 아이들을 대하자,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고,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학교 폭력, 더 이상 침묵하지 마세요
지금 이 순간에도 학교 폭력으로 고통받고 있는 학생들, 그리고 과거의 상처로 힘들어하는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부디 포기하지 마세요. 혼자 끙끙 앓지 마세요. 용기를 내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세요. 하나님은 당신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고, 당신 곁에서 함께 아파하시며 위로하고 계십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며 상대적인 가치로 평가절하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당신을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존귀한 존재로, 사랑스러운 아들과 딸로 부르십니다. 부디 하나님의 품 안에서, 그분의 날개 아래에서 진정한 평안을 찾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시다면, 주저하지 말고 기도하세요. 그리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세요. 당신은 반드시 이겨낼 수 있습니다.
어쩌면 당신은 '어른들에게 이야기해도 소용없을 거야, 오히려 더 힘들어질 거야'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과거의 저 또한 그랬습니다. 하지만 침묵은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부모님께, 선생님께, 경찰에게, 누구에게라도 털어놓으세요. 혼자 끙끙 앓는 대신, 용기를 내어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야말로, 고통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입니다. 학교 폭력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범죄입니다. 어떤 이유로도 폭력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학교 폭력 피해는 평생 씻을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부디 이 방송을 보고 계신 분들, 더 이상 혼자 괴로워하지 마시고, 용기를 내어 주변 사람들과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저 또한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부디 힘내세요.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학교 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근본적인 환경 변화가 필요합니다. 피해 학생에게 '학교에 가지 마라, 잠시 쉬어라'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학교, 가정, 지역 사회 전체가 함께 노력하여, 폭력 없는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피해 학생에게는 심리 상담, 치료 지원을 제공하고, 가해 학생에게는 재교육, 상담 치료를 통해 폭력성을 교정해야 합니다. 또한, 학교 폭력 예방 교육을 강화하고, 피해 학생 보호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학교 폭력에 대한 사회 전체의 인식 개선입니다. 학교 폭력은 단순한 '학교 문제'가 아닌, 심각한 사회 문제라는 것을 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