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 목사 미대 교수에서 목회자로 인생 전환과 울타리 없는 교회 이야기
미대 교수에서 목회자로, 김현철 목사의 파란만장 인생 이야기
# [평생 직장이냐? 목회냐?🎨] 울타리 없는 교회🙏ㅣ하늘과 땅이 만나는 교회 김현철 목사ㅣ새롭게하소서 상세 내용 정리 및 노하우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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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대 교수에서 목회자로, 김현철 목사의 파란만장 인생 이야기
안녕하세요, 오늘 여러분께서는 특별한 인생 스토리를 가진 김현철 목사님을 만나 뵙게 될 텐데요, 김 목사님은 미대 교수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내려놓고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김 목사님께서 기존 교회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형태의 교회를 개척하셨다는 점인데요, 과연 김 목사님께서는 어떠한 계기로 미대 교수에서 목회자로 인생의 방향을 전환하게 되셨을까요? 그리고 그가 개척한 “울타리 없는 교회”는 어떤 모습일까요? 지금부터 김현철 목사님의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시겠습니다.
김현철 목사님은 과거 유명 개그맨 정봉균 씨와 특별한 인연이 있다고 하는데요, 그 시작은 정봉균 씨의 아들 문지 군과 김 목사님의 아들이 초등학교 동창이었던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두 아들은 엄청나게 친한 친구 사이였고, 자연스럽게 김 목사님과 정봉균 씨도 가족처럼 가까워졌다고 합니다. 두 가족은 함께 설악산 등반을 즐기기도 했는데, 당시 어린 정봉균 씨는 힘든 산행에도 지친 기색 없이 곧잘 따라왔다고 합니다. 김 목사님은 그런 정봉균 씨를 보며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고, 훗날 정봉균 씨가 유명인이 된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특별한 방법으로 그를 높이셨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본격적으로 김현철 목사님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김 목사님은 대학교수가 된 지 5년 차 되던 해,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당시 김 목사님은 33세라는 젊은 나이에 대학교수가 되었고, 남들은 부러워하는 안정적인 직업을 얻었지만, 오히려 새로운 목표를 갈망하게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아내가 심한 우울증을 겪고 있었기에, 김 목사님은 아내를 위해 드라이브를 하던 중 설악산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문득 과거 정봉균 씨 친구가 사업에 실패 후 설악산에서 3개월간 기도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고, 김 목사님도 “나도 한번 산에 올라가 볼까?” 하는 생각에 설악산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2003년 1월 7일, 김현철 목사님은 처음으로 설악산에 올라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추운 날씨였지만, 김 목사님은 이상하게도 설악산의 고요하고 수도원 같은 분위기에 압도당했습니다. 탁 트인 전망을 바라보며 찬양을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찬양이 저절로 입에서 흘러나왔습니다. 평소 3분 기도 정도만 했던 김 목사님은 10분, 20분 넘게 기도를 이어갔고, 기도 내용 또한 평소와는 전혀 다른 깊고 간절한 기도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기도 중 김현철 목사님은 문득 정신을 차리고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하는 이성적인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다시 찬양을 부르고 싶어졌고, 다시 기도에 몰입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김 목사님은 방언과 비슷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그것이 방언인지조차 몰랐다고 합니다. 놀라운 것은, 계속해서 기도하는 동안 과거의 삶과 앞으로의 일들에 대한 환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는 것입니다. 환상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김 목사님을 지금까지 지켜보셨고, 인도하셨으며, 기다려주셨다는 메시지를 전달해 주셨습니다. 아내의 우울증 또한 하나님의 기다림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환상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김현철 목사님께 “나의 사랑을 전하라”는 명확한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당시 김 목사님은 “나의 사랑을 전하라”는 메시지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아프리카 선교를 가라는 것인지, 목회자가 되라는 것인지, 교회 장로가 되어 봉사하라는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나의 사랑을 전하라”는 메시지는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가는 신앙 여정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었고,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이야말로 신앙의 궁극적인 목표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설악산 기도 후 놀랍게도 아내의 우울증이 갑자기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전까지 오랜 시간 아내의 우울증으로 고통받았던 김 목사님은 기적과 같은 변화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 일을 통해 김 목사님은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물을 포도주로 바꾸시는 기적을 일으키실 수 있구나” 하는 것을 확실히 믿게 되었고, 성경 속 기적 이야기들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전에는 성경 속 기적 이야기를 신화나 꾸며낸 이야기로 치부했던 자신을 반성하며, 자신의 삶에서 기적이 일어났음을 생생하게 체험했기에, 성경을 더욱 깊이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미대 교수였던 김현철 목사님이 갑자기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인데요, 목사 안수를 받으신 후 곧바로 군목으로 사역을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군목을 선택한 이유는 대형 교회나 유명 교회보다는 어렵고 힘든 곳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정봉균 씨의 아버지께서 전방 지역에서 군목으로 사역하고 계셨기에, 자연스럽게 군목의 길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군 교회는 일반 교회와는 달리 담임 목사가 부재하고, 군종 목사가 교회를 책임지고 사역해야 합니다. 김 목사님은 대대급 군 교회에서 사역했는데, 당시 400명에 달하는 군인들이 교회에 출석했고, 김 목사님의 열정적인 설교와 헌신적인 섬김으로 100명 이상이 세례를 받는 놀라운 부흥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군목으로 열심히 사역하던 김현철 목사님은 1년 만에 군 교회를 사임하고, 특이하게도 지인의 사무실 회의실에서 교회 개척을 시작합니다. 군 교회 사역을 마치고 새로운 군 교회를 알아보던 중, 갑자기 길이 막히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예배를 드릴 곳을 찾던 중, 지인의 사무실을 방문하게 되었고, 마침 사무실 회의실이 비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궁핍한 상황이었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10평 남짓한 사무실 회의실에서 첫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조카의 피아노 반주와 단출한 성도 몇 명으로 시작한 초라한 개척이었지만, 김 목사님은 좌절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사역에 임했습니다.
사무실 회의실에서 드리는 необычный 예배는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점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10평 남짓한 좁은 공간에 20명 가까운 성도들이 모이면서 장소를 확장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장소를 물색하던 중, 신도시나 아파트 단지로 가야 할지 고민했지만, 김 목사님은 어렵고 힘든 지역에서 사역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상업 지역이었던 역삼동에 교회를 세우기로 결심하고, 일반적인 교회 형태로는 전도가 어렵다고 판단하여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낮에는 카페, 밤에는 예배당으로 사용하는 “북카페 교회”라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습니다.
김현철 목사님은 “북카페 교회”라는 새로운 콘셉트를 가지고 교회를 디자인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 같으면서도 카페 같은 편안하고 세련된 공간을 구상했고, 목수들과 함께 직접 인테리어를 하며 교회를 만들어갔습니다. 완성된 교회는 사람들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아름다운 모습이었고, 방문객들은 “교회 같기도 하고 카페 같기도 하네?” 하며 신기해했습니다. 동료 목사님들 또한 “신선하다”, “앞으로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음악회, 집회, 문화 행사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며 지역 사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간판조차 제대로 없었지만, 개척한 지 1년 만에 70~80명으로 급성장하는 놀라운 부흥을 경험했습니다. 겉으로는 북카페처럼 보였지만, 내부에는 “하늘과 땅이 만나는 교회”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가득했습니다. 부담 없이 카페처럼 드나들 수 있는 “문턱 낮은 교회”를 지향하며,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전도도 하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교회는 점점 성장해 나갔습니다.
교회가 부흥하자 어김없이 사탄의 시험이 찾아왔습니다. 교회 개척 1년 만에 인도네시아 쓰나미가 발생했고, 김 목사님은 인도네시아 선교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쓰나미 피해 지역이자 기독교인이 거의 없는 씨 섬을 선교지로 선택하고,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세우라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가나안 농어촌 학교” 설립을 목표로 선교를 시작하자 성도들의 참여가 활발해졌고, 모두가 열정적으로 선교에 헌신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성장 과정에서 미성숙함과 부족함을 드러냈고, 결국 가장 열심이었던 부부가 시험에 들어 교회를 떠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부부를 따라 일부 성도들이 함께 교회를 나가면서 교회는 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당시 자신의 부족함과 미숙함이 원인이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김 목사님은 고백합니다.
교회 분열로 인해 많은 성도들이 떠나고, 11명의 성도만 남게 되었습니다. 가족처럼 가깝게 지냈던 성도들의 갑작스러운 이탈은 김 목사님에게 큰 상처와 허탈감을 안겨주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목회를 하고 싶어서 한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억지로 시키셔서 시작했는데, 왜 이런 어려움을 주십니까?” 김 목사님은 하나님께 원망 섞인 기도를 쏟아냈습니다. 자신은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부정이나 스캔들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절망에 빠져 있던 김 목사님은 친구 목사에게 교회를 맡아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친구 목사는 “인내하고 기다리라”는 조언을 해주었고, 김 목사님은 다시 3년간 기도에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
3년간의 긴 시간 동안 김현철 목사님은 오직 기도에만 전념했습니다. 이전처럼 기쁨과 감격이 넘치는 기도가 아니라, 광야에 홀로 버려진 듯한 고독하고 힘겨운 기도였습니다. 하지만 기도 가운데 회개가 터져 나왔습니다. 자신의 교만함, 미숙함, 부족함을 깨닫고 철저히 회개하며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떠나간 성도들을 원망하기보다 오히려 축복하고, 자신의 부족함으로 인해 상처받았을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회개를 통해 김 목사님은 진정한 목회자로서 성장해 나갔고, 성도들을 섬기는 방법, 사역의 방향성, 목회자로서 갖춰야 할 마음가짐 등을 배워나갔습니다.
3년간의 회개 기도 끝에 김현철 목사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놀라운 응답을 받았습니다. “내가 다 한다.” 간결하지만 강력한 하나님의 음성은 김 목사님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울려 퍼졌습니다. 원망, 원통함, 후회 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눈 녹듯이 사라지고, 평안함과 위로가 마음을 가득 채웠습니다. “내가 다 한다”는 음성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든 부족함과 연약함을 이미 알고 계시며, 이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었음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오히려 연단을 통해 더욱 성장시키고, 더 크게 사용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떠나간 성도들에 대한 미움은 사랑으로 바뀌었고, 진정으로 목회자다운 목회를 해야겠다는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3년간 눈물로 기도했던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울타리 없는 교회를 지향하며 이름 없는 교회로 개척을 시작했던 김현철 목사님은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 교회와 목회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보이지 않는 교회, 울타리 없는 교회를 추구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보이는 교회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카페 교회를 정리하면서 “울타리는 질서”라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울타리는 말씀, 원칙, 교회의 시스템, 사역의 실행 방법,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원칙 등 교회를 운영하고 성도들을 양육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임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높은 임대료는 현실적인 문제였고, 역삼동에서 더 이상 교회를 유지하기 어려웠습니다. “교회는 우리 집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떠나라고 하시면 언제든 떠나야 한다.” 김 목사님은 미련 없이 떠날 준비를 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다시 1년 이상 기도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했고, 마침내 “마포로 가라”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마포”라는 응답을 받고 처음에는 의아했습니다. 과거 어려웠던 시절을 떠올리며 조금은 편안한 곳으로 인도해주시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마포는 여전히 녹록지 않은 지역이었습니다. 하지만 곧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마포는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곳, 홍대와 신촌과 가까운 젊음의 거리였습니다. “젊은이들을 섬기라”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신촌과 홍대 근처에 개척할 뜻을 품게 되었습니다. 첫 개척지는 합정동이 되었습니다. 합정동은 홍대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이자 밤 문화가 화려한 곳입니다. 주말 아침이면 밤새도록 흥청망청 놀고 흩어진 젊은이들로 거리가 가득했습니다. 과거 젊은 시절 낭만을 즐겼던 종로와 명동 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욱 심각한 모습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곳이야말로 진짜 선교지다!” 김 목사님은 합정동에서 더욱 열정적으로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마포 합정동에서 개척을 시작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교회 지하에 술집이 들어서면서 끊임없이 소음과 악취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전도를 하려고 술집 앞에만 서 있어도 불쾌한 시선을 받아야 했고, 간판조차 제대로 세울 수 없는 열악한 환경이었습니다. 결국 2년 만에 서교동으로 이전했지만, 서교동 또한 만만치 않았습니다. 홍대 정문 앞이라는 좋은 위치였지만, 교회라는 이유로 건물주들이 임대를 꺼려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지하 공간을 얻었지만, 이번에는 건물주의 횡포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힘겹게 대리석 십자가를 세우고 교회를 단장했지만, 건물주는 십자가를 보자마자 기겁하며 6개월 만에 나가라고 통보했습니다. 또다시 쫓겨나듯 교회를 옮겨야 했습니다. 선수동을 거쳐 최후에 이르게 된 곳이 현재의 교회입니다. 마포에서만 13년 동안 무려 6번이나 교회를 옮겨야 했던 고난의 시간들이었습니다.
김현철 목사님은 교수와 목사라는 두 가지 직업을 병행하는 어려움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자비량 목회는 결코 쉽지 않았고, 특히 수요 예배와 주일 설교를 준비하는 것이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고 합니다. 교수로서 바쁜 일정 속에서 설교를 준비해야 했고, 때로는 강의와 회의 때문에 기도 시간조차 부족할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교수직을 포기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교수라는 직분이 때로는 선교에 도움이 될 수 있고, 하나님께서 원하실 때까지는 교수직을 유지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겸직을 계속해 왔습니다.
그러던 중 8년 전, 학교에서 높은 보직인 연구원장을 제안받게 되면서 새로운 갈등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연구원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되면 목회에 더 이상 전념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이제는 교수직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되었나?” 고민하던 중, 하나님께서는 “인도네시아로 가라”는 강렬한 마음을 주셨습니다. 2월 인도네시아 단기 선교를 앞두고, 10월에 보직 임명을 받은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고민 끝에 차 안에서 문득 “때가 되었구나. 이제 교수직을 내려놓으라는 하나님의 뜻이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결국 교수직 사직을 결심하고 아내에게 이야기했더니, 아내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며 기쁘게 승낙했다고 합니다. 주변에서는 “미쳤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김 목사님 부부는 오히려 기쁨과 평안함을 느꼈습니다.
교수직을 사직했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발목을 잡았습니다. 당시 3억 원에 달하는 빚이 있었고, 매달 갚아야 할 이자 부담도 막대했습니다. 교회 재정으로는 월세를 내기에도 빠듯했고, 빚을 갚을 능력은 전혀 없었습니다. “이제 어떻게 빚을 갚아야 하나?” 현실적인 걱정이 밀려왔지만, 놀랍게도 마음 속에는 오히려 평안함이 가득했습니다. 그때 문득 산상수훈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음이 가난해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마음이 비워지고 투명해지면서 천국을 경험하는 듯했고, 예수님이 바로 옆에 계시는 듯한 평안함을 느꼈습니다. 동시에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라는 말씀의 깊은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드릴 수 없는 것을 드리고, 버릴 수 없는 것을 버릴 때 부흥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교회는 드릴 수 없는 것을 드리고, 버릴 수 없는 것을 버릴 때 진정한 부흥을 경험한다는 깨달음은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오랜 시간 변화 없이 11명을 유지했던 교회에 갑자기 새로운 성도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놀라운 부흥이 일어났고, 3억 원의 빚도 기적처럼 해결되었습니다. 매달 갚아야 할 이자를 걱정했던 상황에서 빚을 완전히 탕감받는 기적을 체험한 것입니다. 재정 증명서 없이 빚을 갚을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셨습니다. 김현철 목사님은 이 모든 과정을 통해 “교회의 부흥은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흥을 주셔야만 가능하다”는 진리를 확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진행자는 김현철 목사님의 이야기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안정적인 직업인 교수직을 미련 없이 내려놓고 목회자의 길을 선택한 결단,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꿋꿋이 사역을 이어온 헌신, 그리고 “뇌가 멈춰야 진정한 신앙에 이를 수 있다”는 깨달음은 많은 시청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했습니다. 정봉규 씨 또한 김현철 목사님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과는 반대로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고백했습니다. 홍대 앞이라는 척박한 선교지에서 “울타리 없는 교회”를 세워 나가는 김현철 목사님의 앞날에 더 큰 축복이 함께하기를 기대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습니다. 험난한 길이었지만, 결국 하나님께서는 김현철 목사님을 통해 놀라운 일들을 이루어가셨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의 교회를 통해 더 큰 역사를 이루실 것이라는 소망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영상은 모세의 출애굽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음악과 내레이션으로 마무리됩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내가 애굽에 있는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았고, 또한 그들을 모든 압제에서 건져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셨듯이, 오늘날도 김현철 목사님과 같은 종들을 통해 고통받는 영혼들을 구원하시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영상은 마무리됩니다. 김현철 목사님의 인생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도전을 주며,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