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김 선교사 간증: 믿음의 여정과 가족의 변화 이야기
메마른 영혼의 오아시스, 다니엘 김 선교사의 믿음
믿음의 강한 수혈이 필요하신가요? 다니엘 김 선교사님의 감동적인 이야기 속으로
이번 영상은 단순한 인터뷰 그 이상입니다. 다니엘 김 선교사님의 파란만장한 삶과 깊은 신앙 여정을 통해, 우리 안에 잠자고 있던 믿음을 다시금 깨우고, 삶의 어려움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아가야 할지 명확하게 보여주는 귀한 시간인데요,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 메마른 영혼에 단비와 같은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부터 다니엘 김 선교사님의 이야 속으로 함께 빠져보시죠.
5년간의 끈질긴 섭외, 드디어 새롭게하소서에 출연
새롭게하소서 주영훈 님과 송지은 님의 반가운 인사로 시작되는데요, 오늘 특별히 청년들이 열광하는 분, 방송 출연이 처음인 다니엘 김 선교사님을 모셨다고 소개합니다. 5년간 섭외를 공들였다는 말에 기대감이 더욱 커지는데요,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그간 방송 출연을 고사하고 집회 외에는 만날 수 없는 분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귀한 손님을 모시게 된 것이죠.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환한 미소로 등장하셨는데요, 첫인상에 대해 출연진들은 “풍채가 엄청 좋으시다”, “경호원 같다”, “미국 냄새가 난다” 며 유쾌하게 이야기합니다. 특히 5년간의 섭외 비하인드 스토리가 공개되었는데요,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하는 일에 집중하고 싶었고, 중국 선교사 신분이라 노출을 극도로 조심했다” 고 밝혔습니다.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섭외를 거절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새롭게하소서에 출연을 결심해주신 것에 감사함을 전하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철벽 보안 다니엘 김 선교사, 휴대폰 번호 비공개 이유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미혼임에도 불구하고 휴대폰 번호를 철저히 비공개로 한다고 하는데요, 이에 대해 송지은 님은 “아주 난공불락, 벽돌을 쌓아 놓으셨다고 들었다” 며 궁금증을 드러냅니다.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정말 조심해서 살고 싶었고, 강단에서 설교를 해야 하는 입장이기에 자기 관리에 힘썼다” 고 겸손하게 답변합니다. 사생활 노출을 극도로 꺼리고, 오직 말씀과 사역에 집중하는 모습이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주영훈 님은 다니엘 김 선교사님의 프로필을 보고 깜짝 놀랐다면서, “보통 젊은이들이 경험하는 세상의 즐거움을 멀리하고 나실인의 삶을 살았다” 고 소개합니다. 술, 담배, 춤, 연애 4종 세트를 멀리했다는 이야기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데요,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나실인처럼 포도밭 근처도 안 가는 것은 아니고, 어렸을 때부터 예수님을 뜨겁게 만나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고 설명합니다. 춤에 대한 질문에는 “찬양하면서 춤을 출 수 있다. 다윗도 춤을 췄다” 며 유쾌하게 받아치는 모습도 보여줍니다.
나실인에 대한 궁금증도 풀어주셨는데요,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나실인은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특별히 구별한 사람을 뜻하며, 머리를 자르지 않고 포도주를 멀리하는 등 엄격한 규례를 지켰다” 고 자세히 설명합니다. 삼손과 같은 인물을 예시로 들어 이해를 도왔습니다.
불멸의 전파자, 다니엘 김 선교사님의 고백
다니엘 김 선교사님의 저서 “불멸의 전파자”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는데요, 주영훈 님은 “제목이 굉장히 강렬하다. 불멸의 전파자는 죽지 않는 것이냐” 며 질문을 던집니다.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불멸의 전파자는 사역자로서, 설교자로서, 선교사로서 살아오면서 겪었던 고비와 좌절,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게 해준 하나님의 말씀을 담은 책” 이라고 소개합니다. 간증보다는 하나님을 섬기는 과정에서의 고뇌와 극복, 그리고 힘이 되었던 말씀을 나누고 싶었다고 합니다.
다니엘 김 선교사님의 독특한 이력도 소개되었는데요, 한국에서 10년, 일본에서 10년, 미국에서 10년을 살고 현재 한국에서 사역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잘생겼다”는 말을 싫어했다는 이야기에 웃음이 터져 나오는데요, “하나님이 싫어하신다”는 말이 가장 듣기 싫었다고 합니다. 또한 “너 같은 것 때문에 교회 안 간다” 는 말도 상처가 되었다고 고백하며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고 덧붙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의 시선과 영광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대째 신앙, 어머니의 기도와 아버지의 변화
확고한 믿음의 배경에는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고 하는데요,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목회자 집안은 아니지만 4대째 신앙이고, 어머니께서 기도를 많이 하셨다” 고 말합니다. 특히 어머니의 기도하는 모습이 큰 영향을 주었다고 강조하는데요, “어머니는 완벽해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야쿠자 사실을 알고 고난의 시간을 보내면서도 하나님께 매달리는 모습을 보며 큰 감동을 받았다” 고 털어놓습니다. 어머니의 헌신적인 기도와 믿음이 다니엘 김 선교사님의 신앙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죠.
아버지의 변화 또한 빼놓을 수 없는데요,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아버지의 변화는 가정에 큰 위로이자 간증이었다” 고 고백합니다. 4대째 신앙이었지만 야쿠자였던 아버지가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었는지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야쿠자 아버지와의 만남, 드라마틱한 가족사
다니엘 김 선교사님의 아버지는 야쿠자였다고 합니다. 그것도 일본에서 가장 큰 조직의 간부였다고 하는데요, 조직에서 높은 위치에 있을수록 문신이 없고, 사업가처럼 멋진 양복 차림이었다고 합니다. 직원도 많아서 사업가로 착각할 정도였다고 하는데요, 어머니는 아버지를 야쿠자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만남은 더욱 드라마틱합니다. 외할머니가 일본 기업과 거래하는 회사에서 통역을 했는데, 거래처 사람이 아버지를 소개해줘 선을 보고 결혼했다고 합니다. 야쿠자 사실을 숨기고 결혼한 것이 사기 결혼이 아니냐는 질문에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지금도 아버지 회사에서 연금이 나올 정도이니, 야쿠자이지만 정식 회사였다” 며 재치있게 답변합니다.
결혼 후 아버지의 변화는 어머니와 외할머니의 기도 덕분이라고 하는데요,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은 날부터 아버지 삶에 하나님의 구체적인 개입이 시작되었다” 고 간증합니다. 10년간 떨어져 살았던 이야기도 공개되었는데요,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외할머니 손에 자랐고, 어머니는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아버지를 만났다고 합니다. 10살 무렵 아버지가 야쿠자 생활을 정리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서 가족이 다시 함께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사업가로 변신하여 사진 현상소를 운영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획기적인 사업 아이템이었다고 하는데요, 일본 도로공단 등 회사와 거래하며 번창했다고 합니다.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셨지만, 술을 끊는 것은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완전히 변화시키셨고, 현재는 장로님으로서 다니엘 김 선교사님을 위해 가장 많이 기도해주시는 분이라고 합니다. 아버지의 극적인 변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도전을 주었습니다.
어머니의 눈물 젖은 기도, 새벽을 깨우다
어머니의 헌신적인 신앙 이야기가 이어졌는데요,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어머니의 기도하는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고 회상합니다. 다섯 살, 여섯 살 무렵, 아버지의 야쿠자 생활 정리 과정에서 어머니는 가장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살림 기도원에 들어가 3일 금식기도를 하고, 보호식을 드신 후 다시 기도원에 들어가셨다. 한 달에 몇 번씩 금식기도를 하셨다” 고 합니다.
어머니는 새벽마다 교회에 가서 기도하셨는데요, 다니엘 김 선교사님을 데리고 2층 개척교회에 가서 문을 잠그고 새벽 예배 시간까지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교회 의자에 누워 잠들고, 어머니는 강단에 무릎 꿇고 기도하시는 모습이 새벽녘 날로 불빛에 비쳐 보이곤 했다. 그 모습이 큰 힘이 되었다” 고 고백합니다. 어머니의 눈물 젖은 기도는 다니엘 김 선교사님에게 깊은 신앙적 유산을 남겨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신다”는 말이 가장 싫었다는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언제 하나님을 가장 진하게 만났을까요?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을 전제로 세계관이 형성되었다” 고 설명합니다. 하나님 중심적인 세계관이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는 것입니다.
옥한음 목사님 설교 테이프, 새벽기도, 그리고 십자가 행진
수련회 경험이 부족했던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일본 교회의 특성상 청소년부가 활성화되지 않아 수련회에 가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감사했던 것은 일본어 목사님께서 산기도를 데려가시고, 캠프파이어를 하며 기도하도록 훈련시켜주셨다” 는 것입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아사 홀란드 목사님과의 만남은 다니엘 김 선교사님의 삶에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아사 홀란드 목사님은 일본 전역을 십자가를 지고 횡단하는 분이었는데요,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그분과 함께 6개월간 3,800km 십자가 행진을 하며 일본 땅을 밟고 기도하고 전도했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아사 홀란드 목사님과 함께 일본 섬 둘레 1,000km 십자가 행진을 40일 동안 했다고 합니다. 고등학생으로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행복했던 기억” 이라고 회상합니다.
어린 시절 은혜받았던 성경 구절은 시편 66편 18절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라고 합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세 명의 스승을 만났다고 하는데요, 첫 번째 스승은 영적 아버지와 같은 척추 교정 선교사님이라고 합니다. 선교사님은 1년에 40일씩 동남아시아에서 의료 선교를 하셨는데, 다니엘 김 선교사님을 선교에 동행시켜 훈련했다고 합니다.
선교사님은 다니엘 김 선교사님에게 고린도전서 10장 31절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는 말씀을 주시고, 암송 훈련을 시켰습니다. 암송하지 못하면 밥을 굶어야 할 정도로 엄격한 훈련이었지만,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삶의 목적의 말씀을 주신 것에 감사한다” 고 고백합니다.
두 번째 암송 구절은 시편 66편 18절이었는데요,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 앞에 늘 마음을 정결하게 해야 함을 배웠다” 고 합니다. 이후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병적으로 회개하기 시작했다” 고 털어놓습니다. 순간적인 생각, 잘못된 마음까지도 회개하며 철저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훈련을 한 것이죠.
강박적인 회개에 대한 에피소드도 소개했는데요, 영화를 보다가도 순간순간 눈을 감고 회개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아버지께서 말릴 정도였다고 하는데요,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3~4년간 필터링하는 기간을 통해 하나님께서 저를 정결하게 하셨다” 고 해석합니다.
노방전도와 옥한음 목사님 설교 테이프
여동생과 함께 노방전도를 했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중학교 1학년 때 예수님을 만난 후 영혼에 대한 뜨거운 마음이 생겨 노방전도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기독교 인구는 극소수였기에, 많은 사람들이 지옥에 갈 것이라는 생각에 안타까웠다고 합니다.
전도사님의 권유로 노방전도에 나섰지만, 처음에는 외칠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만 외치라” 는 조언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 를 외치기 시작했고, 점차 메시지가 생겨났다고 합니다. 노방전도는 다니엘 김 선교사님의 첫 설교 무대였습니다.
옥한음 목사님 설교 테이프는 다니엘 김 선교사님의 신앙 성장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옥한음 목사님 설교 테이프 전집을 선물받아 “잘 때도, 이동할 때도 계속해서 들었다. 설교 내용을 다 외울 정도였다” 고 합니다. 옥한음 목사님의 설교는 다니엘 김 선교사님의 신앙의 뼈대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세상 유혹과 갈등, 그리고 믿음의 선택
세상의 유혹은 없었을까요?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친구들이 인터내셔널 바에 가자고 할 때도, 처음에는 안 가다가 나중에는 당연히 안 오는 사람으로 여겨 빼더라” 고 합니다. 하지만 “재미는 없었다. 제 인생에 재미는 없었다” 며 단호하게 말합니다. 재미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경쟁심에 대한 질문에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운동, 공부 등 모든 면에서 경쟁했던 친구가 있었다” 고 답합니다. 하지만 “돌아보면 가장 보고 싶은 학창 시절 친구” 라고 덧붙이며 우정을 드러냅니다. 무슬림 친구, 몰몬교 친구와의 에피소드도 소개했는데요, 몰몬교 학생들의 착한 모습에 “몰몬교와는 도덕성으로는 경쟁이 안 되더라. 기독교인으로서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고 합니다.
공부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일본에 처음 갔을 때 일본어를 전혀 못해 공부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중학교 1학년 때 예수님을 만난 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공부하겠다고 결심하고, 매일 3시간씩 책상에 앉아 공부했다” 고 합니다.
공부 방법은 독특했는데요, 영어 교과서를 영어-한국어 사전, 한국어-국어 사전으로 찾아가며 공부했다고 합니다. “첫 학기 전교 1등을 했다” 며 놀라운 간증을 전합니다. 하지만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공부를 특별히 잘하는 사람은 아니다. 성적은 하나님께서 주신 증거” 라고 겸손하게 말합니다. 은혜받으면 공부가 잘 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고 하는데요, 어머니의 기도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군사학교 진학, 그리고 신학대학원
신학대학원이 아닌 군사학교를 선택한 이유도 밝혔는데요, “대통령, 장군, 목사가 어렸을 적 꿈이었다. 군사 훈련을 받으면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고 합니다. 하지만 정치학은 3개월 만에 포기하고 심리학으로 전공을 바꿨다고 합니다. 군인의 길도 고민했지만, “내 안에 표현하고 싶은 창의력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주님을 섬기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고 합니다.
군사학교 4년은 쉽지 않았는데요, 인종차별과 구타, 힘든 훈련 속에서 “여동생이 보내준 찬양 테이프를 들으며 위로를 받고, 하루 세 번씩 기도하며 버텼다” 고 합니다. 특히 “학교 채플은 하나님께서 날개로 덮어주시는 듯한 안전한 공간이었다” 고 회상합니다. 군사학교 시절을 통해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더욱 강한 믿음과 영성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군사학교 졸업 후 신학대학원에 진학했는데요, 군사학교를 통해 리더십 훈련과 복음 전도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힘든 환경 속에서 하나님을 더욱 깊이 만나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등 따뜻하고 배부르면 예수님을 만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가장 힘든 곳에서 가장 뜨겁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믿었다” 고 합니다.
신앙의 배짱, 그리고 물질관
신앙의 배짱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인데요,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어머니께서 어렸을 때부터 신앙은 배짱이라고 강조하셨다. 굶어 죽으면 굶어 죽었지, 절대로 넘지 않는 선이 있다” 고 말합니다. 신앙의 배짱은 다니엘 김 선교사님의 사역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신학대학원 시절 물질적인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드림카였던 지프차를 샀지만, 감당하기 힘든 빚 때문에 카푸어가 되었다고 하는데요, “물질에 묶이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고 합니다. 11조를 떼어 바치면서 물질관에 대한 도전을 받았다고 합니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종교 비자가 거절되었을 때라고 합니다. 학생 비자도 만료되고, 종교 비자도 거절되어 불법체류자 신세가 되었는데요, 빚은 많고, 학비는 없고, 졸업은 불투명한 상황에서 절망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신앙은 배짱이다. 다 정리하고 떠나자” 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부모님 댁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부모님 댁에서 기도하며 다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는데요, “중국에 가라는 마음과 함께, 거절당했던 종교 비자를 다시 신청해보라는 마음을 받았다” 고 합니다. 놀랍게도 종교 비자가 5년 만에 발급되었고, 학비와 생활비도 기적적으로 채워졌다고 합니다.
미국으로 돌아가 6개월 만에 졸업하고 빚을 갚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고 합니다. 미국을 떠나기로 결심했을 때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다민족 교회를 개척하는 꿈을 꾸었지만, 다시 돌아갈 때는 “정리하고 졸업하고 나오겠다” 는 생각뿐이었다고 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고백합니다.
후원 없는 사역, 그리고 메시지
후원 없이 사역하는 이유에 대해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지난 20년간 하나님께서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셨다. 지금도 사역의 80% 이상이 무보수이지만,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고 간증합니다. 교회 후원도, 개인 후원도 거의 받지 않고 사역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물질을 어디에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질에 얽매이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메시지를 자유롭게 전하고 싶다” 고 소신을 밝혔습니다.
마지막으로,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저는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종이다. 교회 안에 일하는 사람은 아니다. 저밖에 할 수 없는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며 사역에 대한 열정과 소명을 드러냅니다. 후원금을 사양하는 이유에 대해 “후원금을 받으면 후원 교회에 얽매일 수밖에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전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당당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고 강조합니다.
방송을 마무리하며, 진행자들은 다니엘 김 선교사님의 타협 없는 믿음과 삶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특히 융통성 없는 믿음, 하나님만을 향한 순수한 열정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다니엘 김 선교사님의 이야기는 시청자들에게 큰 도전과 은혜를 선사하며 마무리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