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김 선교사 야쿠자 아버지와 믿음 여정, 영감과 간증 이야기
## 야쿠자 아버지에서 십자가 행진까지, 다니엘 김 선교사의 파란만장 믿음 여정
지금 당신에게 강한 믿음의 수혈이 필요하신가요? 다니엘 김 선교사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만약 당신의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면, 혹은 삶의 무게에 지쳐 강한 믿음의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느끼신다면, 오늘 소개할 다니엘 김 선교사님의 이야기가 깊은 영감을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새롭게하소서 채널에 출연하신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청년들에게 뜨거운 지지를 받는 분으로, 방송 출연은 처음이라고 합니다. 집회 외에는 만나 뵙기 어려운 분이라 더욱 귀한 시간인데요, 5년간의 끈질긴 섭외 끝에 드디어 새롭게하소서에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지금부터 다니엘 김 선교사님의 파란만장한 인생 여정과, 그 여정 속에서 발견한 믿음의 본질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어린 시절, 일본에서의 성장과 신앙의 싹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한국에서 10년, 일본에서 10년, 미국에서 10년을 보내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계신데요, 어린 시절부터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경험들을 하셨다고 합니다. 특히 어린 시절,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하나님이 싫어하신다”라는 말을 가장 듣기 싫어했다고 합니다. 이는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인데요, 덧붙여 “너 같은 것 때문에 교회 안 가는 거야”라는 말 또한 듣기 싫어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경험들은 다니엘 김 선교사님이 하나님의 영광을 깊이 생각하며 살아가도록 이끄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확고한 믿음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다니엘 김 선교사님의 가정은 4대째 신앙을 이어오고 있으며, 특히 어머니의 헌신적인 기도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목회자 집안은 아니었지만, 장로님이셨던 아버님과, 특히 어머니의 뜨거운 기도는 어린 다니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의 결혼 생활 중 어려움을 겪으면서 더욱 하나님께 매달렸고, 새벽마다 교회에 가서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을 보이셨다고 합니다. 어린 다니엘은 어머니의 기도하는 뒷모습을 보며, 하나님을 향한 깊은 신뢰와 헌신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가정 환경은 다니엘 김 선교사님의 믿음의 뿌리를 굳건하게 다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야쿠자 아버지와의 만남, 그리고 변화
다니엘 김 선교사님의 아버지는 특이하게도 과거 야쿠자 생활을 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끊임없는 기도와 헌신으로 인해, 아버지는 야쿠자 생활을 청산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이 과정은 다니엘 김 선교사님에게 큰 충격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겉모습만 봐서는 야쿠자라고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버지께서는 늘 멋진 양복 차림에 사업가와 같은 분위기를 풍기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버지의 과거를 알고 큰 고통을 겪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며 아버지를 변화시키기 위해 헌신했습니다. 결국 아버지께서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세례를 받으셨고, 이후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셨습니다. 이러한 아버지의 극적인 변화는 다니엘 김 선교사님에게 하나님께서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임을 깨닫게 해주는 강력한 간증이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아버지와 떨어져 외할머니 댁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이는 아버지의 야쿠자 생활로 인한 어려움 때문이었는데요, 10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아버지와 함께 일본에서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일본 생활을 갈망하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간절한 요청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느끼고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일본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아버지께서는 사진 현상소를 운영하며 사업가로 변신하셨고, 이후 장로님이 되시기까지 헌신적인 신앙생활을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변화된 모습은 다니엘 김 선교사님에게 큰 감동과 도전을 주었으며, 4대째 이어져온 신앙의 유산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뜨겁게 만난 순간, 그리고 렌즈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언제 하나님을 가장 진하게 만났을까요? 흔히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났다고 표현하는 뜨거운 경험은 언제였을까요?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특정 시점을 꼽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어린 시절부터 이미 하나님을 전제로 한 세계관이 형성되었기 때문인데요, 마치 색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듯이, 다니엘 김 선교사님에게는 하나님이라는 렌즈가 이미 씌워져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굳이 꼽자면, 중학교 1학년 때 뜨겁게 예수님을 만나 사랑을 체험했던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뜨거운 만남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일까요?
중학교 1학년 때,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옥한흠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깊은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워낙 설교 듣는 것을 좋아해서, 어머니께서 선물해주신 옥한흠 목사님, 하용조 목사님 설교 테이프를 늘 들었다고 하는데요, 심지어 잠잘 때도 워크맨으로 설교를 들으며 잠들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설교를 반복해서 듣는 과정에서,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옥한흠 목사님의 설교 내용을 거의 암기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옥한흠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깨닫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사랑이 너무나 가슴 벅차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렇게 많이 울었다고 하는데요, 이 경험은 다니엘 김 선교사님의 신앙 여정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수련회 대신 산기도, 그리고 십자가 행진
일본에서 자란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한국처럼 크고 활발한 교회 문화 속에서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청소년 시절에는 교회가 작고, 또래 친구들도 거의 없어, 한국처럼 수련회나 캠프에 참여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환경이 다니엘 김 선교사님에게는 특별한 영적 훈련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교회 전도사님은 다니엘 김 선교사님과 여동생을 데리고 산기도를 다니며, 밤에 캠프파이어를 하고 찬양과 기도를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러한 특별한 산기도 훈련은 다니엘 김 선교사님에게 깊은 영적 경험을 선사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 40일 십자가 행진에 동참했던 경험입니다. 일본의 아사 홀란드 목사님과 함께 일본 전역을 십자가를 지고 횡단하는 40일간의 여정에 참여하게 된 것인데요, 이는 다니엘 김 선교사님에게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되었습니다. 힘들고 고된 여정이었지만, 십자가를 지고 걸으며 일본 땅을 위해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큰 보람과 기쁨을 느꼈다고 합니다. 이 십자가 행진은 다니엘 김 선교사님의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하고, 헌신된 삶을 살아가도록 이끄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고등학생 나이에 40일 십자가 행진이라니,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영적 아버지와의 만남, 그리고 삶의 목적
다니엘 김 선교사님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세 분의 스승 중 첫 번째 스승은, 척추 교정 의료 선교사님이셨다고 합니다. 중학교 1학년 때,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이 선교사님을 만나 특별한 훈련을 받게 되는데요, 1년에 40일씩 동남아시아로 의료 선교를 떠나시는 분이셨습니다. 어느 날,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선교사님을 따라 홍콩으로 단기 선교를 떠나게 됩니다. 이 단기 선교는 다니엘 김 선교사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경험이었습니다.
선교사님은 다니엘 김 선교사님에게 엄격한 훈련을 시켰습니다. 특히 매일 아침마다 말씀을 암송하고 묵상하는 훈련을 강조했는데요, 그 중에서도 고린도전서 10장 31절 말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말씀을 강조하며, 이 말씀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으라고 가르쳤습니다. 만약 암송을 못하면, 점심과 저녁 식사를 굶어야 할 정도로 엄격한 훈련이었지만,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이 훈련을 통해 삶의 목적을 분명히 하고, 하나님 중심적인 가치관을 확립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시편 66편 18절 말씀,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는 말씀을 통해, 매일 자신을 돌아보고 죄를 회개하는 훈련을 했습니다. 이러한 훈련들은 다니엘 김 선교사님을 더욱 성숙한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시키는 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병적인 회개, 그리고 필터링 기간
선교사님의 훈련 이후,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마치 병적으로 회개하는 시기를 겪었다고 합니다.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점검하고, 죄를 찾아내어 회개하는 삶을 살았는데요, 심지어 아버지와 영화를 보다가도 순간순간 눈을 감고 회개 기도를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다소 극단적인 모습이었지만,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그 시기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정결하게 하고, 하나님 앞에서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훈련을 했다고 고백합니다. 이러한 ‘필터링 기간’을 통해,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훈련받았습니다. 돌아보면, 그 시기가 있었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을 수 있었다고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회상합니다.
노방 전도, 그리고 첫 설교
중학교 1학년 때 예수님을 뜨겁게 만난 이후,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영혼 구원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품게 되었습니다. 특히 일본의 낮은 기독교 복음화율을 보면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강한 책임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여동생과 함께 노방 전도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말도 제대로 못 했지만, 전도사님의 격려와 도움으로 용기를 내어 거리로 나섰습니다. 여동생은 전도지를 나누어주고,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신호등 옆에 서서 예수 그리스도를 외쳤습니다. 처음에는 예수 그리스도만 반복해서 외쳤지만, 점차 “우리는 죄인입니다, 용서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천국 갑니다”와 같은 메시지를 전하게 되었습니다. 다니엘 김 선교사님에게 노방은 첫 설교 무대였던 셈입니다.
은혜로 공부하다, 그리고 전교 1등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학창 시절 공부를 특별히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니엘 김 선교사님에게 성적이라는 증거를 보여주셨다고 하는데요, 그 과정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일본에 처음 갔을 때, 일본어를 전혀 못하는 상태에서 외국인 학교에 입학하여, 처음에는 시험 문제조차 이해하지 못해 거의 모든 과목에서 낙제점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중학교 1학년 때 예수님을 만난 이후,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굴복하여 학생의 신분에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하고, 매일 책상 앞에 앉아 3시간씩 공부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처음에는 교과서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워 영어사전, 국어사전을 찾아가며 공부해야 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했습니다.
놀랍게도, 첫 학기말 시험에서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전교 1등을 차지했습니다! 4.0 만점에 3.75라는 높은 점수로 전교 1등을 한 것인데요, 본인도 깜짝 놀랄 만큼 놀라운 결과였습니다. 특히 수학은 교과서를 통째로 외울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자신의 공부 실력보다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좋은 성적을 거두게 하셨다고 믿습니다. 실제로 다니엘 김 선교사님의 성적은 은혜를 받을 때 올라가고, 은혜가 떨어지면 내려가는 롤러코스터와 같았다고 하는데요, 어머니께서는 “공부해라”라는 말 대신 “은혜 받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해주셨다고 합니다. 정말 은혜로 공부한, 은혜로 전교 1등까지 한 놀라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군사학교 진학,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
놀랍게도, 전교 1등까지 했던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신학대학이 아닌 군사학교에 진학합니다. 어린 시절 꿈이 대통령, 장군, 목사였다고 하는데요, 일단 군사학교에 가서 리더십 훈련을 받고 정치학을 공부하며 진로를 결정하겠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치학 공부는 3개월 만에 포기하고 심리학으로 전공을 바꿨다고 합니다. 군사 훈련은 잘 받았지만, 군인의 길보다는 하나님을 섬기는 길을 가야겠다는 마음이 더욱 강하게 들었습니다. 특히 군사학교 4년 동안 학교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면서, 하나님을 더욱 깊이 만나고, 주님을 섬기는 것 외에는 보람이 없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결국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졸업 후 신학대학원으로 진로를 결정하게 됩니다.
군사학교 시절은 쉽지 않았습니다. 미국 남부의 인종차별이 심한 지역에 위치한 학교였기에,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인종차별과 구타, 힘든 훈련 속에서 외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주말이 되어도 외출할 곳도 없고, 크리스마스나 추수감사절에도 가족들의 따뜻한 사랑을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더욱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매일 세 번씩 학교 채플에 가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위로와 힘을 구했습니다. 특히 여동생이 만들어준 찬양 테이프를 들으며 큰 위로를 받았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화장실에서 기도했던 습관처럼, 군사학교에서도 채플은 다니엘 김 선교사님의 기도처가 되었습니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깊이 만나고, 믿음이 더욱 성장하는 귀한 경험을 했습니다.
신앙의 배짱, 그리고 물질관
다니엘 김 선교사님의 어머니는 늘 “믿음으로 사는 것은 신앙의 배짱이다”라고 강조하셨다고 합니다. 굶어 죽으면 굶어 죽었지,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 선이 있다는 것인데요, 이러한 어머니의 가르침은 다니엘 김 선교사님의 삶의 중요한 원칙이 되었습니다. 신학대학원에 진학했을 때,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물질적인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학비도 부족하고, 생활비도 빠듯한 상황이었는데요, 설상가상으로 자동차까지 구입하면서 빚까지 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오히려 십일조를 강조하며, 믿음으로 물질적인 어려움을 극복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신기하게도 십일조를 시작하면서부터, 필요한 물질이 채워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물질에 대한 어려움을 통해,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물질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 신앙의 배짱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목회를 시작했을 때,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또 한 번의 어려움을 겪습니다. 교회에서 풀타임 사역을 제안받고 종교 비자를 신청했지만, 거절당한 것입니다. 비자는 거절당하고, 이미 학생 비자는 만료된 상황에서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하루아침에 불법체류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빚은 많고, 학비는 없고, 졸업은 코앞인데 막막한 상황이었는데요, 인생이 끝났다는 절망감에 휩싸였습니다. 하지만 절망 속에서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신앙의 배짱을 발휘했습니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불법체류자 신분을 벗어나기 위해 미국을 떠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고향으로 돌아가 어머니와 함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새로운 소명을 발견하고, 거절당했던 종교 비자를 다시 신청해보기로 결심합니다. 놀랍게도, 이번에는 비자가 발급되었고, 이후 기적적으로 학비가 채워지고, 빚도 청산하고, 무사히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목사 안수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후원 없는 사역, 그리고 신앙의 자유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지금까지도 교회 후원이나 개인 후원 없이 사역을 이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많은 사역자들이 후원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지난 20년간 후원 없이 사역하면서, 하나님께서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시는 것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현재 진행하는 사역의 80% 이상이 무보수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방법으로 필요를 채워주시고 계십니다. 심지어 어떤 교회에서는 연간 3천 불을 후원하겠다고 제안했지만,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사양했다고 합니다. 후원을 받으면, 교회에 필요한 말씀을 눈치 보지 않고 전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인데요,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후원금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하나님 말씀에만 집중하는 자유로운 사역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다니엘 김 선교사님이 강조하는 ‘신앙의 배짱’이 아닐까요?
오늘 다니엘 김 선교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타협 없는 믿음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인생의 1순위라고 고백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세상적인 욕망에 휩쓸려 하나님을 뒷전으로 미루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됩니다. 다니엘 김 선교사님의 삶은, 융통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타협이 아닌, 오직 하나님만을 향한 굳건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임을 보여줍니다.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니엘 김 선교사님의 이야기는 등불과 같은 역할을 해줄 것입니다. 믿음의 수혈이 필요하신 분들께, 이 글이 작은 위로와 격려가 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