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아 탈북 간증: 두만강을 건너 찾은 희망과 믿음의 이야기
두만강 핏빛 탈출, 절망 끝에서 만난 희망: 조수아의 기적적인 인생
생사를 넘나든 탈북, 조수아 님의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 속에서 발견하는 희망과 믿음
오늘, 여러분께서는 북한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탈북을 감행하여 극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오신 조수아 님의 놀라운 이야기를 접하게 되실 것입니다. 조수아 님은 단순히 북한을 탈출한 경험을 넘어, 인생의 깊은 고난과 눈물 속에서 신앙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희망을 발견한 분인데요, 그녀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함께 삶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선사할 것입니다. 지금부터 조수아 님의 새롭게하소서 간증 내용을 상세히 정리하여, 그녀의 삶 속에서 묻어나는 진솔한 노하우와 메시지를 함께 살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1. 꿈과 현실의 괴리, 북한에서의 삶과 탈북 결심
조수아 님은 북한에서 의대 병원에 취직하여 간호사로 근무하며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마주한 현실은 꿈과는 거리가 멀었는데요, 그녀는 당시 병원 직원 수가 약 150명 정도였고, 1994년부터 2015년까지 근무했으니 대략 30년 정도 병원에 몸담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지방 병원의 삶은 평양과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고, 겨울에는 오후 5시만 되어도 어둑해지는 환경 속에서 생활해야 했습니다.
특히 조수아 님은 중국 국경 근처에서 북한의 어두컴컴한 밤과는 대조적으로 화려하게 빛나는 중국 도시의 야경을 목격하며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못 사는 나라라고 배웠던 중국의 발전된 모습은 그녀에게 북한 체제에 대한 의문을 품게 만들었고, "우리는 불도 없는데 저 나라는 어떻게 저렇게 불빛이 많을까" 라는 생각은 북한 사회에 대한 불만을 키워나갔습니다. 더욱이 장마당 문화가 확산되면서 외부 세계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져갔는데요, 미니스커트나 망사 스타킹 같은 남한의 패션 스타일을 접하며 억압된 욕망을 느꼈다고 합니다. "20대 나이에 여자로서 예쁘게 꾸미고 싶은 마음은 당연했지만, 북한 사회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통제하는 사회였기에 쉽사리 실행에 옮길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조수아 님은 점차 북한 사회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게 되었고, 더 나은 삶을 갈망하며 탈북을 결심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결정적으로 조수아 님이 탈북을 감행하게 된 계기는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의 탈출 시도였습니다. 두 명의 친구와 함께, 남자 의사 친구와 여자 약사 친구와 함께 두만강을 건너기로 결심한 것인데요, 조수아 님은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고 말할 정도로 무모한 시도였습니다. 그녀는 친구들과 함께 두만강을 건너기로 하고, 밤늦은 시간에 인적이 드문 곳을 택해 강을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탈북은 시작부터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강을 건너던 중 갑자기 북한 군인들의 총격이 시작된 것인데요, "느낌이 싸하다" 라는 불안감을 느꼈을 때, 눈앞에 총구가 겨눠지고 있었고, "엎드려!" 라는 외침과 함께 총알이 빗발쳤습니다. 조수아 님은 "진짜 머리가 하얘지고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며 당시의 공포를 생생하게 묘사했습니다. 총알이 빗발치는 상황 속에서 친구들과 뿔뿔이 흩어졌고, 어둠 속에서 필사적으로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탈북자다! 잡아라! 생포해라! 죽여라!" 라는 군인들의 고함소리가 귓가를 울리는 가운데, 조수아 님은 오직 살아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정신없이 뛰었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도망치던 중, 조수아 님은 두만강에 발을 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두만강은 겉보기와는 달리 매우 위험한 곳이었는데요, 강 밑바닥은 뻘과 모래로 이루어져 있어 발이 푹푹 빠지는 늪과 같았고, 물살 또한 매우 거셌습니다. 두 발을 딛는 순간 몸이 굳어지는 듯했고, 어른 몸집의 절반이나 잠길 정도로 깊은 물에 빠져 허우적거렸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오직 팔을 휘저으며 간신히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5시간 반에서 6시간 동안 사투를 벌인 끝에 간신히 강을 건너 중국 땅에 발을 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탈북 여정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는데요, 중국에서의 생활 역시 순탄치 않았습니다.
2. 중국에서의 고난과 만남, 그리고 신앙의 씨앗
중국에 도착했지만 조수아 님을 기다리는 것은 또 다른 고난의 시작이었습니다. 밀입국자 신분이었기에 불안정한 생활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고, 언제 붙잡혀 북송될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조수아 님에게는 한 줄기 희망이 있었는데요, 그것은 바로 중국에서 만난 조선족 여인이었습니다.
조수아 님이 중국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병원에서 만난 조선족 여인은 한국에서 신학을 전공한, 남편이 한국 목사인 독특한 이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병원에 심방을 왔다가 우연히 조수아 님을 만나게 되었고, 북한 사람 특유의 눈빛에서 불안과 초조함을 감지했다고 합니다. 조선족 여인은 조수아 님에게 호감을 느끼고, 교회에서 찬양만 따라 부르면 된다며 접근했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덤으로 선물도 준다는 말로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조수아 님은 "선물"이라는 말에 솔깃하여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찬송가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교회에 나갔을 때 조수아 님은 성경이나 기독교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 라는 이름조차 생소하게 느껴졌고, 성경은 그저 서양의 미신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찬양은 달랐습니다. 북한에서도 많이 불렀던 노래들과 비슷한 멜로디의 찬송가를 들으며 묘한 친근감을 느꼈는데요, 특히 "하나님의 사랑" 을 노래하는 가사는 낯설지만 따뜻하게 다가왔습니다. 조수아 님은 찬송가를 부르면서 왠지 모를 위로와 평안함을 느꼈고, 점차 교회에 마음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조수아 님은 특히 찬송가 가사 중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라는 구절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찬송가를 통해 십자가의 길, 고난, 하나님의 사랑과 같은 기독교적 가치들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고, 자신의 삶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찬송가의 멜로디와 가사는 그녀의 메마른 영혼을 촉촉하게 적시는 단비와 같았고, 점차 신앙에 대한 갈망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조수아 님은 성경 말씀도 접하게 되었습니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이며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라" (여호수아 1장 5절) 와 같은 성경 구절은 그녀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주었습니다. 낯선 땅에서 불안과 두려움 속에 살아가던 조수아 님에게, 성경 말씀은 삶의 지침이자 희망의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비록 처음에는 성경 말씀이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꾸준히 말씀을 접하면서 점차 그 의미를 깨닫게 되었고, 신앙은 그녀의 삶 속에서 조금씩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에서의 생활은 여전히 불안정했습니다. 불법 체류 신분으로 돈을 벌기 위해 위험한 일도 감수해야 했고, 결국 공안에 체포되어 북송될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조수아 님은 "북한에 갈래, 아니면 국가보위부에 협조할래?" 라는 선택지 앞에서 국가보위부의 협조를 택했고, 그 대가로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국가보위부의 감시 속에서 자유롭지 못한 생활을 이어가야 했고, 결국 자수를 결심하게 됩니다.
3. 북송, 감옥에서의 절망과 방언 기도, 그리고 탈출
자수를 결심한 조수아 님은 북한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용서와 관용이 아닌, 가혹한 현실이었습니다. 자수 후 조수아 님은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되어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으며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됩니다. 감옥에서의 생활은 상상 이상으로 끔찍했습니다. 좁고 더러운 감방, 끊임없는 구타와 고문, 굶주림과 질병,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은 완전히 짓밟혔습니다. 조수아 님은 "사람을 짐승보다 못하게 취급했다" 며 당시의 참혹함을 털어놓았습니다. 물고문, 각목 구타, 고춧가루 고문 등 상상하기 힘든 고문들이 자행되었고, 하루하루가 생지옥과 같았습니다.
감옥에서의 고통은 육체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고통까지 동반했습니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 조수아 님은 절망감과 무력감에 휩싸였고, 삶의 의지를 잃어갔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고통스러운 시간들이었습니다. 감옥은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절망의 공간이었고, 조수아 님은 그 속에서 깊은 절망에 빠져들었습니다.
하지만 절망의 끝자락에서 조수아 님은 신앙의 빛을 발견하게 됩니다. 감옥에서 극심한 고통을 겪으면서 조수아 님은 자신도 모르게 간절한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살려주세요. 제발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 처음에는 단순한 절규에 가까웠던 기도는 점차 진심 어린 간구로 바뀌어갔고, 기도를 통해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방언 기도였습니다.
조수아 님은 감옥에서 방언 기도를 받게 되었다고 간증했습니다. "절박하니까 기도가 절로 나왔다" 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는데요,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슬픔과 고통, 절망과 간절함이 뒤섞인 기도는 방언으로 터져 나왔습니다. 방언 기도는 조수아 님에게 놀라운 위로와 평안함을 가져다주었고, 절망 속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었습니다. "기도를 하면서 정말 도망갈 구멍이 생기는 것 같았다" 며 방언 기도의 신비로운 경험을 증언했습니다.
방언 기도를 통해 조수아 님은 감옥에서의 고통을 견뎌낼 수 있었고, 삶의 희망을 다시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감옥에서 "하나님, 살려만 주신다면 평생 주님을 위해 살겠습니다" 라는 서원을 했고, 만약 살아서 나가게 된다면 북한의 실상을 전 세계에 알리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사야 41장 10절, 여호수아 1장 5절, 마태복음 6장 33절 등 성경 구절을 암송하며 기도했고, 성경 말씀을 통해 용기와 지혜를 얻었습니다. 감옥은 절망의 공간이었지만, 조수아 님에게는 신앙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기적은 정말로 일어났습니다. 죽음 직전까지 갔던 조수아 님에게 탈출의 기회가 찾아온 것입니다. 감옥에서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그곳에서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합니다. 탈출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병원 2층에서 뛰어내려 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고, 다시 붙잡힐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조수아 님은 탈출 과정을 회상하며 "하나님이 율(국경)까지 너무 힘들게 왔는데 또 붙잡히면 어떻게 됩니까 라고 기도했을 때, 친구 약사의 도움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며 기적적인 순간이었음을 강조했습니다.
4. 대한민국에서의 새로운 삶, 고난 속에서 피어난 굳건한 믿음
대한민국에 도착한 조수아 님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탈북 과정에서 겪었던 육체적, 정신적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고, 한국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 또한 쉽지 않았습니다. 낯선 문화, 언어 장벽, 경제적 어려움, 사회적 편견 등 수많은 어려움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조수아 님은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감옥에서 얻었던 굳건한 믿음은 그녀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되었습니다.
조수아 님은 한국에서 의사 시험에 합격하여 의사가 되는 꿈을 이루었습니다. 탈북 과정에서 겪었던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선 그녀의 의지와 노력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의사가 된 후에도 조수아 님은 끊임없이 봉사활동에 참여하며 사회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특히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며 탈북민들을 위한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조수아 님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남편과의 만남은 우연처럼 시작되었지만, 신앙 안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며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습니다. 남편 또한 불교 신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여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며, 이는 조수아 님의 삶 속에서 또 하나의 놀라운 변화입니다.
물론 조수아 님의 삶이 항상 순탄했던 것은 아닙니다. 한국에 와서도 경제적인 어려움, 아이들의 질병 등 끊임없이 고난이 찾아왔습니다. 특히 둘째 아이가 희귀병으로 생사의 고비를 넘나드는 힘든 시간을 겪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조수아 님은 신앙의 힘으로 어려움을 극복했고, 더욱 굳건한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고난 가운데 축복이 있다" 는 성경 말씀처럼, 조수아 님의 삶은 고난 속에서 더욱 빛나는 믿음의 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조수아 님은 현재 의사로서, 엄마로서, 그리고 신앙인으로서 바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북한과 탈북민들을 위한 기도와 봉사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북한의 실상을 알리고, 탈북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메신저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조수아 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과 삶의 가치는 물질적인 풍요나 성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믿음을 굳건히 지켜나가는 데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마지막으로 조수아 님은 앞으로의 기도 제목에 대해 "북한을 위해 더 많이 기도하고, 더 겸손하게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며, 낮아지는 자세로 순종하며 살아가고 싶다" 고 밝혔습니다. 그녀의 겸손하고 진솔한 모습은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도전을 줍니다. 조수아 님의 간증은 단순한 개인의 스토리를 넘어, 고난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의 본보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오늘 조수아 님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또한 삶의 어려움 속에서도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희망을 잃지 않도록, 그리고 주변의 어려움을 겪는 이웃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