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민 이사의 헝겊 원숭이 운동본부, 세 아이와 따뜻한 밥 이야기
## 세 아이의 '엄마'가 된 김보민 이사의 밥 이야기
👧👦🧒 세 아이가 바꾼 김보민 이사의 인생: 헝겊 원숭이 운동본부 이야기
안녕하세요, 오늘 여러분께는 특별한 감동과 따뜻함을 선사할 이야기를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바로 헝겊 원숭이 운동본부의 김보민 이사님의 이야기인데요,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세 명의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통해 시작된 놀라운 여정에 대해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김보민 이사님은 단순히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는 것을 넘어, 그들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 희망과 사랑을 전하는 '엄마'와 같은 존재가 되셨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 따뜻한 울림을 전하며, 진정한 나눔과 헌신의 가치를 되새기게 합니다.
김보민 이사님은 동네에서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을 제공하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구체적으로 식당 운영, 반찬 배달, 도시락 나눔 등을 통해 아이들의 굶주린 배를 채우고, 정서적인 지지 기반을 마련해주고 있는데요. 특히 부모님의 퇴근이 늦어 저녁 식사를 제대로 챙겨 먹기 힘든 아이들, 방과 후 학원과 학원 사이에서 배고픔을 느끼는 아이들, 그리고 가정 환경이 어려워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이 주된 도움 대상입니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김 이사님의 따뜻한 손길을 통해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김보민 이사님은 유명 작곡가 김도훈 씨의 친누나입니다. 김도훈 작곡가는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 아이유의 '좋은 날', 씨스타의 'Loving U' 등 수많은 히트곡을 탄생시킨 대한민국 대표 작곡가인데요. 뜻밖의 가족 관계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분들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김보민 이사님은 동생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으며, 사회복지 분야에서 묵묵히 헌신하고 계십니다. 어머니의 성가 사랑 덕분에 어릴 적부터 음악을 접했지만, 정작 기타 코드를 동생에게 가르쳐 준 사람은 김보민 이사님이라고 합니다. 동생 김도훈 씨는 누나의 헌신에 깊은 감사를 표하며,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헝겊 원숭이 운동본부 설립 당시 사단 법인 설립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했을 뿐만 아니라, 현재 식당 보증금까지 지원하며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김보민 이사님이 아이들을 돕는 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 계기는 35살에 시작한 공부방 운영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교회 집사님과 함께 작은 공부방을 열어 공동육아를 시작했는데, 점점 어려운 환경에 놓인 아이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밥을 챙겨주고 상담도 해주는 공간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이는 현재 지역아동센터와 유사한 개념인데요. 바로 이 공부방에서 김 이사님의 인생을 바꾼 세 명의 아이들을 만나게 됩니다.
첫 번째 아이는 공부방 초창기에 만난 교회 집사님의 아들이었습니다. 5학년이었던 이 아이는 김 이사님을 몹시 따랐고, 늘 함께 다니고 싶어 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아이는 김 이사님께 어릴 적 슬픈 기억을 털어놓았습니다. 부모님의 사업 실패로 잠시 할머니 댁에 맡겨졌었는데, 그때의 슬픔 때문에 함구증까지 겪었다는 것입니다. 다섯 살 때까지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는 아이의 이야기는 김 이사님의 마음을 깊이 아프게 했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느끼고 기억하며, 상처받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더욱이 아이는 동네 슈퍼 아줌마가 자신에게 따뜻하게 대해준 것을 '좋은 어른'의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슈퍼 아줌마는 아이에게 밥을 먹었는지, 학교는 잘 다녀왔는지 물어봐주고, 따뜻한 자리를 내어주며 함께 TV를 보곤 했다고 합니다. 이 아이를 통해 김 이사님은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도움보다, 진심으로 관심을 가져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좋은 어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두 번째 아이는 교회 전도사님의 소개로 만난 검정고시 준비생이었습니다. 아이의 가정 상황은 더욱 심각했습니다. 아빠와 형과 함께 살았지만, 갑자기 아빠가 사라지고 형마저 집을 나가면서 16살 어린 나이에 홀로 남겨진 것입니다. 월세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아이를 보며 김 이사님은 큰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결국 아이를 9개월 동안 자신의 집에서 데리고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아이들에게 방을 내어주고 함께 생활하면서 검정고시를 볼 수 있도록 도왔지만, 청소년 반항기에 접어든 아이는 쉽사리 마음을 열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아이가 집에서 불을 낼 뻔한 사건까지 벌어지자, 남편의 반대에 부딪히게 되었고, 20년 만에 연락이 닿은 언니의 도움으로 그룹홈에 아이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김 이사님은 청소년 시기의 아이들을 품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경험은 김 이사님을 복지 공무원과 연결시켜주는 계기가 되었고, 세 번째 아이들을 만나게 되는 중요한 발판이 되었습니다.
세 번째 아이들은 복지 공무원을 통해 만난 할머니와 함께 사는 남매였습니다. 엄마는 17살에 아이들을 낳고 집을 나갔고, 아빠는 알코올 중독으로 돌아가셨습니다. 할머니는 고아원에 보내는 대신 손주들을 직접 키우기로 했지만,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오빠는 학교를 중퇴했고, 여동생은 학교 폭력 문제로 강제 전학 위기에 놓여 있었습니다. 김 이사님은 이 남매를 돕기 위해 경찰서와 학교를 찾아다니며 탄원서를 쓰고, 상담을 받는 등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알고 보니 아이들은 선배들에게 돈을 갈취당하고 있었고, 돈을 마련하기 위해 친구들의 돈을 빼앗거나 조건만남까지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갈 곳 없는 아이들은 공부방으로 찾아와 밤을 새거나, 심지어 조건만남을 하려는 성인 남성들이 집 앞으로 찾아오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위험에 처한 아이들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 김 이사님은 용기를 내어 아이들을 보호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세 아이들을 만나면서 김 이사님은 어려운 환경에 놓인 아이들을 돕는 것이 자신의 소명임을 확신하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아이들을 위한 헌신적인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다행히 세 아이들은 현재 어엿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했고, 김 이사님은 이들을 통해 큰 보람과 행복을 느끼고 있습니다.
세 아이와의 만남을 통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김보민 이사님은 본격적으로 헝겊 원숭이 운동본부를 설립하고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특히 '밥'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닫고,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을 제공하는 데 힘썼습니다. 계기는 중학교 선생님의 요청으로 시작된 '푸드 박스' 지원 사업이었습니다. 방학 동안 급식을 먹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인스턴트 식품을 담은 푸드 박스를 만들어 전달했지만, 늘 따뜻한 밥을 해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러던 중 '따뜻한 밥을 해주고 싶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푸드트럭 사업을 구상하게 되었고, 덜컥 3년간 4억 5천만 원을 지원받는 사업에 선정되면서 본격적인 밥 지원 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반찬 배달, 푸드트럭 운영 등 다양한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밥을 제공했고,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는 급식 중단으로 밥을 굶는 아이들이 급증하면서 헝겊 원숭이 운동본부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화요일 푸드트럭, 금요일 반찬 배달, 토요일 도시락 배달 등 주 3회 밥 지원을 이어갔고, 2021년에는 무려 9만 명에게 밥을 제공하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습니다.
2021년 사업 지원이 종료되면서 재정적인 어려움에 직면했지만, 김보민 이사님은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는 일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사비를 털어 식당을 열기로 결심했고, 동생 김도훈 씨의 도움으로 식당 보증금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식당 운영 초기에는 주방 공사, 기자재 구입 등 예상치 못한 비용이 발생했지만, 교회 오빠 출신인 병원 이사장님의 1천만 원 지원, 이사님의 회사 사장님의 500만 원 지원, 그리고 수많은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기적적으로 식당을 오픈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도 유튜버, 국회의원 등 각계각층의 후원이 이어지면서 식당 운영은 안정화되었고, 현재까지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특히 푸드트럭 운영 당시에는 날씨가 좋지 않아도 아이들을 위해 기적적으로 날씨가 맑아지는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반찬 배달을 중단하려 했을 때는 배달 노조의 도움으로 배달 서비스를 지속할 수 있었고, 금정역 인근 아이들을 위해서는 뜻밖의 장소에 도시락 나눔 공간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김보민 이사님은 하나님의 섬세한 인도하심과 기적적인 도우심을 경험했습니다.
현재 헝겊 원숭이 운동본부는 군포시 1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화요일과 금요일 주 2회 식당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반찬 배달 서비스는 학교와 지역사회의 추천을 받아 선정된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제공됩니다. 식당 운영 외에도 '먹거리 꾸러미' 지원 등을 통해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돕고 있습니다. 김보민 이사님은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가진 전문가로서, 아이들의 정서적인 안정과 건강한 성장을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돌봄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김 이사님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으며, 헝겊 원숭이 운동본부는 지역 사회의 소중한 존재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헝겊 원숭이 운동본부를 운영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아이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고, 아이들이 진심으로 마음을 열 때라고 합니다. 특히 아이들이 "선생님은 마음을 얻는 사람"이라고 말해줄 때, 그 어떤 칭찬보다 큰 행복과 감동을 느낀다고 합니다. 푸드트럭 운영 당시, 처음 보는 아이가 "선생님은 도대체 뭐가 남아요?"라고 질문했을 때, 옆에 있던 아이가 "마음을 받잖아"라고 대답해 준 일화는 김 이사님에게 큰 감동과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아이들의 마음을 얻는 것, 그것이 바로 김 이사님이 헝겊 원숭이 운동본부를 통해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입니다. 봉사자들과 함께 밥을 짓고, 아이들을 돌보는 일상은 고되고 힘들지만, 아이들의 웃음과 사랑 덕분에 늘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사역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교회에 나오지 않던 분이 헝겊 원숭이 운동본부 봉사활동을 통해 다시 교회에 나오게 되고, 봉사자들끼리 서로 격려하고 지지하는 따뜻한 공동체를 이루는 것도 김 이사님에게 큰 기쁨입니다.
헝겊 원숭이 운동본부 활동을 통해 김보민 이사님 자신도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예전보다 훨씬 밝아지고 따뜻해졌다고 이야기합니다. 과거에는 웃는 것이 어색하고 늘 인상을 쓰고 다녔지만, 지금은 환한 웃음이 트레이드마크가 되었습니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 늘 돈을 아끼고 짠순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지금은 아이들에게 아낌없이 베푸는 '큰 손'이 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선물, 장학금 지원 등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하고, 풍성하게 나누는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나누면 나눌수록 더 풍성해지는 나눔의 기적을 몸소 체험하면서, 물질적인 풍요보다 마음의 풍요가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 깨달았습니다. 감사 일기를 쓰면서 일상 속에서 더욱 많은 감사를 발견하고, 평안함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특히 시편 23편 말씀을 묵상하며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고백이 삶 속에서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방송 말미에 주영훈 님은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을 꼬집으며, 헝겊 원숭이 운동본부의 활동이 진정한 교육의 방향을 제시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맹목적인 경쟁 교육, 입시 위주 교육에서 벗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공동체 의식 함양, 나눔과 배려의 가치를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 김보민 이사님의 헌신적인 삶 자체가 아이들에게 '왜 공부해야 하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을 찾아가도록 이끄는 훌륭한 교육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부모의 이혼, 가정 불화 등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의 어려움을 언급하며, 헝겊 원숭이 운동본부와 같은 따뜻한 손길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헝겊 원숭이 운동본부를 통해 더 많은 아이들이 따뜻한 밥을 먹고, 사랑과 희망을 품고 성장할 수 있기를 응원하며 마무리되었습니다. 김보민 이사님의 이야기는 단순한 미담을 넘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깊이 있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