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PS 7년 투병 후기와 김소민 자매의 감동적인 극복 이야기
눈물의 CRPS 극복, 7년 고통 끝 희망을 보다
"여니엘을 녹화 내내 울게 만든 한 자매의 용감한 고백!ㅣ김소민 자매ㅣ새롭게하소서" 상세 내용 정리 및 노하우 소개
이번 글에서는 유튜브 채널 "새롭게하소서"에 출연한 김소민 자매님의 간증 내용을 상세히 정리하고, 그 안에 담긴 삶의 지혜와 교훈을 깊이 있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김소민 자매님은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CRPS)이라는 희귀난치병을 7년간 겪으면서 겪었던 고통과 절망, 그리고 그 가운데서 만난 하나님의 은혜와 회복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누어 주셨는데요, 2만 자 내외의 분량으로, 텍스트 내용을 상세히 정리하고, 추가적인 내용은 덧붙이지 않고, 영문 텍스트를 한국어로 재작성하여 의미를 정확하게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기법과 방법론은 구체적이고 디테일하게, 정량적으로 서술하며, 요약은 지양하고, 한글 텍스트는 3~4문장 줄바꿈을 적용하고, 불필요한 쉼표나 따옴표는 제거하며, 불릿 대신 서술형 문장과 문단을 사용하여 작성될 것입니다. 문장 연결 어구를 풍부하게 사용하여 매끄러운 흐름을 만들고, 직접 설명 방식을 활용하여 핵심 내용과 중요 노하우를 극도로 자세하게 전달하며, 불필요하거나 중복되는 내용은 짧게 요약하겠습니다. "~습니다" 문체를 사용하여 친근하고 자세하며 친절한 느낌을 주고, 서술형으로 작성될 이 글에서는 중요 키워드와 내용을 볼드체로 강조하여 가독성을 높이고 (약 15% 내외), 문장 연결 어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특히 "~인데요" 연결 어구를 자연스럽게 사용하겠습니다. 중요 문장이나 단어는 볼드체로 강조하고, 긴 문장은 단락을 나누어 구분하며, 문단의 첫 문장은 볼드체로 작성하는 것을 잊지 않겠습니다. 제목은 "~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형태로, "블로그 글"이나 "설명"과 같은 표현은 사용하지 않겠습니다. 마크다운 렌더링 오류를 방지하기 위해 볼드체 괄호나 따옴표 사용에 주의하고, 수치, 통계, 데이터, 레퍼런스, 논문, 저자, 연도 등을 풍부하게 인용하여 전문성을 높이겠습니다. 볼드체 괄호나 따옴표 오류에 다시 한번 주의하며, 직설적이고 명확한 어조, 강한 부사, 명령, 단정, 확신, 강조를 사용하여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하겠습니다. 대화체와 문어체를 7:1 비율로 혼용하여 친근함과 전문성을 동시에 유지하고, 수사적 질문을 빈번하게 사용하여 독자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며, 과장법, 강조, 집중 기법을 활용하여 내용을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겠습니다. 비유와 예시를 적절히 활용하여 복잡한 개념을 쉽게 설명하고 (일상 비유, 투자 예시 등), 전문 용어와 일상 언어를 조화롭게 사용하여 전문 용어는 쉽게 풀이하겠습니다. 문제 제기 - 해결책 제시, 단계적 설명, 반복 강조, 대조/비교, 구체적 예시, 통계/데이터 인용, 전문 레퍼런스 인용 등의 방법을 활용하여 내용을 풍부하게 구성하고, 마크다운 형식을 준수하여 소제목 (##), 볼드체 강조, 헤더 (## 레벨), 서술형 문단 (3~5문장), "~인데요", 볼드체 15% 등의 형식을 지키겠습니다. 유튜브 썸네일 삽입을 고려하고, 볼드체 인용구 오류 (ex: 기대효용) 에 유의하며, 전체 내용을 한 번에 제공하고, 짧은 컨텍스트 분할은 지양하며, 3~4줄 줄바꿈, 불필요한 쉼표 제거, 반복 제거/통합/정돈, 문체 준수, 체계적/정돈된 글쓰기를 통해 완성도를 높이겠습니다. 마크다운 헤더 (##) 를 사용하여 내용을 구분하고, 볼드체 15% (초과 금지) 를 엄격히 준수하며, 순수 마크다운 형식 ('markdown' 단어, 코드 블럭 금지) 으로 작성될 이 글을 통해 김소민 자매님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과 희망을 전달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7년간의 고통,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 (CRPS)
김소민 자매님은 7년 동안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CRPS)이라는 희귀난치병으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고 합니다. CRPS는 “저주받은 질병”이라고 불릴 정도로 통증이 심한 병인데요, 사람이 느낄 수 있는 통증 지수를 0점에서 10점으로 나눌 때, 출산의 고통이 7점인데 반해, CRPS는 9점에서 10점의 통증이 지속적으로 느껴진다고 합니다 (참고: 국제통증학회). 김소민 자매님은 통증이 너무 심할 때, “뼈가 으스러지면서 드릴로 뚫리는 것 같았고, 곪아 터져 진물이 나는 속살에 알코올을 들이붓는 것 같은 통증”이라고 표현하며, 그 고통의 정도를 짐작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심지어 통증을 잊기 위해 자해를 시도할 정도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는데요, 물방울이 피부에 닿는 것조차 쇠구슬처럼 느껴지는 통증 때문에, 씻기 위해 면도날로 멀쩡한 피부를 긋고, 그 상처의 따가움으로 통증을 잊으려 했다는 이야기는 CRPS의 고통이 얼마나 심각한지, 그리고 김소민 자매님이 얼마나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 있었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24시간 지속되는 통증은 물론, 하루에도 수차례 돌발적으로 찾아오는 통증은 김소민 자매님을 더욱 힘들게 했습니다. 통증을 잡기 위해 하루에 네 번, 2~30알의 약을 먹었지만, 통증은 잡히지 않았고, 오히려 더 강력하게, 수차례 돌발적으로 통증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돌발통이 올 때는 속효성 마약성 진통제를 추가로 먹고, 수건을 두껍게 물거나 마우스피스를 물어야 할 정도였는데요, 심지어 이를 악물다 못해 치아에 금이 갈 정도였다고 합니다. 통증이 너무 심해 숨을 쉴 수 없을 때는 119를 눌러 응급실에 가서 몰핀이나 케타민과 같은 마약성 진통제, 향정신성 의약품을 주사로 맞아야 했습니다.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이러한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은 정말 믿기 어려운데요, 김소민 자매님은 어떻게 이 모든 고통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요?
완벽주의자에서 환자로,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어린 시절 김소민 자매님은 완벽을 추구하는 완벽주의자였다고 합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을 힘들어했고, 유치원 야외 활동이 취소되면 울면서 떼를 쓰는 아이였는데요, 소풍을 가고 싶었다기보다, “왜 취소돼서 못 가지?”라는 생각에 꽂혀서 그랬다고 합니다. 8살 때에는 여의도로 놀러 가기로 한 날, 폭우로 한강이 범람했는데도, “오늘 가기로 한 날인데 가야지!”라며 고집을 꺾지 않고, 결국 폭우를 뚫고 여의도에 갔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그런 딸을 야단치기보다, 딸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결국 함께 여의도로 향했는데요, 이러한 에피소드는 김소민 자매님의 완벽주의적인 성향과, 동시에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학창 시절 김소민 자매님은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고 생각하고, 남들에게 뒤쳐지거나 부족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싫어하여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합니다. 시험 기간에는 쉬는 시간에 친구들이 시험지를 가져가 정답을 맞춰볼 정도로 모범생이었는데요, 수학을 특히 좋아해서 수학만큼은 무조건 100점을 받아야 했다고 합니다. 한번은 수학 문제를 하나 틀렸는데, 풀이 과정은 맞았지만 정답이 반복되어 오답 처리가 된 것을 보고, 선생님께 찾아가 이의를 제기할 정도로 완벽함을 추구했습니다. 장래 희망은 변리사였는데요, 완벽주의적인 성향과 꼼꼼함, 뛰어난 학업 능력은 변리사라는 직업과 잘 어울리는 듯합니다. 독서실 문 열기 전부터 기다리고, 쉬는 시간, 밥 먹는 시간, 심지어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공부에 매진했고, 독서실 문 닫기 직전까지 공부하는 열정적인 학생이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변리사 1차 시험에는 합격했지만, 2차 시험에서 떨어지고, 직장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교사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2018년 5월 5일 퇴사 기념으로 속초 여행을 다녀온 다음 날부터 바로 교사 임용 시험 준비를 시작합니다. 시험이 6~7개월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완벽주의자 김소민 자매님은 다시 한번 열정적으로 공부에 매진합니다. 하지만 쉼 없이 달려온 탓일까요, 몸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부비동염, 편도선염, 폐렴, 장염, 대상포진까지, 각종 질병이 끊임없이 찾아왔는데요, 20대 젊은 나이에 겪는 잇따른 질병들은 김소민 자매님의 건강을 악화시켰고, 결국 2018년 9월,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CRPS)이라는 진단을 받게 됩니다.
대상포진으로 시작된 고통은 CRPS라는 희귀난치병으로 이어졌고, 김소민 자매님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게 됩니다. 처음 마취통증학과 진료를 받으러 갔을 때, 의사 선생님은 “환자분,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 같습니다. 이 질병은 제가 치료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전문으로 담당하시는 교수님이 있으니 그분께 넘겨드릴게요. 그리고 절대 포기하지 마시고, 아무리 힘들어도 열심히 치료받으셔야 돼요.” 라고 말하며, 심각한 상황임을 암시했습니다. 당시에는 CRPS가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몰랐기에, 김소민 자매님은 “그냥 금방 지나갈 줄 알고, 굳이 내가 이 질병에 대해 알아야 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고 합니다. 신경차단술 치료를 받고 목발을 짚고 독서실에 가서 공부를 계속할 정도로, 병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CRPS는 점점 더 심해졌고, 9월 초 진료 당시 양말 신기 어려웠던 발은, 10월에는 땅에 디딜 수조차 없게 되었습니다. 걷기 위해 다리를 움직이고 땅에 닿는 순간, 발이 불타는 듯한 통증이 찾아왔고, 지속적인 통증에 더해 돌발통까지 생기면서, 더 이상 공부를 지속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절망 속에서 만난 하나님의 은혜
9월 초 CRPS 진단 후, 한 달 만에 병세는 급격히 악화되었고, 김소민 자매님은 결국 부모님께 CRPS 진단 사실을 털어놓게 됩니다. 마약성 진통제를 먹으며 공부했고, 심해지면 몰핀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말에, 부모님은 큰 충격을 받습니다. 의사들은 “그 질병은 걸리면 안 되는 병이고, 우리나라에서는 치료도 없고, 완치할 수 없는 병”이라고 말했고, 가족들은 절망에 빠집니다. 대상포진에서 시작된 CRPS는 “재수 없는 케이스”라고 의사들은 표현했지만, 김소민 자매님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이번 어려움도 잘 극복해 내서 고난을 극복한 멋진 사람이 되자.”, “이 시간을 통해 하나님이 나에게 무언가를 말씀해 주시는지, 조금 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하자.” 라고 생각하며, 담대하게 병과 싸워나가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CRPS의 고통은 상상 이상이었고,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극심한 통증은 모든 것을 무너뜨렸습니다. 28살 생일에는 “이번 어려움도 잘 극복해 내자”고 다짐했지만, 29살 생일에는 “내가 이 세상에서 맞이하는 마지막 생일”이라고 확신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루에 먹는 약은 10알을 넘어섰고, 기본적인 생활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먹어도 소화시키지 못하고 토하기 일쑤였고, 잠은 하루 30분도 채 자지 못했습니다. 마약성 진통제 부작용으로 변비, 피부 가려움증, 발톱 손상 등, 각종 부작용에 시달렸고, 돌발통은 24시간 지속되는 통증과 별개로 하루에도 수차례 찾아왔습니다. 돌발통이 오면 응급실에 실려 가 몰핀 주사를 맞아야 했고, 심지어 119를 누르지 못하고 기절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지만, 20대라는 젊음이 오히려 “문제”라고 느껴질 만큼,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날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환자만큼 힘든 것은 보호자라고 했던가요, 김소민 자매님의 고통은 가족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밤마다 응급실에 실려 가는 딸 때문에, 어머니는 밤잠을 설쳤고, 초등학교 교사였던 어머니는 결국 딸을 간병하기 위해 퇴직까지 했습니다. 가족들에게 짐을 지우는 것 같아 죄송했지만, 가족들은 묵묵히 고통을 감내했습니다. 어머니는 딸을 위해 하루 종일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었지만, 약 부작용으로 고춧가루, 향신료, 자극적인 음식, 특정 향에 예민해진 딸은 음식 섭취에 어려움을 겪었고, 가족들의 식사 시간은 살얼음판을 걷는 듯 긴장감 속에서 이어졌습니다. 남동생은 “자기도 식사 시간만큼은 마음 편하게 먹고 싶다”고 토로할 정도로, 가족 모두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힘든 시간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딸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딸이 살 빠지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CRPS에 대해 찾아볼수록 무서움과 절망감이 커졌지만, 딸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딸의 신음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119 구급차 소리가 집으로 향할 때면, 찢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딸의 고통이 제발 멎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퇴근 후 샤워하면서 펑펑 울기도 하고, 먹구름 낀 하늘을 보며 “저 먹구름이 현재 나의 모습, 우리 가정의 모습이지만, 금세 흘러갈 것이다.” 라고 되뇌이며 희망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뒷산과 우면산을 오르며 기도하고, 기도문을 써 내려가며 간절함을 담았습니다. 딸이 밥 한 숟갈이라도 더 먹을 때, 밤에 잠을 푹 잤다고 말할 때, 약을 조금이라도 줄일 때, 어머니는 기쁨과 희망을 느꼈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과 기도 덕분이었을까요, 김소민 자매님은 절망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간 동안,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며 목사님 설교 말씀을 듣고, 찬양을 들었습니다. 20살 때 방황했던 시간들을 후회하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갈망하게 되었는데요, 아픈 와중에도 주일 예배에 나가기 위해, 일주일간 치료 일정과 컨디션을 조절했고, 예배드리다 응급실에 실려 가는 일이 반복되었지만, 예배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제가 나쁜 짓 하겠다는 거 아니잖아요. 진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싶어요. 일주일에 한 시간 예배 시간 동안만이라도 버틸 수 있는 통증을 허락해 주세요.” 매일 기도했고, 하나님은 기적적으로 통증을 완전히 없애주지는 않았지만, 예배의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조금씩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찬양 시간에 다른 성도들처럼 일어나 찬양하고 싶다는 소망도 간절했습니다. 통증 때문에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지만, 용기를 내어 예배 시간에 일어나 찬양했고, 20분 찬양 시간 동안 땀으로 옷이 흠뻑 젖었지만, 자유롭게 찬양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습니다. 박수 치면 몸에 진동이 느껴져 통증이 심해졌지만, 박수 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쁨이 통증보다 더 컸습니다. 예배를 간절히 사모하게 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도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김소민 자매님을 오랫동안 알아왔던 지인들은, “네가 그렇게 아픈 가운데 포기하지 않고 붙잡고 있는 하나님이 누군지 궁금하다.” 며 교회를 찾기 시작했고, 믿지 않던 부부는 태중에 있는 아이 이름을 성경 인물로 짓고,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 사람으로 키우겠다고 다짐하기도 했습니다. 아프기 전에는 전도하지 못했지만, 오히려 아픔 속에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CRPS를 “저주받은 질병”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김소민 자매님은 “기독교인이 저주라는 표현을 쓰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하지만 아픔 속에서도 하나님만으로 행복해하는 모습을 통해,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하나님의 이름만 높임 받으시고, 어떤 상황에서든지 일하고 계시는구나.”, “내가 아픔 속에서도 하나님 한 분만으로 행복해하는 모습을 통해, 또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며 하나님을 믿게 되는구나.” 라는 사실을 깨닫고 감사했습니다. 성경 말씀에 대한 갈망도 커졌습니다. “이 아픔을 버틸 수 있게끔 매일 성경 말씀을 읽게 해 주세요.” 기도했고, 하루 30분 이상 앉아 있을 힘을 달라고, 응급 상황 없이 매일 성경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게 해달라고 간구했습니다. 놀랍게도 2021년 한 해 동안 매일 30분에서 한 시간씩 성경을 읽었고, 성경 일독을 완수했습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깊어졌고, “하나님이 내가 하나님과 하나님을 계속 가까이 하고 싶어하고 하나님께 이렇게 간구하면 들어주시는구나.” 라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아프기 전에는 하나님을 선하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지 못했지만,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경외심을 넘어 하나님이 무서운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기도에 응답하시고,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내가 너무 단편적으로 하나님을 봤구나. 하나님은 진짜 선하신 하나님이 맞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일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구나.”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가정 예배를 통해 가족과의 관계도 회복되었습니다. 모태신앙이었지만, 가정 예배를 귀찮아하고 피했지만, 아픔 속에서 예배를 사모하게 되었고, 매일 저녁 10분씩 가족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도신경, 찬송가 471장 (“주여 소민이의 병든 몸을 고쳐 주소서”) , 성경 말씀, 주기도문으로 이어지는 짧은 예배였지만, 가족들과 함께 드리는 예배는 큰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가정 예배를 통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랑 같이 예배를 드리고, 같이 하나님께 찬양하며, 정말 나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해 주는 사람들이 가족이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K-장녀로서 힘들어도 표현하지 못하고 혼자 짊어지려 했지만, 가정 예배를 통해 서로의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든 점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면서, 가족 공동체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힘들다고 고백하는 것이 가족들에게 짐을 지어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든든한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구나.” 깨닫고, 가족 안에서 위로와 격려를 받았습니다. 가정 예배를 통해 가족들은 웃음을 되찾았고, 김소민 자매님은 가족의 사랑 안에서 힘을 얻었습니다.
MBTI ESFJ, 타인에게 공감하기 어려웠던 성격도 변화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힘들다고 이야기하면, 겉으로는 공감했지만, 속으로는 “너의 노력이 부족했던 건 아닐까? 의지가 부족했던 건 아닐까?” 생각했던 냉정한 사람이었는데요, 아프면서 오히려 주변 사람들의 진심 어린 사랑을 경험하게 됩니다. 교회 공동체, 부모님 교회 성도들, 지인들, 병원 의료진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김소민 자매님을 위해 기도하고, 위로하고, 격려해주었습니다. 간호사 선생님은 환자 볼을 감싸 쥐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는데요, 사람들의 진심 어린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현재 교회 청년부 리더로 섬기면서, 섬김의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2022년 가을 제자훈련을 받고, 2023년 가을부터 청년부 리더로 섬기기 시작했는데요, 이전의 김소민 자매님이었다면, 처음 보는 조원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기 어려웠겠지만, 하나님이 맡겨주신 양들을 위해 기도하고, 조원들의 어려움에 공감하며 위로하는, 섬김의 기쁨을 알아가는 리더로 성장했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사랑
투병 중 죽을 뻔한 위기도 여러 번 겪었습니다. 특히 케타민 주사를 맞으면서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었는데요, 케타민은 동물 마취제로도 쓰이는 위험한 약물이지만, 극심한 통증을 겪던 김소민 자매님에게는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케타민 주사를 맞으면 3시간 동안 통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호흡 신경 마취, 환각, 의식 불명 등, 심각한 부작용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전신 마취 수술처럼, 보호자 동의와 철저한 감시하에 케타민 치료가 진행되었고, 치료 중 산소 포화도가 90% 밑으로 떨어지는 위험한 상황이 반복되었습니다.
어느 비 오는 날, 케타민 치료 중 의식을 잃고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던 경험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평소와 다른 환각, 미지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 죽음이 임박했음을 직감했는데요, 엄마 얼굴이 떠올랐고, “떠나기 전에 엄마한테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말해야 하는데…” 생각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대로 세상을 떠나는구나…” 슬퍼하고 있을 찰나, 찰나의 순간 입이 열렸고, “난 하나님을 믿어서 행복해.” 라는 고백이 터져 나왔습니다. 예상치 못한 고백과 함께 마음속에 평온이 찾아왔고, “이제는 평안하게 하나님 곁으로 갈 수 있겠구나.” 확신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어머니는 딸의 이상 징후를 감지하고 의료진을 불렀고, 긴급 조치 덕분에 다시 의식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의료진은 “조금만 늦었어도 모든 신경 기능이 마취되어, 그대로 세상을 떠날 뻔했다.” 고 말하며, 아찔했던 순간이었음을 전했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하나님을 믿어서 행복하다.” 고백했던 순간은, 김소민 자매님의 신앙 여정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이후,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하나님만 의지하며, 감사함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CRPS는 여전히 고통스러운 질병입니다. 통증 부위가 전신으로 번지면서,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고통 속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약을 먹기 위해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조차 통증으로 느껴졌고, 눈꺼풀을 깜빡일 때마다 고통이 밀려왔습니다. 극심한 통증 때문에 자살을 선택하는 CRPS 환자들의 이야기는 남 일 같지 않았습니다. 동갑내기 CRPS 환우가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깊은 슬픔과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젊다는 것이 오히려 문제”라고, “남은 수십 년을 이 고통 속에 살아갈 수 없다.” 토로했던 친구였기에, 더욱 마음이 아팠습니다. 친구 어머니가 삶을 포기하려 시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CRPS가 “저주받은 질병”, “잔인한 병”임을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척수 자극기 삽입 수술, 그리고 새로운 시작
2021년 4월부터 5월 초까지 세 차례 전신 마취 수술을 통해 척수 자극기를 몸에 삽입하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척추뼈를 부수고, 등을 절개하여 척수막 위에 전극판을 올리고, 배를 절개하여 배터리를 넣고, 전선으로 연결하는, 복잡하고 위험한 수술이었는데요, 수술 후에도 호전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의사의 말에 실망했지만,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전, 담당 교수님은 김소민 자매님에게 “매일 죽고 싶지 않냐?” 물었고, “너무나도 매일 죽고 싶다.” 는 대답에, CRPS 환자 중에서도 통증이 심각한 상태임을 인지하고 척수 자극기 삽입 수술을 권유했습니다. 척수 자극기는 통증 신호를 척수에서 차단하여 뇌로 전달되는 것을 막아주는 기기인데요, 김소민 자매님의 심한 통증에는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놀랍게도 수술 후 점차 호전되기 시작했습니다.
2021년 가을부터 조금씩 호전되기 시작하여, 2022년 4월에는 휠체어 없이 두 발로 걷게 되었습니다. 휠체어에서 일어나 두 발로 걷는 기적을 경험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호전되는 시기에 맞춰 재활 치료와 운동을 병행하며,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경직되고 경련이 일던 오른발을 다시 움직이고, 걷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연습을 반복했고, 자극에 둔감해진 피부를 훈련하는 등, 재활에 매진했습니다. 아프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 그리고 가족들과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결과, 신호등 초록불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느렸던 걸음걸이는, 이제 신호등이 깜빡거릴 때 뛰어서 건널 수 있을 만큼 빨라졌고, 하루 10알 넘게 먹던 약은 3~4알로 줄었고, 응급실에 실려 가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여전히 CRPS 통증이 남아있지만,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환자로서 단 하루도 허투로 보내지 않았다.” 고 자부할 만큼, 열심히 투병했고, 마침내 기적적인 회복을 이루어냈습니다.
어머니에게 영상 편지를 통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엄마, 저 대신 울어주셔서 감사해요. 엄마는 저보다 더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해요. 엄마는 교사라는 직업을 정말 사랑하셨는데, 저를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저 하나만을 살리겠다고 나오셨잖아요. 엄마의 사랑 때문에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었어요. 항상 기도해주시는 엄마 아빠 때문에 무서울 게 없었어요. K-장녀라 표현 잘 못 하지만, 진심으로 고맙고, 어떤 표현도 부족할 만큼 사랑해요.”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과 기도, 가족들의 따뜻한 응원,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에, CRPS라는 고통스러운 병을 이겨내고, 다시 건강한 삶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김소민 자매님은 “기도에 빚진 자” 라는 고백을 했습니다. 아팠을 때, “좋아지게 해달라.” 기도조차 못 했지만, 많은 사람들의 기도 덕분에 버틸 수 있었고,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하며, 이제는 “힘이 없어 기도조차 못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 할 때” 라고 말합니다. 특히 CRPS 환우들을 위해 기도하며 눈물을 흘리는데요, 그들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들을 위한 기도에 더욱 힘쓰고 싶다고 합니다. 담당 교수님의 권유로 책을 쓰기 시작하면서, 아팠던 시간들을 되돌아보는 것이 고통스러웠지만, 책을 통해 많은 환우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전도의 도구로 사용되기를 소망합니다. 책을 쓰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모든 순간에 함께 하셨다.” 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고, “설령 다시 몸이 악화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 한 분만 있으면 행복할 수 있다.” 고백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만 붙잡고 나아가겠다는 굳건한 믿음을 드러냈습니다. 김소민 자매님의 간증은 CRPS 환우들에게는 희망을, 고통 속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위로와 용기를, 그리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궁금증과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감동적인 이야기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