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주 교수의 사울에서 바울로 변화와 남편의 사랑 이야기
남편의 사랑, 하나님의 은혜: 사울에서 바울로
"사울에서 바울로": 남편과의 만남으로 변화된 삶, 김영주 교수의 감동적인 이야기
오늘 여러분께서는 마치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인생 역전을 경험하신 김영주 교수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될 것입니다. 본 인터뷰는 유튜브 채널 "새롭게하소서"에 공개된 영상, "남편을 만나 사울에서 바울이 되었어요ㅣ김영주 교수ㅣ새롭게하소서"의 내용을 상세히 정리한 글입니다. 본문은 영상 내용을 충실히 반영하며, 20,000자 내외의 분량으로, 핵심 노하우와 감동적인 스토리를 깊이 있게 전달하고자 합니다. 추가적인 내용은 일절 없이, 오직 영상 내용만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음을 강조 드립니다.
1. 차가운 '사울'에서 따뜻한 의사로: 김영주 교수의 변화
김영주 교수님은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목동병원 산부인과 부인암센터에서 환자들을 돌보고 계십니다. 주영훈 님과 연 님의 따뜻한 환영과 함께 시작된 인터뷰에서, 김 교수님은 밝고 편안한 모습으로 등장하셨습니다. 특히, 아이를 받는 의사로서 생명의 탄생 순간을 마주할 때 느끼는 경이로움과 감사를 진솔하게 표현하셨는데요, 이는 과거 '사울'과 같았던 차가운 모습과는 완전히 대조되는 현재의 따뜻함을 보여줍니다. 분위기 자체가 이화여대 교수님 같다는 칭찬에, 김 교수님은 아이를 받을 때마다 기도하는 습관에 대해 이야기하며 따뜻한 분위기를 이어갔습니다.
김 교수님은 크리스천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환자를 위해 기도한다고 밝혔습니다. 환자들이 믿지 않더라도 기도를 통해 큰 위로를 받는다는 경험을 공유하며, 실제로 기도 내용을 시연해주셨습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오늘 제가 이 산모 분과 그 아기를 위해서 기도를 합니다. 부디 순산하시고, 건강하게 아기가 태어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처럼 진심 어린 기도는 듣는 이에게 깊은 감동과 든든함을 선사합니다. 실제로 김 교수님의 기도를 받은 산모들은 감사를 표하며 다시 찾아오기도 한다는데요, 이는 의사로서 환자에게 전하는 따뜻한 마음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30년 전 응급실에서 경련하는 산모를 긴급 수술했던 경험은 더욱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미숙아로 태어난 아이가 30년 후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김 교수님을 찾아와 감사를 전했다는 것인데요, 이는 의료 현장에서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작은 친절이 오랜 시간이 흘러 큰 감동으로 되돌아올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김 교수님은 이 경험을 통해 큰 감명을 받았다고 회상했습니다.
원래 내과와 산부인과 사이에서 진로를 고민했다는 김 교수님은, 결국 산부인과를 선택한 이유를 '탄생의 기쁨'에서 찾았습니다. 만성 질환을 다루는 내과와 달리, 산부인과는 생명의 탄생이라는 기적적인 순간을 직접 마주하며 큰 기쁨과 보람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고 합니다. 학생 시절 아기가 예뻐 소리쳤다가 혼났던 에피소드는, 김 교수님의 생명에 대한 애정과 순수한 열정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시입니다. 아기를 받을 때마다 놀라움과 아름다움을 느끼며,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는다는 김 교수님의 말에서 산부인과 의사로서의 깊은 사명감을 엿볼 수 있습니다.
2. '진열장 유리판' 같았던 학창 시절: 차갑고 냉정했던 과거
김 교수님은 스스로 과거의 자신을 '사울'과 같았다고 표현하며, 차갑고 냉정한 학생 시절을 보냈다고 고백했습니다. 학생 시절 별명이 '진열장 유리판'이었다는 사실은, 당시 김 교수님의 이미지가 어떠했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진열장 유리판은 차갑고 냉정하며,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이미지를 연상시키는데요, 이는 학창 시절 김 교수님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별명입니다. 중학교 시절 남학생들이 말을 걸어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는 일화는, 당시 김 교수님이 얼마나 차가운 사람이었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현재 밝고 친근한 모습과는 상반되는 과거의 모습에, 스스로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합니다.
흔히 '깐깐하다', '농담을 안 받아준다', '공부만 한다'는 이미지는 김 교수님의 학창 시절을 설명하는 데 부족함이 없습니다. 도시락을 혼자 먹고, 코끼리표 보온 도시락을 사용했다는 이야기는, 주변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지냈던 과거를 보여줍니다. 당시 코끼리표 보온 도시락은 부유층 자녀의 상징처럼 여겨졌는데요, 이는 김 교수님 집안의 경제적 여유를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동시에, 일반 학생들과의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요소였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열장 유리판이라는 세련된 별명을 지어준 것을 보면, 학창 시절 김 교수님의 주변에는 지적인 수준이 높은 학생들이 많았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혹은, 차가운 이미지를 세련되게 표현하려 했던 친구들의 의도였을 수도 있겠죠.
차가운 성격뿐만 아니라, 성격도 깐깐하고 신경질적이었다고 김 교수님은 덧붙였습니다. 빼빼 마른 체형에, 성격까지 예민했던 과거의 모습은 현재의 온화한 모습과는 쉽게 연결되지 않습니다. 딸만 넷인 집안의 맏딸로서 책임감이 강했을 것이라는 추측과는 달리, 오히려 동생들에게 신경질만 내는 '폭군 언니'였다고 고백했습니다. 물 떠오라는 심부름을 시키고, 제대로 하지 않으면 컵을 던지는 등, 지금과는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입니다. 완벽주의적인 성향 탓에 정리정돈이 안 되어 있으면 신경질을 냈고, 책이나 물건을 던지는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과거의 모습은, 현재의 김 교수님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의외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김 교수님은 공부를 매우 잘하는 학생이었다고 합니다. 모든 면에서 완벽을 추구했던 과거는, 공부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버지의 엄격한 교육 방식 또한 김 교수님의 완벽주의적 성향 형성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습니다. 동생들에게 폭군처럼 군림했지만, 아버지에게는 꼼짝 못했던 김 교수님의 모습은, 권위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맏딸의 전형적인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컵을 던지는 행동에 아버지께 혼났을 것 같다는 질문에, 오히려 아버지 역시 폭력적인 분이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컵을 던지는 정도가 아니라, 책도 던지고 물건도 던지는 등, 험악한 분위기가 감돌았던 과거 가정 환경을 짐작하게 합니다. 완벽주의적인 성격과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환경은, 김 교수님을 더욱 차갑고 방어적인 사람으로 만들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하나님을 만나 변화되었다고 강조하며, 과거의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졌음을 강조했습니다. 웃는 모습이 매우 온화하고 인상 좋은 현재의 모습에서는, 과거 '진열장 유리판' 같았던 차가운 이미지를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3. 남편과의 만남, 그리고 '바울'로의 변화: 사랑과 헌신
주변 사람들이 '사울에서 바울'로 변화되었다고 느낄 정도로, 김 교수님은 결혼 후 완전히 달라진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결혼 전에는 설거지 한 번 하지 않았지만, 현재는 집에서 설거지를 도맡아 하고, 요리하는 것을 즐기는 '요리하는 아내'로 변신했습니다. 동생들은 달라진 언니의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고 하는데요, 이는 김 교수님의 변화가 얼마나 극적인지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스스로 '사울'로 살았던 시기는 결혼 전까지였고, '바울'로 변화된 시기는 결혼 후 3년 정도 지난 시점이라고 회상했습니다. 결혼 초 3년은 남편에게 신경질을 많이 냈다고 솔직하게 고백하며, 30년 이상 '바울'로 살아왔음을 밝혔습니다.
'진열장 유리판' 같았던 차가운 아내를 녹인 사람은 바로 남편, 방명걸 교수입니다. 김 교수님은 남편을 '저를 녹여주는 분'이라고 표현하며, 남편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남편과의 첫 만남은 동료 연구원의 소개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당시 김 교수님은 동대문병원, 남편은 서울대학교 병원에 근무하고 있었고, 연구원 소개로 처음 만났습니다. 첫 만남 장소는 '오감도'라는 레스토랑이었는데요, 스테이크를 맛있게 먹으며 5-6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다고 합니다. 남자랑 그렇게 오랜 시간 대화해 본 적이 없었다는 김 교수님의 말에서, 남편과의 첫 만남이 얼마나 특별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남편에게 첫눈에 반한 이유는 '따뜻함'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따뜻하고 친근한 모습에 끌렸고, 딱딱한 자신을 녹여주는 매력을 느꼈다고 합니다. 김 교수님의 아버지는 매우 엄격하고 권위적인 분이었다고 하는데요, 매를 많이 맞으며 자랐고, 아버지의 완고함에 반항심을 느끼기도 했다고 합니다. 중앙정보부에 근무했던 아버지의 직업적 특성상, 가정에서도 권위적인 태도를 유지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남편은 아버지와는 정반대로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람이었기에, 김 교수님에게는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남편은 '골수 크리스천' 집안 출신으로, 시어머니는 70세에도 2천 명을 전도한 열정적인 권사님이라고 합니다. 독실한 크리스천 집안이었기에, 처음에는 김 교수님과의 결혼을 망설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기도 끝에 '데려와서 크리스천으로 만들라'는 응답을 받고 결혼을 승낙했다고 하는데요, 이는 마치 운명처럼 김 교수님을 교회로 이끄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결혼하고 싶어서 하나님을 만났다는 김 교수님의 솔직한 고백은,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진솔하게 느껴집니다. 결과적으로 남편과의 만남은 김 교수님의 인생을 '사울'에서 '바울'로 변화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결혼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남편 집안이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기에 결혼을 결심했기에,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습니다. 딸은 의사에, 잘 나가는 교수인데, 상대방 집안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딸을 아끼는 아버지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김 교수님은 남편과의 결혼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1년 동안 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 결혼에 골인했습니다. 네 번 만남 만에 결혼을 결심했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인해 결혼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입니다.
결혼을 포기하려 했던 순간도 있었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반대가 워낙 심했기에, 남편 역시 결혼을 망설였지만, 김 교수님은 남편이 아니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다시 만남을 제안했습니다. 몇 개월 동안 헤어져 지내는 동안 너무 슬펐고, 남편 없이는 앞으로 살아갈 비전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합니다. 더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 또한 재결합을 결심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는 말처럼, 김 교수님의 적극적인 사랑 고백은 결국 결혼이라는 결실을 맺게 했습니다.
남편 방명걸 교수님은 영상 인터뷰에 깜짝 등장하여 아내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습니다. 김영주 교수님이 자신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는 농담과 함께, 아내의 적극적인 성격 덕분에 결혼까지 골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카페에서 차를 마시다가 결혼 이야기가 나왔고, 김 교수님이 "그래요"라고 쿨하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당시 남편은 빚보증 문제로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김 교수님은 용감하고 적극적으로 결혼을 추진했습니다. "자기가 다 해결할 테니, 하기로 한 대로 결혼합시다" 라는 김 교수님의 말은, 당시 상황을 극복하고 결혼을 성사시키고자 했던 강한 의지를 보여줍니다.
결혼 후 신혼 생활은 행복했지만, 동시에 힘든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시댁살이를 시작하면서 낯선 환경과 시어머니와의 관계, 그리고 가사 노동까지, 모든 것이 김 교수님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결혼 전에는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던 시댁 생활은, 깐깐하고 신경질적인 성격의 김 교수님에게는 더욱 힘들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남편에게 신경질을 많이 냈고, 물건을 던지기도 했다고 솔직하게 고백했습니다. 하지만, 컵은 던지지 않았다고 강조하며, 인형 같은 물건을 던졌다고 해명하는 모습은 웃음을 자아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화내지 않고 잘 받아줬다고 칭찬하며, 남편의 인내심과 훌륭한 성품에 감탄했습니다.
남편은 장로로서 교회 봉사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합니다. 봉고차 운전을 자처하고, 교회 설거지를 먼저 시작하는 등,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김 교수님은 남편을 '진짜 좋은 분', '훌륭한 분'이라고 칭찬하며, 남편에 대한 존경심과 애정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신경질을 내도 받아주는 남편 덕분에 싸움이 되지 않았고, 스스로 사그라들었다고 표현했습니다. 이는 남편의 인내와 사랑이 김 교수님을 변화시키는 데 큰 영향을 미쳤음을 시사합니다.
방명걸 교수님은 아내 김영주 교수의 신앙 성장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었습니다. 결혼 당시 아내는 신앙이 없었지만, 오히려 순수한 백지 상태였기에 신앙을 그려나가기에 더 좋은 조건이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성수주일' 문제였다고 합니다. 의사로서 주일에도 학회 참석이나 병원 업무가 불가피했지만, 남편은 주일 성수를 강조하며 교회 출석을 권유했습니다. 엄격한 신앙생활을 요구하는 남편의 모습에 처음에는 어려움을 느꼈지만, 순수한 마음으로 남편의 가르침을 따랐다고 합니다. 11조 문제나 주일 성수 문제 등, 신앙생활의 기본적인 가르침들을 남편에게 배우며 신앙을 키워나갔습니다.
의사로서 힘든 시간을 보낼 때, 남편은 묵묵히 곁을 지켜주며 힘이 되어주었다고 합니다. 응급 환자와 중환자가 많은 산부인과 의사의 특성상, 밤새 환자 걱정에 잠 못 이루는 날들이 많았지만, 남편은 곁에서 기도하며 기다려주었습니다. 아내가 힘들어 울 때도, 남편은 묵묵히 기도하며 아내를 위로했습니다. 남편의 꾸준한 사랑과 헌신은, 김 교수님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결혼 후 김 교수님은 점점 편안해지고, 웃음을 되찾고,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남편은 이러한 변화를 보면서 아내의 신앙이 성장하고 있음을 느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김영주 교수를 특별히 사랑하신다고 생각한다는 방명걸 교수님은, 아내가 연수를 갔을 때도 신앙적으로 좋은 사람들을 만나도록 인도해주셨다고 믿습니다. 어딜 가든지 신앙 동료를 만나고 함께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셨다는 것입니다. 30년 넘는 결혼 생활 동안 한결같이 아내를 사랑하고 지지해준 남편에게 감사를 표하며, 존경과 깊은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보다 당신을 더 사랑한 적도 있었지만, 한결같이 저를 아껴주고 소중하게 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을 존경하고 깊이 사랑합니다." 라는 진심 어린 고백은 듣는 이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합니다.
주영훈 님은 남편의 변함없는 헌신이 김 교수님을 변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습니다. 만약 남편마저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면, 긍정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남편의 올바른 신앙관이 김 교수님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 공감하며, 남편이 물려준 신앙은 '헌신하는 신앙', '봉사하는 신앙'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며 사랑하는 남편의 모습은, 김 교수님에게 깊은 감동과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말로만 크리스천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헌신과 사랑을 실천하는 남편의 모습은, 진정한 크리스천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00번 설교보다, 삶으로 보여주는 믿음의 힘은 더욱 강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4. 기적적인 환자 경험과 기도 노트: 믿음에 대한 확신
김 교수님은 성품이 바뀌게 된 계기를 남편의 감화와 함께, 의사로서 어려운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겪은 특별한 경험에서 찾았습니다. 환자의 회복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시는 경험을 통해 믿음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임신 중독증으로 범발성 혈액 응고 장애까지 겪던 산모를 치료했던 경험은, 김 교수님의 신앙에 큰 전환점을 마련해준 사건이었습니다. 수술 후에도 출혈이 멈추지 않아 생명이 위독했던 산모를 위해, 의사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 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죽음을 직감하고 절망했던 순간, 김 교수님은 연구실에서 밤새도록 환자를 간호하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새벽 2-3시경, 전공의로부터 환자의 상태가 호전되었다는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됩니다. 소변이 나오기 시작하고, 손을 움직이고, 눈을 뜨는 등, 환자가 회복되는 징후가 나타난 것입니다. 부활절 전날 밤에 일어난 기적 같은 사건은, 김 교수님에게 깊은 감동과 함께 믿음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었습니다. 물론, 환자는 이후에도 며칠 더 고생했지만, 결국 건강을 회복하고 퇴원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김 교수님은 자신이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환자가 살아났음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한 것이 아니다"라는 고백은, 겸손함과 함께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를 보여줍니다.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김 교수님은, 이후 더욱 기도에 의지하며 환자들을 돌보게 되었습니다.
환자에게 이 기적적인 경험을 이야기했을 때, 환자는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과거 교회를 열심히 다녔지만, 멀어지게 되었다는 환자는, 김 교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 교회에 나가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자신을 살려주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닫고,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김 교수님의 경험은, 환자에게도 큰 감동과 믿음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환자를 향한 진심 어린 기도와 하나님의 기적적인 응답은, 김 교수님의 삶과 환자의 삶 모두를 변화시키는 놀라운 힘을 발휘했습니다.
당시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했는지 묻는 질문에, 김 교수님은 의사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했다고 회상했습니다. "생명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가져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니, 부디 이 분을 살려주시면 제가 뭐든지 하겠습니다" 라고 간절히 기도했다고 합니다. 지금보다 훨씬 간절하게 기도했다는 말에서, 당시 김 교수님의 절박했던 심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부활절 날 환자가 깨어났다는 사실은, 김 교수님에게 더욱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부활절의 의미와 환자의 회복이 겹쳐지면서, 믿음에 대한 확신은 더욱 강해졌습니다.
이후 24년째 기도 노트를 작성하고 있다는 김 교수님은, 기도 응답을 경험할 때마다 노트에 기록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있다고 합니다. 작은 수첩에 빼곡하게 채워진 기도 노트는, 김 교수님의 신앙생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기도 응답뿐만 아니라, 기도 중에 떠오르는 성경 말씀도 함께 기록하며, 하나님과의 깊은 교감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환자를 진료할 때도, 기도 중에 떠오르는 영감을 통해 환자에게 필요한 치료 방향을 찾기도 한다고 합니다. 기도는 김 교수님에게 단순한 종교적 행위를 넘어, 삶의 지혜와 문제 해결의 도구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년에 한 권씩, 24권째 이어져 오는 기도 노트는, 김 교수님의 신앙 여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소중한 기록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 라는 히브리서 11장 1절 말씀을 인용하며,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 크리스천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했습니다. 성경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예시로 들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설명했습니다. 노아의 방주 이야기처럼, 보이지 않는 미래를 믿고 120년 동안 방주를 만들었던 노아의 믿음을 강조하며, 크리스천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실상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김 교수님 역시 남편과의 만남과 환자 치료 경험을 통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며 삶이 변화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인턴, 레지던트 시절 남편이 미국으로 박사 학위를 받으러 떠났을 때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기도 끝에 교수 임용이라는 응답을 받았던 경험을 예시로 들었습니다. 당시 월급 100만 원으로 세 식구 생활이 어려웠지만, 밤마다 교수 임용을 간절히 기도했고, 결국 꿈을 이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때 포기했다면, 지금의 교수 김영주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회상하며, 기도의 힘과 믿음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5. 저출산 문제와 생명의 소중함: 산부인과 의사의 고뇌
최근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저출산 문제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김 교수님은 산부인과 의사로서 깊은 고뇌를 드러냈습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싱가포르 등 경제 선진국에서도 저출산 현상이 심화되고 있으며, 특히 한국의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젊은 세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낳고 키우는 과정은 매우 큰 즐거움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산부인과 의사로서 불임으로 고통받는 부부들이 시험관 시술 등을 통해 어렵게 아기를 갖게 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생명의 탄생이 얼마나 기적적이고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녀를 키우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이며, 삶의 목표와 의미를 부여하는 중요한 가치라고 역설했습니다.
불임 부부들은 간절히 아기를 원하지만, 반대로 생명을 경시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어렵게 시험관 시술을 받는 부부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원치 않는 임신으로 인해 생명을 지우려고 고민하는 여성들도 많다는 것입니다. 수백억 마리 정자 중 단 하나의 정자만이 난자와 수정되어 생명이 탄생하는 기적적인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습니다. 결혼 적령기가 늦어지면서 불임과 저출산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사회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결혼과 출산을 '희생'으로 여기는 젊은 세대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며, 긍정적인 출산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언했습니다.
시험관 시술에 대한 윤리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정자와 난자를 창조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며, 수정되는 순간 이미 생명이 시작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시험관 시술은 자궁이나 나팔관 문제로 임신이 어려운 부부들을 돕기 위한 의료 기술이며, 이 또한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생명의 탄생 과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시험관 시술을 통해 태어난 아기 역시,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태어난 소중한 생명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행복하게 아이를 키우는 가정의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며, 특히 하나님 안에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사회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팔불출이라는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아내를 사랑하고 아끼는 남편의 모습, 행복한 부부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출산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6. 하나님은 '언제나 기댈 수 있는 분': 김영주 교수의 믿음 고백
김영주 교수님에게 하나님은 어떤 존재일까요? 김 교수님은 하나님을 '언제나 기댈 수 있는 분'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의지하고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해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기도 제목에 따라 응답이 빠를 때도 있고, 7-8년 기다려야 할 때도 있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응답해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숱하게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 의지하며 기도했고, 그때마다 응답을 받았다고 간증했습니다. 이 땅을 위해, 그리고 젊은 세대의 출산과 양육 과정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다짐을 밝혔습니다. 아기를 받을 때마다 생명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을 잊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습니다.
연 님은 김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성격과 성향 그대로 사용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과거 완벽주의적인 성격 때문에 남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 성향을 통해 하나님께 더욱 간절히 기도하고, 환자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시고 사용하신다는 메시지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남편에게 사랑 고백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덧붙이며, 남편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라는 믿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주영훈 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이를 맡기셨다는 생각으로 양육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남들이 하는 방식이 아니라, 나만의 방식으로 아이를 키워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저출산 시대에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는 젊은 세대들에게,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대로 아이를 키워나가라는 격려의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임신에 대한 지나친 공포감을 갖는 젊은 여성들에게, 출산은 축복이며, 인류 역사는 출산을 통해 이어져왔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출산의 고통보다 기쁨이 더 크기 때문에 인류가 번성해왔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긍정적인 출산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김 교수님과 같은 분들이 산모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메시지를 많이 전달해주기를 기대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김영주 교수님은 출산을 앞둔 임산부들을 위해 기도하며, 모든 산모들이 설렘과 기쁨으로 10개월을 보내고, 행복하게 출산하기를 축복했습니다. 출산은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이며, 기쁨과 설렘으로 가득 찬 경험이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인터뷰를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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