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옥 소통 전문가 간증: 아버지와의 불통, 9시 기도와 인생 변화
김창옥, 고통에서 찾은 소통의 길: 감동 간증
## "소통이 안 되면 고통이 온다": 김창옥 강사의 감동적인 간증과 소통 노하우 대방출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우리는소통 전문가 김창옥 강사님의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와그의 깊이 있는 소통 노하우를 함께 탐험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단순히 스크립트 내용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핵심 메시지를 명확히하고, 실질적인 삶에 적용 가능한 지혜를 얻어갈 수 있도록상세하고 친절하게안내해 드릴 예정입니다. 2만 자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속에김창옥 강사님의 진솔한 이야기와소통의 정수가고스란히담겨 있으니, 마음을 활짝 열고함께귀기울여 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지금부터감동과 깨달음이가득한 여정을시작해 볼까요?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영상은CBS '새롭게 하소서'에 출연한김창옥 강사님의 간증입니다. "소통이 안 되면? 고통이 온다!"라는강렬한 제목처럼, 김창옥 강사님은자신의 삶을 솔직하게털어놓으며, 소통의 중요성을 역설합니다. 특히, 청각 장애를 가진 아버지와의 불통, 어머니와의 관계, 신앙 여정, 강사로서 겪었던 어려움, 그리고 아버지와의 화해까지, 다양한 경험을 진솔하게이야기하며 깊은 감동과 교훈을 선사합니다.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간증을 넘어, 우리 삶 속에서 겪는 소통의 문제와 해결 방안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합니다. 자, 이제 김창옥 강사님의 인생 속으로 함께 떠나볼까요?
## 아버지와의 불통, 고통의 시작
김창옥 강사님은 어린 시절, 청각 장애를 가진 아버지와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아버지는 듣지 못하는 만큼 표현도 서툴렀고, 가정은 자연스레 침묵이 감도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블랙홀 같은 존재였다"라는 강사님의 표현은 당시 아버지와의 관계가 얼마나 단절되어 있었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부재는 오히려 어린 강사님에게 자유를 선물했습니다. 간섭하는 어른이 없는 환경은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했지만, 점점 자라면서 어른의 부재는 곧 정서적 결핍으로 이어졌습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관심을 갈망했지만, 소통의 부재는 그 간극을 좁히지 못하게 했습니다. 물론 아버지가 폭력적이거나 강압적인 분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덩치도 좋으시고 인물도 좋으셨지만, 강사님에게 아버지는 마치 "TV에 나오는 인물처럼", 가깝지만 닿을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노동일 후 땀에 젖은 채 귀가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어린 강사님에게 왠지 모를 거리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다른 아이들처럼 "아빠곰 어서 오세요!"하며 반갑게 맞이하는 대신, 그저 묵묵히 아버지를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어쩌면 아버지 또한 자신의 장애로 인해 자녀와의 소통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당시 어린 강사님에게 아버지는 그저 "불통의 대상",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졌습니다. 부모 자식 간의 소통 부재는 이렇게 어린 시절부터 강사님의 마음속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강사님의 가정은 경제적으로도 넉넉하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억척스럽게 장사를 하며 생계를 꾸려나갔고, 아버지는 그림을 그리거나 악기 제작 관련 일을 했지만, 수입이 일정치 않았습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 부모님은 잦은 다툼을 벌였고, 가정 분위기는 늘 불안정했습니다. 강사님은 그런 부모님을 보며 "부모님 곁에 불만이 많을 수 있겠네요"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속 깊은 곳에서는 부모님에 대한 깊은 연민과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특히, 귀가 들리지 않는 아버지가 사람들에게 속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안쓰러움이 컸습니다. "귀가 들려도 속여 먹는 세상인데, 아버지는 오죽했을까"라는 강사님의 독백은 당시 아버지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어쩌면 강사님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불통과 가정의 어려움 속에서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을 배우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고, 마음속 깊은 곳에는 상처와 아픔이 자리 잡았습니다.
## 교회와의 만남, 새로운 언어를 배우다
중학교 3학년, 강사님은 친구의 권유로 교회에 발을 들였습니다. 처음에는 종교에 대한 관심보다는 친구와의 관계 때문에 교회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삭막했던 강사님의 삶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특히, 교회 누나, 자매들의 따뜻한 환대는 사춘기 시절 외로움을 느끼던 강사님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아무 것도 안 했는데도 막 챙겨주는 것 같았다"라는 표현에서 당시 교회 공동체가 강사님에게 얼마나 따뜻하게 다가왔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행사, 문학의 밤 등 다양한 교회 활동은 강사님에게 새로운 즐거움과 경험을 선사했습니다. 하지만 6개월 정도 교회를 다니면서 점점 익숙해지고, 새로움이 사라지자 흥미를 잃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 설교는 지루하게 느껴지고, 장로님 기도는 뻔한 패턴처럼 여겨졌습니다. 결국, 강사님은 교회에 나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교회와의 짧았던 만남은 강사님 인생에 작지만 의미 있는 흔적을 남겼습니다. 따뜻한 공동체 경험은 메마른 감성을 적셔주었고, 새로운 문화 생활은 삶의 활력소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 시기의 교회 경험은 훗날 강사님이 다시 교회로 돌아오는 씨앗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고등학교 1학년, 강사님은 우연히 부흥회에 참석하게 됩니다. 당시 사회적으로 종말론이 유행하던 시기, 강사님 또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부흥회는 봄방학과 겹쳐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강사님에게 새로운 경험이 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기대 없이 참석한 부흥회는 강사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특히, 부흥강사님의 설교는 지금까지 들어왔던 설교와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강사님은 그 설교를 듣는 순간, "말씀하시는 게 들린다"는 첫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헌금에 대한 기도는 강사님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헌금 시간만 되면 지루하고 딴 생각을 하던 강사님에게, 강사님의 기도는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강사님은 헌금을 단순히 돈을 내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이치를 깨닫는 통로로 설명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와 같다"는 말씀은 강사님 마음속에 깊이 박혔습니다. 그날 저녁, 기도 시간에 강사님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눈물을 쏟았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돌아보며 자신의 부족함과 죄 됨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부흥회 첫날, 강사님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와의 재회, 그리고 강렬한 성령 체험은 강사님을 새로운 삶으로 이끌었습니다.
## 9시 기도, 기적을 만들다
부흥회 이후, 강사님은 신앙 공동체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특히, 교회 재건축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남자 아이들 5명과 함께 9시 기도 팀을 만들어 매일 저녁 기도회를 열었습니다. 9시 기도는 단순한 기도 모임을 넘어, 강사님과 친구들에게 삶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매일 저녁 9시부터 10시까지, 1년 365일, 5년 동안 기도를 이어갔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매일 밤 1시간씩 기도에 전념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 기도 제목을 정하고, 돌아가면서 기도를 인도하며 뜨겁게 기도했습니다. 기도 제목은 교회 재건축 뿐만 아니라, 국가와 민족, 개인의 기도 제목까지 다양했습니다. 토요일에는 거리 찬양 집회를 나가 전도 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9시 기도 팀은 강사님의 신앙 생활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힘든 일이 있을 때나 기쁜 일이 있을 때, 언제나 함께 기도하며 위로받고 격려했습니다. 5년 동안의 꾸준한 기도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교회 재건축 허가가 났고, 9시 기도 팀 멤버들은 각자 삶 속에서 놀라운 성장을 경험했습니다. 강사님 또한 9시 기도를 통해 신앙적으로 성숙하고, 삶의 방향을 정립할 수 있었습니다. 9시 기도는 강사님 인생에 기적을 만든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9시 기도 시간은 강사님에게 눈물의 의미를 깨닫게 해준 시간이기도 합니다. 매일 기도 시간마다 눈물을 흘렸다는 강사님은 눈물을 "마음 속에 있는 슬픔의 수증기가 따뜻한 햇빛을 만나 비가 되어 내리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쌓여온 슬픔과 상처가 신앙이라는 따뜻한 햇빛, 공동체라는 따뜻한 온기를 만나 눈물로 승화된 것입니다. 9시 기도는 강사님에게 단순한 기도 시간을 넘어, 자신의 내면을 치유하고 성장시키는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9시 기도를 하면서, 강사님은 선교사의 꿈을 키웠습니다. 영화 "미션"을 보고 큰 감동을 받은 강사님은 선교사가 되어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특히, 영화 속 음악은 강사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제주도에서 자라면서 아름다움을 잘 느끼지 못했던 강사님은 영화 음악을 듣고 처음으로 아름다움을 느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어두운 공동체가 음악을 통해 변화되는 모습은 강사님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음악을 통해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싶다"는 꿈은 그때부터 강사님 마음속에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꿈처럼 녹록치 않았습니다. 선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신학 대학에 진학해야 했지만, 가정 형편과 학업 능력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사님은 꿈을 포기하지 않고 음악 선교사의 꿈을 향해 나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습니다.
## 좌절과 실패, 다시 시작
고등학교 졸업 후, 강사님은 일반 대학교에 진학하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재수까지 했지만 결과는 같았습니다. 전문대 진학 마저 실패하자, 강사님은 큰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특히, 어머니의 실망스러운 반응은 강사님 마음에 비수처럼 꽂혔습니다. "우리 애가 떨어졌다", "멍청이 똥 멍청이"라는 어머니의 말은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진 강사님에게 견디기 힘든 상처가 되었습니다. 교회 청년부 활동 또한 쉽지 않았습니다. 대학에 진학한 친구들은 청년부를 떠나 대학생 교구로 옮겼지만, 재수 생이었던 강사님은 여전히 청년부에 남아야 했습니다. 대학생 친구들과 멀어지고, 청년부 형, 누나들과 어울리는 것 또한 어색했습니다. 자존감은 점점 떨어지고, 교회 활동 마저 점점 소극적으로 변해갔습니다. 심지어 교회 집사님, 권사님, 장로님들과 마주치는 것 조차 피하고 싶을 만큼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결국, 강사님은 교회 예배만 간신히 참석하고 청년부 활동은 중단했습니다. 어머니의 계속되는 핀잔과 자신의 무능력함에 괴로워하던 강사님은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인간 가치가 없다", "없어져야 하는 존재인가 보다"라는 절망감에 휩싸였습니다. 어두운 그림자가 강사님을 덮쳐왔고, 바닷가 방파제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죽음 직전, 강사님은 마지막 희망을 걸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죽고 싶다"는 말 속에는 죽지 말라는 위로의 말을 듣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하지만 친구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왜 그래? 갑자기 이슈 만들려고 그래?"라는 친구의 말은 강사님에게 더 큰 절망감을 안겨주었습니다. "나는 진짜 가짜로 살았구나", "내 주변에 진짜 사람은 없구나"라는 생각에 휩싸였습니다. 신앙생활 마저 헛되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기도했지만 변화되지 않는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고, 신앙 자체에 대한 회의감마저 들었습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절망적인 순간, 기적처럼 젊은 여성이 방파제 난간에 서 있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여성은 망설임 없이 바다로 몸을 던졌습니다. 그 순간, 강사님은 죽음 대신 삶을 선택했습니다. "나는 아직 죽을 때가 아니구나", "살아 남아야 할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습니다. 절망의 끝자락에서 삶의 의지를 다시 붙잡은 것입니다. 어쩌면 그 여성은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였을지도 모릅니다. 여성의 죽음은 강사님에게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강사님은 인생의 방향을 새롭게 설정했습니다.
## 음악과의 만남, 새로운 꿈을 향해
죽음의 고비를 넘긴 후, 강사님은 삼수 끝에 대학교에 진학했습니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음악을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군대 제대 후, 강사님은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울리는 소리를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너는 왜 내가 너 청소년 때 네 마음에 노크를 했는데 반응하지 않았느냐"는 소리는 강사님을 끊임없이 괴롭혔습니다. 현실적인 어려움과 두려움 때문에 음악의 꿈을 외면했지만,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죽을 만큼 해봤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후회 없이 꿈을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강사님은 음악대학 진학을 결심하고 무작정 음악 레슨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공고 출신에 음악 기초 지식 하나 없었던 강사님에게 음악대학 진학은 넘을 수 없는 높은 벽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간절함과 열정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게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강사님은 경희대학교 성악과에 합격하는 기적을 만들어냈습니다. 6개월 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입시 준비를 하고, 쟁쟁한 경쟁자들을 뚫고 합격한 것은 기적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습니다. 강사님 스스로도 "기적과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음악대학 합격 과정 또한 순탄치 않았습니다. 입시 곡 세 곡만 준비하고, 유명한 교수님 레슨 한 번 받지 못한 채 시험을 봐야 했습니다. 하지만 간절한 기도와 절박함은 기적을 만들어냈습니다. 시험 당일, 강사님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만약 제가 여기 합격하면 하나님이 저를 그 방향으로 부르시는 것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기도 속에서 강사님은 자신의 진솔한 마음과 마주 했습니다. 합격 여부에 따라 하나님을 시험하려 했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결국, 강사님은 자신의 실력에 맞는 신학교에 가겠다는 기도로 마무리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결과는 합격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강사님의 진솔한 마음과 간절함에 응답하신 것입니다. 음악대학 합격은 강사님에게 새로운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주었습니다.
## 소통 전문가, 삶의 방향을 찾다
음악대학에 합격했지만, 현실은 또다시 녹록치 않았습니다. 음악 기초 지식 하나 없이 음악대학에 들어온 강사님은 수업을 따라가는 것 조차 버거웠습니다. 예중, 예고 출신 동기들은 이미 모차르트, 베토벤 악보를 줄줄 외우고 있었지만, 강사님은 "너구리", "다람쥐" 수준의 기초 교재부터 시작해야 했습니다. 자존심 강했던 강사님은 현실과의 괴리에 큰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돈 많은 동기들에게 주눅이 들고, 군복을 입고 학교에 다니는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결국, 강사님은 학교 2년 동안 군복만 입고 다녔습니다. 여자 동기들은 강사님을 "또라이"라고 놀렸고, 강사님은 점점 더 고립되어갔습니다. 하지만 그때, 강사님에게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가 나타났습니다. 지도 교수님은 강사님의 재능과 가능성을 알아보고, 진심으로 격려하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특히, "노래는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보여지는 것", "노래는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들려지는 것"이라는 교수님의 말씀은 강사님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지금까지 보여주려고만 했던 자신의 태도를 반성하고, 진정으로 음악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교수님의 가르침대로 자신의 삶과 내면을 돌아보고, 진솔한 마음으로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굳어있던 몸과 마음이 풀어지고, 자연스러운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자존감도 점점 회복되고, 삶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음악을 통해 자신을 찾고,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음악은 강사님에게 단순한 전공을 넘어, 삶의 방향을 제시해준 소중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음악을 통해 소통하는 방법을 배운 강사님은 자신과 같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무허가 레슨을 시작하고, 교회 중창단을 지도하며 자신의 재능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에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훗날 강사님이 소통 전문가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에서 특강을 하게 된 강사님은 예상 밖의 뜨거운 반응을 얻었습니다. 종교 학교였지만 기독교 신앙에 대한 반감을 가진 학생들도 많았지만, 강사님의 강연은 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강의 후, 교목실 교수님의 제안으로 대학교에서 "기독교 개론" 수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공 분야가 아니었지만, 강사님은 자신의 강점을 살려 쉽고 재미있게 기독교 사상을 전달했습니다. 학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딱딱하고 지루할 수 있는 교양 수업을 콘서트처럼 만들어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했습니다. 채플 시간에는 학생들의 질문을 실시간으로 받아 답변해주는 방식으로 소통했습니다. 특히, 연애 상담 형식으로 기독교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은 학생들에게 큰 공감을 얻었습니다. 강사님의 수업은 입소문이 나면서 점점 더 많은 학생들이 찾아왔고, 강사님은 대학교에서 인기 교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대학교 강의 경험은 강사님에게 소통 전문가로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습니다. 자신의 이야기와 경험이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본격적으로 강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세바시, 김미경 TV 등 다양한 강연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고, 소통 전문가로서 입지를 굳혔습니다.
## 아버지와의 화해, 진정한 소통을 향해
강사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던 중, 강사님은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결혼 문제로 아버지와 다투게 된 것입니다. 결혼을 미루는 강사님에게 아버지는 화를 내셨고, 강사님은 아버지 때문이라고 핑계를 댔습니다. 여전히 아버지와의 관계는 어색하고 불편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주도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이 강사님의 삶을 또다시 흔들었습니다. 치과에서 걸려온 전화는 아버지가 임플란트 치료를 받으러 오셨는데 치료비를 강사님에게 낼 수 있는지 물어봤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아버지의 목소리는 여전히 크고 퉁명스러웠지만, 그 속에는 왠지 모를 애틋함이 묻어나는 것 같았습니다. 치료비를 기꺼이 내겠다고 약속했지만, 마음속에는 복잡한 감정이 일렁였습니다. 며칠 후,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막둥이야"라는 아버지의 첫마디는 강사님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아버지가 힘겹게 내뱉는 "미안하다"는 말은 강사님의 마음 속 응어리를 녹이는 듯했습니다. 평생 자식들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진심이 전해지는 듯했습니다. 강사님은 아버지에게 "미안하다고 하지 마세요"라고 말했지만, 이미 마음속으로는 아버지와의 화해가 이루어진 것 같았습니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는 두 사람 사이의 굳게 닫힌 문을 여는 마법과 같은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후, 강사님은 아버지에게 용돈을 드리기 시작했고, 아버지와의 관계는 눈에 띄게 좋아졌습니다. 서울로 돌아가는 강사님을 공항까지 배웅하러 나온 아버지의 모습은 강사님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공항에서 돌아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강사님은 비로소 아버지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누군가의 뒷모습이 보이면 사랑이 시작된 것"이라는 강사님의 말처럼, 아버지의 뒷모습은 강사님에게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알려주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강사님은 처음으로 아버지를 안아드렸습니다. 굳어있던 아버지의 몸에서 긴장감과 힘겨움이 느껴졌습니다. 오랜 세월 가족을 위해 힘든 일을 해오신 아버지의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했습니다. 아버지를 안아드리는 순간, 강사님은 비로소 진정한 소통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말 없이 전해지는 마음, 몸으로 느껴지는 사랑, 그것이 진정한 소통이었습니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아버지에게 치매가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슬픔에 잠겼지만, 강사님은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의식이 있을 때 미안하다는 말을 들었고, 아버지를 안아드렸기 때문입니다. 늦었지만 아버지와의 화해를 통해 진정한 소통의 의미를 깨달았고,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와의 불통은 고통이었지만, 화해는 진정한 소통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 아버지에서 아빠로, 소통은 계속된다
아버지와의 화해 후, 강사님은 자신도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딸 은혜와 쌍둥이 아들 율, 준 세 아이의 아빠가 된 것입니다. 딸 은혜와는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지만, 아들들과의 소통은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쌍둥이 아들들은 강사님을 "아빠"라고 부르지 않고 이름을 불렀습니다. 아이들과의 거리감을 느낀 강사님은 어린이집 원장님과의 상담을 통해 자신의 소통 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아버지에게 받았던 불통의 상처가 자신도 모르게 자녀들에게 되물림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강사님은 연기를 하듯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가고, 애정 표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자연스러워졌습니다. 가면을 쓴 것 같았던 연기가 점점 피부처럼 자신의 일부가 되어갔습니다. 아이들도 변화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이름 대신 "아빠"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애정 표현도 늘어났습니다. 특히, 딸 은혜는 강사님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아빠 구독자 몇 명이에요?", "아빠 제주도 오면 오토바이 태워 줄 거예요?"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강사님은 아이들과 소통하는 기쁨을 느꼈습니다. 문자 메시지는 강사님에게 아버지와의 불통 과 어머니의 문맹으로 인해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소통 방식이었습니다. 아이들과의 소통을 통해 강사님은 진정한 아빠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와의 불통은 고통이었지만, 자신의 아이들과의 소통을 통해 고통을 치유하고 새로운 소통의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강사님의 소통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어색하고 서투른 부분도 있지만, 끊임없이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에게서 아빠로, 불통에서 소통으로, 강사님의 인생은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습니다.
## 김창옥 강사가 전하는 소통의 지혜
강사님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진정한 소통의 의미와 방법을 전합니다. 그의 이야기 속에는 삶의 지혜와 따뜻한 위로가 녹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김창옥 강사가 전하는 소통의 지혜는 무엇일까요?
첫째, 경청의 중요성입니다. 강사님은 강연 중 자신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청중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특히, 채플 시간에 학생들의 질문을 실시간으로 받아 답변해주는 방식은 경청의 중요성을 잘 보여줍니다.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고, 공감하려는 노력은 소통의 첫걸음입니다. 하지만 경청은 단순히 듣는 것 이상을 의미합니다. 상대방의 말 속에 담긴 감정과 의미를 이해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강사님은 아버지와의 관계를 통해 경청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고 고백합니다. 아버지의 말 속에 담긴 진심을 이해하려 노력했을 때, 비로소 아버지와의 소통이 가능해졌습니다. 경청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소통의 핵심 요소입니다.
둘째, 공감의 힘입니다. 강사님의 강연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바로 공감 능력 때문입니다.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청중의 마음을 헤아리는 강사님의 모습은 깊은 공감을 자아냅니다. 특히, 어려움과 고난을 극복해온 강사님의 이야기는 힘든 시기를 보내는 사람들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됩니다. 공감은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고 함께 느끼는 것입니다. 단순히 동정하거나 위로하는 것 이상을 의미합니다. 진정한 공감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상대방의 감정에 온전히 몰입하는 것입니다. 강사님은 어머니와의 관계를 통해 공감의 힘을 깨달았다고 고백합니다. 어머니의 힘겨운 삶을 이해하고,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려 노력했을 때, 비로소 어머니와의 진정한 소통이 가능해졌습니다. 공감은 상대방과의 거리를 좁히고, 깊은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소통의 핵심 동력입니다.
셋째, 진솔함의 가치입니다. 강사님은 자신의 약점과 상처까지 숨김없이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실패와 좌절, 어둠과 절망 속에서 겪었던 경험을 진솔하게 이야기하며 청중과 소통합니다. 꾸밈없고 솔직한 강사님의 모습은 진정성을 더하고, 깊은 신뢰감을 형성합니다. 진솔함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가식이나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진솔함은 무례함이나 무분별함과는 다릅니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바탕으로 자신의 진심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강사님은 9시 기도 팀 활동을 통해 진솔함의 가치를 깨달았다고 고백합니다. 자신의 약점과 부족함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며 함께 성장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진솔함은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고, 진정한 소통으로 이끄는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
마지막으로, 유머의 역할입니다. 강사님은 무거운 이야기도 유머 감각 넘치는 입담으로 재미있게 풀어냅니다. 자신의 실패 경험이나 어려웠던 시절 이야기를 웃음으로 승화시키며 청중에게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유머는 소통을 부드럽게 만들고, 긴장감을 해소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특히, 어려운 이야기나 민감한 주제를 다룰 때 유머는 훌륭한 소통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머는 능숙함과 절제가 필요합니다. 상대방을 비하하거나 조롱하는 유머는 오히려 소통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강사님은 음악대학 시절 교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유머의 역할을 깨달았다고 고백합니다. 교수님의 유머 넘치는 가르침은 강사님의 긴장감을 풀어주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소통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유머는 소통을 즐겁게 만들고, 긍정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윤활유 역할을 합니다.
## 결론: 소통, 삶의 희망을 쏘아 올리다
지금까지 김창옥 강사님의 간증을 통해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와 소통 노하우를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아버지와의 불통, 어머니와의 관계, 신앙 여정, 강사로서 겪었던 어려움, 그리고 아버지와의 화해까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우리는 소통의 중요성과 진정한 소통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김창옥 강사는 자신의 삶을 통해 소통은 단순한 기술을 넘어, 삶의 본질이자 희망임을 증명했습니다. 소통은 단절된 관계를 회복시키고, 상처 입은 마음을 치유하며, 절망 속에서 희망을 만들어내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지금 소통의 어려움으로 고통받고 있다면, 김창옥 강사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그의 경험과 지혜는 우리에게 소통의 새로운 길을 열어주고, 삶의 희망을 쏘아 올리는 등불이 되어줄 것입니다. 자, 이제 우리도 김창옥 강사처럼 진정한 소통을 향해 나아가 볼까요? 소통은 곧 행복으로 나아가는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오늘 부터 당신의 삶 속에서 소통의 기적을 만들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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