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관신 선교사의 피그미족 선교 이야기와 예수님의 사랑
예수를 너희가 죽여놓고 왜 우리에게 덮어 씌워ㅣ 최관신 피그미족 선교사ㅣ이영경 수어통역사ㅣ새롭게 하소서
“예수를 너희가 죽여놓고 왜 우리에게 덮어 씌워?” 최관신 피그미족 선교사님의 깊은 이야기 속으로
오늘 우리는 특별한 분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가진 선교사님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를 새롭게 정립하고, 아프리카 피그미족을 향한 숭고한 헌신에 대해 깊이 알아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새롭게 하소서 주요 출연자이신 최관신 선교사님은, 우리에게 익숙한 열정적인 선교사님의 모습과는 조금 다른 면모를 보여주시는데요, 그는 아프리카, 그 중에서도 소수민족인 피그미족을 섬기기 위해 르완다 국경과 콩고민주공화국 사이에서 헌신적인 사역을 펼치고 계십니다. 과연 최 선교사님은 어떤 특별한 계기로,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이 머나먼 땅에서 피그미족을 섬기게 되셨을까요? 지금부터 그의 진솔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함께 따라가 보겠습니다.
최 선교사님은 자신을 “거룩한 사람이 아니고, 야잠 놈”이라고 표현하며, 일반적인 선교사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솔직하고 과격한 자기 고백으로 시작합니다. 그는 어릴 적 아프리카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을 품고 있었고, 특별한 소명 의식보다는 “아프리카가 좋아서” 선교를 시작했다고 고백합니다. 마치 어린 왕자의 사하라 사막에 대한 동경처럼, 그는 1992년 사하라 사막을 횡단하려다 실패하기도 했지만, 아프리카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친구의 권유로 단기 선교팀에 합류하며 우연히 아프리카 땅을 밟게 되었고, 이 경험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9년 우간다에서 열린 여성 대회에 참석했을 때, 최 선교사님은 그의 인생을 뒤바꾼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당시 그는 우간다 산속의 작은 임시 진료소에서 예배를 드리던 중, 한 아이의 어머니로부터 턱에 종기가 난 아이를 위해 기도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임파선염으로 심각한 상태였던 아이는 수술을 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었지만, 기도 경험이 전무했던 최 선교사님은 아이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눈물을 쏟으며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그는 “예수님이 사진틀 속 멋있는 중동 원주민이 아니라, 바로 이 죽어가는 흑인 아이의 모습으로 자신에게 나타났다”는 강렬한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이 순간, 그의 삶은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되었고, 그는 이전의 ‘야잠 놈’에서 벗어나 헌신적인 선교사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자동차 회사 지점장으로 14년간 근무하고, 대학에서 겸임교수를 지내기도 했던 최 선교사님은, 미국 이민 후 아프리카 선교사의 길을 걷게 되면서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는 과거를 회상하며, 술과 분위기를 즐기고, 남에게 베풀기도 했지만, 예수에 대한 확신 없이 교회만 열심히 다니던 평범한 ‘잡놈’이었다고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미국에서 친구로부터 “최관신, 너를 영혼 구제 날로 선포한다”는 황당한 꿈 이야기를 듣고 웃어넘겼지만, 요단강을 건너는 꿈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영혼 구원이 얼마나 절실한 문제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꿈은 그에게 “영혼 구제 받아야 할 영혼”이라는 깊은 각성을 주었고, 결국 아프리카 선교라는 헌신적인 삶으로 이끌었습니다.
2010년, 최 선교사님은 우연한 기회에 피그미 마을에서 의료 봉사를 하고, 목회자 세미나를 인도하면서 피그미족과의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됩니다. 특히 코고 마을에서 최초의 피그미족 교회가 설립될 때 초청받아 방문하면서, 그는 피그미족 사역에 대한 깊은 소명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당시 아프리카 목사님으로부터 “예수님이 너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복음을 전했을 때, 피그미 주민들이 “예수를 너희가 죽여놓고 왜 우리에게 덮어 씌우냐”며 반발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이 에피소드는 최 선교사님에게 깊은 충격을 주었고, 피그미족에게는 단순히 죄와 용서의 교리적 설명이 아닌, 예수님의 사랑과 헌신을 그들의 언어와 문화로 설명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피그미족에게 ‘예수’라는 존재를 제대로 알리는 것이 자신의 사명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최 선교사님은 콩고민주공화국과 르완다 국경 지역의 8개 피그미 마을을 중심으로 사역하며, 학교와 교회를 세우고, 피그미족의 자립을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는 2018년 콩고와 르완다 국경의 섬 지역에서 교회 건축을 요청받고 방문했을 때, 기도 요청을 받던 중 간질병을 앓는 아이를 위해 기도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체험을 합니다. 기도 당시, 그는 속으로 ‘기도로 나을 병이 아닌데…’라며 불신했지만, 아이는 병원 치료 없이 완치되었고, 이 경험은 그의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그는 “믿음이 있든 없든, 정말 필요한 기도라면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는 것을 깨닫고, 이후 더욱 간절하고 담대하게 기도 사역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피그미족 자립을 위해 염소 지원 사업을 진행했지만, 예상치 못한 문화적 차이와 오해로 인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미국 교회의 후원을 받아 피그미 마을에 염소를 제공했지만, 3개월 후 방문했을 때 염소들이 모두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크게 실망했습니다. 알고 보니 피그미 주민들이 염소를 잡아먹은 것이었고, 이에 최 선교사님은 크게 화를 내며 “다시는 이 마을에 오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새벽 기도 중, “배고픈 사람이 염소 잡아먹은 게 무슨 큰 죄냐”는 음성을 듣고 자신의 경솔함을 깨닫고 뉘우쳤습니다. 이후 다시 마을을 방문하여 사과하고, 염소 농장을 통해 지속적으로 피그미족의 자립을 돕는 방향으로 사업을 전환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그는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이해와 인내심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은 피그미족에게 더욱 심각한 어려움을 가져왔습니다. 국경 봉쇄와 이동 제한으로 인해 외부 지원이 끊기고, 주 수입원이었던 밀렵마저 어려워지면서 피그미족은 극심한 식량난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최 선교사님은 “피그미족이 굶어 죽지 않게 해달라”는 절박한 기도 제목을 나누며, 현재 상황의 심각성을 호소했습니다. 그는 제한적인 여건 속에서도 동역자들과 함께 식량을 지원하고 있지만, 역부족인 상황입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최 선교사님은 피그미족을 향한 사역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그냥 좋아서 간다”고,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고 겸손하게 답합니다.
최 선교사님은 “짐승처럼 살던 피그미족을 내셔널 파크 밖으로 쫓아냈지만, 정작 땅도 주지 않고 방치하여 도둑질과 밀렵으로 연명하게 만든 세상의 불의를 알리고 싶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피그미족이 사회적으로 차별받고 멸시받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그들의 참상을 세상에 알리고, 그들을 기억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는 피그미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의 인권과 존엄성을 회복하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 또한 중요한 사역임을 강조합니다. “와서 그들의 역사와 이야기를 기록할 수 있도록 가르쳐달라”는 피그미족의 요청은, 단순한 물질적 지원을 넘어, 그들의 문화와 정체성을 지키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최 선교사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선교의 본질과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그는 화려한 언변이나 거창한 계획이 아닌, 진솔한 마음과 헌신적인 삶으로 피그미족에게 다가가고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성공적인 선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 수 있지만, 진정한 선교는 숫자로 평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영혼을 향한 진심과 사랑, 그리고 끊임없는 헌신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그미족과 최 선교사님을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기도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이라도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지상명령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우리의 삶 속에서 그 의미를 실천해야 할 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