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새꿈교회 개척 이야기: 이미리 목사의 감동 간증과 희망
## 벼랑 끝에서 만난 희망, 제주도 '새꿈' 이야기
무작정 제주도 개척, 그 후의 이야기: 이미리 목사의 파란만장 인생 개척기
오늘, 여러분은 특별한 여정을 걸어온 한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깊은 감동과 새로운 도전을 얻게 될 것입니다. 바로 제주도에서 새꿈교회를 개척하고 카페 아난을 운영하며, 삶의 희망을 노래하는 이미리 목사님의 이야기인데요. 돈을 벌기 위해 찾았던 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나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틀었다는 그녀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삶의 진정한 가치와 믿음의 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지금부터 이미리 목사님의 솔직하고 담백한 간증 속으로 함께 떠나보시죠.
주영훈 님: 안녕하세요, 새롭게 하소서의 주영훈입니다.
송주은 님: 안녕하세요, 송주은입니다.
박 님: 안녕하세요, 박입니다.
주영훈 님: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은 정말 각양각색인데요, 오늘 모실 분은 돈을 벌기 위해 찾아간 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났다고 합니다.
송주은 님: "하나님 뜰 안에 사는 개라도 좋으니 저를 개처럼 여겨주세요" 라는 기도를 드렸다고 하는데요, 정말 강렬한 고백이지 않습니까? 너무나 기대되는 간증입니다.
주영훈 님: 제주도에서 카페를 운영하시면서 새꿈교회를 목회하고 계시는 이미리 목사님을 모셔보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이미리 목사: 안녕하세요.
주영훈 님: 와, 멀리 제주도에서 오셨네요. 제주도 좋죠?
이미리 목사: 네, 지금 제주도는 안에만 있으면 너무 좋은 날씨예요.
주영훈 님: 밖에가 너무 덥죠. 목사님 오신다고 김병현 목사님도 함께 와주셨네요. 두 분이 다드림교회에서 같이 사역하셨다고요?
이미리 목사: 네, 제가 제주도에 가기 전에 김병현 목사님이 시무하시는 다드림교회에서 쭉 사역을 했었습니다. 지금도 저희 새꿈교회와 다드림교회는 동역 관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응원차 와주셨어요.
주영훈 님: 목사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사역의 길로 어떻게 이끄셨는지, 또 돈 벌러 간 곳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만나게 되셨는지 이야기를 시작해볼까요? 인터뷰를 보니 아버지와의 이별이 굉장히 마음 아픈 기억이셨다고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25살 그녀에게 드리운 슬픔의 그림자
이미리 목사: 네, 저희 아버지가 2009년 즈음에 갑작스럽게 쓰러지셔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제가 25살이었는데,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주영훈 님: 지병이 있으셨나요?
이미리 목사: 네, 아버지가 뇌경색을 오래 앓고 계셨어요. 일상생활에 큰 지장은 없었지만, 뇌경색이라는 위험 요인을 안고 계셨죠. 아버지께서 쓰러지시던 때가 1월이었는데, 그 해 겨울이 유난히 추웠습니다. 수도 동파를 해결하시려고 계속 바깥일을 하시다 뇌출혈로 쓰러지셨다고 하더라고요.
송주은 님: 정말 갑작스러웠네요.
이미리 목사: 네, 어머니와 식사하시다가 갑자기 쓰러지셨대요. 병원에서는 아버지 상태가 너무 안 좋다고, 수술해도 100% 사망이고, 예후가 좋아도 식물인간이나 뇌사 상태가 될 거라고 했습니다. 승압제를 계속 써서 혈압을 유지했지만, 약물에도 혈압이 계속 떨어졌다고 해요. 의사 선생님께서 주변에 아버지를 봐야 할 분들이 있으면 빨리 불러서 인사를 나누라고 하셨습니다.
주영훈 님: 정말 안타까운 상황이었네요.
이미리 목사: 네, 그렇게 이틀 반 정도 중환자실에 계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주영훈 님: 아버지께서는 어떤 분이셨나요?
이미리 목사: 아버지께서는 어머니에게 좋은 남편은 아니셨어요. 밖으로 다니시는 것을 좋아하시고, 친구들과 술을 즐기셨죠. 가정 경제는 어머니께서 책임지셨습니다.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 상태였고, 아버지로 인한 가정의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두말할 것 없는 너무 좋은 아버지셨어요. 어릴 때 저와 단둘이 춘천 여행을 가 경찰에 실종 신고가 될 뻔한 적도 있을 정도로 저를 굉장히 예뻐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빈자리가 정말 컸습니다.
송주은 님: 아버님과의 추억이 많으셨군요. 그때는 신앙생활은 어떠셨어요?
이미리 목사: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는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어릴 때부터 교회를 데리고 다니셨고, 저도 교회에서 자랐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교회 반주자로 섬기면서 음악가의 꿈을 키웠습니다. 매일 교회에서 찬양 연습을 하고, 토요일 밤에는 교회에서 자기도 했죠. 교회 언니, 오빠들과 형제자매처럼 지냈습니다. 하지만 대학교에 가니 세상이 너무 즐거웠습니다.
세상의 즐거움에 빠져 멀어진 신앙, 방황하는 20대
이미리 목사: 대학교는 정말 새로운 세계였어요. 제가 꿈꿔왔던 모든 것이 현실로 나타나는 듯했습니다. 술도 좋아했고, 담배도 즐겼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살았나 싶지만, 그때는 정말 즐거웠어요. 친구들과 함께라면 무엇을 해도 재미있을 나이였죠. 실용음악과에 진학하면서 제가 꿈꿔왔던 삶을 마음껏 누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교회를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주영훈 님: 정말 180도 다른 삶을 사셨네요. 아버님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어떠셨어요?
이미리 목사: 어머니는 많이 힘들어하셨습니다. 아버지께 “나쁜 사람”이라고 말씀하시고, “아빠 같은 남자 절대 만나면 안 된다”고 하셨지만, 사실 두 분은 24시간 붙어 계셨고, 어머니께서 아버지를 많이 의지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크게 느끼셨죠. 매일 밤 술을 드시고 우셨어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안타까움, 그리고 혼자 남겨진 삶에 대한 두려움이 뒤섞인 감정이었을 거예요.
송주은 님: 어머님도 힘든 시간을 보내셨군요.
이미리 목사: 네, 저도 그때 신앙이 없었고,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큰 슬픔에 짓눌려 있었어요. 어머니와 아버지 이야기는 일부러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어머니가 술에 취해 잠드시면, 저는 1층 주차장에 내려가 술을 마시며 울었습니다. 새벽에 다시 올라와 잠들곤 했죠.
주영훈 님: 20대 중반에 감당하기 힘든 슬픔이었을 것 같아요. 그때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셨나요?
이미리 목사: 정말 많이 원망했습니다. “왜 우리 가정에 이런 어려움을 주시나”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습니다. 저도 매일 술을 마시다시피 했어요. 어느 날은 하늘에 대고 삿대질하며 “하나님 계시면 나와보라고, 얘기 좀 하자”고 소리치기도 했습니다. 교회는 안 다녔지만, 마음 한편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남아 있었던 것 같아요. 원망하면서도 하나님을 찾고 있었던 거죠.
주영훈 님: 힘든 시간을 보내셨네요. 식당 운영도 하셨다고요?
이미리 목사: 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오랫동안 식당을 함께 운영하셨어요. 아버지는 일식 요리사셨고, 어머니는 경영을 맡으셨죠.
주영훈 님: 아버님이 요리를 잘 하셨군요. 갑자기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식당 운영에 어려움이 많았겠어요.
이미리 목사: 네, 아버지가 안 계시니 식당 운영이 쉽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도 힘들어하셨고, 아버지 빈자리를 채울 사람도 없었죠. 아버지 돌아가시고 2년 만에 저희 집은 경제적으로 파탄을 맞게 되었습니다.
경제적 파탄과 절망, 삶의 벼랑 끝에서 만난 하나님
주영훈 님: 경제적인 어려움까지 겹치니 정말 힘드셨겠어요. 결국 그렇게 힘든 상황이 되어서야 하나님을 찾게 되신 건가요?
이미리 목사: 경제적인 어려움이 닥쳤을 때는 하나님 생각보다 “죽어야 끝나겠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날 새벽, 술을 마시고 번개탄을 사러 온 동네를 돌아다녔어요. 차에서 번개탄을 피워 인생을 끝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새벽 내내 돌아다녀도 아무도 번개탄을 팔지 않더라고요.
송주은 님: 정말 다행이네요.
이미리 목사: 네, 결국 번개탄을 못 샀어요. “내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는구나”라는 원망과 함께 다시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어려움이 시작되었죠.
주영훈 님: 주변에 도움을 줄 지인은 없었나요?
이미리 목사: 길거리에 나앉은 상황이었어요. 오갈 데도 없고, 당장 생계를 유지할 돈도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친구분 댁으로 가셨고, 저는 음악 활동을 같이 했던 녹음실 친구 집에 한 달 정도 얹혀살게 되었습니다. 학교 선배 소개로 찬양팀에서 찬양 인도를 몇 번 했었는데, 그때 만났던 친구들이에요. 경제적 파탄 1년 전에 교회에서 간사 제의가 왔었는데 거절했었죠. 그런데 그 목사님이 생각나더라고요.
주영훈 님: 그 목사님께 연락을 하셨군요.
이미리 목사: 네, 목사님 교회에 전화를 드리고 찾아뵙겠다고 했습니다. 찾아가서 상황을 말씀드렸죠. “길바닥에 나앉았고, 오갈 데도 없고, 먹고 살 것도 없다”고 말씀드렸더니, 목사님께서 그날 아침 교회 간사님이 사임 의사를 밝혔다고 하시더라고요.
송주은 님: 정말 놀라운 우연이네요.
이미리 목사: 네, 목사님께서 “우리 교회 간사 자리가 하나 나왔는데, 와서 사역해보지 않겠냐. 너도 살아야 하지 않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솔직히 “네, 당연히 해야죠” 라고 대답하는 게 맞는데, 너무 하기 싫었어요. 다시 교회에 들어가고, 삶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께 “하루만 고민해보겠다”고 말씀드리고 나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세상과의 이별의 술잔을 기울이며 미련을 떨쳐내려고 했죠.
주영훈 님: 미련이 많으셨나 봐요.
이미리 목사: 네, 가진 것도 없는데 미련이 많았어요. 그렇게 마지막 밤을 보내고 다음 날 목사님께 전화 드려서 “하겠습니다” 하고 교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주영훈 님: 떠밀리듯 교회에 가게 된 건데, 적응은 잘 되셨나요?
이미리 목사: 7, 8년 만에 교회로 돌아간 거였어요. 너무 싫었습니다. 예배가 너무 많고, 매일매일 예배를 드려야 했죠. 낯선 사람들이 계속 인사하고, 저도 계속 웃으며 인사해야 하는 것도 힘들었어요. 언제든 기회만 되면 도망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뜰 안의 개라도 좋습니다", 절망 끝에서 드린 간절한 기도
주영훈 님: 교회 생활이 쉽지 않으셨군요. 그러다 "하나님 뜰 안에서 사는 개라도 좋다"는 기도를 드리게 되셨다고요. 어떻게 그런 기도를 하게 되셨나요?
이미리 목사: 금요철야 예배 때였던 것 같아요. 여전히 예배가 지루하고 힘들었지만, 억지로 앉아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지난 삶을 인도해오신 하나님이 떠올랐습니다. 집은 망했지만, 지금까지 저를 세심하게 인도해오신 하나님, 막 살았던 저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다시 예배 자리에 불러주신 하나님. 그런 하나님의 은혜가 느껴지면서 죄송한 마음이 밀려왔습니다. “하나님, 이제는 하나님이 저의 생명이십니다.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아빠도 없고, 하나님만이 저의 유일한 보호자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돌봐주시지 않으면 저는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뜰 안의 개처럼이라도 좋으니, 저를 개처럼이라도 돌봐주세요” 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송주은 님: 정말 진심이 담긴 기도였네요.
주영훈 님: 마치 탕자의 비유처럼, 아버지께 돌아온 탕자가 아들이 아닌 종이라도 좋다는 마음으로 간구한 것과 비슷하네요.
이미리 목사: 네, 맞습니다. 딱 그런 마음이었어요.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 그리고 하나님께 매달리고 싶은 간절함이 뒤섞인 기도였습니다.
(찬양 "여기 길")
주영훈 님: 찬양이 정말 감동적이네요. 곡 자체가 너무 좋습니다.
이미리 목사: 감사합니다.
주영훈 님: 저는 가사를 다 외웠습니다. 정말 숨은 고수시네요.
송주은 님: 찬양 너무 좋네요. 가사가 마음에 와닿습니다.
주영훈 님: 음원 사이트에 "여기 길 위해" 로 검색하면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제주도에서 사시는데, 원래 제주도에 연고가 있으셨나요?
무작정 떠난 제주도, 인생 2막을 열다
이미리 목사: 제주도에는 전혀 연고가 없습니다. 어릴 때부터 제주도를 정말 좋아했어요. 여행도 자주 갔었고, 사역하면서 힘들 때마다 제주도에 가서 쉬면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제 삶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지는 않으셨을 거라는 위로를 얻고 돌아오곤 했죠. 언젠가 제주도에서 사역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자연 속에서 낯선 사람들과 거리낌 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작년 8, 9월쯤에 무작정 제주도로 떠났습니다.
주영훈 님: 정말 무작정 가신 거군요. 인생 개척이자, 교회 개척이네요. 교회 개척하려고 제주도를 돌아다니셨을 텐데, 제주도가 넓잖아요. 어디에 교회를 세워야 할지 막막했을 것 같아요.
이미리 목사: 작년 4월부터 제주도를 한 바퀴 돌면서 교회를 어디에 세울지 고민했습니다. 제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교회가 없는 곳에 교회가 있는 게 맞다”는 단순한 생각이었어요. 다른 생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교회가 없는 곳은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많은 교회들 틈바구니에 들어가지 않고, 정말 교회가 없는 곳에 교회를 세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교회가 별로 없는 곳에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송주은 님: 교회가 없는 곳은 사람도 없을 텐데요.
이미리 목사: 네, 정말 인적이 드뭅니다. 밤이 되면 동네 가로등도 없을 정도예요. 그런 곳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주영훈 님: 저렴한 곳을 찾으셨나 했는데, 또 비싸다고요?
이미리 목사: 네, 비싸요. 저희 교회는 해안 도로변에 있습니다. 서귀포 대정읍이라는 마을인데, 모슬포라고도 불립니다.
주영훈 님: 모슬포요? 거기 가파도, 마라도 가는 배 타는 곳 아닌가요?
이미리 목사: 네, 맞습니다. 최남단이죠. 저희 동네는 정말… 배 타러 가는 분들만 잠깐 들르는 곳이에요.
주영훈 님: 관광객들도 잘 안 가는 곳인가 보네요. 교회 자리를 알아보는 것도 쉽지 않았을 텐데요.
교회 자리 구하기의 어려움, 그리고 '아난'과의 만남
이미리 목사: 4개월 동안 제주도를 돌아다니며 교회 자리를 알아봤습니다. 부동산에 가서 교회 자리를 알아보러 왔다고 하면, 자리를 안 주려고 해요. 교회는 시끄럽고, 사람이 많이 오가고, 주차 문제도 있고, 주민들이 싫어한다는 거예요. 관광지 안쪽으로 가려고 해도 상인회와 의논해야 한다고 하고요. 교회 자리를 못 구하고 계속 돌아다니다가, 어느 날 그 도로를 지나가는데 "임대" 라고 쓰인 종이가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없었던 자리였어요. 부동산에 전화해서 자리를 보고 싶다고 했죠. 오후에 그곳으로 가면서 “하나님의 구름이 움직이실 때가 되었나 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희 카페 이름이 아난인데요, 히브리어로 "구름" 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함을 받았던 것처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그 자리에 가게 된 것 같았습니다.
주영훈 님: 아, 아난 이라는 이름이 그런 뜻이었군요. 이름이 참 예쁘네요.
이미리 목사: 네, 그날 자리를 보고 바로 계약했습니다.
주영훈 님: 보통 교회 개척은 몇 가정이 모여서 시작하는 걸로 아는데, 목사님은 혼자 계약하고 시작하신 건가요? 첫 예배는 누구랑 드려야 하나 걱정했을 것 같아요.
이미리 목사: 그때는 정말 몰라서 용감했습니다. 보통 개척 교회는 가정이 모이기 쉬운 곳에 자리를 얻는데, 저는 아무것도 없이 그냥 덜컥 계약부터 한 거죠. 사람들이 막 올 줄 알았어요. 제가 꿈꿨던 사역은 동네 청년들, 여행 온 청년들이 모여 찬양하고, 카페처럼 편안하게 드나들 수 있는 교회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마라도, 가파도 가는 길목이니 기도하러 오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했고요. 하지만 현실은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송주은 님: 십자가도 걸어놓고 교회 간판도 달았는데 아무도 안 왔다고요?
이미리 목사: 네, 새꿈교회라는 작은 명패를 달았지만, 눈에 잘 띄지도 않았고,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막막했어요.
주영훈 님: 아난, 구름이라는 이름이 먹구름이었네요.
이미리 목사: 네, 이름을 잘 지었어야 했나 봐요. 아무도 안 오고… 카페를 열고 나서야 조금씩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동네 어촌계장님, 해녀 할머니, 빵집 사장님, 게임방 사장님, 다방 이모님 들이 오셨어요. 예배는 같이 드리지 않지만, 그분들과 교제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주일 예배는 지금 청년 한 명과 드리고 있습니다.
주영훈 님: 벌써 1호 성도가 생겼네요! 정말 귀한 청년일 것 같아요.
이미리 목사: 네, 서울에서 같이 신앙생활하던 친구인데, 저를 불쌍히 여겨서 제주도로 이사 온 친구예요. 자기가 없으면 제가 예배를 못 드릴까 봐 매주 와줍니다. 정말 고마운 친구입니다.
송주은 님: 여행지로 생각했던 제주도와 삶의 터전이 된 제주도는 많이 다르죠?
제주도의 현실,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한 새로운 소명
이미리 목사: 정말 너무 몰랐다는 생각을 매일 합니다. 알았으면 못 왔을 거예요. 지금도 제일 자주 하는 일이 주변 정리, 진해 잡기, 무너진 곳 보수하기 입니다. 제주도는 진해가 정말 많아요. 여행지와 제가 사는 곳은 정말 다릅니다.
주영훈 님: 제주도의 강풍도 맞아보셨나요?
이미리 목사: 네, 정말 사람이 날아갈 것 같은 강풍이 불어요. 태풍도 자주 오고요. 저희 동네 모슬포는 어르신들이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서 못 살겠다” 고 해서 못살포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해요. 교회 인테리어를 제가 직접 했는데, 거의 끝나갈 무렵 강풍이 불었습니다. 나가보니 교회 앞에 2m 간판이 반쯤 무너져 내렸더라고요. 정말 막막했습니다. 아는 사람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죠. 안전 문제도 있고 해서, 비바람을 맞으면서 혼자 간판 더미를 어깨에 메고 철거했습니다. 나머지 반쪽도 위태롭게 걸려 있어서 서울에 있는 친구들에게 연락해서 도움을 요청했어요.
주영훈 님: 친구분들이 와주셨군요.
이미리 목사: 네, 고맙게도 친구 세 명이 급하게 와줬습니다. 연장통을 들고 와서 간판을 철거해주고, 온 김에 교회 청소도 시켰어요. 친구들이 나중에 비행기 안에서 다 토했다고 하더라고요. 너무 힘들었다면서요.
주영훈 님: 얘기만 들어도 힘든 여정이었네요. 언제까지 제주도에서 사역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제주도에서 비전을 품고 사역하시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이미리 목사: 처음에 꿈꿨던 사역은 아니지만, 지금 만나 뵙는 분들, 신앙 없는 어촌계장님, 해녀 할머니, 사장님들이 저를 너무 잘 받아주세요. 그분들은 평생 목사를 가까이서 볼 일이 없었을 텐데, 저를 통해 교회를 편하게 드나들게 되셨죠. 저희 어촌계장님은 교회에 오실 때마다 “나 여기 명예 교인이야” 라고 말씀하시며 들어오세요. 본인들끼리 2호기, 3호기 번호도 정해두셨다고 하더라고요. 예배는 함께 드리지 않지만, 그분들과 좋은 이웃으로 살아가는 것이 지금 하나님이 저에게 맡겨주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리 목사: 교회에 상처받은 분이 저에게 욕을 하시기도 했어요. “너희가 믿는 하나님 다 뻥 아니냐, 성경 다 지어낸 이야기 아니냐, 교회나 세상이나 다 똑같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냥 “하나님께서 저를 저분 욕 들어주는 사람으로 보내셨나 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분들과 함께 있는 것이 지금 저의 부르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영훈 님: 정말 의미 있는 사역을 하고 계시네요.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예전에 세상을 떠나고 싶어 했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도 있으셨을 텐데요. 지금도 힘든 순간들이 있을 텐데, 다음 세대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절망의 끝에서 발견한 희망, 그리고 다음 세대를 향한 메시지
이미리 목사: 솔직히 저에게도 그때의 흉터가 남아있습니다. 여전히 때때로 끝을 생각하기도 하고, 아프기도 합니다. “지금은 괜찮냐, 그런 생각 안 하냐”고 물으신다면, “아니요”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어요. 여전히 힘든 순간들이 찾아오지만, 제가 끝을 향해 달려가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저의 끝마다 늘 계셨던 하나님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제 끝에서 늘 더 선한 일, 더 좋은 일을, 저보다 더 열정적으로, 더 신실하게 해오셨습니다. 지금까지 저를 인도해주셨죠. 지금도 끝을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그 끝에 하나님이 계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 끝은 하나님의 시작이고, 우리의 생명과 소망입니다.
주영훈 님: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네요. 송주은 씨는 어떠셨어요?
송주은 님: 목사님 간증을 들으면서 하나님은 정말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크신 분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목사님의 꿈은 가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지경을 제주도까지 넓히시고, 새로운 꿈을 꾸게 하셨습니다. 꿈 없는 분들, 힘든 시간을 보내는 분들이 많은 요즘, 목사님의 간증을 통해 많은 분들이 새로운 희망을 얻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박 님: 목사님 간증 잘 들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제주도에 교회를 개척하실 때, 주변에서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텐데, 그런 반대에도 불구하고 순종하신 모습이 정말 대단합니다. 많은 교회들이 접근성이 좋은 곳,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세워지는데, 과연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목사님처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사역하시는 분들이 진정한 하나님의 마음을 실천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주영훈 님: 선교라고 하면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를 떠올리지만, 바로 우리 땅, 제주도에서도 선교가 필요합니다. 서귀포 대정이라는 외진 곳에서 묵묵히 사역하시는 목사님의 모습이 진정한 선교사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목사님의 아름다운 목소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새꿈교회와 카페 아난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이미리 목사: 감사합니다.
주영훈 님: 네, 감사합니다.
(음악)
주영훈 님: n
본문 내용 요약 및 핵심:
절망의 끝에서 만난 하나님: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경제적 파탄, 삶의 의미를 잃고 자살까지 시도했던 이미리 목사는 절망의 벼랑 끝에서 하나님을 만나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하나님 뜰 안의 개라도 좋습니다": 간절한 기도와 함께 교회 간사로 사역을 시작하며, 잃어버렸던 신앙을 회복하고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맺습니다.
무작정 떠난 제주도 개척: 제주도에 연고도 없이, 재정적인 기반도 없이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무작정 제주도로 떠나 새꿈교회를 개척합니다.
어려움 속에서 피어난 희망: 교회 자리를 구하기 어려움, 외로운 개척 생활, 예상치 못한 어려움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묵묵히 사역을 이어갑니다.
지역 주민들과의 따뜻한 교류: 예배에 참석하는 교인은 적지만, 카페 아난을 통해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고, 그들에게 따뜻한 이웃이 되어줍니다.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 힘든 과거를 딛고 일어서서,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새로운 꿈을 꾸며 나아가는 이미리 목사의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과 도전을 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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