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자활과 십자가 사랑, 산마루 공동체 이주연 목사의 감동 이야기
십자가 사랑으로 노숙인과 함께: 산마루 공동체
💒 십자가의 사랑으로 '의분'이 아닌 사역을 펼치는 이주연 목사의 이야기: 산마루예수공동체와 서희주 수어통역사의 감동적인 동행
오늘, 깊은 절망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실패를 통해 더욱 성장하는 한 목회자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우연히 찾아온 노숙자들을 품고 공동체를 이루기까지, 그리고 그 모든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기까지의 여정을 산마루예수공동체 이주연 목사님과 함께 되짚어보며, 망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다시 일어설 힘이 없는 분들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선사할 것입니다. 특히, 이번 글에서는 이주연 목사님의 파란만장한 목회 여정과 더불어, '의분'이 아닌 '십자가의 사랑'으로 펼쳐나가는 사역의 깊이 있는 의미를 상세히 탐구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이주연 목사님은 41년째 목회 외길을 걸어오신, 깊은 연륜과 따뜻한 인품이 느껴지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목사님의 시작은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스스로를 '잘 나가던 기차 여행'에 비유하며, 순탄하게 흘러갈 것 같았던 인생 여정이 예상치 못한 비극으로 멈춰 섰다고 회상합니다. 12살 어린 나이에 아버님을 여의고, 6년 후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시면서, 인생의 깊은 절망과 마주하게 된 것인데요, 마치 기차 바퀴 두 개가 빠져 멈춰버린 듯한 상실감과 방황 속에서, 삶의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죽음이라는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종착지를 깨닫고, 세상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보며 방황하던 목사님은, 신학이라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됩니다. 신학교에 가면 삶의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순수한 희망을 품었지만, 현실은 기대와 달랐습니다. 성경 해석 방법이나 문서 비평과 같은 이론적인 학문은, 당장 삶의 의미를 갈구하던 목사님의 절박한 심정을 채워주지 못했습니다. 목사님은 마치 목마른 사람이 물 대신 모래를 씹는 듯한 절망감을 느끼며, 신학교 입학 3개월 만에 학교를 그만두게 됩니다.
신학교에서 답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던 목사님은, 제도나 인간이 아닌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 해답을 얻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오랜 방황 끝에, 인간적인 노력이나 지식으로는 삶의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고,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을 직접 만날 때만이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얻을 수 있다는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목사님을 절망에서 일으켜 세우고, 새로운 길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었습니다. 비록 죄인이고 부족하지만, 택하심에 감사하며, 하루하루 맡겨진 사역에 기쁨으로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뜻밖에도, 목사님의 목회 여정은 노숙인 사역이라는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디지털 혁명 시대와 기독교의 사회적 리더십 위기 속에서 고민하던 목사님에게, "네가 알면 네가 해야지 누가 하겠느냐" 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 음성에 순종하여, 선교 기관에서 나와 곧바로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는데요, 21세기 첫 부활절 아침, 2001년 4월 첫 주에 가정에서 예배를 시작하며 '영적으로 집중된 교회' 를 꿈꾸었습니다. 놀랍게도, 시대적 요청과 하나님의 역사하심 속에서 교회는 빠르게 성장했고, 1년에도 두 번씩 이사를 다닐 정도로 부흥했습니다.
마포구 신공덕동 언덕으로 교회를 이전하면서, 예기치 않게 노숙인 형제들과의 만남이 시작됩니다. 교회 위치가 만리재를 넘어 서부역과 가까웠던 탓에, 자연스럽게 노숙인 형제들이 교회를 찾아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서너 명에 불과했지만, 교인들의 따뜻한 환대와 섬김 속에서 노숙인 형제들은 점차 늘어났습니다. 교인들은 아침 성경 공부 시간에 노숙인 형제들과 함께 커피와 빵을 나누며 따뜻한 마음을 전했고, 이러한 섬김은 점차 입소문을 타면서 더 많은 노숙인들이 교회를 찾게 만들었습니다.
노숙인 형제들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을 위한 예배를 따로 드려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중고등부 학생 예배 시간에 노숙인들이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공간이 부족해지고, 서로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는데요, 그래서 1부, 2부 예배 외에 노숙인들을 위한 예배를 추가로 만들게 됩니다. 저녁 7시 경에 시작된 예배에는 놀랍게도 1년 만에 150명이 넘는 노숙인들이 참석하기 시작했습니다. 따뜻한 식사 제공 또한 노숙인 형제들이 교회에 몰려드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교회에서 제공하는 따뜻한 식사는, 그들에게 일주일 중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노숙인 사역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150명이 넘는 노숙인들이 예배에 참석하면서, 냄새 문제, 위생 문제, 그리고 주변 상가 주민들과의 갈등이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화장실 파손, 쓰레기 투기, 담배 연기 등으로 인해 주변 상인들의 불만이 커져갔고, 더 이상 노숙인 사역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목사님은 고심 끝에, 교회에 피해를 주는 행동을 개선하지 않으면 더 이상 사역을 지속할 수 없다는 단호한 입장을 전달하고, 노숙인들에게 스스로 주변을 정리하고 깨끗하게 사용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놀랍게도, 목사님의 진심 어린 호소는 노숙인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예배 후, 노숙인들은 스스로 조를 만들어 교회 주변을 청소하기 시작했고, '당신들은 더 이상 노숙인이 아닌 하나님의 백성이며, 예수님의 자녀' 라는 목사님의 외침은 그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이때부터, 노숙인들 스스로 봉사자들이 되어 예배를 돕고, 교회를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예배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은, 노숙인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힘을 발휘한 것입니다.
교회 공간의 한계를 느끼면서, 목사님은 노숙인들을 서울역에서 벗어나게 할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합니다. 단순히 예배 공간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노숙인들이 쉼과 회복을 얻고 자립을 준비할 수 있는 공간의 필요성을 절감한 것입니다. 이러한 고민 속에서, 부암동의 한 농업 폐기물 쓰레기장을 발견하고, 그곳을 직접 치워 '사랑의 농장' 을 조성하게 됩니다. 청와대 뒷산 북악산 자락에 위치한 깊은 산골인 부암동은, 노숙인들에게 서울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쉼을 얻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습니다.
사랑의 농장에서 2년간 노숙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목사님은 더 큰 그림을 그리게 됩니다. 단순히 쉼터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노숙인들의 자립과 자활을 돕는 공동체를 꿈꾸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비전을 품고 있을 때, 한 권사님의 도움으로 12,000평 규모의 농장을 무상으로 임대받게 되면서, 포천에 '해맞이 공동체' 를 설립하게 됩니다. '오기만 해도 하루에 만 원씩 지급' 한다는 파격적인 조건은, 당장 생계가 막막한 노숙인들에게 큰 유인이 되었고, 많은 노숙인들이 해맞이 공동체에 합류하게 됩니다.
해맞이 공동체에서는 농사를 통해 자립 기반을 마련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대추, 오이 등 다양한 농작물을 재배하며 자립 가능성을 엿보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공동체 운영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어려움과 갈등이 끊임없이 발생했는데요, 특히 돈 문제와 관련된 사건 사고, 공동체 구성원들의 도박 문제, 그리고 염소 도난 사건과 숙소 화재 사건 등은 목사님에게 큰 상처와 실망감을 안겨주었습니다. 7년간의 해맞이 공동체 운영 경험은, 노숙인 자활 사역의 현실적인 어려움과 한계를 깨닫게 해주는 소중한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깊은 좌절감을 맛보게 하기도 했습니다.
7년간의 경험을 통해, 목사님은 노숙인 공동체의 지속 가능한 운영 방안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됩니다. 첫째, 노숙인들만으로는 공동체 유지가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둘째, 일반 교인들과 청년들의 참여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노숙인, 일반 교인, 청년들이 함께 어우러져 공동체를 이루어야만, 수용소와 같은 격리된 공간이 아닌, 건강하고 미래지향적인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입니다. 노숙인 30%, 일반 성도 30%, 청년 40% 의 이상적인 구성 비율을 설정하고, 새로운 공동체 모델을 구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공동체 모델을 구상하며 평창으로 이전할 계획을 세웠지만, 이전 과정 또한 순탄치 않았습니다. 대관령면 유천리에 위치한 5만 평 규모의 농지를 계약하려 했지만, 세 번이나 겪은 사고는 목사님에게 이곳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강한 확신을 주었습니다. 특히, 세 번째 방문 당시 겪었던 사고는 목사님을 깊은 절망에 빠뜨렸습니다. 계약금도 없이 덜컥 땅을 계약하려 했던 자신의 무모함을 깨닫고, 깊은 자괴감과 절망감에 휩싸였던 것입니다. 목사님은 "주님, 증거를 보이시지 않으면 저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습니다." 라고 절박하게 기도하며, 모든 것을 포기하려는 마음까지 먹었습니다.
절망 속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순간, 기적처럼 한 할머니 권사님을 통해 800만 원의 현금이 전달됩니다. 사고 후 마음의 평안을 되찾았지만, 기도조차 나오지 않던 시기에, 할머니 권사님이 '산마루교회 이주현 목사에게 전달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800만 원을 전달한 것입니다. 예상치 못한 헌금은 목사님을 다시 한번 놀라게 했고,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증거인가?' 라는 생각과 함께 다시 사역을 시작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5만 평 부지를 매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기에, 막막함은 여전했습니다.
800만 원 헌금 사건 이후, 새로운 교우를 통해 평창 유포리에 5만 평이 넘는 최적의 부지를 소개받게 됩니다. 세컨하우스를 짓고 평창에 거주하던 교우는, 우연히 목사님의 사정을 듣고 자신이 눈여겨보던 산정의 땅을 소개해주었습니다. 5만 평이 넘는다는 말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부지를 방문하게 됩니다. 부지에 도착한 순간, 고요함 속에서 "회개한 자가 거하는 거룩한 땅이 되게 하라" 라는 음성을 듣게 됩니다. 예상치 못한 음성에 당황했지만, 왠지 모르게 이끌리는 마음을 느꼈습니다.
다음 날, 다시 부지를 방문했을 때, "네가 선 곳은 거룩한 곳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라는 음성을 듣게 됩니다. 모세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듯한 경험은, 목사님에게 깊은 전율과 함께 이곳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땅이라는 확신을 주었습니다. 미신처럼 여겼던 음성 경험을 부정할 수 없었고, 하나님께서 직접 증거를 보여주셨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이끄심에 순종하여 평창으로 이전하는 것을 결심하게 됩니다.
평창 이전 결정을 내렸지만, 여전히 20억 원이라는 막대한 부지 매입 자금이 필요했습니다. 능력도, 재력도 없는 상황에서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5월 21일, 22일 음성을 들은 후, 일주일 동안 새벽 기도에 매달리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6월 30일까지 20억 원이 모금되면 부지를 매입하고, 그렇지 않으면 포기하겠다는 담대한 선포를 하게 됩니다. 교인들에게 3년 약정 헌금을 요청하고, 매일 새벽 기도회를 열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놀랍게도, 3주 만에 20억 원 모금 목표를 달성하고, 기적적으로 평창 부지를 매입하게 됩니다. 교인들의 헌신적인 기도와 참여, 그리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하심 속에서 불가능해 보였던 일이 현실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준비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 속에서 시작된 모금 운동은, 3주 만에 기적적인 결실을 맺었고, 마침내 평창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40년 목회 여정뿐만 아니라 인생 전체가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었으며, 다만 순종하지 못하고 불충했던 시간들이 지연을 가져왔다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를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부족함 속에서도 키워가시며 마침내 이루신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습니다.
현재 평창 산마루예수공동체는 4년째 운영되며, 형제 자매처럼 서로를 아끼고 섬기는 공동체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청년들도 함께 동참하여 활력을 불어넣고 있으며, 규칙적인 생활 속에서 공동체 구성원들은 안정과 평안을 누리고 있습니다. 새벽 5시 기상(동절기 6시), 정해진 시간에 세 끼 식사, 하루 3시간 노동 등의 규칙적인 일과는 공동체 생활의 중요한 틀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하루 3시간 노동은 단순 노동이 아닌, 씨 뿌리기, 물 주기, 가지치기 등 생명을 살리는 거룩한 노동으로 인식되며,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기쁨과 보람을 선사합니다. 영성 일기 작성과 매일 기도회 또한 공동체 생활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각자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께 고백하는 형태의 기도를 통해,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고,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회개, 고백, 감사, 영광 으로 이어지는 기도 방식은, 공동체 구성원들의 삶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러시아 선교를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큰 은혜는, 목사님 자신의 교만과 의분을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사랑의 농장 5년간, 헌신적으로 노숙인들을 섬겼지만, 지쳐 쓰러질 즈음, 자신의 헌신이 순수한 사랑이 아닌 '의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가 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다는 명목 하에, 숨겨진 자기 의 가 있었음을 발견하고 깊이 반성하게 된 것입니다. '의분'이 아닌 '십자가의 사랑' 이야말로, 진정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원동력임을 깨닫게 됩니다. 의분은 개혁과 혁명에 머물지만, 십자가의 사랑은 원수까지 사랑하며 희생을 감수하는 하나님 나라 운동임을 강조합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통해, 진정한 치유와 회복, 그리고 정의로운 사회를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을 전하며, 앞으로도 십자가 사랑으로 하나님 나라 운동을 펼쳐나갈 것을 다짐합니다.
방송을 마무리하며, 목사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도전을 안겨줍니다. 실패와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의분'이 아닌 '십자가의 사랑'으로 묵묵히 사역을 감당하는 목사님의 모습은, 진정한 섬김과 헌신의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특히, 노숙인 자활이라는 쉽지 않은 길을 십자가 사랑으로 걸어가는 목사님의 숭고한 여정은, 우리 사회에 따뜻한 희망의 빛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산마루예수공동체가 십자가 사랑으로 더욱 성장하고, 어두운 곳을 비추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 나가기를 응원하며, 이 글을 마무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