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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장인 엘부림양복 박수양 대표, 맞춤 양복과 신앙 이야기

요약

기도로 40년, 감동을 담은 엘부림 양복 장인

"한 땀 한 땀 기도로 옷을 만들다": 엘부림양복점 박수양 대표, 40년 장인 정신의 깊은 향기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김학중 목사입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며 10년, 20년, 30년 한 길을 걸어오신 분들을 보면 존경심이 절로 솟아나는데요, 여러분도 그렇지 않으신가요? 저 역시 주변에서 그런 분들을 뵐 때면 고개가 숙여집니다.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묵묵히 한 길을 걸어오신 분들을 장인이라고 부르는데요, 오늘 특별히 40년 넘게 맞춤 양복만을 고집하며 외길 인생을 걸어오신 진정한 장인을 여러분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오늘의 주인공, 박수양 장로님은 단순한 양복 장인이 아닙니다. 그는 한 땀 한 땀 정성을 다해 옷을 짓고, 자신의 재능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물론,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진정한 '수제'입니다. 40년 넘는 세월 동안 맞춤 양복 외길을 걸어오신 박수양 장로님의 삶과 철학, 그리고 양복에 담긴 깊은 기도와 열정에 대해 지금부터 함께 알아보시죠.

40년 외길, 전통과 역사를 잇는 맞춤 양복의 장인

역사와 전통의 의미가 퇴색되어 가는 현대 사회이지만, 과거가 없다면 현재가 존재할 수 없듯이, 새로운 것은 전통과 역사 속에서 만들어져 갑니다. 양복 분야에서도 4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묵묵히 전통과 역사를 지켜온 장인이 있습니다. 바로 40년 넘게 오직 맞춤 양복만을 만들어 온 박수양 장로입니다. 그는 세상에 단 한 벌뿐인 양복을 통해 입는 사람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보듬어줍니다.

놀랍게도, 박 장로는 주님이 주신 탁월한 손기술넉넉지 못한 형편의 시골 교회 목회자들과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는 값비싼 양복을 무료로 만들어주며 사랑을 실천하고, 삶으로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묵묵히 주님께 삶으로 영광 돌리는 박수양 장로를 만나, 그의 40년 양복 인생과 뜨거운 신앙 간증을 들어보겠습니다.

"얼굴은 늙었지만, 솜씨는 그대로입니다" - 40년 장인의 첫인상

"어서 오세요, 어이구, 알아보시겠어요?" 환한 미소로 손님을 맞이하는 박수양 장로의 모습은 푸근한 인상입니다. 첫인사에서 느껴지는 친근함과 따뜻함은 40년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옷을 지어온 장인의 넉넉한 마음을 엿보게 합니다.

"얼굴은 많이 늙었죠? 하지만 양복 솜씨는 여전합니다, 허허." 농담 섞인 말이지만, 40년 경력에서 묻어나는 자신감과 자부심이 느껴집니다. 작업장 한 켠에는 박 장로가 직접 만든 듯한 멋스러운 양복이 걸려있는데요, 놀랍게도 본인이 직접 치수를 재고 만든 옷이라고 합니다.

"제가 치수를 못 재니까, 누가 재 줬냐고요? 허허, 농담입니다. 다 제가 직접 합니다." 능숙하게 치수를 재는 솜씨는 40년 경력의 베테랑 장인임을 증명합니다. 재단부터 마무리까지, 모든 과정을 혼자 해내는 진정한 '맥가이버'입니다.

"옷감도 직접 고르고, 디자인도 직접 합니다. 마음에 드십니까?" 손님이 입어본 양복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합니다. 마치 맞춤옷처럼 몸에 꼭 맞고, 세련된 디자인기성복과는 확실히 차별화됩니다.

"모델 뺨치는 핏인데요? 역시 장인 옷은 다르네요." 칭찬에 쑥스러워하는 박 장로의 모습은 소박하고 겸손합니다. 하지만 40년 외길 인생에서 쌓아온 기술과 열정은 그 누구보다 뜨겁습니다.

16세 소년, 양복의 꿈을 품다 - 장인의 지난날

"양복을 만드신 지 얼마나 되셨죠?" 40년 넘는 세월, 그의 양복 인생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갑니다. 박 장로는 1968년부터 양복 외길을 걸어왔다고 회상합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농사를 짓다가, 우연히 양복점에 들어가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뭣도 모르고 시작했어요. 서울에 처음 왔을 때가 16살이었는데, 그때부터 양복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죠." 16세 어린 나이에 낯선 서울에 와서 양복 기술을 배우는 것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서울 변두리, 명동, 광교 등 여러 양복점을 거치면서 기술을 익혔습니다."

1990년, 드디어 자신의 양복점 '엘부림양복점'을 개업했습니다. "군대 제대 후, 1990년에 엘부림양복점을 오픈했죠. 벌써 42년이나 되었네요." '엘부림양복점'이라는 이름에는 특별한 의미가 담겨있다고 하는데요, 잠시 후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40년 넘는 긴 세월 동안 양복 외길을 걸어온 박수양 장로. 2016년에는 한국맞춤양복협회에서 명장으로 선정되었고, 고용노동부에서 대한민국 산업현장 교수로 위촉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명장, 산업현장 교수... 정말 대단하십니다." 칭찬에 겸손하게 웃는 박 장로, 그의 양복 인생화려한 수식어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드라마 출연, 연기 데뷔? - 장인의 숨겨진 끼

"놀랍게도, 연기자로 데뷔도 하셨다고요?" 뜻밖의 질문에 박 장로는 쑥스러운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KBS 드라마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에 특별 출연했었습니다." 드라마 제목이 묘하게 '양복점'과 관련이 있는데요, "드라마 내용이 저희 아들처럼 가업을 잇는 연구팀 이야기였어요. 양복점 이야기가 나와서 특별 출연하게 되었죠."

극중 역할맞춤 양복 기술 경연 대회 심사위원. "한국맞춤양복기술협회에서 해마다 기술 경연 대회를 여는데, 거기 심사위원으로 출연했습니다." 상대역유명 배우 차인표. "차인표 씨와 실력을 겨루는 장면이었는데, 사실 차인표 씨가 저보다 실력이 훨씬 낫죠, 허허."

"혹시 우승은 누가 했나요?" "당연히 차인표 씨가 우승했죠. 드라마니까요." 웃으며 답하는 박 장로, 연기생각보다 재미있었다고 합니다. "뜻밖의 경험이었지만, 즐거웠습니다. 드라마 출연 덕분에 많은 분들이 저를 알아봐 주시기도 하고요."

"나는 하나님의 수제자" - 장인의 특별한 자부심

"하나님의 수제자라고 자신을 소개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박 장로는 자신을 '하나님의 수제자'라고 소개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제가 40년 넘게 양복을 만들어오면서 성경 말씀을 묵상하다가, 창세기 3장 21절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3장 21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이 구절을 통해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인류 최초의 재단사는 하나님이셨던 겁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잖아요."

"그렇다면, 양복 만드는 저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요?" "저는 감히 '하나님의 수제자'라고 자부합니다." '하나님의 수제자'라는 자부심은 40년 넘는 양복 인생을 지탱해 온 원동력입니다.

목사님의 전도, 교회와의 첫 만남 - 신앙의 여정

"오랜 세월 신앙생활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처음 교회를 다니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박 장로를 교회로 이끈 분강기호 목사. "지금은 미국에서 목회하고 계신 강기호 목사님인데, 당시 면목동에서 양복점을 했습니다. 제 양복점 바로 앞에 교회가 있었어요."

강 목사는 당시 청년회장. "어느 날 강 목사님이 저희 양복점에 찾아와 전도를 하시더라고요." "저는 사실 교회에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술도 좋아하고, 세상적인 재미를 쫓으며 살았죠." 하지만 강 목사의 끈질긴 전도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강 목사님이 '딱 한 번만 교회에 가보자'고 하셨어요. 워낙 간곡하게 부탁하시길래, 딱 한 번만 가보자, 하고 따라갔죠." 1973년 3월, 처음으로 교회 문턱을 넘었습니다. "교회에 처음 갔을 때 느낌은... 솔직히 '썰렁하다'였습니다. 젊은 아가씨들만 많고, 재미도 없고... "

"하지만 강 목사님의 끈질긴 권유로 계속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억지로 끌려가듯 교회에 나갔지만, 점차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죽음과 심판에 대한 깨달음 - 삶의 전환점

"교회에 나가긴 했지만, '진짜 믿음'을 갖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나요?" 박 장로는 조기축구회를 통해 신앙을 키웠다고 합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조기축구회 활동을 했는데, 그곳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형님들과 친해지면서 말씀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다 보니, 이런 구절이 있더라고요.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브리서 9:27)" 죽음 이후의 심판에 대한 말씀이 마음에 깊이 와 닿았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죽음을 피할 수 없고, 죽음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죽음 이후를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이대로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음과 심판에 대한 깨달음삶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술, 담배를 끊고, 본격적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술, 담배를 좋아하셨나요?"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 형님 모두 술을 좋아하셨고, 간암으로 돌아가셨을 정도니까요."

"저 역시 간이 좋지 않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지금은 완전히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술, 담배를 끊고 건강을 회복한 것은 물론,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 덕분이라고 고백합니다.

맞춤 양복 전성시대와 쇠퇴 - 고난의 시기

"과거에는 맞춤 양복이 대세였지만, 지금은 기성복을 많이 입는 시대입니다. 맞춤 양복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박 장로는 16살 때 양복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시골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중학교 입학시험에 떨어졌거든요."

"원래 공부에는 뜻이 없었습니다. '나는 공부 체질이 아니구나' 생각하고, 기술을 배워야겠다고 결심했죠." "아버지는 제가 학교 가는 것을 반대하셨습니다. '힘든 농사일도 못 버티는 놈이 무슨 학교냐'고 하셨죠." 하지만 박 장로는 몰래 시험을 보고 합격했습니다.

"합격 통지서를 아버지께 보여드리니, 오히려 좋아하시면서 학비를 대주셨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고, 집에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가을이 되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더라고요. 농사만 짓고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 몰래 돈을 들고 무작정 서울로 향했습니다." "서울에 아는 사람은 단 한 명, 답십리에 사는 삼촌뿐이었습니다. 주소 하나만 들고 무작정 삼촌을 찾아갔죠." 삼촌은 양복점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삼촌은 저를 보자 깜짝 놀라셨습니다. '웬일이냐'고 물으시길래, '양복 기술을 배우고 싶다'고 말씀드렸죠." 삼촌 덕분에 답십리 양복점에서 기술을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16살 어린 나이에 양복점 '막내'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기술 전수, 스승과 제자의 끈끈한 인연 - 기술 연마 과정

"과거에는 기술을 쉽게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기술 배우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박 장로는 "100% 맞는 말씀"이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요즘은 학원에서 돈만 내면 기술을 가르쳐주지만, 옛날에는 달랐습니다. 기술을 쉽게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선배들은 기술을 훔쳐갈까 봐 경계했고, 가르쳐줘도 핵심 기술은 숨겼습니다." "낮에는 허드렛일만 하고, 밤에 몰래 선배들이 남겨놓은 옷을 뜯어보며 기술을 익혔습니다." 주경야독, 밤낮없이 기술 연마에 매달렸습니다.

"선배들이 퇴근한 후, 밤늦게까지 혼자 남아 옷을 만들고 뜯어보며 연습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남들보다 기술을 빨리 익힐 수 있었습니다." 피나는 노력 끝에 40년 장인의 경지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교도소 재소자 기술 교육, 사랑과 나눔 실천 - 사회 공헌 활동

"어렵게 터득한 기술을 아낌없이 나누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교도소 재소자들에게 기술을 가르치고 계신다고요?" 박 장로는 오랫동안 교도소 재소자들에게 양복 기술을 가르쳐왔습니다. "저 역시 어렵고 힘든 시절을 겪었기 때문에, 어려운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압니다."

"교도소에 있는 재소자들은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기술을 가르쳐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습니다." 의정부 교도소에서 2년, 현재까지 총 5년 동안 매주 2~3회 교도소를 방문하여 재소자들에게 양복 기술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기술 교육뿐만 아니라, 재소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시기에 믿음을 심어주고, 새로운 삶을 살도록 돕고 있습니다." "기술 교육을 통해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재소자들이 많고, 출소 후 사회잘 적응하는 모습을 볼 때 큰 보람을 느낍니다."

"과거에는 교도소에 있었지만, 지금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제자들을 보면 정말 감사하죠." "세탁소를 운영하거나, 다른 기술 분야에서 일하는 제자들도 있습니다. 모두 열심히 살아가고 있어서 마음이 뿌듯합니다."

무료 양복 나눔, 섬김과 헌신의 삶 - 목회자, 어려운 이웃 사랑

"수백 벌의 양복을 무료로 만들어주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헌신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박 장로는 "믿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좋은 일을 많이 하는데, 저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니까 더 많이 나눠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문화 가정, 외국인 노동자, 노숙인, 어려운 이웃들에게 무료로 양복을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특히, 시골 교회 목회자, 선교사님들에게 양복을 많이 해드립니다." "목회자들은 사역전념해야 하기 때문에 신경 쓸 겨를이 없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넉넉지 못한 분들이 많습니다."

"멋진 양복을 입고 강단에 서는 목회자들의 모습성도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가진 작은 재능이지만, 목회자들과 함께 동역하고 하나님 나라확장하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잊지 못할 감동, 감사 편지 - 보람과 행복

"무료로 양복을 만들어드리면서 잊지 못할 감동적인 순간들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박 장로는 상당 광현교회 목사와의 특별한 인연을 소개했습니다.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를 받아보니, 상당 광현교회 목사님이셨어요."

"목사님은 작은 시골 교회에서 힘겹게 목회하고 계셨습니다. 교회 성도나이 많은 노인들뿐, 경제적으로 어려워 제대로 된 양복 한 벌 해 입지 못했다고 합니다. "평생 제대로 된 양복 한 벌 못 입어본 목사님께 양복을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목사님께 양복을 만들어 드린 후, 감사하다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편지에는 '평생 잊지 못할 은혜를 입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 편지를 읽고, 정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제가 만든 작은 양복 한 벌이 누군가에게 큰 기쁨과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가업 승계, 아들과 함께 걷는 새로운 길 - 2대째 양복 장인

"장로님의 기술과 정신을 이어받을 후계자가 있나요?" "네, 둘째 아들이 가업을 잇고 있습니다." 박 장로는 "원래 아들은 양복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하고, 외국계 회사에 취직했었죠."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갑자기 '아버지 양복점을 잇고 싶다'고 하더군요." "뜻밖의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왜 갑자기 마음을 바꿨냐'고 물으니, '아버지의 삶을 보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고, 아버지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더군요."

아들은 회사를 그만두고 아버지에게 양복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습니다. '아들이 과연 이 힘든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묵묵히 기술을 연마하며 아버지의 뒤를 잇는 든든한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아들과 함께 일하게 되면서, 양복점새로운 활력이 생겼습니다. 아들은 젊은 감각으로 새로운 디자인을 개발하고, 온라인 마케팅을 통해 고객층확대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아들과 함께 '엘부림양복점'세계적인 맞춤 양복 브랜드로 키워나가는 것이 입니다."

아들의 영상 편지, 아버지 향한 존경과 사랑 - 감동의 눈물

"아드님으로부터 영상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화면에 아들의 영상이 나타나자, 박 장로는 기대설렘으로 가득 찬 표정으로 화면응시합니다.

"사랑하는 아버지께, 아버지의 둘째 아들 박OO입니다. 저희가 함께 엘부림을 경험해 온 지도 벌써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네요." "아버지께서 걸어오신 양복 장인의 길정말 험난했지만, 그 속에서 기쁨슬픔을 함께 느끼며 아버지의 삶존경하고 본받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버지께 주신 달란트에 감사드리고, 아버지께서 양복을 통해 세상을 섬기시는 모습을 보면서 저 또한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는 사랑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항상 건강하시고, 저희 곁에 오래오래 함께 해주세요. 사랑합니다. 아버지, 화이팅!" 아들의 진심이 담긴 영상 편지에 박 장로는 눈시울붉힙니다. "아... 정말 감동적이네요. 아들이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있는 줄 몰랐습니다."

2대째 장인의 꿈, 세계적인 브랜드 도약 - 엘부림의 미래

"아드님과 함께 일하신 지 10년이나 되셨다니, 정말 든든하시겠어요. 아드님의 실력은 어느 정도 수준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박 장로는 "아들 실력깜짝 놀랐다"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지난 8월, 한국맞춤양복협회 기능 경진 대회에서 아들이 금상을 수상했습니다."

"양복 경력 30년, 40년 된 베테랑 장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금상을 수상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아들이 짧은 기간 동안 엄청난 노력을 했고, 뛰어난 재능을 발휘한 덕분입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2대째 양복 장인이 되겠다고 결심했을 때, 어떤 마음이셨나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습니다. '정말 고맙다, 감사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더군요." "아들에게, 그리고 며느리에게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아들, 며느리, 정말 고맙고 사랑한다!"

엘부림, 하나님과 함께하는 기업 - 새로운 시작

"아드님과 함께 제2의 창업을 시작하는 마음으로, 양복점 이름도 바꾸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엘부림양복점'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출발했습니다. "원래 '부림양복점'이었는데, 촌스러운 느낌이 있어서 세련된 이름으로 바꾸고 싶었습니다."

"새로운 이름을 고민하던 중, '엘로힘'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엘로힘'히브리어'하나님'을 뜻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기업이라는 의미를 담아 '엘' 자를 앞에 붙여 '엘부림'이라고 지었습니다."

"새로운 이름으로 바꾸고, 홍보적극적으로 시작했습니다. 기술은 자신 있었지만, 어떻게 홍보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경영은 네가 맡아라. 아버지는 기술만 담당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면서 홍보를 시작했죠."

"놀랍게도, 홍보 시작 후 1년도 안 되어, 과거 1년 동안 벌던 매출을 한 달 만에 달성했습니다." "고객상상 이상으로 늘었고, 지금은 예약끊이지 않을 정도입니다." "정말 놀라운 변화입니다. '엘부림양복점'기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기성복 시대, 맞춤 양복의 부활 - 위기와 기회

"한때 기성복대세가 되면서 맞춤 양복 업계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장로님 역시 위기를 겪으셨을 텐데요,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박 장로는 "70년대 후반부터 기성복등장하면서 맞춤 양복인기가 시들해지기 시작했다"고 회상합니다."

"대기업들이 기성복 시장뛰어들면서, 맞춤 양복점들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갔습니다. 답십리, 전농동, 장안동, 구리번성했던 양복점들이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했습니다." "저 역시 '이제 문 닫아야 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기술 연마에 매달렸습니다. '기술만 있다면, 언젠가는 다시 기회가 올 것이다'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게 지혜를 주십시오. 이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놀랍게도, 얼마 전부터 다시 맞춤 양복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장인 정신'에 대한 가치재조명되면서, 맞춤 양복인기부활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기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저희 기도응답해주신 것입니다."

고객의 85%가 2030세대, 소개 고객 85% - 엘부림의 성공 비결

"엘부림양복점고객85%2030세대라고 들었습니다. 젊은 세대들이 맞춤 양복많이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박 장로는 "젊은 세대들은 개성중시하고, 특별한 경험추구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합니다."

"기성복획일적이고 개성을 드러내기 어렵지만, 맞춤 양복자신만의 스타일표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한, '엘부림양복점'40년 장인의 기술력합리적인 가격으로 고객들의 만족도매우 높습니다."

"고객85%소개방문한다는 사실 '엘부림양복점' 높은 인기를 증명합니다. "기술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 덕분 '엘부림양복점' 이처럼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찬송과 함께하는 양복 작업, 행복한 장인 - 삶의 행복

"양복만드실 때, 찬송을 부르신다고 들었습니다. 가장 좋아하시는 찬송은 무엇인가요?" 박 장로는 "찬송늘 즐겨 부른다""가장 기억에 남는 찬송'예수님은 누구신가'"라고 답했습니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교회다니면서 처음 배운 찬송입니다. 그때는 찬송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지금 찬송가사 하나하나마음에 깊이 와 닿습니다." "찬송을 부르면서 양복 작업을 하면, 힘든 줄 모르고 일할 수 있습니다. 찬송은 저에게 기쁨을 주는 에너지원입니다."

"장로님에게 나눔이란 무엇인가요?" 박 장로는 "나눔행복"이라고 단언합니다. "나누는 것곧 행복입니다. 많이 가졌다고 해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이라도 나누려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눌수록 커지는 행복, 이것이 바로 진정한 성공입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기도 제목 - 세계적인 브랜드 도약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과 기도 제목을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박 장로는 "아들과 함께 '엘부림양복점'세계적인 맞춤 양복 브랜드로 키워나가는 것이 "이라고 밝혔습니다."

"도쿄긴자에 가면, 맞춤 양복을 만드는 장인들이 많습니다. 일본장인들처럼, 한국장인세계적인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아들과 함께, 세계 최고의 맞춤 양복 브랜드만들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기업으로 성장시켜나가겠습니다."

"장로님기도꼭 이루어지기를 응원합니다. 오늘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사모님아드님께도 감사드리고, '엘부림양복점'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오늘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수양 장로의 40년 양복 인생단순한 성공 스토리가 아닙니다. 그의 삶기술신앙, 사랑나눔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엘부림양복점'이 앞으로 세계적인 브랜드성장하여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감동을 주기를 기대하며, 오늘 인터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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