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제 목사 삶과 간증, 생활 선교사의 비전과 실천 방법
삶 자체가 선교: 이승제 목사의 파란만장 인생과 생활 선교 노하우
## [수어통역] 우리는 생활 선교사입니다ㅣ이승제 목사ㅣ서희주 수어통역사ㅣ새롭게하소서 상세 내용 정리
오늘 우리는 특별한 분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눌 예정인데요, 바로 가까운교회 이승제 목사님입니다. 목사님은 새롭게하소서에 출연하셔서, 삶 자체가 선교라는 메시지를 전해주셨습니다. 이 글에서는 이승제 목사님의 간증과 더불어, 그의 삶과 사역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생활 선교사로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노하우를 상세히 정리해보겠습니다. 단순히 내용을 요약하는 것이 아니라, 핵심 내용을 중심으로 극도로 자세하게 풀어나갈 것이며,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론과 구체적인 예시들을 풍부하게 제시할 것입니다. 2만 자 내외의 분량으로, 마치 옆에서 직접 이야기를 듣는 듯한 친근하고 자세한 어조로 풀어갈 예정이니, 끝까지 집중해주시길 바랍니다.
## 파란만장했던 어린 시절: 부처님의 아들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이승제 목사님의 어린 시절은 파란만장했습니다. "새롭게하소서" 방송에서 그는 "부처님의 아들"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밝혔는데요, 그 이유는 그의 어머니가 3년 동안 절에 치성을 드린 후에 그를 낳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극진한 불심 덕분에 그는 어린 시절부터 염주를 가지고 다니고 천수경을 외우는 등 불교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랐습니다. 독실한 불교 집안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별명은 친구들 사이에서 "선 오브 부다(Son of Buddha)", 즉 "부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가정 환경 또한 순탄치 않았습니다. 알코올 중독이었던 아버지와 가난은 그의 어린 시절을 어둡게 드리웠습니다. 술에 취해 어머니를 구타하고, 도박에 빠지는 아버지를 보면서 그는 아버지에 대한 미움을 키웠고, "오종 세트"라는 표현으로 아버지를 폄하하기도 했습니다. 오종 세트란 알코올 중독, 가정 폭력, 도박, 외도, 무능력이라는 다섯 가지 어두운 면을 빗댄 표현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아버지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그는 아버지 또한 시대의 아픔을 짊어진 불행한 가장이었음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월남전을 거치면서 고통과 상처를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고독과 절망을 깨닫게 된 것이죠.
어머니는 이러한 고통 속에서 더욱 불심에 의지했습니다. 늦게 얻은 아들인 승제 목사를 부처님의 은덕으로 여겼고, 그를 극진히 보살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때는 1,000배, 중학교 입학 때는 2,000배, 고등학교 입학 때는 3,000배를 시키는 등 정성을 다했습니다. 3,000배를 하려면 새벽 4시부터 일어나 밤 9시 반까지 꼬박 절을 해야 할 정도로 고된 수행이었지만,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정성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가난과 고통 속에서 어머니는 종교에 매달렸고, 아들 또한 어머니를 기쁘게 하기 위해 불교에 더욱 심취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늘 갈증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그는 한양대학교 전기공학과에 합격한 동네 형을 보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독서실에서 밤낮으로 공부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재수를 결심했지만, 입시 제도가 바뀌어 재수생에게 불리하다는 소식을 듣고 좌절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그는 명지대학교 전기공학과에 배짱 지원을 했고, 3,000배는 아니지만 400배의 절을 하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합격했고, 미션스쿨인 명지대학교에 진학하게 되면서 기독교와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 운명적인 만남: 미션스쿨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
명지대학교는 이승제 목사님에게 새로운 세상이었습니다. 입학식에서 처음 만난 목사님의 설교, 채플 시간에 들어야 하는 예배, CCC(한국대학생선교회) 선배와의 만남 등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했습니다. 불교 신자였던 그에게 기독교 문화는 이질적이었고, 예수 그리스도는 낯선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CCC 선배의 끈질긴 전도와 따뜻한 환대는 그의 마음을 조금씩 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여름 수련회는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경험이었습니다. 1만 명이 넘는 대학생들이 모여 찬양하고 기도하는 모습은 그에게 충격이었고, 김중훈 목사님의 설교는 그의 영혼을 깊이 울렸습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라는 메시지는 그의 양심을 파고들었고, 죄책감과 고통 속에 몸부림치던 그의 영혼에 강렬한 빛을 비추었습니다. 그날 밤, 그는 생전 처음으로 진심으로 기도했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놀라운 변화는 즉시 나타났습니다. 마음속에 평안이 찾아왔고, 세상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스팔트는 흑진주처럼 빛났고, 나뭇잎은 춤추는 듯 아름다웠습니다. 그는 비로소 "생명의 약동"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수련회에서 돌아온 그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술, 담배를 끊고, 성경을 읽기 시작했으며, 교회에 나가 봉사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변화에 당황했지만, 결국 그의 믿음을 인정하고 지지해주었습니다. 아버지는 끝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했지만, 임종 직전 아들에게 "예수 믿기를 잘했다"는 격려를 남겼습니다. 이승제 목사님은 명지대학교 졸업 후 CCC 간사로 헌신했고, 중국 선교사로 파송되어 14년 동안 사역했습니다. 현재는 가까운교회를 개척하여 담임 목사로 섬기면서, 생활 선교사의 삶을 몸소 실천하고 있습니다.
## 행복한 가정: 결핍에서 풍성함으로
이승제 목사님은 어린 시절 가정에 대한 결핍이 컸습니다. 불화와 폭력, 가난 속에서 행복한 가정을 꿈꿨지만, 현실은 정반대였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그의 삶은 변화되었고, 가정에 대한 새로운 소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의 말씀처럼,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는 약속은 그의 삶 속에서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는 가정학과 수업을 들으며 행복한 가정을 위한 기초를 다졌고, CCC에서 만난 아내와 사랑을 키워 결혼했습니다. 결혼 후에도 부부 세미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가정 예배를 통해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닙니다. 성격 차이와 문화 차이로 인해 갈등도 있었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극복해나갔습니다. 특히 아내의 헌신적인 사랑과 인내는 그의 가정을 든든히 세우는 primary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는 세 자녀를 낳아 키우면서 아버지로서의 역할에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아이들의 개성을 존중하고, 눈높이에 맞춰 소통하며, 사랑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가정 예배 시간에는 솔직하게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고,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자녀들은 건강하고 밝게 자랐고, 아버지와의 관계 또한 매우 돈독합니다. 딸은 그에게 "아빠 근처에 살고 싶다"는 감동적인 편지를 쓰기도 했습니다. 어린 시절 결핍되었던 행복한 가정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하게 이루게 된 것입니다.
## 생활 선교사: 삶의 현장에서 복음을 전하는 삶
이승제 목사님은 "가까운교회"를 개척하면서 "생활 선교사"라는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선교사처럼 살아가는 삶, 말뿐만 아니라 삶으로 복음을 전하는 삶을 강조합니다. 그는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는 복음의 핵심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여기서 "이웃"은 단지 사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 직장, 사회, 환경 등 삶의 모든 영역을 포함하는 넓은 개념입니다.
그는 사장님들과의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생활 선교의 구체적인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사장님들은 각자의 사업 현장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현하고, 직원들을 사랑으로 대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생활 선교사"로서의 삶을 살아가도록 격려합니다. 예를 들어, 직원 복지 향상, 윤리 경영 실천, 사회 공헌 활동 참여 등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승제 목사님은 강압적인 전도 방식을 지양합니다. 대신, 삶으로 본을 보이고, 진정성 있는 관계를 맺으며,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추구합니다. 그는 "킹덤 컴퍼니"와 같은 기독교 용어를 사용하기보다, "건강한 회사, 꿈이 있는 회사"와 같이 일반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복음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름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생활 선교 철학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 뜻을 따르십시오. 가정, 직장, 사회 등 어느 곳에서든 하나님의 자녀로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십시오.
가장 가까운 이웃인 가족을 사랑하고 섬기십시오. 부부 관계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자녀들을 사랑과 믿음으로 양육하십시오. 가정은 생활 선교의 primary primary primary 기반입니다.
직장에서 윤리적이고 정직하게 사업하십시오. 직원들을 존중하고 공정하게 대우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을 만들어가십시오. 일터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교지입니다.
지역 사회와 이웃을 돌보고 섬기십시오. 어려운 이웃을 돕고, 지역 사회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십시오. 사랑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전도는 강요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삶의 열매여야 합니다. 삶으로 본을 보이고, 진정성 있는 관계를 맺으며, 복음을 전하십시오. 가장 효과적인 전도는 변화된 삶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승제 목사님의 간증과 삶은 우리에게 큰 도전과 inspiratory 영감을 줍니다. 우리 또한 삶의 현장에서 "생활 선교사"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거창한 구호나 특별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의 자리에서, 가장 가까운 이웃부터 사랑하고 섬기며, 삶으로 복음을 증거하는 것, 바로 그것이 "생활 선교"의 시작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우리 모두 "생활 선교사"로 살아갑시다!
## 맺음말: 당신은 이미 생활 선교사입니다
지금까지 가까운교회 이승제 목사님의 간증과 생활 선교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어린 시절 불우한 환경 속에서 자랐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인생이 변화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생활 선교사로서 헌신하는 그의 삶은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도전을 줍니다.
중요한 것은 "선교는 특정 사람이나 special 한 사역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 자체가 선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어디에 있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 바로 그것이 "생활 선교사"의 삶입니다.
당신은 이미 "생활 선교사"입니다. 당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십시오. 당신의 선한 행실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십시오. 당신 한 사람의 헌신이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부터 "생활 선교사"로서의 삶을 시작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