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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를 딛고 희망을 연주하는 클라리네티스트 장성규 이야기

요약

절망 속에서 찾은 희망, 클라리넷 연주자 장성규

시각장애를 넘어 꿈을 연주하는 클라리네티스트 장성규 형제

오늘, 어둠 속에서도 맑고 아름다운 클라리넷 선율로 세상을 밝히는 특별한 분을 "새롭게하소서"에서 만나 뵙겠습니다. 바로 시각장애를 가진 클라리네티스트 장성규 형제인데요, 그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희망의 빛을 연주하며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용기를 선사하고 있습니다. 장성규 형제는 한국뿐 아니라 독일, 미국 등 세계 무대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연주자입니다. 그의 음악과 인생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클라리넷과의 운명적인 만남, 그리고 음악가의 길

장성규 형제는 자신을 '클라라'라고 소개하며, 시각장애를 가진 클라리네티스트라고 겸손하게 말했습니다. 그는 한국에서 학업을 마치고 독일과 미국에서 음악 공부를 이어갔는데요, 특히 미국의 명문 음악학교인 피바디 음대에서 수학했습니다. 현재는 휴학 중이지만, 그는 스스로를 '백수'라고 칭하며 유쾌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매우 바쁜 '백수'인데요, 다양한 연주 활동과 강연, 간증 등을 통해 쉴 틈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클라리넷의 매력에 대해 묻자, 장성규 형제는 클라리넷이 가진 다채로운 음색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클라리넷이 중후하고 따뜻한 저음부터 밝고 경쾌한 중음, 섬세하고 아름다운 고음, 그리고 강렬하면서도 애절한 음색까지 모두 표현할 수 있는 매력적인 악기라고 설명했습니다. 더 나아가 클라리넷은 연주자의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는 악기인데요, 부드러움, 강인함, 슬픔, 기쁨 등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을 매력으로 꼽았습니다. 장성규 형제는 즉석에서 클라리넷으로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며 청중을 매료시켰습니다.

본격적으로 클라리넷 연주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14살 때라고 밝혔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밴드부 활동을 통해 처음 클라리넷을 접하게 되었는데요, 당시 밴드부 형들이 연주하는 모습에 매료되어 악기를 배우고 싶다는 열망을 품게 되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드럼과 트럼펫을 시도했지만, 클라리넷이야말로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악기임을 깨달았습니다. 놀랍게도 클라리넷을 처음 불었을 때부터 소리가 잘 났다고 하는데요, 이는 클라리넷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예감하게 했습니다. 그는 클라리넷의 소리에 매료되어 연습에 매진했고, 실력이 빠르게 향상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장성규 형제는 악기에 대한 자신만의 특별한 접근 방식을 설명했습니다. 일반적인 연주자들은 악기를 잡는 순간 연주 기법이나 소리 내는 방법부터 생각하지만, 그는 악기가 가진 구조와 소리에 대한 탐구부터 시작한다고 합니다. 악기가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지, 어떻게 소리가 나는지,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는지 끊임없이 연구하고 고민하는 과정을 거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탐구 정신이 그를 특별한 클라리네티스트로 성장시킨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련과 고난 속에서 피어난 믿음, 유학 도전과 좌절

장성규 형제가 연주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게 된 데에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다. 장애인 선교 단체인 '실로암 사람들' 홍보대사로 활동하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수련회에서 클라리넷 연주를 통해 찬양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클라리넷을 배운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은 초보 연주자였지만, 그의 연주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특히, "당신이 악기를 잘 불든 못 불든, 당신이 악기를 들고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은혜가 됩니다"라는 격려의 말은 그에게 큰 용기를 주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그는 음악을 통해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전하는 음악가의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꿈을 향해 나아가던 중, 장성규 형제는 독일 유학이라는 큰 도전을 감행했습니다. 독일의 명문 음대인 카셀 음대에 입학하기 위해 무려 열 번이나 도전하는 끈기를 보여주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몇 번의 실패에 좌절하고 포기했을 법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했습니다. 열 번의 도전 끝에 마침내 합격이라는 값진 결실을 맺었는데요, 이는 그의 불굴의 의지와 열정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그는 유학을 통해 단순히 음악적 기량을 향상시키는 것뿐 아니라, 낯선 환경에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성장하고 싶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유학 생활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낯선 문화와 언어, 경제적인 어려움, 외로움 등 수많은 어려움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특히 경제적인 어려움은 그의 유학 생활을 짓누르는 가장 큰 고통이었는데요, 장학금이 있었지만 환율 급등과 예상치 못한 지출로 인해 경제적으로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매주 800km가 넘는 거리를 이동하며 교회 봉사를 했지만, 교통비조차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경제적 상황은 악화되었습니다. 끼니를 거르는 날이 잦았고, 심지어 며칠씩 굶기도 했습니다. 극심한 배고픔과 외로움 속에서 그는 깊은 절망감을 느껴야 했습니다.

절망 속에서 찾은 희망, 그리고 새로운 시작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2박 3일 동안 굶고 기차를 타고 가던 때라고 회상했습니다. 배고픔과 목마름에 지쳐 햄버거 가게에서 도움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고, 기차 화장실에서 나오는 물로 목을 축이며 서러움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순간, 그는 '내가 굶주림을 배우려고 유학을 온 것이 아닌데...'라는 생각과 함께 깊은 절망감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절망의 순간, 그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자신의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그는 "내가 너를 5일은 굶겼지만 6일은 굶기지 않았다. 나는 너의 굶주림은 허용했지만, 너의 생명까지 앗아가지는 않았다"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듯한 경험을 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장성규 형제는 자신의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그는 당장의 배고픔과 경제적인 어려움에 매몰되어 있었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통해 자신의 시련이 헛된 고통이 아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그를 연단하시고 더 큰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 시련을 허락하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교회로 달려가 피아노를 치며 찬양했고, 엎드려 눈물로 회개하며 기도했습니다. 이후, 그는 한국으로 돌아왔고,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위해 풍성한 은혜를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귀국 후, 여러 곳에서 연주와 강연, 간증 요청이 쇄도했고, 그를 위한 콘서트까지 열렸습니다. 이를 통해 그는 넉넉한 장학금을 마련할 수 있었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만약 그때 포기했다면, 지금의 클라리네티스트 장성규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힘든 유학 생활을 통해 깨달은 것은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을 보라'는 찬양의 가사처럼, 고난 속에서 주님을 의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찬양의 가사처럼, 힘이 없고 마음이 연약할 때 능력이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에게 힘과 능력을 주신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습니다. 그는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주님을 의지하며 나아가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음악을 통한 나눔과 섬김, 미래를 향한 꿈

장성규 형제의 꿈은 단순히 훌륭한 연주자가 되는 것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는 음악을 통해 세상에 빛을 비추고,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영향력 있는 음악가'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특히, 그는 남미나 동남아시아의 어려운 환경에 있는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여, 그들이 꿈을 키우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돕고 싶어합니다. 더 나아가, 그는 자신이 받은 사랑을 되갚기 위해 '뒷모습이 아름다운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제자들이 성장하여 사회에 기여하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끼는 스승이 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스승은 미국의 맹일 탱글로 교수입니다. 불가리아 출신의 맹일 탱글로 교수는 뛰어난 실력과 열정적인 가르침으로 장성규 형제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특히, 힘든 유학 생활 속에서 비타민을 챙겨주고, 레슨비를 받지 않고 가르치는 등 인간적인 따뜻함으로 그를 격려하고 지지했습니다. 맹일 탱글로 교수는 장성규 형제를 단순한 제자가 아닌 '베스트 프렌드'라고 칭하며, 그의 성장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장성규 형제는 맹일 탱글로 교수와 같은 스승이 되어 제자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습니다.

장성규 형제는 앞으로 이루고 싶은 다양한 꿈들을 이야기했습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클라리네티스트, 쉽고 재미있게 음악을 가르치는 선생님, 음악과 삶의 이야기를 통해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 남미와 동남아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멘토, 빌보드 차트에 자신의 앨범을 올리는 아티스트,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래미상을 수상하는 것이 그의 꿈입니다. 특히, 그는 그래미상 수상 소감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기도 제목을 나누며 인터뷰를 마무리했습니다. 변함없이 연주를 통해 필요한 곳에 쓰임 받는 것, 학업에 필요한 재정이 채워지는 것, 클래식과 재즈 음악 사이에서 자신의 음악적 방향을 정립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것이 그의 간절한 기도 제목입니다.

오늘 우리는 시각장애를 딛고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클라리네티스트 장성규 형제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그의 삶은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줍니다. 또한, 그의 음악은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위로를 선사하며,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줍니다. 장성규 형제의 앞날을 응원하며, 그의 아름다운 음악 여정이 더욱 풍성하게 펼쳐지기를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 장성규 형제의 아름다운 클라리넷 연주를 들으며 "새롭게하소서"를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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