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콘텐츠로 건너뛰기

세계 최초 드로잉쇼 창시자 김진규 감독의 크리스천 인생 이야기

요약

절망 끝에 만난 예수님, 드로잉쇼로 복음을 전하다

세계 최초 드로잉쇼 창시자 김진규 감독, "내가 만난 예수를 그리다" 상세 내용 정리

오늘, 세계 최초로 드로잉쇼를 창시한 김진규 감독님의 놀라운 이야기를 상세하게 정리하여 여러분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는 어떻게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드로잉쇼라는 새로운 예술 장르를 창조하게 되었을까요? 또한, 그 과정에서 겪었던 수많은 고난과 역경, 그리고 죽음의 문턱에서 만난 예수님과의 극적인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지금부터 김진규 감독님의 파란만장한 인생 여정과, 그가 창조한 크라이스트 드로잉쇼에 담긴 깊은 의미를 함께 파헤쳐 보겠습니다.

1. 드로잉쇼 탄생 비화: 재미없는 미술에서 세계 최초 퍼포먼스로

본래 미술대학 교수였던 김진규 감독은 그림을 가르치고 그리는 일상에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합니다. 입시 위주의 그림, 목적을 위한 그림에 지쳐 진정한 행복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죠. 마치 노래하는 가수가 노래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았다고 그는 회상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흥얼거리며 그림을 그리다가 친구로부터 "드로잉 쇼"라는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친구의 놀림 섞인 제안이 오히려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점이 된 것입니다.

김 감독은 마술과 같은 그림 공연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점이 혼자 돌아다니고, 그림이 갑자기 컬러로 변하고, 물이 쏟아지는 듯한 착시 효과를 주는 등,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실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실험과 연구 과정이 바로 "드로잉쇼 연구기관"의 시작이었고, 무려 6~7년, 만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끊임없는 연구와 실험을 거듭했다고 합니다. 그는 "절대 발표하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으로 연구에 몰두했고, 마침내 세계 최초의 드로잉쇼를 세상에 선보이게 됩니다.

미술 전공자였지만, 드로잉쇼 제작 과정은 상상 이상으로 고통스럽고 힘든 여정이었다고 김 감독은 고백합니다. 그는 "그 과정이 존의 대중들에게 소개되어 있어요? 아, 모르 흩어지겠어. 아, 정말 술 절하지 않았습니다."라며 당시의 어려움을 간접적으로 표현했습니다. 만약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미리 알았더라면 시작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할 정도로, 드로잉쇼 창작은 수많은 난관의 연속이었습니다.

2. 예상치 못한 난관: 투자 실패, 우울증, 그리고 죽음의 문턱

김진규 감독은 드로잉쇼 연구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고 털어놓습니다. 단순히 그림 실력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기술적 문제들이 산적해 있었고, 특수 효과, 재료, 기법 등 미술과는 전혀 다른 분야의 지식과 기술이 필요했습니다. 특히, 연구 과정에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지만, 당시 드로잉쇼는 전 세계적으로 전례 없는 새로운 시도였기에 투자를 받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그는 "연구 과정에 들어가면 돈을 거의 억 단위로 부어야 돼요. 근데 그 종이도 몇백만 원짜리 종이들도 많고, 하루에 종이 값만 막 100만 원 넘게 쓴 적도 있습니다."라며 당시 엄청난 연구 비용을 감당해야 했던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투자도 받지 못하고, 자금은 계속 바닥나고,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그는 극심한 스트레스와 압박감에 시달렸습니다.

결국 김 감독은 우울증과 공황장애라는 심각한 정신 질환을 겪게 됩니다. 공황장애 증상은 "거의 뭐, 공황 마비 발작까지 갔었어요. 심장마비로 죽을 뻔했고, 정말 많이 아팠습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매우 심각했습니다. 그는 죽음의 문턱까지 경험하며 극심한 고통 속에서 절망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그의 인생을 180도 뒤바꿀 놀라운 사건이 벌어집니다.

3. 죽음의 문턱에서 만난 예수님: 인생 180도 전환점

죽음의 공포에 휩싸여 있던 어느 날, 김진규 감독은 길에서 우연히 "할렐루야"라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과거 그는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을 "제일 싫어했어요. 꼴 보기 싫었어요."라고 할 정도로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컸었습니다. 하지만 죽음의 문턱 앞에서 그는 자신도 모르게 "할렐루야"를 따라 하게 되었고, 절박한 심정으로 "주여!"를 외치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그는 놀라운 경험을 합니다. "빛줄기가 쫙 떨어지는 빗줄기가 저를 감사하는 걸 경험"했다고 그는 간증합니다. 강렬한 빛이 그를 감싸는 듯한 신비로운 체험 이후, 그는 기절했고, 다음 날 연구실로 향하던 중 누나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됩니다. 당시 전도사였던 누나는 김 감독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고, 그는 생전 처음으로 교회 예배에 참석하게 됩니다.

교회 예배 도중, 그는 또 한 번의 놀라운 경험을 합니다. 심장마비로 쓰러진 순간, 자신의 삶 전체가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제가 살아온 모든 과정들을 다 봤고, 마지막 장면까지 제가 갔는데, 너무 두려운 거죠. 갈 데가 없잖아요." 라며 죽음 이후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절망적인 순간, 그는 다시 살아났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합니다.

교회에 다시 찾아간 김 감독은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렸고, 마침내 환상 속에서 예수님을 직접 만나게 됩니다. "영어 예배 중에 갑자기 건물이 없어지고 구름이 쫙 덮이더니, 구름 가운데서 주님이 저를 안아주고 이렇게 올라오고 계셨어요. 그분은 완전히 빛 덩어리였어요." 라며 예수님과의 극적인 만남을 생생하게 묘사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불쌍히 여기셨고, 그 순간 그의 몸과 마음에 짓눌렀던 모든 고통과 불안이 사라지고 평안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예수님과의 만남 이후, 김진규 감독은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났습니다. 그는 "갑자기 '만왕의 왕, 하나님 아버지!' 이것도 아니에요. '아, 무언가가 있다. 내가 본 것은 진짜다.'" 라는 확신을 얻게 되었고, 성령의 음성을 통해 "네가 보고 들은 것을 외계, 즉 세상에 전하라"는 분명한 사명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그가 크라이스트 드로잉쇼를 창조하고,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사명자로 살아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4. 크라이스트 드로잉쇼, 세계 무대로 나아가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은 김진규 감독은 2년 동안 드로잉쇼를 완전히 새롭게 각색하여 "크라이스트 드로잉쇼"라는 이름으로 재탄생시켰습니다. 약 10년간의 기나긴 연구 개발 끝에, 마침내 크라이스트 드로잉쇼는 세상에 공개되었고, 방송, 언론, 청와대 공연, 북경 올림픽 성화 봉송, 스위스 다보스 포럼 등 세계적인 무대에서 뜨거운 찬사를 받았습니다.

김 감독은 "저는 솔직히 너무나 부족한데, 저 같은 사람이 이렇게 쓰여지는구나라는 것을 너무 많이 느꼈어요."라며 겸손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특히, 영어 울렁증이 심했던 그는 다보스 포럼 공연 당시 언어 장벽 앞에서 당황했지만, 오히려 그 부족함 속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했다고 합니다. 그는 영어를 전혀 못했지만, 그림 실력 하나만으로 세계 각국 정상들과 소통하고, 감동을 선사할 수 있었습니다.

크라이스트 드로잉쇼는 단순한 공연이 아닌, 복음을 전하는 강력한 도구였습니다. 한국 공연 당시, 마지막 장면에서 예수님 그림이 나타나는 순간, 선천성 류마티스로 몸을 움직이지 못했던 한 학생이 갑자기 일어나 걷게 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일본 공연에서는 앞을 보지 못하는 한 관객이 그림 속에서 빛을 보고, 그림 내용을 상세하게 설명하는 등 기적적인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습니다.

김진규 감독은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아, 이거 내가 하는 게 아닙니다. 뭔가 있다." 라는 확신을 더욱 굳건히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드로잉쇼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치유를 경험하게 하는 데 헌신하고 있습니다.

5. 시련과 재기: 투자 사기, 일본 진출, 그리고 새로운 도약

승승장구하던 김진규 감독에게 또 한 번의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투자 사기를 당해 3년간 법정 싸움을 벌이면서 재산을 탕진하고 쫄딱 망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법정 싸움을 오래 하면 안 돼요. 저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죠."라며 당시 극심한 고통을 받았다고 회상합니다. 목숨까지 걸고 만든 드로잉쇼였기에, 허탈감과 원망은 더욱 컸습니다.

하지만 김 감독은 절망하지 않고 다시 일어섰습니다. 그는 "사람이 사기를 당하는 것도 결국 욕심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하나님께서 알아서 다 만들어 주신 건데, 내가 어떻게 하면 크게 될까 라고 생각하는 거죠." 라며 오히려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감당할 시험만 주신다는 믿음으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갔습니다.

한국에서 활동이 어려워진 김 감독은 일본 진출을 결심합니다. 도쿄 긴자에서 인간극장이라는 곳에서 공연을 시작했고, 공연 직전에 쓰나미가 발생하는 등 또 다시 위기를 맞았지만, 오히려 역경 속에서 크라이스트 드로잉쇼는 더욱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일본 정부의 공연 규제 속에서도 그의 공연은 문화적 갈증을 느끼던 일본인들에게 큰 위로와 감동을 선사했고, 방송 활동 등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기회도 얻게 되었습니다.

일본에서의 성공적인 활동을 발판 삼아, 김진규 감독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크라이스트 드로잉쇼를 재건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공연계가 어려움을 겪는 상황 속에서도, 그는 오히려 더 많은 공연 기회를 얻고 있으며, 국내 공연뿐 아니라 해외 공연까지 기획하며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6. 앞으로의 계획과 비전: 전국 투어, 해외 진출, 그리고 복음 전파

김진규 감독은 앞으로 크라이스트 드로잉쇼를 통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파하는 데 헌신할 계획입니다. 2024년 2월부터 명보아트홀에서 크라이스트 드로잉쇼를 본격적으로 공연하고, 전국 투어를 통해 더 많은 관객들을 만날 예정입니다. 국내 투어를 마치고 나면 해외 공연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전 세계에 크라이스트 드로잉쇼를 알리고 복음을 전하는 데 힘쓸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드로잉쇼의 창조자는 김진규가 아니라 예수님"이라고 강조하며, 자신의 재능은 단지 도구일 뿐,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앞으로도 크라이스트 드로잉쇼를 통해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상처 입은 영혼들을 치유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에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오늘 김진규 감독님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인간의 연약함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시는 기적을 목격했습니다. 그의 삶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의 본보기를 보여줍니다. 앞으로 크라이스트 드로잉쇼가 전 세계에 더욱 널리 퍼져나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는 귀한 도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1. 한 고대 문서 이야기

2. 너무나도 중요한 소식 (불편한 진실)

3. 당신이 복음을 믿지 못하는 이유

4. 신(하나님)은 과연 존재하는가?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있는가?

5. 신의 증거(연역적 추론)

6. 신의 증거(귀납적 증거)

7. 신의 증거(현실적인 증거)

8. 비상식적이고 초자연적인 기적, 과연 가능한가

9. 성경의 사실성

10. 압도적으로 높은 성경의 고고학적 신뢰성

11.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고고학적 증거

12. 성경의 고고학적 증거들

13. 성경의 예언 성취

14. 성경에 기록된 현재와 미래의 예언

15. 성경에 기록된 인류의 종말

16. 우주의 기원이 증명하는 창조의 증거

17. 창조론 vs 진화론, 무엇이 진실인가?

18. 체험적인 증거들

19.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모순

20. 결정하셨습니까?

21. 구원의 길

ChatGPT, 유튜브 프리미엄, 넷플릭스 구독료 80% 할인 받는 법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