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이자 작가·유튜버 이낙준, 신앙과 성공 스토리
본캐는 의사, 부캐 작가, 유튜버: 이 모든 건 하나님의 인도하심
본캐는 의사, 부캐는 소설 작가, 유튜브 크리에이터!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의사 겸 작가 겸 유튜버 이낙준 님의 이야기
오늘 우리는 특별한 분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눠볼 텐데요, 바로 의사이면서 소설 작가, 그리고 인기 유튜버로 활동하는 다재다능한 이낙준 님입니다. 이 세 가지 직업 모두 누구나 탐내는 직업인데요, 이 모든 것이 본인의 뛰어난 능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고백하는 겸손한 분이시기도 합니다. 그의 파란만장하면서도 흥미로운 인생 이야기, 그리고 신앙 간증을 통해 깊은 감동과 도전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이낙준 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볼까요?
이비인후과 전문의, 웹소설 작가 '한산이가', 그리고 98만 유튜버 '닥터프렌즈': 다채로운 직업을 가진 이낙준 님
이낙준 님은 현재 이비인후과 전문의로서 환자들을 진료하는 본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산이가'라는 필명으로 웹소설 작가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98만 구독자를 자랑하는 인기 유튜브 채널 '닥터프렌즈'를 운영하는 유튜버이기도 합니다. 정말 놀라운 것은 이 세 가지 직업 모두 성공적으로 해내고 있다는 점인데요, 특히 '닥터프렌즈'는 곧 100만 구독자를 돌파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낙준 작가님의 웹소설은 영상 판권이 팔려 드라마 제작까지 확정되었다고 하는데요, 현재 세 작품 정도가 영상화 계약이 완료되었고, 그중 하나는 드라마 제작에 돌입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제목은 '중증외상센터'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의학 드라마는 의사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분야가 아닐까 싶습니다. 웹툰이나 드라마로 제작되면 또 어떤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지 정말 기대가 됩니다.
유튜브 채널 '닥터프렌즈'의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요? 이낙준 님은 "솔직히 저희도 잘 모르겠어요"라며 겸손하게 답합니다. 세 명의 의사가 함께 운영하는 채널인데, 각자 생각하는 장점이 다르고, 뚜렷하게 성공 요인을 분석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다만, 의학 유튜브 채널이 많지 않던 초창기에 시작하여 선점 효과를 누린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닥터프렌즈'는 딱딱한 의학 정보 전달보다는 예능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2, 30대 젊은 층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이비인후과, 내과, 정신과 전문의 세 명이 모여 의학 상식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 현상과 이슈를 의학적인 관점에서 재미있게 풀어내는 것이 특징입니다. 현직 의사들이 들려주는 생생한 의학 이야기는 물론, 의사들의 유쾌한 케미까지 엿볼 수 있어 더욱 매력적인 채널입니다.
이낙준 님은 목회자 가정에서 자랐다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습니다. 아버님이 목사님이신데요, 아버님께서는 아들이 '새롭게하소서'에 출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가문의 영광"이라며 기뻐하셨다고 합니다. 또한, 교회 홍보도 열심히 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으셨다고 하는데요, 아들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가 98만 명인 것에 비해 교회 성도 수는 부족하다는 농담 섞인 푸념도 하셨다고 합니다. 목사님 아버님과의 유쾌한 일화는 이낙준 님의 인간적인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은 부모님과 하나님의 은혜": 겸손한 고백
이낙준 님은 지금의 성공이 전적으로 부모님의 헌신적인 양육과 하나님의 은혜 덕분이라고 강조합니다. 특히 아버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요, 아버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이낙준 님은 아버님에 대해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소개했습니다. 아버님은 집회 강사 목사님들이 기자들을 조심하라고 당부할 때마다 오히려 "저 목사입니다!"라고 외칠 정도로 자유분방하고 유쾌한 분이라고 합니다. 목사님이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권위적이고 엄숙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소탈하고 인간적인 분이신 것 같습니다.
아버님은 "잘 되면 다 내 덕"이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유머러스하면서도 자존감이 높은 분이십니다. 기도와 인문학적 소양 교육을 강조하시며 아들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시는데요, 물론 하나님 덕분이라는 말도 덧붙이시지만, 결국 "내 덕"이라는 유쾌한 주장을 굽히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아버님의 유쾌함과 자신감은 이낙준 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이낙준 님은 아버님을 진심으로 존경한다고 말합니다. 아버님의 가장 존경스러운 점은 바로 위선적이지 않고 솔직한 모습이라고 합니다. 교인들에게 하는 말과 아들에게 하는 행동이 똑같고,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이 큰 감동을 준다고 합니다. 목회자로서, 아버지로서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는 아버님은 이낙준 님에게 든든한 버팀목이자 롤모델이 되어주셨을 것입니다.
목사님 아들이라는 굴레나 스트레스는 없었을까요? 이낙준 님은 오히려 반대로 아버님께서 "목사 아들이라고 특별하게 행동할 필요 없다. 네 인생은 네가 알아서 사는 거다"라며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어주셨다고 합니다. 주변 사람들이 목사님 아들에게 더 엄격하게 대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할 때도, 아버님은 "하나님이 때가 되면 알아서 인도하실 것"이라며 믿음으로 기다려주셨다고 합니다. 이러한 아버님의 믿음과 지지는 이낙준 님이 자신의 길을 자유롭게 개척해 나갈 수 있도록 든든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아버님은 원래 성악을 전공하셨다고 합니다. 서울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하고 성악가의 길을 걷다가, 대학 시절 전도를 받고 신학대학원에 진학하여 목회자가 되셨다고 합니다. 어머니 또한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출신이라고 하는데요, 부모님 모두 서울대 출신이라는 점이 놀랍습니다. 특히 어머니는 학창 시절 공부를 너무 잘하셔서 "공부가 제일 쉬웠다"고 말씀하실 정도였다고 합니다.
부모님이 명문대 출신이라서 학업에 대한 압박은 없었을까요? 어머니는 처음에는 당연히 아들이 서울대에 진학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이낙준 님이 학창 시절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자 걱정이 많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버님은 "아이가 알아서 할 것"이라며 묵묵히 기다려주셨다고 합니다. 결국 이낙준 님은 스스로 공부의 필요성을 깨닫고 뒤늦게 학업에 매진하여 의대에 진학하게 되었으니, 아버님의 믿음이 옳았던 셈입니다.
어머니, 아버님의 연애 스토리는 더욱 드라마틱합니다. 어머니 집안은 엄격한 불교 집안이었는데, 어머니가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자 집에서 쫓겨났다고 합니다. 갈 곳 없는 어머니는 하숙집에서 생활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당시 어머니를 전도했던 전도사, 즉 지금의 아버지가 김치 등 음식을 가져다주며 위로하고 격려했다고 합니다. 힘든 상황 속에서 피어난 사랑은 더욱 굳건했고, 결국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외할아버지의 반대는 완강했고,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부모님의 드라마 같은 러브스토리는 이낙준 님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아버님이 성악에서 목회로 진로를 변경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요? 아버님은 성악을 전공했지만, 막상 음대에 들어가 보니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성악가로서 성공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에 좌절하던 중, 뜨겁게 하나님을 만나면서 목회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교회에 다닌 지 한두 달 만에 목회자가 되겠다고 결심할 정도로 강렬한 소명감을 느꼈다고 하니, 하나님의 이끄심이 분명했던 것 같습니다.
뒤늦게 시작한 공부,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
이낙준 님은 중학교 시절 공부를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만화책에 빠져 살고, 친구들과 엉뚱한 일을 벌이며 학업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유학 보내야겠다고 생각하고 캐나다 유학을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캐나다에서 낯선 환경과 외로움을 경험하면서 비로소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고 합니다.
돌아온 후 아버지는 이낙준 님에게 다니엘 학습법 책을 건네주며 기도하며 공부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다니엘 학습법은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기도하면서 공부했더니 성적이 올랐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반신반의하며 시작했지만, 놀랍게도 6개월 정도 지나면서 성적이 눈에 띄게 향상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기도와 노력이 결합되자 놀라운 결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공부를 시작하면서 오히려 신앙생활에 더욱 열심을 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고3 시절에는 수요 예배와 금요 철야 예배에 꼬박꼬박 참석하며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같은 처지의 친구들과 함께 예배에 참석하고 서로 격려하며 힘든 시기를 이겨냈다고 합니다. 절박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매달리자,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방법으로 응답해주셨습니다.
당시 어떤 기도를 드렸을까요? 이낙준 님은 성적에 대한 직접적인 기도보다는 "지치지 않고 꾸준히 공부할 수 있도록" 기도했다고 합니다. 성적이 조금씩이라도 오르는 것을 보면서 동기 부여를 받고, 꾸준히 노력할 수 있도록 기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꾸준히 성적이 향상되는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예배와 기도를 강조하는 아버지의 교육 방식 또한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아버지는 학업에는 크게 관여하지 않았지만, 신앙생활에는 엄격하셨다고 합니다. 공부는 못해도 괜찮지만, 예배는 꼭 참석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은 이낙준 님의 삶의 중심에 신앙을 굳건히 세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결국 이낙준 님은 의대에 진학하여 의사의 꿈을 이루게 되었으니, 아버지의 신앙 교육이 값진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의사가 된 후에도 이어진 하나님의 인도하심
의대에 진학한 후에도 하나님의 은혜는 계속되었습니다. 이낙준 님은 의대 시절을 "행복한 학번"이었다고 회상합니다. 경쟁이 치열하고 빡빡한 의대 분위기 속에서도 서로 돕고 격려하는 훈훈한 분위기였다고 합니다. 오래도록 우정을 이어가는 소중한 친구들을 만났고, 지금 유튜브 채널 '닥터프렌즈'를 함께 운영하는 내과 의사 친구도 의대 동기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평생의 반려자인 아내 또한 의대 시절에 만나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게 되었으니, 의대 시절은 이낙준 님에게 축복의 시간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낙준 님은 "지나고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하심 속에 있었던 것 같다"고 고백합니다. 친구들은 그에게 "운이 좋다", "인복이 많다"고 말하지만, 그는 이러한 모든 만남과 사건들이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섬세한 인도하심이라고 믿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우연으로 보일지라도, 신앙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임을 깨닫게 됩니다.
군의관 시절 겪었던 특별한 경험은 무엇일까요? 이낙준 님은 군의관 시절 조혈모세포 기증을 통해 생명을 살리는 귀한 경험을 했습니다. 의대생 시절 우연히 참석했던 기독교 모임에서 조혈모세포 기증 서약을 했었는데, 군의관 1년 차 때 10년 전 서약했던 조혈모세포 은행에서 연락이 온 것입니다. 골수 기증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지만, 군의관 신분이었기에 비교적 여유롭게 기증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조혈모세포 기증은 이낙준 님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평소 "내 손으로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고 있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과 부담감 때문에 망설였던 그에게 조혈모세포 기증은 직접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기회였던 것입니다. 힘든 과정이었지만, 생명을 살리는 고귀한 일에 동참했다는 사실에 큰 보람을 느꼈다고 합니다. 이 경험은 의사로서의 사명감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왜 조혈모세포 기증 서약을 했을까요? 이낙준 님은 의대생 시절부터 "사람을 살리는 의사"를 꿈꿨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생명을 다루는 일은 책임감이 막중하고 부담스러웠기에, 삶의 질을 개선하는 분야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내 손으로 생명을 살리는 의사가 되지 못한다"는 부채 의식이 남아있었습니다. 조혈모세포 기증은 이러한 부채 의식을 해소하고, 의사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웹소설 작가, 또 다른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
웹소설 작가로 데뷔하게 된 계기는 더욱 드라마틱합니다. 평소 소설가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이낙준 님은 군의관 시절 우연한 기회에 웹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만화책과 무협지를 즐겨 읽었던 어린 시절의 경험이 웹소설 창작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특히 무협지 매니아였던 아버지와의 대화는 장르 소설에 대한 흥미를 키우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웹소설 작가 데뷔는 태풍 덕분이었습니다. 군의관 훈련을 따라 무인도에 갔는데, 태풍 때문에 훈련이 취소되면서 예상치 못한 자유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웹소설을 읽다가, 문득 "나도 한번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즉흥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뜻밖의 상황이 새로운 길을 열어준 것입니다.
처음 쓴 소설은 동생에게 혹평을 받았다고 합니다. 연세대 문창과 출신인 동생은 형의 소설을 "혈육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소설", "핸드폰에 사과해야 할 수준"이라고 혹평했습니다. 하지만 형을 가르치는 재미를 느꼈는지, 웹소설 작법을 가르쳐주었고, 이낙준 님은 동생의 도움으로 웹소설 작가로 데뷔하게 되었습니다. 형제간의 끈끈한 우애가 새로운 직업 탄생의 숨은 공신이었던 셈입니다.
웹소설 작가 초창기에는 수입이 변변치 않았다고 합니다. 한 달에 10만 원 정도 벌었을 정도로 미미한 수준이었지만, 웹소설 시장이 성장하는 시기였기에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만약 태풍이 불지 않았더라면, 웹소설을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의 '웹소설 작가 이낙준'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연처럼 보이는 사건 속에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숨겨져 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첫 작품은 황당한 판타지 소설이었다고 합니다. 군의관 주인공이 버스 사고로 죽었다가 마법 세계에서 깨어난다는 황당한 설정이었는데, 반응은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소설 속 의학 지식을 활용한 수술 장면에 독자들이 열광하며 의학 소설을 써달라는 요청이 쇄도했습니다. 독자들의 반응을 통해 의학 소설에 대한 가능성을 발견하고 장르를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독자들의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이 성공의 발판이 되었습니다.
유튜브 채널 '닥터프렌즈'는 웹소설 독자들의 반응에서 힌트를 얻어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의학 콘텐츠에 대한 대중의 높은 수요를 확인하고, 유튜브라는 플랫폼을 통해 의학 정보를 재미있게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말하기 좋아하는 의대 동기들과 의기투합하여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고, 예상외로 뜨거운 반응을 얻으며 인기 채널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웹소설 독자들의 댓글이 유튜브 성공의 씨앗이 된 것입니다.
'닥터프렌즈'는 처음부터 계획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의학 소설 독자들의 반응을 보고 즉흥적으로 시작했지만, 의외의 성공을 거두면서 점점 더 열정적으로 채널 운영에 매진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2, 30대 젊은 층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계획하지 않았던 길이 오히려 더 큰 성공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성공 뒤에 찾아오는 교만과 불안감, 그리고 극복
성공적인 삶 이면에 교만과 불안감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다고 합니다. 일이 잘 풀릴 때 교만이 먼지처럼 스며들 수 있다는 것을 경계하며, 아버지로부터 "세상에서 제일 악한 것이 교만"이라는 가르침을 끊임없이 되새긴다고 합니다. 잘 나갈수록 겸손함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성공에 대한 불안감 또한 느낀다고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내가 이렇게 잘될 사람이 아닌데 왜 이렇게 잘 될까? 혹시 신기루처럼 사라지면 어떡하지? 실수해서 망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이 엄습할 때도 있다고 합니다. 성공 뒤에 숨겨진 불안함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감정일 것입니다.
슬럼프나 번아웃을 예방하는 자신만의 방법은 '망상'이라고 합니다. 웹소설, 웹툰, 드라마 등 앞으로 이루고 싶은 일들을 뉴스 헤드라인처럼 상상하고 친구에게 공유한다고 합니다. 엉뚱한 망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상상했던 일들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미리 겪어본 성공은 현실에서의 성공에 대한 들뜸과 교만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긍정적인 상상은 불안감을 극복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망상'이라기보다는 '기대' 혹은 '꿈'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 이루어질 가능성이 전혀 없는 헛된 상상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가능한 미래를 기대하고 꿈꾸는 것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동기가 될 수 있습니다. 건전한 기대와 꿈은 삶의 활력소가 되어줍니다.
반대로, 원했지만 이루지 못했던 일들도 많다고 합니다. 군의관 시절 난청 예방 어플 개발을 시도했지만, 국방부의 승인을 받지 못해 실패했던 경험을 예로 들었습니다. 웹소설 또한 실패작이 많고, 유튜브 영상도 기대만큼 반응이 좋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다음에 더 잘하면 된다"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극복해나간다고 합니다.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며 성장하는 것이 인생의 과정입니다.
실패와 성공 속에서 신앙의 힘을 느낄 때는 언제일까요? 이낙준 님은 "잘 될 때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더 크게 느낀다"고 합니다. 이유 없이 일이 잘 풀리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것은 자신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인도하심 덕분이라고 믿습니다. 웹소설 매니지먼트 대표, 웹툰 작가 등 좋은 동역자들을 만난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성공적인 결과 뒤에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작용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미래 세대에게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고 합니다. 본인 세대보다 지금 젊은 세대가 훨씬 더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며,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좌절감을 느끼는 젊은이들에게 공감합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길이 열릴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웹소설 작가, 유튜버가 될 것이라고 상상조차 못 했던 자신이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하게 된 것은 포기하지 않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짓눌리지 말고, 기도하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라고 격려합니다. 막막하고 불안한 미래이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꾸준히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로 인도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줍니다. 자신 또한 20대에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컸지만, 포기하지 않고 노력했기에 지금의 자리에 설 수 있었다고 간증합니다. 믿음과 끈기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꿈을 이루는 원동력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낙준 님은 "하나님 안에서 유연하고 고집스럽게 움직이는 것 같다"는 송지은 님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하나님의 완벽한 타임라인을 신뢰하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자신이 계획한 대로 되지 않더라도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으며 묵묵히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는 믿음을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박영 목사님은 이낙준 님의 다재다능함이 하나님의 섬세한 솜씨라고 칭찬하며, 의사, 작가, 유튜버로서 다양한 재능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축복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비빔밥 비유를 통해 이낙준 님의 삶을 다채로운 재능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비빔밥에 비유하며, 성령의 참기름을 더하여 다음 세대에게 하나님의 향기를 전하는 귀한 사역을 감당하기를 축복했습니다. 이낙준 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큰 감동과 도전을 주었습니다. 자신의 재능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이낙준 님의 앞날을 응원하며, 그의 사역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은혜를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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