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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아 엄마의 감동 실화: 장애 극복과 가족의 행복 이야기

요약

자폐아와 함께 행복을 만드는 엄마의 간증

“자폐 청년 상윤 씨와 함께 만들어가는 세상”: 한국자폐인사랑협회 남영 운영위원 간증

[동영상 링크: https://youtube.com/watch?v=WpQXIGtTms0]

오늘, 특별한 고백을 전하는 남영 집사님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흔히 부모가 되면 당연하게 여겼던 자녀 양육이, 남 집사님께는 인생에서 가장 큰 시련으로 다가왔다고 합니다. 밥 먹는 것을 힘들어하고, 이유 없이 떼를 쓰는 어린 아들을 보며 그저 “유난스럽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아들의 자폐 진단을 받게 되면서 장애아 엄마가 되셨다고 하는데요, 과연 남 집사님은 어떻게 이 시련을 극복하고, 아들과 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었을까요?

남영 집사님은 아들의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자폐에 대해 깊이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한국자폐인사랑협회 운영위원으로서, 자폐성 장애인과 그 가족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힘쓰고 계신다고 합니다. 장애가 있는 아들 때문에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많다고, 오히려 아들 덕분에 행복하다고 고백하는 남영 집사님의 희망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시죠.

목사님: 안녕하세요, 전혜진 목사입니다. 오늘 저희가 만나볼 분은 좀 “이상한” 고백을 하시는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배워서 남 주자”, “부모도 배워야 한다”는 고백을 넘어, “나는 장애아를 키워서 너무 행복합니다”라고 당당하게 말씀하시는 분이라고 하는데요. 오늘 이 자리에 특별한 주인공, 남영 집사님을 모셨습니다. 집사님,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남영 집사: 안녕하세요. 저는 25살 자폐성 장애 청년과 함께 살고 있는 엄마이자, 한국자폐인사랑협회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남영입니다.

목사님: 자폐를 둔 어머니들 사이에서 “스타”라고 불리신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남영 집사: 제가 하는 일이 발달 장애 자녀를 둔 어머니들을 지원하는 일인데요, 특히 어린 자녀를 둔 어머님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을 지원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보니,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아마 그래서 그런 이야기가 나온 것 같습니다.

목사님: 워낙 바쁘게 활동하시고, 또 발달 장애인 지원을 위해 앞장서서 개척자처럼 일하시니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WHO나 보건복지부와 함께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이 모든 일이 실은 아드님 때문에 시작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아까 25살 된 아들이 있다고 하셨는데,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남영 집사: 네, 아들 이름은 송상윤입니다.

목사님: 평소에 아드님을 부르실 때 “상윤 씨, 상윤 씨” 이렇게 부르신다고 들었습니다. 보통 엄마들은 아들을 “아들”이나 “애칭”으로 부르지 않나요? “씨” 자를 붙여 부르는 것은 흔치 않은 것 같은데요.

남영 집사: 발달 장애인은 특히 성인이 되어도 아이 취급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누구야, 누구야” 하고 이름만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런데 제가 어느 복지관에 갔더니, 성인 발달 장애인들을 “누구 씨, 누구 씨” 하고 존칭으로 부르는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래서 20살이 되면서 아들에게 “씨”라는 호칭을 선물했습니다. 저 스스로도 “상윤아” 하는 것보다 “상윤 씨”라고 부르는 것이 아들을 존중하는 느낌이 들고, 아들을 바라보는 눈이 좀 새로워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런 존중 문화를 퍼뜨리고 싶어서 먼저 “상윤 씨”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주변 반응이 꽤 좋습니다.

목사님: “사람은 자기가 만든다”는 말처럼, “상윤 씨”라고 부르니 정말 상윤 씨가 된 것 같다는 말씀이 인상적이네요. 혹시 밖에서 처음 보는 분들은 오해하지 않으시나요? 중년 여성이 젊은 청년에게 “상윤 씨, 상윤 씨” 하니, “아들이 또 훤칠하시다고 하니까”, “키가 187cm나 된다고 하셨죠?”, “거의 모델 수준인데요.”, “정말 무슨 관계인가 궁금해할 수도 있겠어요.”

남영 집사: 어렸을 때는 오해도 좀 있었지만, 지금은 많이 익숙해지신 것 같아요.

목사님: 그럼 상윤 씨는 현재 어떤 상태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겠어요?

남영 집사: 상윤 씨는 소위 “고기능 자폐”라고 불리는,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비교적 적은 자폐성 장애인입니다. 현재는 매우 독립적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발달 장애인 업계의 “대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회사에서 정규직으로 배송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목사님: 건강한 사회인이 되셨네요. 정말 대단합니다.

남영 집사: 네, 건강한 사회인이 되어서 투표도 하고, 지하철도 타고 다니고, 원하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지 갈 수 있습니다. 배고프면 혼자 밥도 사 먹고요. 자폐성 장애 중에서도 사회 적응에 비교적 어려움이 덜한 케이스이지만, 꾸준한 훈련과 교육을 통해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목사님: 물론 자폐성 장애는 상호작용이나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장애입니다. “문화권이 다르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사물을 인식하고 사고하는 방식이 비장애인과는 다르기 때문에, “틀리다”가 아니라 “다르다”고 이해해야 합니다. 감정 표현 방식도 다르고, 행동 패턴도 독특해서,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여도, 갑자기 혼자 웃거나, 손을 반복적으로 움직이거나, 혼잣말을 하는 등 독특한 행동을 보이기도 합니다. 자신만의 패턴과 규칙을 строго하게 지키는 경향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코너를 돌 때 꼭 90도 각도로 꺾는다거나, 마치 “히틀러 시대 군인”처럼 각 잡힌 행동을 하는 것이죠. 또한, 언어 이해력이 부족하고, 독특한 방식으로 소통하려고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목사님: 지금은 웃으면서 상윤 씨 이야기를 해주시지만, 처음 아드님이 자폐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어머니와 가족들의 마음은 어떠셨을까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절망스러웠을 것 같습니다.

남영 집사: 네, 정말 그랬습니다.

목사님: 언제 처음 상윤 씨의 자폐성 증세를 알게 되셨나요?

남영 집사: 저는 첫 아이를 늦게 낳아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원래 다 힘든 줄 알았습니다. 아이가 밥을 잘 안 먹고, 불러도 쳐다보지도 않고, 말도 안 듣는다고 생각하며 힘들어했습니다. 주변에서 “아이가 좀 이상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35개월 때 처음으로 소아정신과를 방문했습니다. 35개월이면 한국 나이로 네 살 정도 되었을 때입니다. 검사 결과, 처음에는 “자폐성 장애”가 아니라 “반응성 애착 장애”라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반응성 애착 장애는 후천적으로 양육 환경이 잘못되어, 엄마와의 관계 형성에 실패하면서 자폐적인 증상을 보이는 장애라고 합니다.

목사님: “엄마 때문에 아이가 자폐 상태가 되었다”는 진단은 정말 충격적이었겠어요. 죄책감과 절망감에 휩싸였을 것 같습니다.

남영 집사: 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습니다. “절망”이라는 단어조차 부족할 정도로, 매일 눈물만 흘리고 멍한 상태로 지냈습니다. 치료사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모든 치료를 열심히 받았지만, 아이는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원하는 대로 다 해주고, 치료사가 시키는 대로 다 했는데도 아이는 그대로였습니다. 그러던 중, 치료실에서 템플 그랜딘“나는 그림으로 생각한다”라는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템플 그랜딘은 자폐성 장애를 가진 세계적인 동물학자이자, 자폐 권익 옹호 운동가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상윤이와 너무나 비슷한 점이 많았습니다. 그때 “혹시 상윤이도 자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고, 자폐 관련 책을 찾아 읽으면서 “아, 얘가 정말 자폐구나”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마음의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목사님: 남편분께서는 아들의 선천적인 장애를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셨다고 들었습니다.

남영 집사: 네, 맞습니다. 남편은 아이가 선천적인 장애라는 것을 인정하기 힘들어했습니다. 결국 상윤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자폐성 장애 진단을 받았지만, 남편이 아이의 장애를 완전히 인정하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장애를 인정하는 순간, 정말 새로운 시작을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아, 이 아이는 어려움을 안고 태어났구나. 내가 엄마로서 이 아이를 위해, 아이와 함께 새롭게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전에는 문제 행동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장애 때문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서, 아이에 대한 분노와 frustration이 사라지고, 아이를 더 따뜻하게 포용하게 되었습니다. 장애를 받아들이는 순간이 저에게는 정말 “귀한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목사님: 남영 집사님께 “람보 아줌마”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상윤 씨를 헌신적으로 키우는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람보”라는 별명처럼, 정말 “전투적”으로 아들을 위해 싸우셨다는 의미겠죠?

남영 집사: (웃음) 네, 맞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이렇게 “열정적인 엄마”가 될 줄 상상도 못 했습니다. 하지만 상윤이 때문에, 장애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정말 “람보 아줌마”처럼 헌신적으로 아이를 키우게 되었습니다. 주변 분들이 그런 저를 보면서 “람보 아줌마”라는 별명을 붙여주신 것 같습니다.

목사님: 초등학교 학부모 회장 선거에서 상윤 씨가 회장에 당선된 적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이야기인데요, 어떻게 된 일인가요?

남영 집사: 상윤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서 전화가 와서 “상윤이가 회장이 되었는데 큰일 났습니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초등학교 3학년 회장 선거에서 상윤이가 “회장”으로 “당선”된 것입니다. 알고 보니, 상윤이가 노래를 খুব 잘 불렀습니다. 선거 유세 때 아이들 앞에서 노래를 বুলা, 아이들이 “시키는 대로 노래하고”, “말 잘 듣고”, “착하고”, “또 꽤 잘생겼잖아요?” 순수한 아이들의 마음에 상윤이가 “최고의 후보”로 보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순수한 마음”으로 상윤이를 회장으로 뽑아준 것입니다.

목사님: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네요.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이 만들어낸 기적 같습니다.

남영 집사: 저와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상윤이는 회장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오히려 너희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아이인데, 회장을 কিভাবে 하겠느냐, 다른 아이를 다시 뽑아라”고 설득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우리가 뽑은 회장이니, 상윤이가 회장을 해야 한다”고 완강하게 주장했습니다. 저는 그때 아이들에게 “진정한 리더십”에 대해 배웠습니다. 우리 어른들은 “회장은 কি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아이들은 “함께 돕고 함께 성장하는 리더십”을 선택한 것입니다. 상윤이가 얼마나 “순수하고 착한 아이”인지, 아이들의 마음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결국 상윤이는 “차렷, 경례만 하는 회장”으로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습니다.

목사님: 상윤 씨의 “인성”“됨됨이”가 얼마나 훌륭한지 짐작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어머니께서는 상윤 씨에 대해 정말 “자랑스러워하는 마음”으로 이야기해주시네요. 어머니 외에도, 아까 상윤 씨 아버님 이야기도 잠깐 하셨고, 여동생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상윤 씨가 태어난 후 여동생이 태어났다고 하셨는데, 가족 구성원들이 상윤 씨를 받아들이고, 지금의 상윤 씨로 성장하기까지, 모든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어머니께서 힘드셨던 만큼, 남편분과 여동생도 상윤 씨를 받아들이기까지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남영 집사: 네, 물론입니다. 특히 저희 부부는 처음 “반응성 애착 장애” 진단을 받았을 때, 제 책임 때문에 아이가 장애를 갖게 되었다는 죄책감에 дуже 힘들었습니다. 남편은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저를 많이 원망했던 것 같습니다. 남편은 “가장 뜨겁게 사랑했던 아내”를 “용서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내 아이를 이렇게 만든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남편은 “암흑 속”을 지나는 것 같았다고 고백했습니다. 겉으로는 무관심했지만, 속으로는 괴로워했던 것이죠. 남편은 아이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몰랐고, 모든 치료를 저에게 맡기고 “네가 알아서 해라”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저는 눈치가 없어서 남편의 “차가운 무관심”“원망”이라고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아이와 “소통”이 되지 않고, “이상한 행동”을 반복하는 아들을 보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것”입니다. 그렇게 남편은 가족 안에서 “섬처럼 겉도는 존재”가 되어갔습니다. 저는 상윤이에게 “올인”하다 보니, 다른 가족들은 “소외”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목사님: 시댁 식구들과의 관계도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남영 집사: 저는 둘째 며느리인데, 부모님을 모시고 산 지 18년이 되었습니다. 18년 전, 시부모님을 모시고 서울로 올라올 때부터 어려운 일이 많았습니다. 시어머니는 “아픈 손가락”인 상윤이 때문에 저를 더 “힘들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고부 갈등”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남편과의 “관계”였습니다. 남편은 상윤이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목사님: 남편분께서 아들의 장애를 인정하고, 가족 안으로 돌아오기까지 “계기”가 있었나요?

남영 집사: 네, 상윤이가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아빠와의 관계가 크게 개선되었습니다. 상윤이는 아빠를 बहुत 좋아했습니다. 마치 “짝사랑”처럼, 아빠에게 “애정”을 갈구했습니다. 아빠를 “하나님”처럼 “동경”하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아빠를 “헌신적”으로 챙겼습니다. 그런 상윤이의 순수한 마음에 남편도 서서히 마음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네요.

남영 집사: 남편이 마음을 열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상윤이가 “문자 메시지”를 보내면서부터입니다. 저는 상윤이가 “핸드폰”을 사용할 줄 전혀 몰랐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저에게 전화해서 “당신, 애 시켜서 나한테 무슨 문자를 보낸 거야?” 하며 화를 내는 거예요. “나는 그런 문자 보낸 적 없는데…” 하고 งง해하고 있는데, 남편이 제 핸드폰을 보여주면서 “이 문자, 당신이 보낸 거 아니야?”라고 묻는 거예요. 확인해보니, 제 핸드폰으로 제 번호로 문자 메시지가 전송되어 있었습니다. 발신인은 바로 상윤이었습니다.

목사님: 정말 놀라운데요! 상윤 씨가 문자를 보낸 내용이 কি 였나요?

남영 집사: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남편에게 “무언가를 부탁하는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상윤이에게 물어보니, “예”라고 했다가 “아니요”라고 했다가, 대답이 오락가락했습니다. 그래서 “한번 다시 해봐라” 하고 시켜봤더니, 정말 “뒷문자”를 치는 거예요. 저는 그때까지 상윤이가 문자를 칠 줄 전혀 몰랐습니다. 남편은 “눈앞에서 아들이 직접 문자 치는 모습”을 보고 엄청난 “충격”“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 우리 아들도 이제 “소통”할 수 있구나, “희망”이 있구나” 생각하면서, 굳게 닫혔던 마음의 문을 활짝 열게 된 것입니다.

목사님: 25년간 상윤 씨와 함께한 스토리가 정말 파란만장하네요. 고비 때마다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하지만 돌이켜보면, “소중한 추억”도 많으실 것 같습니다.

남영 집사: 네, 물론입니다. 장애아를 키우면서 “힘든 일”도 많았지만, “행복한 순간”도 많았습니다. 오히려 다른 평범한 가족들은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감동”“기쁨”을 느낄 때도 많았습니다. 자폐성 장애인들은 “말”“글자 그대로” 이해하는 독특한 특징이 있습니다. 한번은 상윤이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던 것 같습니다. 남편과 의견 충돌이 있어서 제가 속상한 마음에 울고 있었는데, 상윤이가 오더니 “엄마, 제가 위로해 드릴게요”라고 말하는 거예요.

목사님: 정말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야기네요.

남영 집사: “아, 내가 이렇게 힘들게 키운 아이에게 “위로”도 받는구나” 생각하면서, 정말 “감사하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이런 기적도 있구나” 생각했는데, 갑자기 상윤이가 저를 “번쩍 들어올리는” 거예요. 깜짝 놀라서 “왜 그래?” 하고 물으니, “엄마 위로해 드렸습니다”라고 해맑게 웃는 거예요. 자폐성 장애인 특유의 “순수함”“엉뚱함”이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위로”라는 말을 “물리적인 행위”로 이해한 것이죠. 하지만 상윤이의 “순수한 마음”“따뜻한 행동”에 저는 정말 “진심으로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때 “아, 우리가 “자폐”라는 “어려움”을 잘 이겨내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겠구나”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아버지와의 관계도 회복되고, 가족 모두가 상윤 씨를 “따뜻하게 품어안게” 되었을 무렵, 상윤 씨에게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다고 들었습니다. “뇌전증”이라는 질병이 발병해서, 온 가족이 다시 한번 좌절에 빠졌다고 하는데요, কি 된 일인가요?

남영 집사: 상윤이가 중학교 2학년 때, 갑자기 “뇌전증”이 발병했습니다. 상윤이는 6학년 때부터 “리코더”를 배우기 시작해서, “리코더 콩쿨”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콩쿨 준비를 하던 중에 갑자기 “뇌전증 발작”을 일으킨 것입니다. “뇌전증”은 과거 “간질”이라고 불렸던 질병입니다. 자폐성 장애인에게 뇌전증 발병률이 높다고 합니다. “자폐성 장애인”“25~35%”“뇌전증”“동반”한다고 합니다. 상윤이의 첫 발작은 정말 심각했습니다. 제가 “눈앞에서 아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는 듯한 “끔찍한 경험”이었습니다. 발작 시간도 매우 길었습니다. 저는 “기억”“끊길 정도”“혼란”스러웠습니다. 상윤이는 “자폐성 장애”에 더해 “뇌전증”이라는 “이중고”를 겪게 된 것입니다. 다행히 상윤이의 뇌전증은 “약물 치료”로 잘 조절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꾸준히 약을 복용하면서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목사님: 장애에 이어 뇌전증까지, 정말 힘든 고비들을 겪으셨네요. 일반인이라면 그런 “어려움”“극복”하기 쉽지 않을 텐데, 남영 집사님은 어떻게 그 모든 시련을 이겨낼 수 있었을까요? “힘”“원천”은 무엇이었나요?

남영 집사: “오직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이 없었다면 저는 정말 “버틸 수 없었을 것”입니다.

목사님: 하나님을 어떻게 만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남영 집사: 저는 “하나님의 계획”을 믿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저를 위한 “특별한 계획”이 있으셨다고 생각합니다. 중학교 때 미션스쿨을 다녔지만, 그때는 종교 활동에 “적극적”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교목 선생님”이셨던 목사님께서 “개척 교회”를 하셨는데, “반장”들을 교회로 초대하셔서 “따뜻하게 맞아주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는 교회가 “어렵고 힘든 곳”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이후에는 교회를 다니지 않았지만, 항상 “크리스천”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결혼”“준비”하면서, “시아버님”“목사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아버님과의 만남을 통해 “교회”에 다시 나가기 시작했고, “하나님”“진심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 “하나님”과의 만남이 인생의 “turning point”가 되었네요.

남영 집사: 네, 맞습니다. 상윤이의 장애를 알고, “내 탓”이라는 “죄책감”에 짓눌렸을 때, 세상에 기댈 곳은 “하나님”밖에 없었습니다. “조각조각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을 붙잡고, “구역 식구들”“함께 기도”하면서 “위로”“힘”을 얻었습니다. “교회 공동체”는 저에게 “가족”과 같았습니다. “연령별 모임”, “기도 모임”을 통해 “하나님”“더 깊이 만나”고, “믿음”을 키워나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저는 정말 “절망” 속에서 “무너졌을 것”입니다.

목사님: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기에, 이 모든 “시련”“극복”하고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는 말씀이 감동적이네요. 집사님께서는 이제 아드님을 넘어, “자폐 장애”를 가진 “이웃”“어려움”을 겪는 “가족”들을 위해 “헌신”하고 계십니다. “WHO”“협력”하여 “글로벌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는 점도 놀랍습니다. “평범한 주부”였던 남영 집사님이 어떻게 “세계적인 기구”“파트너십”을 맺게 되었는지, 그 “계기”가 궁금합니다.

남영 집사: 어렸을 때부터 “영어”를 정말 좋아했습니다. 마치 “운명”처럼, 영어를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대학교에서 “영어”“전공”하고, “영어”를 많이 사용하는 “직장”을 선택했습니다. “영어” 덕분에 지금의 “WHO 프로젝트”“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저를 “미리 준비시키신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국제적인 기구”이기 때문에, “영어 소통 능력”이 필수적입니다. 한국어로 “프로젝트”“제안”하거나 “의견”“개진”하려면, “능숙한 영어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저는 “개인적인 자격”으로 “WHO”“프로젝트”“제안”했고, “파트너십”을 맺게 되었습니다.

목사님: 정말 놀랍습니다. “WHO”“파트너십”을 맺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남영 집사: 저희 “한국자폐인사랑협회”“Autism Speaks”라는 “미국 단체”“파트너십”을 맺고 있습니다. “Autism Speaks”“세계 최대 규모”“자폐성 장애 옹호 단체”입니다. “Autism Speaks”“WHO”와 함께 “정신 건강 갭 액션 프로그램(mhGAP)”을 진행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mhGAP”“정신 질환”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한 “WHO”“글로벌 프로젝트”입니다. “mhGAP”“세부 프로그램” 중 하나가 “부모 양육 기술 훈련(Caregiver Skills Training, CST)” 프로그램입니다. “CST 프로그램”“발달 장애 아동”을 둔 “부모”“정신 건강”“증진”하고, “아동”“발달”“지원”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목사님: “CST 프로그램”“한국”“도입”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남영 집사: “CST 프로그램”“개발”“배경”에는 “슬픈 현실”이 숨겨져 있습니다. “발달 장애 아동”을 둔 “부모”들은 “extreme 스트레스”“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절망감”“고립감” 속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부모”들도 적지 않습니다. “WHO”“Autism Speaks”는 이러한 “문제”“해결”하기 위해 “CST 프로그램”“공동 개발”했습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CST 프로그램”“부모”“양육 역량”“강화”하고, “부모”“행복도”“높여”줄 뿐만 아니라, “아동”“자살률”“우울증”“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저는 “CST 프로그램”“한국”“발달 장애 가족”들에게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Autism Speaks”“WHO”“직접 연락”하여 “프로그램 도입”“제안”했습니다.

목사님: “WHO”“Autism Speaks”“반응”은 어떠했나요? “평범한 개인”“제안”“쉽게 받아들여주던가요?”

남영 집사: 처음에는 “무모한 도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세계적인 기구”“WHO”“파트너십”을 맺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절박한 마음”으로 “WHO”“Autism Speaks”“이메일”“보내고”, “국제 학회”“쫓아다니며” “프로그램 도입”“필요성”“설득”했습니다. 다행히 “WHO”“Autism Speaks”는 저의 “진심”“알아봐주시고”, “CST 프로그램”“한국 도입”“적극적으로 지지”해주셨습니다. 그렇게 “기적”처럼 “WHO”와의 “파트너십”“성사”되었습니다.

목사님: 정말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평범한 주부”에서 “WHO 파트너”가 되기까지, 남영 집사님의 “열정과 헌신”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WHO”“파트너십”을 맺기까지, “숱한 어려움”“고난”이 있었을 텐데, “포기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왔나요?

남영 집사: 저는 “계획”을 세우고 “일을 추진”하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내 아이 하나만 잘 키우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상윤이가 “고등학교”“입학”하면서 “학교 폭력”에 시달리고, “학교”“가기 싫어”하게 되면서, “세상”“마주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깨달았습니다. “장애인”“비장애인”“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때부터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떠오르는 대로”, “해야 할 일”들을 “닥치는 대로” 했습니다. “미국”“자폐 지원 시스템”“잘 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가” “자폐 관련 기관”들을 “방문”하고 “관계”“맺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자폐 지원 센터”“설립”하고, “직업 훈련 프로그램”“개발”하는 등 “다양한 활동”“펼쳤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했던 일들은 모두 “미리 찍어놓으신 발자국”처럼,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길”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앞만 보고 달려왔을 뿐”인데, “하나님”께서 “놀라운 방법”으로 저를 “인도”해주셨습니다.

목사님: “미국”에서 “상윤 씨”“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면서 “희망”“얻으셨다고” 하셨는데,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 희망”“이어갈 수 있었나요?”

남영 집사: “미국”에서 “돌아온 후”, “현실”“녹록지 않았습니다”. “한국”“자폐 지원 시스템”“미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해야 할 일”“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오히려 “심한 절망감”에 휩싸였습니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수없이 많이 했습니다”. “무력감”“지쳐 쓰러질 것 같았던 순간”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상윤이”를 통해 저에게 “새로운 힘”“용기”를 주셨습니다. “상윤이”는 저에게 “축복의 통로”였습니다. “상윤이”를 통해 “하나님”“사랑”“깨닫고”, “세상”“소통”하는 “방법”“배웠습니다”. “상윤이”는 저를 “절망”에서 “건져 올리고”, “새로운 길”“인도하는 존재”였습니다.

목사님: “절망”“순간”“하나님”“간절히 기도”했을 때, “응답”“받았다고” 하셨는데, 어떤 “응답”이었나요?

남영 집사: “절망”“끝자락”에서 “하나님”“매달렸습니다”. “하나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도대체 무엇을 원하시길래, 저에게 이렇게 많은 시련을 주시는 건가요?” “원망”“하소연”이 섞인 “기도”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미지”“응답”해주셨습니다. “다리”“통로”“이미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다리 역할”, “통로 역할”을 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개인”“개인”“이어주고”, “개인”“단체”“연결”하는 “다리”가 되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때 “축복의 통로”라는 “찬양”“유행”했습니다. “상윤이”는 저를 “하나님”“이어주는 축복의 통로”였고, 저는 “상윤이”를 통해 “세상”“소통하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다리 역할”, “통로 역할”을 하면서, 오히려 제가 “더 많은 복”“받았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다리 역할”, “통로 역할”“감당하며 살아가겠습니다”.

목사님: 정말 “귀한 깨달음”입니다. 남영 집사님은 “평범한 대한민국 아줌마”이지만, “장애 아들”“키우면서 겪었던 고난”을 통해 “세상”“향한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영 집사님에게 “특별한 사명”을 주셨고, 남영 집사님은 그 “사명”“감당하기 위해 헌신”하고 계십니다. 오늘 방송을 시청하시는 분들에게, “자폐성 장애인”“장애인 가족”들에게 “따뜻한 응원과 격려”“메시지”를 부탁드립니다.

남영 집사: 제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지역 사회 중심”으로 “발달 장애인 가족”“지원”하고, “자조 그룹”“만드는 프로그램”입니다. “교회”“중심”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정”들을 “모아” “목장”“만들면”, 저희가 “프로그램”“지원”해드릴 수 있습니다. “목사님”들이나 “집사님”들께서 “어려움”을 겪는 “부모님”들을 “한국자폐인사랑협회”“연락해주시면”, 저희가 “찾아가서 도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교회”“다리 역할”, “통로 역할”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길을 가다가 자폐인”“만나면”,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봐주시고”,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다가가주시면” 좋겠습니다. “자폐인”“누군가의 아들”이고, “누군가의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해주십시오”.

목사님: 오늘 정말 “감사한 말씀” 잘 들었습니다. 오늘 방송을 보시고 많은 분들이 “상윤 씨”와 같은 “자폐성 장애인”들에게 “따뜻한 마음”“전달해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앞으로 “계획”“기도 제목”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남영 집사: “시아버님”은 저에게 “산성”과 같은 분이십니다. “시아버님”께서는 “상윤이”를 저희 “가족”에게 “보내주신 것”“하나님 아버지”께서 “저희 가족”을 통해 “나라”를 위해 “큰 일”“하라고 하시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아버님”“뜻”“따라”, 저희 “가족”“복지 사업”“헌신”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남편”“복지 사업”“준비”하고 있습니다. 저희 “가족”“최종 목표”“장애인”“비장애인”“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마을 공동체”“만드는 것”입니다. “장애인”“비장애인”“차별 없이”,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꿈꿉니다”. 그리고 “장애 아동”을 둔 “부모님”들이 “마음 편히 잠들 수 있는 세상”, “아이”“혼자 두고 떠나도 걱정 없는 세상”“만드는 것”이 저의 “기도 제목”이자 “꿈”입니다. “장애인”“인간적인 존중”을 받고, “사랑받는 존재”“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만드는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목사님: 오늘 남영 집사님의 “작은 외침”“세상”“향한 큰 울림”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속히 오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남영 집사: 감사합니다.

목사님: 우리 주변에는 “많은 상윤 씨”가 있습니다. “상윤 씨”와 같은 “자폐성 장애인”들과 “그 가족”들에게 “따뜻한 관심”“사랑”“보내주세요”. “장애인”“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장애인”“보내주신 이유”는, “현미경”처럼 “자세히 들여다보고” “아름다운 것”“발견하라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망원경”을 주시면서 “멀리 내다보며 함께 살아가야 할 세상”“보여주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장애인”“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삶”“가치”“깨닫고”, “사랑과 관심”으로 “함께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새롭게 하소서”는 여기서 인사드리고, 다음 시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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