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성공에서 하나님 찾은 작사가 김태희 간증 참자유 이야기
## 돈 쫓던 작사가, 하나님 만나 욕망 비우고 얻은 참 자유
"욕심 가득했던 나를 비우신 하나님" - 작사가 김태희 간증 상세 정리
오늘, 성공에 매여 살다 하나님을 만나 참된 자유를 찾은 작사가 김태희 님의 간증을 통해, 우리 인생의 진정한 소망과 행복의 근원은 무엇인지 깊이 알아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그녀는 가요계에서 수많은 히트곡을 작사하며 명성을 떨쳤지만, 내면에는 깊은 갈증과 고통이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시편 146편 3-5절 말씀처럼, "사람을 의지하지 말며 인생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가 복이 있다"는 진리를 몸소 깨달은 김태희 작사가, 어떻게 욕심을 비우고 하나님으로 채워나가게 되었는지, 그녀의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겠습니다.
김태희 작사가는 과거, 돈에 대한 강렬한 욕심에 사로잡혀 살았습니다. 밥은 적게 먹었지만 돈 욕심은 엄청났다고 회상하며,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어린 시절이 돈에 집착하게 된 배경임을 설명합니다. 넉넉지 못한 형편에도 아버지께서는 늘 맞춤 양복을 입으시고 택시를 타는 멋쟁이셨지만, 어머니는 50원, 100원을 아껴가며 생활하는 검소한 분이셨습니다. 극명히 대조되는 부모님의 모습은 어린 김태희 작사가에게 묘한 분위기를 느끼게 했고, 훗날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면서 더욱 돈에 대한 욕망을 키웠다고 합니다. 화목하지 못했던 가정 환경 또한 그녀의 불안감을 증폭시켰습니다. 고모들의 잦은 간섭과 정서적으로 불안정했던 아버지 밑에서, 김태희 작사가는 늘 불안과 결핍감을 느꼈고, 어머니를 돕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에 휩싸였습니다.
돈을 벌어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인생의 목표였던 그녀는 작사가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 역시 오직 돈 때문이었다고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가수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은 있었지만, 뛰어난 재능이나 인기를 갈망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경희대학교 불어불문학과에 진학했지만, 낭만적인 프랑스 생활을 꿈꾸기보다는 오직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여겼습니다. 대학교 써클 '제이제이' 활동 역시 그녀의 인생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선배들의 권유로 얼떨결에 신입생 환영회 오디션에 참가하게 되었고, 캐스팅 매니저 눈에 띄어 가수의 길을 걷게 된 것입니다. 새우깡 CM송을 부르게 된 것을 계기로 가수 데뷔까지 하게 되었지만, 공개 방송 땜빵이나 지방 공연 위주의 활동에 실망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저작권 수입이 높은 작사가라는 직업에 대해 알게 되면서 작사의 길로 방향을 전환하게 됩니다. 혼성 그룹 활동 당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작사 파트를 맡게 되었던 경험을 떠올리며, 앨범 시장 호황기에 작사가로서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예스맨'을 자처하며 작사 의뢰를 쫓아다녔고, 돈을 벌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습니다. 결혼 후에도 돈에 대한 집착은 멈추지 않았고, 20년 넘게 쉴 새 없이 달려왔습니다. "마지막 잎새"처럼 불안했던 마음과는 달리, 겉으로는 악착같이 돈을 쫓는 삶을 살았습니다. 스스로를 '겁이 많고 소심한 성격'이라고 묘사했지만, 돈 앞에서는 물불 가리지 않는 맹렬한 욕망을 드러냈습니다.
성공 가도를 달리던 김태희 작사가에게 예상치 못한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결혼 후 IMF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탈모와 우울증 등 건강 문제까지 겹치게 되었습니다. 화려했던 연예계 생활은 그녀에게 깊은 상처와 불안감만 남겼습니다. 사람에 대한 불신과 미래에 대한 불안은 우울증, 강박증, 불안 장애, 공황 장애로 이어졌고, 죽음에 대한 공포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평생 라면만 먹어도 좋으니, 나를 외롭게 하지 않을 사람"을 만나 결혼했지만, 남편과의 관계 또한 순탄치 않았습니다. 작곡가였던 남편은 늘 그녀의 건강을 걱정했지만, 정작 김태희 작사가는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하고 홀로 괴로워했습니다.
우울증은 점점 심각해져, 수면 장애와 식욕 부진, 심지어 자살 충동까지 느끼게 되었습니다. 약을 먹어도 잠들 수 없었고, 하루 종일 울다가도 돈벌이가 될 만한 일이 생기면 언제 그랬냐는 듯 화려하게 변신했습니다. 내면의 아이를 돌보지 못한 채, 겉으로만 화려한 삶을 유지하려 했던 그녀는 점점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들었습니다. 심각한 공황 증세는 은행조차 제대로 갈 수 없을 정도로 그녀를 짓눌렀습니다. 어느 날,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내가 죽어야 이 고통이 끝날까'라는 절망적인 생각에 휩싸이면서, 신경정신과를 찾아야겠다는 절박한 심정이 되었습니다. 119 구급차를 일부러 여러 번 탔지만, 병원에서는 뚜렷한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남편조차 그녀의 고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양치기 소년 같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절망의 늪에서 허덕이던 김태희 작사가에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견딜 수 없는 고통에 밤새도록 소파에 웅크리고 신음하던 그녀는 '풍선처럼 몸이 터져 죽을 것 같다'는 극심한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다음 날 아침, 몸이 굳어 꼼짝할 수 없게 된 그녀는 문득 어머니를 떠올렸습니다. 불교 집안이었던 어머니는 1년 전 먼저 기독교로 개종한 후, 딸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무속 신앙에 심취했던 집안 분위기 탓에 푸닥거리와 미신을 맹신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옷방에 꿇어 엎드려 "하나님, 계시다면 저를 도와주세요. 너무 아프고 힘들어요."라고 울부짖었습니다.
놀랍게도, 기도하는 순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수은주가 내려가듯 시원한 기운이 온몸을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그 즉시 통증이 사라지고 몸이 자유로워지는 기적을 체험한 것입니다. "진짜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구나!" 김태희 작사가는 생애 처음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확실하게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교회에 나가지는 않았습니다. 오랜 시간 불신앙 속에 살아왔던 그녀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배신감과 약간의 반항심 또한 남아있었던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 없이 은혜만 구하는 얄팍한 믿음은 오히려 '저주'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경계하며, 섣불리 교회 출석을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이 밤에 자다 깨서 "할아버지가 꿈에 나타나 무서웠다"며 울먹이는 것을 보고, 무속 신앙 집안 출신이었던 그녀는 본능적으로 영적인 문제임을 직감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났던 경험과 어머니의 권유가 떠올라, '교회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에게 전화해 "교회에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고, 생애 처음으로 교회 문턱을 넘게 되었습니다. 교회 예배 중 찬송가를 듣는 순간,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평소 걱정 많던 자신을 위로하는 듯한 가사가 마음에 깊이 와닿았던 것입니다. 처음 듣는 찬송가였지만, 익숙한 멜로디처럼 느껴졌고, 눈물 흘리며 찬송가를 따라 불렀습니다. 예배 후 딸아이의 불안 증세는 신기하게도 사라졌습니다. '이제 우리 집은 내가 지킬 것이다. 아무도 넘볼 수 없다'는 강렬한 마음이 가슴 속에 차올랐습니다.
하지만 딸아이의 울음은 그 후로도 계속되었습니다. 땡깡 부리는 것으로 여기고 달래도 보고 혼내도 봤지만, 울음은 점점 심해져만 갔습니다. 학교에서도 울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힘없이 축 늘어져 있는 딸아이를 보며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다시 어머니에게 전화해 도움을 요청했고, 어머니는 교회 권사님들과 함께 김태희 작사가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권사님들은 딸아이를 안고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더러운 악귀는 떠나갈지어다!"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처음에는 반항하며 몸부림치던 딸아이는, 기도가 계속될수록 점점 안정을 찾고 잠잠해졌습니다. 마침내 울음을 멈추고 평온한 얼굴로 잠든 딸아이를 보며, 김태희 작사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격과 놀라움을 느꼈습니다. '하나님께서 진짜 역사하시는구나!' 권사님들의 기도 모습은 그녀에게 깊은 감동과 믿음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때부터 김태희 작사가는 울 때마다 딸아이에게 직접 기도해주기 시작했습니다. 신기하게도 기도할수록 딸아이의 울음은 점점 잦아들었습니다.
딸아이의 울음은 계속되었지만, 예전처럼 심하게 울지는 않았습니다. 가을 단풍 구경 여행 중에도 딸아이가 울음을 터뜨리자, 남편은 드디어 딸아이의 이상 행동을 눈치채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왜 저러는 거야!" 화가 난 남편에게 김태희 작사가는 조심스럽게 "이유는 모르겠지만, 영적인 문제 같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꿈 속에서 계속 낯선 여인이 나타나는 꿈을 반복적으로 꾼다는 이야기도 덧붙였습니다. 다음날 주일, 온누리교회 예배 후, 꿈 속에 나타났던 여인과 똑같이 생긴 여인을 교회 주차장에서 마주치게 됩니다. 소름 끼치는 놀라움과 함께, 그 여인이 자신에게 "예배 잘 드렸냐"고 묻는 순간, 김태희 작사가는 그 여인이 꿈 속에서 자신에게 믿음을 강요했던 '영 씨'임을 직감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이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았지만, 남편은 여전히 종교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내의 간절한 설득과 딸아이의 호전 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남편은 교회에 나가 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님 설교에 큰 감명을 받아 본격적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딸아이 또한 교회 학교 활동을 통해 점점 안정을 찾고 밝아졌습니다.
가족 모두 함께 교회에 다니면서 가정 안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어두웠던 집안 분위기는 화목하고 평화롭게 바뀌었고, 웃음이 넘치는 가정이 되었습니다. 특히 남편은 예전에는 딸아이에게 무뚝뚝했지만, 교회 다닌 후 딸아이에게 애정 표현도 많이 하고 함께 교회 가고 싶어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김태희 작사가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감사했습니다. 성경 말씀 묵상을 통해 큰 위로와 힘을 얻었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모든 일을 맡기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여 살았지만, 이제는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평안과 자유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후, 김태희 작사가의 삶은 180도 달라졌습니다. 성경 말씀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큰 도전과 위로를 받았습니다. 특히 겁쟁이 기드온 이야기를 읽으며, 자신과 닮은 모습에 공감하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나 같은 사람도 하나님의 도우심 안에서 주인공처럼 살 수 있겠구나'라는 확신을 갖게 되면서, 무슨 일이든 하나님께 기도하며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남편과의 관계 또한 놀랍게 변화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남편에게 싫은 소리 한마디 못했지만, 이제는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남편 또한 아내의 변화된 모습에 감동받아, 신앙생활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부부 다락방 모임에 함께 참석하고, 서로 기도해주며 영적으로 깊이 교류하는 관계로 발전되었습니다. 힘들고 속상한 일이 있을 때면, 하나님께 기도하며 지혜와 해결책을 구했고, 놀랍게도 기도 응답을 체험하는 일들이 많아졌습니다. 김태희 작사가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자신처럼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도 하나님께 의지하면 놀라운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간증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더욱 굳건해졌습니다. 오랜 작사 활동 중 수입이 줄어들면서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채워주셨습니다. 남편이 오랜 꿈이었던 마스터링 스튜디오 사업을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을 내비쳤을 때, 김태희 작사가는 불안했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며 남편을 격려했습니다. 집 담보 대출까지 받아 스튜디오를 오픈했지만, 홈 레코딩 시대에 마스터링 스튜디오 사업 전망은 밝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김태희 작사가는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이라면 망할 리 없다'고 믿었고, 묵묵히 하나님께 기도하며 순종했습니다. 놀랍게도, 스튜디오 오픈 후 드라마, 영화 음악 작업 의뢰가 끊임없이 들어왔고, SK 텔레콤 매장 음악 제작 의뢰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일이 넘쳐나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번창했고, 경제적인 어려움은 눈 녹듯이 사라졌습니다. 김태희 작사가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인도하심 덕분임을 고백하며 감격했습니다. 과거에는 돈 때문에 전전긍긍했지만, 이제는 하나님께서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신다는 것을 확실히 믿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귀한 변화는, 김태희 작사가 부부가 매달 한 곡씩 찬양곡을 만들어 하나님께 드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과거 화려한 세상 노래를 작사했던 그녀가, 이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만들어 드리는 사역을 감당하게 된 것입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찬양을 만들면서 오히려 큰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고 고백합니다. 찬양 사역을 통해 '진정한 성공은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이름 없이 헌신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진정한 순종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딸 태연이가 'K팝 스타'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딸을 응원하고 기도해주는 가운데 자신의 진정한 사명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무대 앞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고 싶어했지만, 이제는 무대 뒤에서 이름 없이 섬기는 것이 자신의 자리임을 깨달았습니다. 에펠탑 꼭대기가 아니라, 에펠탑을 지탱하는 수많은 볼트와 너트 하나하나가 더 소중하듯, 화려한 주연 배우가 아니라 조연, 엑스트라 역할이라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김태희 작사가는 자신의 찬양 가사에 많은 회개가 담겨 있다고 말합니다. 과거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기 위해 애썼던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며, 이제는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그분께 인정받는 삶을 살고 싶다고 고백합니다. '아버지 내 아버지'라는 찬양 가사 속 "사람이 좋아 주를 잊었고, 세상에 맞춰 주를 밀어냈네"라는 구절은 바로 자신의 과거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고백이라고 합니다. 하나님 이야기를 하면서도 여전히 사람 눈치를 보고 사람 좋아하는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회개하며,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합니다.
마지막으로, 김태희 작사가는 딸 태연에게 지팡이를 주신 것 같다며 딸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과거 울기만 하던 딸이 이제는 어엿한 어른이 되어 엄마, 아빠와 함께 찬양 사역을 감당하는 모습을 보며 큰 감격과 감사를 느낀다고 합니다. 딸 태연은 피아노 연주와 편곡 등 음악 적 재능을 발휘하여 찬양 사역에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남편 정진수 씨 또한 작곡과 편곡으로 찬양 사역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온 가족이 하나가 되어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천국 가정을 연상케 합니다. 김태희 작사가는 자신들의 찬양을 듣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나누고 위로받기를 소망하며,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감으로 세상에 희망과 기쁨을 전하는 찬양곡들을 계속해서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습니다. 우리 모두 김태희 작사가의 간증을 통해 큰 도전과 위로를 받고, 각자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